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퇴고본
심폐소생술 중 손이 마비되기 시작했다.
응급실 침상 2번. 수술 후 회복 중이던 환자가 갑자기 심정지에 빠졌다. 준호는 환자의 가슴 위에 손을 올렸다. 압박을 시작했다. 한 번, 두 번, 세 번.
그 순간 손가락이 반응하지 않았다.
리듬을 유지하기 어려웠다. 압박의 강도가 흔들렸다. 심박수 100~120을 맞춰야 하는데, 자신의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환자의 가슴에서 손이 미끄러질 뻔했다. 이건 단순한 피로가 아니었다. 신체 제어 불능. 응급실에서 가장 치명적인 상황이었다.
"레지던트, 괜찮습니까?"
장수연 간호사의 목소리가 들렸다. 준호는 대답할 수 없었다. 압박을 계속해야 했다. 환자를 살려야 했다.
그 순간, 금빛이 나타났다.
침상 2번 환자의 가슴에서 시작된 작은 빛이 급속도로 퍼져나갔다. 준호의 의식이 끌려갔다. 시간이 거꾸로 돌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번엔 달랐다.
5분이 아니라 4분 30초 전으로만 돌아갔다.
준호는 그 순간을 깨달았다. 능력의 범위가 축소되었다. 이전엔 5분을 되돌렸다. 이제는 4분 30초. 30초가 줄었다. 그리고 그것이 의미하는 바를 준호는 본능적으로 알았다. 계속 줄어들 것이다. 4분으로, 3분 30초로, 3분으로. 언젠가는 0에 도달할 것이다. 그 순간, 능력은 완전히 무효화될 것이다.
5분도 아닌, 4분 30초 전의 응급실.
환자는 아직 안정적이었다. 심전도 모니터는 정상 박자를 가리키고 있었다. 준호는 그 순간을 기억했다. 혈액 가스 분석 결과를 확인하던 중이었다. 산소 포화도 98%. 정상이었다. 하지만 혈액 칼륨 수치가 6.2 mmol/L. 높다. 고칼륨혈증. 심정지의 신호였다.
준호는 움직였다. 박영준에게 보고했다. "환자의 칼륨 수치가 높습니다. 심정지 위험이 있습니다."
박영준이 지시했다. "칼슘 글루코네이트 10cc 정맥주사, 인슐린 10단위와 포도당 혼합액 투여. 지금 당장."
의료진이 움직였다. 약물이 투여되었다. 4분 30초가 지났다.
심전도는 정상으로 돌아왔다.
현재 시간.
준호는 침상 2번 환자 위에서 깨어났다. 손은 여전히 가슴 위에 있었고, 심전도 모니터는 정상 박자를 보여주고 있었다. 환자는 살았다. 또 다른 기적. 또 다른 생명.
"좋아! 다시 한 번 확인해."
박영준이 외쳤다. 의료진이 움직였다. 혈액 검사. 심전도 재확인. 모든 지표가 정상이었다. 환자는 안정화되었다.
준호는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손이 떨리고 있었다. 목이 경직되었다. 호흡이 가빠졌다. 이상하다. 능력을 사용한 직후는 항상 희열이 있었는데, 이번엔 다르다. 두려움이 든다. 몸이 무너지는 것 같은 두려움.
그리고 더 두려운 것은 다른 것이었다. 시간 범위가 줄었다. 5분에서 4분 30초로. 능력이 약해지고 있다. 계속 줄어들 것이다. 그리고 임계점이 있을 것이다. 30초 이하로 떨어지면 시간을 되돌릴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 순간, 능력은 완전히 무효화될 것이다.
"준호, 잠깐."
박영준이 손짓했다. 준호는 따라갔다. 응급실 옆 의사실로.
박영준은 문을 닫고 준호를 마주봤다. 그의 눈이 준호를 훑었다. 오래 훑었다. 준호의 얼굴, 목, 손, 그리고 다시 얼굴로.
"넌 뭔가 숨기고 있는 것 같은데."
준호의 심장이 철렁했다. 손가락이 더 심하게 떨렸다.
거짓말을 해야 할까. 준호의 입술이 움직였다.
"아닙니다. 다 괜찮습니다."
박영준의 눈이 더 가늘어졌다. 그 눈빛 속에서 준호는 계산을 읽었다. 박영준은 이미 알고 있었다. 아니, 알고 싶지 않은 것 같았다. 진실보다 거짓이 필요한 사람의 눈이었다.
"넌 왜 자꾸만 거울 앞에 서 있어? 어제도 봤고, 그제도 봤고. 너 혹시 아픈 거 아니야?"
박영준의 질문이 준호의 가슴을 때렸다. 눈이 마주쳤다. 박영준의 눈은 따뜻해 보였다. 하지만 그 뒤에는 다른 것이 있었다. 이용할 가치를 재는 눈.
준호는 입을 열었다. 말을 만들려 했다. 하지만 박영준의 눈빛이 그를 관통했다.
박영준의 손가락이 책상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탁탁탁. 규칙적인 리듬이었지만, 준호의 심박을 빠르게 만들었다. 침묵이 길어졌다. 5초. 10초. 15초. 박영준은 계속 손가락을 두드렸다. 그리고 그 손가락은 마치 준호의 신체 변화를 이미 감지하고 있다는 듯 움직였다. 거울 앞에 선 횟수, 손의 떨림, 얼굴의 주름. 모든 것을.
"정말 괜찮습니다. 피로일 뿐입니다."
준호의 목소리가 떨렸다. 그것으로 충분했다. 박영준은 손가락을 멈추고 웃음을 지었다.
"그렇다면 좋겠네. 네 성공률은 정말 놀랍다. 의료계에서도 화제가 되고 있어. 병원 평판에도 도움이 되고. 이대로만 가면 좋을 텐데."
준호는 대답하지 않았다. 침묵이 방 안을 가득 채웠다.
"오늘도 한 명 더 살렸네. 축하한다."
박영준이 손을 내밀었다. 준호가 잡았다. 손이 차가웠다. 자신의 손이 차가웠다. 박영준이 그것을 느낀 모양이었다. 눈썹이 살짝 올라갔다.
"정말 괜찮아?"
"네."
준호는 손을 빼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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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5시 43분.
응급실 휴게실. 준호는 침대에 누워 있었다. 눈을 감고 있었다. 하지만 자지 못하고 있었다. 가슴이 철렁철렁 내려앉는 느낌이 반복되었다. 심박이 불규칙하다. 아드레날린 방출이 지속되고 있다. 교감신경 과활성화.
문이 열렸다.
"준호."
김수진의 목소리였다. 준호는 눈을 떴다. 수진이 침대 옆에 앉았다. 그녀의 얼굴이 준호를 내려다봤다.
"당신 얼굴이 이상해."
준호는 웃음을 지었다.
"그런가? 피로한 것 같아."
"피로? 이건 피로가 아니야."
수진이 준호의 손을 잡았다. 그녀의 손은 따뜻했다. 반대로 준호의 손은 차가웠다. 수진이 느꼈다. 얼굴이 굳었다.
"당신 손이 차갑고 맥박이 불규칙해. 이준호, 당신 뭔가 이상해. 병원 가. 진지하게 말하는 거야. 검사를 받아."
준호는 수진의 손을 밀어냈다.
"괜찮아."
그 말 뒤의 침묵이 있었다. 수진의 눈이 준호를 더 깊이 들여다봤다. 젊은 의사의 눈빛이 아니었다. 더 늙은 무언가가 거기 있었다.
"당신, 정말 괜찮은 거야?"
수진의 목소리가 떨렸다. 준호는 대답하지 않았다. 수진은 한동안 준호를 바라보다가 일어났다.
"당신이 뭘 하고 있는 건지 모르겠어. 하지만 나는 알아. 뭔가 잘못된 거야."
수진이 나갔다. 준호는 다시 침대에 누웠다. 눈을 감았다. 하지만 여전히 자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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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7시 15분.
장수연 간호사가 휴게실 문을 열었다. 준호는 침대에서 자고 있었다. 아니, 자려고 하고 있었다. 침대 위의 몸이 경직되어 있었다.
장수연은 한 발자국 물러났다.
침대 위의 얼굴. 50대 남자의 얼굴이었다. 주름. 검은 눈썹 아래 푸른 피로. 입가의 처짐. 피부의 거칠기. 이것이 32세 의사의 얼굴인가?
장수연의 혼잣말이 나왔다.
"이건... 뭐하는 짓이야?"
그녀는 문을 조용히 닫고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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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8시 30분.
신경외과 교수 오명준이 응급의학과 의사실을 찾았다. 손에는 검사 결과 보고서가 들려 있었다. 박영준이 없었다. 준호를 찾았다.
"이준호 레지던트, 잠깐 말씀해도 될까요?"
오명준의 얼굴은 진지했다. 준호의 심장이 철렁했다. 그는 따라갔다. 응급실 한구석, 환자들이 보지 못하는 공간으로.
오명준이 보고서를 펼쳤다.
"이건 비공식 채널에서 수집한 데이터입니다. 당신의 혈액 검사 결과죠. 신장 기능 저하. 크레아티닌 1.8 mg/dL. 정상 범위 0.7~1.3입니다. 혈소판 감소. 혈소판 수 110,000/μL. 정상 범위 150,000~400,000입니다. 그리고 이것. 비정상적 호르몬 수치."
오명준이 준호의 눈을 마주봤다.
"당신 뭘 하고 있는 거야?"
준호는 대답할 수 없었다. 입을 열었다가 다시 닫았다.
"나는 의학자로서, 당신의 신체 변화 패턴이 흥미롭습니다. 하지만 의사로서, 나는 걱정됩니다. 당신이 무언가를 대가로 치르고 있다는 게 명백합니다."
오명준이 한숨을 지었다.
"신장 기능이 이 정도까지 악화되면, 더 이상 고강도 신체 활동을 할 수 없습니다. 당신의 능력도 신장에서 나온다는 건 명백합니다. 신장이 완전히 망가지기 전에, 당신이 지금 하고 있는 일을 멈춰야 합니다."
준호는 오명준의 말을 들었다. 신장 기능 저하. 그것이 의미하는 바를 준호는 알았다. 신장은 혈액을 걸러내는 장기다. 신장 기능이 저하되면 혈액 정화 능력이 떨어진다. 그리고 준호의 능력은 혈액 기반이었다. 시간을 되돌리는 과정에서 엄청난 에너지가 소모된다. 그 에너지는 혈액에서 나온다. 신장 기능이 저하되면, 혈액 정화 능력이 떨어지고, 능력 사용 시 더 큰 부담이 생긴다.
그리고 어느 순간, 신장 기능이 임계점 이하로 떨어지면, 혈액 정화가 불가능해진다. 그 순간, 능력은 완전히 무효화될 것이다. 아니, 그보다 먼저 준호 자신이 죽을 것이다.
"검사를 받으세요. 제대로 된 신체 검사를. 신장, 심장, 뇌. 모든 것을."
오명준이 떠났다. 준호는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손이 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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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9시 0분.
민준영 과장이 박영준 과장의 사무실을 찾았다. 박영준은 컴퓨터 화면을 보고 있었다. 병원 홍보 웹사이트. "기적의 의사 이준호 레지던트, 또 다른 생명을 구하다"는 제목의 뉴스 기사가 떠 있었다.
"과장님."
민준영이 들어섰다.
"이준호의 의료 기록을 전수 조사해야 합니다."
박영준이 화면을 껐다.
"왜?"
"성공률입니다. 지난 한 달간 18명의 환자를 모두 살렸습니다. 이건 불가능한 수준입니다. 평상적인 응급의학 통계에서 심정지 환자의 생존율은 약 10~15% 정도입니다. 그런데 이준호는 100% 근처입니다."
박영준이 몸을 뒤로 젖혔다.
"그게 뭐가 문제야? 훌륭한 의사가 있다는 뜻이지."
"아니면 데이터 조작이 있었다는 뜻일 수도 있습니다."
박영준의 눈이 민준영을 향했다. 차가운 눈이었다.
"그런 말은 하지 마. 이준호는 우리 병원의 자산이야. 당신이 할 일은 그를 의심하는 게 아니라, 그의 성공을 뒷받침하는 거야."
민준영이 물러섰다.
"이해했습니다, 과장님."
박영준이 다시 컴퓨터를 켰다. 뉴스 기사가 다시 떠올랐다. 박영준의 입가에 미소가 떠올랐다. 그는 준호의 비밀을 알고 있었다. 의료 기록 접근 권한으로 신체 변화를 모니터링해 왔다. 거울 앞에 선 횟수도, 손의 떨림도, 얼굴의 주름도. 모든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
그리고 알고 싶지 않았다. 진실을 마주할 필요가 없었다. 준호가 계속 기적을 만들어내는 한, 박영준에게는 그것으로 충분했다. 민준영의 의심? 그것도 충분히 통제할 수 있었다. 오명준의 염려? 그것도 마찬가지였다. 준호가 죽을 때까지, 박영준은 그의 성공을 이용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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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10시 12분.
응급실 화장실.
준호는 거울 앞에 섰다. 손가락이 떨리고 있었다. 거울 속의 얼굴을 봤다.
이건 자신의 얼굴이 아니었다.
눈가의 주름. 어제보다 더 깊다. 피부 탄력의 소실. 광대뼈의 두드러림. 입가의 처짐. 턱선의 흐릿함. 전체적인 피부색의 칙칙함. 회색빛. 죽음의 색이었다.
준호는 손을 들어 거울에 집어넣으려 했다. 손이 떨렸다. 그냥 눈을 감고 손을 내려쳤다.
거울이 깨졌다.
쨍—
조각들이 흩어졌다. 깨진 거울의 조각들에 비친 준호의 얼굴은 더욱 처참했다. 여러 개의 얼굴로 나뉜 채, 모두 같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절망의 표정.
준호는 손을 주먹으로 쥐었다. 손가락이 계속 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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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10시 31분.
응급실.
새로운 환자가 실려왔다. 중증 뇌출혈. 뇌CT 상 뇌실출혈 동반. 의식 수준 GCS 3. 생존 가능성 5%.
박영준이 준호를 쳐다봤다.
그 눈빛의 의미는 명확했다.
'넌 기적을 만들 수 있지?'
준호의 심장이 불규칙하게 뛰기 시작했다. 환자의 동공이 산대되었다. 심전도 모니터 알람.
삐삐삐삐—
심정지 신호.
준호의 손이 떨렸다. 가슴 위에 올려야 한다. 심폐소생술을 시작해야 한다. 그러면 금빛이 나타날 것이다. 시간이 돌아갈 것이다. 환자를 살릴 것이다.
하지만 그러려면... 또 한 달이 더 노화된다. 시간 범위는 또 줄어들 것이다. 5분에서 4분 30초로 줄었듯이, 이번엔 4분으로, 그 다음엔 3분 30초로. 계속 줄어들 것이다. 그리고 30초 이하로 떨어지면, 능력은 완전히 무효화될 것이다. 신장 기능도 더 악화될 것이다. 오명준의 말처럼, 신장이 임계점 이하로 떨어지면 능력 사용이 불가능해질 것이다. 아니, 준호 자신이 먼저 죽을 것이다.
손이 움직이려 했다.
금빛이 나타날 조짐이 있었다.
그 순간.
"안 돼. 제발 안 돼."
수진이 준호의 팔을 잡았다. 목소리가 떨렸다. 눈에 눈물이 맺혀 있었다.
"제발... 제발 멈춰."
준호는 수진의 얼굴을 봤다. 그리고 자신의 손을 봤다. 여전히 떨리고 있었다.
준호는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 손가락을 펼쳤다. 금빛은 사라졌다. 능력 발동을 거부했다.
환자는 죽어가고 있었다. 심전도 모니터의 알람이 점점 느려지고 있었다. 삐... 삐... 삐...
박영준은 준호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의 얼굴에는 실망이 떠올랐다. 아니, 분노였다. 준호를 노려보는 눈빛이었다.
그리고 준호 자신도 죽어가고 있었다. 하지만 이 순간, 그는 선택했다. 환자를 살리지 않기로. 자신을 죽이지 않기로.
수진의 눈물이 떨어졌다. 그것이 응원인지, 죄책감인지, 준호는 알 수 없었다.
박영준의 입이 열렸다. 무언가 말하려 했다. 하지만 그 순간, 환자의 심전도가 완전히 평탄해졌다.
삐—
길고 긴 신호음.
환자는 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