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 후원(後苑)의 정문

후원의 정문을 밟는 순간, 이하린의 숨이 멎었다.

돌담 위로 피어난 목련 가지들이 춥고 고요한 바람에 흔들렸다. 지난 3년간 그 어떤 궁전 정원도 본 적 없었다. 아버지가 옥에 갇히고, 어머니가 시름시름 앓다 떠난 그 이후, 그녀의 세상은 월셋방 한 칸으로 축소되었다. 가문은 국고 횡령의 누명을 썼고, 백작가의 이름은 궁중 귀족들의 조롱거리가 되었다.

"이곳이 식관의 영역입니다."

안내하는 관리의 목소리는 멀게 들렸다. 하린은 자신의 손을 내려다봤다. 흙처럼 거친 손. 최근 3년간 요리 재료를 다루며 생긴 상처들이 손가락마다 박혀 있었다. 궁중 식관 시험에 합격하기 위해 하루에 14시간을 부뚜막 앞에서 보낸 손들이었다.

'복권.'

단어가 입술 끝에서 맴돌았다. 이곳은 시작이다. 황제의 신뢰를 얻고, 궁중의 파벌 속에서 자신의 입지를 다지고, 아버지를 옥에서 꺼내고, 가문의 명예를 되찾는 모든 계산의 출발점. 하린은 일부러 느리게 숨을 내쉬었다. 감정을 드러내면 안 된다. 이곳의 모든 것이 관찰하고 보고하고 판단한다.

식관의 부엌은 예상과 달랐다. 화려하지 않았다. 대신 철저했다. 주방의 모든 물건이 정확한 위치에 놓여 있었고, 벽의 높이까지 계획된 것 같았다. 창문 너머로는 황궁의 주요 건물들이 보였다. 이곳은 권력의 중심부 바로 옆이었다.

"이하린입니다."

하린이 절을 했을 때, 다른 식관 하나가 고개를 들었다. 둥근 얼굴, 따뜻한 눈. 20대 중반 정도로 보이는 여인이 앞치마를 여미며 다가왔다.

"송미래예요. 저랑 함께 일하게 될 거 같네." 미래는 하린의 손을 잡았다. "힘내요. 여긴 정말..."

"정말 뭔가요?"

"복잡해요."

미래는 웃었지만, 그 웃음 아래 무언가 조심스러운 것이 있었다. 하린은 즉시 판단했다. 이 여인은 순수하다. 도구로 쓸 수 있을 것 같다.

"황제께서 아직 점심을 안 드셨어요." 미래가 말을 이었다. "식관 시험 합격자가 들어온다니까 특별히 지켜보신다고 하는데... 사실 황제는 어떤 요리도 먹으려 하지 않으세요. 지난 1년간 단 한 끼도 완성된 음식을 드신 적 없어요."

하린의 눈이 반짝였다. 그것을 숨기기 위해 그녀는 부엌의 냄비들을 살펴봤다.

"왜 그런가요?"

"모르겠어요. 독을 의심하시는 건가 싶기도 하고... 아니면 그냥 아무것도 드시고 싶지 않으신 건가 싶기도 하고..."

미래가 더 말하려 할 때, 복도에서 발자국이 들렸다. 정확한 리듬의 발걸음. 누군가 중요한 사람이 온다는 신호였다.

"황제의 심복 백의관이에요." 미래가 속삭였다.

문이 열렸다.

들어온 남자는 50대로 보였다. 얼굴에는 감정이라는 것이 없었다. 회색 복장, 검은 띠, 손에 들린 종이뭉치. 그의 눈이 하린을 훑었다. 마치 물건을 감정하듯이. 하린은 자신의 얼굴을 평탄하게 유지했다.

"이하린인가."

"네."

"따라와."

백의관은 돌아섰다. 미래가 손을 살짝 잡아당겼지만, 하린은 이미 움직이고 있었다.

복도는 길었다. 돌 벽을 따라 걷는 발소리만이 울렸다. 하린은 백의관의 뒷모습을 관찰했다. 걸음의 속도, 어깨의 높이, 손에 쥔 종이의 주름. 모든 것이 정보였다. 이 남자는 황제를 절대적으로 신뢰하는 사람이었다. 또한 하린을 위협으로 본다. 눈빛이 그것을 말했다.

'좋아. 위협이 되어라. 그것이 더 유용할 것이다.'

백의관이 멈췄다. 앞에는 붉은 대문이 있었다. 궁궐의 가장 깊숙한 곳, 황제의 침전이 있는 영역. 하린의 심장이 빨라졌다. 하지만 얼굴은 움직이지 않았다.

"이곳이 황제 폐하의 침전입니다."

문이 열렸다.

방 안은 생각보다 어두웠다. 창문이 적었고, 등불이 적었다. 그곳에 황제가 있었다.

라윤.

하린은 황제를 처음 봤다. 초상화나 궁중 소문으로만 알던 그 남자를 직접 본 것은 처음이었다. 검은 옷을 입은 남자. 30대 초반으로 보이는 얼굴. 그리고 가장 먼저 눈에 띈 것은 그 얼굴의 공허함이었다.

감정이 없었다.

하린이 본 모든 권력자의 얼굴에는 무언가가 있었다. 욕망, 두려움, 계산, 그 어떤 것이든. 하지만 이 남자의 얼굴은 마치 돌 조각상 같았다. 눈은 열려 있지만 무언가를 보고 있지 않았다. 입은 다물려 있지만 감정을 숨기고 있지도 않았다. 단순히 없었다.

'흥미롭다.'

하린이 절을 했다. 정확한 각도, 정확한 시간. 궁중의 예절을 모두 따랐다.

"이하린입니다. 궁중 식관 시험에 합격하여 황제 폐하의 식사를 담당하게 되었습니다."

라윤은 움직이지 않았다. 한참 동안 아무도 말을 하지 않았다. 하린은 고개를 숙인 채로 대기했다. 이 침묵이 얼마나 길어질지, 그것도 정보였다.

마침내 라윤이 입을 열었다.

"앞으로 오직 너의 요리만 받겠다."

문장이 끝났다. 아무런 감정도 없이. 마치 날씨가 흐리다고 말하는 것처럼.

백의관이 움찔했다. 하린은 고개를 들었다.

"황제 폐하?"

"다른 식관의 요리는 받지 않는다. 음식 준비도, 맛보기도, 모든 것을 너 혼자 한다. 시작은 내일 아침 첫 끼다."

"알겠습니다."

하린의 대답은 빨랐다. 하지만 내면은 혼란스러웠다. 계획이 틀어졌다. 황제를 천천히 알아가며 신뢰를 쌓을 예정이었다. 하지만 이 남자는 갑자기 결정을 내렸다. 이유 없이. 계산 없이.

'왜?'

그것이 하린을 자극했다. 처음으로 계산할 수 없는 것을 마주쳤다.

"나가."

라윤이 손을 들었다. 대면은 끝이었다. 하린은 절을 하고 돌아섰다. 백의관이 따라 나왔다.

복도에서 백의관은 하린을 멈추게 했다.

"황제께서 특정 요리사만 받겠다는 것은... 전례가 없습니다."

그의 목소리는 경고였다. 하린은 한 발 앞을 봤다.

"알겠습니다."

"당신이 무엇을 하든, 황제의 건강이 이상해지면 책임은 당신의 것입니다."

"알겠습니다."

백의관은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 하린은 식관으로 돌아갔다.

미래는 여전히 부엌에서 반죽을 하고 있었다.

"어떻게 됐어요?"

"내일 아침 첫 끼부터 황제께 요리를 올린다고 했어요."

미래의 손이 멈췄다.

"뭐... 뭐라고요?"

"다른 식관의 요리는 받지 않는다고 하셨어요. 제 요리만."

미래는 반죽을 내려놨다. 그리고 하린의 손을 잡았다.

"그건... 위험해요."

"왜요?"

"황제는 1년 동안 어떤 음식도 완성된 채로 받아먹지 않으세요. 혹시 무언가 이상하면 당신이 다 뒤집어쓸 거예요."

하린은 미래의 얼굴을 봤다. 순수한 걱정. 진심의 충고. 이것도 정보였다. 황제의 식사가 그렇게 위험하다면, 황제의 입맛을 파악하는 것은 더욱 중요했다.

밤이 깊어졌다.

하린은 미래가 잠든 후, 부엌을 떠났다. 궁중 식관의 위치를 파악하고, 황제의 침전에서 가장 가까운 동선을 확인했다. 또한 식관의 서고에 들어가 황제의 식습관에 관한 기록을 찾았다.

기록은 거의 없었다. 지난 1년간 황제가 먹은 음식의 목록이 있을 뿐, 그 어떤 평가도 없었다. 단지 '반납'이라는 단어만 반복되었다. 모든 음식이 반납되었다. 한 입도 먹지 않고.

하린은 황제의 침전 근처를 지나갈 때마다 관찰했다. 창문 너머로 보이는 불빛, 시간대별 움직임, 누가 드나드는지. 그리고 새벽 2시경, 라윤이 침전을 나가는 것을 봤다. 불면증이 있는 것 같았다.

'이 남자는 감정을 억압해왔다. 오래, 깊게. 그래서 음식도 받지 않는 것이다. 모든 것이 독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니까.'

하린은 자신의 침대에 누워 천장을 봤다. 내일 아침이 중요했다. 황제의 입맛을 파악하고, 그를 조종하는 첫 번째 요리를 만들어야 했다.

'내 목표를 위해서는 이 남자를 이해해야 한다. 감정이 없어 보이지만, 감정이 억압되어 있을 뿐이다. 그 억압된 감정을 깨우는 것이 내 일이다.'

하린은 눈을 감았다. 그리고 알지 못했다. 내일 그녀가 만들 요리 한 끼가 라윤을 영영 변화시킬 것이라는 것을.

---

새벽 4시, 부엌의 불이 켜졌다.

하린은 밀가루를 치대기 시작했다. 계란을 깨트렸다. 소금을 한 집어 넣었다. 손의 움직임은 정확했지만, 마음은 계산으로 가득했다. 황제를 조종할 첫 번째 무기. 그것을 지금 만들고 있었다.

그리고 그 손이 담은 것이 무엇인지, 하린은 아직 알지 못했다.

밀가루 먼지가 공중에서 소복이 내려앉았다. 하린은 반죽을 들어 치댔다. 손가락 사이로 흘러내리는 점성. 그것이 황제의 입에 닿을 것이라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감정 따위는 담지 말자.'

자신에게 상기시켰다. 그럼에도 손가락은 기억했다. 아버지가 가문이 망하기 전, 새벽마다 일어나 어머니를 위해 끓여주던 죽의 맛. 그 죽 위에 뿌려지던 계란 노른자의 노란색. 가난해지기 전 저녁 식탁에서 나눴던 말 없는 식사.

손가락을 멈췄다.

'쓸모없는 기억이다.'

반죽은 완성되었다. 하린은 팬 위에 올렸다. 버터가 지글거렸다. 향이 부엌 전체를 채웠다. 그것은 단순한 냄새가 아니었다. 그것은 신호였다. 누군가의 손가락이 그것을 만들었다는 증거.

황제의 식탁에 올라갈 것은 계란이 가득한 팬케이크였다. 단순하고, 황금색이고, 깨물었을 때 부서지는 식감. 어린 시절 하린이 어머니에게 받아 먹던 것과 같은 모양이었다.

하지만 이것은 기억을 담은 것이 아니다. 계산을 담은 것이다.

'황제는 음식을 의심한다. 그렇다면 가장 단순한 것을 줘야 한다. 숨길 것이 없는 음식. 그리고 그 단순함 속에서 따뜻함을 느낄 것이다. 모든 권력자는 따뜻함을 갈구한다. 그들은 그것을 부족한 것이라 부르지 않고 약점이라 부를 뿐이다.'

접시에 담았다. 버터를 한 번 더 올렸다. 꿀을 곁들였다. 하린의 손가락이 마지막으로 팬케이크의 모서리를 다듬었다.

그 순간이었다.

손가락이 뜨거워졌다. 순간적인 고통이 아니라, 가슴 속 깊은 곳에서 뭔가 흔들렸다. 어머니의 목소리—정확히는 어머니가 자신을 부르던 방식, 어머니가 건네던 말투, 어머니의 웃음. 그것들이 한 점의 먼지처럼 흩어져 사라졌다.

하린은 손을 내렸다. 신체 반응일 뿐이다. 다시 자신을 다잡았다.

"뭐 하고 있어?"

미래가 나타났다. 새벽 5시, 식관에서 일찍 일어나는 그녀의 습관이었다. 미래는 팬케이크를 보고 눈을 크게 떴다.

"이거... 황제께 올려요?"

"그렇지."

"하린아, 이건 너무..."

"뭐?"

미래는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다시 입을 열었다.

"이건 너무 진심 같아. 황제는 진심을 먹으면 안 돼."

하린은 미래를 봤다. 그 얼굴에는 순수한 걱정이 있었다. 순수함은 하린이 가장 이해할 수 없는 감정이었다.

"진심? 이건 그냥 팬케이크일 뿐이야."

"아니야. 이건... 누군가를 위해 만든 거야. 난 알아. 요리는 거짓을 못 해."

하린은 웃음을 흘렸다. 냉소적인 웃음이었다.

"미래, 요리에 영혼을 담으려고 하지 마. 그건 요리사의 자기기만일 뿐이야. 모든 것은 기술이고, 계산이고, 타이밍이다. 그것뿐이다."

미래는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의 눈빛은 하린을 계속 바라봤다. 무언가를 알고 있다는 듯한 눈빛.

시간은 6시 30분이 되었다.

하린은 팬케이크를 들고 황제의 침전으로 향했다. 백의관이 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접시를 보고 눈썹을 들어 올렸다.

"이것입니까?"

"네."

"황제께서는... 음, 들어가세요."

침전 안은 생각보다 단조로웠다. 창문 하나, 책상 하나, 침대 하나. 그리고 창가에 앉아 있는 남자.

라윤은 하린을 보지 않았다. 그는 여전히 창밖을 보고 있었다. 새벽의 궁중은 고요했다. 아무도 깨어있지 않은 시간. 오직 불면의 황제와 계산하는 식관만이 깨어있었다.

"드세요."

하린은 상을 내려놨다. 라윤은 여전히 창을 보고 있었다.

"냄새가..."

라윤이 처음으로 말을 꺼냈다. 하린은 잠깐 기다렸다.

"뭔가 옛날 냄새가 난다."

"그렇습니까?"

"먹어라."

라윤은 팬케이크를 집어 들었다. 손가락이 그것을 들었을 때, 팬케이크는 부서져 내렸다. 황금색 부스러기가 접시 위에 흩어졌다.

라윤의 손이 멈췄다.

"다시 해라."

"네."

하린은 침전을 나갔다. 백의관이 복도에서 그녀를 보며 한숨을 쉬었다.

"황제께서는 음식의 형태가 무너지는 것을 싫어하십니다. 그것을 거절의 신호로 봅니다."

하린은 들었다. 그리고 다시 부엌으로 돌아갔다. 미래가 여전히 거기 있었다.

"다시 한 번 해야 해."

"내가 도와줄게."

미래는 새로운 계란을 깨트렸다. 이번엔 하린의 손과 미래의 손이 함께 반죽을 치댔다. 미래의 손에는 뭔가가 있었다. 하린은 그것을 감지했다. 진심이라는 그것.

"하린아, 황제는 혼자야. 정말 혼자인 것 같아. 그래서 음식을 안 먹는 거 같아. 혹시 누군가 독을 타면 어쩌나 하는 생각에."

"그러니까 더 이상 생각하지 마. 그것도 계산이야."

팬케이크는 다시 만들어졌다. 이번엔 더 단단했다. 모양도 완벽했다. 하린은 그것을 들고 다시 침전으로 향했다.

라윤은 여전히 창가에 앉아 있었다. 이번엔 하린이 팬케이크를 깨물어 먹는 것을 보였다. 아무것도 없다는 증거.

라윤의 손이 다시 팬케이크를 집어 들었다. 이번엔 부서지지 않았다. 그것이 입에 들어갔다.

라윤은 눈을 감았다.

오래 동안, 라윤은 입을 다물고 있었다. 팬케이크를 씹고 있었다. 천천히, 정확하게. 그의 어깨가 미세하게 떨렸다. 입가가 경련했다. 손가락이 접시 가장자리를 집어 쥐었다가 놨다.

눈을 떴다.

라윤의 얼굴이 변했다. 무표정의 가면이 흔들리고 있었다. 눈빛이 흔들렸다. 입가가 움직였다. 손가락이 떨렸다.

"너."

라윤이 하린을 처음으로 직시했다. 그의 눈빛이 명확했다. 공허함이 아니라 무언가 절박한 것.

"내일도 이것을 만들어라."

"네."

"모레도."

"네."

"계속."

하린의 입술이 움직이지 않았다. 라윤은 다시 팬케이크를 집어 들었다. 그리고 씹었다. 눈을 감았다.

이번엔 눈물이 흘렀다.

라윤의 뺨을 타고 내려오는 눈물. 그는 얼굴을 돌려 창밖을 보며 눈물을 훔쳤다. 손가락으로 얼굴을 문지르는 동작이 서툴렀다. 마치 눈물을 흘려본 적이 없는 사람처럼.

"나가."

라윤의 목소리가 떨렸다.

하린은 침전을 나갔다. 백의관이 복도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어떻게 되었습니까?"

"모른다."

"황제께서 음식을 완성된 채로 받아 드신 것은... 처음입니다."

백의관의 얼굴이 창백했다. 그것은 경고였다. 하린은 백의관을 보지 않았다. 그녀의 마음이 불규칙하게 뛰고 있었다. 계획이 맞았다. 황제는 음식을 받아먹었다. 그것이 시작이었다.

그런데 왜 손가락이 떨렸을까.

---

미래는 하린이 부엌으로 돌아올 때를 기다리고 있었다.

"어떻게 됐어?"

"먹었어."

"정말?"

하린은 끄덕였다. 미래는 하린의 손을 잡았다. 떨리는 손.

"하린아..."

"뭐?"

"조심해. 진짜로."

그 순간, 뭔가가 하린의 기억에서 흐릿해졌다. 아주 작은 것이 아니었다. 아버지의 목소리. 정확히는 아버지가 웃을 때의 그 특유한 리듬, 아버지의 목소리에 섞인 따뜻함, 아버지가 자신을 부르던 이름의 발음. 모두 완전히 사라졌다. 하린이 아무리 떠올리려 해도, 그것은 이미 없었다.

하린의 손이 움켜졌다. 손가락이 떨렸다. 그것이 무엇인지 알 수 없었지만, 무언가 중요한 것을 잃어버린 느낌이 들었다.

---

밤이 되었다.

하린은 침전 근처를 맴돌았다. 라윤이 불면의 밤을 지내고 있었다. 창문의 불빛이 여전했다. 그리고 밤 11시경, 라윤이 침전을 나왔다.

그는 복도를 지나 어딘가로 향했다. 하린은 몸을 숨기고 따라갔다.

라윤은 부엌의 문 앞에 섰다. 그리고 문을 열지 않은 채, 창문을 통해 안을 들여다봤다. 부엌은 어두웠다. 아무도 없었다. 라윤은 오래 그곳에 서 있었다. 마치 그곳에 누군가가 있기를 바라는 듯이.

그리고 돌아갔다.

하린은 벽에 몸을 붙였다. 이 남자는 뭔가를 원하고 있었다. 그것이 무엇인지, 하린은 아직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그것은 확실했다. 라윤 황제는 단순한 음식이 아닌 무언가를 갈구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하린이 원하던 기회였다.

---

아침이 올 때마다, 하린은 새로운 요리를 만들었다. 계란 국. 밀가루 수프. 죽. 모두 단순하고, 모두 따뜻하고, 모두 누군가를 향한 것 같은 맛.

라윤은 매번 눈을 감았다. 그리고 눈물을 흘렸다.

일주일이 지났을 때, 라윤은 백의관을 불렀다.

"이제부터 모든 식사에서 다른 요리사의 음식은 받지 않는다."

"네, 황제께서."

"오직 식관 이하린의 요리만. 그 외는 모두 거절하라."

백의관의 눈이 흔들렸다. 그것은 경고였다. 하지만 이미 늦었다.

라윤의 집착이 시작되었다.

---

그 사실을 하린이 알게 된 것은 정오였다. 백의관이 직접 부엌으로 내려왔을 때였다.

"식관 이하린."

"네."

"황제께서 당신의 요리만 받으시겠다고 하셨습니다. 내일부터 황제의 모든 끼를 당신이 책임지세요."

하린의 입술이 올라갔다. 냉소적인 웃음.

그것이 성공의 신호인 줄 알았다.

하지만 그것은 시작의 신호였다.

저녁 때, 라윤은 하린을 침전으로 불렀다.

"내일부터는 여기서 요리를 해라."

침전 옆 작은 방을 가리켰다. 황제의 침전과 연결된 공간.

"네, 황제 폐하."

"혼자 있어야 한다. 다른 누구도 들어오면 안 된다."

라윤의 목소리는 명령이었다. 하지만 그 아래에는 뭔가 절박한 것이 있었다.

"알겠습니다."

하린이 물었다.

"황제 폐하께서는... 왜 제 요리만 받으시려 하십니까?"

라윤은 오래 침묵했다. 그의 손가락이 팬케이크의 부스러기를 집어 들었다. 마지막 한 조각을 입에 넣었다.

"너의 요리를 먹을 때만... 내가 누군가였던 적이 있다는 것을 기억한다."

하린의 숨이 멎었다.

"그것이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그것이 필요하다."

라윤이 하린을 바라봤다. 그의 눈빛이 다시 흔들리고 있었다.

"계속 만들어라. 절대 멈추지 말고."

"네."

하린은 침전을 나갔다. 복도에서 백의관이 그녀를 멈추게 했다.

"조심하세요. 황제께서 누군가에게 이렇게 집착하신 적은 없습니다.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백의관은 말을 마치지 않았다. 하지만 그의 눈빛은 명확했다. 위험이라는 신호.

그 밤, 하린은 침대에 누워 천장을 봤다. 계획이 성공했다. 황제를 손에 넣었다. 그런데 왜 가슴이 철렁했을까.

그리고 또 다른 기억이 사라졌다. 어머니의 얼굴. 정확히는 어머니가 자신을 바라보던 눈빛, 어머니 입가의 주름, 어머니의 손길. 모두 흐릿해졌다. 하린은 어머니의 얼굴을 떠올리려 했지만, 그것은 이미 없었다.

손가락이 떨렸다. 그것은 공포였다. 하지만 하린은 그것을 인정하지 않았다.

---

새벽, 침전 옆 작은 방에서 하린은 또 다른 요리를 준비했다. 이번엔 미래가 곁에 없었다. 황제의 침전과 연결된 공간에서 혼자 요리를 해야 했다.

손가락이 계란을 깨트렸다.

그 순간, 아버지의 목소리를 떠올리려 했다. 아버지가 자신을 부르던 이름, 아버지의 웃음. 하지만 아무것도 떠올라지지 않았다. 그것은 이미 사라졌다.

또 다른 기억이 흐릿해졌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함께 식탁에 앉던 모습. 그들의 웃음. 가족이었던 시간. 모두 먼지처럼 흩어졌다.

하린은 손을 멈췄다.

'내가 뭔가 잃어버리고 있다.'

그 생각이 들었을 때, 라윤의 침전에서 불이 켜졌다. 황제가 깨어났다. 그리고 하린의 요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하린은 손가락을 다시 움직였다. 계산을 담아서.

그런데 손가락이 기억을 담고 있었다.

---

새벽 3시, 하린은 요리를 완성했다. 계란죽. 단순하고, 따뜻하고, 누군가를 위해 만든 것 같은 모양.

라윤의 침전 문이 열렸다. 황제는 침대에서 일어나 하린을 바라봤다. 그의 눈빛은 이미 중독된 것처럼 보였다.

"먹어."

하린이 죽을 떠 입에 넣어주었다. 라윤은 눈을 감았다. 그리고 눈물이 흘렀다.

"계속해라. 절대 멈추지 말고."

라윤의 목소리는 명령이자 간청이었다.

하린은 손가락이 떨리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또 다른 기억이 사라졌다. 어린 시절 자신이 좋아하던 노래, 그 노래를 흥얼거리던 어머니의 목소리, 함께 손을 잡고 걷던 골목길. 모두 흐릿해졌다.

하린은 손가락을 움켜쥐었다. 뭔가 중요한 것을 계속 잃어버리고 있었다. 하지만 멈출 수 없었다. 라윤의 눈빛이 하린을 붙잡고 있었다. 그리고 하린 자신도 이미 그 눈빛에 갇혀 있었다.

"내일도."

"네."

"모레도."

"네."

"영원히."

하린은 대답하지 않았다. 하지만 손가락은 이미 움직이고 있었다.

새벽 4시, 침전 옆 작은 방에서 하린은 또 다른 요리를 준비했다. 손가락이 밀가루를 치댔다. 손가락이 계란을 깨트렸다. 손가락이 냄비를 저었다.

그리고 또 다른 기억이 사라졌다.

하린은 손을 멈추지 않았다. 라윤의 침전에서 불이 켜졌다. 황제가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하린은 알았다.

절대 멈출 수 없다는 것을.

손가락이 요리를 완성했다. 황금색의 팬케이크. 어린 시절의 기억을 담은 것 같은 모양. 하지만 하린은 이제 그 기억을 기억할 수 없었다.

침전의 문이 열렸다. 라윤이 나타났다. 그의 눈빛은 절망과 갈망이 섞여 있었다.

"계속해라."

"네."

하린은 손가락이 떨리는 것을 느꼈다. 하지만 손가락은 멈추지 않았다. 계산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언제부턴가 다른 무언가가 되어 있었다. 그것이 무엇인지, 하린은 알 수 없었다.

단지 알 수 있었던 것은 하나뿐이었다.

자신이 계속 뭔가를 잃어버리고 있다는 것.

그리고 그것을 멈출 수 없다는 것.

라윤의 눈빛이 하린을 붙잡고 있었다. 그리고 하린 자신도 이미 그 눈빛 속에 갇혀 있었다.

손가락이 또 다른 요리를 준비했다. 새벽 5시, 침전 옆 작은 방에서.

그곳에는 오직 하린과 라윤만이 있었다. 그리고 계속되는 기억의 소실.

그리고 또 다른 것도 계속되고 있었다. 라윤의 집착. 그것이 심화되고 있었다.

백의관은 복도에서 하린을 지켜봤다. 황제의 변화를 기록했다. 그것은 위험한 신호였다. 황태자와 황후는 이미 눈치채고 있었다. 침전 옆 작은 방에서 계속되는 불빛. 그곳에서 나오는 냄새. 그리고 황제의 명령.

"식관 이하린 외에는 황제를 뵐 수 없다."

이 명령이 궁중을 흔들고 있었다.

황태자는 백의관에게 물었다.

"그 식관이 뭔가 특별한가?"

백의관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답할 수 없었다. 그도 모르고 있었다. 그 식관이 황제에게 무엇을 주고 있는지. 그리고 그 대가로 무엇을 받고 있는지.

하린의 침대 옆에는 이제 아무것도 없었다. 기억이 없었다. 아버지의 얼굴도, 어머니의 웃음도, 가족이었던 시간도 모두 사라졌다.

대신 남은 것은 오직 하나였다.

라윤의 눈빛.

그리고 손가락이 만드는 요리.

새벽 6시, 침전 옆 작은 방에서 하린은 또 다른 요리를 준비했다. 이번엔 뭘 만들지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손가락이 알았다. 손가락이 움직였다. 손가락이 만들었다.

라윤의 침전에서 불이 켜졌다.

황제가 기다리고 있었다.

하린은 요리를 들고 침전으로 향했다.

그리고 또 다른 기억이 사라졌다.

---

밤이 깊어졌다.

백의관은 황태자에게 보고했다.

"황제께서 식관 이하린 외에는 누구도 뵙지 않으시려 합니다. 식사 시간도 점점 길어지고 있습니다."

황태자의 얼굴이 굳었다.

"그 식관을 조사하라."

"네, 황태자께서."

백의관은 움직였다. 하지만 그도 알고 있었다. 이미 늦었다는 것을. 황제의 집착은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지점을 지났다.

그리고 하린은 여전히 침전 옆 작은 방에서 요리를 하고 있었다.

손가락이 움직였다.

기억이 사라졌다.

라윤의 눈빛이 하린을 붙잡았다.

그리고 모든 것이 계속되었다.

다음 화 계속 보기 →

댓글을 남기려면 로그인 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