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야근 중독자의 밤
밤 열 시 삼십 분.
S그룹 마케팅팀 사무실은 회색 형광등 아래 무인도처럼 놓여 있었다. 책상 위의 보고서 더미, 모니터 화면의 파란 빛, 강준의 손가락을 타고 넘나드는 마우스 클릭음. 이것이 하루의 마지막 풍경이었다.
강준은 목을 굴렸다. 경추가 딱딱 소리를 냈다. 어제 야근했고, 그 전날도, 그 전전날도 야근했다. 5년을 이렇게 보냈다. 1,825일. 그 중 대부분이 이 사무실에서 끝났다.
팀원들은 이미 떠났다. 박민준이 마지막으로 나가며 "팀장님, 먼저 가세요"라고 했지만, 강준은 고개를 들지 않았다. 마우스만 움직였다. 그러면 사람들은 간다. 그게 이 회사의 문법이었다.
'성공이 가장 중요하다. 감정은 약함이다.'
어머니의 목소리가 떠올랐다. 초등학교 6학년, 반 친구 생일파티에 가고 싶다고 했을 때였다. 어머니는 부엌에서 김밥을 싸면서 그렇게 말했다. 웃는 얼굴이었는데 눈은 웃지 않았다. 그 목소리는 지금도 명확했다. 강준은 손을 멈췄다. 가슴팍이 철렁했다.
아니다. 그런 생각은 야근을 방해한다.
강준은 다시 키보드에 손을 올렸다. 분기별 마케팅 성과 지표. 디지털 광고 효율성. 브랜드 인지도 상승률. 숫자들은 항상 명확했다. 감정처럼 뭉뚱그려지지 않는다. 올라갔으면 올라간 것이고, 내려갔으면 내려간 것이다.
모니터 화면에 반사된 자신의 얼굴을 봤다. 서른 넷. 눈가에 주름이 패였다. 마리아나 해구처럼 깊은 주름. 언제부터 이렇게 늙었지? 아니다. 이건 피로가 아니라 성공의 흔적이다. 그래야 한다.
"팀장님."
강준의 손가락이 멈췄다.
박민준이 책상 옆에 서 있었다. 이미 나갔던 박민준이. 정장을 벗고 다시 돌아왔다. 손에 들린 게 뭐지? 휴대폰이었다.
"먼저 가라고 했는데."
강준의 목소리는 평탄했다. 질책도, 걱정도 담지 않은 톤.
"네, 알겠습니다. 근데 Q3 데이터 수정본이 필요해서요. 내일 아침 회의에 써야 하는데, 팀장님이 정리하신 걸 잠깐만 봐도 될까요?"
거짓이었다. 강준은 알았다. 박민준의 눈빛으로. 그것은 필요가 아니라 동조였다. 함께 남겠다는 신호.
강준은 파일을 열어줬다. 박민준이 책상 옆 의자에 앉았다. 모니터 화면이 두 사람의 얼굴을 비췄다. 한 명은 서른 넷, 한 명은 스물 여덟. 둘 다 같은 표정이었다. 무언가를 증명하고 있는 표정.
박민준이 화면을 훑으며 중얼거렸다. "와, 팀장님 이거 다 손으로 정리하셨어요?"
"응."
"진짜 성의 있으신데요."
성의. 강준은 그 단어를 곱씹었다. 이게 성의일까? 아니면 그냥 할 게 없어서? 아니면 집에 가기가 싫어서?
박민준이 계속했다. "저도 나중에 팀장님처럼 이 정도 수준으로 일하고 싶어요."
"그러려면 야근을 각오해야 한다."
"네, 알겠습니다."
박민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순종하는 개 같은 고개. 강준의 말이 곧 진리인 양. 강준은 갑자기 그 모습이 싫었다. 자기 자신의 모습 같아서.
"아니, 박민준."
"네?"
"먼저 가. 진짜로."
박민준이 잠깐 머뭇거렸다. 그 순간 강준의 가슴이 철렁했다. 박민준이 남을 것 같은 예감. 그리고 그것이 자신의 책임이 될 거라는 예감.
강준은 알았다. 자신이 책임질 거라는 걸. 항상 그래왔다. 자신의 야근은 자신의 선택이지만, 박민준의 야근은 자신의 영향이다. 그 영향 위에서 강준은 5년을 살았다. 그리고 그것을 성공이라고 불렀다.
강준은 일어났다. "진짜 가. 이건 명령이야."
박민준의 얼굴이 굳었다. 강준은 의자를 밀어내고 박민준의 팔을 잡아 일으켜 세웠다. 팀원들 앞에서는 절대 하지 않는 행동이었다. 하지만 지금 강준의 눈빛은 다르다. 박민준을 보호하려는 눈빛이었다.
"팀장님?"
"가. 지금 당장."
박민준은 결국 일어났다. 강준은 그를 엘리베이터 방향으로 밀어냈다. 박민준이 뒤돌아보려 했지만, 강준은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자신의 손이 떨리고 있다는 걸 들킬까봐.
박민준이 떠났다. 다시 텅 빈 사무실. 강준은 혼자 남았다. 형광등만 울고 있었다.
강준은 의자에 앉았다. 손가락이 움직이지 않았다. 박민준이 남겨간 의자가 눈에 들어왔다. 아직 따뜻할 거야. 누군가를 따뜻하게 만드는 건 몸의 열이 아니라 뭔가 다른 거 아닐까.
강준은 그 의자에 손을 얹었다. 따뜻했다. 정말로. 그리고 그 따뜻함이 자신의 손을 통해 가슴으로 전해졌다. 뭔가 깨지는 소리가 들렸다. 자신 안에서.
박민준을 밀어낸 것. 그 행동이 자신을 바꿔놓았다. 처음으로, 자신의 영향력을 거부했다. 처음으로, 누군가를 보호하는 것이 성공보다 중요하다고 느꼈다. 그 느낌이 낯설었고, 두려웠고, 동시에 뭔가 맞는 것 같았다.
밤 열 시 오십 분.
강준은 집에 가기로 결정했다. 보고서는 내일 아침에 마무리하면 된다. 아니다. 내일 아침도 야근이 남아있을 것 같다. 하지만 일단 가자. 이 정도면 충분하다.
지하철역까지 가는 길, 서울 강남의 밤거리가 흘렀다. 편의점 불빛, 택시의 경적음, 피곤한 사람들의 발걸음.
강준의 휴대폰이 울렸다. 카톡. 이서였다.
'오늘도 야근했어? 밥은 먹었어?'
강준은 화면을 들었다 놨다. 들었다 놨다. 손가락이 떨렸다. 답장을 하지 않기로 했다. 침묵도 일종의 말이었다. 휴대폰을 주머니에 넣었다. 하지만 주머니 안에서 휴대폰의 무게가 느껴졌다. 이서의 메시지가 계속 울리는 것 같았다.
집 앞 편의점에 들어갔다. 삼각김밥과 우유. 항상 같은 것들. 강준은 계산을 했다. 점원이 "감사합니다"라고 말했지만, 강준은 고개를 끄덕이지 않았다.
집에 도착했을 때, 시계는 밤 열 시 이십 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강준은 침대에 누웠다. 천장을 봤다. 아무것도 없는 천장.
밤 열 시 삼십 분.
강준의 눈이 떠졌다. 시계를 봤다. 왜? 뭘 기다리는 건가? 아무것도 아니다. 그냥 습관이다. 5년의 습관. 이 시간에 팀원들이 마지막으로 질문을 들고 온다. 이 시간에 강준은 모두를 위해 남아있다.
하지만 지금 강준은 침대에 있다. 혼자. 누구도 그를 필요로 하지 않는 밤 열 시 삼십 분.
창밖의 야경이 보였다. 서울의 불빛. 수십만 개의 창문이 켜져 있고, 그 안에서 수십만 명의 사람들이 뭔가를 하고 있다.
강준은 어디에 속할까?
그 순간, 사무실이 떠올랐다. 텅 빈 사무실. 그곳에서만 강준은 필요한 사람이었다. 그곳에서만 자신의 존재가 증명되었다.
강준의 손가락이 움직였다. 휴대폰을 들었다. 이서에게 다시 카톡을 쓰려다 멈췄다. 화면을 켜고 껐다. 켜고 껐다. 손가락이 계속 떨렸다. 결국 휴대폰을 내려놨다. 침대에 누웠다. 천장을 봤다.
밤 열 시 정각.
강준의 눈이 다시 떠졌다. 이번엔 시계를 보지 않고도 안다. 지금이 몇 시인지. 가슴으로 안다. 밤 열 시. 사무실의 불이 켜져 있는 시간. 누군가를 기다리는 시간.
창밖을 봤다. 서울의 불빛이 흔들렸다. 아니다. 강준의 눈물이 창을 흔드는 거였다. 자신이 뭔가를 잃고 있다는 생각. 박민준을 밀어낸 것. 이서의 메시지를 무시한 것. 5년을 사무실에만 쏟아부은 것. 그 모든 게 한 번에 밀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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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팀장님, 내일 죽으면 그 야근이 무슨 소용입니까?"
텅 빈 사무실. 강준의 책상 앞에 누군가 서 있었다. 손에는 삼각김밥. 얼굴에는 미소. 밤 열 시 정각의 신입 사원.
이수현이었다.
강준의 손은 마우스 위에서 멈췄다. 화면에 떠 있는 분기별 마케팅 리포트가 흐릿해졌다. 몸은 사무실에 있지만, 정신은 방금 전 침대 천장으로 돌아가 있었다. 밤 열 시 정각. 자신도 모르게 기다리던 시간.
"어? 있었네요."
이수현이 책상 옆에 걸터앉았다. 의자에 정중히 앉는 게 아니라 책상 모서리에 엉덩이를 걸친 채, 마치 자신의 방에 온 손님을 대접하는 것처럼 편하게 움직였다. 삼각김밥 두 개를 들고 있었다. 하나는 강준을 향해 내밀었다.
"편의점 세일이었어요. 이 시간에 매장에 있는 건 팀장님이랑 저뿐이더라고요."
강준은 대답하지 않았다. 키보드 위에 손을 올렸다. 입력하는 척했다. 하지만 손가락은 움직이지 않았다.
"김밥 싫어하세요?"
"안 먹어."
"어? 왜요? 자기 전에 뭐라도 먹어야지. 배 고프면 못 잔다니까요."
"일이 있어."
이수현은 고개를 기울였다. 마치 강준의 말을 듣는 게 아니라 그의 얼굴을 읽으려는 표정이었다. 그런 눈빛이 강준을 불편하게 만들었다. 왜냐하면, 그 눈빛 속에서 자신의 거짓이 드러나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일이, 있어요?"
"응."
"뭐 하는 일이요? 진짜 일이요, 아니면 그냥 앉아만 있는 거요?"
강준은 화면을 쳐다봤다. 확실히 마우스 커서는 움직이지 않았다. 분기별 리포트는 이미 완성되어 있었다. 한 시간 전에.
"야근 기록이 깨질까봐?"
이수현의 목소리가 가벼웠지만, 그 안에는 뭔가 날카로운 게 숨어 있었다. 강준은 알아챘다. 이 신입 사원은 자신을 놀리는 게 아니라, 자신을 보고 있었다. 정확히.
"5년을 못 쉬신 거면, 이제 쉬어도 되는 거 아닌가요? 아, 잠깐. 팀장님 이거 봤어요?"
이수현이 휴대폰을 꺼냈다. 화면에는 강준의 사진이 떴다. 사무실 CCTV 영상을 캡처한 것 같았다. 밤 열 시 정각, 모니터 불빛에 얼굴이 창백해진 강준의 모습.
"이거 어제 사진이에요. 팀장님 표정 봤어요? 살아있는 표정 아니잖아요."
강준은 그 사진을 봤다. 자신이 맞는지 의심스러웠다. 그렇게 죽어있는 얼굴이 자신이라니.
"사무실에서만 존재하는 사람처럼 보여요. 마치 밤 열 시가 되면 나타나는 유령처럼."
"뭐 하는 거야."
"팀장님이 정말로 이 시간에 일을 하려고 남아 있다고 생각하세요? 정말로? 아니면 그냥... 집에 갈 곳이 없어서?"
강준의 가슴이 철렁했다. 너무 정확한 말이었다. 집에 갈 곳이 없어서. 그곳에서만 자신은 필요했다.
이수현이 일어났다. 강준의 책상 뒤로 가서, 모니터의 전원 버튼을 눌렀다.
"뭐 하는 거야!"
강준이 일어났다. 이수현에게 다가갔다. 하지만 이수현은 한 발 물러섰다. 둘 사이에는 책상이 있었다.
"팀장님, 이거 봐요."
이수현이 모니터를 가리켰다. 꺼진 화면. 검은 화면.
모니터가 꺼지자 화면에 비친 자신의 얼굴도 사라졌다. 강준은 그 검은 화면 속에서 자신을 찾으려 했다. 하지만 아무것도 없었다. 존재가 지워지는 기분이었다.
"이 안에만 팀장님이 있어요. 이 안에서만 팀장님은 존재해요. 그런데 이걸 끄면?"
"꺼내!"
강준이 외쳤다. 분노와 공포가 뒤섞였다. 모니터 안에서만 자신은 필요한 사람이었는데, 그것마저 꺼져버렸다. 이 어둠 속에서 자신은 누구인가?
"팀장님이 정말로 이 시간에 일을 하려고 남아 있다고 생각하세요?"
이수현의 목소리가 더 가까워졌다. 강준은 눈을 감았다. 뭔가 무너지는 소리가 들렸다. 자신 안에서.
"최소한 자기 자신한테는 솔직해야 하지 않나요?"
그 말이 떨어지는 순간, 강준의 가슴이 철렁했다. 자기 자신한테 솔직하다. 그런 게 가능한가? 지금까지 강준은 자신의 감정을 마주친 적이 없었다. 아니, 마주치려고 하지 않았다. 감정은 약함이었고, 약함은 패배였고, 패배는 존재의 부정이었다.
"내일 봅시다, 팀장님."
이수현이 돌아섰다. 엘리베이터 방향으로 걸어갔다. 그 뒷모습이 점점 작아졌다.
강준은 책상에 남겨진 삼각김밥을 봤다. 계란말이. 자신이 싫어하는 맛인 줄 알면서도, 이수현은 이걸 가져왔다. 왜? 왜 자신 따위를 위해?
엘리베이터의 문이 닫혔다. 다시 텅 빈 사무실이 됐다. 형광등 불빛 아래서, 강준의 책상만 남았다. 그리고 그 위의 삼각김밥.
강준은 천천히 앉았다. 모니터가 꺼져 있었다. 일을 할 수 없었다. 이수현이 전원을 껐으니까. 그럼 자신은 여기서 뭘 하는 건가?
그 순간, 책상 옆의 의자가 보였다. 이수현이 앉던 의자. 그곳에 앉아서 자신을 보던 눈. 그 눈이 자신을 읽던 방식. 그리고 박민준이 앉던 의자. 자신의 영향 아래 남겨진 의자.
강준의 손이 떨렸다. 이번엔 마우스를 들고 있지 않았다. 공중에서 떨리고 있었다.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손가락이 경련을 일으켰다.
밤 열 시 삼십 분.
아직도 아무도 오지 않는다. 이제는 아무도 올 리 없다. 이수현은 갔으니까. 그리고 자신은.
자신은 혼자다.
창밖의 야경이 흔들렸다. 아니다. 강준의 눈이 흔들리고 있었다. 눈물이 흐렸다. 자신의 얼굴이 모니터에 반사되지 않는 이상, 아무도 이 눈물을 보지 못할 거다.
"내일도 올까?"
혼잣말이 나왔다. 강준은 자신이 그런 말을 했다는 사실에 놀랐다. 기대한다. 자신이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다. 기대하고 있다. 그것도 일이 아닌 다른 이유로.
그것은 감정 표현이었다. 약함이었다. 패배였다.
그리고 강준은 처음으로 그것이 나쁜 것만은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다.
책상 위의 삼각김밥이 보였다. 계란말이. 자신이 싫어하는 맛. 하지만 누군가는 자신이 그걸 먹을 거라고 생각했다. 누군가는 자신을 염두에 두고 그걸 가져왔다.
강준은 천천히 손을 뻗었다. 삼각김밥을 들었다. 종이를 벗겼다. 입에 넣었다.
계란말이의 맛이 혀 위에 퍼졌다. 싫은 맛이었다. 하지만 동시에, 이 맛 속에는 뭔가 따뜻한 게 있었다. 온기가 혀를 감쌌다. 차가운 입안을 데웠다. 호흡이 조금 깊어졌다.
강준은 천천히 씹었다. 삼각김밥이 목으로 넘어갔다. 배가 따뜻해졌다. 손가락의 떨림이 조금 멈췄다.
밤 열 시 정각.
아직도 아무도 오지 않는다. 하지만 강준은 알고 있었다.
내일도 올 거다. 그 신입 사원은.
내일도 밤 열 시에 자신의 책상 앞에 설 거다. 그리고 자신은 그 시간을 위해 오늘 밤을 견디기로 결정했다. 시계를 반복해서 확인하며. 손가락을 깨물며. 심장의 박동을 느끼며.
감정 표현 불능증의 남자가, 처음으로,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