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 퇴고본

오명준의 연구실은 자정을 넘어 오전 1시로 향하고 있었다. 모니터에서 나오는 푸른 빛이 교수의 얼굴을 비추고 있었다.

혈액 샘플 분석 결과가 화면에 떠 있었다. 아드레날린 수치 1247 pg/mL. 정상 범위는 100~680. 신경계 호르몬이 상시적으로 극도로 활성화된 상태였다.

오명준은 마우스를 클릭했다. MRI 영상이 나타났다. 뇌의 횡단면 이미지들. 시간 지각을 담당하는 우측 전전두엽 피질과 후두정엽 접합부. 그곳의 활성화 패턴이 정상인과는 완전히 달랐다. 혈류 신호가 비정상적으로 강렬했고, 신경 가소성의 흔적이 명확했다.

오명준이 중얼거렸다. 키보드를 두드렸다. 문서 새로 만들기. 제목을 입력했다.

**'시간 인지 이상과 가속적 신체 노화의 상관성—신경생물학적 가설'**

그의 손가락이 멈췄다. 이 논문이 공개되면 이준호는 영웅이 아니라 생물학적 이상 현상이 된다. 신장 기능 검사 결과를 다시 봤다. 혈청 크레아티닌 2.8 mg/dL. 4주 전 검사에서 2.1이었다. 악화 속도가 가속화되고 있었다.

심장 초음파 이미지를 더블클릭했다. 좌심실 벽이 두꺼워져 있었다. 좌심실 비대증. 초기 심근병증의 신호들. 만약 이준호가 현재 속도로 능력을 사용한다면, 신부전과 심부전이 동시에 진행될 것이다.

오명준은 문서에 입력을 시작했다. 머리말. 배경. 임상 소견. 그러다가 다시 멈췄다. 저장할 것인가. 삭제할 것인가. 그 사이에서 흔들렸다.

***

병원 복도. 오후 2시. 김수진이 오명준의 연구실 문을 두드렸다.

"교수님."

오명준이 문을 열었다. 수진의 얼굴은 창백했다. 밤을 새운 듯한 눈동자.

"준호 선생님을 도와줄 방법이 있나요?"

오명준은 말을 잠깐 멈췄다. 대답해야 할 말과 해서는 안 될 말이 충돌했다.

"있다면 그건 그가 능력을 사용하지 않는 것뿐이야."

수진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그것이 유일한 방법이라는 뜻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불가능하다는 뜻이었다. 그녀는 알았다. 준호가 능력을 멈출 수 없다는 것을. 그 능력이 그에게 무엇인지.

수진은 연구실 책상에 놓인 노트북을 봤다. 화면에 떠 있는 그래프들. 신장 기능. 신체 나이. 심장 기능. 그리고 마지막 그래프.

**'95% 사망률'**

그 숫자가 화면에서 반짝였다.

수진의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오명준은 그것을 바라봤다. 그리고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수진이 입을 열었다.

"제가... 할 수 있는 게 있나요?"

오명준은 침묵했다. 그 침묵 속에서 수진은 결정했다. 연구실을 나가며 핸드폰을 집어 들었다. 손가락이 빠르게 움직였다. 메시지를 입력했다.

**'이 데이터는 어디서 나왔나요? 정말인가요?'**

발송 대상: 박영준 과장.

그 메시지는 곧 읽음 표시가 될 것이었다. 하지만 수진은 이미 응급실로 내려가고 있었다. 준호를 찾기 위해. 그가 무엇을 할 것인지 지켜보기 위해.

***

응급실. 오후 3시 40분. 준호는 침대에 누워 있었지만 잠들지 못했다. 핸드폰에 응급실 시스템 앱을 깔아두었다. 당직 일정. 환자 현황. 생존율 데이터. 모든 것이 실시간으로 업데이트되었다.

침상 점유율 85%. 중증 환자 비율 34%. 정상 범위였다. 하지만 그 정상이 준호를 불안하게 만들었다. 자신이 없어도 응급실이 돈다는 것. 그것은 자신이 필요 없다는 뜻이었다.

그의 손가락이 떨렸다. 핸드폰을 내려놨다. 가슴이 철렁했다. 불규칙한 심박. 또 시작됐다. 이제는 하루에 몇 번씩 일어났다. 박영준은 병가를 지시했지만, 준호는 그것이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자신을 숨기기 위한 것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는 일어섰다. 아파트를 나갔다. 병원으로 향했다.

***

오명준의 연구실. 오후 4시 정각. 오명준이 준호를 불렀다. 이메일로. 간단한 메시지.

**'당신의 검사 결과에 대해 이야기할 필요가 있습니다.'**

준호는 15분 만에 도착했다. 빠른 걸음. 숨이 차 있었다. 오명준은 그것을 봤다.

"들어와."

오명준이 말했다. 문을 닫았다.

모니터가 켜져 있었다. 그래프들. 데이터들. 준호의 모든 것.

"혈액 검사 결과를 정리했습니다."

오명준이 마우스를 움직였다. 첫 번째 그래프가 나타났다. 신장 기능 지표. 혈청 크레아티닌의 시간 변화. 가파른 우상향 곡선. 4주 전 2.1에서 현재 2.8.

"정상 범위는 0.7에서 1.3입니다. 당신은 이미 신부전 초기 단계에 있습니다."

준호가 그래프를 봤다. 자신의 신체를 숫자로 본 것은 처음이었다. 피로감은 피로감이었지만, 이것은 다른 종류의 현실이었다. 심박이 가파르게 상승했다. 목이 말라왔다.

두 번째 그래프가 나타났다. 신체 나이 추정 곡선. 32세 준호의 신체 나이는 55세였다. 그것도 4주 전에는 52세였다.

"주당 0.75세씩 나이가 들고 있습니다."

준호의 호흡이 얕아졌다. 손가락이 떨렸다. 화면의 숫자들이 흔들렸다.

세 번째 그래프. 심장 기능. 좌심실 비대증의 진행 곡선.

"대략 18개월 이내에 심부전이 시작될 것입니다."

준호가 입을 열었다. 목소리가 떨렸다.

"그 이후는?"

오명준이 마우스를 움직였다. 마지막 그래프. 능력 사용 횟수와 신체 손상의 상관성. 그 상관성으로부터 계산된 예상 수명.

"당신이 현재 속도로 능력을 사용한다고 가정했을 때, 생물학적으로 안전한 추가 사용 횟수는 약 50회입니다."

오명준이 마우스 포인터를 그래프의 끝점에 갖다 댔다.

"그 이후는 심부전으로 인한 사망 확률이 95%입니다."

침묵이 흘렀다. 준호는 그 숫자를 이해하려고 애썼다. 95%. 20명 중 19명이 죽는다는 뜻이었다. 심박이 더욱 불규칙해졌다. 손가락의 떨림이 심해졌다. 화면의 그래프가 눈앞에서 춤을 추는 것 같았다.

"당신의 신경 영상에서 시간 지각 영역의 비정상적 활성화가 관찰되었습니다. 뇌는 시간을 되돌리는 과정에서 극도의 신경 활성화를 겪고 있습니다. 매번 5분을 되돌릴 때마다 당신의 신체는 약 1개월의 스트레스를 한 번에 받습니다."

오명준의 설명이 계속되었다. 준호의 침묵이 길어질수록 더 빠르게.

"그것이 축적되면서 신장, 심장, 신경계가 모두 손상되고 있습니다."

준호가 질문했다.

"그럼 멈추면?"

"진행이 지연될 뿐입니다. 이미 손상된 부분의 회복 가능성은 낮습니다."

오명준의 대답은 명확했다.

"당신은 50회 더 능력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또는 지금 멈출 수 있습니다. 둘 다 당신의 남은 수명은 변하지 않습니다. 차이는 그 50회 동안 몇 명을 더 살릴 것인가, 하는 것뿐입니다."

준호의 얼굴이 창백했다. 손가락이 떨렸다. 이번엔 심박이 불규칙해서가 아니었다. 공포였다. 처음으로, 죽음을 수치로 봤다. 확률로 봤다. 그것은 추상적인 두려움이 아니었다. 그것은 의료 차트 같은 현실이었다.

"이 데이터는 누가 알고 있나요?"

준호가 물었다.

"현재로선 저와 당신뿐입니다."

오명준이 말했다.

"박영준 과장은?"

"모릅니다."

"그럼 이은지 기자는?"

오명준이 순간 침묵했다. 그 침묵이 모든 것을 말해줬다.

"아직은 모릅니다. 하지만 그녀는 추적 중입니다. 당신의 의료 기록, 병원 내부 인사 네트워크를 통해 접근하고 있습니다. 늦어봐야 1주일입니다."

준호가 일어섰다. 다리가 떨렸다. 모니터를 봤다. 자신의 신체 데이터. 95%. 50회. 18개월.

그것들이 화면에서 계속 반짝였다.

***

응급실. 오후 5시 15분.

준호가 들어왔다. 당직복을 입고. 병가 복귀. 아무도 말리지 않았다. 박영준은 그것을 원했다. 준호가 돌아와야 병원의 평판이 유지되기 때문이었다.

응급실 간호사 장수연이 준호를 봤다. 그의 얼굴. 더 창백해졌다. 눈 주변의 주름. 손가락의 떨림. 장수연은 25년 경험으로 모든 것을 알았다. 그것은 죽음 앞의 얼굴이었다.

그 순간, 사이렌 소리가 울렸다.

응급차. 그리고 또 다른 응급차. 그리고 또 다른 응급차. 연쇄로.

"연쇄 교통사고. 강남대로 인터섹션. 환자 5명 동시 도착 예정."

무선 호출이 울렸다.

응급실의 모든 손이 움직였다. 침상을 준비하고. 기구를 확인하고. 의사를 호출하고.

응급차가 도착했다. 첫 번째 환자. 30대 남성. 복부 외상. 의식 있음. 침상 1번.

두 번째 환자. 50대 여성. 흉부 외상. 의식 소실. 침상 2번.

세 번째 환자. 20대 여성. 두부 외상. 중증. 침상 3번.

네 번째 환자. 40대 남성. 의식 있음. 경미. 침상 4번.

다섯 번째 환자.

준호의 눈이 멈췄다.

"침상 5번. 30대 남성. 음주 상태. 뇌진탕 의심. 복부 외상 경미."

음주 상태. 뇌진탕. 그리고.

그 얼굴.

김태호.

2주 전, 준호가 심폐소생술 35분 끝에 사망 선고를 받았던 환자. 준호가 시간을 되감았던 환자. 준호가 살린 환자.

"준호."

박영준이 말했다. 그의 목소리에 기대감이 있었다. 준호가 기적을 만들어주기를 바라는 목소리였다.

준호가 침상 5번으로 접근했다. 김태호의 얼굴을 봤다. 눈이 떠져 있었다. 호흡이 있었다.

"...뭐... 뭐 하는 거야?"

김태호가 중얼거렸다. 술 냄새가 풍겼다.

"당신이 몰았나요?"

준호가 물었다.

"응... 응급한 일이... 잠깐만... 차 한 대가... 나타났어..."

간호사가 차트를 들었다. 준호에게 건넸다. 사고 상황 정리.

**'운전자: 김태호(음주운전 상태, 혈중알콜농도 0.15%). 피해 차량: 2대. 피해자: 3명(사망), 1명(중상).'**

3명. 사망.

준호의 손가락이 떨렸다. 시야가 흐렸다. 그것은 눈물이 아니었다. 혈압이 급상승해서였다. 뇌의 혈류량이 변하면서 시각이 왜곡되었다.

"이... 이 사람이..."

김태호가 준호를 봤다.

"당신... 응급실... 의사?"

"네."

준호의 목소리가 떨렸다.

"나... 살았어... 고마워..."

그 말이 끝났다. 김태호의 입이 또 열렸다.

"근데... 이렇게 살아가지고... 뭐 하나... 차라리 그때... 죽었으면..."

그 말.

그 말이 준호의 모든 것을 부수고 있었다.

차라리 죽었으면.

준호가 살린 생명이, 다른 3명을 죽였다. 그리고 지금 이 환자는 자신이 죽었으면 좋았을 거라고 말했다.

준호의 가슴이 수축했다. 호흡이 얕아졌다. 손가락이 파르르 떨렸다. 능력을 사용하고 싶었다. 지금 이 순간을 되돌리고 싶었다. 자신이 김태호를 살리지 않았던 그 시간으로. 그렇다면 3명이 살아 있을 것이었다. 그렇다면 자신이 이 죄책감을 느끼지 않을 것이었다.

손가락이 들렸다. 뇌의 시간 지각 영역이 극도로 활성화되었다. 아드레날린이 폭주했다. 능력이 발동하려 했다.

하지만 오명준의 데이터가 떠올랐다. 95%. 50회. 18개월.

능력을 사용하면 그것이 현실이 되는 것이었다. 자신의 죽음이 더 가까워지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무엇을 하는가.

능력을 사용하지 않으면 3명은 여전히 죽어 있고, 자신은 이 죄책감을 안고 살아야 한다. 능력을 사용하면 3명을 살릴 수 있지만, 자신은 더 빨리 죽는다.

준호의 손이 내려왔다. 손가락 끝의 경련이 멈췄다. 호흡을 정상화하려 애썼지만 실패했다. 능력을 멈춘 선택. 그것의 무게가 신체를 짓누르고 있었다.

준호가 김태호의 복부를 다시 촉진했다. 경미하다고 했다. 그렇다면 수술이 필요 없을 수도 있다. 그렇다면 능력 없이도...

아니었다. 음주 상태에서의 신경학적 판단은 신뢰할 수 없었다. 뇌진탕 의심. 추가 검사가 필요했다. CT. MRI. 그 사이에 뭔가 놓칠 수 있었다.

준호가 차트를 다시 읽으려다 손이 떨려 떨어뜨렸다. 종이가 바닥에 흩어졌다. 의료 판단이 마비되었다. 의사로서의 객관성이 무너졌다.

"준호?"

장수연이 그를 잡았다. 준호의 얼굴이 창백했다. 입술이 파랬다. 손가락이 여전히 떨리고 있었다. 능력을 발동할 것인지, 말 것인지. 그 경계에서.

"의사를 불러!"

장수연의 목소리가 울렸다.

응급실의 모든 것이 멈췄다. 의사가 쓰러지려고 했다.

***

그 순간, 병원 복도의 어느 곳에서.

박영준이 수진의 메시지를 다시 읽었다. 그는 이미 알고 있었다. 오명준의 데이터에 대해. 준호의 상태에 대해.

그리고 지금 응급실에서 일어나고 있는 것도.

박영준은 응급실로 향했다. 준호를 보기 위해.

왜 준호를 병가에서 돌려보냈는가. 평판 때문만은 아니었다. 준호가 필요했다. 준호의 능력이 필요했다. 그리고 준호가 그 능력을 사용하도록 강제해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이 사건으로.

박영준은 냉철했다. 의료 행정가의 입장에서 모든 것을 계산했다. 준호의 생명. 환자들의 생명. 병원의 명성. 그 모든 것이 저울질 위에 있었다.

응급실 문이 가까워졌다. 박영준은 문을 열고 들어섰다. 침상 5번 주변의 혼란을 봤다. 준호가 쓰러지려는 것을 봤다. 그리고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침묵으로 상황을 방치했다. 준호가 선택하도록 내버려두었다. 그것이 박영준의 방식이었다. 능동적으로 조종하지 않고, 상황을 방치하여 필연을 만드는 것.

그의 눈빛이 준호를 향했다. 말 없는 지시. 침묵의 압박. 박영준은 그 자리에 서 있었고, 준호는 그것을 느꼈다.

***

한편, 어느 카페에서.

이은지 기자가 노트북 화면을 봤다. 병원 내부 정보. 준호에 대한 기사 아이디어. 그리고 1주일이라는 타임리미트.

그녀는 이미 움직이고 있었다. 준호의 비밀을 파헤치기 위해. 오명준의 연구실 출입 기록. 준호와 오명준의 만남. 그리고 병원 내 누군가의 제보.

핸드폰이 울렸다. 알 수 없는 번호. 이은지가 받았다.

"기자님?"

남자 목소리였다. 낮고 신중한 톤. 음성 변조가 되어 있었다.

"네, 누세요?"

"당신이 찾는 정보. 준호 선생님에 대한 정보 말입니다."

이은지의 손가락이 빠르게 움직였다. 통화를 녹음했다.

"누구신가요?"

"그건 중요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당신이 알고 싶어 하는 것이 무엇인가, 하는 것입니다."

침묵. 이은지는 기자의 직관으로 느꼈다. 이 사람은 준호를 고발하려는 사람이 아니었다. 다른 누군가를 고발하려는 사람이었다.

"준호 선생님이 아닌 누군가를 말씀하시는 건가요?"

"병원 내부. 그곳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 당신이 알아야 할 것들이 있습니다. 오늘 밤 응급실에서."

통화가 끊겼다.

이은지는 핸드폰을 내려놨다. 손가락이 키보드 위에서 멈췄다. 기사 제목을 다시 생각했다.

**'응급실의 기적, 그 대가는?'**

아직 아니었다. 더 큰 제목이 필요했다. 더 큰 진실이 필요했다.

그녀는 누가 자신에게 정보를 주고 있는지 알아야 했다. 그것이 전체 이야기를 바꿀 것이었다.

1주일. 아니, 오늘 밤. 모든 것이 드러날 것이었다.

이은지는 가방을 집어 들고 일어섰다. 병원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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