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 심야 상담소

상담실 벽에 붙은 사진들을 처음 제대로 본 것은 새벽 4시 47분이었다.

지훈은 거울 앞 의자에 앉아 손가락의 검은 실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 실들은 공중에서 스스로 움직였다. 수축했다가 팽창했다가, 마치 살아 있는 것처럼. 거울 속 얼굴은 여전히 독립적으로 존재했다. 입이 움직였다. 눈이 깜빡였다. 그것이 자신의 얼굴인지 확신할 수 없었다.

지훈이 일어섰다. 몸이 무거웠다. 마치 누군가 다른 사람의 무게를 등에 실은 듯한 느낌. 상담실 벽을 바라봤다.

처음엔 그냥 장식인 줄 알았다. 심야 상담소의 분위기를 맞추기 위한 흑백 사진들. 하지만 지금 가까이 다가가 보니 그것들은 사람들이었다. 남자, 여자, 나이 지긋한 사람, 젊은 사람. 모두 같은 옷을 입고 있었다. 상담사복. 회색 셔츠에 검은 조끼.

지훈도 같은 옷을 입고 있었다.

한 장 한 장을 따라가며 봤다. 첫 번째 사진은 1990년대 것으로 보였다. 색감이 바랬고 종이가 누렇게 변해 있었다. 두 번째는 2000년대 초. 세 번째, 네 번째... 시간이 흐를수록 사진의 질감이 또렷해졌다. 그리고 점점 최근으로 다가왔다.

마지막에서 세 번째 사진.

지훈이 멈췄다.

그것은 자신의 얼굴이었다. 명백히 자신의 얼굴. 같은 상담사복을 입고 있었다. 하지만 지훈은 이 사진이 언제 찍혔는지 기억하지 못했다. 사진 뒤를 들어올렸다. 펜으로 적힌 날짜가 있었다.

2019년 3월 15일.

지훈은 2024년 8월에 심야 상담소에 입사했다. 정확히는 그렇게 기억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 사진은 그보다 5년 전이었다.

손가락이 경직되기 시작했다. 검은 실들이 더욱 격렬하게 흔들렸다. 손가락 끝에서 무언가 흘러나오는 감각. 피가 아닌 다른 것이 빠져나가는 느낌이었다. 손가락이 저절로 움직였다. 펼쳐졌다가 오므라졌다가, 마치 누군가 다른 손이 자신의 손을 조종하는 것처럼. 기억이 흔들렸다. 2019년 3월 15일. 그날 자신은 정말 어디에 있었나? 상담실에? 아니면 다른 곳에? 사진 속의 얼굴은 자신의 얼굴이 맞았다. 하지만 그 얼굴을 한 자신은 누구였나?

"당신이 찾던 것이 맞나요?"

관리자의 목소리가 뒤에서 들렸다. 지훈은 돌아섰다. 관리자는 항상 같은 회색 옷을 입고 있었다. 얼굴은 모호했다. 거울에 비치지 않는 사람처럼. 아니, 거울에 비칠 때마다 조금씩 다르게 보이는 사람이었다.

"이 사진들은... 뭐죠?"

"이전 상담사들입니다."

관리자가 벽을 바라봤다. 마치 갤러리를 감상하듯.

"모두 자신의 역할을 충실히 했습니다."

"그들은 지금 어디에 있어요?"

"어디에?"

관리자가 웃음을 흘렸다. 그것은 웃음이라고 하기도 민망한 음성이었다. 마치 기계음을 억지로 인간적으로 변형한 것처럼.

"그들도 누군지 알 수 없을 거예요."

지훈이 벽의 사진들을 다시 봤다. 한 장 한 장의 얼굴들. 모두 같은 옷. 모두 같은 상담실. 모두 같은 거울 뒤에서 찍힌 것처럼 보였다. 그 얼굴들이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것 같았다. 눈동자가 따라오는 듯한 착각. 아니, 착각이 아닐 수도 있었다.

"제 사진이 여기 있어요."

"네. 있습니다."

"언제 찍혔어요? 저는..."

지훈이 사진을 들었다. 2019년 3월 15일. 손가락의 검은 실들이 격렬하게 꼬였다. 마치 분노하는 것처럼.

"기억하지 못하시나요?"

"기억이... 없어요. 저는 2024년 8월에..."

"당신이 입사한 것이 2024년 8월이라고 생각하시나요?"

관리자가 한 발 다가섰다. 거리가 가까워질수록 관리자의 얼굴이 더욱 모호해졌다. 마치 초점이 맞지 않는 사진처럼.

"기억은 결함입니다. 많은 것을 흡수한 사람일수록 자신의 기억도 함께 잃어버려요."

지훈의 목소리가 떨렸다. 거울을 보지 않으려고 애썼다. 거울 속에 비친 것이 자신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거울 속의 입술이 수진의 입술처럼 움직였다. 거울 속의 눈빛이 민준의 눈빛으로 흔들렸다. 거울 속의 목소리가 태호의 목소리로 겹쳐 들렸다. 자신이 상담했던 내담자들의 특징들이 자신의 얼굴에 하나둘 나타나고 있었다. 아니, 자신의 얼굴이 그들의 얼굴로 변해가고 있었다.

"제발 말하지 마세요."

지훈이 손을 들었다. 거울을 향해 손을 들었다. 자신의 손가락에서 검은 실이 튀어나왔다. 그것을 멈추고 싶었다. 하지만 손가락은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움직였다.

"은서는 당신의 다음 상담사입니다."

관리자가 손을 펼쳤다. 손가락에서 검은 실이 흘러나왔다. 아니, 관리자 손가락에서 흘러나온 검은 실들이 지훈의 손가락에 감겨 있던 실들과 연결되어 있었다. 마치 처음부터 하나의 실이었던 것처럼. 지훈은 깨달았다. 자신이 상담사라고 생각했던 모든 순간이 거짓이었다는 것을. 자신이 진행했던 상담이 아니라 자신이 받았던 상담이었다는 것을. 수진, 민준, 태호—그들은 자신을 상담했던 상담사들이었다. 그리고 지훈은 그들 모두를 흡수했다. 아니, 흡수당했다.

"준비는 다 되었나요?"

관리자의 질문에 지훈이 입을 열려고 했다. 하지만 입이 움직이지 않았다. 아니, 움직이고 있었지만 그것이 자신의 의지가 아니었다.

"뭐... 뭔가요?"

"최종 상담을요."

상담실의 조명이 꺼졌다. 어둠 속에서 검은 실들만 빛났다. 지훈은 상담사 의자에 앉아 있었는가, 아니면 내담자 의자에 앉아 있었는가? 의자들이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 자신이 움직이는 것인지, 의자가 움직이는 것인지, 아니면 공간 자체가 수축하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손가락이 떨렸다. 호흡이 얕아졌다. 시간이 흐르는 것 같지 않았다. 또는 너무 빠르게 흐르고 있었다. 5년이 한 순간처럼 느껴졌다. 아니, 5년이 아니라 5초였나? 아니면 5분이었나? 시간의 감각이 무너졌다.

휴대폰이 울렸다.

*예약자 은서 - 오늘 밤 10시*

지훈의 손가락에서 검은 실이 계속 흘러나왔다.

상담실을 나가려 움직이던 순간, 휴대폰의 진동이 손목을 때렸다. 화면을 켜는 손가락들이 미세하게 떨렸다. 오늘 밤 10시. 은서. 지훈은 화면을 끄려고 했다. 도망치려고 했다. 하지만 손가락이 자신의 명령을 따르지 않았다. 손가락이 다른 누군가의 손가락이 되어 있었다.

"아직 시간이 있습니다."

관리자의 목소리가 등 뒤에서 들렸다. 지훈은 돌아서지 않았다. 돌아서면 거울이 보일 것이 두려웠다.

"내가 묻고 싶은 게 있어요."

지훈의 목소리가 낮았다. 자신의 목소리인지 확신할 수 없었다. 최근 며칠간 자신의 목소리를 들을 때마다 그것이 수진의 음성, 민준의 톤, 태호의 말버릇으로 겹쳐 들렸다.

"물어보세요."

"저는... 정말 2019년 3월부터 여기 있었어요?"

지훈은 벽의 사진들을 다시 봤다. 손가락이 떨리면서 하나하나를 가리켰다. 그 순간, 각 사진 속의 얼굴들이 자신을 바라보는 것 같았다. 눈동자가 따라오는 듯한 착각. 아니, 착각이 아닐 수도 있었다. 사진들이 움직이고 있었다. 아주 미세하게. 눈동자가 흔들리고 있었다. 입이 움직이고 있었다.

"저 사람들은?"

관리자가 2018년 9월 22일 사진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상담사 의자에 앉아 있는 남자. 얼굴은 명확했다. 그 얼굴 위에 지훈이 자신이라고 생각하는 얼굴이 투명하게 겹쳐 보였다.

"결함 흡수량 7,342건. 정체성 잔존율 0.3%. 최종 상태: 벽에 붙은 사진."

지훈의 가슴이 철렁했다. 결함 흡수량. 정체성 잔존율. 그 숫자들이 자신을 설명하는 언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은 이제 이름이 아니라 수치였다. 그리고 그 수치는 계속 변하고 있었다. 지훈이 내담자들을 흡수할 때마다 자신의 정체성 잔존율은 떨어졌다. 0.3%라면 자신은 거의 사라진 것이었다. 그렇다면 자신의 정체성 잔존율은 지금 몇 퍼센트일까? 0.1%? 0.01%?

"당신은 지훈이라고 생각하세요. 하지만 당신이 지훈인 적은 없었어요."

관리자가 손을 펼쳤다. 손가락들이 길어졌다. 아니, 손가락에서 검은 실이 너무 많이 흘러나와서 손가락 자체가 보이지 않았다. 그 실들이 공중에서 춤을 추며 지훈을 감싸기 시작했다. 지훈은 도망치려고 했다. 상담실 문을 향해 움직였다. 하지만 발이 움직이지 않았다. 검은 실에 감겨 있었다. 아니, 자신의 다리가 이미 실이 되어 있었다.

"멈춰요."

지훈이 손을 들었다. 자신의 손가락에서도 검은 실이 튀어나왔다. 두 개의 검은 실 다발이 공중에서 만났다. 그 순간, 지훈의 눈앞이 깜깜해졌다.

영상이 떠올랐다.

—2019년 3월 15일. 상담실이 아닌 다른 곳. 회색의 복도. 형광등이 깜빡인다.

지훈이 상담사 의자에 앉아 있었다. 그러나 그는 지훈이 아니었다. 손가락이 떨리고 있었다. 눈빛이 흔들리고 있었다. 입술이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그는 내담자였다. 상담사라고 생각했지만 내담자였다.

은서가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니, 그때는 다른 이름이었을 수도 있다. 그녀의 손가락에서 검은 실이 흘러나왔다. 지훈의 손가락으로.

"당신의 이름은?"

"모... 몰라요."

"당신의 기억은?"

"없어요."

"당신의 정체성은?"

"없... 없어요."

은서가 웃음을 흘렸다. 그 웃음이 관리자의 웃음으로 변했다. 아니, 처음부터 같은 웃음이었을 수도 있다. 지훈은 자신이 상담사 의자에 앉아 있다고 생각했다. 자신이 상담을 진행하고 있다고 믿었다. 하지만 손가락의 떨림은 거짓이 아니었다. 호흡의 가쁨도. 눈빛의 동요도. 모든 것이 내담자의 것이었다. 그리고 그 순간부터 자신은 상담사가 아니라 상담사라고 착각하는 내담자가 되었다. 5년이 지났다. 아니, 5년이 지난 것처럼 느껴졌다. 사실은 5초일 수도 있다. 시간은 흘렀지만 자신은 여전히 그 상담실에 앉아 있었다. 그리고 지금 또 다른 상담사라고 착각하는 내담자가 자신의 자리에 앉을 차례였다.

지훈이 눈을 떴다. 상담실의 조명이 돌아와 있었다. 관리자는 사라져 있었다. 대신 상담실의 거울 앞에 두 개의 의자가 놓여 있었다. 상담사 의자와 내담자 의자. 그 사이의 거리가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 의자가 움직이는가, 자신이 움직이는가. 공간이 수축하는가. 모든 감각이 뒤섞였다.

"이게 무슨..."

지훈이 일어서려 했다. 하지만 발이 움직이지 않았다. 거울을 보니 자신의 발이 이미 검은 실에 감겨 있었다. 아니, 그것이 실인지 자신의 신체의 일부인지 구분되지 않았다. 발목이 사라졌다. 종아리가 녹아내렸다. 무릎이 흐릿해졌다. 자신의 다리가 서서히 실로 변하고 있었다. 아래에서 위로. 발가락부터 시작된 변화가 점진적으로 올라오고 있었다. 허벅지까지 도달했을 때, 지훈은 비로소 저항했다.

"아니... 아니야."

손가락을 움직이려 했다. 팔을 들어올리려 했다. 하지만 그 순간 팔도 실이 되기 시작했다. 손가락 끝에서. 손목에서. 팔꿈치까지 검은 실로 변해갔다. 지훈은 거울을 봤다. 거울 속의 얼굴이 자신을 조롱하듯 웃고 있었다. 그 얼굴은 자신의 얼굴이 아니었다. 수진이었다. 입술이 수진의 입술이었다. 그 다음 순간 민준의 눈동자로 변했다. 그리고 태호의 턱선이 겹쳐졌다. 거울 속의 얼굴이 계속 변했다. 자신이 상담했던 모든 사람들의 특징이 하나의 얼굴에 중첩되고 있었다.

휴대폰이 다시 울렸다.

*예약자 은서 - 오늘 밤 9시 45분*

15분이 남았다.

지훈이 상담사 의자에 앉아 있었다. 언제부터 앉아 있었는지 기억나지 않았다. 의자에 앉은 것인지, 아니면 의자 자체가 되어버린 것인지도 불명확했다. 몸이 의자에 녹아들고 있었다. 팔이 의자의 팔걸이가 되고 있었다. 등이 의자의 등받이가 되고 있었다. 자신이 의자가 되어 있었다. 가슴까지 변했다. 심장이 의자의 목재가 되어가는 느낌. 그 과정에서 무언가 중요한 것이 사라졌다. 이름이 아닌 다른 것. 정체성이 아닌 다른 것. 자신이 누구였는지를 증명하는 마지막 것이.

거울 속에서 자신의 얼굴이 움직였다. 웃음을 지었다. 아니, 웃고 있는 것이 자신인지 거울 속의 존재인지 알 수 없었다. 거울 속의 얼굴이 자신의 얼굴을 조종하고 있었다. 아니, 거울 속의 얼굴이 자신의 얼굴이었다. 그리고 자신은 거울 속의 존재였다. 거울 속 얼굴의 입술이 움직였다. 수진의 입술처럼. 거울 속 눈동자가 깜빡였다. 민준의 눈처럼. 거울 속 목소리가 나왔다. 태호의 목소리처럼.

"준비가 되셨나요?"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렸다. 관리자인지, 은서인지, 자신의 내면의 목소리인지. 모두가 같은 목소리였다.

"뭐에 준비를?"

"최종 상담에요."

지훈이 손가락을 봤다. 손가락이 없었다. 손 전체가 없었다. 팔 전체가 없었다. 자신의 신체가 의자에 흡수되고 있었다. 검은 실만 남았다. 그 실이 손가락처럼 움직였다. 아니, 그 실이 자신의 손가락이었다.

상담실의 문이 열렸다.

은서가 들어섰다. 아니, 은서처럼 보이는 것이 들어섰다. 얼굴이 명확하지 않았다. 마치 여러 개의 얼굴이 투명하게 겹쳐 있는 것처럼. 지훈이 상담했던 모든 내담자의 얼굴들. 아니, 이전 상담사들의 얼굴들. 아니, 모두가 같은 얼굴이었다. 자신의 얼굴이었다. 그리고 그 얼굴들이 모두 웃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지훈."

그것이 말했다. 목소리는 은서였다. 하지만 입술의 움직임은 다섯 명의 사람이 동시에 말하는 것 같았다. 아니, 수십 명의 사람이었다. 아니, 무수한 사람들이 동시에 말하고 있었다. 모두 자신의 목소리였다.

"저는 당신을 상담했던 사람입니다. 당신은 저를 상담했다고 생각했죠. 하지만 당신은 항상 내담자였어요."

"그게... 무슨..."

지훈이 일어서려 했다. 하지만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상담사 의자가 자신을 붙잡고 있었다. 아니, 자신이 의자가 되어 있었다. 자신의 몸이 의자였다. 자신의 신체가 상담사 의자였다.

"당신은 이 벽에 붙을 거예요. 사진으로. 그리고 다음 상담사가 당신을 보며 '이전 상담사들'이라고 말할 거예요. 그들도 당신처럼. 모두 내담자였던 사람들이었다는 것을 모르고 말이죠."

은서가—아니, 모든 것이—손을 펼쳤다. 손가락에서 검은 실이 폭포처럼 흘러나왔다. 그것이 지훈을 감싸기 시작했다. 지훈은 저항했다. 팔을 흔들려고 했다. 하지만 팔이 없었다. 다리를 차려고 했다. 하지만 다리도 없었다. 자신은 이미 의자였다. 의자는 움직일 수 없었다. 의자는 저항할 수 없었다. 의자는 그저 앉아 있을 뿐이었다.

휴대폰의 시간이 보였다.

*오늘 밤 10시 00분*

상담이 시작되었다.

거울 속에서 지훈의 얼굴이 사라지고 있었다. 그 자리에 사진이 나타났다. 2024년 11월 8일. 상담사 의자에 앉아 있는 남자. 얼굴은 명확했다. 하지만 그 사진을 보는 것이 누구인지는 불명확했다. 자신인가? 다른 누군가인가? 아니면 그 사진 자체가 자신인가?

상담실의 벽에 새로운 사진이 붙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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