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 3화

침전의 밤은 고요했다. 하린은 황제의 침상 옆 작은 탁자에 팥죽을 내려놓았다. 어머니가 겨울마다 끓여주던 그것이 아니라, 황제의 어린 시절 궁녀들이 준비했을 법한 단순하고 따뜻한 맛이었다. 라윤은 눈도 뜨지 않은 채 숟가락을 들었다. 한 입, 또 한 입. 음식이 목을 넘어갈 때마다 그의 눈가가 경련을 일으켰다.

"내일도?" 라윤의 목소리는 명령처럼 들렸다.

"네, 폐하."

하린은 대답하면서 자신의 손이 떨리고 있음을 깨달았다. 침전을 나오는 길, 복도의 촛불이 흔들렸다. 아니, 촛불이 아니라 자신의 눈이 흔들리고 있었다.

어머니의 얼굴이 흐릿했다.

손가락이 움직이지 않았다. 오빠는? 오빠의 이름이 뭐였지? 어제 아침에 송미래와 부엌에서 나눈 대화가 있었는데, 그 내용이 무엇이었는지 생각나지 않았다. 머릿속이 둥둥했다.

하린은 부엌으로 가는 복도에서 발을 멈췄다. 손을 가슴에 얹었다. 심장이 너무 빨리 뛰었다. 이건 계획된 것이 아니었다. 가문의 복권, 궁중에서의 지위, 황제의 신뢰—모든 것이 계산 속에 있었는데,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은 그 범위를 벗어나 있었다. 자신이 통제를 완전히 잃었다는 공포가 밀려왔다.

다음 날 아침, 황제는 조정에서 조회를 열었다. 황후 나혜경과 황태자 라진이 참석했다. 라윤은 옥좌에 앉아 신하들의 보고를 받다가 갑자기 말을 끊었다.

"식관 이하린의 요리만 받겠다."

침묵이 흘렀다. 황후의 눈이 일순간 흔들렸다가 다시 차분해졌다. 하지만 그 일순간이 모든 것을 말해주었다. 이것이 단순한 입맛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궁중의 모든 신하들이 깨달았다.

"폐하께서 식관의 요리 수준이 그토록 뛰어나신가요?" 황후의 목소리는 부드러웠다. 너무 부드러워서 위험했다.

"그렇다." 라윤의 대답은 짧았다. "다른 음식은 받지 않겠다."

황태자 라진이 아버지를 바라봤다. 아이의 눈에는 이미 정치의 냉기가 흐르고 있었다. 그는 이 명령의 의미를 이해했다. 황제가 누군가를 독점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조회가 끝나고, 백의관이 하린을 찾아왔다. 하린은 부엌에서 저녁 준비를 하고 있었다. 송미래는 옆에서 채소를 다지고 있었고, 다른 식관들은 각자의 일에 집중하고 있었다. 백의관이 들어오자 모두가 움직임을 멈췄다.

"황제 폐하의 명령이다." 백의관의 목소리는 낮았다. "이제부터 이하린의 요리만 황제 폐하께 올린다. 다른 누구의 음식도 들어서는 안 된다."

"네, 알겠습니다." 하린의 대답은 차분했다. 하지만 마음은 요동쳤다. 이건 승리인가, 아니면 함정인가.

송미래가 하린을 바라봤다. 그 눈에는 걱정이 가득했다. 백의관이 떠난 후, 송미래는 하린에게 가까이 다가왔다. 목소리를 낮췄다.

"하린, 너 요리에 감정을 담고 있지 않아?"

"왜 그러는데?"

"감정을 담은 요리는 요리사를 소모시킨다. 내가 전에 배운 말이 있어. 음식으로 누군가를 변화시키려면, 그 음식에 담긴 의도가 깊을수록 요리사는 더 많이 잃는다고."

하린은 송미래를 바라봤다. 그 얼굴에는 진정한 걱정이 있었다. 순수한 마음이 담긴 표정이었다. 하린은 그런 감정을 오래 본 적이 없었다. 자신이 잃어버린 것들이 뭐였는지 생각해보려 했지만, 기억이 나지 않았다.

"괜찮아. 내 계획이니까."

하린의 대답은 자신감에 가득했다. 하지만 그것은 거짓이었다. 계획은 이미 자신의 손 밖에 있었다.

침전에서 라윤은 하린을 마주할 때마다 이상한 질문들을 했다.

"어제의 요리는 뭐였나?"

"죽이었습니다, 폐하."

"왜 죽이었나?"

하린은 황제를 바라봤다. 그의 눈이 무언가를 갈구하고 있었다. 조종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사실은 갈망이었다.

"폐하께서 어린 시절을 그리워하시는 것 같아서."

라윤의 얼굴이 경직되었다. 그리고 다시 풀렸다. 그는 하린의 손을 잡았다. 그 손길은 따뜻했고, 동시에 차가웠다.

"네 요리는 나를 기억나게 한다. 잊혀진 것들을."

"그것이 폐하를 기쁘게 하는 것이라면, 저는 언제든지."

말을 마치는 순간, 하린의 머리가 지끈거렸다. 어제의 일들이 흐릿해졌다. 아침에 뭘 했더라? 송미래와 뭘 말했더라? 자신의 오빠는 지금 뭐하고 있을까? 그런 생각들이 점점 멀어졌다.

라윤이 하린을 불렀다. 침전의 한구석, 촛불 아래에서.

"다른 누구의 요리도 먹지 않겠다. 오직 너의 것만."

이 말은 사랑이 아니었다. 하린은 그걸 알았다. 이것은 소유였다. 독점이었다. 그 순간, 자신이 통제를 완전히 잃었다는 공포가 하린을 덮었다. 손가락이 움직이지 않았다. 입안의 맛이 사라졌다. 마치 자신의 신체가 천천히 자신에게서 떨어져 나가는 것 같았다.

황후는 자신의 침실에서 하린을 만났다. 그곳에 도달하기까지 하린은 세 번의 복도를 거쳐야 했고, 네 명의 궁녀를 피해야 했다. 황후는 간단한 수프를 마시고 있었다.

"식관 이하린이지?"

"네, 황후 마마."

"내 남편이 너에게만 집착하는군. 흥미롭다."

황후의 목소리는 꿀처럼 달았다. 그 달콤함이 독이라는 것을 하린은 알았다.

"황제 폐하의 입맛에 맞는 음식을 만들 뿐입니다."

"그렇다면 넌 황제 폐하를 어떻게 조종했나?"

질문이 날카로웠다. 하린의 눈이 흔들렸다. 조종. 그 단어가 이제 자신을 가리키고 있었다.

"조종한 것이 아닙니다, 황후 마마. 저는 단지—"

"백작가의 복권을 원하지 않나?"

황후가 손을 들었다. 궁녀가 기록된 서류를 가져왔다. 그것은 이하린의 가문을 다시 세울 수 있는 명령서였다. 황제의 인장이 찍혀 있었다.

"이것을 갖고 싶으면, 황제 폐하를 조종하는 방법을 나에게 가르쳐라. 너의 요리로 어떻게 그렇게 쉽게 그를 움직이는가? 그리고 송미래와는 뭘 나누나?"

황후의 새로운 질문에 하린의 숨이 멎었다. 송미래. 왜 갑자기 송미래를 묻는가?

하린은 서류를 바라봤다. 그리고 황후의 얼굴을 바라봤다. 그 순간, 자신이 반드시 무언가를 놓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황후가 왜 송미래를 묻는지,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자신이 조종하고 있다고 생각했던 것이, 사실은 자신이 조종당하고 있는 건 아닐까?

"송미래는... 저와 함께 일하는 식관입니다."

"그뿐인가? 황제 폐하가 그녀에 대해 뭔가 특별하게 생각하지 않나?"

황후의 질문은 정확했다. 라윤이 송미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하린은 정확히 알지 못했다. 그리고 그것이 자신에게 위협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모르겠습니다, 황후 마마."

"모른다? 그럼 넌 정말로 황제 폐하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군. 그렇다면 넌 그저 황제 폐하의 장난감일 뿐이야."

황후의 말이 하린의 가슴을 철렁하게 했다. 자신이 라윤의 진정한 마음을 모르고 있다는 것. 자신이 단지 그의 일시적 집착의 대상일 수도 있다는 것.

침전으로 돌아가는 길, 하린은 자신의 손을 들었다. 손가락이 떨렸다. 계획이 성공한다고 생각했을 때의 냉정함이 아니라, 무언가가 완전히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의 떨림이었다. 요리 중에 재료의 이름이 떠오르지 않았다. 이건 뭐였지? 손가락이 움직이지 않았다.

라윤이 침전에서 하린을 기다리고 있었다.

"너는 나를 떠날 수 없다."

명령이었다. 하지만 그 명령 속에는 간절함이 있었다.

"네, 폐하."

하린은 대답했다. 그리고 그 순간, 자신이 누구인지, 왜 여기에 있는지, 무엇을 원했는지가 모두 흐릿해지는 것을 느꼈다. 기억들이 하나씩 떨어져 나갔다.

라윤이 하린의 머리를 자신의 가슴에 묻었다.

"다시는 떠나지 않을 거지?"

하린은 대답할 수 없었다. 자신의 목소리가 누구의 목소리인지, 자신이 누구인지 더 이상 확실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침전의 촛불이 흔들렸다. 그것이 현실인지, 아니면 자신의 마음이 흔들리는 것인지, 더 이상 구분할 수 없었다.

황후의 방에서 떨어진 서류는 아직도 탁자 위에 놓여 있었다. 그것은 하린의 가문을 구할 수 있는 종이였다. 하지만 그것을 집어 들 손가락조차, 이제 하린의 것이 아닐지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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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화

황제의 침전에서 나온 하린은 부엌 복도에서 송미래와 마주쳤다. 송미래는 하린의 얼굴을 자세히 들여다봤다.

"하린, 넌 왜 자꾸 멍한 표정을 하니?"

"멍한 표정?"

"어제 너한테 뭘 물었는데 한참을 생각하더라고. 마치 누군가의 목소리를 기억하려는 것처럼."

하린은 어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정확히 기억하지 못했다. 아침이 있었고, 밤이 있었고, 그 사이 뭔가가 있었는데. 그것이 뭐였는지 손가락이 미끄러져 떨어져 나갔다.

"그냥 피곤해."

"요리에 감정을 담으면 요리사가 소모된다고 했잖아. 넌 계속 감정을 담고 있어. 황제 폐하를 위해서라며."

송미래의 목소리에는 진심 어린 걱정이 담겨 있었다. 하린은 그 걱정이 자신에게 향해 있다는 것을 알았지만, 그것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자신은 이런 따뜻한 감정을 받을 자격이 없었다. 적어도 처음에는 그렇게 생각했다.

"난 괜찮아."

"너 진짜 이상해. 요리하는 모습도 달라졌고, 걸어가는 방식도 달라졌어. 마치 누군가에게 조종당하는 것처럼."

조종당한다는 말이 하린의 가슴을 철렁하게 했다. 그건 자신이 최근에 깨달은 것 아닌가. 자신이 조종하려고 했던 것이 사실은 자신이 조종당하고 있는 건 아닐까라는 두려움.

"송미래, 만약에—"

하린이 입을 열다 닫았다. 뭘 물어봐야 할지 몰랐다. 자신이 기억을 잃고 있다는 건 말할 수 없었다. 그렇게 되면 모든 게 드러날 테니까.

"만약에 뭔데?"

"아니, 아무것도 아니야."

하린은 송미래의 눈을 피했다. 그 눈빛에는 자신을 이해하려는 진심이 담겨 있었고, 그런 시선이 더 이상 하린을 불편하게 했다. 왜냐하면 자신은 그런 진심을 받을 자격이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아니, 더 정확하게는 그런 진심을 받을 수 있는 사람으로 남아있을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부엌으로 돌아간 하린은 황제의 점심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손가락이 자동으로 움직였다. 마늘을 다지고, 야채를 썰고, 국물을 끓였다. 하지만 그 과정 속에서 하린은 자신이 뭘 하고 있는지 명확히 알지 못했다. 이것이 계획인지, 아니면 습관인지, 아니면 단순히 명령인지. 재료의 이름들이 자꾸 떠오르지 않았다. 이건 뭐였지? 손가락이 움직이지 않으려 했다.

황제가 하린을 불렀다. 점심시간이 되자 라윤은 항상 하린을 자신의 침전으로 불러들였다.

"요리를 가져와."

말이 아니라 명령이었다. 하린은 대접을 들고 침전으로 들어갔다. 라윤은 침상에 앉아 있었고, 그의 눈은 하린이 들어오는 순간 반짝였다.

"너는 어제 밤 뭘 생각했나?"

"폐하?"

"내가 물었어. 어제 밤 내가 잠이 들기 전에 너는 뭘 생각했나?"

하린은 어제 밤을 기억하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그 기억은 물처럼 손가락 사이로 흘러내렸다.

"저는... 기억하지 못합니다."

라윤의 얼굴이 굳었다. 그의 눈빛이 차가워졌다. 마치 하린이 무언가 끔찍한 배신을 한 것처럼.

"넌 나와 있던 시간을 잊었다는 건가?"

"그게 아니라—"

하린은 설명하려고 했지만,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몰랐다. 자신이 기억을 잃고 있다는 건 말할 수 없었다. 그렇게 되면 라윤이 자신을 더 이상 필요로 하지 않을 수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니, 그것보다 더 정확하게는 라윤이 자신을 더욱 철저히 감시하고 통제할 것이기 때문이었다.

라윤이 하린의 손을 잡았다. 그의 손은 따뜻했고, 그의 터치는 지배적이었다.

"다른 누구와도 얘기하지 마. 오직 나하고만 있어."

"네, 폐하."

"너의 시간은 모두 나의 것이야. 너의 생각도, 너의 감정도, 너의 기억도."

라윤의 목소리에는 소유욕이 담겨 있었다. 하지만 그 소유욕 아래에는 뭔가 다른 감정이 흐르고 있었다. 두려움? 아니면 절망? 그는 자신의 것을 완전히 소유하지 못할까봐 두려워하고 있었다.

하린은 라윤의 손을 바라봤다. 그 손은 통치자의 손이었다. 수백만 명의 생명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손. 하지만 지금 그 손은 자신을 놓지 않으려고 떨고 있었다.

"폐하, 저는 당신을 떠나지 않습니다."

말이 나왔다. 하린 자신도 놀랐다. 그건 거짓말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자신이 어떤 계획을 세웠든, 자신이 무엇을 원했든, 지금 이 순간 자신은 정말로 라윤의 곁에 있고 싶었다. 그것이 공포인지 사랑인지, 더 이상 구분할 수 없었다.

라윤이 하린의 얼굴을 들어올렸다. 그의 검은 눈빛이 하린의 눈을 들여다봤다. 마치 자신의 영혼을 읽으려는 것처럼.

"너는 내 것이다. 영원히."

이 말이 사랑인지 아니면 감금인지, 하린은 더 이상 구분할 수 없었다. 그리고 그것이 더 이상 중요하지 않았다.

황후의 침실은 궁중에서 가장 호화로운 공간이었다. 금실로 수놓인 벽, 옥으로 만든 장식품, 진주로 장식된 거울. 하린이 그곳에 들어갔을 때, 황후는 거울 앞에 앉아 있었다.

"황제가 너에게 집착하는 것 같더라. 너는 그를 어떻게 했나?"

황후의 목소리는 부드러웠지만, 그 아래에는 강철 같은 의지가 숨어 있었다.

"특별히 한 게 없습니다. 그냥 황제 폐하께서 원하는 음식을 만들었을 뿐입니다."

"음식만으로? 내 남편이 1년을 음식을 거절했던 사람이, 너의 음식만으로 그렇게 변할 리가 없지."

황후는 거울 속 자신의 얼굴을 바라봤다. 그 얼굴은 아름다웠지만, 차가웠다.

"백작가의 복권을 원하지 않나?"

황후가 손을 들었다. 궁녀가 문서를 가져왔다. 그것은 이하린의 가문을 다시 세울 수 있는 황제의 명령서였다. 하지만 하린은 그것을 보며 뭔가 이상하다고 느꼈다. 그 문서는 너무나 깨끗했고, 너무나 완벽했다. 마치 미리부터 준비되어 있었던 것처럼.

"이것을 갖고 싶으면, 황제 폐하를 조종하는 방법을 나에게 가르쳐라. 그리고 송미래와는 뭘 나누나?"

황후의 새로운 질문이 하린을 멈추게 했다. 송미래. 그건 왜 갑자기?

하린의 침묵 속에서 황후는 계속 말했다.

"황제 폐하가 1년을 음식을 거절한 이유가 뭔지 알아? 누군가를 기다렸기 때문이야. 그리고 그 누군가는 너가 아니었어. 너는 그저 그 누군가의 흔적을 담은 음식을 만들었을 뿐이야. 그렇지 않나?"

하린의 가슴이 철렁했다. 자신이 라윤의 진정한 대상이 아니었을 수도 있다는 생각. 자신이 단지 누군가를 대체하는 존재일 수도 있다는 공포.

"조종이 아닙니다."

"그럼 뭔데?"

황후가 거울에서 눈을 돌려 하린을 바라봤다. 그 눈빛은 예리했다.

"그냥... 그를 이해하려고 노력했을 뿐입니다."

"이해? 너는 폐하를 이해하려고 노력했다고? 내가 15년을 함께 있으면서도 그를 이해하지 못했는데?"

황후가 웃음을 터뜨렸다. 그 웃음은 아름다웠지만 차가웠다.

"좋아. 그럼 다르게 물어보지. 황제가 너에게 뭘 원하는가? 정확히 말해봐."

하린은 입을 열었다 닫았다.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자신도 모르고 있었다. 라윤이 자신에게 원하는 것이 뭔지, 정말로 모르고 있었다. 자신이 그를 사랑한다고 생각했지만, 그것이 그의 진정한 욕망을 채워주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그건... 저도 모릅니다."

"그게 바로 너의 약점이야. 너는 상대방이 뭘 원하는지도 모르면서, 어떻게 그를 조종한다고 생각했나? 넌 조종당하고 있는 거야. 그리고 넌 그걸 모르고 있다."

하린의 가슴이 철렁했다. 황후의 말이 정확히 자신의 두려움을 맞췄다. 자신이 조종하고 있다고 생각했던 것이, 사실은 자신이 조종당하고 있는 건 아닐까. 그리고 더 끔찍한 것은, 자신이 그것을 모르고 있다는 것이었다.

황후는 하린을 바라봤다. 그 시선 속에는 정치적 계산이 가득했다. 라윤의 집착으로 인해 궁중의 파벌 구도가 흔들리고 있었다. 황태자의 입지가 약해지고 있었다. 그리고 이 여인이 그 모든 것의 중심이었다. 황후는 이 여인을 자신의 손 안에 가두고, 라윤의 집착을 조종함으로써 궁중의 균형을 다시 맞출 계획이었다.

"백작가의 복권은 기한이 없다. 하지만 너는 시간이 없어 보인다. 빨리 결정해라."

황후가 손짓했다. 궁녀가 하린을 밀어냈다. 하린은 침실에서 나왔고, 복도를 걸어갔다. 하지만 자신이 어디로 가야 하는지 더 이상 알지 못했다.

부엌으로 돌아가야 하나? 아니면 침전으로 가야 하나? 아니면 자신의 방으로 가야 하나? 자신은 어디에 속하는가?

하린은 복도에 멈춰 섰다. 그리고 자신의 손을 들어 바라봤다. 손가락이 여전히 떨리고 있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공포 때문이 아니었다. 이번에는 자신이 누구인지 모르기 때문이었다. 자신의 이름을 불러보려 했지만, 그것도 낯설었다.

라윤이 침전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하린이 들어가자 그는 일어났다.

"너는 황후를 만났지?"

"네, 폐하."

"뭘 말했나?"

"가문의 복권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라윤이 하린의 팔을 잡았다. 그의 손가락이 팔의 피부에 깊이 파고들었다.

"그리고?"

"그것을 원한다면, 당신을 조종하는 방법을 알려달라고 했습니다."

침전이 조용해졌다. 라윤의 호흡이 차가워졌다. 그의 눈빛이 변했다. 상처와 분노가 뒤섞여 있었다.

"너는 날 조종했나?"

하린이 라윤의 눈을 바라봤다. 그 눈 속에는 상처가 있었다. 깊고, 오래되고, 절대 아물지 않을 상처. 누군가를 완전히 소유하고 싶었던 욕망이 만든 상처.

"아니, 폐하. 저는 당신을 조종하지 않았습니다."

"그럼 뭘 했나?"

"저는... 당신을 사랑했습니다."

말이 나왔다. 하린 자신도 놀랐다. 그건 거짓말이 아니었다. 언제부터인지 모르지만, 자신은 이 사람을 사랑하고 있었다. 계획도, 목표도, 모든 것을 잃으면서까지.

라윤이 하린을 자신의 가슴에 안았다. 그의 팔이 하린을 옭아졌다.

"다시는 나를 떠나지 않을 거지?"

"네, 폐하."

하린이 대답했다. 그리고 그 순간, 자신의 이름이 더욱 멀어지는 것을 느꼈다. 이하린. 누구인가? 그건 뭐였지? 그렇게 모든 게 흐릿해져 갔다.

라윤이 하린의 머리를 쓸어내렸다.

"내 것이야. 영원히."

침전의 촛불이 흔들렸다. 하린은 라윤의 품에 안겨 눈을 감았다. 그리고 자신이 누구인지, 왜 여기에 있는지, 무엇을 원했는지를 완전히 잊어버리는 순간, 처음으로 평온함을 느꼈다.

하지만 그 평온함은 진짜가 아니었다. 그것은 자신이 천천히 사라져가는 동안의 평온함이었다.

백의관이 침전의 복도에서 하린이 나오는 것을 봤다. 그녀의 얼굴은 공허했다. 마치 누군가가 자신의 안을 모두 파내간 것처럼. 백의관은 하린을 바라봤다. 그리고 처음으로 이 여인이 황제의 위협이 아니라, 황제의 파멸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다.

황제의 이 집착이 계속되면 궁중의 파벌 구도가 무너질 것이었다. 황후와 황태자의 입지가 약해질 것이었다. 북궁파의 권력이 흔들릴 것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곧 제국 전체의 불안정으로 이어질 것이었다.

백의관은 라윤의 기억 소실 여부를 감지했다. 라윤이 하린에게만 집착하는 것이 단순한 욕망이 아니라, 누군가를 기다렸던 오래된 상처에서 비롯된 것임을 깨달았다. 그리고 하린이 그 상처를 자극하고 있으며, 라윤이 그것을 알면서도 멈추지 않고 있다는 것을 이해했다.

백의관은 침전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라윤의 측근 신하들을 찾아갔다. 조용하지만 명확한 경고를 전했다.

"황제 폐하께서 비정상적 집착을 보이고 있다. 식관을 통한 궁중의 파벌 약화를 우려한다. 대책이 필요하다."

그의 입장은 변하고 있었다. 라윤의 광기가 북궁파 전체를 위협하고 있다는 판단이 섰기 때문이었다.

송미래가 부엌에서 하린을 기다렸다. 하린이 돌아오자 송미래는 그녀의 손을 잡았다.

"하린, 넌 지금 뭘 하고 있는 거니?"

하린은 대답할 수 없었다. 자신이 뭘 하고 있는지 모르기 때문이었다. 자신이 뭘 원하는지도 모르고 있었다. 자신이 누구인지도 모르고 있었다.

송미래의 손을 느끼면서, 하린은 무언가를 거절해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이 따뜻함을 거절하고, 라윤의 곁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손가락이 움직이지 않았다. 말이 나오지 않았다.

황후는 탁자 위의 명령서를 다시 들었다. 그리고 미소를 지었다. 계획은 진행 중이었다. 하린은 이미 자신의 손 안에 있었다. 라윤의 집착은 궁중의 균형을 흔들기 시작했다. 황태자의 입지는 약해지고 있었다. 이 모든 것이 계산된 것이었다. 이 여인을 통해 황제를 조종하고, 궁중의 파벌을 재편하려는 계획이.

그러나 황후는 아직 모르고 있었다. 라윤이 하린에게 보이는 집착이 얼마나 깊고, 얼마나 위험한지를. 그리고 그것이 자신의 계획을 완전히 뒤흔들 수도 있다는 것을.

라윤은 침상에 누워 천장을 바라봤다. 그의 손은 여전히 하린이 떠난 자리를 만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는 생각했다. 자신이 이 여인을 완전히 소유할 수 있다면, 자신은 절대로 혼자가 아닐 것이라고. 누군가를 완전히 소유한다면, 그들은 절대로 떠나지 않을 것이라고.

하지만 그 소유의 대가가 뭔지, 그는 아직 모르고 있었다.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을 천천히 잃어버리는 것이 그 대가라는 것을.

황태자 라진은 아버지의 침전 밖에서 기다렸다. 그의 얼굴에는 어린 나이에 어울리지 않는 냉정함이 흐르고 있었다. 아버지의 광기가 제국을 위협하고 있다는 것을 이미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할지도.

하린은 여전히 송미래의 손을 잡고 있었다. 그 손길은 따뜻했고, 자신을 현실로 묶어두려 했다. 하지만 자신은 이미 어딘가로 떠나가고 있었다. 라윤의 소유욕이 만든 그 깊은 어둠 속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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