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 난파선의 도면

동해의 검은 물이 배의 옆구리를 깎아낸다.

이준호는 밧줄을 손에 감고 난파선의 선체를 더듬었다. 목재는 썩어가고 있었지만 여전히 단단했다. 일본식이다. 돛의 각도와 선체의 굽음이 조선 배와 달랐다. 이것도 알아야 했다. 청의 감시망이 주로 황해 쪽에 집중되어 있다는 것도, 동해에서는 밀무역이 성행한다는 것도, 가끔 이런 난파선이 떠내려온다는 것도 모두 알아야 했다. 밀무역꾼으로 살기 위해서는.

물속에서 건져낸 짐꾸러미들이 갑판에 쌓여 있었다. 비단, 향료, 도자기. 무역 물자였다. 이영이 손을 옮기고 있었다.

"좋은 수확이네. 이것만 해도 달 치는 괜찮겠는데?"

이영의 목소리에는 만족감이 묻어났다. 밀무역꾼 중에서도 오래된 축에 속하는 이영은 이미 이것을 판매 가능한 상품으로 계산하고 있었다.

이준호는 선체 내부로 더 깊숙이 들어갔다. 부서진 목재 사이로 금속이 보였다. 검은색의, 정교한 금속 부품들. 그것들이 연결되어 있었다. 기어 같은 것도 있었고, 길다란 막대 같은 것도 있었다. 그리고 도면.

도면은 나무통 안에 정확하게 말려 있었다. 습기에 젖지 않도록 칠해진 종이 위에 선들이 그려져 있었다. 직선과 곡선이 규칙적으로 배치되어 있었고, 옆에는 문자가 적혀 있었다. 라틴 문자였다. 이준호는 기술 도면의 몇 글자는 읽을 수 있었다. 밀무역 과정에서 서양 상인들과 거래하면서 배운 것들이었다.

*Steam Engine.*

증기 기관.

손가락이 떨렸다. 그것을 숨길 수 없었다. 가슴 깊숙한 곳에서 무언가가 올라오고 있었다. 오랫동안 억눌려 있던 것이 터져나오려는 소리 같은 것.

이준호는 도면을 펼쳐 들었다. 물에 젖지 않은 종이는 질겼다. 선들이 명확했다. 실린더와 피스톤. 밸브와 연결봉. 회전축으로 이어지는 구조. 그림만으로도 이것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대략 알 수 있었다. 하지만 모든 것이 명확하지는 않았다.

피스톤이 어떻게 회전력을 만드는가. 그 동력이 배의 돛과 어떻게 결합되는가. 조선의 전통 조선술과 이 기계가 어떻게 어울릴 수 있는가.

손가락이 도면의 각 부분을 따라갔다. 라틴 문자들을 읽으려 했다. 대부분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숫자들은 보였다. 비율과 크기를 나타내는 것 같았다. 금속의 두께, 실린더의 직경, 피스톤의 행정 거리.

조선에서 이런 금속을 만들 수 있을까. 이런 정밀한 부품들을 주조할 기술이 있을까. 도면은 명확했지만, 현실은 다를 것 같았다.

"이준호, 뭐 찾았나?"

이영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직 갑판에 있는 이영은 이준호가 선체 내부에서 얼마나 오래 머물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시간이 남아있었다. 아직 시간이 있었다.

이준호는 도면을 말린 통째로 품에 넣었다. 그 위에 금속 부품들을 몇 개 더했다. 이영이 묻지 않을 무게였다. 밀무역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균형이었다. 발각되지 않을 정도의 무게. 의심받지 않을 정도의 태연함.

"금속이 좀 있었다. 녹슬지 않은 부분들 말이야."

이준호가 선체 위로 올라오며 말했다. 목소리는 차분했다. 밀무역 십 년의 경험이 그 차분함을 만들었다. 하지만 심장은 다르게 뛰고 있었다.

"금속? 그게 뭐하는 데 쓰는?"

"모르지. 배에 붙어있던 거. 혹시 모르니까 챙겼어."

이영은 웃음을 터뜨렸다. "너 같은 놈들이 있어서 좋은 거야. 버린 것도 주우려고 하니까."

이준호는 웃음으로 화답했다. 그 웃음 뒤로 도면의 무게가 느껴졌다. 가슴팍에 닿은 나무통의 차가움이 느껴졌다.

그들은 난파선을 떠났다. 나머지 짐꾸러미들도 배로 옮겨졌다. 조각배들이 움직였다. 동해의 물은 여전히 검었다. 하늘은 더 검어지고 있었다. 날씨가 변할 조짐이 보였다.

포구로 돌아가는 길에 이준호는 난파선의 선체에 새겨진 문양을 기억하려 했다. 일본식 글자 아래에 있던 그 무늬. 조선의 배에는 없는 문양이었다. 그것은 이 배가 먼 곳에서 왔다는 것을 증명했다. 서양에서 온 기술이 일본을 거쳐 동해 연안에 도착했다는 것을 증명했다. 조정의 해금령과 청의 감시망을 뚫고.

"이준호."

이영의 목소리였다.

"뭐?"

"이번 달은 괜찮을 것 같아. 이 수확이면."

"그렇지."

이준호는 대답했지만, 그의 생각은 이미 다른 곳에 가 있었다. 도면의 선들이 떠올랐다. 증기 기관의 구조. 피스톤과 실린더. 그것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그것이 배를 어떻게 움직이게 하는지.

포구는 어두워지고 있었다. 밀무역꾼들의 소굴처럼 보이는 그곳에 배들이 정박해 있었다. 조정의 감시를 피하기 위해 항상 어둠을 이용했다.

포구의 선창에서 물자를 내리는 동안, 누군가 이준호에게 다가왔다. 여성의 목소리였다.

"이준호, 이영 있나?"

이준호는 돌아섰다. 어둠 속에서 여성의 윤곽만 보였다. 키는 중간 정도였고, 움직임은 경계적이었다. 지시를 내리는 방식이 정교했다. 정보를 수집하는 눈빛이 날카로웠다.

"이영이라면 물자 정리 중이야. 뭔가 급한 일인가?"

"아니. 그냥 소식만 전하려고. 조정에서 동해 해상의 밀무역을 단속하려고 움직인다고. 감시선을 더 보낼 거라고."

"누가 그런 소식을?"

"여기저기에서 들었어. 그리고 청의 해상 감시가 좀 더 촘촘해진다는 말도."

여성은 말을 끝내고 돌아섰다. 이준호는 그 뒷모습을 바라봤다. 누구인지 알아야 했다. 하지만 물어볼 수도 없었다. 밀무역 세계에서는 필요한 만큼만 알고, 나머지는 모르는 것이 생명이었다.

이영이 나타났다.

"뭐라고 했어?"

"조정의 감시선이 늘어난다고."

"또? 이번 달엔 좀 조용할 줄 알았는데."

이영은 담배를 피웠다. 담배 연기가 어둠 속에서 희미하게 보였다.

"이준호, 언제까지 이렇게 살 거야?"

"뭐? 밀무역 말인가?"

"그래. 돈도 되지만, 목숨은 걸려있잖아. 매번 조정의 감시를 피하고, 청의 배를 조심하고. 언제까지 이렇게?"

이준호는 대답하지 않았다. 가슴팍의 도면이 느껴졌다. 그 무게가 갑자기 커졌다. 평생 이렇게 살 것인가. 밀무역꾼으로. 천출 신분으로.

"새로운 배를 만든다면?"

이준호가 말했다. 자신도 놀랐다. 입에서 나온 말이었다. 생각보다 먼저.

"새로운 배? 뭐 하는 배?"

"더 빠른 배. 조정의 감시를 더 쉽게 피할 수 있는 배."

이영은 한참을 바라봤다. 담배 연기가 피어올랐다.

"그런 배를 만들려면 누가 필요한가?"

"뭐?"

"기술자다. 배를 설계할 수 있는 사람. 목재를 다루는 사람. 그리고..."

이영이 담배를 내뱉었다.

"금속 부품을 만들 수 있는 사람. 그런 사람들이 모여야 가능해. 넌 그런 사람들을 알아?"

이준호는 대답하지 못했다. 도면은 있었지만, 그것을 현실로 만들 사람들은 없었다. 조선의 기술관들은 양반 신분이었고, 천출 신분의 밀무역꾼이 그들에게 접근할 방법은 없었다.

"그럼 미쳤다는 건 확실해. 하지만..."

이영이 담배를 내뱉었다.

"그런 미친놈이 필요할 수도 있겠지. 이 시대에는."

포구의 어둠이 더 짙어졌다. 조정의 감시선이 늘어난다는 소식도 있었고, 청의 감시가 촘촘해진다는 말도 있었다. 모든 것이 이준호에게 압박으로 다가왔다. 밀무역꾼으로서의 압박. 천출 신분으로서의 압박. 그리고 그 압박을 뚫고 나아가야 한다는 절박함.

이준호는 포구에서 떠나기로 결정했다. 도면을 안전한 곳에 숨겨야 했다. 누구에게도 보일 수 없는 곳에. 그리고 그 도면을 현실로 만들 방법을 찾아야 했다.

밤거리를 걸으며, 이준호는 난파선의 문양을 다시 생각했다. 그것은 단순한 장식이 아니었다. 그것은 메시지였다. 서양의 기술이 이미 동해를 누비고 있다는 메시지. 조선의 폐쇄적인 정책이 이미 무너지고 있다는 증거. 그리고 그 기술을 누가 먼저 손에 쥐는가가 미래를 결정한다는 것.

포구를 벗어나 산림 지역으로 향하던 길. 검은 그림자들이 갑자기 나타났다.

말 위의 사람들. 횃불을 들고 있었다. 몇 명인지 정확히 셀 수 없었다. 하지만 충분히 많았다. 충분히 위험했다.

"누구냐!"

외침이 들렸다. 조정의 감시단인지, 청의 해상 감시 세력인지, 아니면 다른 밀무역 집단인지. 이준호는 알 수 없었다. 다만 그들이 자신을 향해 움직이고 있다는 것만 알았다.

그들이 왜 자신을 추격하는지도 불명확했다. 도면 때문일까. 아니면 다른 이유일까. 그 의도를 알 수 없다는 것이 더욱 위험했다.

이준호는 몸을 날렸다.

길 옆의 밤숲으로. 횃불의 빛이 뒤를 따랐지만, 어둠이 더 빨랐다. 나뭇가지가 얼굴을 할퀴었다. 따뜻한 피가 흘렀다. 신경 쓸 여유가 없었다. 숨이 가빴다. 다리가 무거웠다. 하지만 몸은 멈출 수 없었다.

"이쪽이다!"

목소리가 숲을 헤치고 들어왔다. 말의 발굽 소리도 들렸다. 조직적이었다. 우연한 통행인이 아니었다. 누군가 자신을 추격하기 위해 이 길을 지키고 있었다.

이준호는 속도를 높였다. 무릎이 부러질 듯 아팠다. 어제의 밀무역 행동에서 이미 지쳐 있던 다리였다. 하지만 몸은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 죽음 앞에서는 누구나 빨라진다.

검은 숲을 벗어나, 다시 열린 길로 나왔다. 뒤를 돌아봤다. 횃불이 다섯 개. 아니, 여섯 개였다. 그들은 더 빠르게 접근하고 있었다. 말은 사람보다 빨랐다. 특히 밤의 숲에서 도망치는 사람보다는.

이준호의 눈이 앞을 재빠르게 훑었다. 포구로 돌아갈 수는 없었다. 거기는 더 많은 추격자가 기다리고 있을 것이었다. 산림 지역도 위험했다. 깊숙이 들어가면 길을 잃을 수 있었다.

그렇다면 물.

동해는 조정의 감시 아래 있지만, 동시에 밀무역꾼들의 영역이기도 했다. 물 위에서는 다르게 싸울 수 있었다. 육지에서 말을 탄 추격자들은 물에서는 무기가 되지 않았다.

이준호는 방향을 바꿔 해안으로 향했다. 모래사장이 보였다. 그 너머로 어두운 바다가 펼쳐져 있었다. 밀무역꾼들의 숨겨진 배들이 정박해 있는 곳이었다.

"저기다!"

뒤에서 외침이 터졌다. 이제 거리가 백 발 남짓이었다. 횃불이 이준호의 등을 밝혔다. 그림자가 길어졌다. 그림자가 길어진다는 것은 추격자들이 가까워진다는 뜻이었다.

모래사장에 발이 닿았다. 모래가 발목까지 빠졌다. 속도가 떨어졌다. 이준호는 이를 악물었다. 한 손으로 가슴팍을 누르며, 다른 손으로 모래를 헤쳤다. 도면이 젖으면 안 된다. 그것만 생각했다.

"잡아라!"

말 위의 사람이 외쳤다. 말이 모래사장으로 내려왔다. 말발굽이 모래를 파헤쳤다. 하지만 말도 모래에서는 사람만큼이나 무거웠다.

이준호는 물로 뛰어들었다.

차디찬 동해의 물이 온몸을 감쌌다. 겨울이 채 끝나지 않은 계절이었다. 물의 온도가 피를 얼렸다. 하지만 육지에서의 죽음보다는 물에서의 죽음이 낫다고 생각했다. 어쩌면 헤엄쳐서 나갈 수도 있으니까.

"저기 배가 있다!"

누군가가 외쳤다. 밀무역꾼들의 배였다. 작은 목선이었다. 돛대가 하나 있고, 노가 여럿 있는 배였다. 이준호는 그곳으로 헤엄쳤다. 팔과 다리가 물을 가르며 앞으로 나아갔다.

배 위의 사람들이 보였다. 밀무역꾼들이었다. 이준호를 알아보는 눈이 있었다. 한 사람이 줄을 던졌다.

"이준호냐?"

"누가 저 뒤에 있는지 모르겠어. 하지만 도면을 노리는 것 같아."

이준호가 줄을 잡고 배 위로 올라왔다. 몸에서 물이 흘렀다. 가슴팍의 도면이 젖어 있었다. 하지만 온전했다. 찢어지지 않았다.

"돛을 올려!"

배의 선장이 외쳤다. 중년의 남자였다. 얼굴에 수염이 덥수룩했다. 밀무역꾼들이 움직였다. 돛이 펼쳐졌다. 바람을 잡았다. 배가 물을 가르며 앞으로 나아갔다.

뒤에서는 말을 탄 추격자들이 모래사장에서 멈춰 있었다. 횃불이 흔들렸다. 하지만 물 위에서는 그들의 손이 미치지 못했다.

"누가 저런 걸 보냈어?"

선장이 물었다.

"모르겠어."

이준호가 대답했다. 물에서 나온 옷이 차갑게 들러붙었다. 몸이 떨렸다. 하지만 가슴팍의 도면은 여전히 그의 것이었다. 누군가 자신을 추격했다는 것은 이 도면의 가치를 증명했다.

"조정이 이 근처에 감시선을 늘렸다더군. 그리고 너 말이야, 최근에 뭔가 건드렸나?"

선장의 눈빛이 예리했다. 밀무역 세계에서 오래 산 사람의 눈이었다. 많은 것을 보고, 많은 것을 감추는 눈이었다.

"아니야."

이준호가 거짓말했다. 필요한 만큼만 알고, 나머지는 모르는 것이 생명이었다.

배는 계속 나아갔다. 동해의 어둠 속으로. 횃불은 점점 멀어졌다. 모래사장도 보이지 않게 되었다. 오직 물과 어둠만 남았다.

이준호는 가슴팍의 도면을 꺼냈다. 물기가 묻어 있었다. 하지만 글씨는 여전히 읽을 수 있었다. 기계적인 문자들. 정교한 선들. 금속의 부분 부분들이 그려져 있었다.

선들을 따라가며 다시 생각해봤다. 이 도면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피스톤이 어떻게 회전력을 만드는지. 그 회전력이 배의 나선(스크루)을 돌려 배를 움직이게 하는 건가. 아니면 다른 방식인가.

도면 위의 라틴 문자들을 다시 읽으려 했다. 대부분은 여전히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몇 글자는 눈에 들어왔다. *Power*. *Rotation*. *Shaft*.

동력. 회전. 축.

이것이 조선의 전통 조선술과 어떻게 결합될 수 있을까. 조선의 배는 돛과 노에 의존했다. 이 기계는 그것을 완전히 바꿔놓을 것이었다.

"이제 어디로 갈 거야?"

선장이 물었다.

"산림 지역이 있지 않나? 조정의 눈이 닿지 않는 곳들."

"그곳들은 이미 다른 세력들이 차지하고 있어. 너 혼자는 못 들어가."

"그럼 누구라면 들어갈 수 있나?"

선장은 한참을 생각했다. 밤바람이 돛을 흔들었다. 배가 물결을 타며 나아갔다. 뒤에서는 더 이상 추격자의 횃불이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이준호는 알고 있었다. 이것이 끝이 아니라는 것을.

"그건 내가 아니라 명희가 알 거야."

선장이 말했다.

"명희?"

"응. 동해 해상의 밀무역을 정말로 움직이는 사람. 나는 그냥 배만 운전하는 거고."

이준호의 눈이 떠졌다. 명희라는 이름을 들었지만, 그 정체를 본 적은 없었다. 밀무역 세계의 그림자 같은 인물이었다. 모두가 알지만, 아무도 본 적 없는 그런 사람.

"어떻게 만나지?"

"그건... 너를 만나고 싶어 하는 사람이 있으면 가능해."

선장이 앞을 바라봤다. 동해의 어둠이 펼쳐져 있었다. 그곳은 조정의 공식 해금령 아래 있지만, 실제로는 밀무역과 해적, 그리고 난파선이 빈번한 영역이었다. 조정의 통제가 미치지 않는 마지막 자유로움의 공간이었다.

"배를 만들고 싶다고?"

갑자기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렸다. 선장이 아닌 다른 사람의 목소리였다. 이준호는 놀라며 돌아봤다.

배 위에는 여성이 서 있었다. 검은 옷을 입고 있었다. 얼굴은 반쯤 그림자에 가려져 있었다.

"너 누구야?"

"명희다."

여성이 대답했다. 도면을 바라봤다. 손가락이 도면의 한 부분을 짚었다. 피스톤 부분이었다. 그 다음 실린더로 옮겨갔다. 마치 기계의 내부를 직접 더듬듯이.

"좋은 도면을 가지고 있네. 하지만 도면만으로는 아무것도 아니야."

명희의 손가락이 금속 부품을 가리켰다.

"이 부분을 봐. 이 금속 부품들은 조선에서 만들 수 없어. 정밀도가 필요하거든. 그리고 이 설계..."

명희가 도면의 다른 부분을 짚었다.

"이것은 조선의 목재로는 불가능해. 강도가 부족하지. 그래서 문제는 어떻게 만드느냐는 거야. 아니, 정확히는 누가 만드느냐는 거지."

"그걸 배우러 왔어."

"그래? 그럼 물어볼 게 있어. 넌 죽을 준비가 되어 있나?"

이준호는 대답하지 않았다. 도면이 손에서 느껴졌다. 명희의 손가락이 여전히 도면 위를 움직이고 있었다. 그 움직임은 기술자의 손가락이었다. 단순히 보는 것이 아니라, 만지고 느끼고 판단하는 손가락이었다.

침묵이 길어졌다. 배는 여전히 어둠 속을 나아가고 있었다. 뒤에서는 추격자들이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앞에는 알 수 없는 미래가 펼쳐져 있었다.

"평생 밀무역꾼으로 살 거야?"

명희가 물었다.

"아니야."

"천출 신분에서 벗어나고 싶어?"

"그것도 아니야."

"그럼 뭐야?"

이준호는 도면을 들었다. 물에 젖은 종이가 손에서 느껴졌다.

"이것을 만들고 싶어. 이것이 무엇인지 알고 싶어. 그리고..."

"그리고?"

"이것이 조선을 바꿀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명희의 입가에 미세한 웃음이 떠올랐다.

"정직한 대답이네."

명희가 한 발 물러섰다.

"정윤기라는 양반 관료가 있어. 기술을 배울 수 있는 사람이야. 그리고 그 사람을 만나기 전에, 넌 한 가지를 명심해야 해."

이준호는 명희를 바라봤다. 어둠 속에서도 그 눈은 명확했다. 차갑고, 정확하고, 모든 것을 계산하는 눈. 하지만 이제 그것이 단순한 계산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 눈은 도면을 읽듯이 사람을 읽고 있었다.

"조정을 속이는 건 쉬워. 청을 속이는 것도 쉬워. 하지만 자기 자신을 속이려고 하면 안 돼. 넌 정말로 이 도면을 현실로 만들고 싶은 거야? 아니면 그냥 천출 신분에서 벗어나고 싶은 거야? 그 둘이 다르면 여기서 그만두는 게 낫다."

이준호는 도면을 들고 있었다. 물에 젖은 종이 위의 기계 부분들이 보였다. 정교한 선들. 금속과 동력의 약속. 그리고 명희가 말한 난제들. 만들 수 없는 금속. 견딜 수 없는 목재.

그 순간, 이준호는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알았다. 신분을 벗어나는 것도 아니었다. 돈을 버는 것도 아니었다.

도면 위의 선들이 움직이는 것을 보고 싶었다. 그 정교한 기계가 실제로 작동하는 것을 보고 싶었다. 그리고 그것을 만드는 과정에서 자신이 무엇이 될 수 있을지 알고 싶었다. 그 과정에서 만날 사람들과 함께, 불가능한 것을 가능하게 만들고 싶었다.

"둘 다야."

이준호가 대답했다.

명희는 잠시 이준호를 바라봤다. 그 눈빛이 변했다. 계산하는 눈에서 무언가를 인정하는 눈으로.

"정직한 대답이네. 그럼 시작해보자. 이 도면이 조선을 바꿀 수도 있으니까. 아니면 너를 바꿀 수도 있고."

배는 계속 동해를 누비며 나아갔다. 뒤에서는 조정의 감시선이 계속 늘어나고 있었다. 앞에서는 청의 감시망이 촘촘해지고 있었다. 하지만 이준호는 더 이상 두렵지 않았다.

가슴팍에 도면이 있었고, 앞에는 명희가 있었다. 그리고 그 사이에는 정윤기라는 양반 관료가 있었다.

이제 진짜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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