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심연의 입구는 생각보다 가까웠다.

지하 수로를 따라 내려온 지 2시간. 벽면의 이끼가 더 진해지고, 공기가 더 무거워졌다. 이준호는 박혜진의 손을 놓지 않았다. 손을 놓으면 자신이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를 것 같았다. 방향감각이 아니라 다른 것. 더 근본적인 무언가가 흐릿해지고 있었다.

마모율: 98.7%

협회 추격팀의 발자국이 들렸다. 멀지 않다. 아주 멀지 않다.

"서연주, 우리 뒤를 봐."

유진석의 목소리가 담담했다. 그는 손목의 측정 장비를 들었다. 녹색 불빛이 떨렸다. 이준호의 감정 수치를 나타내는 그래프. 거의 바닥에 닿아 있었다.

서연주가 뒤를 바라봤다. 어둠 속에서 손전등 불빛이 점점 커지고 있었다. 협회 특수부대. 최소 20명은 있어 보였다.

"뛴다!"

김준영이 외쳤다. 그의 목소리에는 에너지가 있었다. 팀을 이끄는 에너지. 이준호를 지키려는 분노. 아직도 살아 있는 분노.

팀이 뛰었다.

박혜진은 이준호의 손을 잡은 채로 그를 끌어당겼다. 그의 다리가 움직였지만, 그것은 기계적이었다. 마치 누군가 그의 몸을 조종하는 것처럼.

"여기야! 여기다!"

서연주가 비명을 질렀다.

거대한 철문이 나타났다. 높이 15미터는 족히 넘어 보였다. 검은 금속. 표면에는 무수한 균열과 긁힘이 새겨져 있었다. 이것이 심연의 입구였다.

그리고 그 앞에 사람들이 있었다.

협회 엘리트 전략팀. 이태현이 맨 앞에 서 있었다. 그의 얼굴은 담담했지만, 눈은 광기로 가득 차 있었다. 옆에는 최소 50명의 무장 요원들이 대기 중이었다.

"지원가 이준호. 항복하거나 죽어라."

이태현의 목소리는 차가웠다. 마치 벌레를 밟을 때의 그 목소리.

김준영이 한 발 앞으로 나섰다. 그의 몸에서 주황색 에너지가 피어올랐다. 폭발 계열 마나. 지금까지 본 것 중 가장 강렬했다.

"꼬마야, 넌 그 정도로 내가 무섭니? 난 이미 이 여자를 직면했어. 내 분노를 직면했어. 이제 난 더 이상 그것을 숨기지 않아."

김준영의 목소리는 떨렸다. 하지만 그것은 두려움 때문이 아니었다. 분노. 순수한 분노였다. 하지만 그것은 파괴적인 분노가 아니었다. 그것은 보호의 분노였다.

"나를 막지 마."

그는 이태현을 향해 달려갔다.

이태현의 손이 들렸다. 협회 요원들이 일제히 움직였다. 마나 공격이 쏟아졌다. 파란 빛. 빨간 빛. 노란 빛. 온갖 색깔의 에너지가 김준영을 향해 날아왔다.

김준영은 그것들을 받아냈다. 주황색 폭발이 공중에서 터졌다. 마나 간의 충돌. 격렬한 빛. 귀를 때리는 굉음.

"박혜진! 지금이야!"

서연주가 외쳤다.

박혜진은 하늘을 향해 손을 펼쳤다. 투명한 방어막이 펼쳐졌다. 그것은 협회 요원들의 공격을 흡수했다. 그녀의 얼굴은 창백했다. 공포로 가득 찬 얼굴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물러서지 않았다.

"서연주!"

유진석이 외쳤다.

서연주가 손을 모았다. 얼음이 형성되기 시작했다. 아름답고도 날카로운 얼음. 그것이 이태현과 협회 요원들을 향해 날아갔다.

이태현은 손가락 하나를 튕겼다. 검은 에너지가 그의 주위에 형성되었다. 얼음은 그것에 부딪혀 부스러졌다. 협회 요원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모두 마나 능력을 가진 자들이었다.

전투는 순식간에 확대되었다.

그 와중에 이준호는 움직이지 않았다. 박혜진이 그의 손을 잡고 있었다. 하지만 그의 손은 차갑고 무거웠다. 살아 있는 손이 아니라 시체의 손처럼.

마모율: 98.1%

유진석이 측정 장비를 들었다. 그래프가 상승하고 있었다. 위쪽으로. 점점 위쪽으로.

"이준호! 버텨!"

유진석이 외쳤지만, 이준호는 반응하지 않았다. 그의 눈은 텅 비어 있었다. 마치 누군가 그의 영혼을 빨아내간 것처럼.

김준영과 협회 요원들의 전투는 계속되고 있었다. 김준영의 분노는 강했다. 그의 폭발 마나는 협회 요원들을 밀어내고 있었다. 하지만 너무 많았다. 50명 대 1명. 그것은 불공정한 싸움이었다.

"이태현! 내가 널 직면할 때까지 나를 방해하지 마!"

김준영이 외쳤다.

이태현이 웃음을 터뜨렸다. 그것은 경멸의 웃음이었다.

"S급 헌터 따위가 감정 증폭자를 지킨다고? 웃기지 말아라. 넌 그 지원가 없이는 아무것도 아니야."

"그래. 맞다. 난 그 사람 없이는 내 진정한 힘을 못 쓴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김준영의 몸에서 폭발이 일어났다. 그것은 제어되지 않은 폭발이 아니었다. 그것은 의도적인 폭발이었다. 자신의 분노를 완전히 통제한 폭발. 협회 요원들이 뒤로 밀려났다.

그 순간, 거대한 철문이 떨렸다.

천천히, 그 안이 밝혀지기 시작했다. 어둠 속에서 뭔가가 깨어나고 있었다. 거대한 에너지. 그것은 마나가 아니었다. 더 근본적인 무언가였다. 감정 그 자체.

분노. 절망. 공포. 욕망. 모든 감정의 집합체.

철문이 더 열렸다. 그 안에서 거대한 형상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감정의 화신…"

유진석이 중얼거렸다.

이태현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그는 이것을 예상하지 못했다. 심연의 보스가 깨어날 줄은.

박혜진이 이준호의 손을 더 강하게 잡았다. 그녀의 손은 떨리고 있었다. 공포로 가득 찬 손.

"이준호…"

그녀의 목소리는 떨렸다.

"제발… 깨어나요. 제발…"

이준호는 반응하지 않았다.

"이준호!"

박혜진이 비명을 질렀다. 눈물이 흘렀다. 그녀의 목소리는 절박했다.

"당신이 없으면 난 죽어도 그 공포에서 못 벗어나요! 당신이 필요해! 당신의 감정이 필요해!"

그 순간, 무언가가 바뀌었다.

이준호의 눈이 미세하게 흔들렸다. 아주 미세한 움직임. 마치 깊은 수면에서 깨어나려는 신체의 반응처럼.

박혜진이 그의 가슴에 자신의 얼굴을 묻었다. 그녀의 울음이 터져나왔다. 강렬한 울음. 진정한 감정. 억누른 감정이 아닌 진정한 감정.

"당신이 필요해! 나한테…!"

그 순간, 거대한 철문이 완전히 열렸다.

심연의 최하층으로 향하는 길이 드러났다. 그곳은 어둠으로 가득 차 있었고, 그 어둠 속에서 수많은 눈들이 이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감정의 화신들. 이준호의 능력과 정확히 일치하는 대상들.

이태현이 후퇴를 지시했다. 협회 요원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것은 그들이 대항할 수 없는 위협이었다.

"가!"

서연주가 외쳤다.

팀이 움직였다. 김준영이 뒤를 봤다. 박혜진이 이준호를 끌어당겼다. 유진석이 측정 장비를 들고 따라갔다.

그들은 심연 속으로 진입했다.

이준호는 그들을 따라갔다. 박혜진의 손을 잡은 채로. 그의 눈은 여전히 텅 비어 있었다. 마치 그 몸을 움직이는 것은 의지가 아닌 습관인 것처럼.

철문이 닫혔다. 꽝.

협회와 심연 사이에 검은 벽이 형성되었다. 이제 돌아갈 길은 없었다. 오직 앞으로만 나아갈 수 있었다.

이준호와 팀은 심연의 최하층으로 내려갔다.

계단은 끝이 없어 보였다. 계속 내려갔다. 더 깊은 어둠 속으로. 더 강한 감정의 중심으로.

박혜진은 여전히 이준호의 손을 놓지 않았다. 손가락을 맞물린 그 손도, 이제는 차갑기만 했다. 시체의 손처럼. 아무 온기도 없는 손.

"이준호…"

박혜진이 속삭였다. 대답은 없었다. 그저 기계적인 발걸음만 계속되었다.

서연주가 앞장섰다. 그녀의 얼음 마나가 계단의 가장자리를 밝혔다. 푸른 빛이 어둠을 가르며 길을 만들었다. 그 빛 속에서 계단의 끝이 보였다.

"여기야."

유진석이 측정 장비를 들었다. 화면에 떠오른 수치는 신뢰할 수 없는 결과를 보여주고 있었다.

마모율: 98.1%

"불가능해…"

유진석의 목소리가 떨렸다. 측정 장비를 다시 확인했다. 같은 수치가 반복되었다.

"이 정도면 뇌사 상태야. 신경 전달이 거의 정지했어야 해."

그런데 이준호는 걸었다. 호흡했다. 박혜진의 손을 잡고 내려갔다. 마치 무언가에 조종당하는 인형처럼.

계단의 끝에서 거대한 공간이 열렸다.

심연의 핵심부.

그곳은 어둠이 아니었다. 그곳은 빛으로 가득 차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태양의 빛이 아니었다. 그것은 감정의 빛이었다. 분노의 붉은색. 절망의 검은색. 공포의 회색. 욕망의 보라색. 모든 감정이 섞여 소용돌이치며 하나의 형상을 이루고 있었다.

감정의 화신.

그것은 인간의 형태를 하고 있지 않았다. 그것은 유동적이었다. 끊임없이 변했다. 때로는 거대한 손이 되었고, 때로는 이빨 가득한 입이 되었고, 때로는 절망의 눈이 되었다. 모든 억눌린 감정의 총합. 인류가 억누르고 살아온 모든 감정의 구현.

"저게…"

김준영이 중얼거렸다. 그의 손에서 열기가 피어올랐다. 폭발의 예감. 하지만 그는 멈췄다. 이것은 자신의 폭발로 상대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었다.

박혜진이 이준호를 뒤로 밀어냈다. 자신을 보호하려는 본능이었다.

"물러나!"

서연주가 외쳤다. 그녀의 손이 얼음을 소환했다. 거대한 얼음 창이 형성되기 시작했다. 계속해서 커져 갔다. 거대한 얼음 기둥. 그것이 감정의 화신을 향해 날아갔다.

얼음 기둥은 화신을 꿰뚫었다.

아니, 통과했다. 마치 실체가 없는 것처럼. 얼음은 벽에 부딪쳤고, 산산조각이 났다.

"안 돼…"

서연주의 목소리가 흔들렸다. 처음이었다. 그녀의 모든 공격이 먹히지 않은 것은.

감정의 화신이 움직였다.

그것은 팀을 향해 다가왔다. 천천히. 마치 사냥꾼이 먹이를 바라보듯이. 그것의 형태가 흔들렸다. 수백 개의 팔이 분열되어 나왔다. 모든 방향에서 팀을 집어삼키려 했다.

그 순간, 이준호가 움직였다.

아무런 표정도 없이. 아무런 감정도 없이. 그저 기계적으로.

그는 박혜진의 손을 놓았다.

"이준호!"

박혜진이 외쳤다. 하지만 이준호는 이미 감정의 화신을 향해 걸어가고 있었다. 한 발, 또 한 발. 멈추지 않고.

"돌아와!"

서연주가 얼음을 더 소환했다. 하지만 그것도 화신의 팔들을 막지 못했다. 팔들이 서연주의 얼음을 관통했다.

이준호가 화신 앞에 섰다.

그들의 눈이 마주쳤다. 아니, 화신은 눈이 여러 개였다. 때로는 한 개였고, 때로는 천 개였다. 모든 감정의 눈. 모든 고통의 눈. 모든 절망의 눈.

그 순간, 이준호의 몸에서 무언가가 흘러나왔다.

감정. 마지막 남은 감정들. 그것이 이준호의 몸을 빠져나가고 있었다. 마치 물이 흘러내리듯이. 마치 생명이 빠져나가듯이.

마모율: 98.7%

상승했다. 역행했다.

"이준호!"

박혜진이 비명을 질렀다. 그녀는 달려갔다. 서연주와 김준영도 따라갔다. 하지만 감정의 화신이 길을 막았다. 그것의 팔들이 수백 개로 분열되어 그들을 집어삼키려 했다.

유진석이 측정 장비를 들었다. 화면에 떠오른 수치는 더 이상 의미를 갖지 못했다.

"이건… 측정 불가능…"

그의 목소리가 무너졌다.

이준호는 여전히 화신 앞에 서 있었다. 그의 눈은 완전히 텅 비어 있었다. 마치 죽은 자의 눈처럼. 마치 영혼이 빠져나간 육체의 눈처럼.

그런데 그 순간.

박혜진이 외쳤다.

"이준호! 제발! 깨어나요!"

그녀의 목소리는 절박했다. 절박함을 넘어 비명에 가까웠다.

"당신이 없으면 난 죽어도 그 공포에서 못 벗어나요! 당신이 필요해! 당신의 감정이 필요해!"

그녀의 눈물이 바닥에 떨어졌다. 떨어진 눈물마다 가슴이 뜯기는 듯한 울음이 터져나왔다.

"당신이 필요해! 나한테…!"

그 순간, 이준호의 눈이 움직였다.

아주 미세한 움직임. 마치 깊은 수면에서 깨어나려는 신체의 반응처럼.

감정의 화신이 멈췄다.

그것은 흔들렸다. 마치 바람에 흔들리는 연기처럼. 마치 불안정한 에너지처럼.

이준호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그의 눈에 무언가가 돌아오고 있었다. 아주 미약한 빛. 그것은 감정이었다. 박혜진을 향한 감정. 필요로 하는 감정. 지켜내려는 감정. 아주 미약하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감정.

마모율: 98.1%

하락했다. 회복이 시작되었다.

"당신…"

이준호의 입에서 소리가 났다. 거의 들리지 않는 음성. 하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목소리.

"당신이… 나를…"

"그래! 그래! 당신이 필요해!"

박혜진이 외쳤다. 그녀는 이제 감정의 화신의 팔들을 헤쳐가며 이준호에게 다가가고 있었다. 서연주와 김준영도 따라갔다. 얼음과 폭발이 화신의 팔들을 산산조각 냈다. 팔들이 부서지고, 다시 형성되고, 또 부서졌다. 팀은 멈추지 않았다.

이준호가 박혜진을 바라봤다.

그의 눈에 감정이 살아나고 있었다. 천천히. 하지만 분명히.

"넌…"

박혜진이 그의 얼굴을 잡았다. 그녀의 손은 따뜻했다. 아주 따뜻했다. 그 온기가 이준호의 차가운 얼굴을 녹이고 있었다.

"당신이 필요해. 당신의 감정이 필요해. 당신의 분노가, 당신의 공포가, 당신의 절망이 필요해. 당신이 필요해!"

마모율: 97.8%

하락했다.

서연주가 다가갔다. 그녀의 목소리는 흔들렸다. 하지만 그 목소리는 단호했다.

"당신이 없으면 난 계속 완벽함만 추구할 거야. 당신이 필요해. 당신의 불완전한 감정이 필요해."

그녀의 손이 이준호의 팔을 잡았다. 차가운 손과 따뜻한 손이 만났다. 마나가 흐르기 시작했다. 서연주의 얼음 마나가 이준호의 몸을 통해 흘렀다. 그것은 차갑지 않았다. 그것은 따뜻한 포옹처럼 느껴졌다.

마모율: 97.3%

김준영이 웃었다. 그것은 비웃음이 아니었다. 그것은 진정한 웃음이었다.

"넌 나를 처음으로 강하게 만들었어. 진정한 강함. 당신이 필요해!"

그의 손이 이준호의 어깨를 잡았다. 주황색 에너지가 흘렀다. 분노의 에너지가 아니었다. 그것은 보호의 에너지였다. 형제애의 에너지였다.

마모율: 96.9%

유진석이 측정 장비를 내려놨다. 그의 목소리는 조용했다. 하지만 그 목소리는 진실로 가득 찼다.

"당신의 능력을 증명할 수 없어. 하지만 당신이 필요해.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무언가가, 당신이 필요해."

그도 이준호에게 다가갔다. 네 명의 손이 이준호를 감싸 안았다. 네 개의 감정이 하나로 모였다.

감정의 화신이 비명을 질렀다.

그것의 울음은 인간의 울음이 아니었다. 그것은 억눌린 감정의 울음이었다. 수천 년을 억눌려온 감정의 비명. 그 비명이 심연 전체를 울렸다.

화신이 흔들렸다. 그것의 형태가 불안정해졌다. 팔들이 흩어졌다. 눈들이 닫혔다.

이준호가 천천히 일어섰다.

그의 눈에는 감정이 가득 차 있었다. 박혜진의 손을 잡고. 서연주의 손을 잡고. 김준영과 유진석의 손을 잡고.

"당신들이…"

이준호의 목소리가 울렸다.

"당신들이 날 필요로 하는구나."

그 순간, 거대한 빛이 터져나왔다.

팀의 손에서 나오는 감정이 하나로 모였다. 개별적인 감정들이. 분노, 공포, 절망, 욕망, 그리고 그 모든 것을 포용하는 사랑이.

네 가지 색깔의 마나가 섞였다. 얼음의 푸른색. 폭발의 주황색. 방어의 투명함. 측정의 녹색 빛. 그것들이 하나의 거대한 광선이 되었다.

감정의 화신이 그 빛에 맞섰다.

하지만 밀려가고 있었다. 천천히. 하지만 분명히.

"당신들이 나를 구했다."

이준호가 중얼거렸다.

마모율: 96.1%

계속 하락했다. 회복이 가속화되었다.

화신이 비명을 질렀다. 그 비명은 점점 작아졌다. 그것이 소산되고 있었다. 아니, 그것이 변형되고 있었다. 그것은 더 이상 감정의 화신이 아니었다. 그것은 감정 그 자체가 되어 가고 있었다. 순수한 감정. 억눌리지 않은 감정. 자유로운 감정.

심연의 벽이 흔들렸다.

그리고 그 순간, 무언가가 깨어났다.

심연의 더 깊은 곳에서.

그것은 화신이 아니었다. 그것은 그보다 훨씬 거대했다. 그것은 감정을 초월한 무언가였다. 감정의 근원. 감정 증폭자들이 끌어내는 능력의 진정한 원천.

심연의 여러 층위 중 가장 깊은 곳에서 더 거대한 그림자가 일어나고 있었다.

그것이 눈을 떴다.

"이건…"

유진석이 중얼거렸다.

"이건 감정이 아니야. 이건…"

그 순간, 모든 것이 어두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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