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빛이 사라졌다.
준호의 시야가 돌아왔을 때, 그는 응급실 중앙 모니터 앞에 서 있었다. 시간 표시: 02:42. 정확히 5분 전이다. 모니터에는 여전히 침상 4번의 심전도가 흐르고 있었다. 규칙적인 파형. 아직 생존한 상태였다.
그런데 준호의 머릿속에는 무엇이 있었다.
02:47의 심전도. 일직선. 그리고 박영준 과장의 음성: "사망 판정합니다."
그 다음의 금빛.
그리고 지금.
준호는 손을 떨렸다. 손가락 끝이 가리키는 모니터를 보며 침상 4번으로 다시 걸어갔다. 환자는 여전히 의식이 없었다. 침상 양옆으로 간호사들이 지표를 모니터링하고 있었다. 준호의 눈이 환자의 흉부를 훑었다. 창백한 피부색. 얕은 호흡. 손가락의 청색증.
심근경색.
그리고 더 정확하게는—
준호가 의료 기록을 집어 들었다. 손이 떨렸다. 트로포닌 수치. 2.8. 정상의 140배 이상. 그 목소리가 다시 들렸다. 자신의 목소리가. 5분 뒤의 자신이 내뱉은 말: "과도한 트로포닌 수치, 관상동맥 폐색의 신호입니다."
준호는 돌아섰다. 박영준 과장이 옆 침상에서 다른 환자를 보고 있었다. 준호가 다가갔을 때, 과장의 눈이 천천히 들렸다.
"과장님."
"뭐야?"
"침상 4번 환자. 카테터실로 보내야 합니다."
박영준의 얼굴에 주름이 졌다. 그의 시선이 침상 4번으로 돌아갔다. 다시 준호로. "왜?"
"STEMI입니다. 지금 당장 PCI가 필요합니다."
"이 인턴이 뭐하는 소리야? 심전도도 안 봤잖아. 아직 심정지 상태도 아니고—"
"지금 당장입니다."
준호의 목소리에 떨림이 없었다. 과장의 눈빛이 변했다. 어떤 확신이 그 목소리에 담겨 있었다. 응급의학을 20년 이상 해온 과장도 그런 확신을 자주 본 적이 없었다.
"카테터실에 연락을 해."
박영준이 간호사에게 지시했다. 그 순간 침상 4번의 심전도가 변했다. ST분절 상승. 급격한 리듬 변화.
그 다음이 빨랐다.
카테터실 소집. 침상 4번 환자의 긴급 이송. 준호는 환자와 함께 엘리베이터에 탔다. 응급 PCI 시술실. 의료진들의 빠른 움직임. 조영제 주입. 혈관 영상화. 좌전하행지동맥의 완전 폐색이 화면에 나타났다.
"스텐트 삽입합니다."
시술의의 목소리가 담담했다. 스텐트가 혈관을 뚫었다. 조영제가 다시 흘렀다. TIMI 3 혈류 회복. 정상 혈류.
02:47.
침상 4번 환자의 심박동이 돌아왔다. 혈압이 올라왔다. 산소포화도가 95를 넘었다.
준호는 모니터를 바라봤다. 손가락 끝이 떨렸다. 하지만 이번엔 공포 때문이 아니었다.
응급실로 돌아온 건 3시간 뒤였다. 침상 4번 환자는 중환자실로 이송되었고, 그의 생명 신호는 안정적이었다. 박영준 과장은 준호를 찾아 어깨를 친다고 말했을 때, 준호의 가슴이 철렁했다.
"오늘 정말 잘 봤다. 그 진단력은 어디서 나온 거냐?"
과장의 손이 준호의 어깨 위에 올려져 있었다. 응급실의 다른 의료진들이 그 장면을 보고 있었다. 간호사 김수진도. 민준영도.
준호의 입가에 미소가 떨렸다. 진짜였다. 그 환자가 살아 있었다. 심정지 상태에서 죽음의 문턱에 있었는데, 지금 그는 살아 있었다.
"그냥... 느낌이었습니다."
준호는 말했다. 그 느낌이 정확하게 뭔지는 자신도 몰랐다. 하지만 손가락 끝에 남아 있는 따뜻함이 그것이 무엇인지 말해주고 있었다.
화장실로 들어간 준호는 거울을 봤다.
눈가 주름이 깊어져 있었다. 아침 햇빛 때문에 그렇게 보이는 건 줄 알았는데, 이건 다른 거였다. 피부 탄력이 눈에 띄게 떨어져 있었다. 광대뼈가 조금 두드러져 보였다. 아직 32살인데도 거울 속의 얼굴은 훨씬 늙어 보였다.
손가락 끝이 떨렸다.
준호는 손을 펼쳤다. 떨림이 있었다. 신경 쇠약? 아니면 피로? 지난 밤 심폐소생술을 35분이나 했다. 그 정도면 손이 떨릴 수 있다. 당연하다. 이건 피로 때문이다.
응급실로 돌아왔을 때, 간호사 김수진이 다가왔다. 26살 간호사였다. 3개월 전 이곳에 배치된 신입으로, 준호를 멘토로 따르는 타입이었다.
"방금 일 어떻게 된 거예요?"
"뭐가?"
"침상 4번 환자... 죽었잖아요? 심폐소생술 15분이나 했는데..."
준호는 김수진의 눈을 봤다. 그 눈에는 의문이 아니라 경이가 담겨 있었다.
"응급 카테터실에서 우회로 개통해줬어. 그 환자가 심근경색이었거든."
"심근경색? 그런데 아까 심전도는—"
"초기 심전도는 나타나지 않을 수 있어. 연쇄적 폐색이 진행 중이었던 거야."
준호는 설명했다. 거짓이 아니었다. 단지 그 설명이 어떻게 나왔는지는 말할 수 없었을 뿐이다.
김수진의 얼굴에 숭배의 빛이 들어왔다. "와... 정말 신기해요. 어떻게 그걸 알았어요?"
"경험이지."
준호는 돌아섰다. 그 말은 반만 거짓이었다. 경험은 맞았다. 5분 뒤의 경험이었을 뿐이다.
응급실을 나간 건 오후 2시였다. 24시간 당직 근무를 마친 준호는 병원 밖으로 나갔다. 새벽 공기는 이미 걷혀 있었고, 낮 햇빛이 서울 강남의 빌딩들을 밝히고 있었다.
준호는 손을 펼쳤다.
손가락 끝에서 금빛이 맴돌고 있었다. 아주 희미했지만, 그것은 분명히 거기 있었다. 햇빛 때문에 보이지 않을 뿐이었다.
"이건... 뭔가 다른 거야."
준호는 중얼거렸다. 손을 움직여봤다. 금빛이 손가락을 따라다녔다.
"이건... 내 능력이야."
침상 4번의 환자 이름은 김태호였다. 55살 회사원. 병원 기록에는 그렇게 적혀 있었다. 하지만 그는 이제 살아 있었다. 중환자실의 침상에서, 약한 호흡음을 내며 살아 있었다.
준호가 중환자실에 몰래 들어갔을 때, 김태호의 눈이 가늘게 떠졌다. 의식이 있었다.
"어... 여기가..."
"서울 중앙종합병원입니다. 당신은 심근경색으로 긴급 시술을 받으셨습니다."
준호의 목소리는 담담했지만, 그의 손은 떨리고 있었다. 김태호의 눈이 천천히 초점을 맞췄다. 그의 입이 열렸다.
"내가... 죽었어?"
준호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 대신 환자의 팔목에 있는 모니터를 확인했다. 심박동 수 72. 혈압 118/76. 산소포화도 98.
모든 게 정상이었다.
그 순간 준호의 가슴이 터질 듯했다. 이건 단순한 의료 성공이 아니었다. 이건 기적이었다. 죽음을 돌린 기적.
"당신은 죽지 않았습니다."
준호는 말했다. "당신은 살아 있습니다."
응급실로 돌아온 준호는 박영준 과장을 찾았다. 과장은 자신의 사무실에서 의료 기록을 정리하고 있었다.
"준호."
과장이 준호를 봤다. "오늘 정말 수고했어. 그 환자 덕분에 병원 평판도 올라갈 것 같아."
"과장님, 저... 계속 이렇게 할 수 있을까요?"
"뭐가?"
"환자들을 살리는 것. 매번 이렇게."
박영준은 준호를 바라봤다. 그 눈에는 호기심이 아니라 계산이 있었다. 병원 경영자의 눈이었다.
"당신이라면 할 수 있을 거야. 계속해."
그 말이 준호의 가슴에 박혔다. 계속해. 그렇다면 자신은 계속할 수 있다는 뜻이었다. 이 능력을 계속 사용할 수 있다는 뜻이었다.
응급실 밖으로 나온 준호는 다시 한 번 손을 펼쳤다. 이번엔 금빛이 더 선명했다. 오후 햇빛 속에서도 보일 정도로.
"나는 이길 수 있어."
준호의 중얼거림이 바람에 흩어졌다.
"내가... 죽음을 이길 수 있어."
그 순간 준호의 손가락 끝에서 금빛이 한 번 더 크게 터져나왔다. 마치 그의 다짐에 응하는 듯이.
하지만 거울 속의 얼굴은 점점 더 늙어 보이고 있었다. 준호는 그것을 보지 않기로 했다. 아직은.
손가락의 떨림도. 눈가의 주름도. 모두 피로 탓이라고 자신에게 말했다.
자신은 이길 수 있다고. 자신은 죽음을 돌릴 수 있다고.
그리고 그 능력이 대가를 요구한다는 것을 깨닫기까지는, 아직 많은 환자들을 만나야 했다.
# 골든타임 리바운드
금빛이 사라지는 순간, 세상이 다시 시작됐다.
응급실의 천장 조명이 준호의 눈을 쏘았다. 심전도 모니터의 비프음이 귀를 찔렀다. 02:42. 시계가 정확히 5분을 역행했다.
침상 4번. 여전히 심정지 상태였다. 심전도는 평탄한 일직선을 그리고 있었다. 그런데 모니터 옆 영상 화면에는 아직 김태호의 얼굴이 나타나 있었다. 눈을 감은 채로. 마치 잠들어 있는 것처럼. 하지만 준호는 알았다. 5분 뒤 이 남자는 죽을 것이라는 것을.
아니다. 죽었을 것이라는 것을.
준호의 머리 속에 모든 순간이 선명하게 기억되어 있었다. 심폐소생술 35분. 심장이 다시 뛰지 않는 모습. 박영준 과장의 입에서 나온 두 글자. "사망."
그리고 금빛.
"지금 당장 카테터실 준비!"
준호의 목소리가 응급실에 울렸다. 그것은 인턴의 목소리가 아니었다. 확신의 목소리였다.
박영준 과장이 돌아봤다. "뭐?"
"심근경색입니다. STEMI. 관상동맥 완전 폐색. 지금 당장 PCI를 해야 합니다."
"어? 잠깐, 아직 심전도 검사도—"
"과장님, 이 환자는 지금 심정지 직전입니다."
준호는 환자의 가슴에 손을 얹었다. 손가락 끝이 떨리고 있었다. 피로 때문만은 아닐 것 같은 떨림이었다. 하지만 그는 그것을 무시했다.
"과도한 트로포닌 수치, 관상동맥 폐색의 신호. 우리가 5분 내에 카테터실로 옮기지 않으면 이 환자는 죽습니다."
박영준의 눈이 변했다. 의심에서 무언가 다른 감정으로. 호기심이었을까. 아니면 두려움이었을까.
"알겠어. 카테터실 준비!"
과장의 지시가 내려졌고, 응급실이 움직였다. 간호사들이 침상 주변으로 몰려들었다. IV 라인을 재확인하고, 모니터 코드를 정리했다. 02:44. 2분이 남았다.
침상 4번이 중환자실 방향으로 움직였다. 준호는 옆에서 환자의 손을 잡고 있었다. 손가락 끝에서 금빛이 희미하게 맴돌고 있었다. 아무도 보지 못했다. 응급 상황의 혼란 속에서.
카테터실의 문이 열렸다. 의료진들이 준비된 상태로 기다리고 있었다. 02:46. 1분 남았다.
심혈관 전문의 이정훈이 침상 옆으로 다가왔다. "뭐가 이렇게 급한데?"
"STEMI. 관상동맥 완전 폐색."
"누가 진단했어?"
"저."
이정훈은 준호를 빠르게 훑어봤다. 인턴이 아니라 무언가 다른 것을 보는 듯한 눈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없었다.
"카테터 준비!"
심전도 모니터가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
02:47.
심정지.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침상 4번 환자의 가슴이 이미 열려 있었다. 카테터 가이드 와이어가 관상동맥 속으로 진입했다. 스텐트가 삽입되었다. 조영제가 흘러들었다.
"우회로 개통!"
심전도가 다시 살아났다. 비프음이 규칙적으로 돌아왔다. 심박동 수 62. 혈압 105/68. 산소포화도 96.
"환자 안정화!"
카테터실 안의 의료진들이 숨을 쉬었다. 이정훈이 준호를 바라봤다.
"어떻게 알았어?"
"느낌이었습니다."
준호는 대답했지만, 그의 눈은 모니터에 고정되어 있었다. 심전도가 정상 리듬을 그리고 있었다. 죽음이 돌아왔다. 아니, 죽음이 막혔다.
응급실로 돌아온 준호는 욕실로 향했다. 거울 앞에 섰다.
자신의 얼굴을 봤다.
눈가가 이상했다. 주름이 깊어진 듯했다. 피부 탄력이 떨어진 느낌. 어제와는 분명히 다른 모습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불가능했다. 하루 만에 얼굴이 변할 리가 없었다.
피로다. 24시간 당직의 피로.
준호는 손가락 끝을 보았다. 아주 미묘하게 떨리고 있었다.
그 순간 욕실 문이 열렸다.
"어떻게 된 거예요?"
간호사 김수진이 서 있었다. 26살, 같은 기수의 의료진. 그녀의 눈이 준호를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었다.
"뭐가?"
"그 환자요. 아까 죽었잖아요. 심폐소생술 35분 하고도 안 되던 환자. 근데 갑자기..."
"그냥 운이 좋았던 거지."
준호는 돌아섰다. 그 말은 반만 거짓이었다. 경험은 맞았다. 5분 뒤의 경험이었을 뿐이다.
응급실을 나간 건 오후 2시였다. 24시간 당직 근무를 마친 준호는 병원 밖으로 나갔다. 새벽 공기는 이미 걷혀 있었고, 낮 햇빛이 서울 강남의 빌딩들을 밝히고 있었다.
준호는 손을 펼쳤다.
손가락 끝에서 금빛이 맴돌고 있었다. 아주 희미했지만, 그것은 분명히 거기 있었다. 햇빛 때문에 보이지 않을 뿐이었다.
"이건... 뭔가 다른 거야."
준호는 중얼거렸다. 손을 움직여봤다. 금빛이 손가락을 따라다녔다.
"이건... 내 능력이야."
---
응급실로 돌아온 지 사흘째 날, 준호는 처음으로 자신의 능력을 의식적으로 사용하려고 시도했다.
당연히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았다.
금빛은 환자가 죽을 때만 나타났다. 그 순간의 절망과 무력감 속에서만. 준호가 원한다고 해서 나타나는 것이 아니었다.
그것을 깨닫는 데는 하루밖에 걸리지 않았다. 하지만 그 하루 동안 준호는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시도했다. 손가락을 튕겨봤다. 명상을 해봤다. 심지어 환자의 심폐소생술 장면을 상상해보기까지 했다.
아무것도 작동하지 않았다.
그런데 금요일 오후 4시 52분, 응급실에 새로운 환자가 들어왔다.
"33살 여성, 약물 과다복용. 응답 없음. 동공산대."
침상 7번이 비었다. 준호는 환자의 가슴에 손을 얹었다. 약한 맥박이 느껴졌다. 매우 약한.
"혈액 검사, 독성 스크린. 지금 당장."
박영준 과장이 옆에 섰다. "뭔가 느껴지니?"
"네."
"좋아. 계속 가."
준호는 환자의 팔에 IV 라인을 삽입했다. 손가락이 떨렸다. 어제는 떨리지 않았는데. 정말 이상했다.
약물이 환자의 혈관으로 흘러들어갔다. 독성 물질을 중화시키는 약물. 하지만 충분하지 않았다. 준호는 알았다. 그 약물의 양으로는 이 환자를 살릴 수 없다는 것을.
심전도가 불규칙해지기 시작했다.
비프음이 빨라졌다.
그리고 04:53에, 심전도가 평탄해졌다.
금빛이 터져나왔다.
---
준호가 눈을 떴을 때, 시계는 04:48을 가리키고 있었다.
5분. 정확히 5분.
"지금 당장 활성탄 세척!"
준호의 목소리가 응급실에 울렸다.
"뭐?"
"이 환자는 약물 과다복용입니다. 혈중 독성 물질 농도가 치명적입니다. 지금 당장 위 세척을 해야 합니다!"
박영준이 준호를 바라봤다. 의심의 눈이었다. 같은 환자를 본 지 몇 분 만에 인턴이 정확한 진단을 내리다니.
하지만 시간이 없었다.
"위 세척 준비!"
활성탄이 환자의 위 속으로 흘러들어갔다. 독성 물질이 흡수되었다. 심장이 다시 뛰기 시작했다.
04:53에 심정지가 발생할 예정이었던 그 순간, 환자의 심박동은 정상 리듬을 유지하고 있었다.
"산소포화도 98. 혈압 정상화."
간호사들의 목소리가 응급실을 채웠다.
준호는 자신의 손을 봤다. 손가락이 떨리고 있었다. 어제보다 더 심하게.
---
그 날 밤, 준호는 거울 앞에 오래 서 있었다.
눈가의 주름이 더 깊어져 있었다. 이마의 선이 더 선명했다. 뺨의 처짐이 더 두드러졌다.
24시간 만에 일주일을 더 늙은 것처럼 보였다.
준호는 손가락으로 자신의 얼굴을 만져봤다. 피부가 건조했다. 탄력이 없었다. 마치 오래된 종이처럼.
"피로다. 그냥 피로."
준호는 중얼거렸다.
하지만 그것이 거짓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뭔가가 자신의 몸을 갉아먹고 있었다. 그것이 무엇인지는 몰랐지만, 확실히 뭔가가.
준호는 거울에서 눈을 돌렸다. 그리고 응급실로 돌아갔다.
금요일 밤 11시, 응급실에 또 다른 환자가 들어왔다.
교통사고. 복부 외상. 내출혈.
침상 3번의 환자는 의식이 없었다. 맥박이 거의 없었다.
"혈압 70/40. 쇼크 상태입니다."
박영준이 준호를 봤다. "뭘 할 수 있겠어?"
준호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 대신 환자의 복부에 손을 얹었다.
손가락이 심하게 떨렸다.
심장이 멈추기까지, 준호는 정확히 3분 46초를 기다려야 했다.
---
토요일 아침 6시, 준호는 응급실 휴게실에서 눈을 떴다.
자신의 손을 봤다.
손등에 주근깨가 생겨 있었다. 어제는 없던 것이었다.
준호는 손을 움켜쥐었다.
그리고 금빛을 느껴봤다.
아직 거기 있었다. 손가락 끝에, 언제든지 터져나올 준비를 하고 있는 금빛이.
"준호."
박영준 과장이 휴게실 문을 열었다. 그의 얼굴에는 미소가 있었다.
"좀 이상하지 않나?"
"뭐가요?"
"당신의 진단률. 어제 하루 동안만 세 명. 그 중 둘은 정말 죽을 뻔한 환자들이었어."
박영준은 준호에게 다가왔다. 그리고 어깨에 손을 얹었다.
"그 진단력은 어디서 나온 거야?"
준호의 입이 떨렸다. 그것은 자책이 아니라 다른 감정이었다. 쾌감이었다.
"그냥... 느낌이었습니다."
박영준이 웃었다. "느낌. 좋아. 그 느낌을 계속 유지해. 당신은 우리 병원의 보배야."
과장이 나가자, 준호는 다시 자신의 손을 봤다.
손가락 끝에서 금빛이 희미하게 떨렸다.
---
응급실 밖으로 나온 준호는 다시 한 번 손을 펼쳤다.
이번엔 금빛이 더 선명했다. 새벽 햇빛 속에서도 보일 정도로.
"나는 이길 수 있어."
준호의 중얼거림이 바람에 흩어졌다.
"내가... 죽음을 이길 수 있어."
그 순간 준호의 손가락 끝에서 금빛이 한 번 더 크게 터져나왔다. 마치 그의 다짐에 응하는 듯이.
하지만 거울 속의 얼굴은 점점 더 늙어 보이고 있었다.
준호는 그것을 보지 않기로 했다. 아직은.
손가락의 떨림도. 눈가의 주름도. 손등의 주근깨도. 모두 피로 탓이라고 자신에게 말했다.
자신은 이길 수 있다고. 자신은 죽음을 돌릴 수 있다고.
그리고 그 능력이 대가를 요구한다는 것을 깨닫기까지는, 아직 많은 환자들을 만나야 했다.
응급실로 돌아가는 준호의 뒷모습은 햇빛 속에서도 그림자처럼 보였다.
마치 점점 투명해져가는 유령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