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문
새벽 2시 23분. 상담실의 조명이 점점 어두워졌다.
지훈은 상담사 의자에 앉아 있었다. 손가락에서 검은 실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언제부터 흐르고 있었는지는 기억나지 않았다. 어제였나. 아니면 더 오래전부터였나. 시간의 감각이 이상했다.
거울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보려고 고개를 돌렸다. 그 얼굴은 자신의 것이 아니었다. 턱선이 다르고, 눈의 형태가 다르고, 무엇보다 그 표정이 낯설었다. 마치 여러 사람의 얼굴이 겹쳐져 있는 것처럼. 며칠 전엔 그 차이가 공포였는데, 지금은 그냥 있는 그대로였다. 공포도 흡수되었나. 아니면 공포를 느낄 자신이 이미 없어진 건가.
초인종이 울렸다.
문이 열렸다. 40대 남성이 들어왔다. 회색 얼굴. 수척한 몸. 그의 눈빛이 낯설지 않았다. 지훈은 그 눈을 여러 번 봤다는 것을 알았다. 하지만 언제였는지, 어디서였는지는 모르겠다.
"안녕하세요. 저는 태호라고 합니다."
태호가 내담자 의자에 앉았다. 그의 손이 떨렸다. 지훈도 자신의 손이 떨리고 있음을 느꼈다. 그런데 언제부터 떨리고 있었는지 모르겠다.
"상담을 받으시려고 오셨나요?"
지훈이 물었다. 그 질문을 자신이 몇 번이나 했는지 알 수 없었다.
"네. 저는 제 과거를 기억하지 못합니다."
태호가 말했다. 그의 목소리가 이상했다. 마치 여러 개의 목소리가 겹쳐 있는 것처럼. 혹은 그 목소리가 메아리처럼 들렸다.
"어떻게 된 일인가요?"
"모르겠습니다. 깨어나 보니 여기 있었고, 제 이름만 알고 있었어요. 그것도 누군가 계속 부르는 이름이라서 알고 있는 것 같아요."
지훈이 손가락을 펼쳤다. 검은 실이 더욱 굵어졌다. 태호의 입에서 나오는 말들이 실처럼 변해 공중에 흩어졌다. 지훈은 그것을 즉시 흡수하지 않았다. 아직은. 준비 중이었다.
"언제쯤부터 기억이 없으신가요?"
"모르겠어요. 어제? 일주일 전? 몇 년 전?"
태호가 웃음을 흘렸다. 그 웃음에는 광기가 있었다.
"당신은 왜 상담사가 되었어요?"
갑자기 태호가 물었다. 지훈은 그 질문에 답할 준비가 없었다. 왜 자신이 상담사가 되었는가. 그것을 기억하려고 생각했을 때, 뭔가 검은 것이 뇌 안에서 흘렀다. 먹물처럼.
"저는 사람들을 돕고 싶어서요."
"정말요?"
태호가 다시 웃었다. 그 웃음이 지훈의 귀에 여러 번 반복되었다. 에코. 에코. 에코.
"당신이 정말로 그렇게 생각해요? 당신이 처음부터 그렇게 생각했어요?"
지훈은 대답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그것이 사실인지 거짓인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자신이 상담사가 된 이유. 그것은 자신의 기억 속에 없었다. 대신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렸다. 상담사가 되세요. 상담사가 되어야 해요. 당신은 상담사예요.
"저도 모르겠어요. 왜 이렇게 되었는지..."
태호가 천천히 말했다.
"당신이 내 결함을 빨아들일 때, 어디로 가는지 보고 싶어요. 그 검은 실들이. 당신 손가락에서 나와서 내 입으로 들어갔다가 다시 당신 손가락으로 돌아가는 그 실들이."
지훈이 손가락을 완전히 펼쳤다. 검은 실이 폭포처럼 흘러나왔다. 이전보다 훨씬 많았다. 훨씬 굵었다. 손가락의 끝이 검게 변하기 시작했다.
태호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이 실로 변했다. 그 실들이 공중에서 춤을 추며 지훈의 손가락에 감겼다. 지훈은 그 순간 태호의 기억들을 본다.
밝은 햇빛이 눈을 찔렀다. 강남역 지하 3층. 누군가가 자신을 끌고 간다. 상담사 의자가 나타난다. 내담자 의자가 나타난다. 검은 실이 흐르기 시작한다. 자신이 누구였는지 흡수되며 잊혀간다. 다시 밖으로 나간다. 24시간이 지난다. 고통이 돌아온다. 다시 온다. 또 상담을 받는다. 또 흡수된다. 또 기억을 잃는다. 몇 번이나. 몇 번이나. 몇 번이나.
그리고 어느 순간, 태호가 상담사였던 시절이 보인다. 태호도 내담자들의 결함을 흡수했다. 태호도 자신의 정체성을 잃어갔다. 처음엔 깊고 명확했던 목소리가 점점 갈라지더니, 마침내 여러 사람의 목소리가 겹쳐진 형태로 변했다. 따뜻했던 눈이 점점 공허해져 갔다. 그리고 어느 순간 태호는 내담자가 되었다. 아니, 처음부터 내담자였던 것 같다. 태호가 상담사가 되었을 때도, 이미 누군가의 결함을 지고 있었다. 그 누군가는 지훈이었다. 아니, 지훈이 될 누군가였다.
지훈은 자신이 누구인지 알 수 없게 된다. 자신의 손가락에서 흘러나오는 검은 실이 태호의 것인지 자신의 것인지 구분할 수 없다. 자신이 흡수하는 것인지 흡수되는 것인지 알 수 없다.
상담실이 회전한다. 아니다. 자신이 회전하고 있다.
"이제... 이제 나도 누군지 알 것 같아..."
태호가 말했다. 하지만 태호의 얼굴은 더욱 공허했다. 마치 무언가를 완전히 놓아버린 것처럼. 태호의 입술이 파르르 떨렸다. 목소리가 점점 작아졌다.
검은 실들이 모두 흡수된다. 태호의 몸이 더욱 투명해진다. 아니다. 지훈의 몸이 더욱 불명확해진다. 둘 다인가. 아니면 처음부터 같은 몸이었나.
상담이 끝났다.
태호가 일어섰다. 그의 눈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완전히 비어 있었다. 마치 누군가가 그 안의 모든 것을 긁어낸 것처럼. 태호는 비틀거리며 문으로 향했다.
"감사합니다."
태호가 나갔다. 문이 닫혔다.
지훈은 상담사 의자에 앉아 있었다. 자신의 손가락이 여전히 떨리고 있었다. 검은 실은 조금 옅어졌지만, 손가락 끝은 더욱 검어져 있었다. 거울을 보려고 했다. 하지만 거울을 보고 싶지 않았다. 그 안에 누가 있을지 모르니까.
상담실 문이 열렸다. 관리자가 들어왔다. 검은 정장을 입은 무표정한 인물. 그의 손에는 가죽 표지의 노트가 들려 있었다.
"결함의 무게가 늘었습니다. 좋은 진행입니다."
관리자가 노트에 펜을 대고 뭔가를 기록했다. 쓸 때의 소리가 상담실에 가득 찼다. 스르르 스르르. 마치 무언가를 긁어내는 소리처럼.
"예상보다 빠릅니다."
관리자가 노트를 내려놓았다. 페이지가 완전히 채워진 상태였다. 지훈은 그 위에 적힌 글자들을 보려고 몸을 기울였다. 관리자는 그 움직임을 허용했다. 오히려 노트를 조금 더 들어올렸다.
페이지 위의 이름들.
민준. 2024년 1월 15일 21:47. 결함 지수 7.3.
수진. 2024년 1월 16일 00:23. 결함 지수 6.8. 재상담 2024년 1월 17일 01:04. 결함 지수 증가.
태호. 2024년 1월 18일 23:15. 결함 지수 9.2. 상담사 상태 이탈. 완전 내담자 전환.
그 아래로는 수십 개의 다른 이름들이 있었다. 날짜와 함께. 결함 지수와 함께. 그리고 각각의 상태 변화가 기록되어 있었다.
상담사 상태 → 혼합 상태 → 내담자 상태 → 이탈.
모든 기록이 같은 패턴을 따르고 있었다.
"이것은 무엇입니까?"
지훈이 물었다. 자신의 목소리가 낯설었다. 그것이 정말 자신의 목소리인지 확실하지 않았다. 목소리 톤이 조금 더 낮아져 있었다. 마치 누군가 다른 사람의 목소리가 섞여 있는 것처럼.
"기록입니다. 결함의 이동 경로. 상담사의 변화 과정. 체계적인 관찰."
관리자가 노트의 다른 페이지를 넘겼다. 그곳에는 그래프가 그려져 있었다. 상승하는 곡선. 시간이 지날수록 가파르게 올라가는 라인. 그 그래프 아래에는 또 다른 라인이 있었다. 이번엔 하강하는 곡선이었다.
"상담사의 결함 흡수량은 증가합니다. 동시에 상담사의 정체성은 감소합니다. 완벽한 역함수 관계입니다."
"왜 이런 기록을 하는 겁니까?"
지훈이 물었다. 하지만 이미 답을 알고 있었다. 혹은 태호의 기억 속에서 본 것 같았다. 상담실 벽의 사진들. 그곳에 비친 얼굴들. 모두 이전 상담사들이었다. 모두 같은 과정을 거쳤다. 모두 같은 방식으로 사라졌다.
"당신은 누구의 결함을 지고 있는가?"
관리자가 반대로 물었다.
"당신의 정체성은 당신의 것입니까? 아니면 민준의 것입니까? 수진의 것입니까? 태호의 것입니까?"
지훈은 대답할 수 없었다. 그 순간 손가락이 심하게 떨렸다. 검은 실이 흘러나왔다가 다시 흡수되었다. 마치 자신의 몸 안에서 누군가가 저항하고 있는 것처럼. 지훈의 얼굴이 찡그러졌다. 마치 통증을 느끼는 것처럼.
"당신은 몇 명입니까?"
관리자가 마지막 질문을 던졌다.
지훈은 거울을 봤다. 그 속의 얼굴은 더 이상 한 사람의 얼굴이 아니었다. 여러 표정이 겹쳐져 있었다. 여러 눈이 깜빡였다. 여러 입이 숨을 쉬었다. 그리고 그 모든 얼굴이 지훈을 보고 있었다.
절망이 밀려왔다. 이것이 자신의 감정인지, 아니면 태호의 감정인지, 아니면 민준과 수진의 감정인지 구분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 감정은 명확했다. 자신이 누구인지 알 수 없다는 절망. 자신이 점점 사라지고 있다는 절망.
관리자가 노트를 펼쳤다. 더 오래된 페이지들이 드러났다. 그곳에는 더 오래된 이름들이 있었다. 지훈이 본 적 없는 이름들. 상담을 받지 않은 이름들. 하지만 어딘가 익숙한 이름들.
이준호. 2023년 8월 3일. 박민정. 2023년 9월 12일. 김준영. 2023년 10월 28일.
그리고 가장 오래된 페이지. 그곳에는 한 이름만 적혀 있었다.
지훈. 2023년 6월 15일. 최초 상담사.
지훈의 눈이 떨렸다. 그 이름. 자신의 이름. 하지만 날짜가 이상했다. 2023년 6월. 그것은 자신이 상담사가 되기 전이었다. 아니, 자신이 누군가 다른 사람이었던 시절이었다. 그 기억이 갑자기 선명해졌다. 상담실로 끌려 들어가던 날. 누군가 자신을 이 의자에 앉혔던 날. 그 누군가는 은서였다. 은서가 자신을 상담사로 만들었다. 은서가 자신의 기억을 빨아들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자신은 그 과정에서 상담사가 되었다. 아니, 상담사가 아니라 또 다른 내담자가 되었다.
"내일 예약이 있습니다."
관리자가 노트를 닫았다. 가죽 표지가 '쿵' 하고 닫혔다. 그 소리가 총성처럼 들렸다.
"최종 상담입니다."
"누구의?"
지훈이 물었다. 손가락이 더욱 심하게 떨렸다.
관리자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노트의 뒷면을 보여줬다. 거기에는 한 글자씩 또박또박 써 있었다.
은서.
지훈의 눈이 떨렸다. 그 이름. 그 이름은 어디서 들었나. 아니, 들은 게 아니라 알고 있었다. 자신의 기억 속에 있었다. 아니, 자신의 기억이 아니라 누군가 다른 사람의 기억 속에 있었다. 은서. 그것은 자신이 상담사가 되기 전에 만났던 사람의 이름이었다. 아니, 자신이 누군가 다른 사람이었을 때 만났던 사람이었다. 그 기억은 희미했지만 분명했다. 은서는 자신을 상담사로 만들었다. 자신을 이곳으로 데려왔다. 자신을 이 의자에 앉혔다.
깨달음이 밀려왔다. 자신은 처음부터 상담사가 아니었다. 자신은 내담자였다. 그리고 어느 순간 상담사가 되었다. 그 과정에서 자신이 누구인지 잃어버렸다. 그리고 이제 또 다른 내담자가 상담사가 되려고 한다. 그것이 은서다. 아니, 은서는 이미 상담사였다. 은서는 자신을 만들었다. 은서는 자신의 상담사였다. 그리고 이제 은서는 자신이 상담사가 되기를 원하고 있다.
"그리고 당신의 이름도 함께 기록되어 있습니다."
관리자가 노트를 더 기울였다. 은서 아래에는 또 다른 글자가 있었다.
지훈.
두 이름이 나란히 적혀 있었다. 마치 같은 사람인 것처럼. 마치 같은 존재인 것처럼.
"당신은 이미 충분히 준비되었습니다. 내일 밤 10시. 최종 상담이 시작됩니다."
관리자가 상담실을 나갔다. 문이 닫혔다. 잠금음이 들렸다.
지훈은 상담사 의자에 혼자 남겨졌다. 거울 속의 누군가도 함께 남겨졌다. 거울 속의 얼굴은 지훈을 보고 있었다. 혹은 지훈이 거울 속의 누군가를 보고 있었다.
손가락이 다시 떨리기 시작했다. 검은 실이 흘러나왔다. 아무도 없는데 흘러나왔다. 흡수할 대상이 없는데 흘러나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흘러나왔다. 멈추지 않고. 끝나지 않고.
지훈은 손가락을 펴고 오므렸다. 펴고 오므렸다. 검은 실이 공중에서 춤을 췄다. 마치 누군가의 기억이 그려지는 것처럼. 마치 누군가의 삶이 펼쳐지는 것처럼.
휴대폰이 울렸다. 알 수 없는 번호였다. 지훈은 받았다.
"안녕하세요. 저는 은서입니다."
목소리가 말했다. 그 목소리는 지훈의 목소리와 완벽히 같았다. 아니, 거울 속의 목소리와 같았다.
"내일 밤 10시에 뵙겠습니다."
은서의 목소리가 계속됐다. 지훈은 그 말을 끊으려고 입을 열었다. 손이 떨렸다. 휴대폰을 집어던지고 싶은 충동이 밀려왔다. 하지만 손가락은 움직이지 않았다. 마치 누군가 다른 사람이 자신의 손을 조종하고 있는 것처럼.
"잠깐, 당신은 누구예요? 나는..."
지훈이 말을 이었다. 하지만 은서는 이미 다음 말을 하고 있었다.
"당신의 상담을 해드리겠습니다. 이미 충분히 기다렸으니까요. 당신이 나를 만들었으니까요."
"내가? 나는 그런 적이..."
"당신이 상담사였을 때, 나는 당신의 내담자였어요. 당신이 내 결함을 빨아들였어요. 그리고 이제 내가 당신의 상담사가 되는 거예요."
은서의 목소리가 점점 여러 목소리로 변했다. 마치 여러 사람이 동시에 말하는 것처럼. 지훈의 숨이 차올랐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감각. 거울을 깨뜨리고 싶은 충동이 손가락 끝까지 전해졌다.
"내일 밤 10시. 기다리고 있을게요."
전화가 끊겼다.
지훈은 휴대폰을 내려놨다. 손이 계속 떨렸다. 화면에 프로필 사진이 남아 있었다. 그 사진 속의 얼굴은 지훈의 얼굴과 완벽히 같았다. 아니, 거울 속의 얼굴과 같았다. 아니, 자신과 같았다.
상담실의 조명이 더욱 어두워졌다. 아니, 지훈의 눈이 더욱 흐려진 것일 수도 있었다. 구분할 수 없었다. 무엇이 객관적 현실이고 무엇이 자신의 환각인지 더 이상 알 수 없었다.
거울 속의 얼굴이 입을 열었다. 소리가 나왔다. 하지만 그 소리가 거울 속에서 나오는 것인지, 아니면 자신의 입에서 나오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안녕하세요."
목소리가 말했다. 여러 목소리가 겹쳐서 나왔다. 민준의 목소리. 수진의 목소리. 태호의 목소리. 그리고 자신의 목소리. 그리고 은서의 목소리.
"저는 상담사입니다."
지훈은 상담사 의자에서 일어섰다. 다리가 불안정했다. 마치 누군가 다른 사람의 다리를 빌려 쓰고 있는 것처럼. 상담실의 벽으로 손을 짚었다. 벽에 붙어 있는 사진들이 눈에 들어왔다.
사진 속의 얼굴들. 모두 낯익었다. 모두 자신이 거울에서 본 얼굴들이었다. 모두 자신이 상담한 내담자들의 얼굴이었다.
아니. 다시 생각해보니 그들은 모두 상담사였던 것 같았다. 상담사였던 누군가들. 자신처럼 시작했던 누군가들. 그리고 자신처럼 사라진 누군가들.
사진 속의 마지막 얼굴. 그것은 자신의 얼굴이었다. 혹은 자신이 거울에서 본 얼굴이었다. 혹은 자신이 될 얼굴이었다.
손가락에서 검은 실이 계속 흘러나왔다. 이제 그것이 누구의 것인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자신의 것인지 누군가의 것인지 구분할 수 없었다. 어쩌면 처음부터 구분할 필요가 없었던 걸지도.
지훈은 상담사 의자로 돌아갔다. 거울을 마주봤다. 거울 속의 얼굴은 지훈을 보고 있었다. 그 얼굴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당신의 고통을 들어드리겠습니다."
거울 속의 목소리가 말했다.
지훈은 그 말에 대답할 수 없었다. 자신이 상담사인지 내담자인지 이미 구분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니, 구분할 필요가 없었다. 상담사와 내담자는 이미 같은 존재였다.
손가락에서 검은 실이 계속 흘러나왔다. 거울을 향해. 거울에서도 검은 실이 흘러나왔다. 지훈을 향해.
공중에서 그 실들이 얽혔다. 마치 처음부터 같은 실이었던 것처럼.
내일 밤 10시.
최종 상담이 시작될 것이다. 그때 모든 것이 끝날 것 같았다. 혹은 시작될 것 같았다. 혹은 이미 끝나버린 것이 반복되는 것 같았다. 혹은 이 모든 것이 처음부터 정해진 순환이었던 것 같았다.
지훈은 상담사 의자에 앉아 있었다. 거울 속의 누군가도 상담사 의자에 앉아 있었다. 아니, 내담자 의자에 앉아 있었다. 아니, 같은 의자에 앉아 있었다.
손가락에서 검은 실이 계속 흘러나왔다. 멈추지 않고. 끝나지 않고.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