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응급실의 모니터 비프음이 2초마다 규칙적으로 울렸다.

이준호는 침대 끝에 서서 환자의 얼굴을 봤다. 60대 남성, 의식불명, 입술이 옅은 자주색이었다. 가슴팍의 심전도 전극이 모니터를 밝혔고, 화면엔 ST분절 상승이 선명했다.

박용석 과장이 침대 맞은편에서 선언했다.

"급성 심근경색. 좌전하행지 폐색이 분명해. 심도자술 준비하자."

20년 경력의 과장이 내린 진단. 응급실 간호사들은 이미 움직이고 있었다.

그 순간 이준호의 눈이 환자의 가슴에 머물렀다. 호흡할 때마다 가슴과 복부의 움직임이 불일치했다. 왼쪽 폐야에서 들어오는 호흡음이 오른쪽보다 현저히 약했다. 그리고 동공—빛에 반응이 둔했다.

심근경색 환자의 동공은 정상이어야 했다.

그 순간 이준호의 시야가 흐려졌다.

뇌 깊숙한 곳에서 무언가가 깨어나는 감각. 조선 시대 명의의 손가락이 환자의 맥을 짚고 있었다. 5장 6부의 기능을 읽어내는 그 감각이 현대의 해부학 지식과 겹쳐졌다.

'이건 심근경색이 아니다.'

이준호의 입에서 말이 나왔다. 목소리는 자신의 것이 아닌 것 같았다. 더 낮고, 더 확실했다.

"심근염이다. 바이러스성 심근염. 심도자술은 하면 안 된다."

박용석이 고개를 들었다. 눈이 차가워졌다.

"뭔 소리를 하는 거야?"

"ST분절의 상승 패턴이 맞지 않습니다. 호흡음도—"

"의대생이 과장 진단에 이의를 제기하니?"

박용석의 얼굴이 붉어졌다. 응급실의 움직임이 멈췄다. 모든 눈이 이준호를 향했다.

이준호의 두 손이 떨렸다. 절차 위반. 위계 도전. 의료 현장에서 가장 위험한 행동이었다.

하지만 말을 멈출 수 없었다.

"심근 효소를 재검사해 주세요. 심도자술을 진행하면 염증으로 부어 있는 심근벽이 천공될 수 있습니다."

"나가!"

박용석의 목소리가 응급실 천장에 부딪혔다.

이준호는 응급실 문을 나갔다. 복도는 형광등 아래 하얀색이었다. 자신의 손이 여전히 떨리고 있었다.

그 순간, 뇌 뒤쪽에서 망치질하는 듯한 통증이 시작되었다. 천천히, 하지만 확실하게. 이준호는 복도 벽에 기대 섰다. 눈앞이 흔들렸다. 마치 뇌 안에서 누군가 깨어나려고 몸부림치는 것 같았다.

15분 뒤, 응급실 문이 다시 열렸다. 이화영 인턴이 이준호를 찾아 나왔다.

"박용석 과장이 심근 효소 재검사를 지시했어요."

"왜?"

"당신이 말한 게 맞을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했거든요."

이준호는 이화영의 얼굴을 봤다. 감정 표현이 거의 없었지만, 그 안에 뭔가 다른 것이 있었다. 과학자의 호기심. 당신을 실험 대상으로 보는 눈.

"심근 효소 검사 결과가 나왔어요. 트로포닌 수치가 정상의 3배입니다. 심근 손상이 있다는 뜻이에요. 근데 심도자술의 패턴이 아니라 염증 반응이에요."

응급실로 돌아갔을 때 박용석의 얼굴이 변해 있었다. 심장 초음파 화면에는 심근의 부종이 명확히 드러나 있었다. 심도자술은 취소되었다. 대신 항바이러스 치료와 심근염 프로토콜이 시작되었다.

응급실의 모든 시선이 이준호를 향했다.

박재민이 와서 그의 팔을 잡았다.

"너 괜찮아?"

"응."

"거짓말하지 마. 얼굴이 창백해."

이준호는 응급실 침대에 누웠다. 박재민이 손을 잡고 있었다.

"넌 뭔가 다르다. 처음 봤을 때부터 느껴졌어. 근데 혼자 하면 안 된다. 의사는 팀이야."

박재민의 목소리는 진지했다. 그의 얼굴에는 걱정이 있었다. 하지만 이준호는 박재민의 말을 듣지 않았다. 귀로는 들었지만, 뇌는 다른 곳에 가 있었다.

자신의 진단이 맞다는 것. 그 증명. 그것만이 중요했다.

"알았어. 다음부턴 조심할게."

이준호는 거짓말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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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일 뒤, 이준호는 퇴원했다. 통증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학교 복도를 걸어갈 때 머리가 여전히 무거웠다. 뇌 뒤쪽의 욱신거림은 진단 후마다 반복되었다.

병원 게시판에 감사장이 붙어 있었다.

'저희 아버지를 진단해주신 이준호 선생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환자 가족 일동'

이준호는 그 감사장을 읽었다. 환자의 아버지가 살아있다는 사실. 자신의 진단이 생명을 구했다는 사실. 하지만 그것도 오래 가지 않았다.

복도 모서리에서 환자의 딸을 만났다.

"이준호 선생님이세요? 저 아버지 환자 가족입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여성은 이준호의 손을 잡았다.

"아버지가 살아날 수 있었던 건 선생님 때문이에요."

이준호는 말을 잇지 못했다. 감사의 말을 들으면서도, 자신이 느낀 것은 감정이 아니라 또 다른 절박함이었다. 자신이 맞았다는 것. 그 증명이 필요했던 것.

여성이 떠났다. 이준호는 감사장 옆의 메모를 봤다. 손글씨였다.

'이준호 학생, 제 연구실에 한 번 와보지 않을래요? 난치병 임상 연구실. 5층 502호. —김정수 정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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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층 복도는 조용했다. 502호 문 앞에 도착했을 때 이준호는 초인종을 눌렀다.

"들어와."

김정수 정교사의 목소리는 낮고 침착했다. 사무실 내부는 생각보다 작았다. 책장이 벽 전체를 덮고 있었고, 책상 위에는 의료 논문과 환자 차트가 정렬되어 있었다.

김정수는 모니터 화면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진단 후 상태는 어때?"

"괜찮습니다. 두통은 거의 사라졌고요."

거짓이었다. 이준호는 말하면서 느꼈다. 자신이 또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것을.

김정수는 이제 이준호를 봤다. 그의 눈은 예리했다.

"심근염 진단, 잘했어. 그 환자가 심도자술을 받았으면 죽었을 거야."

"고맙습니다."

"근데 말이야. 너는 왜 절차를 무시했어? 주치의에게 먼저 말했으면 되지 않았나?"

이준호는 대답하지 못했다. 왜냐하면 그 순간 자신이 정확히 뭘 했는지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자신의 진단이 맞다는 것을 증명하고 싶었던 것. 주치의를 설득하는 과정은 필요 없었고, 자신이 맞다는 것을 의료진 전체가 인정하는 그 순간이 필요했던 것.

"내가 봤을 때 너는 두 가지 문제가 있어. 첫째, 너의 진단이 정말 맞는지 항상 확신한다. 둘째, 그 확신이 절차를 무시할 만큼 강하다."

김정수가 책 한 권을 꺼냈다. 표지는 낡았다. 한문으로 쓰인 제목이 보였다.

"이 책을 봐."

이준호가 책을 받았을 때 손끝이 울렸다. 페이지를 넘기자 한문 필적이 나타났다. 진단 기록들이었다. 각 환자의 증상, 맥진 결과, 치료법. 모두 조선 시대 한글과 한문이 섞여 있었다.

'동궁 종기, 음양오행의 불균형으로 판단. 기혈 소통 막혀 있음. 침술과 한약으로 치료 시작. 3주 후 완치.'

'양반가 며느리, 아랫배 극심한 통증. 의관들은 냉증이라 하였으나, 맥진과 복부 촉진으로 장기의 염증임을 판단. 수술적 배농 필요. 수술 후 회복.'

이준호는 페이지를 넘기다가 멈췄다. 한 기록이 눈에 들어왔다.

'선조 22년, 명의 이준의 진단 기록. 역모 누명으로 죽음을 당했으나, 그의 진단법은 후대에 전해져야 할 가치가 있음.'

손이 떨렸다. 그 순간, 이준호의 시야가 다시 흐려졌다.

조선 시대의 의관복을 입은 자신. 왕의 침상 옆에 서 있는 자신. 손가락으로 맥을 짚으면서 뭔가를 읽어내는 그 감각. 그리고 그 진단이 왕의 생명을 구하는 그 순간.

하지만 그 다음은 어둠이었다. 극형대 위의 자신. 팔이 찢어지는 고통. 극형대의 차가운 목재가 피부를 짓누르고, 팔의 관절이 하나씩 떨어져 나가는 감각. 그리고 마지막으로 들리는 말.

"역모죄로 능지처참을 집행한다."

이준호의 뇌가 거부 반응을 일으켰다. 기억이 아닌 것처럼 느껴졌지만, 몸은 그것을 기억하고 있었다. 팔이 찢어지는 고통, 극형대 위에서의 절망, 죽음 앞에서의 무력함. 모든 것이 현재의 신경계를 타고 흐르고 있었다.

시야가 검어졌다. 아니, 단순한 검음이 아니었다. 세상이 일그러졌다. 책의 글씨가 흔들리고, 책장이 기울어졌다. 귀에서 윙윙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이게... 뭐예요?"

목소리가 떨렸다.

"조선 시대 의관들의 기록이야. 정확히는 너의 전생이 남긴 흔적들이지."

김정수의 목소리는 담담했다.

"너는 지난 해부 실습에서 뭘 봤어?"

이준호는 입술을 깨물었다.

"1823년에 죽은 시신이... 역모 누명으로 죽었다고 교수님이 말씀하셨어요."

"그 사람이 이준이야. 조선의 명의. 정치 파벌 싸움에 휘말려서 극형을 당했지. 능지처참. 팔을 찢어 죽이는 형벌이야."

김정수가 이준호에게 다시 책을 보였다.

"너는 왜 그 시신을 봤을 때 기절했을까?"

이준호는 대답할 수 없었다. 뇌가 거부하고 있었다. 이건 불가능한 일이었다. 환생? 전생? 그런 건 소설 속에만 있는 일이었다.

하지만 손끝의 울림은 멈추지 않았다. 마치 누군가 안에서 계속 신호를 보내고 있는 것처럼. 그리고 그 신호는 거짓이 아니었다.

"내가 너한테 이 책을 보여준 건, 너의 능력이 뭔지 알려주기 위함이 아니야. 너의 능력이 얼마나 위험한지 알려주기 위함이야."

김정수가 책을 책상에 내려놨다.

"저 기록들을 보면 알겠지만, 이준은 뛰어난 진단가였어. 근데 그 때문에 죽었어. 자신의 진단이 맞다는 확신이, 정치 싸움에서 그를 보호해주지 못했거든."

"그럼 제가 뭘 해야 한다는 거예요?"

이준호의 목소리가 떨렸다.

"팀이 돼. 혼자가 아니라. 이화영이라는 인턴 있잖아. 신경생물학 박사야. 너의 진단을 과학적으로 설명하려고 노력하고 있어. 그리고 박재민이, 너보다 훨씬 현명한 의사가 옆에 있어. 그들과 함께 일해."

김정수는 의자에 앉았다.

"그리고 이건 명령이야. 앞으로 넌 내 연구팀에 들어와. 희귀질환 임상 연구팀이야. 너의 진단을 모두 여기서 기록하고, 검증하고, 증명하는 과정을 거쳐야 해. 혼자가 아니라 팀으로."

김정수가 이준호를 직시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건, 너는 월 3회만 그 능력을 쓸 수 있어. 그 이상 사용하면 뇌에 손상이 생긴다. 이준도 그걸 몰랐어. 그래서 죽었어. 너는 그 한계를 기억해야 한다."

이준호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월 3회. 그것이 자신의 한계였다. 그것이 자신의 목숨이었다.

"알겠습니다."

이준호가 겨우 말했다.

"좋아. 그럼 내일부터 시작해. 공식적으로 연구팀에 합류하는 거야."

김정수가 책을 다시 정렬했다.

"그리고 이준호, 한 가지 더."

이준호가 고개를 들었다.

"너의 진단이 맞다는 건 이미 증명됐어. 그 환자가 살아있잖아. 이제 너가 해야 할 일은 그 진단을 반복하는 게 아니야. 그걸 설명하는 거야. 과학으로. 의학으로. 그래야 다음 환자를 살릴 수 있어."

사무실을 나가는 순간, 이준호의 머리는 다시 욱신거리기 시작했다. 뇌 깊숙한 곳에서 뭔가 깨어나고 있는 듯한 통증.

복도를 걸어가면서 이준호는 자신의 손을 봤다. 손끝은 여전히 울리고 있었다.

엘리베이터 앞에서 이화영과 만났다. 그녀는 노트북을 들고 있었다.

"어제 당신의 진단 과정을 분석했어요."

이화영의 목소리는 평소처럼 차분했다.

"신경 영상학적으로 봤을 때, 당신의 뇌는 진단 순간에 특정 패턴을 보여요. 전두엽과 측두엽, 그리고 소뇌가 동시에 활성화돼요. 특히 해마와 시각피질의 활성화 수치가 일반인의 3배 이상이에요."

"그게 뭐라는 건데요?"

"당신의 진단이 단순한 직관이 아니라, 뇌의 특정 메커니즘에 의한 거라는 건 확실해요."

이화영이 노트북 화면을 보였다. 이준호의 뇌 영상이 떴다. 화면 위에는 빨간색으로 표시된 여러 영역이 있었다. 각 영역 옆에는 활성화 수치가 적혀 있었다. 해마 148%, 시각피질 156%, 브로카 영역 132%.

"당신의 능력을 의학적으로 증명할 수 있어요. 그 과정에서 우리는 뇌 가소성의 한계를 새롭게 정의할 수 있을 거고요. 당신의 메커니즘을 이해하면, 다른 환자들도 도울 수 있을 거예요."

이준호는 화면을 바라봤다. 그 안에는 자신이 무엇인지를 설명하는 언어가 있었다. 과학적인 언어. 의학적인 언어. 하지만 동시에 또 다른 감시처럼 느껴졌다. 자신의 뇌가 실험실 위에 펼쳐지는 것 같았다.

"그리고 박재민도 팀에 들어온다고 했어요. 김정수 교수가 직접 말했대요. 내일부터 우리는 공식적으로 희귀질환 임상 연구팀이 돼요. 팀원은 당신, 나, 박재민, 그리고 김정수 교수."

이화영의 말이 이어졌지만, 이준호의 귀에는 들어오지 않았다. 엘리베이터가 내려가면서, 그는 병원 게시판을 다시 봤다. 감사장 옆에는 이제 다른 메모도 붙어 있었다. 박용석 교수의 메모였다.

'의료 윤리 및 절차 준수에 관한 상담 필요. 내과 과장실로 오시기 바랍니다. —박용석 과장'

이준호의 손이 떨렸다. 박용석이 이준호를 부르는 것은 절차 위반에 대한 훈계만을 의미하지 않았다. 그 메모 뒤에는 추적이 있었다. 박용석은 이미 이준호가 단순한 의대생이 아니라는 것을 감지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비정상성을 조사하려고 했다.

엘리베이터가 1층에 도착했다. 문이 열렸다. 이준호는 안내 데스크 쪽으로 걸어갔다. 그 순간, 뒤에서 누군가가 자신의 이름을 불렀다.

"이준호!"

이준호가 돌아섰다. 박용석 과장이 4층 복도에서 내려오고 있었다. 그의 표정은 심각했다. 그의 옆에는 병원 행정팀의 누군가가 있었다. 서류 가방을 들고 있었다.

"잠깐만."

박용석이 이준호에게 다가왔다. 그의 눈은 이준호를 관통하고 있었다.

"너 지금 어디 가?"

"아, 그냥..."

"내과 과장실에 들어와. 이번엔 혼자가 아니라 병원 행정팀이랑 함께 얘기하자."

박용석의 목소리에는 위협이 담겨 있었다. 그것은 단순한 훈계가 아니었다. 조사였다.

"의료 사고 보고서 작성 절차와 학사 징계 규정에 대해 설명할 게 있어서 말이야. 너의 행동이 절차 위반을 넘어서는지, 아니면 의료 과실에 해당하는지 판단해야 해."

이준호의 뇌 뒤쪽에서 다시 욱신거림이 시작되었다. 그것은 단순한 두통이 아니었다. 뇌 안에서 누군가 깨어나려고 몸부림치는 듯한 통증이었다.

이준호는 박용석을 따라 엘리베이터로 향했다. 문이 닫히면서, 그는 자신이 놓인 상황을 명확히 인식했다. 한쪽에는 김정수와 이화영, 박재민이 있었다. 자신의 능력을 증명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 다른 한쪽에는 박용석과 병원 행정팀이 있었다. 자신의 비정상성을 추적하려는 사람들.

그리고 그 사이에서 자신은 월 3회의 능력을 가진 채, 죽음과 생명 사이를 오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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