# 비밀의 협력자
포구에서의 추격은 예상보다 빨랐다.
이준호가 배에서 내린 지 채 삼십 호흡도 되지 않아 말을 탄 인물들이 나타났다. 검은 옷을 한 이들은 조정의 포졸이 아니었다—움직임이 너무 정확했고, 칼을 들고 달려오는 방식이 너무 체계적이었다. 이준호는 본능적으로 도면을 품에 깊숙이 누르고 뒷골목으로 달았다. 돌무더기 사이, 말이 들어올 수 없는 좁은 길들을 누비며 그는 숨을 고르지 못했다. 폐가 타는 듯했고, 다리가 불타는 듯했다. 도면은 가슴팍에서 볼록하게 튀어나왔고, 그 무게가 이상하게 무거웠다.
산림 지역으로 진입한 것은 해가 중천일 때였다.
이준호는 소나무 숲 깊숙이 몸을 숨겼다. 추격자들의 발자국이 희미해질 때까지 움직이지 않았다. 가슴이 철렁철렁 내려앉고, 손가락이 떨렸다. 도면이 젖지 않도록 옷 안에 더 깊이 누르며 그는 생각했다. 저들은 누구인가. 이영이 도면을 본 직후 나타났다. 그렇다면 이영은 이미 고발했단 말인가. 아니면 도면 그 자체가 이미 누군가에게 알려진 것인가.
밤이 내렸을 때 이준호는 밀무역 집단의 은신처로 향했다. 그곳은 포구에서 북쪽으로 반나절 거리의 외딴 초막이었다. 명희를 찾는 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밀무역꾼들의 네트워크에서 명희를 모르는 자는 없었으니까.
명희는 목재를 깎고 있었다. 칼로 나무를 깎는 그 손의 움직임은 절대 무의미하지 않았다. 모든 동작이 계산된 것처럼 정확했다. 이준호가 들어서자 명희는 칼을 멈추고 고개를 들었다.
"추격을 받았군."
질문이 아니었다. 진술이었다.
"도면 때문입니다."
이준호는 가슴에서 도면을 꺼냈다. 종이가 손에서 떨렸다. 명희는 칼을 내려놓고 손을 씻은 후 도면을 펼쳤다. 그녀의 눈동자가 움직였다. 처음에는 호기심 어린 시선이었다가 점차 뭔가 다른 것으로 변해갔다.
"이게 기선의 도면이라는 게 정말인가?"
"네. 일본 배에서 건져올렸습니다."
"작동하는가?"
"모릅니다. 그래서 배워야 합니다."
명희는 도면 위에 손가락을 얹었다. 선의 흐름을 따라가며 중얼거렸다. 구체적인 단어는 들리지 않았지만, 그 음성에는 계산이 담겨 있었다. 이준호는 그 계산이 무엇을 향하고 있는지 궁금했다.
"지금 동해는 누가 지배하는가?"
명희가 느리게 입을 열었다.
"김대우 세력입니다."
"그렇다면 그들은 어떻게 지배하나?"
이준호는 명희의 질문에 잠시 생각했다. 동해의 밀무역 집단들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이미 알고 있었다.
"조류와 바람을 읽고, 계절을 기다립니다. 그리고 그 사이를 비집고 드나듭니다."
"그렇다. 그들은 자연에 종속되어 있다." 명희가 도면을 다시 내려놓고 이준호를 바라봤다. "내가 작년에 청의 밀무역꾼들과 거래한 적이 있다. 그들의 배는 달랐다. 날씨를 무시했다. 조류를 무시했다. 배는 자신의 의지대로 움직였다. 그 배들이 뭔지 아는가?"
"기선입니다."
"그렇다. 기선이 동해를 지배한다면, 더 이상 김대우 같은 자들이 필요 없다. 배의 주인이 직접 지배한다. 속도, 날씨, 조류—모든 것이 무의미해진다. 배를 움직이는 건 증기다. 배의 주인의 결단이다."
명희의 입가가 올라갔다. 웃음이 아니라 무언가 더 차가운 표정이었다.
"동해 해상의 밀무역 집단들은 모두 김대우 아래에 있다. 우리를 포함해서. 하지만 기선이 있다면, 우리는 그의 종속에서 벗어날 수 있다. 그리고 그게 가능해진다면, 조정도 우리를 무시할 수 없게 된다."
"그렇습니다."
"기선이 성공한다면, 나는 김대우에게 종속되지 않을 수 있다. 우리 집단도 그럴 수 있다. 그리고 그게 가능해진다면, 조정도 우리를 무시할 수 없게 된다." 명희가 도면을 다시 펼쳤다. "너는 정말로 이걸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하나?"
"혼자서는 불가능합니다."
"누가 필요한가?"
"양반 기술관이 필요합니다. 조정의 이론을 아는 자. 그리고 기술자가 필요합니다. 도면을 현실로 옮길 손이 필요합니다."
명희는 다시 도면을 내려놓았다. 그 손가락이 특정 부위를 가리켰다.
"증기 기관. 이건 조선에 없는 기술이다."
"네."
"그것을 만들 수 있는 자는?"
"모릅니다."
명희가 일어섰다. 그녀는 초막의 벽에 기대어 있던 지도를 펼쳤다. 조선의 해안선이 그려진 지도였다. 동해, 남해, 황해가 표시되어 있었고, 특정 지점들에는 작은 표시가 되어 있었다.
"정윤기라는 양반이 있다. 조정의 기술관이지만, 그는 조정의 모든 결정에 동의하지 않는 자다. 특히 서양 기술에 대해서는." 명희가 이준호를 돌아봤다. "그를 만나거라. 하지만 조심하거라. 조정은 모든 것을 본다. 특히 기술에 대해서는."
"조정이 알면?"
"역모다. 죽음이다. 가족까지 함께."
이준호의 호흡이 얕아졌다.
명희가 지도 위의 한 지점을 가리켰다. 산 깊숙한 곳이었다.
"산림 지역의 비밀 조선소가 있다. 그곳에서 만나거라. 정윤기를 통해서."
정윤기를 만난 것은 사흘 후였다.
산림 지역의 작은 사찰 뒤, 돌담 너머의 공터였다. 양반이라는 것이 이상했다. 정윤기는 일반적인 양반의 모습이 아니었다. 얼굴은 까무잡잡했고, 손에는 먹물이 묻어 있었으며, 옷의 소맷자락은 해어져 있었다.
"도면을 보이거라."
정윤기의 첫 말은 인사가 아니었다. 이준호는 도면을 펼쳤다. 정윤기가 구부려 내려와 도면을 살폈다. 그의 눈이 움직였다. 도면 위를 추적하는 눈동자는 빠르고 정확했다.
"이것은 증기 기관이다."
진술이었다. 질문이 아니었다.
"네."
"어디서 얻었나?"
"난파선에서."
정윤기가 고개를 들었다. 그의 눈이 이준호를 정면으로 응시했다. 이준호는 눈맞춤을 피했다. 가슴이 철렁했다. 이 양반이 자신을 고발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 모든 것이 끝난다. 도면도 끝나고, 꿈도 끝나고, 이준호 자신도 끝난다.
"천출이군."
정윤기가 말했다.
"네."
"이 도면을 이해했나?"
"완전히는 아닙니다."
"그렇다면 누가 이해했나?"
"모릅니다."
정윤기가 다시 도면을 보았다. 손가락이 특정 부위를 따라갔다.
"조선의 전통 조선술과 결합될 수 있다." 정윤기가 중얼거렸다. "이 기관이 조선 배에 탑재된다면, 전혀 새로운 배가 탄생한다. 서양의 기술만으로는 조선 해상에서 작동하지 않을 것이다. 조선의 해류, 조선의 바람, 조선의 선체—이 모든 것과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
이준호는 그 말을 다시 들었다. 기술자의 말이었다. 양반의 말이 아니었다.
"누가 이걸 만들 수 있을까?"
정윤기가 이준호를 다시 봤다. 이번에는 눈맞춤을 피할 수 없었다.
"너는 만들고 싶은 것인가?"
"네."
"왜?"
이준호는 잠시 침묵했다. 신분이라는 말이 입 끝에 맴돌았다. 천출이라는 신분. 양반이 아니면 배울 수 없는 세상. 하지만 그것을 이 양반에게 말해야 할까. 정윤기는 조정의 기술관이었다. 조정의 신분제를 유지하는 체계의 일부였다.
"신분 때문입니다."
이준호는 결국 입을 열었다.
"천출이라는 신분입니다. 양반이 아니면 기술을 배울 수 없습니다. 양반이 아니면 조정에 인정받을 수 없습니다. 하지만 기술은 신분과 상관없습니다. 도면은 누구에게나 같은 정보를 줍니다. 손과 머리가 있다면, 신분은 상관없습니다."
정윤기의 눈썹이 올라갔다. 그는 이준호를 오래 바라봤다. 그 시선 속에 무엇이 있었는지 이준호는 알 수 없었다. 판단인지, 비난인지, 아니면 다른 무언가인지.
정윤기가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작은 종이 뭉치였다. 펼쳐지면 약도가 나타났다. 조선의 해안선이 그려져 있었고, 특정 지점들에는 작은 표시가 되어 있었다.
"이것은 청의 해상 감시망이다." 정윤기가 속삭였다. "조정은 공식적으로는 쇄국정책을 표방한다. 하지만 실제로는 청의 감시망을 정확히 파악하고 있다. 여기, 이 지점들을 피해 동해로 나아가면, 기선이 항해할 수 있다."
이준호는 약도를 바라봤다.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이해하는 데는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정윤기가 자신을 고발하는 것이 아니라, 협력하는 것이었다.
손가락이 떨렸다. 하지만 이제는 공포의 떨림이 아니었다.
정윤기가 약도를 이준호의 손에 쥐어줬다.
"박태현이라는 인물이 있다. 조정의 보수 진영을 주도하는 자다. 그는 서양 기술의 유입을 조선의 정통성에 대한 위협으로 본다. 그리고 이미 기선 건조의 소문을 듣고 있다. 추적 중일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산림 지역의 비밀 조선소로 가거라. 명희가 말했을 것이다. 그곳에 도착하면 허상이라는 기술자가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그는 금속과 기계를 다룬다. 도면을 현실로 옮길 수 있는 유일한 자다."
정윤기는 이준호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내가 이 일을 돕는 대신, 너는 한 가지 약속해야 한다."
"무엇입니까?"
"적발될 경우, 나를 언급하지 않는 것이다. 내 이름이 나온다면, 조정의 기술관 전체가 의심받을 것이다. 그럼 기술 개발 자체가 좌절된다. 너 혼자 죽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조선의 미래가 끝난다. 그것을 이해하나?"
이준호의 호흡이 멈췄다. 정윤기의 말은 협력이 아니라 거래였다. 그것도 불공평한 거래였다. 이준호는 죽음을 감수해야 하고, 정윤기는 살아남아야 한다는 뜻이었다.
"네. 이해합니다."
정윤기의 손이 이준호의 어깨에서 떨어졌다. 그 순간 이준호는 깨달았다. 신분을 버린다는 것은 신분을 포기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신분을 무의미하게 만드는 것이었다. 천출이라는 족쇄는 조정의 법이 만든 것이었다. 하지만 도면은 그런 법을 초월했다. 도면이 말하는 것은 오직 기술뿐이었다. 누가 그것을 읽든, 도면은 같은 정보를 제공했다. 도면 앞에서는 신분이 무의미했다.
손가락의 떨림이 멈추었다.
산림 지역으로 향하는 길에서 이준호는 약도를 몇 번이나 들었다 놨다 반복했다. 정윤기의 말이 계속 되뇌어졌다. 신분을 버린다는 것은 무엇인가. 천출이라는 족쇄를 풀고, 기술자로만 존재한다는 것인가.
산림 지역에 도착했을 때는 해가 기울고 있었다. 소나무 숲 사이로 보이는 것은 낡은 조선소였다. 나무로 지어진 큰 건물이었고, 그 옆에는 인공으로 파놓은 물길이 있었다. 배를 건조할 수 있도록 설계된 공간이었다.
그곳에 한 명의 남자가 서 있었다.
나이는 대략 오십을 넘긴 것으로 보였다. 얼굴은 검게 그을렸고, 손가락은 굽어 있었다. 그는 이준호를 본 순간 인사하지 않고 도면을 손짓했다.
"도면을 보여줘."
목소리는 거칠었고, 말투는 무례했다. 이준호는 도면을 펼쳤다. 그 남자—허상이 도면을 받아 들었다. 그의 눈이 도면 위를 빠르게 훑어갔다.
"서양 기술만으로는 조선 해상에서 작동하지 않는다."
허상이 중얼거렸다. 그 말은 이미 이준호가 들었던 말이었다. 정윤기가 했던 말이었다.
"네. 알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넌 뭔가 다른 걸 생각하고 있다는 뜻이군."
허상의 눈이 이준호를 바라봤다. 그 눈에는 호기심이 아니라 무언가 더 본질적인 것이 담겨 있었다.
"조선의 전통 조선술과 결합하려고 합니다."
"그게 가능할 거 같아?"
"모릅니다. 그래서 배우려고 합니다."
허상이 웃음을 터뜨렸다. 그것은 비웃음이 아니라, 오랜 시간 누군가를 기다려온 사람이 드디어 같은 생각을 가진 자를 만났을 때의 웃음이었다.
"좋아. 그럼 시작하자."
허상은 이준호를 조선소 안으로 이끌었다. 조선소의 불빛이 켜졌을 때, 이준호는 비로소 이 공간의 진정한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벽에는 다양한 도구들이 걸려 있었고, 바닥에는 금속 부스러기들이 흩어져 있었다. 그리고 한쪽 모서리에는 무언가 반쯤 완성된 기계 장치가 놓여 있었다.
"이게 뭡니까?"
"증기 기관의 시제품이다."
허상이 그것을 가리켰다. 이준호는 천천히 다가갔다. 손이 시제품에 닿았다. 차가운 금속의 촉감이 손가락을 타고 올라왔다.
"아직 작동하지 않지만, 기본 원리는 구현되어 있다. 보이나? 여기 실린더와 피스톤이 있고, 여기 밸브가 있다." 허상이 시제품의 각 부위를 가리켰다. "문제는 이 도면의 설계와 맞지 않는다는 거다. 너의 도면은 더 정교하다. 하지만 조선 배의 흔들림과 염분을 견디려면, 이 정도의 견고함으로는 부족하다."
이준호는 도면과 시제품을 번갈아 봤다. 도면의 선들이 시제품의 부위들과 대응되었다. 하지만 정윤기가 말한 것처럼, 서양의 기술만으로는 부족했다.
"조선의 배는 파도 위에서 살아 움직입니다. 이 기관은 그 움직임을 견뎌내야 합니다."
"그렇다. 그리고?"
"이 실린더의 벽을 더 두껍게 하고, 밸브의 간격을 좁혀야 합니다. 염분이 침투하는 것을 막기 위해."
허상의 입가가 올라갔다.
"정확하다. 넌 도면을 단순히 읽은 게 아니라, 이해했다. 이제 우리는 함께 이것을 완전한 증기 기관으로 만들어야 한다. 그리고 조선의 배에 탑재할 수 있는 방식으로 개조해야 한다."
"얼마나 시간이 필요합니까?"
"정상적이라면 몇 개월. 하지만 우린 시간이 없다. 박태현의 수색대가 이 지역을 돌아다니고 있다."
"얼마나 있습니까?"
"하루. 아니, 하루 반이 더 정확하다. 저들은 이 지역을 다시 수색할 것이다. 다음번엔 조선소 안을 들어올 가능성이 높다."
이준호의 가슴이 철렁했다. 하루 반. 그것이 전부였다.
"그럼 하루 반 안에 기본 설계를 완성해야 합니다."
허상이 이준호를 바라봤다. 그 눈에는 같은 무언가가 담겨 있었다. 절박함이 아니라 결연함이었다.
"그렇게 하자."
조선소의 불이 더욱 밝아졌다. 이준호는 도면을 다시 펼쳤다. 손이 시제품을 따라갔다. 허상의 거친 손가락이 옆에서 도면을 가리켰다. 두 사람은 각 부위를 놓고 기술 대사를 나눴다.
"여기 밸브 부분을 보면, 도면에선 단순한 구조인데…"
"조선의 배에서는 이 정도로는 부족하다. 이중 밸브 구조로 만들어야 한다. 염분이 침투해도 내부 기관은 보호된다."
"그렇다면 무게가 늘어난다."
"배의 무게 중심을 조정하면 된다. 조선의 전통 조선술에서 무게 배분은 기본이다."
밤이 깊어갔다. 허상은 도면의 각 부위를 금속으로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그의 손은 쉼 없이 움직였다. 망치질, 불질, 냉각—모든 과정이 정확했다. 이준호는 옆에서 도면을 들고 확인했다. 손가락이 더 이상 떨리지 않았다. 시제품의 각 부위를 만지며 그는 도면과 현실을 연결하는 고리를 찾아냈다. 손이 움직일 때마다 신분이라는 족쇄는 한 겹씩 벗겨져 나갔다.
새벽이 올 무렵, 조선소 밖에서 말의 발굽 소리가 들렸다. 허상이 갑자기 불을 껐다. 이준호도 숨을 죽였다. 손에 들고 있던 도면이 차가워졌다.
"누구냐?"
허상이 조선소 밖으로 나갔다. 이준호는 도면을 재빨리 품에 넣었다. 밖에서 목소리들이 들렸다. 허상의 거친 목소리와, 다른 남자의 날카로운 목소리가 충돌했다.
"이 산림에서 뭘 하고 있는 거냐?"
"내 조선소다. 뭐가 문제냐?"
"조정의 명으로 이 지역을 수색 중이다. 안에 누가 있나?"
"아무도 없다."
침묵이 흘렀다. 이준호의 심장이 철렁철렁 내려앉았다. 발굽 소리가 조선소 쪽으로 다가오는 것 같았다. 손가락이 도면을 더 깊이 누르고 있었다. 만약 저들이 안으로 들어온다면, 도면은 적발될 것이다. 그럼 모든 것이 끝난다.
"이곳은 허상의 조선소다. 그 이상 수색할 것은 없다."
"확인해봐야 한다."
"박 대인, 이곳은 이미 조정에서 등록된 공식 조선소입니다. 무단 수색은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목소리가 더욱 날카로워졌다. 박태현의 것으로 보이는 음성이 다시 울렸다.
"공식이라는 게 무슨 상관인가? 역모의 소굴일 수도 있지 않은가?"
"박 대인의 의심은 타당하지만, 절차상 문제가 있습니다. 조정에 보고 후 공식 수색 명령을 받아야 합니다."
긴 침묵이 흘렀다. 이준호는 호흡을 고르려 했지만 실패했다. 발굽 소리가 다시 울렸다. 점점 멀어지는 소리였다.
허상이 다시 들어왔다. 그의 얼굴은 창백했지만, 눈빛은 여전히 차가웠다.
"박태현의 수색대다. 이미 우리를 찾고 있다. 그리고 저들은 다시 올 것이다. 다음번엔 조선소 안을 뒤질 가능성이 높다."
이준호의 호흡이 얕아졌다. 공포가 다시 올라왔다. 하지만 이제는 혼자가 아니었다. 양반 기술관과 기술자가 함께였다. 그리고 도면이 있었다.
"얼마나 남았습니까?"
"이제 정말 몇 시간이다. 해가 뜨면 저들이 다시 올 것이다."
이준호는 도면을 다시 펼쳤다. 허상의 거친 손가락이 옆에서 도면을 가리켰다. 외부의 위협은 계속 커지고 있었지만, 조선소 안에서는 오직 기술만이 존재했다. 신분도, 두려움도, 미래도 없었다. 오직 도면과 손과 생각만 있었다.
"여기 부분을 더 강화해야 한다."
"네. 알겠습니다."
망치질이 계속되었다. 불이 계속 타올랐다. 금속이 계속 형태를 바꿨다. 허상의 팔은 기계처럼 움직였고, 손가락에 묻은 그을음은 점점 짙어졌다. 이준호는 도면을 들었다 내렸다를 반복했다. 손때가 도면의 모서리에 쌓여갔다. 금속의 열기가 조선소를 가득 채웠다. 실린더의 벽은 점점 두터워졌고, 밸브의 간격은 점점 좁혀졌다.
"이 부분, 피스톤 로드가 더 길어야 한다."
"맞다. 조선 배의 흔들림을 견디려면 스트로크가 더 커야 한다."
망치질의 리듬이 바뀌었다. 한 번, 두 번, 세 번—금속이 울렸다. 불꽃이 튀었다. 이준호는 도면의 선을 따라가며 중얼거렸다. 밸브, 실린더, 피스톤, 로드—모든 부위가 조화를 이루어야 했다. 서양의 기술과 조선의 지혜가 만나는 지점에서, 새로운 기계가 탄생하고 있었다.
시간이 흘렀다. 새벽이 밝아오고 있었다. 허상의 움직임이 조금씩 느려졌다. 팔의 피로가 눈에 띄었다. 하지만 그의 눈은 여전히 도면에 집중되어 있었다.
"거의 다 왔다. 이제 마지막 부분이다."
"조정에서 또 올까요?"
"올 것이다. 해가 떠서 충분히 밝아지면."
이준호는 도면을 더 가깝게 들었다. 마지막 부분—밸브 시스템의 핵심이었다. 이 부분이 정확하지 않으면, 증기 기관은 작동하지 않을 것이다.
"여기, 이 각도가 정확해야 합니다. 몇 도 틀어지면 증기가 새어나갑니다."
"내가 맞춰 주겠다."
허상은 망치를 더 가늘고 정교한 것으로 바꿨다. 손가락이 금속 위에서 춤을 추듯 움직였다. 탁, 탁, 탁—소리가 더욱 섬세해졌다. 금속의 색이 변했다. 붉은색에서 주황색으로, 주황색에서 노란색으로, 다시 회색으로 식어갔다.
"완성됐다."
허상이 손을 멈췄다. 이준호는 완성된 부품을 들었다. 무게감이 있었다. 그 무게 속에는 두 사람의 밤이 담겨 있었다. 도면과 현실이 만나는 순간이었다.
"이제 조립해야 한다."
"시간이 있습니까?"
"없다. 하지만 해야 한다."
허상과 이준호는 손으로 각 부품을 맞춰나갔다. 실린더, 피스톤, 로드, 밸브—모든 부위가 정확한 위치에 들어갔다. 도면의 선들이 현실이 되어가고 있었다.
"잠깐."
이준호가 멈췄다.
"뭐냐?"
"이 부분, 도면과 맞지 않습니다."
이준호는 도면을 다시 들었다. 손가락이 특정 부위를 가리켰다. 로드와 밸브의 연결 지점이었다.
"여기 각도를 조정해야 합니다. 그래야 피스톤이 정확하게 작동합니다."
허상은 다시 망치를 들었다. 탁, 탁, 탁—금속이 다시 울렸다. 해가 점점 높아지고 있었다. 조선소 안의 불빛이 점점 희미해졌다.
"완성됐다."
허상이 최종 부품을 내려놓았다. 이준호는 모든 부위를 다시 확인했다. 도면과 일치했다. 완벽했다.
"이제 시제품이 완성된 증기 기관으로 변했다."
허상이 말했다.
"네. 작동할까요?"
"해봐야 알지. 하지만 이론상으로는 작동해야 한다."
이준호는 완성된 기관을 들었다. 금속의 온기가 손가락을 감싸 안았다. 도면에서 시작된 것이 현실이 되었다. 신분도, 신분제도 없었다. 오직 기술만 있었다. 그리고 그 기술은 누구의 손에서도 같은 결과를 낼 수 있었다.
"박태현이 올까요?"
"올 것이다. 이제 해는 충분히 떠 있다."
마치 그 말이 신호가 되었는지, 조선소 밖에서 다시 말의 발굽 소리가 들렸다. 이번에는 더 많은 수였다. 여러 마리의 말이 동시에 달려오고 있었다.
"도면을 숨겨."
허상이 말했다. 이준호는 도면을 품에 넣었다. 손가락이 떨렸다. 하지만 이제는 공포의 떨림이 아니었다. 그의 손에는 완성된 기관이 있었다. 그것이 증명이었다.
"누구냐?"
허상이 조선소 밖으로 나갔다. 박태현의 목소리가 들렸다. 이번에는 더욱 위협적이었다.
"이 조선소를 수색한다. 저항하지 마."
"이건 조정에서 등록된 공식 조선소다. 무단 수색은 문제가 될 수 있다."
"문제? 내가 문제를 만들겠다. 안으로 들어가!"
발걸음 소리가 들렸다. 여러 명이 조선소 안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이준호는 손에 들고 있던 기관을 재빨리 숨겼다. 도면도 더 깊이 누르고 있었다.
박태현이 들어섰다. 그의 얼굴은 분노로 가득했다.
"뭘 하고 있었나?"
"배를 짓고 있었다. 조정의 명령대로."
"배? 이 산림에서 누가 배를 타나?"
"조정이 알아서 결정할 일이다."
박태현의 눈이 조선소 안을 훑어갔다. 도구들, 금속 부스러기들, 그리고 반쯤 완성된 배의 틀. 하지만 기관은 보이지 않았다.
"여기 뭔가 있다. 뭘 숨기고 있나?"
"숨기는 게 없다."
박태현이 이준호를 발견했다. 그의 눈이 좁혀졌다.
"넌 뭐냐?"
"조선소의 일꾼입니다."
"천출인가?"
"네."
박태현이 이준호에게 다가갔다. 손이 이준호의 옷을 집어 올렸다.
"뭘 숨기고 있나?"
이준호의 심장이 철렁했다. 도면이 적발될 것 같았다. 하지만 그 순간, 허상이 박태현의 팔을 잡았다.
"건드리지 마. 이건 조정의 공식 조선소다. 너는 여기서 권한이 없다."
박태현의 얼굴이 붉어졌다.
"권한? 내가 권한이 없다고? 나는 조정의 명으로…"
"박 대인."
한 명의 관리가 박태현에게 다가갔다.
"여기는 이미 조정에서 등록된 공식 조선소입니다. 무단 수색은 법에 위배됩니다. 우리는 공식 수색 명령 없이 더 이상 진행할 수 없습니다."
박태현의 주먹이 쥐어졌다. 하지만 결국 그는 돌아섰다.
"이 지역을 계속 감시한다. 뭔가 수상한 움직임이 있으면, 즉시 보고하거라."
박태현과 그의 부하들이 조선소를 나갔다. 발굽 소리가 점점 멀어졌다.
허상과 이준호는 숨을 내쉬었다. 도면은 여전히 이준호의 품에 있었고, 기관은 여전히 숨겨져 있었다.
"완성됐다."
허상이 말했다.
"네. 완성됐습니다."
이준호는 완성된 기관을 다시 들었다. 금속의 무게가 손가락에 전해졌다. 그 무게는 신분의 무게가 아니었다. 그것은 기술의 무게였다. 그리고 기술 앞에서는 모두가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