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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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새 이준영의 뇌파 검사 결과를 기다리던 박준호는 병원 로비의 플라스틱 의자에서 일어났다. 휴대폰 화면에 오전 6시 47분이 표시되었다. 어제 경기장에서의 그 장면이 계속 떠올랐다. 마운드 위에서 갑자기 무릎이 꺾이듯 쓰러지는 이준영. 그리고 그 아이의 어머니가 자신을 보는 눈빛.

병원의 의사는 뇌파 검사 결과는 정상이라고만 했다. 심리적 트라우마가 남아 있을 수 있다는 말과 함께. 박준호는 그 말의 무게를 느꼈다. 정상이 아닌 건 뇌파가 아니라 마음이었다.

박준호는 왼쪽 어깨를 움켜잡았다. 부상 흔적이 남아 있는 그곳. 10년 전 자신도 이렇게 무너졌다. 그때는 누구도 자신을 일으켜주지 않았다. 아버지는 자신을 '약한 놈'이라고 불렀고, 팀은 '쓸모없는 선수'라고 내쳤다.

그런데 지금, 자신은 무엇을 하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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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커룸의 불이 꺼져 있었다. 박준호가 문을 열자 어둠 속에서 24명의 얼굴들이 보였다. 박민준의 엘리트 아카데미에서 돌아온 아이들. 그들은 박준호를 보자마자 고개를 숙였다.

"코치님..."

한태오가 먼저 입을 열었다. 목소리가 떨렸다.

"우리... 돌아왔어요."

박준호는 말을 잇지 못했다. 라커룸의 벤치에 앉아 있는 아이들의 얼굴을 하나하나 본다. 김민성, 이준호, 박성준... 이름을 알고 있던 아이들. 자신이 6개월 전 포기했던 아이들.

한태오의 눈은 흐려 있었다. 박민준의 아카데미에서 받은 상처가 선명했다. 그곳에서 아이들은 엘리트만을 위한 시스템 속에서 다시 한 번 선별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한태오는 그곳에서도 떨어졌다.

박준호는 무릎을 꿇었다.

라커룸 바닥은 차갑고 거친 콘크리트였다. 박준호의 무릎이 닿는 순간, 신체 전체가 경직되었다. 근육이 떨렸다. 호흡이 얕아졌다. 10년 동안 자신이 해본 적 없는 자세였다. 코치는 아이들 앞에서 약해 보이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 그것이 거짓말이었음을 깨달았다.

"내가 너희를 버렸다."

목소리가 떨렸다. 아이들이 움직였다. 한태오는 눈을 질끈 감았다. 김민성은 주먹을 쥐었다. 박성준은 침을 삼켰다. 누군가는 무릎을 꿇은 코치를 흉내 내려 했고, 누군가는 그 옆에 서서 눈물을 흘렸다. 한태오 옆에 선 이수현은 손가락을 꼬고 있었고, 그 뒤의 김준영은 코치의 어깨를 응시했다. 모두가 다르게, 하지만 함께 반응하고 있었다.

"이준영 하나를 위해 너희 모두를 버렸다. 그것이... 내 욕망이었다."

박준호는 이준영의 뇌파 검사 결과를 떠올렸다. 정상이라는 그 단어가 얼마나 공허한지. 그 아이는 신체적으로는 정상이지만 마음은 이미 부서져 있었다. 그리고 그 부서짐은 자신이 만든 것이었다. 이준영에게 모든 것을 집중시키고, 나머지는 버린 자신의 욕망이 만든 것.

한태오가 다가와 박준호의 팔을 잡았다.

"코치님, 일어나세요."

박준호는 일어섰다. 아이의 손을 잡은 채로. 라커룸이 움직였다. 벤치에 앉아 있던 아이들이 하나둘 일어났다. 발걸음이 들렸다. 누군가는 박준호를 향해 성큼성큼 걸어왔고, 누군가는 조심스럽게 옆에 섰다.

"코치님, 이준영이 프로가 되면... 우리도 할 수 있다는 거 아니에요?"

한태오가 물었다. 박준호는 그 아이의 눈을 봤다. 13살 눈에서 읽어낸 것은 희망이 아니라 절망이었다. 이준영이 1순위로 가버렸으니, 자신들은 이제 '버려진 아이들'이 되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박민준의 아카데미에서 다시 한 번 떨어진 자신들은 이제 정말로 끝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아니다."

박준호가 말했다.

"이준영이 프로가 된 것은 우리가 다음을 준비하는 시간을 벌어준 거다. 그게 전부다."

한태오가 고개를 기울였다.

"내가 너희 중에서 한 명만 골라서 지옥 같은 훈련을 시켰다. 그 아이가 성공했으니 이제 너희는 '실패한 아이들'이라고 생각하고 있지? 하지만 그게 아니다."

박준호의 목소리가 단호해졌다.

"너희는 그동안 자신의 방식을 찾을 시간을 가졌다. 이준영은 6개월을 불태웠고, 너희는 6개월을 준비했다. 박민준의 아카데미에서 너희가 받은 건 상처가 아니라 교훈이다. 거기서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배웠으니까."

박준호는 라커룸 중앙으로 걸어갔다. 24명의 제자들이 그를 따라 모였다.

"내가 한 가지 틀렸다. '원석은 하나씩만 깎을 수 있다'고 생각한 거다. 하지만 그건 거짓말이다. 원석은 여러 개고, 다이아몬드로 깎는 방법도 여러 개다. 이준영이 가야 할 길이 있다면, 너희가 가야 할 길도 있다. 다를 뿐이다."

박준호는 한태오를 바라봤다.

"넌 이준영이 아니다. 넌 다른 아이다. 그 다름을 이제부터 찾아내는 게 내 역할이다. 박민준의 아카데미에서 넌 누군가 다른 아이의 그림자로 살았다. 이제부터는 넌 너 자신의 길을 걸어야 한다."

한태오의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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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훈련장은 여전히 낡았다. 그라운드는 고르지 않았고, 조명은 어두웠으며, 스탠드는 반쯤 무너져 있었다. 하지만 오늘은 다른 날이었다.

박준호는 24명의 아이들을 일렬로 세워 놨다. 각자 마운드에 올라가 세 개의 구를 던지게 했다. 이준영처럼 극도로 집중된 훈련이 아니었다. 그냥 자신의 현재를 보는 것이었다.

"한태오, 너 발 딛음이 뻣뻣해 보인다. 다시 한 번 해봐."

박준호는 한태오의 발을 밀어 올바른 위치로 조정했다. 아카데미에서 받은 잘못된 자세를 다시 풀어주는 작업이었다. 한태오가 다시 마운드에 올랐다. 공을 집었다. 발을 디디는 순간, 몸 전체가 일직선을 이뤘다.

"띠—"

측정기가 울렸다.

"137km."

박준호가 중얼거렸다. 이전보다 3km 올랐다. 아이의 눈이 반짝였다.

"이준호, 뭔가 생각에 잠겼나?"

"집에 문제가..."

"마운드에선 그것도 잊어야 한다. 하지만 그 대신 나한테 말해야 한다. 그래야 내가 도와줄 수 있다."

박준호는 한 명씩 돌아다니며 각 아이의 신체를 읽었다. 발 딛음이 흐릿한 아이, 손목 각도가 불안정한 아이, 눈빛이 흔들리는 아이—모두가 고칠 수 있는 문제들을 가지고 있었다.

구속 측정기가 계속 울렸다. '띠—' '띠—' 한 번 한 번이 새로운 신호였다. 누군가는 구속이 올랐고, 누군가는 제구가 안정됐다. 누군가는 처음으로 마운드 위에서 웃음을 지었다.

이수진이 그라운드 옆에 서서 박준호를 지켜봤다. 코치의 모습이 전과 달라 보였다. 이준영만을 보던 눈이 이제 모든 아이들에게 고르게 분산되어 있었다.

훈련이 끝나고 박준호는 이수진 곁에 앉았다.

"한강 아카데미가 이제 정말로 '최후의 기회의 땅'이 되었어요."

이수진이 말했다. 박준호가 고개를 돌려 그녀를 봤다.

"전에는 여기가 '성공하는 곳'이라고 생각했다면, 이제는 '다시 시작하는 곳'이 되었다는 거죠. 24명 모두가."

박준호는 웃음이 나왔다. 10년 만에 웃는 느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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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 10시, 박준호는 휴대폰을 들었다. 아버지의 음성메시지가 15개 남아 있었다. 마지막 것을 재생했다.

"준호, 이준영이가 1순위가 됐다니 자랑스럽다. 이제 넌 보이겠지? 명장이 되는 길이 얼마나 가까운지. 다음엔 3명, 5명... 계속해라. 넌 할 수 있다."

박준호의 손가락이 경직되었다. 화면을 누르려는 손이 떨렸다. 이 음성메시지는 자신을 짓누르던 무게였다. 더 많은 성공, 더 많은 1순위, 더 많은 명장의 증거. 그것이 자신의 가치라고 생각하게 만든 음성메시지였다.

박준호는 삭제를 눌렀다. 메시지가 사라졌다.

휴대폰을 들어 아버지에게 전화를 걸었다. 밤이었지만 아버지는 받았다.

"준호?"

"네. 아버지, 저 한 가지 말씀드려야 할 게 있어요."

박준호는 심호흡을 했다. 라커룸에서 무릎을 꿇었을 때의 그 감정을 다시 느꼈다.

"저는 이제 이준영 하나를 위해 24명을 버리지 않겠습니다."

침묵이 흘렀다. 박준호는 그 침묵 속에서 아버지의 호흡을 들었다.

"저는 더 이상 선수가 될 수 없습니다. 그 부상은 돌아오지 않습니다."

박준호의 목소리가 떨렸다. 10년 동안 아버지에게 하지 못한 말이었다.

"하지만 그들이 될 수 있게 돕는 것으로...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다시 침묵. 더 길었다.

"...그렇구나."

아버지의 목소리가 작아졌다. 처음으로 그 목소리가 약해 들렸다.

"미안했다. 내가 너한테 너무 많이 원했나보다."

박준호의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이번엔 절망의 눈물이 아니었다.

"아니에요. 아버지. 덕분에 저는 누군가를 도울 수 있는 사람이 됐어요."

전화를 끊고 박준호는 한강을 지나갔다. 물이 흐르고 있었다. 끝없이, 조용히, 자기 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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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일 뒤. 한강 베이스볼 아카데미 라커룸.

박준호는 벽에 붙은 사진들을 내렸다. 이준영의 프로 데뷔 기사, 그 외 수십 년간 모아온 제자들의 영광의 순간들. 한 장씩, 조심스럽게.

이수진이 옆에 서서 그를 봤다.

"뭐 하는 거예요?"

"정리 중이야."

박준호의 목소리는 담담했다.

"이건... 내 무덤이었어."

사진을 내리는 손이 멈췄다. 이준영의 얼굴이 담긴 신문. 그 아이가 처음 마운드에 올랐을 때 자신은 얼마나 많은 것을 투사했는가. 자신의 부상, 자신의 실패, 자신의 아버지, 자신의 모든 것.

"한 명이 성공할 때마다 난 24명이 떨어지는 걸 봤어. 그리고 그걸 당연하게 받아들였어. 그게 시스템이라고 생각했거든."

박준호가 중얼거렸다.

"하지만 이건 시스템이 아니야. 이건 도구화였어."

벽이 텅 비어갔다. 이제 남은 건 회색 벽과 못 자국들뿐이었다.

"코치님."

이수진이 조심스레 물었다.

"이제 뭘 붙일 거예요?"

박준호는 돌아섰다. 그의 눈은 창밖의 그라운드를 향했다. 새벽 훈련 중인 아이들이 보였다. 구속 측정기의 '띠—' 소리가 들렸다. 누군가의 고함이 들렸다. 누군가의 웃음이 들렸다.

"모든 아이들의 이름."

박준호가 대답했다.

"한 명이 드래프트에 올라가는 것도 성공이고, 구속이 5km 올라가는 것도 성공이고, 그냥 내일 또 와서 훈련하는 것도 성공이야. 모두 다."

그는 새로운 종이를 들었다. 24명 모두의 이름이 적혀 있는 리스트. 각 아이의 이름 옆에는 그들이 가진 가능성이 적혀 있었다. 구속, 제구, 정신력, 회복력—다양한 방식의 가능성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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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다음 주.

한강 아카데미의 새로운 훈련 프로그램이 시작됐다. 박준호는 더 이상 "이준영 같은 아이"를 찾지 않았다. 대신 "각 아이 자신이 될 수 있는 길"을 찾기 시작했다.

한태오에게는 다른 방식의 훈련을 줬다. 박민준의 아카데미에서 받은 상처를 인식하고, 그 위에 새로운 자신감을 쌓는 훈련. 박준호는 한태오를 따로 불렀다.

"너는 천재야. 그건 맞아. 하지만 천재라는 게 뭔지 아니?"

한태오가 고개를 저었다.

"기술만 뛰어난 게 아니야. 견디는 힘이야. 넘어져도 다시 일어나는 힘."

박준호가 한태오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이준영이가 1순위가 된 건 구속 때문만이 아니야. 그 아이는 아무것도 없는 상황에서 시작해서 견뎌냈거든. 넌 그것을 배웠다. 이미 견뎌냈으니까. 이제부턴 그걸 믿으면 돼."

한태오의 눈이 젖어왔다.

"코치님... 미안해요. 저 박민준 팀으로 가면서..."

"그건 내 책임이야."

박준호가 잘라 말했다.

"내가 너를 믿어주지 못했으니까. 그리고 넌 그 상처에서 견뎌냈다. 그게 넌 할 수 있다는 증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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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드래프트 한 달 전.

한강 아카데미의 모든 제자들이 모였다. 올해 드래프트 대상 25명. 이준영은 이미 프로에서 뛰고 있었고, 새로운 아이들이 그 자리를 채웠다.

박준호는 라커룸 앞에 섰다.

"여기 있는 모든 아이들을 봐라."

박준호가 천천히 말했다.

"넷 중 한 명이 드래프트에 올라갈 거야. 그건 확률이야. 하지만 올라가지 못한 아이들은... 실패하는 게 아니다."

박준호의 목소리가 떨렸다.

"넌 그냥 다른 길을 가는 거야. 그리고 그 길도 충분히 멋있는 길이야. 알겠니?"

한태오가 손을 들었다.

"코치님. 그럼 우리는?"

"넌 올라갈 거야."

박준호가 대답했다.

"어디까지 올라갈지는 모르겠지만, 올라갈 거야. 왜냐하면 넌 견디는 법을 배웠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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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드래프트 현장. 올림픽 체조경기장.

관중석은 가득 찼다. 스카우터들, 기자들, 선수들의 가족들. 그 속에 박준호도 앉아있었다. 옆에는 이수진이 있었다.

"한태오는 상위권에 올라갈 거야. 내가 봤어. 그 아이의 성장률은..."

박준호가 속삭였다.

"그런데 우리가 확신할 수 있는 건 없어. 이게 야구니까."

이수진이 웃었다.

"코치님, 이전엔 어땠는데요?"

"이전엔..."

박준호가 멈췄다.

"이전엔 확신했어야 한다고 생각했어. 아니면 그게 실패라고 생각했어."

"이제는?"

"이제는 기다리는 것도 충분하다고 생각해."

드래프트가 시작됐다. 1순위부터 차례대로 선수들이 호명되었다. 박준호는 이준영이 1순위로 호명되던 그날을 떠올렸다. 그때의 눈물은 절망이었다. 자신의 욕망이 이루어졌지만, 동시에 24명의 아이들이 버려지는 순간이었다.

2순위. 3순위. 4순위가 지나갔다. 박준호의 손가락이 경직되었다. 무릎 위에서 손가락이 오므렸다 펴졌다를 반복했다. 호흡이 얕아졌다. 그 순간, 아나운서의 목소리가 울렸다.

"5순위. 한강 베이스볼 아카데미... 한태오!"

박준호의 몸이 일어섰다. 관중석에서 몸을 일으키는 순간, 모든 긴장이 풀렸다. 그것은 기쁨이었다. 순수한 기쁨이었다. 자신의 부상을 보상받으려는 욕망이 아니라, 제자가 자신의 꿈을 이루는 것을 축하하는 그런 기쁨이었다.

한태오가 무대에 올라갔다. 그 아이의 얼굴에는 진정한 웃음이 있었다. 박준호는 눈물을 흘렸다. 하지만 이번엔 다르게, 더 가볍게. 1순위 때의 절망적인 눈물이 아니라, 제자의 성장을 축하하는 순수한 눈물이었다. 그 차이는 신체에서 읽혔다. 어깨가 펴졌다. 호흡이 깊어졌다. 가슴이 편했다.

박준호는 옆을 봤다. 이수진도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그 눈물은 자신의 것과 같은 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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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다음 해. 새벽 5시. 한강 베이스볼 아카데미.

박준호는 그라운드에 섰다. 새로운 아이들을 맞이하는 첫 날이었다. 입단한 신입생 30명. 그들 중에는 구속 128km의 뭉툭한 투수도 있었고, 자존심 상한 외야수도 있었다. 모두가 어딘가에서 포기당한 아이들이었다.

박준호는 그들을 본다. 자신의 골든핑거가 작동한다.

'저 왼손 투수의 어깨 각도... 뭔가 있다.'

'저 우완의 눈빛... 불이 살아있다.'

'저 아이는... 가능성이 있다.'

새로운 중학생 투수가 다가왔다. 구속은 형편없었고, 제구도 불안정했다. 하지만 그 아이의 몸 전체에서 뭔가 다른 신호가 나오고 있었다. 이준영처럼 극도로 집중된 눈빛이 아니라, 무언가를 두려워하면서도 앞으로 나아가려는 발걸음. 그 아이는 이미 무언가를 견뎌낸 아이였다.

"코치님... 저도 이준영 형이나 한태오 형처럼 될 수 있어요?"

박준호는 그 아이를 봤다. 아이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10년 전 자신의 모습이 겹쳤다. 꿈꾸던 그 날들이. 하지만 이제 그건 슬픈 기억이 아니었다. 그건 자신이 누군가를 도울 수 있다는 증거였다.

박준호는 그 아이의 눈을 마주쳤다. 말을 건넸다.

"시도할 자격은 있다."

아이의 눈이 반짝였다. 그것으로 충분했다.

박준호는 라커룸으로 돌아갔다. 벽에는 이제 새로운 리스트가 붙어있었다. 30명 모두의 이름. 각 아이의 이름 옆에는 그들이 가진 가능성이 적혀 있었다. 구속, 제구, 정신력, 회복력—다양한 방식의 가능성들. 이준영의 사진도, 한태오의 신문도 없었다. 대신 모든 제자들의 이름이 평등하게 적혀 있었다.

박준호의 왼쪽 어깨가 아팠다. 그 통증은 더 이상 저주가 아니었다. 그건 자신이 할 수 없는 것을 누군가 다른 아이에게 시킬 수 있게 해주는 감각의 원천이었다. 그리고 그 감각은 계속될 것이었다. 한 명씩이 아니라, 모두가 함께.

밤이 물러나고 새로운 아침이 밀려왔다. 한강의 물처럼, 끝없이.

이전화목차마지막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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