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문
손가락 끝이 경련했다. 마치 어떤 전율이 신경을 타고 흐르는 것 같은 느낌. 하린은 손을 멈추고 그것을 바라봤다. 가늘고 창백한 손가락들. 요리사의 손이었다. 그런데 지금 그 손에 흐르는 것은 무엇인가?
궁중 기록실의 습기 찬 공기가 하린의 코끝을 간질였다. 촛불을 높이 들고 서가를 훑는 손가락이 떨렸다. 손가락 끝의 경련이 시작된 지 사흘째였다.
라윤이 특정 요리사의 음식만 받겠다고 선언한 지 사흘째. 그 냉정한 황제가 한 끼의 팬케이크에 눈을 감고 있던 모습이 계속 떠올랐다. 계산이었다. 분명 계산이어야 했다. 황제의 외로움을 이용하면, 자신의 위치를 공고히 할 수 있을 것이었다.
"뭐 하는 거예요?"
하린의 손이 얼어붙었다. 뒤돌아보니 구식관 이노인이 서 있었다. 회색 수염이 턱 아래로 길게 내려온 노인은 평소 기록실 관리를 맡았으며, 하린 같은 아래 신분이 이곳에 들어오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제가... 황제 폐하의 식습관 기록을 찾고 있었습니다."
"식습관?" 이노인의 눈이 가늘어졌다. "식관이 왜 기록실에 들어와서 황제의 사적인 기록을 뒤지는가?"
"황제 폐하께서 특정 음식을 거부하시는 이유를 파악하려면, 어린 시절의 식습관을 알아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하린의 목소리는 부드러웠지만, 마음은 급했다. "요리를 더 정교하게 준비하기 위해서입니다."
이노인은 하린을 한참 바라봤다. 기록실의 촛불이 흔들렸다.
"너는 처음이지?" 이노인이 물었다.
"네?"
"황제 폐하의 유년 기록을 들여다보는 것이 처음이라는 뜻이다."
하린은 대답하지 않았다.
이노인은 한숨을 쉬었다. "나도 이 일을 오래했지만, 그 아이의 기록은 읽기가 힘들었다. 황궁의 정치 싸움 속에서 자란 아이 치고는 너무나 외로웠다. 식사 기록만 보면... 누군가는 충분히 먹였지만, 누군가는 그를 진정으로 돌본 사람이 없었다는 걸 알 수 있지."
하린의 손가락이 다시 움직였다. 이노인은 제지하지 않았다. 그 외로움을 이용하면 황제를 얼마든지 조종할 수 있을 것이었다.
황태자 라윤의 기록은 메마른 문장들로 가득했다. 『아침 시간에 죽을 섭취. 어머니 전 황후께서 직접 끓인 것. 황태자가 모두 섭취.』 『오후 시간에 국을 섭취. 식관이 준비한 것. 황태자가 절반만 섭취.』 기록이 거듭될수록 패턴이 명확해졌다. 어머니가 만든 것은 모두 먹었다. 다른 이가 만든 것은 거의 입에 대지 않았다.
그런데 기록이 진행될수록 변했다.
『황태자가 식사를 거절함. 심신의 불안정으로 인한 것으로 추정.』 『전 황후께서 황궁의 내분으로 인해 폐위됨. 황태자의 식사량 급감.』 『황태자, 일주일간 어떤 음식도 섭취하지 않음.』
"이제 충분한가?" 이노인이 물었다.
하린은 고개를 끄덕였다. 기록을 제자리에 돌려놓으며 한 가지 더 물었다.
"황제 폐하께서 지금도 죽을 드시나요?"
이노인은 웃음을 흘렸다. "그걸 모르나? 황제 폐하는 1년이 넘도록 어떤 음식도 제대로 받아드리지 않으셨다. 죽이든 국이든 상관없이. 너를 제외하고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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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관 숙소로 돌아온 하린은 송미래를 찾지 못했다. 밤 늦게 보급 창고로 가 몰래 재료를 챙겼다. 쌀, 물, 소금. 단순했다. 어머니가 만들어주던 것처럼 단순해야 했다.
새벽 네 시경, 죽이 완성됐다. 도자기 그릇에 담긴 그것은 흰색이었고, 아주 단순했다. 소금 향이 옅게 풍겼다. 하린은 그릇을 들었다. 온기가 손바닥을 적셨다.
침전으로 가는 길은 금지된 구역이었다. 하린이 이곳에 들어올 수 있었던 것은 황제의 명령 때문이었다. 어둠 속에서 벽을 짚으며 걸어갔다. 양쪽으로 심문관들의 금빛 갑옷이 서 있었지만, 누구도 하린을 막지 않았다.
침전의 문 앞에서 백의관이 나타났다. 창백한 얼굴, 검은 관복, 그리고 하린을 향한 불안한 시선.
"식관이... 이 시간에?" 백의관의 목소리는 낮았다.
"황제 폐하께서 새벽에 드실 음식입니다."
백의관은 하린의 얼굴을 오래 봤다. 하린은 정면으로 그를 마주쳤다. 둘 사이의 공기가 팽팽해졌다.
'이 남자가 나를 막을까?'
하린의 심장이 빨라졌다. 손에 든 그릇이 흔들렸다. 죽이 미세하게 출렁였다.
백의관은 천천히 몸을 옆으로 물렸다. "황제 폐하께서 계속 깨어 계신 상태입니다. 음식을 원하신다고 하셨습니다."
하린은 고개를 끄덕이고 침전으로 들어갔다. 문이 닫혔다.
침전의 내부는 생각했던 것보다 더 크고 더 찬 곳이었다. 황제는 침대 곁의 창문 너머를 바라보고 있었다. 창밖은 여전히 밤이었다.
"폐하."
라윤이 돌아봤다. 그의 눈이 하린의 얼굴에서 그릇으로 내려갔다.
"드시겠습니까?"
황제는 대답하지 않고 하린에게 다가왔다. 그릇이 하린의 손에서 그의 손으로 옮겨졌다. 그릇의 온기가 황제의 손가락을 감쌌다.
라윤은 숟가락을 집고 죽을 떠서 입에 넣었다.
그 순간, 황제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눈이 감겼다. 입술이 떨렸다. 눈물이 흘렀다. 마치 오랫동안 억눌려 있던 감정이 한 끼의 음식으로 터져 나오는 것 같았다.
하린의 손가락이 경련했다.
'이게 능력이다.'
하린은 알았다. 이 순간, 자신이 한 것이 무엇인지를. 황제의 가장 그리워하던 기억. 어머니의 손길이 담긴 죽의 맛. 그것이 황제의 입 안에서 폭발했다.
그런데 동시에, 하린의 머리에 무언가가 흐릿해졌다.
어머니의 목소리가 끊겼다. 자신을 부르던 그 음성이 갑자기 들리지 않았다. 마치 누군가가 그 기억만 정교하게 빼내간 것처럼.
황제가 하린의 팔을 집었다. 눈을 뜨지 않은 채로.
"다시... 줄 수 있나?"
목소리가 떨렸다.
하린은 손가락을 보았다. 여전히 경련하고 있었다. 손끝에서 자신의 무언가가 흘러나가는 느낌. 기억. 정체성. 그것이 음식으로 변해 황제의 입 안으로 흘러들어갔다.
그리고 돌아올 수 없었다.
하린은 입을 열었다. 대답하려 했다. 하지만 그 순간, 자신이 누구인지 잊을 듯한 공포가 몸을 사로잡았다. 손가락이 더 심하게 떨렸다. 아버지의 얼굴도, 언니의 웃음도—모두 멀어지고 있었다.
황제의 팔이 더 강하게 조였다.
"안 돼."
라윤의 눈이 떠졌다. 검은 눈동자 속에는 처음 본 감정이 있었다. 절망. 아니, 그보다 강한 것. 소유욕. 집착.
"너는 내 것이다."
하린의 입에서 대사가 나올 수 없었다. 자신의 기억이 계속 사라지고 있었으니까.
침전 안, 하린은 황제의 팔 안에서 자신의 기억들이 하나씩 사라지는 것을 느꼈다. 그 과정이 고통스러웠다. 하지만 더 고통스러운 것은 이 고통이 계속되기를 바라는 자신의 마음이었다.
왜냐하면 고통이 멈추면, 황제가 자신을 놓을 것 같았으니까.
라윤의 팔이 하린을 감싸고 있었다. 하린은 여전히 손가락의 경련을 멈출 수 없었다. 그 경련 속에서 또 다른 것이 사라져가고 있었다.
"내일도?"
황제의 목소리는 명령이 아니었다. 간청이었다. 이것이 하린이 처음 본 라윤의 진정한 목소리였다. 억압된 감정이 터져 나오는 소리. 누군가를 잃을까봐 두려워하는 소리. 그 목소리 속에는 약함이 있었고, 그 약함은 궁중에서 가장 치명적인 것이었다.
하린은 고개를 들었다. 황제의 얼굴이 자신의 얼굴에 가까웠다. 검은 눈동자가 자신을 놓지 않으려는 듯 빛났다. 마치 하린이 사라질까봐 두려운 것처럼.
"폐하..."
"이름을 부르지 마."
라윤이 말했다.
"내 이름 대신 다시 해주면 된다. 그 맛. 그 감각. 다시."
하린의 입술이 움직였다. 그리고 나온 말은 자신의 선택이었다.
"네. 내일도 하겠습니다."
라윤의 팔이 더 강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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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이 물러나고 아침 해가 떴다. 하린은 황제의 침전을 나가야 했다. 궁중의 규칙상, 황제의 침전에서 밤을 지낸 여인이 아침에 나오는 것이 드러나면 안 되었다. 그것이 왕실의 명예였다.
하린은 손으로 자신의 팔을 감쌌다. 황제의 팔이 있던 자리에 남겨진 온기를 붙잡으려는 듯.
라윤이 하린을 보며 말했다.
"저녁에 다시 올 것이다."
그것은 질문이 아니었다. 명령이었다. 하지만 그 명령 속에는 두려움이 스며있었다. 자신을 놓지 말아달라는 간청.
하린은 고개를 끄덕였다. 침전을 나갔다. 복도는 밝았다. 백의관이 서 있지 않았다. 그 대신 시종이 나타나 하린을 부엌으로 안내했다.
부엌에 들어서는 순간, 송미래가 하린을 잡았다.
"너... 어디 다녀온 거야?"
하린의 얼굴을 보며 송미래의 눈이 넓어졌다. 하린의 목에는 선명한 자국이 있었다. 황제의 손가락이 남긴 자국.
"몰라도 된다."
하린이 말했다. 그 말은 송미래에게가 아니었다. 자신에게 하는 말이었다.
송미래가 하린의 팔을 더 강하게 잡았다.
"하린, 뭔가 이상해. 너 어제랑 달라졌어. 눈빛이 달라."
하린의 눈이 송미래를 향했다. 그 눈에는 공포가 있었다. 자신이 사라져가고 있다는 공포. 그리고 그것을 멈추고 싶지 않다는 더 깊은 공포.
"미각감응이 뭐야?"
하린이 갑자기 물었다. 송미래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어... 어떻게 그 말을..."
"말해."
하린의 목소리는 차가웠다. 송미래는 하린의 눈을 보고 입을 다물었다. 그 눈은 어제의 하린이 아니었다. 무언가가 그 안에서 사라져가고 있었다.
송미래는 한숨을 쉬었다. 더 이상 숨길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미각감응은... 음식으로 상대의 기억을 건드리는 능력이야. 대가는... 사용자의 가장 소중한 기억이 사라진다는 거지. 그래서 금지된 거고, 그래서 위험한 거야."
송미래의 목소리는 떨렸다. "너... 혹시 너한테도...?"
하린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자신의 손을 보았다. 손가락이 여전히 경련하고 있었다. 그 경련 속에서 또 다른 기억이 준비되고 있었다. 다음 저녁을 위한 기억.
"하린, 이건 중독이야. 능력을 쓸수록 너는 사라져. 자각해야 해. 지금이라도 멈춰야 해!"
송미래의 목소리가 커졌다. 하지만 하린은 그 말을 듣지 않았다. 아니, 들었지만 그것이 자신을 멈추게 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왜냐하면 멈추는 순간, 황제가 자신을 놓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하린은 냄비를 집었다. 그리고 다시 요리를 시작했다. 이번에는 황제의 또 다른 상처를 담기 위해. 그리고 자신의 또 다른 기억을 바꾸기 위해.
송미래는 하린의 뒤에서 무언가를 더 말하려 했지만, 결국 입을 다물었다. 이미 늦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미각감응의 중독은 돌이킬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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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이 지나가고, 다시 저녁이 되었다. 하린은 부엌에서 나왔다. 손에는 새로운 요리가 들려있었다. 어제보다 조금 더 복잡한 맛. 황제의 어린 시절에서 한 단계 더 깊은 기억을 담은 것이었다.
궁전의 복도는 조용했다. 하린이 황제의 침전으로 향하는 동안, 손가락은 여전히 경련하고 있었다. 그 경련 속에서 또 다른 기억이 준비되고 있었다. 아버지의 목소리. 언니의 웃음. 모두 차례대로 사라질 준비가 되어 있었다.
라윤이 하린을 보며 돌아섰다.
"너를 기다렸다."
그 말이 끝나기 전에, 하린은 이미 손에 든 그릇을 황제에게 건네고 있었다. 새로운 요리. 새로운 기억. 새로운 대가.
황제는 그 그릇을 받았다. 그리고 한 숟가락을 떠서 입에 넣었다.
그 순간, 또 다른 기억이 황제의 얼굴을 파고들었다. 눈이 감겼다. 입술이 떨렸다. 눈물이 흘렀다.
하린의 손가락이 다시 경련했다.
'내가 무엇을 잃고 있는가?'
하린은 생각했다. 하지만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은 계속 흐릿해져만 갔다. 이번에는 아버지의 얼굴이 사라져가고 있었다. 눈썹의 모양, 입가의 주름, 웃을 때의 표정—모두 안개 속으로 밀려났다. 그 자리에 남은 것은 오직 황제의 손길뿐이었다.
황제가 하린의 팔을 집었다.
"내일도?"
"네, 폐하."
하린이 대답했다.
그리고 그 순간, 하린은 깨달았다. 자신이 더 이상 계산하고 있지 않다는 것을. 자신이 더 이상 계획하고 있지 않다는 것을.
자신은 단지 황제의 팔 안에서 자신의 기억들을 바꾸고 있을 뿐이었다.
그것이 선택인지, 중독인지는 더 이상 중요하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내일 밤, 그 다음 밤, 그 다음다음 밤에도 황제가 자신을 원할 것이라는 확신뿐이었다. 그리고 그 확신 속에서만 자신이 존재한다는 것.
침전의 촛불이 흔들렸다. 그 흔들림 속에서 하린의 실루엣이 점점 작아져간다.
황제는 하린이 자신을 놓지 않기를 바라고, 하린은 자신을 놓지 않기 위해 계속 요리할 것이다.
그 과정 속에서, 하린이라는 존재는 천천히 사라져갈 것이다.
하지만 하린은 그것을 선택했다.
왜냐하면 황제만이 자신을 기억해줄 것이라는 약속이, 자신의 존재 자체를 포기하는 것보다 더 큰 위로였으니까.
그리고 그 약속이 거짓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하린은 계속 요리할 것이다.
내일 밤도. 그 다음 밤도.
새로운 기억을 담은 요리로, 자신의 또 다른 기억을 바꾸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