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 침전의 요리사

침전 밖 복도는 고요했다. 하린의 발걸음은 비틀거렸다. 어제 저녁, 황제 라윤이 마신 국물 냄비를 들고 나오는 길이었다. 손가락이 떨렸다. 왜?

세면실에 들어갔다. 촛불 아래 거울에 비친 얼굴을 바라봤다. 검은 눈, 창백한 광대뼈.

"이하린."

입술을 움직여 이름을 불렀다. 하지만 그 이름은 남의 것처럼 들렸다. 어머니가 부르던 목소리는? 아버지가 웃던 모습은?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았다.

거울에 손을 짚었다. 유리가 차가웠다. 손이 떨렸다.

"이하린... 나는..."

말이 나오지 않았다.

복도에서 발자국 소리가 들렸다. 송미래였다. 친구는 하린의 팔을 붙잡았다.

"너... 뭐 해?"

송미래의 목소리는 떨렸다. 그녀는 하린의 얼굴을 자세히 들여다봤다.

"뭔가 잘못됐어. 너는... 변했어."

하린은 웃음을 지으려 했다. 입 모양만 바뀌었다.

"나는... 괜찮아."

거짓말이었고, 하린은 자신이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하지만 진실이 무엇인지는 모르고 있었다.

송미래는 하린의 양 어깨를 잡았다.

"하린. 정말로. 뭔가 너한테서 사라지고 있어. 너는 자신의 기억을 잃고 있어, 그치?"

하린의 시선이 흔들렸다. 송미래의 얼굴을 봤다. 그 얼굴은 왜 그렇게 슬픈가. 왜 그렇게 걱정하는가.

"나는... 모르겠어."

하린의 목소리는 작았다.

송미래는 하린을 안았다. 하지만 그 품 안의 사람은 이미 누군가가 아니었다.

"기억을 잃어도... 넌 날 기억해줄 거지?"

하린은 친구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송미래의 눈에 맺힌 눈물을 봤다.

"응... 너는 날 기억해줄 거지?"

절박한 목소리였다. 하린은 송미래의 손을 잡았다.

"기억을 잃어도... 당신만은 기억할 거예요."

처음으로 진심이 담긴 말이었다.

---

황후의 거처는 향기로 가득했다. 명주 향, 장미 향, 그 위에 덧씌운 위협의 냄새.

하린은 황후 앞에 앉아있었다. 황후는 침상 위에서 내려다봤다.

"당신의 형, 이준호. 그가 이전에 무엇을 했는지 아십니까?"

황후의 목소리는 부드러웠다. 하지만 그 아래에는 칼이 있었다.

"국고 횡령. 그것이 공식 기록입니다."

"그렇습니다. 하지만 증거는 아직 이 손 안에 있습니다."

황후는 손을 펼쳤다. 흰 손가락이 길었다.

"당신의 가문이 복권되려면, 누군가는 그 죄를 뒤집어써야 합니다. 혹은... 황제 폐하가 특별한 은전을 내려야 하지요."

"네."

하린은 말했다.

"당신은 황제의 침전에 드나듭니다. 황제의 귀에 가장 가까운 사람입니다. 내가 원하는 것은 간단합니다."

황후는 일어났다. 하린의 뒤로 돌아갔다. 하린의 어깨 위에 손을 올렸다.

"황제 폐하의 모든 움직임을 나에게 알려주십시오. 그의 생각, 그의 결정, 그의 약점. 모든 것을."

"그것은..."

"그것을 해주신다면, 당신의 형은 무죄가 될 것이고, 당신의 백작가는 영광을 되찾을 것입니다."

황후의 손이 하린의 머리를 쓸었다. 그 손길은 어머니의 손길처럼 부드러웠다. 하린은 어머니의 얼굴을 기억할 수 없었다.

"그런데... 황제 폐하가 점점 약해지고 있습니다. 당신 때문이지요."

"네?"

하린은 고개를 들었다.

"황제는 당신 없이는 밥을 먹지 않습니다. 당신 없이는 밤을 지낼 수 없습니다. 이것은 황제가 아닙니다. 이것은 중독된 남자입니다."

황후는 하린 앞에 다시 앉았다. 얼굴이 가까워졌다.

"나는 당신에게 특별한 일을 부탁하려고 합니다."

황후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황제 폐하의 음식에 그의 정신을 깨우는 약을 탈 수 있겠습니까? 독이 아닙니다. 단지 그를 정신차리게 해주는 것입니다."

침묵이 흘렀다. 길고 무거운 침묵.

하린의 손이 떨렸다. 가문의 영광, 형의 목숨, 자신의 생명. 모든 것이 이 선택에 달려 있었다. 황후의 눈빛은 타협의 여지가 없었다.

"거절합니다."

하린은 말했다. 목소리는 떨렸지만 확고했다.

"거절이라니요?"

황후의 목소리가 변했다. 부드러움이 사라졌다.

"거절합니다. 황후마마."

"그렇다면 당신의 가문은 영원히 몰락한 집입니다."

황후가 일어섰다. 하린 위에 서서 내려다봤다.

"당신의 형은 반역죄로 처형될 것이고, 당신은 궁에서 나갈 때 시체로 나갈 것입니다."

황후의 목소리는 차가웠다. 하지만 그 차가움 속에는 실제의 위협이 담겨 있었다.

"선택하십시오. 당신의 가문이냐, 당신의 황제냐."

하린은 침묵했다. 가문도 기억나지 않는 것이 되었고, 형의 얼굴도 희미해지고 있었다. 어머니의 목소리는 완전히 사라졌다. 오직 하나만 남아있었다. 라윤이라는 이름. 그리고 그의 목소리. 자신을 필요로 하는 그 목소리.

하린은 황후를 바라봤다. 그 아름답고 차가운 얼굴을.

"황제를 선택합니다."

하린이 말했다.

"황제가 저를 필요로 하기 때문입니다."

황후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분노와 경멸이 섞인 표정이었다.

"그렇다면 당신은 정말로 미쳤습니다. 또는 이미 그의 독에 중독되어 있거나."

황후가 손을 들었다. 시녀들이 들어왔다. 하린을 끌어내기 위해.

"나가십시오."

황후의 목소리는 얼음같았다.

"그리고 기억하십시오. 당신의 선택이 가져올 모든 것을."

---

백의관은 황후의 침실 밖 어둠 속에 서 있었다. 라윤 황제의 지시였다. "하린을 따르라. 그의 모든 움직임을 알아라."

처음에는 위협 탐지였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의미가 바뀌었다. 이것은 보호였다.

황후 앞에서 하린이 거절했을 때, 백의관의 얼굴이 변했다. 그녀는 황제를 배신할 수도 있었다. 쉬웠을 것이다. 가문의 영광, 형의 목숨, 자신의 생명. 모든 것을 잃지 않을 수 있었다. 하지만 하지 않았다.

백의관은 결정했다. 이 여인을 보호해야 한다.

황후가 침실을 나갔다. 백의관은 몸을 굽혀 보이지 않게 했다. 황후가 지나간 후, 백의관은 침실 안으로 들어갔다.

하린은 바닥에 앉아있었다. 손이 떨리고 있었다. 가문의 영구 몰락, 형의 처형 위협, 그리고 자신의 죽음. 모든 것을 감수하고 나서도 떨리는 손을 멈출 수 없었다.

"당신을 따라가겠습니다."

백의관의 목소리였다.

하린은 고개를 들었다. 그 얼굴은 공허했다.

"황제 폐하는 당신을 필요로 합니다. 나는 당신을 보호하겠습니다."

백의관이 한 발 더 가까워졌다.

"황후 마마의 침실에서 나가는 길부터, 황제 폐하의 침전까지. 모든 경로를 감시하겠습니다. 그 누구도 당신에게 해를 끼치지 못하게."

하린은 눈물을 흘렸다. 자신이 왜 우는지는 모르고 있었다. 하지만 그 눈물은 멈추지 않았다.

---

정원은 초여름 밤으로 물들어 있었다. 달이 떠 있었다. 백의관이 정원의 입구에 서 있었다. 아무도 하린에게 접근하지 못하도록.

황태자 라진이 나타났다. 어린 얼굴에 이미 정치가 새겨져 있었다. 백의관을 보고도 멈추지 않았다. 황태자의 권위가 그를 통과시켰다.

하린은 연못 옆에 앉아 있었다.

"이 식관이 도감은 어떻게 지내십니까?"

라진의 목소리는 조숙했다.

하린은 천천히 일어섰다.

"폐하."

절을 했다.

"일어나십시오."

라진은 앉았다. 하린도 그의 맞은편에 앉았다.

"아버지가 약해지고 있습니다."

라진이 말했다.

"그것을 아십니까? 황제가... 점점 약해지고 있습니다."

"감히 그런..."

"당신 때문입니다."

라진의 눈이 차가워졌다. 그 눈은 아버지 라윤의 눈과 같았다.

"당신이 아버지를 약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당신의 음식, 당신의 존재가 황제를 중독시키고 있습니다."

하린의 호흡이 멈췄다.

"국가는 강한 황제를 필요로 합니다. 그리고 강한 황제는 혼자여야 합니다."

라진은 일어섰다. 하린에게 더 가까워졌다.

"만약 아버지가 계속 약해진다면, 나는 황제 자리를 물려받을 수 없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되면 이 나라는 혼란에 빠질 것입니다. 반란, 외침, 기근. 모든 것이."

라진의 목소리는 냉정했지만, 그 안에는 진정한 우려가 있었다.

"그것을 기억하십시오. 당신이 아버지를 약하게 만든다면, 당신은 결국 이 나라를 약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라진이 하린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그것은 위협이자 경고였다.

"그리고 그럴 때, 나는 당신을 제거할 것입니다. 아버지의 사랑이 얼마나 깊든 상관없이."

라진의 손이 하린의 목을 지나갔다. 그 손길에는 암살의 의도가 담겨 있었다.

"이것은 협박이 아닙니다. 이것은 약속입니다."

라진이 사라지고 난 후, 하린은 정원에 혼자 남겨졌다. 달빛 아래서. 목에 남은 라진의 손길의 감각을 지울 수 없었다. 가슴 깊숙이에서 무언가가 부서지는 소리가 들렸다.

백의관이 나타났다.

"정보 차단 명령을 받겠습니다."

백의관이 말했다.

"황태자 폐하의 움직임을 감시하고, 그의 사람들이 당신에게 접근하지 못하도록 하겠습니다."

하린은 백의관을 봤다. 그 얼굴에는 감정이 거의 없어 보였지만, 눈빛만은 달랐다.

"당신을 지키겠습니다. 황제 폐하가 원하는 방식으로."

---

침전으로 돌아갔을 때, 황제는 이미 기다리고 있었다.

"늦었다."

라윤의 목소리는 차가웠다.

"죄송합니다. 폐하."

하린은 절했다.

"어디 갔다?"

"요리를 준비했습니다."

거짓말이었다.

라윤은 하린을 끌어당겼다. 손가락이 하린의 턱을 들었다.

"나를 배신하려는 건 아니지?"

라윤의 눈빛은 날카로웠다. 그 안에는 불안과 의심이 섞여 있었다.

"그렇지 않습니다."

하린은 대답했다.

"나만 봐. 나만 생각해. 다른 것은 모두 잊어버려."

라윤은 하린을 안았다. 강하게. 마치 놓치면 자신도 사라질 것 같은 절박함으로.

하린은 라윤의 품 안에서 자신이 누구인지 생각해보려 했다. 하지만 그 생각도 점점 흐릿해지고 있었다.

오직 하나만 남아있었다. 라윤이라는 이름. 그것도 곧 사라질 것 같았다.

---

정원의 돌계단을 내려가며, 하린은 자신의 손을 봤다. 그 손이 누구의 손인지 생각해보려 했다. 어머니의 손이었나? 아니면 어떤 다른 누군가의?

기억이 없었다. 어머니의 얼굴도, 형의 이름도, 가문의 영광도 모두 사라졌다. 황후의 협박, 라진의 위협, 모든 것이 의미 없어졌다. 기억 속에 남아있지 않으니까.

송미래가 나타났을 때, 하린은 정원 한구석에 앉아 있었다. 달빛이 그의 얼굴을 비추고 있었다.

"하린."

송미래의 목소리는 절박했다.

"뭘 하고 있어? 이렇게 밤중에..."

하린은 고개를 들었다. 송미래의 얼굴을 봤다. 그 얼굴이 누구인지는 알았다. 하지만 왜 그것이 중요했는지는 모르고 있었다.

"송미래?"

이름을 부르는 것이 맞는지도 확실하지 않았다.

"응, 나야. 넌... 뭐가 돼가고 있어?"

송미래가 손을 내밀었다. 하린은 그 손을 잡았다. 따뜻했다. 하지만 그 온기도 기억되지 않을 것 같았다.

"나는... 누구예요?"

하린이 물었다.

송미래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뭐라고?"

"내 이름이... 뭐예요?"

하린은 진지했다. 이것은 시험이 아니었다. 진짜 질문이었다.

"이... 이하린. 넌 이하린이야."

송미래가 대답했다. 목소리가 떨렸다.

하린은 그 이름을 반복해보려 했다. 하지만 그 이름이 자신과 맞지 않는 것처럼 느껴졌다. 마치 남의 옷을 입은 것처럼.

"이하린... 이하린..."

중얼거렸다. 하지만 그 이름은 자신을 호출하지 않았다.

"하린, 뭔가 잘못된 거 아니야? 병원에 가봐야 하는 거 아니야?"

송미래가 팔을 잡았다. 흔들었다.

하린은 송미래를 봤다. 그 눈에는 두려움이 있었다.

"내가... 변했어?"

"응! 넌 완전히 달라졌어. 처음엔 넌... 뭔가 계획이 있는 것처럼 보였어. 뭔가를 지키려는 것처럼. 하지만 지금 넌..."

송미래가 말을 멈췄다.

"지금 난?"

"넌 사라져가고 있어. 조금씩 조금씩. 마치 누군가 너를 지워나가는 것처럼."

송미래의 눈에 눈물이 맺혔다. 하린은 그 눈물을 봤다. 그 절박함을 느꼈다.

"미안해."

하린이 말했다.

"뭐가 미안해? 너 자신이 뭐가 문제인지 알아야지!"

"알아... 하지만..."

하린은 말을 잇지 못했다. 왜냐하면 자신이 뭐가 문제인지도 모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단지 무언가가 자신 안에서 천천히 사라지고 있다는 것만 느낄 수 있었다.

"넌 누구를 지키려고 하는 거야? 정말로?"

송미래가 물었다.

하린은 대답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 대답도 점점 희미해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

침전으로 돌아갈 때, 하린은 거울을 지나쳤다. 거울 속의 얼굴을 봤다. 그것이 자신의 얼굴인지 확실하지 않았다. 이미 자신의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데, 얼굴이 남아있을 이유가 있을까.

라윤은 침대에 앉아 있었다. 촛불이 그의 얼굴을 비추고 있었다.

"왔구나."

라윤이 말했다.

"네, 폐하."

하린이 절했다.

"밤새 어디 다녔다?"

"요리를 준비했습니다."

거짓말이었다. 하지만 진실을 말할 수 없었다.

라윤은 일어섰다. 하린 앞에 섰다.

"나를 보여줘."

"폐하?"

"넌 뭘 생각하고 있어? 내가 넌 알아야 해."

라윤의 손이 하린의 턱을 들었다.

"나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거짓말하지 마. 너는 생각해. 항상."

라윤이 하린의 얼굴을 들었다. 눈을 마주쳤다.

"뭘 생각하고 있어?"

하린은 대답했다.

"내가 누구인지."

라윤의 손이 멈췄다.

"뭐라고?"

"내가 누구인지... 생각하고 있습니다."

하린의 목소리는 공허했다.

라윤은 하린을 안았다. 강하게. 마치 그녀를 놓치면 자신도 사라질 것 같은 절박함으로.

"너는 나의 것이다. 그것만 기억해. 너는 나의 것이고, 나는 너의 것이다."

"네, 폐하."

하린은 라윤의 품 안에서 대답했다. 하지만 그 대답도 자신의 것인지 확실하지 않았다.

라윤은 하린의 머리카락을 쓸어냈다.

"내일도 요리해줄 거지?"

"네."

"그리고 날 떠나지 않을 거지?"

"네."

하린은 대답했다. 하지만 그 '네'는 누구의 대답인지 모르고 있었다.

---

다음날 아침, 하린은 부엌에 있었다. 손이 자동으로 움직였다. 칼을 잡고, 재료를 자르고, 냄비에 담았다. 하지만 손가락이 떨렸다.

송미래가 옆에 서 있었다.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이 국은... 뭐예요?"

하린이 물었다.

"모르겠어?"

송미래가 대답했다.

하린은 고개를 저었다.

"내가 어제... 뭘 만들었는지도... 기억 안 나요."

송미래는 하린을 봤다. 그 얼굴에는 공포가 있었다.

"하린... 이건 정상이 아니야."

"알아요."

하린이 말했다.

"그래도 계속해야 해요."

"왜?"

"왜냐하면..."

하린은 이유를 찾을 수 없었다. 손이 자동으로 움직였다. 마치 누군가 다른 사람이 조종하는 것처럼. 하지만 그것도 이제는 중요하지 않았다.

---

황후의 침실은 화려했다. 비단과 금, 모든 것이 권력의 상징이었다.

하린이 들어갔을 때, 황후는 거울 앞에 앉아 있었다. 시녀들이 그의 머리를 빗고 있었다.

"나가."

황후가 시녀들에게 말했다.

시녀들이 나갔다. 문이 닫혔다.

"당신은 나를 거절했습니다."

황후가 말했다. 거울을 통해.

"황후 폐하."

하린이 절했다.

"독을 타지 않겠다고."

"네."

"왜?"

황후가 돌아섰다. 그 얼굴은 아름다웠지만 차가웠다.

"황제 폐하를 해칠 수 없습니다."

"그렇군요."

황후가 일어섰다. 하린에게 다가갔다.

"그럼 당신의 가문은?"

하린은 대답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자신의 가문이 뭐였는지 기억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백작가, 맞죠? 국고 횡령으로 몰락한?"

"네."

"당신이 황제를 배신하면, 당신의 가문은 영원히 복권될 수 없습니다. 당신의 형은 반역죄로 처형될 것입니다. 당신은 궁에서 나갈 때 시체로 나갈 것이고요."

황후가 하린의 앞에 섰다.

"그것도 괜찮으신가요?"

하린은 황후를 봤다. 그 눈빛을 봤다.

"괜찮습니다."

하린이 대답했다.

"황제가 저를 필요로 하기 때문입니다. 그것만으로 충분합니다."

황후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당신은 미쳤습니다."

"아마도요."

하린이 말했다.

황후는 하린의 얼굴을 오래 봤다. 그리고 깨달았다. 하린은 더 이상 자신의 도구가 될 수 없다는 것을. 이 여인은 이미 누군가 다른 것의 소유물이 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 소유물이 되는 과정 속에서, 자신이 누구였는지를 완전히 잃어버렸다.

"나가십시오."

황후가 말했다.

하린이 돌아서려 할 때, 황후의 목소리가 들렸다.

"당신은 황제를 구하는 게 아닙니다. 황제와 함께 사라지는 것입니다."

하린은 멈췄다.

"그것도... 선택인가요?"

"선택이 뭐가 있습니까? 당신은 이미 선택했습니다. 황제와 함께 사라지기를. 그리고 당신의 백작가? 영원히 몰락할 것입니다. 당신의 형은 처형될 것입니다. 당신은 궁중에서 고립될 것입니다."

황후가 말했다.

"그것이 당신이 선택한 대가입니다."

하린은 대답하지 않았다. 문을 나갔다.

---

정원에 나갔을 때, 하린은 연못 표면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봤다.

그 얼굴이 점점 흐릿해지고 있었다. 마치 물에 녹아드는 잉크처럼.

백의관이 정원의 입구에서 감시하고 있었다. 황태자의 사람들이 접근하려 했지만, 백의관이 막았다. 조용하지만 확실한 방식으로.

황태자 라진이 다시 나타났다.

"당신은 여전히 황제를 약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라진이 말했다.

"그것을 알고 있습니까?"

하린은 라진을 봤다. 그 어린 얼굴 속에 담긴 냉정함을 봤다.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도?"

"그래도... 계속할 겁니다."

하린이 대답했다.

라진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당신은 정말 미쳤습니다. 아버지도 당신 때문에 미쳐가고 있습니다."

라진이 하린에게 더 가까워졌다. 목에 손을 올렸다. 이번엔 더 강하게.

"만약 아버지가 죽는다면, 당신을 죽이겠습니다. 천천히. 고통스럽게."

라진의 목소리는 어린 아이의 목소리가 아니었다. 그것은 미래의 황제의 목소리였다.

백의관이 움직였다. 라진의 손을 걷어냈다. 황태자에게 경배를 하며, 동시에 하린을 보호했다.

"폐하. 이곳은 위험합니다."

백의관이 말했다.

라진은 하린을 한 번 더 봤다. 그리고 떠났다. 하지만 그 위협은 남겨졌다.

하린은 혼자 남겨졌다. 연못 앞에서. 백의관은 여전히 정원의 입구에 서 있었다.

"내가... 누구든지 상관없어요."

하린이 중얼거렸다.

"단지... 남아있고 싶어요. 그 곁에."

---

침전으로 돌아갔을 때, 라윤은 이미 기다리고 있었다.

"왔구나."

라윤이 말했다. 목소리에는 불안감이 있었다.

"네, 폐하."

하린이 절했다.

라윤은 하린을 끌어당겼다.

"넌 나를 떠나지 않을 거지?"

"네."

"절대로?"

"네, 폐하."

하린은 라윤의 품 안에서 대답했다.

라윤은 하린의 머리를 쓸어냈다.

"좋아. 그럼 우리는 영원할 거야."

"네."

하린은 대답했다. 하지만 그것이 누구의 대답인지는 더 이상 중요하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단 하나였다.

남아있는 것. 곁에 있는 것.

그것만이었다.

---

다음날 아침, 하린은 부엌에서 일어났다. 머리가 아팠다. 무언가 중요한 것을 잊어버린 것 같았다. 하지만 그것이 뭐였는지는 기억나지 않았다.

손이 떨렸다. 칼을 집을 수 없었다.

그때, 백의관이 나타났다.

"황제 폐하가 부르십니다."

백의관이 말했다.

하린은 일어섰다. 손이 여전히 떨리고 있었다.

침전으로 가는 복도에서, 하린은 거울을 봤다. 그 얼굴은 더 이상 누구인지 알 수 없었다. 자신의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데, 얼굴이 남아있을 이유가 있을까.

침전에 들어갔을 때, 라윤은 침대에 누워있었다. 눈이 감겨있었다.

하린이 들어갔을 때, 라윤의 눈이 떠졌다.

"와."

라윤이 말했다.

"내일도... 요리해줄 거지?"

하린은 대답해야 했다. 하지만 입을 열었을 때, 자신의 목소리인지 확실하지 않았다.

"네, 폐하."

손이 떨렸다. 라윤은 그 손을 잡았다.

"뭐가 떨려?"

"모르겠습니다."

하린이 말했다.

라윤은 하린의 손을 들었다. 그리고 깨달았다. 이 손이 점점 차가워지고 있다는 것을. 이 여인이 자신에게서 멀어지고 있다는 것을.

"내일도... 요리해줄 거지?"

라윤은 같은 말을 반복했다. 마치 주문처럼. 마치 그 말이 하린을 붙잡아둘 수 있을 것처럼.

하린은 침대 옆에 무릎을 꿇었다. 손이 자동으로 움직였다. 라윤의 얼굴을 만졌다.

"마지막 요리를 준비하고 싶어요."

하린이 말했다.

"마지막?"

라윤의 목소리가 떨렸다.

"네. 가장 특별한 요리를."

하린은 일어섰다. 부엌으로 향했다.

송미래가 부엌에 있었다.

"뭘 만들어?"

송미래가 물었다.

"모르겠어요."

하린이 말했다.

"손이 알아요."

손이 자동으로 움직였다. 재료를 고르고, 칼을 들었다. 하지만 이번엔 달랐다. 손이 점점 느려졌다. 칼을 들 수 없었다.

"하린?"

송미래가 손을 잡았다.

"기억을... 잃어버렸어요."

하린이 말했다.

"뭘?"

"내 이름을... 내 얼굴을... 내가 누구였는지... 내가 왜 여기 있는지..."

하린은 송미래를 봤다.

"하지만 당신은 기억해줄 거죠? 내가 누구였는지?"

송미래는 눈물을 흘렸다.

"응. 난 기억할 거야. 넌 이하린이고, 넌 착했고, 넌 맛있는 요리를 만들었어. 그리고 넌 누군가를 사랑했어. 그것도 절대적인 사랑이었어."

하린은 미소를 지었다.

"그것만으로 충분해요."

손이 다시 움직였다. 이번엔 자신의 손처럼 느껴졌다. 칼이 재료를 가르고, 냄비가 끓어오르고, 향기가 피어올랐다. 마지막 요리. 가장 특별한 맛.

요리하는 동안, 하린의 손가락 하나씩이 기억을 놓아주고 있었다. 어머니의 손. 형의 웃음. 가문의 이름. 자신의 꿈. 모든 것이 그 향기 속에 녹아들었다.

송미래는 그 과정을 지켜봤다. 친구의 손이 만드는 음식을 봤다. 점점 희미해지는 친구의 얼굴을 봤다. 그리고 그 희미함 속에서 무언가 다른 것이 피어오르는 것을 봤다. 순수함. 절대성. 사랑.

"다 됐어."

하린이 말했다.

부엌에서 나왔을 때, 하린의 발걸음은 더 이상 비틀거리지 않았다. 오직 한 방향으로만 향했다.

침전으로.

라윤은 여전히 침대에 누워있었다.

"요리를 준비했습니다."

하린이 말했다.

라윤은 일어났다. 하린을 봤다.

"넌... 뭔가 달라졌어."

"네, 폐하."

"뭐가?"

"모르겠습니다."

하린은 대답했다.

"단지... 이제 남아있을 수 없을 것 같아요."

라윤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뭐라고?"

"미안합니다."

하린은 라윤의 손을 잡았다.

"하지만 이것이... 제 선택입니다."

라윤은 하린의 손을 놓지 않았다.

"내가 뭐를 해줄 수 있어? 넌 나를 떠날 수 없어."

"알아요."

하린이 말했다.

"그래서... 남겨놓고 가요."

"뭘?"

"제 마지막 요리를."

하린은 손을 빼었다. 그릇을 들었다. 따뜻한 국물이 담긴 그릇. 그 안에는 모든 기억이 녹아 있었다.

라윤은 그 요리를 봤다. 향기를 맡았다. 모든 것이 익숙했다. 하지만 이번엔 달랐다. 이것이 마지막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먹어주시겠어요?"

하린이 물었다.

라윤은 숟가락을 들었다. 천천히 국물을 떠먹었다. 그 맛은 모든 기억을 담고 있었다. 처음 만났을 때의 맛, 함께한 모든 날의 맛, 그리고 이별의 맛.

"맛있어."

라윤이 말했다.

"네, 폐하."

하린은 라윤의 곁에 앉았다.

"이제... 기억이 없어요."

하린이 말했다.

"뭘?"

"제 이름을... 제 얼굴을... 제가 누구였는지... 모두."

하린은 라윤을 봤다. 그 눈빛을 마지막으로 봤다.

"하지만 당신은 기억해줄 거죠? 이 맛을?"

라윤은 하린의 손을 잡았다.

"응. 난 기억할 거야. 영원히."

라윤은 국물을 계속 떠먹었다. 한 숟가락, 또 한 숟가락. 마지막 요리를 모두 마실 때까지.

하린은 라윤의 곁에 앉아있었다. 손을 잡고. 점점 희미해지는 자신의 손으로.

"감사합니다."

하린이 속삭였다.

"뭐가?"

라윤이 물었다.

"저를 필요로 해줘서."

하린은 눈을 감았다.

라윤은 하린의 손을 놓지 않았다. 마지막 국물을 마신 후에도.

침전은 조용했다. 촛불만 타고 있었다.

라윤은 하린을 안았다. 강하게. 마치 그녀를 놓치면 자신도 사라질 것 같은 절박함으로.

"넌... 뭐가 되고 있어?"

라윤이 물었다.

"모르겠습니다."

하린이 속삭였다.

"단지... 사라지고 있는 것 같아요."

라윤은 하린을 더 강하게 안았다.

"그럼 나도 따라갈게."

라윤이 말했다.

"그럼 우리는 영원할 거야."

하린은 라윤의 품 안에서 눈을 감았다.

그리고 자신이 누구였는지 완전히 잊었을 때, 라윤의 얼굴에 변화가 일어났다.

그것은 공포였을까. 아니면 깨달음이었을까.

더 이상 중요하지 않았다.

모든 것이 사라지고 있었다.

침전 밖 복도는 고요했다. 백의관이 서 있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단지 지키고 있을 뿐.

황제의 명령은 이미 끝났다.

이제 남은 것은 침묵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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