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통장 할머니는 발걸음이 느렸다.

수선실 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은혜는 그 무게를 느꼈다. 나이만 많은 게 아니라, 마음까지 무거운 사람이 들어오는 것처럼. 통장 할머니는 은혜의 할머니 친구였다. 폐지를 줍던 시절, 할머니를 따라다니던 사람. 은혜는 어릴 때 그녀의 손을 잡고 골목을 걸었다. 손가락이 굵고 따뜻했던 기억이 있다.

"은혜야."

통장 할머니가 먼저 입을 열었다. 목소리가 떨렸다.

은혜는 고개를 들었다. 통장 할머니는 의자에 앉으려고 했지만 멈추고 서 있었다. 마치 이 가게에 들어올 자격이 없다는 듯이.

"할머니 친구분이 어떻게…"

"너희 할머니가 나한테 맡긴 게 있어."

통장 할머니의 목소리가 끝나자 수선실이 조용해졌다. 햇빛이 창문을 통해 들어와 먼지들을 비추고 있었다. 은혜의 손이 바느질하던 실 위에서 멈췄다.

"너, 청바지 받았지?"

은혜는 고개를 끄덕였다. 어머니의 청바지는 지금 수선실 한쪽 구석에 조심스럽게 접혀 있었다. 손도 대기 싫어서, 아직 만지지 않았던 것들 중 하나다.

통장 할머니가 드디어 의자에 앉았다. 무릎이 꺾이면서 신음이 나왔다. 은혜는 물을 따라 그녀 앞에 놓았다. 손이 떨렸다. 왜인지는 몰랐다.

"그 청바지는 너희 엄마가 입던 거야."

은혜의 숨이 멈췄다.

"니 할머니가 나한테 이렇게 말했어. '언젠가 내 손녀한테 줄 거니까 잘 보관해달라'고. 그리고 얼마 전에 돌아가시기 전에, 그걸 가져가라고 하셨어. 니 할머니가 돌아가신 후, 내가 어디 둬야 할지 몰라서… 미안해. 이제야 가져다주는 거야."

통장 할머니의 손가락이 물잔을 집었다. 마신 물의 흔적이 입가에 남았다. 그녀는 손등으로 닦았다.

"너희 엄마, 넌 모르겠지만…"

은혜는 숨을 쉴 수 없었다. 가슴이 철렁했다. 엄마. 그 단어가 자신의 가슴에 떨어진 것 같았다.

"너희 엄마는 착한 아이였어. 너를 낳고 얼마 안 돼서 아버지와 함께 집을 나갔어. 형편이 안 좋았거든."

통장 할머니가 말을 멈추고 눈물을 닦았다.

"나가기 전에 너희 할머니를 찾아왔어. 그리고 청바지를 건넸어. 입던 청바지를. 그리고 말했대. '우리 딸이 커서 필요할 때 줘'라고. 미안하다고. 미안하지만 이건 꼭 줘야 한다고."

은혜의 눈가가 뜨거워졌다. 손가락이 재봉틀 위에서 떨렸다.

"너희 엄마는 너를 버린 게 아니야. 잘 키울 수 없어서 할머니한테 맡긴 거야. 그리고…"

통장 할머니가 은혜를 바라봤다.

"너를 사랑했어. 그 청바지에 모든 걸 담아뒀어. 언젠가 넌 자라서, 그걸 입어볼 때가 있을 거고, 그때 엄마가 너를 사랑했다는 걸 알아주길 원했어."

은혜가 일어났다. 의자가 뒤로 밀렸다. 그녀는 청바지가 있는 구석으로 걸어갔다. 손가락이 청바지의 가장자리에 닿았다. 여전히 떨리고 있었다.

"너는 왜 할머니가 이 옷을 보관했다고 생각해?"

은혜는 대답하지 않았다.

"너희 할머니는 알고 있었어. 넌 언젠가 자라서, 누군가의 감정을 옷으로 받아줄 수 있는 사람이 될 거라는 걸. 그래서 기다렸어. 넌 그런 능력을 가질 때까지. 이 청바지를 받을 수 있을 때까지."

통장 할머니의 목소리가 더 작아졌다.

"그 청바지에는 엄마의 미안함이 담겨 있어. 너를 남기고 가야 했던 일에 대한 미안함. 너를 안고 있던 마지막 시간에 입고 있던 옷이거든. 그 안에는 엄마의 눈물도, 엄마의 심장도 모두 담겨 있어."

은혜의 손이 청바지를 집었다. 이번엔 전과 다르게, 두 손으로 꼭 안았다. 가슴에 묻혔다.

그 순간, 누군가의 손이 자신의 머리를 쓸어주는 듯한 온기가 흘렀다. 어머니의 손 같은. 그런 손길이 지나간 자리에 따뜻함이 남았다. 은혜는 눈을 감았다.

버려진 게 아니었다. 기다려졌던 것이었다.

할머니는 그걸 알고 있었다. 그래서 청바지를 보관했고, 은혜가 커서 필요할 때를 기다렸고, 은혜의 능력이 생기기를 기다렸고, 이 순간을 기다렸던 것 아닐까.

은혜는 처음으로 울음을 터뜨렸다. 목이 메였다. 어깨가 떨렸다. 눈물이 청바지 위에 떨어졌다. 그 눈물들이 마치 어머니의 눈물처럼 느껴졌다. 오래전에 흘렸어야 했던, 하지만 흘릴 수 없었던 그 눈물들.

통장 할머니는 가만히 앉아 있었다. 말이 없었다. 할머니의 친구로서, 그저 그 자리에 있어주는 것뿐이었다.

수선실에 가을 햇빛이 길게 내려왔다. 먼지가 춤을 춘다. 그 속에서 은혜는 울었다. 오랜만에, 처음으로.

시간이 흘렀다. 얼마나 흘렀는지 은혜는 알 수 없었다. 통장 할머니가 손을 뻗어 은혜의 머리를 쓸어주었다. 어머니가 하지 못했던 것처럼, 할머니의 친구가 대신 해주었다. 그 손길이 닿는 순간, 은혜는 누군가에게 기다려졌다는 것을 다시 한 번 느꼈다.

"고마워, 은혜야. 너희 할머니가 널 잘 키워줬나 봐. 착한 아이로."

은혜는 고개를 끄덕였다. 목이 더 메었다.

통장 할머니는 천천히 일어났다. 무릎이 또 삐걱거렸다.

"이제 가야겠다. 한 일이 많거든. 그리고 너도 할 일이 많지. 그 옷들을 고쳐줘야 하잖니."

은혜는 통장 할머니를 배웅했다. 문을 열어주고, 계단을 내려가는 모습을 지켜봤다. 할머니의 친구는 골목 끝에서 한 번 더 돌아봤다. 손을 흔들었다. 은혜도 손을 흔들었다.

문을 닫으면서 한 번 더 깊게 숨을 쉬었다. 수선실로 돌아온 은혜는 청바지를 재봉틀 옆 탁자에 펼쳐놓았다.

이제 해야 할 일이 명확했다.

은혜는 바느질을 시작했다. 할머니가 했던 것처럼, 한 땀 한 땀. 왼쪽 무릎 부분의 해진 곳부터, 오른쪽 주머니 가장자리의 헤어진 실들부터. 바늘을 집었다. 실을 꿰었다.

청바지가 가진 모든 감정을 받아들이면서, 동시에 은혜 자신의 손길을 더해갔다. 어머니의 사랑 위에, 자신의 사랑을 덧씌우는 것. 그것이 수선이었다. 그것이 은혜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바느질이 계속되었다. 손가락이 아팠다. 바늘을 집을 때마다 손끝이 따끔거렸고, 실을 당길 때마다 손가락 관절이 뻣뻣해졌다. 한 시간이 지났고, 두 시간이 지났고, 해가 기울어갔다. 수선실의 불이 켜졌다. 창밖의 골목은 어두워졌다.

그 순간, 주머니에서 뭔가 떨어졌다.

종이 한 장이 바닥에 떨어졌다. 은혜는 손을 멈추고 그것을 집었다. 손가락이 떨렸다. 종이를 펼쳤다.

통장 할머니가 건넬 때 이미 주머니에 들어 있던 편지였다. 그것을 이제야 발견했다.

'은혜야, 미안해. 그리고 사랑해.

너를 낳고 너를 키울 수 없어서 미안해. 하지만 그것이 너를 사랑하지 않아서는 아니야. 매일 너를 생각했어. 넌 어떻게 자라고 있을까, 행복한가, 누군가에게 사랑받고 있나. 그런 생각들이 나를 밤새 깨어있게 했어.

할머니에게만 맡기고 떠나야 했던 일이 미안해. 너를 안고 있던 마지막 시간, 내가 할 수 있는 게 이것뿐이었어. 이 청바지를 남기는 것. 내가 너를 안고 있던 그 날, 이 옷을 입고 있었어. 그래서 이 안에는 내 온기가 남아 있어. 내 눈물도, 내 심장도. 모두 이 옷에 담겨 있어.

언젠가 넌 이 옷을 입을 때가 올 거야. 그때 넌 알아줄 거야. 엄마가 너를 얼마나 사랑했는지. 그리고 넌 혼자가 아니라는 걸.

사랑해, 우리 은혜. 언제나.'

은혜는 편지를 들었다 놨다를 반복했다. 들었다 놨다를 반복했다. 눈물이 또 흘렀다. 이번엔 더 조용하고, 더 깊은 울음이었다. 손으로 얼굴을 덮었다가 내렸다. 다시 펼쳐진 편지를 바라봤다.

누군가를 사랑하면서 그것을 전할 수 없을 때, 그 감정은 어디로 가는가. 은혜는 처음 깨달았다. 옷으로 간다는 것을. 바느질로 간다는 것을. 시간이 지나고 누군가가 그것을 받을 때까지, 옷 속에 가만히 누워있다는 것을.

편지를 천천히 주머니에 넣었다. 손을 씻고 돌아왔다. 탁자 위의 청바지를 다시 바라봤다. 이제 그 옷은 단순한 천이 아니었다. 어머니의 손길이 담긴, 어머니의 심장이 뛰던 옷이었다.

은혜는 다시 바느질을 시작했다. 이번엔 더욱 조심스럽게, 더욱 정성스럽게. 한 땀 한 땀이 어머니와의 대화가 되었다.

바늘이 드나들 때마다, 어머니의 감정이 색채로 흘러들어왔다. 파란 천 위로 흐르는 따뜻한 주황색. 어머니의 눈물 같은 투명한 빛. 그리고 그 모든 것을 감싸는 부드러운 금색의 온기. 은혜의 손가락은 그것을 모두 받아들였다. 손끝이 타는 듯 아팠지만, 그 통증 속에는 어머니의 심장이 뛰고 있었다.

밤이 깊어가고 있었다. 창밖은 완전히 어두워졌다. 수선실의 작은 불빛 아래서, 은혜는 계속 바느질했다.

그 순간, 수선실 문이 열렸다.

들어온 사람은 정수였다. 회색 스웨터를 들고 있었다. 은혜가 그에게 "계절이 바뀔 때쯤이면 돼"라고 했던 그 스웨터다. 가을이 깊어지고, 겨울이 성큼 다가온 지금, 정수는 그 옷을 들고 나타났다.

"은혜 누나."

정수의 목소리가 작았다. 그는 은혜의 눈물을 봤을 것이다. 눈가가 붉은 것을, 손에 쥐어진 편지를, 탁자 위의 청바지를. 하지만 묻지 않았다. 그저 스웨터를 조심스럽게 내밀었다.

"이제 이 옷을 고쳐줄 수 있을까? 내가 필요해진 것 같아. 누군가에게 필요한 사람이 되고 싶어. 누나처럼."

은혜는 편지를 천천히 주머니에 넣었다. 정수가 들고 온 회색 스웨터를 받았다.

손가락이 그 천에 닿는 순간, 또 다른 감정이 흘러들어왔다. 어머니의 미안함과는 달랐다. 이것은 희망이었다. 누군가에게 필요해지고 싶다는, 조용하지만 간절한 희망이었다.

은혜는 스웨터를 살펴봤다. 정수의 엄마가 만들었던 것이라고 정수가 말했던 그 옷. 엄마의 손길이 담긴 그 스웨터 속에는, 버려진 것이 아니라 누군가를 기다리던 것의 감정이 가득했다.

"알겠어. 시간이 좀 걸릴 거야. 이 옷은 단순한 수선이 아니라서."

"괜찮아. 얼마든 기다릴 수 있어."

정수가 말했다. 그의 눈빛은 진지했다. 은혜는 고개를 끄덕이고 스웨터를 탁자 위에 펼쳐놓았다. 어머니의 청바지 옆에.

그 순간 은혜는 정수를 바라봤다. 이 아이는 정말로 누군가에게 필요해지고 싶었다. 은혜는 그것을 이해했다. 어머니가 자신을 기다렸던 것처럼, 정수도 누군가에게 기다려지고 싶었던 것이다.

"정수."

"네?"

"넌 버려진 게 아니야. 기다려졌던 거야."

정수의 눈이 흔들렸다. 입술이 움직였다가 멈췄다. 그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말이 필요 없는 순간이었다.

은혜는 재봉틀로 돌아갔다. 이번엔 스웨터의 어깨 부분부터 살펴봤다. 실이 헐어 있었고, 소매도 해져 있었다. 엄마의 손길이 닿은 곳곳에 시간의 자국이 남아 있었다.

"누나, 나 여기 있어도 돼?"

"응. 괜찮아."

정수는 탁자 맞은편 의자에 앉았다. 은혜가 바느질하는 모습을 지켜봤다. 바늘이 드나드는 소리, 실이 천을 지나가는 소리. 그것이 유일한 음성이었다.

시간이 흘렀다. 밤이 깊어졌다. 수선실의 작은 불빛 아래서, 두 사람은 침묵 속에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불편한 침묵이 아니었다. 누군가가 자신을 기다려주는 침묵이었다.

은혜의 손은 계속 움직였다. 청바지는 여전히 펼쳐져 있었고, 스웨터는 천천히 되살아나고 있었다. 두 옷 모두, 누군가의 사랑을 담은 것들이었다.

정수가 갑자기 물었다.

"누나는 누군가의 옷이 되고 싶어?"

은혜의 손이 멈췄다. 질문이 예상 밖이었다.

하지만 대답은 이미 명확했다. 청바지에서 느껴진 어머니의 온기, 편지에 담긴 어머니의 심장, 그것들이 자신을 기다렸던 감정이라는 깨달음. 그것이 모든 것을 바꿨다.

누군가를 사랑하면서 전할 수 없을 때, 그 감정은 옷으로 간다. 바느질로 간다. 시간이 지나고 누군가가 그것을 받을 때까지, 옷 속에 가만히 누워있다. 그리고 언젠가 누군가가 그 옷을 입으면, 그 사랑은 비로소 전해진다.

은혜는 그제야 깨달았다. 자신이 하는 일이 무엇인지. 옷을 고치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의 사랑을 받아주는 것. 누군가의 기다림을 인정해주는 것. 그리고 그것을 다시 누군가에게 전해주는 것.

"응. 이제는. 누군가에게 필요한 사람이 되고 싶어."

은혜가 말했다. 목소리가 작았지만 분명했다. 그것은 선택이 아니라 깨달음이었다.

정수가 웃었다. 작은 웃음이었다. 그의 눈이 반짝였다. 마치 오랫동안 기다리던 누군가가 자신을 받아주겠다고 말해준 것처럼.

"좋아. 그럼 우린 같이 필요해진 사람들이 되는 거네."

은혜는 다시 바느질을 시작했다. 정수는 그 모습을 지켜봤다. 바늘이 천을 뚫고 나가고, 실이 흐르고, 한 땀 한 땀이 쌓여간다. 그것을 보고 있는 정수의 얼굴에는 평온함이 있었다. 누군가가 자신을 위해 손을 움직이고 있다는 것을 아는 평온함이었다.

밤이 더 깊어갔다. 정수는 졸음을 이기지 못하고 고개를 떨어뜨렸다. 은혜는 그를 바라봤다. 이 아이는 정말로 누군가에게 필요해지고 싶었다. 그리고 은혜는 이제 그것을 이해했다. 자신도 그랬으니까.

바느질이 계속되었다. 한 시간이 더 지났을 때, 수선실 문이 다시 열렸다. 이번엔 박현숙이었다. 그녀는 검은 원피스를 들고 있었다. 은혜가 고쳐준 그 옷. 그리고 그 옷 위에는 새로운 흔적들이 남아 있었다.

박현숙은 문 앞에 멈추었다. 은혜를 바라봤다. 정수를 바라봤다. 탁자 위의 여러 옷들을 바라봤다. 마치 뭔가를 깨달은 듯한 얼굴이었다.

"은혜님, 이 옷을 입고 나갔어요. 그리고…"

박현숙이 말을 멈췄다.

"누군가에게 필요해졌어요. 내가."

그 말이 끝나는 순간, 수선실에 따뜻한 바람이 불어왔다. 가을의 마지막 온기였을까, 아니면 겨울의 첫 인사였을까. 은혜는 모르겠다. 다만 그 순간, 모든 것이 다시 시작되는 것 같았다.

청바지는 여전히 펼쳐져 있었다. 이준호의 회색 셔츠는 아직 오지 않았다. 최은미의 개입을 알리는 신호도 없었다. 하지만 옷들은 하나둘씩 모여들고 있었다. 버려진 것이라고 생각했던 모든 것들이, 누군가에게 필요해지기를 기다리며, 은혜의 수선실에 모여들고 있었다.

그리고 은혜는 그것들을 받아줄 준비가 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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