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 검증

학술대회 무대 위에서 이준호는 마지막 슬라이드를 클릭하려다 멈췄다.

객석 맨 앞줄의 박용석 교수의 표정이 읽혔다. 냉소. 그 순간 손가락이 떨렸다.

하지만 이준호는 숨을 고르고 클릭했다.

화면에 떠오른 것은 열 명의 환자 사진과 그들의 진단 기록이었다. 바이러스성 심근염, CIDP 합병 Wernicke-Korsakoff 증후군, 지연성 신장 출혈, 급성 뇌간 경색. 이화영의 뇌 영상 분석 데이터가 그 옆에 나란히 배열되어 있었다. 뇌척수액 소실로 신경세포가 손상되면서 시각 피질과 감정 중추 사이의 신경 연결이 비정상적으로 강화된다는 결론. 통계적 유의도 p<0.001. 초진단의 정확도 97.3%.

"이 데이터는 단순한 우연이 아닙니다."

이준호의 목소리가 조용하지만 명확하게 3천 명의 객석에 전달되었다. 대한의학회 춘계 학술대회의 메인 홀. 국내외 의료진들이 숨을 고르고 있었다.

"초감각적 진단이라는 용어는 신비로움을 암시하지만, 우리가 발견한 것은 신경과학입니다. 특정한 뇌 상태에서, 의료진의 축적된 임상 경험과 현대 의학 지식이 만날 때, 인간의 뇌는 교과서에 없는 패턴을 인식할 수 있습니다."

이준호는 무대 중앙으로 한 발 나아갔다. 옆 스크린에는 이화영이 작성한 신경영상의학 분석이 떠올랐다. 뇌 영상은 조선 시대 맥진도처럼 보였다. 색깔 대신 맥박이었고, 신경망 대신 경락이었다.

"더 중요한 발견은 이것입니다."

다음 슬라이드가 넘어갔다. 여덟 명의 의료진 얼굴이 나타났다. 김정수, 이화영, 최준혁, 박재민, 그리고 다섯 명의 다른 의사들.

"이 능력은 재현 가능합니다. 우리 팀의 다른 의료진들도 3개월의 집중 훈련 후 초진단의 60~70% 수준까지 재현해냈습니다. 이것은 개인의 천재성이 아니라, 의료 시스템이 만들어낼 수 있는 집단 역량입니다."

객석이 술렁였다. 손가락으로 화면을 터치하고 메모를 하는 의료진들이 보였다. 한 명의 노년 교수는 안경을 벗어 닦고 있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우리는 인정해야 합니다."

이준호가 숨을 들이마셨다. 이 부분은 김정수와 최준혁이 가장 강조했던 결론이었다.

"이 능력은 모든 환자에게 적용될 수 없습니다. 정확한 진단 후에도 현대 의학으로 치료 불가능한 질환들이 존재합니다. 우리의 능력은 진단의 한계를 밝히는 것이지, 그것을 해결하는 것은 아닙니다. 의학의 진정한 발전은 개인의 뛰어난 직관이 아니라, 팀이 함께 그 한계를 인식하고 다음 단계로 나아갈 때 가능합니다."

마지막 슬라이드가 떠올랐다. 한 문장만 있었다.

**"이 능력은 내 것이 아니라 모든 의료인을 위한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시작일 뿐입니다."**

무대 아래에서 누군가 일어섰다. 그 다음 또 누군가. 객석 전체가 천천히 일어나기 시작했다. 박수는 처음엔 조용했고, 그 다음 점점 커졌다.

이준호는 무대 위에서 그들을 보았다. 객석 맨 앞줄에는 김정수 정교사가 있었다. 그의 눈이 축축해 보였다. 옆에 이화영이 서 있었고, 그 옆에는 최준혁 교수가 있었다. 최준혁은 천천히 박수를 치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박재민은 세 번째 줄에서 자리에서 일어나며 휘파람을 불었다.

그 순간, 이준호의 시야가 흔들렸다.

무대의 조명이 변했다. 흑백이 되었다. 아니―무대가 사라졌다.

그 자리에 나타난 것은 조선 시대의 궁전이었다. 한 명의 의관이 무릎을 꿇고 있었다. 벗겨진 등, 피, 그리고 극형의 칼. 그 의관의 얼굴은 이준호 자신과 같았다.

**"이준."**

목소리가 들렸다. 최준혁의 목소리였다. 하지만 조선 시대의 말이었다.

**"넌 혼자가 아니었어야 했어."**

이미지가 사라졌다. 무대의 조명이 돌아왔다. 박수는 여전히 계속되고 있었다.

이준호는 눈을 깜빡였다. 환각인가? 아니면 기억인가? 300년 전 그 죽음의 순간, 자신이 팀의학을 깨달았더라면. 혼자 진단하지 않았더라면. 권력자들의 정치에 개입하지 않았더라면.

그것을 바꿀 수는 없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이준호는 무대에서 내려왔다. 객석 앞으로 한 걸음, 또 한 걸음. 김정수 정교사에게 다가가 손을 맞잡았다. 이화영을 보며 고개를 숙였다. 최준혁 교수에게는 팔을 잡혔다.

"잘했어, 의사."

최준혁의 목소리가 낮았다. 그것은 축하라기보다 인정이었다.

"넌 정말로 혼자가 아니야."

박재민이 이준호의 어깨를 두드렸다.

"근데 진짜 떨리지 않았어?"

"미쳤지. 떨렸다."

이준호가 웃음을 터뜨렸다. 그것은 진심이었다.

---

학술대회 로비로 나가는 길, 이준호는 박용석 교수와 마주쳤다.

박 교수는 혼자였다. 그의 얼굴은 복잡한 표정으로 일그러져 있었다. 이준호를 보자, 그는 천천히 다가왔다.

"훌륭한 발표였어."

박용석의 목소리는 진심이었다. 하지만 그 직후 그의 얼굴이 굳어졌다.

"하지만 자네는 아직 모르는 게 많아. 저 발표가 의료계에 어떤 파장을 일으킬지. 기득권이 그렇게 쉽게 물러나지 않는다는 것을."

박용석이 이준호의 팔을 잡았다. 그의 손가락이 떨렸다.

"논문이 발표되면 다른 의료기관에서 재현을 시도할 거야. 그 과정에서 실패사례들이 나올 거고, 그 책임은 누가 질 거 같아? 너희가 제시한 방법론이 만능이 아니라는 걸 증명하려는 논문들이 쏟아져 나올 거야. 그리고 의료법상 너희의 기록 방식도 계속 문제가 될 거야."

"알겠습니다."

이준호의 대답이 짧았다.

"그리고 한 가지 더. 내가 박수를 친 이유를 알고 싶니?"

박용석이 웃음을 지었다. 그것은 냉소적이었다.

"너처럼 뛰어난 의사를 무작정 적으로 돌릴 수는 없지 않아. 이제 내 편이 되어야 할 때야."

박용석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이준호가 물러설 것을 기대했던 것이다.

이준호는 한 발 물러섰다.

"죄송하지만, 저는 누구의 편도 아닙니다."

이준호의 목소리는 명확했다.

"저는 환자의 편입니다. 그리고 팀의 편입니다.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닙니다."

박용석의 얼굴이 굳었다. 그의 손이 이준호의 팔에서 떨어졌다. 그는 돌아서는 속도를 높였다.

"그렇군."

박용석이 천천히 말했다.

"그럼 앞으로 자네는 혼자가 될 거야. 의료계의 기득권을 적으로 돌렸을 때,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게 될 거야."

박용석은 빠르게 돌아섰다. 그의 뒷모습이 로비를 가로질렀다.

이준호는 그를 바라봤다. 박용석의 결정은 이미 내려져 있었다. 그는 더 이상 이준호의 편이 아니었다. 그리고 그것은 앞으로 많은 것들을 바꿀 것이었다.

학술대회의 승리감이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무대 위에서 느꼈던 환호와 박수는 이미 멀어졌다. 남은 것은 고독함뿐이었다. 기득권을 적으로 돌린 대가.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이제 알 것 같았다. 혼자가 된다는 것. 그 단어의 무게가 이준호의 어깨를 짓눌렀다.

진단은 했다. 하지만 그것이 죽음을 의미한다는 것을 알았다. 자신의 능력은 진단이지, 구원이 아니라는 것을. 그 깨달음이 로비의 고독함과 겹쳐졌다.

그 순간, 신미래 과장이 옆에서 나타났다. 그녀의 얼굴은 공식적인 미소로 고정되어 있었다.

"이준호 과장, 축하합니다."

"과장이 아니라 의대생입니다."

이준호가 바로잡았다.

"그렇군요. 어쨌든, 병원 이사회가 오늘 오후 회의를 열었습니다. 당신의 연구 프로젝트에 대한 공식적인 지원을 결정했어요. 연구비 규모는 5억 원, 전담 연구 공간 할당, 그리고 인턴 3명의 추가 배치가 포함됩니다."

신미래가 태블릿을 펼쳐 보였다. 문서에는 '초감각적 임상 진단 시스템 개발 및 의료인 재교육 프로그램'이라는 제목이 있었다.

"단, 몇 가지 조건이 있습니다. 모든 진단 기록은 의료법 제17조에 따라 투명하게 보관되어야 하고, 매월 윤리위원회에 보고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이 프로젝트의 모든 성과는 병원의 공식 성과로 기록됩니다."

신미래의 목소리는 부드러웠지만, 그 안의 조건들은 명확했다. 이준호의 능력은 더 이상 개인의 것이 아니라 병원의 자산이 되는 것이었다.

이준호는 문서를 읽었다. 조건들은 공정했다. 하지만 그것은 또한 그의 자유를 제한하는 것이기도 했다. 박용석의 경고와 신미래의 제안. 기득권의 또 다른 포섭 시도였다. 혼자가 되지 않기 위해 타협하는 것. 그것도 결국 혼자가 되는 것과 같지 않을까.

"서명하겠습니다."

이준호가 펜을 들었다. 그것이 또 다른 시작임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 시작이 어디로 향할지는 여전히 불명확했다.

---

학술대회가 끝난 이틀 뒤, 밤 11시 응급실에 호출이 들어왔다.

40대 남성, 심한 두통과 근육통, 그리고 간 수치의 급상승. 모든 혈액검사는 음성이었다. 바이러스 항체 검사도 음성. 뇌 MRI도 정상. 의료진들은 이미 포기 상태였다.

응급실에 도착한 이준호는 침대 옆에 섰다. 환자의 얼굴은 회백색이었다. 손가락 끝이 미세하게 떨렸다. 눈동자가 불규칙하게 움직였다. 피부 표면 곳곳에 작은 발진이 흩어져 있었다.

의료진이 이준호를 바라봤다. 이미 세 시간을 들였는데 진단이 없었다. 그들의 표정은 실패의 색깔이었다.

이준호가 환자를 보자마자, 그것이 시작되었다.

뇌의 깊은 곳에서 무언가가 울렸다. 조선 시대 의관 이준의 기억이 깨어나는 순간이었다. 손가락의 떨림, 눈동자의 움직임, 피부의 작은 발진. 그것은 단순한 증상이 아니었다. 그것은 기억이었다.

동물 독. 獸毒.

조선 중기, 진짜 의관 이준이 마주했던 그 질환이 현대에서도 존재한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 이준호의 뇌가 격렬히 반응했다.

후두부에서 시작된 두통이 두개골 전체를 휘감았다. 마치 누군가 망치로 뇌를 직접 두드리는 것 같은 통증이었다. 시각이 왜곡되었다. 형광등이 번쩍거렸다. 응급실의 모니터음, 의료진의 목소리, 환자의 신음이 모두 한데 섞여 불협화음처럼 들렸다.

조선 시대의 기억과 현대의 진단이 이준호의 신경계에서 충돌했다. 300년의 시간이 한 순간에 압축되었다. 의관 이준의 손과 의사 이준호의 손이 겹쳤다. 그 손이 떨렸다.

"이준호!"

누군가 이준호의 팔을 잡았다. 박재민이었다.

"능력 사용했나? 침대에 누워!"

하지만 이준호는 여전히 환자를 바라보고 있었다. 진단은 명확했다. 하지만 그 순간, 또 다른 인식이 그의 의식을 관통했다.

그 진단이 맞다 하더라도, 현대 의학으로 치료할 약이 없다는 것.

자신의 능력은 진단이지, 구원이 아니라는 것.

의식이 사라지기 직전, 이준호는 한 가지를 깨달았다.

진단은 했다. 하지만 그것이 죽음을 확정하는 것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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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급실 침대에서 깨어난 이준호는 자신의 팔에 수액이 연결된 것을 느꼈다. 천장의 형광등이 흐릿하게 떠올랐다. 머리 옆에는 최준혁이 앉아 있었다. 그의 얼굴은 침착했으나, 눈은 걱정으로 가득했다.

"환자가?"

이준호의 목소리는 갈라져 있었다.

"아직 살아 있어. 간 수치가 계속 상승 중이야. 하지만 원인을 알 수 없었지."

최준혁이 말했다.

"진단을 내렸나?"

"네."

이준호가 대답했다.

"정확한 진단입니다. 하지만..."

목이 메었다.

"치료할 수 없습니다."

최준혁의 표정이 변했다. 그는 이준호의 손을 잡았다.

"무엇인가?"

"바이러스성 간염의 변이형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알고 있는 어떤 항바이러스제도 효과가 없습니다. 조선 시대의 기록에서는 이를 동물 독으로 분류했는데, 현대 의학으로는..."

이준호가 말을 멈췄다.

"치료할 수 없다."

최준혁이 일어섰다. 그의 움직임은 빨랐다.

"팀을 불러. 박재민, 이화영, 김정수. 감염내과, 간담췌 외과, 신경내과 전문의들도. 응급실 1번과 2번 침대 모두 같은 질환인가?"

"2번 침대?"

이준호가 물었다.

"응. 50대 여성이 방금 들어왔어. 같은 증상. 모든 검사 음성. 의료진들이 막혔어."

최준혁이 응급실 밖으로 나갔다.

이준호는 침대에 누운 채로 천장을 바라봤다. 자신의 뇌가 울렸다. 두통은 여전히 남아 있었지만, 그것보다 더 깊은 곳에서 뭔가 흔들리고 있었다.

진단은 했다. 하지만 그것이 죽음을 의미한다는 것을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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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 1시, 회의실에 팀이 모였다.

이준호는 휠체어에 앉아 있었다. 뇌척수액 누출로 인한 뇌압 저하가 있었고, 의료진은 그를 움직이지 않도록 했다. 하지만 그는 회의에 참석해야 했다.

테이블 위에는 두 환자의 검사 결과가 놓여 있었다. 혈액 검사, 영상검사, 바이러스 검사. 모두 음성 또는 정상 범위였다.

"진단을 말해줄래?"

이화영이 물었다. 그녀의 노트북에는 이미 신경생물학적 분석 프로그램이 켜져 있었다.

"바이러스성 간염의 변이형입니다. 하지만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간염 바이러스는 아닙니다."

이준호가 천천히 말했다.

"감염 경로는?"

김정수 정교사가 물었다.

"동물 매개. 아마도 감염된 동물의 혈액이나 체액을 통한 직접 접촉. 두 환자 모두 최근 산행을 다녀왔습니다."

"산행?"

박재민이 고개를 들었다.

"네. 강원도 산림 지역. 같은 시간대는 아니지만, 같은 지역입니다."

이화영이 키보드를 두드렸다. 손가락이 키 위에서 멈춘 후 다시 움직였다.

"그럼 신종 인수공통감염병(zoonotic disease)일 가능성이 높아. 동물 바이러스의 인간 감염 사례. 하지만 이렇게 명확한 임상 양상을 보이는 건 기록에 없어."

"그렇습니다."

이준호가 말했다.

"그래서 문제입니다."

최준혁이 테이블을 두드렸다.

"일단 두 환자 모두 격리 상태로 전환해. 감염 경로를 차단해야 해. 그리고 질병관리청에 신고해. 신종 감염병 가능성으로."

"치료는?"

박재민이 물었다. 그의 목소리는 조심스러웠다.

침묵이 회의실을 채웠다.

"현재 표준 항바이러스제는 효과가 없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준호가 말했다.

"그럼 실험적 치료는?"

김정수가 물었다.

"간 기능이 현저히 악화되면 이식만이 유일한 방법입니다. 하지만 두 환자 모두 간 이식 대기자 명단에 올려질 우선순위가 낮습니다. 첫 번째 환자는 이미 간경변 진행 중이고, 두 번째 환자도 48시간 내 급성 간부전으로 진행될 가능성이 90% 이상입니다."

이화영이 이준호를 바라봤다.

"당신의 진단이 정확하다면, 우리는 두 명을 모두 잃을 가능성이 높다는 뜻이야?"

"네."

이준호의 대답은 명확했다.

최준혁이 일어섰다.

"그래도 우리는 시도해야 해. 모든 방법을 동원해서. 1번 환자는 내가 담당하고, 2번 환자는 박재민이. 이화영은 이 바이러스의 신경생물학적 특성을 분석해. 혹시 모를 항바이러스 표적이 있을 수 있어. 김정수는 질병관리청과 국내 유수 바이러스 연구소에 연락해. 긴급 협력을 요청해."

"실험적 약물 투여는?"

박재민이 물었다.

"국제 의약품 데이터베이스를 검색해. 이 바이러스 계열에 효과를 보인 사례가 있을 수 있어. 그리고 간 이식 우선순위 문제도 고민해야 한다. 의료윤리위원회와 협의해. 미승인 약물 사용의 법적 문제도 있을 거고."

최준혁이 말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의 경계가 어디인지 명확히 해야 해."

"그리고 이준호?"

박재민이 물었다.

"이준호는 쉬어. 더 이상 능력을 사용하지 말고. 우리가 여기서부터는 데이터와 경험으로 싸우는 거야."

최준혁이 이준호의 어깨를 잡았다.

"넌 이미 충분히 했어."

이준호는 대답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의 마음은 무거웠다. 자신이 진단했다는 것은 그들이 죽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의미했다. 그것이 자신의 능력이 하는 일인가. 죽음을 확정하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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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 1시 30분, 응급실 2번 침대에서 50대 여성 환자 이미영이 깨어났다. 그녀는 자신의 상태를 깨닫는 데 오래 걸리지 않았다. 의료진들의 표정, 그들의 움직임, 그리고 침대 주변에 놓인 응급 약품들. 모두가 말하고 있었다.

위험하다고.

간호사가 그녀의 손을 잡았다.

"편하세요?"

"아뇨. 불편하고 무섭습니다."

이미영이 말했다.

"제가... 낫나요?"

간호사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그 미소는 거짓이었다.

박재민이 침대 옆에 섰다. 그는 한 번 숨을 고른 후 이미영의 손을 잡았다.

"환자분, 저는 거짓말을 하지 않겠습니다."

박재민의 목소리는 낮지만 명확했다.

"현재 당신의 상태는 심각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모든 방법을 시도할 것입니다. 새로운 약물, 실험적 치료, 그리고 당신의 생명을 지키기 위한 모든 수단을 동원할 것입니다."

"제가 낫나요?"

이미영이 다시 물었다.

"모릅니다."

박재민이 대답했다.

"하지만 우리는 포기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미영의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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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 2시, 김정수 정교사는 질병관리청 역학조사팀과 화상통화를 하고 있었다.

"네, 두 환자 모두 같은 지역 산행을 다녀왔습니다. 약 열흘 간격입니다. 바이러스 검사는 모두 음성이지만, 임상 양상과 간 수치 상승 패턴이 일치합니다."

"현재 치료 방법은?"

질병관리청 역학관이 물었다.

"표준 항바이러스제가 효과 없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실험적 치료를 준비 중입니다."

"몇 시간 남았나요?"

"첫 번째 환자는 24시간. 두 번째 환자는 48시간."

침묵이 흘렀다.

"우리도 긴급 회의를 소집하겠습니다. 혹시 모를 대비를 위해. 그리고 서울대 병원의 데이터를 국립보건연구원과 공유해주시기 바랍니다."

"알겠습니다."

김정수가 통화를 끝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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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 3시, 이화영은 여전히 현미경 앞에 앉아 있었다. 두 환자의 혈액 샘플을 고배율로 관찰하고 있었다. 바이러스 입자의 형태, 크기, 표면 단백질의 구조. 모든 것이 알려진 간염 바이러스와 달랐다.

"새로운 종이야."

이화영이 중얼거렸다.

"세상에 없던 바이러스가 여기 있어."

그녀의 손이 떨렸다. 과학자로서의 흥미와 의료진으로서의 절망이 동시에 일어나는 순간이었다.

그녀는 국제 바이러스 데이터베이스를 검색했다. 비슷한 구조의 바이러스. 비슷한 감염 경로. 비슷한 임상 양상.

그 결과, 한 가지 가능성이 떠올랐다.

그것은 매우 희귀한 항바이러스제였다. 아프리카에서 에볼라 치료를 위해 개발되었으나, 현재는 임상시험 단계인 약물. 한국에는 존재하지 않는 약물.

하지만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에는 있을 수 있다.

이화영이 김정수에게 전화를 걸었다.

"교수님, 가능성이 하나 있습니다."

---

새벽 4시, 김정수 정교사는 미국 CDC와 화상통화를 하고 있었다.

"네, 저희가 보낸 바이러스 샘플 분석이 맞습니다. 신종 인수공통감염 바이러스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한 가지 약물을 시도해보고 싶습니다."

"어떤 약물이요?"

CDC 담당자가 물었다.

"Remdesivir의 변형 버전. 혹은 새로 개발 중인 RNA 폴리머라제 억제제."

"그건 아직 임상시험 단계인데요?"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환자는 48시간 내에 사망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우리는 모든 방법을 시도해야 합니다."

침묵이 흘렀다.

"일단 우리 본부에 보고하겠습니다. 긴급 협력 프로토콜이 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필요해요."

"얼마나?"

"6시간. 아니면 12시간."

"환자는 그 시간이 없습니다."

김정수가 말했다.

"알겠습니다. 우리가 최대한 빠르게 움직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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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5시, 질병관리청 역학조사팀이 병원에 도착했다.

전체 격리 프로토콜이 시작되었다. 응급실 1번과 2번 침대가 완전히 격리되었다. 의료진들은 모두 풀 PPE(개인보호장비)를 착용했다.

응급실 1번 침대의 40대 남성 환자 박준수는 의식을 잃었다. 모니터에 표시된 간 수치는 계속 상승했다. 혈소판 수치는 떨어졌다. 응고 시간이 연장되었다.

급성 간부전이 진행되고 있었다.

최준혁은 침대 옆에 섰다. 그는 환자의 손을 잡았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단지 그곳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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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6시 15분, 응급실 1번 침대의 모니터가 울음을 멈췄다.

박준수의 심전도가 평탄해졌다.

의료진들은 이미 예상하고 있었다. 모든 검사가 말하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예상과 현실은 다르다. 현실은 훨씬 무겁다.

최준혁이 심폐소생술을 시작했다. 가슴을 누르는 리듬은 일정했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모니터는 평탄함을 유지했다.

"1분 30초 경과."

간호사가 시간을 불렀다.

"3분 경과."

"5분 경과."

최준혁이 멈춤 신호를 내렸다.

"시간?"

"오전 6시 23분입니다."

환자는 죽었다.

가족실에서 박미순의 비명이 들렸다.

응급실 복도에서 이준호는 휠체어 위에 앉아 있었다. 모니터 음이 들렸다. 심전도의 평탄함. 그것이 의미하는 것을 알았다. 손가락이 떨리기 시작했다. 호흡이 얕아졌다. 자신이 진단했던 환자가 죽었다. 자신의 능력이 죽음을 확정했다. 그것이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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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급실 복도에서 박재민이 이준호를 발견했다.

박재민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이준호의 옆에 앉았다.

"내가 더 빨리 진단했다면?"

이준호가 물었다.

"빨라도 같았을 거야. 이 바이러스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것이니까."

박재민이 말했다.

"우리가 못한 게 뭔가?"

이준호가 물었다.

"모르지. 그게 의학이야. 우리는 항상 뭔가를 놓친다. 항상 충분하지 않다. 항상 죽음 앞에서는 무력해."

박재민이 이준호의 손을 잡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멈추지 않아. 그게 우리가 의사인 이유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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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7시, 최준혁은 가족실에 들어갔다.

박미순은 의자에 앉아 있었다. 딸 박소연이 그녀의 옆에 있었다. 박미순의 눈은 공허했다.

"죄송합니다."

최준혁이 말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했습니다. 하지만..."

최준혁은 말을 멈췄다.

"제 남편이... 정말..."

박미순이 목이 메었다.

"네. 죄송합니다."

최준혁이 그들의 옆에 앉았다.

"당신의 남편은 마지막까지 싸웠습니다. 그리고 우리도 함께 싸웠습니다."

"그게 무슨 위로가 되나요?"

박미순이 물었다.

최준혁은 대답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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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8시, 응급실 2번 침대의 환자 이미영은 여전히 의식이 있었다. 하지만 호흡이 얕아지고 있었다. 간 기능이 급속도로 악화되고 있었다.

박재민이 그녀의 손을 잡았다.

"저 낫나요?"

이미영이 물었다. 목소리는 매우 약했다.

"우리가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박재민이 말했다.

"새로운 약물을 시도할 거예요. 아직 임상시험 단계지만, 가능성이 있습니다."

"가능성이 있다는 건... 확실하지 않다는 뜻이잖아요."

이미영이 말했다.

박재민은 대답하지 못했다.

"제 가족한테 전해주세요. 저는... 행복했다고."

이미영의 눈이 감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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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10시, CDC로부터 긴급 승인이 내려왔다.

실험적 항바이러스제인 **GS-441524**의 변형 약물이 긴급 항공편으로 인천국제공항으로 향하고 있었다. 도착 예정 시간은 현지 시간 오후 2시.

하지만 환자 이미영은 오전 11시경 급성 간부전으로 진행될 가능성이 있었다.

시간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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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10시 50분, 인천국제공항에 비행기가 착륙했다.

긴급 약물 수송팀이 공항을 빠져나갔다. 서울대 병원까지는 30분 거리였다.

응급실에서는 이미영의 상태가 급격히 악화되고 있었다. 간 기능 검사 수치가 정상 범위의 50배를 넘었다. 혈소판 수치는 5000 이하로 떨어졌다. 의식이 흐려지기 시작했다.

"약물이 도착했어?"

박재민이 물었다.

"아직 15분 남았습니다."

간호사가 대답했다.

"환자가 그 시간을 버틸 수 있을까?"

박재민이 중얼거렸다.

이준호는 회의실의 모니터를 통해 이 장면을 봤다. 이미영의 생명 신호가 천천히 약해지고 있었다.

이준호는 휠체어에서 일어섰다. 뇌척수액 누출로 인한 두통이 다시 올라왔지만, 그는 무시했다.

"이준호, 어디 가?"

박재민이 물었다.

"환자를 만나야 합니다."

이준호가 말했다.

"의사 지시에 따라 침대에 있어야 해."

"알겠습니다."

이준호가 응급실로 향했다.

---

응급실 2번 침대에 도착한 이준호는 이미영을 바라봤다.

그녀의 눈이 천천히 감기고 있었다. 의식이 사라지고 있었다.

이준호는 그녀의 손을 잡았다.

"환자분, 저는 이준호입니다."

이준호의 목소리는 명확했다.

"당신을 진단한 의사입니다."

이미영이 눈을 떴다. 초점이 맞지 않았지만, 그녀는 이준호를 보려고 노력했다.

"제가... 낫나요?"

"모릅니다."

이준호가 대답했다.

"하지만 당신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지금 새로운 약물이 도착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계속 싸울 것입니다."

"혼자가 아니라고?"

이미영이 물었다.

"혼자가 아닙니다."

이준호가 말했다.

"당신은 절대 혼자가 아닙니다."

이미영의 손이 이준호의 손을 세게 잡았다.

---

오후 1시 45분, 약물이 응급실에 도착했다.

최준혁이 약물을 받았다. 그는 약물의 용량을 확인했다. 투여 방법을 확인했다. 그리고 이미영의 정맥에 약물을 주입했다.

모니터가 울음을 멈췄다. 아니, 다시 울음을 시작했다.

심전도가 변했다. 약간의 변화였지만, 그것은 희망이었다.

"간 수치가 떨어지고 있어."

간호사가 외쳤다.

"혈소판 수치도 올라가고 있어."

최준혁이 이미영의 얼굴을 봤다. 그녀의 눈이 천천히 떠졌다.

"환자분?"

최준혁이 물었다.

"의사선생님..."

이미영이 중얼거렸다.

"살았나요?"

"아직 멀었습니다. 하지만 당신은 싸우고 있습니다."

최준혁이 말했다.

"그리고 우리도 함께 싸우고 있습니다."

---

밤 11시, 응급실 모니터들이 안정적인 리듬을 유지하고 있었다.

이미영은 의식을 유지했다. 간 수치는 여전히 높았지만, 더 이상 상승하지 않았다. 혈소판 수치는 천천히 올라가고 있었다.

박재민이 이미영의 손을 잡았다.

"고생하셨습니다."

박재민이 말했다.

"당신은 정말 강한 분입니다."

"의사선생님들이 강하신 거 아닌가요?"

이미영이 약한 목소리로 말했다.

"우리는 팀입니다."

박재민이 대답했다.

"당신과 우리 모두."

---

새벽 3시, 회의실에 팀이 모였다.

이준호는 여전히 휠체어에 앉아 있었다. 하지만 그의 눈은 맑았다.

"환자 이미영의 상태가 안정화되었습니다."

최준혁이 말했다.

"간 기능이 회복되고 있습니다. 완전한 회복까지는 시간이 필요하지만, 생존 가능성은 90% 이상입니다."

"그리고 첫 번째 환자는?"

이화영이 물었다.

침묵이 흘렀다.

"우리는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했습니다."

최준혁이 말했다.

"하지만 그것이 충분하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우리의 실패가 아닙니다."

김정수 정교사가 말했다.

"그것은 의학의 한계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 한계를 인식했습니다."

이준호가 입을 열었다.

"저는 깨달았습니다."

모두가 이준호를 바라봤다.

"진단은 치료가 아니라는 것을. 능력은 책임이라는 것을. 그리고 혼자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을."

이준호가 말했다.

"하지만 팀과 함께라면, 우리는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들 수 있습니다. 모두가 아닐 수도 있지만, 누군가는 살릴 수 있습니다."

최준혁이 이준호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그래. 그게 의학이야. 그리고 그게 팀의학이야."

박재민이 웃음을 터뜨렸다.

"이제 우리는 뭘 해?"

"계속한다."

최준혁이 말했다.

"다음 환자를 기다린다. 그리고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을 한다."

---

일주일 뒤, 이미영은 병실에서 깨어났다. 간 기능은 거의 정상으로 돌아왔다. 의식도 명확했다.

이준호가 그녀의 침대 옆에 앉았다.

"환자분, 어떻게 느껴지세요?"

"살았다는 게 신기합니다."

이미영이 말했다.

"의사선생님들 덕분입니다."

"아닙니다."

이준호가 말했다.

"당신이 싸웠기 때문입니다. 당신의 의지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미영이 이준호의 손을 잡았다.

"고맙습니다. 정말로."

"저도 고맙습니다."

이준호가 말했다.

"당신이 우리에게 가르쳐준 것들이 있으니까요."

"제가?"

이미영이 물었다.

"네. 당신은 우리에게 팀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해주셨습니다."

이준호가 말했다.

---

한 달 뒤, 학술대회 발표 이후의 첫 번째 논문이 발표되었다.

제목: **"신종 인수공통감염 바이러스의 임상 특성과 실험적 치료 사례"**

저자: 이준호, 최준혁, 박재민, 이화영, 김정수, 그리고 다섯 명의 의료진.

논문에는 박준수 환자의 사례와 이미영 환자의 회복 사례가 모두 포함되었다. 실패와 성공이 함께 기록되었다.

그 논문의 마지막 문장은 이렇게 끝났다:

**"의학은 개인의 능력이 아니라 팀의 헌신으로 진행된다. 우리는 모든 환자를 살릴 수 없다. 하지만 우리는 함께 최선을 다할 수 있다. 그것이 의료진의 책임이고, 그것이 팀의학의 본질이다."**

---

밤 11시, 응급실에 새로운 호출이 들어왔다.

30대 여성, 심한 복통과 발열. 모든 검사는 음성이었다.

이준호는 휠체어에서 일어섰다. 그의 뇌가 울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번엔 다르다.

그는 혼자가 아니었다.

최준혁, 박재민, 이화영, 김정수. 그들이 모두 응급실로 향하고 있었다.

팀은 준비되어 있었다.

새로운 도전을 맞이할 준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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