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퇴고본
카이의 손이 검은 불을 뿜으며 거실의 벽을 부쳤다. 돌이 금이 가고 부서졌다. 안개가 집 안으로 밀려들어왔다. 루미의 비명이 터져 나왔다.
"루아를 줘. 그럼 니네 목숨은 봐주지."
렉스가 으르렁거리며 앞으로 나섰다. 여우의 형태로 변했다. 그레이도 늑대로 변했다. 두 짐승이 카이 앞에 섰다.
새벽 네 시, 오븐 문을 열고 닫는 소리가 부엌을 가득 채웠다. 루아의 손은 떨리지 않았다. 두려움도 없었다. 다만 결의만 있었다.
밤새 구운 빵들이 식판 위에 일렬로 놓여 있었다. 렉스를 위한 베리 타르트, 루미를 위한 밀크 식빵, 그레이를 위한 통곡물 빵. 그리고 마지막으로, 자신을 위한 빵. 루아는 그 빵들을 하나씩 집어 들고 살펴봤다. 밀가루 냄새가 손에 밴 그 빵들 속에는 이 밤 열두 시간 동안 루아가 삼킨 모든 감정이 담겨 있었다.
거실에서 그레이와 렉스의 목소리가 들렸다. 두 수인의 음성은 낮고 긴장해 있었다.
"안개가 진해지고 있어."
"저 빨간 눈이 보이지? 더 가까워졌어."
루아는 빵 바구니를 들고 거실로 나갔다. 창밖은 검은 안개로 뒤덮여 있었다. 아침 일곱 시의 하늘이 아니라 한밤중의 숲처럼 어두웠다. 빨간 눈 하나가 안개 속에서 깜빡였다. 또 다른 하나가 나타났다. 그리고 또 하나.
"카이가 혼자가 아니야," 렉스가 중얼거렸다. "저건 안개 마수들이야. 카이가 부렸어."
루미는 침대 아래에서 나오지 않았다. 루아는 빵 바구니를 테이블에 내려놓고 침실로 들어갔다. 어둠 속에서 루미의 작은 몸이 떨리고 있었다.
"루미야," 루아는 무릎을 꿇었다. "이거 먹어봐."
루미가 밀크 식빵을 물었다. 한 입, 두 입. 루미의 떨림이 멈췄다. 작은 토끼의 눈이 루아를 바라봤다. 그 눈에는 더 이상 공포가 없었다. 대신 있는 것은 믿음이었다. 루미가 루아의 옷을 꼭 안았다.
거실로 돌아온 루아는 렉스에게 베리 타르트를 건넸다. 렉스는 한 입 깨물었다. 여우의 눈이 감겼다가 떠졌다. 그의 얼굴을 무언가가 스쳐 지나갔다. 상처의 자국 같은 것. 그것이 빛으로 변했다.
"저 친구가 너를 믿지 않았어? 그런데 난... 지금은 안다."
렉스의 목소리가 낮고 침착했다. 여우는 루아에게 몸을 굽혔다. 전투 자세였다. 하지만 그의 눈은 루아에게서 떨어지지 않았다. 이 빵을 준 손을 지키겠다는 다짐이 담겨 있었다.
그레이는 빵을 받아 들었다. 늑대의 입술이 떨렸다. 한 입 깨물자마자 그레이의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크고 회색인 늑대가 울고 있었다. 그 눈에 비친 것은 자신의 아내였고, 자신의 두려움이었고, 자신의 사랑이었다.
"내가... 얼마나 많이 사랑했는지 몰랐어."
그레이가 중얼거렸다. 그의 팔이 루아를 감쌌다. 크고 따뜻한 품이었다. 그 안에서 루아는 느낄 수 있었다. 자신을 지키려는 결연함이. 그리고 그것이 얼마나 간절한지.
창밖에서 울음소리가 났다. 동물의 울음이 아니라 악마의 비명이었다. 카이가 나타났다. 검은 안개의 중심에서 그의 형체가 드러났다. 반은 인간, 반은 그것도 아닌 것. 손가락에서 검은 불이 일어났다.
"그 빵의 힘을 느껴봤어," 카이가 웃음을 터뜨렸다. 그 소리는 깨진 유리 같았다. "완벽하지. 완벽한 진심. 그런 힘이 내 것이 된다면..."
카이가 손을 휘둘렀다. 검은 불이 공중을 그으며 튀어나갔다. 렉스는 몸을 날려 불길을 피했지만, 그 열기가 여우의 옆구리를 스쳤다. 피가 흘렀다. 그레이는 카이의 팔을 향해 달려들었다. 거대한 턱이 카이의 종아리를 노렸다. 카이가 비명을 질렀다. 검은 손이 그레이의 등으로 내려찍어졌다. 날카로운 손톱이 털과 살을 갈라냈다. 붉은 피가 흩어졌다.
"아버지!" 루미가 울었다.
루아의 손이 떨렸다. 이번엔 두려움이 아니었다. 분노였다. 그 분노가 가슴 안에서 타올랐다. 감정 억제와 분출 사이에서 루아는 흔들렸다. 렉스와 그레이가 자신을 위해 피를 흘리고 있는데, 자신은 여전히 그 자리에 서 있기만 했다. 그것이 견딜 수 없었다.
루아는 부엌으로 뛰어갔다. 마지막 빵을 꺼냈다. 그것은 자신을 위해 구운 빵이었다. 루아가 그것을 깨물었다.
모든 감정이 폭발했다. 두려움, 사랑, 분노, 슬픔, 외로움, 희망. 열 년간 무표정으로 억눌렀던 모든 것이 한 점에 모였다.
루아의 손가락이 은빛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피부가 타는 듯한 통증이 손끝에서 팔로 퍼져 나갔다. 마치 무언가가 내부에서 밀어내려는 듯. 루아는 그 저항을 밀어붙였다. 손목을 지나 팔 전체가 은빛으로 물들었다. 그 빛이 목을 타고 올라왔다. 목구멍이 타는 듯 아팠다. 숨이 가빠졌다. 마치 무언가 거대한 것이 자신의 몸 안에서 깨어나고 있는 것처럼. 루아는 그 고통을 받아들였다. 억누르지 않았다. 열 년간 억눌렀던 모든 것을 이 순간에 풀어내기로 했다.
마지막 순간, 루아의 눈이 은빛으로 타올랐다. 그것은 숲의 빛이었다. 루아가 더 이상 인간의 형태가 아니라, 이 숲의 일부가 되었다는 신호였다. 그리고 동시에, 루아가 자신의 감정을 더 이상 숨기지 않겠다는 선언이었다.
루아가 거실로 뛰어나갔다. 거실의 문이 부서졌다. 카이가 집 안으로 진입했다. 카이의 손이 루아의 목을 향해 뻗어났다.
"그 힘을... 내 것으로!"
카이의 손이 루아의 피부에 닿기 직전, 그레이가 전신을 던졌다. 거대한 늑대의 몸이 카이를 밀어냈다. 카이가 벽에 부딪혔다. 벽돌이 부서지며 흩어졌다. 그레이의 눈이 루아를 향했다. 순간, 그의 눈 안에 갈등이 떠올랐다. 루아를 지키려는 본능과 자신의 몸을 지키려는 본능 사이에서. 하지만 그는 선택했다. 루아를 지키는 것을. 그 선택이 그의 얼굴에 명확히 드러났다.
렉스가 카이의 다리에 매달렸다. 여우의 이빨이 카이의 종아리를 깨물었다. 카이가 검은 불을 뿜었다. 렉스의 비명이 터져 나왔다. 하지만 여우는 물지 않았다. 루아를 지키기 위해.
루아는 중심을 잡았다. 은빛 눈이 카이를 바라봤다.
"이제 끝이야."
루아가 손을 펼쳤다. 빵 조각들이 공중에 흩어졌다. 그 순간, 조각들이 은빛으로 타올랐다. 루아가 무엇을 할 것인지 카이도 렉스도 알 수 없었다. 단지 은빛이 모여들고, 뭉쳐지고, 형태를 이루어 가고 있었다. 광선이 되었을 때, 그것은 이미 카이의 어둠을 향해 날아가고 있었다. 하나, 둘, 셋. 카이의 검은 형체가 은빛에 뚫렸다. 카이가 비명을 질렀다. 그 비명은 인간의 것이 아니라 무언가 더 원초적인 것이었다. 검은 안개가 흩어졌다.
그 순간, 집의 창밖에서 발걸음 소리가 났다. 많은 발걸음이. 마리나가 나타났다. 그 뒤로 숲의 다른 수인들이 섰다. 곰, 사슴, 늑대, 여우들. 루아는 그들을 보며 깨달았다. 자신이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이 숲에 자신을 지켜주는 것들이 이렇게나 많다는 것을. 그 깨달음이 루아의 가슴을 천천히 채워 나갔다. 두려움의 자리에 안도감이 들어찼다. 외로움의 자리에 소속감이 들어찼다.
"루아," 마리나가 말했다. "우린 왔어."
그 말이 루아의 귀에 닿자, 은빛이 더욱 밝아졌다.
카이가 후퇴했다. 어둠이 물러났다. 하지만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았다. 안개의 끝에서 카이의 목소리가 들렸다.
"이 싸움은 끝나지 않았어. 넌 내 것이 될 거야."
루아의 은빛 눈이 흔들렸다. 손가락에서 떨림이 시작됐다. 하지만 이번엔 다른 손이 루아의 손을 잡았다. 그레이의 손이었다. 렉스의 손이 루아의 어깨에 올라왔다. 루미가 루아의 치마 끝을 꼭 쥐었다.
"혼자가 아니야," 그레이가 말했다.
루아의 은빛이 더 밝아졌다. 그 빛 안에 가족의 형태가 보였다.
루아의 은빛이 서서히 사그라졌다. 손가락의 반짝임이 사라지고, 피부는 다시 인간의 것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눈은 여전히 희미하게 빛나고 있었다. 루아는 무릎을 꿇었다. 몸 전체가 진동했다. 열 년간 누르고 누르던 모든 것을 한 번에 터뜨린 대가였다. 팔이 무거웠다. 다리가 말을 듣지 않았다. 호흡이 가쁘고 불규칙했다. 심장이 가슴을 뚫을 듯 뛰었다. 루아는 그 고통을 느껴야 했다. 이것이 진심의 대가였다.
"루아!" 루미가 먼저 달려왔다. 작은 손이 루아의 팔을 감싸 안았다. 그 접촉이 루아를 지탱했다.
렉스가 인간의 형태로 돌아와 루아의 등을 어루만졌다. 손끝에 아직 피가 묻어 있었다. 여우의 눈이 루아를 바라봤다. 말 없는 감사가 담겨 있었다. 그리고 더 이상의 의심도 없었다.
그레이는 여전히 늑대의 형태였다. 거대한 몸이 루아와 루미 주변을 감싸 안았다. 따뜻한 털이 루아의 뺨을 스쳤다. 늑대의 숨소리는 천천히 고르게 들려왔다. 진정의 리듬이었다.
거실의 벽에는 검은 자국들이 남아 있었다. 카이의 불이 그은 상처들. 하지만 집은 무너지지 않았다. 이 집은 루아와 이 가족의 진심으로 지어진 것이었고, 그 힘은 어둠의 불보다 강했다.
마리나가 창문을 통해 들어왔다. 그 뒤로 다른 수인들이 따라 들어왔다.
"괜찮아?" 마리나가 루아에게 무릎을 꿇었다. 밝은 여우의 얼굴이 걱정으로 굳어 있었다.
루아는 고개를 들었다. 입술이 움직였지만 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성대가 무언가 너무 크게 울어낸 듯 경직되어 있었다. 대신 루아는 마리나의 손을 꼭 잡았다.
"저 놈은 숲의 규칙을 거슬렀어," 곰 수인이 말했다. 목소리는 큰 가슴에서 나오는 저음이었다. "진심 없는 마법으로 숲의 안개를 조종하려 했고, 공동체의 구성원을 해치려 했어. 이건 용서할 수 없는 죄야."
"하지만 완전히 죽지는 않았어," 다른 늑대 수인이 말했다. 그레이보다는 작은 체형이었지만, 눈은 예리했다. "그건 문제야. 그 놈이 다시 돌아올 거야."
루아의 몸이 다시 긴장했다. 손가락이 떨리기 시작했다. 렉스가 루아의 어깨를 더 단단히 눌렀다.
"다시 올 때는 우린 더 강할 거야," 렉스가 말했다. 목소리에는 이전의 까칠함이 없었다. 대신 약속이 담겨 있었다. 루아를 향한 약속.
마리나가 루아의 얼굴을 들어올렸다. 밝은 여우의 눈이 루아의 눈과 마주쳤다. "넌 혼자가 아니야."
루아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알았다. 이 집에, 이 가족에, 이 숲에 속해 있다는 것을. 그것이 루아가 그토록 두려워하던 것이면서 동시에 가장 원하던 것이었다.
부엌에서 무언가 타는 냄새가 났다. 루아가 마지막에 구운 빵의 조각들이 거실 바닥에 흩어져 있었다. 그것들은 여전히 은빛으로 희미하게 빛나고 있었다. 그 빛이 천천히 사라지고 있었다.
"저 빵들을 치워야겠네," 사슴 수인이 말했다. "저건 일반적인 음식이 아니야. 저 에너지가 남아 있으면 카이가 다시 찾아올 거야."
루미가 루아의 팔에서 떨어지지 않으려 했다. 토끼의 귀가 루아의 어깨에 닿아 있었다. 작은 몸이 계속 떨리고 있었다.
"이제 자야 해," 그레이가 늑대의 형태에서 인간으로 돌아왔다. 목소리는 여전히 낮고 무거웠지만, 그 안에는 부드러움이 있었다. 루아를 들어올렸다. 거대한 팔이 루아를 감싸 안았다. 루아의 머리가 그레이의 가슴에 기댔다. 심장의 박동이 들렸다. 강하고, 규칙적이고, 살아있는 음이었다.
마리나와 다른 수인들이 천천히 나갔다. 그들은 카이가 다시 나타나지 않을지 밤새 경비를 설 것이었다.
렉스가 부엌의 불을 껐다. 오븐 안은 이제 검은색이었다. 하지만 그 안에서는 여전히 따뜻함이 나오고 있었다.
그레이는 루아를 들고 2층 침실로 향했다. 계단을 올라가는 발걸음이 들렸다. 렉스는 거실에 남아 창밖을 바라봤다. 검은 안개는 완전히 물러났다. 하지만 숲의 어딘가, 멀고 희미한 곳에서 붉은 눈이 한 번 깜박이고 사라졌다. 카이는 죽지 않았다. 단지 물러났을 뿐이었다.
루아가 침실의 침대에 누워졌다. 부드러운 이불이 루아를 감싸 안았다. 그레이가 침대 가장자리에 앉았다. 늑대의 눈이 루아를 바라봤다. 그 눈 안에는 너무나 많은 것들이 담겨 있었다. 후회, 사랑, 감사, 그리고 무언가 더.
"고마워," 그레이가 말했다. 목소리는 거의 들릴 듯 말 듯했다.
루아의 손이 그레이의 손을 찾아 잡았다. 손가락이 더 이상 떨리지 않았다. 대신 따뜻함만 전해졌다.
그 순간, 루아의 의식이 흐릿해지면서 무언가가 떠올랐다. 부엌의 오븐 안에서, 남은 반죽 한 점이 홀로 남아 있었다. 루아가 구우려 했지만 끝내지 못한 빵. 그것은 누구를 위한 것이었나. 부엌에서 나는 그 냄새는 무엇이었나. 따뜻하고도 낯선 향기. 누구를 위한 것인가. 그 형태는 어떤 모습인가. 꿈 속에서 루아는 그 반죽을 만지고 있었다. 차갑고도 부드러운 촉감. 누구를 위한 빵인가. 누구를 위한 것인가. 그 불안감이 루아의 마음 한구석을 자꾸만 건드렸다.
밤은 깊어 가고 있었다. 실버우드의 은빛 안개가 다시 숲을 감싸 안았다. 카이의 검은 안개는 사라졌지만, 그 흔적은 집의 벽에 그대로 남아 있었다. 이 싸움은 끝나지 않았다. 단지 한 라운드가 끝났을 뿐이었다.
그리고 내일 아침, 루아가 깨어났을 때, 그 남은 반죽을 누가 위해 구워야 하는지 알게 될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