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 에스텔의 기억

레온의 눈빛이 어두워졌다.

"뭔가 이상한 표정."

지하 숙소의 좁은 침대 위에서 준호는 몸을 일으켰다. 밤 2시. 아카데미 학생회장이 노비 숙소까지 찾아올 리 없다. 그런데 여기 있다.

"무슨 말이야?"

준호의 목소리는 담담했다. 레온은 침대 옆에 서서 준호를 내려다봤다. 학생회장 특유의 낙천적 미소가 사라져 있었다. 대신 그 얼굴에는 무언가 날카로운 것이 흐르고 있었다.

"아까 우리 중 누군가를 봤지? 상태창 같은 걸로."

준호의 심장이 철렁했다. 하지만 얼굴은 움직이지 않았다.

"상태창? 그게 뭐야?"

"거짓말하지 마."

레온이 한 발 다가섰다. 침대가 삐걱거렸다. 준호는 천천히 다리를 내렸다. 레온의 저주 수치는 89%였다. 광기. 이 상태에서 레온은 자신이 뭘 하는지 모를 수도 있다.

"내가 뭘 봤다고 생각해?"

"모르겠지만... 뭔가 다르다. 넌 우릴 보는 방식이 다르다니까."

그 순간, 복도에서 발소리가 들렸다. 레온이 재빨리 움직였다. 침대 옆에서 몸을 날려 준호를 내려치는 대신 옆으로 몸을 굴려 문을 나갔다. 발소리는 레온이 떠나간 방향으로 멀어졌다.

준호는 가슴을 고르게 하며 누웠다. 상태창이 떠올랐다.

【레온 아르투르】 신뢰도: 78% 저주: 광기(89%) | 해제 조건: 저주의 진정한 정체를 깨닫기

아침이 밝자 준호는 도서관으로 향했다. 아카데미는 이미 개강 준비로 떠들썩했다. 학생들이 강의실 배정 안내문을 확인하고 다니고, 고학년들은 신입생 환영회 준비로 분주했다. 그 사이를 헤쳐 나가며 준호는 도서관 3층 역사 섹션으로 들어섰다.

책장 사이를 헤매다가 누군가와 부딪혔다.

"어? 미안해요."

에스텔이었다. 밝은 미소를 짓고 있던 그녀는 준호를 보자 잠깐 고개를 기울였다.

"어... 처음 뵙나요?"

준호는 상태창을 켰다.

【에스텔 로즈】 신뢰도: 50% 저주: 기억 소실(44%) | 해제 조건: 자신이 정말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깨닫기

기억이 44%가 되어 있었다. 어제보다 1% 더 사라졌다.

"우리... 만난 적 있어?"

에스텔이 다시 물었다. 그 얼굴에는 진심 어린 의문이 떠 있었다.

"없다. 오늘이 처음이야."

"아, 다행이에요. 왠지 모르게 어색했거든요."

에스텔은 다시 웃음을 지었다. 하지만 그 웃음의 끝에는 무언가 외로운 것이 있었다. 마치 자신이 뭔가를 잃어버렸다는 걸 알면서도, 그게 뭔지는 모르는 사람의 표정이었다.

"혹시... 우리가 누구인지 알아?"

에스텔이 갑자기 물었다.

"뭐?"

"우리가 뭐예요? 귀족? 평민? 아니면..." 에스텔의 눈이 준호를 훑었다. "노비?"

그 단어가 입에서 나오는 순간, 에스텔의 얼굴이 찡그려졌다.

"어... 미안해요. 왜 갑자기..."

에스텔이 이마를 짚었다. 그 손이 떨리고 있었다.

"뭔가... 아픈데..."

"괜찮아?"

"기억이... 자꾸 끊겨요."

에스텔이 준호를 봤다. 그 눈에는 공포가 어려 있었다.

"아, 이상해. 방금 뭐라고 했지? 우리가... 뭐였지?"

그리고 그녀의 표정이 밝아졌다. 마치 아무것도 없었다는 듯.

"어쨌든 만나서 반가워요! 아, 맞다. 지금 가야 할 게 있어서..."

에스텔이 급히 사라졌다. 준호는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상태창을 다시 켰다.

【에스텔 로즈】 저주: 기억 소실(43%) | 해제 조건: 자신이 정말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깨닫기 ※ 기억 소실 진행 중 | 회복 불가 | 100% 도달 시 인격 소멸

1%가 더 사라졌다. 도서관에서의 대화만으로도.

준호의 눈이 차가워졌다. 에스텔은 자신이 뭘 잃어버리고 있는지 모른다. 자신이 자꾸 끊기는 기억 속에서, 같은 말을 반복하고, 같은 감정을 느끼고, 다시 잊어버린다. 마치 프로그래밍된 인형처럼.

그렇다면 다른 학생들도?

준호는 도서관을 나갔다.

오후 4시, 아카데미 중앙 광장.

칼리아 칼리스가 준호의 앞을 막아섰다. 수업이 끝난 직후였다. 그녀는 준호의 팔을 잡았다. 손이 차가웠다.

"잠깐."

"뭐야?"

"지하로 절대 가지 마."

칼리아의 목소리는 낮고 절실했다. 주변 학생들은 시선을 피했다. 고급 귀족 칼리스 가의 딸이 노비에게 말을 거는 것 자체가 스캔들이었기 때문이다.

"뭐?"

"아카데미 지하. 거기로 절대로 가면 안 돼. 알겠어?"

칼리아의 눈은 진지했다. 그 안에는 경고보다 간청이 있었다.

"왜?"

"그냥... 가면 안 되는 거야."

칼리아는 그 이상 설명하지 않았다. 대신 준호를 놓아주고 돌아섰다. 그 뒷모습은 마치 누군가에게서 도망치는 것 같았다.

준호는 상태창을 켰다.

【칼리아 칼리스】 신뢰도: 45% 저주: 완벽주의(67%) | 해제 조건: 자신의 약점을 타인에게 드러내기 ※ 지하 금기 관련 정보 감지됨

지하. 아카데미 지하에 뭔가 있다. 모두가 말하지 않지만, 모두가 알고 있는 뭔가.

준호는 도서관으로 돌아갔다. 이번에는 '아카데미 역사'라는 제목의 두꺼운 책을 찾았다. 몇 페이지를 넘기자 눈에 띄는 부분이 있었다.

【아카데미 지하 구조】 루미나 아카데미의 지하는 공식적으로 7층까지 존재하며, 각 층은 고대 마법 시설과 귀족 가문의 유산을 보관하는 장소다. 다만 7층 이하의 공간은 원장과 일부 고위 귀족만이 접근 권한을 가지며, 학생들의 출입은 엄격히 금지되어 있다.

7층 이하.

준호의 손가락이 페이지를 짚었다. 페이지 끝에는 작은 글씨로 한 줄이 더 있었다.

【고대 문헌에 따르면, 아카데미 지하 가장 깊은 곳에는 '원한의 결정체'가 봉인되어 있다고 전해진다. 다만 이는 전설일 뿐이다.】

전설이 아니다. 준호는 확신했다. 저주들이 어디서 나오는지 이제 알 것 같았다. 모든 피해는 아래에서 올라오고 있었다.

그렇다면 저주는 단순한 개인의 문제가 아니었다. 이것은 아카데미 자체가 만드는 구조적 문제였다. 지하의 원한이 모든 학생을 침식하고 있었다.

준호는 책을 덮었다. 왜 모르드가 자신을 감시하는지, 왜 칼리아가 지하를 금지하는지 이제 이해가 된다. 이것은 비밀이 아니라 질서였다. 누구도 건드리면 안 되는 질서.

저녁 6시, 준호는 에스텔을 다시 만났다.

이번에는 식당에서였다. 에스텔은 혼자 밥을 먹고 있었다. 준호는 그 옆에 앉았다.

"어? 또 만났네요!"

에스텔이 밝게 웃었다. 하지만 그 눈에는 여전히 불안함이 어려 있었다. 동공이 약간 풀려 있었다. 마치 무언가를 자꾸 잊으려고 하는 듯한.

"기억이 자꾸 끊기니까?"

에스텔의 수저가 멈췄다.

"... 뭘 알아요?"

"넌 저주에 걸려 있어. 기억이 사라지고 있어. 지금 43%가 사라졌고, 남은 시간이 별로 없다."

준호의 말은 차갑고 명확했다. 에스텔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식당의 밝은 불빛 아래에서 그 창백함이 더욱 두드러졌다.

"농담해요?"

"아니야."

"그럼... 나는?"

"점점 사라지고 있어. 자신이 뭐였는지도 모르면서."

에스텔의 손이 떨렸다. 음식이 흐트러졌다. 밥알이 테이블에 흩어졌다.

"어... 어떻게 알아요?"

"내가 너를 볼 수 있거든. 정확히."

준호는 상태창을 더 깊이 켰다. 에스텔의 정보가 층층이 벗겨져 나왔다.

【에스텔 로즈 - 저주 상세 분석】 기억 소실: 43.2% 소실된 기억: 에스텔의 어린 시절 | 가족의 목소리 | 자신이 왜 웃어야 하는지 | 처음 사람을 좋아했던 감정 남은 기억: 아카데미 규칙 | 귀족 예절 | 타인의 기대 | 해야 할 것들 해제 조건: 자신이 정말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깨닫기 (현재 진행도: 0%) ※ 조건 충족 시 '감정 채팅 권한' 획득 ※ 기한: 73일 (기억 소실 속도로 계산)

그 순간, 준호의 뇌리에 무언가가 번개처럼 스쳐 지나갔다.

에스텔이 자신이 정말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깨닫는다. 그럼 저주가 풀린다. 그럼 준호는 에스텔의 감정 채팅 권한을 획득한다. 즉, 에스텔은 준호를 완전히 신뢰한다.

거래다. 완벽한 거래.

준호는 입을 열었다.

"너의 저주를 풀어줄 수 있다."

에스텔의 눈이 크게 떠졌다. 눈동자가 흔들렸다.

"정말?"

그 순간.

상태창에 알림이 떴다.

【신뢰도 -5】 【현재 신뢰도: 95%】 【기한: 99일 23시간 42분】

준호의 얼굴이 굳었다. 상태창을 켜는 것만으로도 신뢰도가 깎인다. 에스텔에게 저주 정보를 말한 것만으로도. 그리고 기한도. 99일이라고? 100일이 아니라?

기한이 줄어들었다. 단 18분이 사라졌다. 에스텔의 저주 상세 정보를 읽고 말한 대가가 18분이다.

"넌 이걸 어떻게 알아?"

에스텔의 목소리가 떨렸다.

"정말 나를 도와줄 수 있어?"

그 눈을 보자, 준호는 느꼈다. 에스텔의 절박함이 자신을 짓누르고 있었다. 저주받은 학생을 돕는 것, 그것이 거래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동시에 그 눈빛 속에는 진정한 간청이 있었다.

준호는 갈등했다.

이 여자를 이용할 것인가, 아니면 도울 것인가?

신뢰도를 위해 거래할 것인가, 아니면 진심으로 마주할 것인가?

에스텔은 준호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 손이 떨리고 있었다. 마치 마지막 희망의 줄을 붙잡는 것처럼.

"내가 너를 도와줄 수 있다. 하지만 그건 너도 노력해야 한다는 뜻이야. 너 자신이 뭘 원하는지 찾아야 한다는 거야."

에스텔이 고개를 들었다.

"그게... 가능해요?"

"모르겠어. 하지만 함께 해보자. 넌 혼자가 아니니까."

그 말을 하는 순간, 준호는 깨달았다. 이건 거래가 아니라는 걸. 이건 약속이라는 걸.

상태창에 또 다른 알림이 떴다.

【신뢰도 -3】 【현재 신뢰도: 92%】

식당을 나온 준호는 기숙사로 향했다. 복도를 걷는 동안 계산했다. 신뢰도 92%, 기한 99일 23시간 24분. 에스텔 하나만 해도 이 정도다. 남은 저주는 최소 5개 이상이다.

만약 모두를 풀려면?

신뢰도는 0이 될 것이고, 상태창은 영구 봉인될 것이고, 기한은 며칠만 남을 것이다.

그리고 그 이후는?

준호는 자신의 손을 봤다. 여전히 노비 신분이었다. 낙인이 손등에 새겨져 있었다. 저주처럼.

"너는 뭐하는 거야?"

목소리가 들렸다.

준호가 고개를 들자 칼리아가 복도의 모서리에서 나타났다. 그 얼굴은 창백했고, 눈은 붉었다.

"에스텔한테 뭘 했어?"

"왜?"

"에스텔이 방금 나한테 와서 울면서, 누군가가 자기 저주를 알려줬대. 그리고 그 사람이 풀어줄 수 있대."

칼리아가 한 발 가까워졌다.

"그게 너야?"

준호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럼 나는? 나도?"

칼리아의 손이 떨렸다.

"내 저주도 풀 수 있어?"

그 순간, 준호의 상태창에 또 다른 알림이 떴다.

【신뢰도 -3】 【현재 신뢰도: 89%】

칼리아가 준호의 능력을 감지하고 있었다. 그리고 희망을 느끼고 있었다. 그 희망 자체가 신뢰도를 깎고 있었다.

준호는 깨달았다.

상태창은 단순히 정보를 읽는 도구가 아니었다. 이것은 거래의 도구였다. 누군가를 읽을수록, 누군가를 도울수록, 누군가를 희망으로 채울수록.

준호는 더 빨리 사라진다.

"너... 혹시 모르드한테서 도망 치고 있어?"

칼리아가 물었다.

"모르드는 너 같은 걸 가장 싫어해. 너처럼 뭔가를 바꾸려고 하는 걸."

"왜?"

"그게 자신의 권력을 위협하거든. 이 아카데미의 질서를 위협하거든."

칼리아가 준호의 눈을 마주했다. 그 눈에는 두려움이 있었다.

"너 혹시... 지하로 내려갈 생각이야?"

준호가 대답하지 않자, 칼리아의 얼굴이 더욱 창백해졌다.

"안 돼. 정말로 안 돼. 거기는..."

칼리아가 입을 다물었다. 마치 말할 수 없는 뭔가가 있는 것처럼.

"거기는 뭐야?"

"모르겠어. 하지만 모두가 두려워해. 원장도, 모르드도, 심지어 내 아버지도."

칼리아가 복도의 다른 쪽으로 돌아갔다. 그 뒷모습은 빠르고 불안정했다.

"지하로 가지 마. 정말로."

그 말이 복도에 남겨졌다.

밤 11시, 준호의 기숙사 방.

창밖으로는 아카데미의 야경이 보였다. 불이 켜진 창문들, 여전히 공부 중인 학생들, 규칙적으로 순찰하는 기사들.

모두가 저주 안에 있었다.

준호는 상태창을 켰다.

【현재 신뢰도: 89%】 【기한: 99일 23시간 8분】

이 속도면 한 명씩 풀 때마다 신뢰도는 3~5씩 떨어진다. 기한도 마찬가지다. 에스텔과 칼리아만으로 이 정도.

만약 저주를 모두 푼다면?

계산 결과는 명확했다. 신뢰도 0, 상태창 영구 봉인, 그리고 그 이후는 알 수 없다.

그런데 지금 준호가 생각하는 건 그게 아니었다.

준호가 생각하는 건 아래였다.

지하 7층 이하. 원한의 결정체. 그것이 모든 저주의 근원이라면?

그것을 파괴하면?

모든 것이 끝날까, 아니면 모든 것이 시작될까?

준호는 손을 펼쳤다. 낙인이 보였다. 노비의 낙인.

그 순간, 방문이 열렸다.

레온이 들어섰다. 그의 눈은 광기로 타오르고 있었다.

"너... 뭐 봤어?"

준호는 상태창을 켰다.

【레온 아르투르 - 현재 상태】 광기 저주: 91% 이성 유지율: 9% 상태: 임계점 근접 ※ 신뢰도 스캔으로 인한 광기 상승

"넌... 내 안에 뭔가 봤어. 맞지?"

레온의 주먹이 벽을 부쳤다. 벽에 금이 갔다. 그의 호흡이 거칠어졌고, 목소리는 떨렸다. 손가락들이 경련을 일으키며 구부러졌다.

"말해. 넌 뭘 봤어?"

그 순간, 준호는 결정했다.

더 이상 숨지 않겠다고.

"넌 저주에 걸려 있어. 광기. 그리고 넌 곧 무너질 거야."

레온이 웃음을 터뜨렸다. 그것은 웃음이라기보다 비명에 가까웠다.

"그럼 풀어줄 수 있어?"

"있어."

"진짜?"

"진짜."

그 순간, 상태창에 알림이 떴다.

【신뢰도 -7】 【현재 신뢰도: 82%】 【기한: 99일 22시간 51분】

준호는 알았다. 이건 더 이상 선택이 아니라는 걸.

이건 필연이었다.

레온은 준호의 어깨를 잡았다. 그 손가락이 깊숙이 파고들었다.

"너... 혹시 나도 바꿀 수 있어?"

"응."

"그럼... 난 누가 될 거야?"

그 질문 앞에서 준호는 답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그것이 에스텔도, 칼리아도, 그리고 레온도 아직 모르는 것이기 때문이다.

자신이 정말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이 저주 아래에서.

이 시스템 안에서.

진정한 자신이 누구인지.

준호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넌 먼저 알아야 해. 네가 뭘 원하는지."

"그걸 어떻게 알아?"

"함께 찾아보는 거야."

레온이 준호의 얼굴을 자세히 봤다. 그 눈동자가 흔들렸다. 광기와 이성이 충돌하고 있었다. 그의 입술이 파르르 떨렸다.

"너... 혹시 너도 저주에 걸려 있어?"

그 질문에 준호는 한숨이 나왔다.

"내 저주는 다르지."

"뭐?"

"시간이야. 나는 100일이 남았어."

레온이 물러섰다. 그의 발걸음이 불안정했다.

"그럼... 넌 이 안에서 뭘 하려고?"

준호는 창밖을 봤다. 아카데미의 야경이 여전히 빛나고 있었다.

"모든 걸 바꾸려고."

그 말이 끝나자 레온은 방을 나갔다. 발걸음이 무겁고 흔들렸다.

준호는 혼자 남겨졌다.

상태창이 떴다.

【신뢰도: 82%】 【기한: 99일 22시간 50분】

그리고 다른 알림도 떴다.

【모르드 페리온이 당신을 감시 중입니다】

준호의 손가락이 경직되었다.

상태창에는 이런 알림이 나온 적이 없었다.

이건 뭐지?

그 순간, 준호의 뇌리에 모든 것이 연결되기 시작했다.

모르드가 자신을 감시한다.

칼리아가 지하로 가지 말라고 했다.

레온이 자신 안에 뭔가 봤다고 했다.

그리고 에스텔의 기억이 계속 사라진다.

이 모든 것이 연결되어 있었다.

모르드는 왜 자신을 감시하는가? 자신이 상태창을 사용하기 때문인가? 아니면 자신이 지하로 내려갈 가능성을 감지했기 때문인가?

그리고 지하와 저주의 연결고리는?

원한의 결정체가 정말 존재한다면, 그것이 모든 저주를 만드는가? 아니면 저주는 아카데미 자체의 구조에서 비롯되는가?

준호는 상태창을 다시 켰다.

【모르드 페리온 - 정보 불가】 【이 대상은 스캔 권한이 없습니다】 【당신의 신뢰도가 충분하지 않습니다】

신뢰도가 부족하다?

준호는 웃음을 터뜨렸다.

82%도 부족하다고?

그렇다면 모르드 페리온은 뭐지?

준호는 창문을 열었다. 밤바람이 들어왔다. 아카데미 지하에서 올라오는 듯한 차가운 바람.

그 바람 속에는 뭔가 달콤한 냄새가 섞여 있었다.

원한의 냄새.

저주의 냄새.

준호는 결정했다.

내일은 지하로 내려가야겠다고.

모르드가 뭐든 간에.

신뢰도가 0이 될 때까지.

기한이 모두 소진될 때까지.

준호는 저주의 근원을 찾아내겠다고.

그 순간, 상태창에 마지막 알림이 떴다.

【경고: 신뢰도 80% 이하로 내려가면 일부 정보가 차단될 수 있습니다】 【경고: 기한 90일 이하로 내려가면 회귀 불가능 상태로 진입합니다】

준호는 그 알림을 읽고 눈을 감았다.

회귀 불가능.

즉, 돌아갈 수 없다는 뜻이었다.

이 시간대에 머물러야 한다는 뜻이었다.

노비로.

저주 속에서.

그렇다면 처음부터 계획이 틀렸단 말인가?

준호는 손을 떨었다.

아니다.

계획이 틀린 게 아니라.

계획 자체가 없었다.

준호는 단지 생존하고 있었다.

그리고 지금 그것이 충돌하고 있었다.

내일 아침, 모르드가 온다면?

내일 아침, 지하로 가면?

내일 아침, 모든 게 끝난다면?

준호는 상태창을 끄고 어둠 속에 누웠다.

100일의 회귀.

82%의 신뢰도.

99일 22시간의 기한.

그리고 자신도 모르는 진정한 저주 하나.

시간이 흘렀다.

밤이 깊어 갔다.

아카데미는 여전히 불을 밝히고 있었다.

저주는 여전히 모두를 조종하고 있었다.

그리고 준호는.

모든 것을 바꾸겠다는 결심 속에서, 모르드의 감시를 느꼈다.

그 순간, 상태창에 새로운 알림이 떴다.

【악의 결정체가 당신을 인식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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