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황금빛의 심문관
심문관실의 벽은 황금색이었다.
그 색은 단순한 장식이 아니었다. 이준의 눈동자가 황금색으로 변하는 순간, 벽의 황금색도 함께 빛났다. 마치 그것들이 하나의 생명을 공유하고 있는 것처럼. 용의자의 얼굴 앞에서 이준의 손가락이 펼쳐졌다. 다섯 개의 손가락에서 황금빛이 흘러나왔다. 불꽃이 아니었다. 액체처럼 부드럽고, 그러면서도 뜨거운 무언가였다.
"기억하세요. 그날 밤 누가 당신을 찾아왔는지."
이준의 목소리는 흔들리지 않았다. 15년간 반복된 작업이었다. 몇 번을 더했는지도 세지 않았다. 벽에 붙은 의자에 묶인 남자의 눈이 커졌다. 황금빛이 그의 눈동자를 휩싸고 들어갔다. 입에서 비명이 터져 나오려다가 목구멍에서 끊어졌다. 성대가 마비되는 건가. 아니면 뇌가 신호를 거부하는 건가. 이준은 알지 못했다. 그리고 알려고 하지 않았다.
남자의 몸이 경련했다. 의자에 묶인 팔이 뒤로 꺾였다. 이준은 손가락을 천천히 구부렸다. 황금빛이 남자의 뇌에서 나오기 시작했다. 그것은 연기처럼 위로 피어올랐다. 하지만 연기는 차갑고, 이것은 뜨거웠다. 이준의 얼굴에 튀었다. 따뜻한 액체가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혈액인가. 아니면 기억인가. 구분할 수 없었다.
황금빛이 이준의 손가락을 타고 역류했다.
그 순간, 세상이 까맣게 변했다.
이준의 시야가 흔들렸다. 손에 들린 커피잔의 온기가 사라졌다. 누군가가 준 것인가. 의자에 앉아 있는데, 이것은 심문관실 밖의 대기실이었다. 하지만 이것도 기억이 아니라, 자동으로 작동하는 습관 같았다.
이준의 호흡이 빨라졌다.
손이 떨렸다. 커피가 컵에서 출렁였다. 갈색 액체가 손가락 사이로 흘러내렸다. 따뜻함이 식어가고 있었다. 모든 것이 식어가고 있었다. 이준은 손을 들었다. 손가락을 폈다. 펼쳐진 손가락 끝이 떨렸다. 황금빛은 이미 사라졌다. 대신 무언가 다른 것이 떠나갔다. 그것이 무엇인지는 알 수 없었다. 단지 무언가가 떠나갔다는 것만 느껴졌다.
"심문관."
목소리가 들렸다. 남궁색 제복을 입은 궁궐 시종이 서 있었다. 이준은 고개를 들었다.
"왕께서 부르신다."
이준이 일어났다. 커피잔이 의자에 남겨졌다. 여전히 따뜻한 김이 피어올랐다.
궁궐의 회랑은 길었다.
돌로 포장된 길이 끝없이 이어졌다. 창문에서 햇빛이 들어왔다. 오후 햇빛이었다. 이준은 그것을 알았다. 하지만 얼마나 오래 심문관실에 있었는지는 모르겠다. 시간이 흘러가는 것을 느끼지 못했다.
동쪽 탑으로 가는 길목에 이르렀을 때였다.
이준의 발걸음이 멈췄다. 가슴 한가운데에서 뭔가가 울렸다. 마치 누군가가 가슴팍을 펀치백처럼 때리는 느낌이었다. 심장이 뛰었다. 미친 듯이 뛰었다. 그 음향이 귓가에 가득 찼다. 두근거림. 두근거림. 두근거림.
그리고 냄새.
이준은 숨을 들이마셨다. 벚나무 꽃의 향기였다. 하지만 지금은 겨울이었다. 벚나무는 피지 않았다. 그렇다면 이것은 기억인가.
이준의 눈이 동쪽 탑을 향했다. 탑의 최상층 창문에서 햇빛이 반사되고 있었다.
그 창문 안에서 누군가가 밤마다 별을 보며 웃었다. 누구였더라. 이름이 없었다. 형태가 없었다. 단지 웃음소리만 남아 있었다. 멀고 희미한 웃음소리. 마치 물 아래서 들리는 음성처럼.
그 순간, 이준의 손가락이 떨렸다. 손가락 끝에서 희미한 황금빛이 맴돌았다. 그것은 심문관실의 강렬한 빛이 아니었다. 마치 타다 남은 재처럼 부서지기 직전의 빛이었다. 이준은 손을 움켜쥐었다. 손가락이 더욱 심하게 떨렸다.
"심문관. 계속 가지 않으신가요?"
시종의 목소리가 돌아왔다. 이준은 눈을 돌렸다. 시종은 이미 몇 걸음 앞서 있었다. 이준이 따라갔다. 가슴의 울림은 여전했다.
왕의 침실은 궁궐의 가장 깊숙한 곳에 있었다.
황금색 병풍이 방을 둘러싸고 있었다. 이준의 눈이 황금색에 반응했다. 눈동자가 미세하게 수축했다. 왕이 침대에 비스듬히 몸을 일으켜 앉아 있었다. 그의 눈이 이준을 향했다.
"또 다른 작업이 필요하다."
왕의 목소리는 낮았다. 하지만 침실 전체를 가득 채웠다.
"궁궐 내 불온한 움직임을 감지했다. 남궁파의 추종자들이 옛 기록을 뒤지고 있다."
왕이 손가락을 들었다. 그 손가락이 동쪽 탑을 향했다.
"그 탑. 서쪽 회랑에서 본 그 탑의 기억. 관련자들의 기억을 모두 지워라."
이준의 가슴이 또 울렸다. 이번엔 더 크게. 손가락의 떨림이 손 전체로 번져갔다. 이준은 주먹을 쥐었다. 손톱이 손바닥을 파고들었다. 왕의 명령은 명령이었다. 하지만 그 명령이 떨어지는 순간, 이준의 신체는 거부하고 있었다. 호흡이 얕아졌다. 가슴이 조여왔다. 마치 누군가가 목을 조르는 것처럼.
"예, 폐하."
이준의 목소리가 나왔다. 자동으로 나왔다. 마치 입이 스스로 움직이는 것처럼. 하지만 그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다.
궁궐 밖으로 나가는 길에서 이준은 누군가를 만났다.
여인이었다. 검은 옷을 입은 여인. 그녀가 이준을 보자 멈추었다. 한 걸음 물러섰다. 그리고 눈이 반짝였다. 눈물이 맺혔다. 그것은 슬픔의 눈물이 아니었다. 그것은 복수의 눈물이었다.
"당신이군요. 심문관."
여인이 말했다. 목소리에 떨림이 있었다.
"당신이 나를 지웠어요."
이준이 여인을 바라봤다. 그녀의 얼굴이 떠올랐다. 하지만 그것은 기억이 아니었다. 현재의 형태였다. 현재의 그녀가 누군지 이준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그녀는 이준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자신이 지워졌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날 기억해요?"
여인이 다시 물었다.
이준이 입을 열려고 했다. 그 순간.
뇌 깊숙한 곳에서 무언가가 폭발했다.
황금빛이 아니었다. 그것은 다른 색이었다. 어둠이면서 동시에 빛인 무언가. 이준의 시야가 흔들렸다. 여인의 얼굴이 왜곡되었다가 또렷해졌다. 왜곡되었다가 또렷해졌다. 그 반복 속에서 이준은 깨달았다.
그 얼굴을 본 적이 있다.
별이 가득한 밤에. 그 밤 하늘의 별들이 떨어지는 것처럼 보였다. 눈물이 나왔다. 누구의 눈물이었더라.
벚꽃이 피어나는 밤에. 흰 꽃잎들이 소용돌이쳤다. 그 속에서 누군가가 웃고 있었다. 그 웃음이 이준의 귀에 울렸다. 부드럽고, 따뜻하고, 그리고 이제는 들을 수 없는 웃음.
그리고 그 밤, 자신의 손에서 황금빛이 흘러나왔었다. 손가락이 펼쳐졌다. 황금빛이 쏟아졌다. 누군가의 비명이 들렸다. 그 비명이 끝나면서 모든 것이 끝났다. 웃음도. 별도. 벚꽃도.
여인의 얼굴이 선명해졌다가 다시 흐려졌다. 이준의 손이 떨렸다. 무언가가 가슴 깊숙한 곳에서 깨어나려 하고 있었다. 깨어나면 안 되는 것이. 그것은 15년 동안 황금빛으로 태워진 것이었다. 하지만 태워진 것이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는다는 것을 이준은 지금 깨달았다.
"당신은... 누구입니까."
이준의 목소리가 나왔다. 말이 아니었다. 본능이었다.
여인이 한 걸음 가까워졌다. 그 발걸음이 결정적이었다. 이준은 본능적으로 물러섰다. 자신의 다리가 움직이는 것을 보며 놀랐다. 자신이 하는 일이 무엇인지 알 수 없으면서도, 그 몸은 거부하고 있었다.
"나를 모르세요?"
여인이 웃음을 흘렸다. 그것은 슬픈 웃음이었다. 아니다. 미쳐 있는 웃음이었다. 광기와 슬픔이 섞인 음성.
"15년이 지났는데도 모르세요?"
15년.
그 숫자가 이준의 뇌를 관통했다. 15년. 자신이 심문관이 된 지 정확히 15년이었다. 그 이전은 무엇이었나. 이준은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생각할 수 없었다. 그 이전의 기억들은 모두 황금빛으로 태워졌기 때문이다.
"나는 당신을 기억해요."
여인이 말했다. 그녀의 손이 올라왔다. 이준의 얼굴을 향해. 이준은 또 물러섰다. 하지만 회랑의 끝에 다다랐다. 더 이상 물러날 곳이 없었다.
"파편적으로나마. 15년 동안 깨어나지 않던 기억들이 돌아왔어요. 당신이 한 일. 내가 잃어버린 것. 모두."
손이 이준의 뺨에 닿았다. 따뜻한 손이었다. 그 온기가 이준의 신경을 자극했다. 그곳에서 뭔가가 울렸다. 심장이 아니라 다른 곳에서. 영혼이라고 불리는 그곳에서.
이준의 눈이 떨렸다. 손가락이 다시 떨리기 시작했다. 황금빛이 손 위에서 맴돌았다. 그것은 공격의 신호였다. 이준의 신체가 본능적으로 반응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본능은 명령이 아니라 거부였다. 황금빛이 손가락을 타고 흘러나오려 하지만, 이준은 그것을 억누르고 있었다. 손가락이 경련했다.
"이제 당신의 차례예요."
여인이 속삭였다.
"당신도 기억해야 해요. 당신이 한 모든 일을. 당신이 잃어버린 모든 것을. 당신이 누구였는지."
그 순간, 이준의 시야가 완전히 뒤바뀌었다.
황금빛이 아니었다. 그것은 검은색이었다. 이준이 평생 마주해본 적 없는 색. 그 검은색 속에서 뭔가가 울려 퍼졌다. 비명? 아니다. 그것은 이준 자신의 목소리였다. 자신이 15년 전에 지워버린 자신의 목소리.
"서연..."
이준의 입에서 이름이 흘러나왔다. 누가 말한 것도 아닌데, 그 이름이 튀어나왔다. 마치 오래 봉인된 무덤에서 시신이 깨어나듯이. 그 이름 하나로 모든 것이 돌아왔다. 밤하늘의 별. 흰 벚꽃. 그리고 웃음소리. 그리고 그것을 모두 태워버린 자신의 손.
여인의 눈에 눈물이 흘렀다. 하지만 그것은 슬픔의 눈물이 아니었다. 복수의 눈물이었다. 광기의 눈물이었다.
"맞아요. 나는 서연이에요. 그리고..."
그녀가 이준의 손목을 잡았다. 손목에서 무언가가 깨어났다. 신체 깊숙한 곳에 묻혀 있던 기억이. 그것은 손가락의 감각이었다. 누군가를 안은 팔의 기억. 누군가의 머리카락을 쓸어올린 손의 기억. 그 손이 지금 떨리고 있었다. 그 손이 황금빛을 흘리고 있었다. 그 손이 자신이 가장 사랑한 사람을 태워버렸다.
"당신은 나를 사랑했어요. 그리고 당신이 나를 죽였어요."
이준의 가슴이 폭발했다.
황금빛이 눈앞에서 타올랐다. 하지만 그것은 현재의 황금빛이 아니었다. 그것은 15년 전의 황금빛이었다. 동쪽 탑의 최상층에서. 별이 가득한 밤에. 그 밤, 이준은 자신의 손에서 황금빛을 흘렸다. 그리고 그 황금빛 속에서 서연이 사라졌다.
그리고 그 불 속에서 이준은 자신을 보았다.
자신이 누구였는지. 자신이 무엇을 했는지. 자신이 왜 이렇게 비어 있는지.
모든 것이 한 번에 밀려왔다.
이준의 무릎이 꺾였다. 그대로 바닥에 내려앉았다. 손가락이 더욱 심하게 떨렸다. 황금빛이 손에서 쏟아졌다. 하지만 이번에는 공격이 아니었다. 그것은 울음이었다. 광기의 울음이 아니라, 절망의 울음이었다.
회랑의 어둠 속에서 움직임이 있었다. 회랑 끝 그림자에서 무언가가 흔들렸다. 시종들의 발소리가 들렸다. 왕의 명령이 전해지고 있었다. 하지만 이준은 그것을 듣지 못했다. 그는 오직 서연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의 얼굴이 또렷했다. 이제는 기억의 형태가 아니라 현재의 형태로. 그리고 그 얼굴 속에서 이준은 자신을 봤다.
자신이 15년 전에 지웠던 모든 것. 자신이 되고 싶었던 모든 것. 그리고 자신이 절대 되어서는 안 되었던 모든 것.
"당신 뒤에 있어요."
서연이 속삭였다.
이준이 돌아봤다. 궁궐의 그림자 속에서 검은 옷의 인영들이 회랑을 채웠다. 시종들이 아니었다. 그들은 너무 느렸다. 이것은 더 빨랐다. 더 결정적이었다. 기억지킴이들이었다.
회랑의 끝에서 또 다른 인영이 나타났다. 검은 옷이 아니었다. 화려한 비단옷이었다. 왕비였다. 왕비 이화가 궁궐의 그림자에서 나타났다. 그녀의 얼굴은 창백했다. 마치 죽은 자의 얼굴처럼. 그리고 그 얼굴에는 15년간 감춰온 죄책감이 가득했다.
"이준."
왕비의 목소리가 낮고 부드러웠다. 하지만 그 속에는 절박함이 숨어 있었다.
"당신도 피해자였어요."
이준은 왕비를 바라봤다. 그녀의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 수 없었다. 피해자? 자신이? 자신은 심문관이었다. 자신은 왕의 도구였다. 그런데 피해자라니.
"15년을 기다렸어요. 누군가 깨어나기를."
왕비가 말했다. 그녀의 눈이 이준을 향했다. 그 눈 속에는 무언가가 있었다. 죄책감. 그리고 그 이상의 것. 마치 자신도 무언가를 잃었다는 듯한 표정.
"이제 모든 것을 끝내야 해요."
기억지킴이들이 더 가까워졌다. 그들의 손에는 검이 들려 있었다. 이준은 그것을 봤다. 하지만 그것도 중요하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서연이었다. 서연의 손이 여전히 이준의 손목을 잡고 있었다. 그 손의 온기가 이준의 신체를 태우고 있었다.
"당신의 선택의 시간이에요, 심문관."
서연이 속삭였다. 그녀의 목소리는 차가웠다. 하지만 그 차가움 속에는 절망이 있었다.
"왕과 함께할래요? 아니면 우리와 함께할래요?"
이준의 손이 들렸다. 황금빛이 그 손 위에서 춤을 추기 시작했다. 자신을 태우려는 불. 아니, 자신을 되살리려는 불. 그것은 더 이상 남의 기억을 태우는 불이 아니었다. 그것은 자신의 기억을 깨우는 불이었다.
손가락이 경련했다. 황금빛이 손가락 끝에서 흔들렸다. 이준의 눈이 감겼다. 그 어둠 속에서 모든 것이 보였다. 별들이. 벚꽃이. 그리고 웃음소리가.
"아니면..."
서연이 계속했다.
"완전히 사라질래요?"
이준의 눈이 떠졌다. 그 눈 속에는 15년간 감춰진 감정이 가득했다. 분노, 슬픔, 그리고 절망. 하지만 그것 뒤에는 무언가 더 강한 것이 있었다.
선택의 의지.
이준의 손이 움직였다. 손가락이 펼쳐졌다. 황금빛이 손 위에서 회전했다. 그것은 공격의 형태가 아니었다. 그것은 거부의 형태였다. 왕의 명령에 대한 거부. 자신의 운명에 대한 거부. 그리고 무엇보다 자신을 지운 손으로 누군가를 지우는 것에 대한 거부였다.
"나는..."
이준의 입이 열렸다. 그 순간, 궁궐의 종이 울렸다.
왕이 부르고 있었다.
회랑이 흔들렸다. 기억지킴이들이 더 빠르게 다가왔다. 왕비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서연의 손이 이준의 손목을 더 세게 잡았다.
이준의 손가락이 더욱 심하게 떨렸다. 황금빛이 손가락 끝에서 폭발하려 했다. 하지만 이준은 그것을 억누르고 있었다. 억누르려고 했다. 하지만 그것도 점점 약해지고 있었다.
모든 것이 동시에 움직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