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밤 열 시 반, 수선실의 불이 꺼져 있었다.

은혜는 셔터를 내리기 전에 한 번 더 안을 들여다봤다. 아버지의 흰 셔츠가 여전히 재봉틀 옆에 놓여 있었다. 죽음이 묻어 있는 옷. 손님은 돈을 내밀고 가며 "한 달 정도면 괜찮을까요"라고 물었다. 은혜는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그 셔츠에 손을 대는 순간 느껴진 것은 공허함이었다. 누군가 마지막으로 입은 그것이 이제는 아무도 입지 않을 옷이 되어버렸다는 절망감.

셔터를 내렸다.

다음 날 아침, 은혜는 다시 문을 열었다. 새벽 여섯 시. 해는 아직 떠오르지 않았지만 하늘이 서서히 밝아지는 시간. 수선실 불을 켜는 순간, 무언가 다른 기운이 느껴졌다. 누군가 밤새 서 있었던 것 같은 냄새. 담배와 추위.

"문 열었나요?"

음성이 뒤에서 들렸다. 은혜가 돌아봤을 때 남자가 이미 안으로 들어와 있었다. 서른 중반쯤으로 보이는, 회색 셔츠를 입은 남자. 그의 옷은 구겨져 있었고 소매는 헐렁했다. 마치 누군가 다른 사람의 옷을 입고 있는 것 같았다.

"어제 왔어야 하는데..." 남자가 말했다. "옷 좀 봐줄 수 있어요?"

은혜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의 손을 바라봤다. 남자가 들고 있는 것은 또 다른 회색 셔츠였다. 진회색. 마치 날씨가 흐린 날의 하늘 같은 색.

"이 옷, 수선해야 하나요?" 남자가 물었다. 목소리가 낮고 단조로웠다. "아무도 이 옷을 입는 거 안 봤거든요."

은혜는 셔츠를 건네받으라고 손을 내밀었다.

옷감이 손에 닿는 순간, 세상이 회색으로 물들었다. 무감정. 지침. 마치 몸에 힘이 빠진 것 같은 무거움. 하지만 그것만은 아니었다. 그 아래, 더 깊은 곳에는 무언가가 있었다. 외로움. 누군가의 손을 잡고 싶지만 손을 내밀 수 없는 그런 외로움. 마치 누군가의 손이 자신의 가슴을 누르는 듯한 감각이 은혜의 신체를 관통했다.

은혜의 손이 떨렸다.

"괜찮아요?" 남자가 물었다.

"네." 은혜가 대답했다. 그 한 글자를 내뱉는 데도 힘이 들었다.

남자는 수선실 안을 천천히 둘러봤다. 벽에 걸려 있는 다양한 색상의 옷들. 초록색 스웨터, 빨간 드레스, 검은 원피스. 모두 누군가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옷들. 남자의 눈빛이 흐려졌다.

"이 옷들도 다 버려진 거예요?" 그가 물었다.

"네."

"그런데 여기서는 다시 살아나요?"

은혜가 고개를 끄덕였다. 말이 필요 없었다. 수선실의 모든 것이 그것을 말하고 있었다.

남자가 다시 자신의 셔츠를 바라봤다. 회색 셔츠는 여전히 은혜의 손에 들려 있었다.

"이 옷을 누가 입고 싶어 하나요?" 은혜가 물었다. 목소리가 작았지만 명확했다.

남자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지갑을 꺼냈다. 손가락이 떨렸다. 몇 장의 지폐를 꺼내 책상 위에 놓았다.

"수선료가 얼마예요?" 은혜가 물었다.

"알아서 해주세요."

남자는 돈을 내밀고 나갔다. 문이 닫히는 소리. 그 후의 침묵. 은혜는 회색 셔츠를 들었다. 무감정의 옷. 하지만 무감정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이것은 외로움이 만든 색깔이었다.

은혜가 셔츠를 펼쳤다. 안쪽 목 부분을 들여다봤다. 작은 글씨가 수놓여 있었다.

'할아버지가 입으세요'

글씨가 흐릿했다. 마치 누군가 손으로 계속 비비다가 만든 자국 같았다. 은혜의 가슴이 철렁했다. 누군가는 이 옷이 필요했다. 할아버지가 입으라고 손수 이름을 새긴 누군가가. 그런데 그 누군가는 이 옷을 아무도 입지 않는다고 했다.

휴대폰이 울렸다.

은혜가 화면을 봤다. 통장 할머니였다. 이름은 '김말순'이었지만, 이곳 골목의 모든 사람들은 그녀를 '할머니'라고 불렀다. 은혜는 지난 몇 년간 할머니와 많이 이야기하지 않았다. 할머니가 돌아가신 이후로는.

아니다. 할머니는 아직 살아 있었다. 은혜는 수화기를 들었다.

"은혜야."

할머니의 목소리가 들렸다. 여전히 따뜻했다.

"안녕하세요, 할머니."

"수선실이 잘되고 있니?"

"네."

침묵. 할머니는 말을 천천히 하는 사람이었다. 마치 각 단어를 신중히 고르는 것처럼.

"할머니가 너한테 물어볼 게 있어."

"뭐예요?"

"너, 요즘 밤을 새우고 있지?"

은혜의 숨이 멈췄다. 할머니는 어떻게 알았을까.

"할머니, 지금 어디—"

"수선실 앞에 있어."

통화가 끝났다.

은혜는 빠르게 셔터를 올렸다. 밖은 아직 어두웠다. 해가 떠오르기 전의 시간. 그 황량한 시간에 할머니가 서 있었다. 폐지를 줍는 할머니의 손수레 옆에 한 명의 여자가 더 서 있었다.

젊은 여자였다. 서른 즈음. 깔끔하게 정리된 옷. 명품 가방. 스마트폰을 손에 들고 있었다. 그녀는 어제 수선실 앞을 지나갔다. 은혜는 그때 느꼈다. 무언가 다른 시선. 유리창 너머에서 자신을 재는 듯한 눈길.

"은혜야, 이분이 수선실에 관심이 있대." 할머니가 말했다. "뭔가 사업 제안이 있다고."

여자가 웃음을 지었다. 입 모양만 웃음이었다.

"안녕하세요. 저 최은미라고 해요." 여자가 손을 내밀었다. "어제 수선실 구경했어요. 정말 멋있더라고요. 특히 당신의 일하는 방식이 말이에요."

은혜는 손을 잡지 않았다.

"당신의 능력, 알아요." 최은미가 계속 말했다. 손을 내렸다. "옷에 손을 대면 감정이 느껴진다고. 정말 흥미로운 능력인데, 우리 함께 뭔가 할 수 있을 것 같지 않아요?"

할머니가 은혜를 바라봤다. 할머니의 눈빛에는 걱정이 담겨 있었다.

"뭘 하자는 거예요?" 은혜가 물었다.

"버려진 옷들을 모아서 판매하는 거죠. 당신이 수선하면 그 옷들의 감정을 마케팅 포인트로 삼아서요." 최은미가 설명했다. "예를 들면, 이 옷은 '어머니의 사랑이 담긴 옷'이라든지, '첫 데이트의 설렘이 있는 옷'이라든지 이런 식으로요. 저희 회사 RENEW에서 유명 셀럽들에게 스타일링해주고, SNS 마케팅으로 알려서요. 비싸게 팔 수 있어요. 정말 좋은 돈이 되거든요."

은혜의 가슴이 철렁했다.

"그건 안 돼요."

"왜요? 당신도 돈이 필요하지 않아요? 이 골목에 있는 모든 사람들처럼 말이에요."

할머니가 앞으로 나섰다.

"그건 옷의 감정을 파는 거야. 우리가 하던 일과는 다른 거야." 할머니가 말했다. 목소리에 힘이 있었다.

최은미가 웃음을 지었다. 이번엔 좀 더 진심 어린 웃음이었다. 하지만 여전히 차가웠다.

"감정은 누구의 것인가요? 버린 사람의? 아니면 입던 사람의? 아니면 고치는 사람의?" 최은미가 물었다. "그건 그냥 상품일 뿐이에요. 그리고 상품은 팔려야 하는 거고요."

은혜는 대답하지 않았다. 최은미의 말이 자신의 가슴을 파고들었다. 월세 밀린 지 두 달. 통장 잔액은 점점 줄어들고 있었다. 손가락이 저렸다. 가슴이 철렁거렸다. 돈이 필요했다. 정말로.

최은미가 명함을 꺼냈다. 검은색 명함. 금색 글씨로 'RENEW'라고 적혀 있었다.

"생각해봐요. 그리고 필요하면 연락해." 최은미가 명함을 책상 위에 놓고 나갔다.

할머니와 은혜는 침묵 속에서 그 명함을 바라봤다.

"할머니, 어떻게 알았어요? 제 능력을..."

"이 골목 사람들이 다 알아." 할머니가 대답했다. "당신이 옷에 손을 대면 뭔가 달라진다는 걸. 그건 누구나 느낄 수 있어."

"그럼 최은미도?"

"그 여자는 남달라. 그걸 돈으로 만들려고 해. 조심해야 해."

할머니가 수선실 안을 들여다봤다. 벽에 걸려 있는 옷들. 각각의 옷이 누군가의 이야기를 담고 있었다.

"우리가 하는 일을 기억해야 해, 은혜야. 옷을 고치는 게 아니라, 사람의 마음을 고치는 거야. 돈이 되는 일이 아니라 누군가에게 필요한 일이야."

은혜가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마음 한구석에는 뭔가 흔들리는 것이 있었다. 월세 고지서. 통장 잔액. 수선실 문을 닫아야 하는 건 아닐까 하는 불안감.

할머니가 돌아서며 말했다.

"내일 저녁 여섯 시에 우리 집에 와. 할머니가 뭔가 보여줄 게 있어."

"뭐예요?"

"와봐. 그럼 알아."

할머니는 다시 폐지를 줍기 시작했다. 이른 아침의 골목에서, 할머니의 손수레는 계속 움직였다. 부서진 골판지, 구겨진 신문지, 낡은 플라스틱 병들. 버려진 것들. 하지만 할머니의 손에서는 그것들이 다시 살아나는 것 같았다.

은혜는 다시 수선실로 들어갔다. 책상 위에는 여전히 최은미의 명함이 놓여 있었다. 검은색 명함. 금색 글씨.

은혜는 그것을 들어 올렸다가 내려놨다. 그리고 다시 들어 올렸다. 명함 뒷면에는 계좌번호가 적혀 있었다. 첫 수수료로 삼백만 원. 그 다음부터는 판매액의 삼십 퍼센트. 수선실의 월세가 이백만 원이었다.

은혜는 명함을 내려놨다.

회색 셔츠가 재봉틀 옆에 놓여 있었다. 안쪽 목에 적힌 글씨가 보였다. '할아버지가 입으세요'. 누군가의 사랑이 담긴 옷. 그런데 그 누군가는 이 옷을 아무도 입지 않는다고 했다.

은혜는 셔츠를 들고 바느질을 시작했다. 손가락이 움직였다. 한 땀 한 땀. 그 옷 속의 외로움을 느끼면서, 동시에 누군가의 손길을 느끼면서.

오전 아홉 시, 휴대폰이 울렸다. 다시 통장 할머니였다.

"은혜야, 혹시 이준호 본 적 있어?"

"누구예요?"

"어제 온 남자 말이야. 회색 셔츠 입은. 할머니가 골목에서 봤는데..."

할머니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뭔가 끝내려는 표정이었어. 골목 어귀에서 한참을 서 있었거든. 손에는 봉투를 들고."

은혜의 손이 멈췄다. 회색 셔츠가 손에서 떨어졌다.

"할머니?"

"그 남자 표정을 봤는데, 정말 위험해 보였어. 넌 그 남자를 본 거 아니니? 어떤 옷을 가져왔는지, 뭘 말했는지."

은혜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셔츠에서 느꼈던 그 감정이 다시 밀려왔다. 무감정이 아니었다. 절망이었다. 누군가의 손이 가슴을 누르는 듯한, 그 절망.

"은혜? 있어?"

"네. 회색 셔츠를 가져왔어요. 그리고..."

은혜의 목이 메었다.

"그리고?"

"아무도 이 옷을 입는 거 안 봤다고 했어요. 그래서 수선할 필요가 없다고."

통장 할머니의 숨소리가 들렸다. 짧은 침묵. 그 다음 그녀의 목소리가 더 낮아졌다.

"은혜야, 그 셔츠 안쪽에 뭐가 적혀 있어?"

"할아버지가 입으세요."

다시 침묵.

"할아버지한테 만들어준 옷이구나. 그런데 할아버지는 돌아가셨을 거야. 그래서 그 남자는 아무도 입지 않는다고 생각한 거야. 하지만 누군가는 이 옷을 필요로 해. 그 할아버지가 입으셨던 모습으로 기억하고 싶은 누군가가."

은혜는 수선실 바닥에 떨어진 회색 셔츠를 바라봤다. 옷감이 마주하는 부분이 살짝 헤어져 있었다. 누군가의 손으로 몇 번을 집었을 거였다. 입으려고 들었다가, 그만두고, 또 들었다가, 그만두고.

"할머니, 지금 어디예요?"

"골목 입구. 그 남자가 골목을 빠져나가는 거 봤어. 은혜야, 미안한데 혹시 따라가 볼래?"

"지금요?"

"지금이야. 그 남자 표정이... 정말 위험해 보였어."

통장 할머니는 끝까지 말하지 않았다. 하지만 은혜는 알았다. 그 표정이 무엇인지. 자신도 한 번 지었던 표정이었다. 어릴 때, 어머니가 떠나가던 날 밤.

은혜는 재봉틀 앞을 떠났다. 회색 셔츠를 들고.

골목 입구에는 통장 할머니가 서 있었다. 손수레를 한쪽에 밀어놓고, 가슴팍을 쓸어내리는 동작을 반복하고 있었다.

"그쪽으로 갔어. 버스정류장 쪽."

은혜는 달렸다. 아침 햇빛이 골목을 가르고 있었다. 가을 햇빛은 유독 빠르게 사라진다. 오후면 어두워진다. 그리고 밤이 되면.

버스정류장에는 이준호가 서 있었다. 정확히는 앉아 있었다. 벤치에. 손에는 회색 셔츠와 같은 색깔의 봉투가 들려 있었다. 그 안에 무엇이 있는지는 보이지 않았지만, 은혜는 알았다. 누군가의 손으로 쓴 편지. 혹은 약. 혹은 다른 무언가.

은혜는 서 있었다. 이준호와 충분히 떨어진 거리에서. 달려가서 그를 붙잡기에는 너무 먼 거리였다. 하지만 말을 걸기에는 너무 가까운 거리였다.

이준호는 고개를 들지 않았다. 버스가 지나갔다. 그 다음 버스가 왔다. 문이 열렸다. 닫혔다.

그 때였다. 은혜가 손에 들고 있던 회색 셔츠에서 무언가가 전해졌다. 그것은 외로움이 아니었다. 절망도 아니었다.

필요함이었다.

누군가가 이 옷을 필요로 했다. 누군가가 이 옷을 다시 입기를 원했다. 그 누군가는 죽었지만, 그의 사랑은 천에 수놓여 있었다. '할아버지가 입으세요'라는 글씨로.

은혜는 걸어갔다.

"이준호."

그 남자가 고개를 들었다. 눈이 부어 있었다. 하지만 눈물은 흘리지 않고 있었다. 그것이 더 무서웠다.

"이 셔츠."

은혜가 들고 있던 옷을 펼쳤다.

"이 셔츠는 누군가에게 필요해요."

"아무도 입지 않잖아요."

"할아버지가 입으세요. 여기 적혀 있어요."

이준호의 얼굴이 경직됐다.

"할아버지는 돌아가셨어요."

"그래도 필요해요. 누군가는 이 옷을 다시 만나고 싶어 해요. 할아버지가 입으셨던 모습으로."

은혜가 셔츠를 내밀었다. 손이 떨리고 있었다. 자신의 능력을 이렇게 노출한 적은 처음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중요하지 않았다.

"당신은 혼자가 아니에요. 누군가는 당신이 필요해요. 이 셔츠가 당신을 통해 다시 살아나기를 원해요."

이준호의 눈에 물이 맺혔다. 눈물이 아닌, 그저 눈물이 나올 준비를 하는 눈빛. 그것이 흐르기 시작했다. 한 줄기. 그 다음 또 한 줄기.

그는 셔츠를 받았다.

손가락이 '할아버지가 입으세요'라는 글씨를 더듬었다. 그리고 무너졌다. 소리 없이. 벤치에 앉은 채로 몸이 흔들렸다.

은혜는 그의 옆에 앉았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할머니가 가르쳐준 대로. 말이 필요 없는 순간들이 있다. 그저 옆에 있는 것만으로 충분한 때들이.

버스가 또 왔다 갔다. 햇빛은 점점 기울어졌다. 오후 두 시쯤 되었을 것이다.

이준호가 입을 열었다.

"감정이 느껴지나요? 이 옷에서?"

은혜가 대답했다.

"네. 할아버지를 사랑하는 마음이 느껴져요."

"그게 누구의 감정이에요? 할아버지의? 아니면 누군가가 할아버지를 바라보는 마음의?"

"둘 다예요."

이준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마치 자신이 알고 싶던 답을 얻은 것처럼.

"제 할아버지는 혼자셨어요. 할머니가 먼저 돌아가셨거든요. 그 다음엔 아버지가 돌아가셨어요. 그리고 저는."

그가 멈췄다.

"저는 할아버지를 돌보지 못했어요. 바빴거든요. 일이 바빴어요. 회사에서 구조조정이 있었고, 저는 살아남기 위해 일만 했어요. 할아버지가 입원했을 때도, 퇴원했을 때도. 그 마지막 생일에도."

"이 셔츠는?"

"제가 할아버지한테 사드린 거예요. 마지막 생일 때. 할아버지가 입으시고 계신 모습을 본 적이 없어요. 그 다음 주에 돌아가셨거든요. 그리고 전 이 셔츠를 집에 놔뒀어요. 입지도 못하고. 마치 할아버지가 언젠가 돌아와서 입으실 것처럼."

은혜는 셔츠를 바라봤다. 회색 천. 그 안에는 정말로 누군가의 손길이 남아 있었다. 누군가가 이 셔츠를 소중히 여겼다. 입지 못한 채로, 하지만 소중히.

"저, 이 셔츠를 고쳐주시겠어요?"

"네."

"돈은 얼마예요?"

은혜가 대답했다.

"할아버지 생각을 하면서 기다려주세요. 그것만으로 충분해요."

이준호의 얼굴에 다시 눈물이 흘렀다. 이번엔 소리가 났다. 작은 울음소리. 버스정류장 벤치에 앉은 남자의 울음소리.

사람들이 지나갔다. 아무도 멈추지 않았다. 이 도시에서는 누군가의 울음이 흔한 일이었다.

은혜는 그 옆에 앉아 있었다. 회색 셔츠를 손에 들고. 그 안에 수놓인 '할아버지가 입으세요'라는 글씨를 바라보며.

오후 세 시, 은혜는 수선실로 돌아왔다. 이준호는 셔츠를 남기고 갔다. 일주일 뒤에 찾겠다고. 그리고 할아버지 생각을 많이 하겠다고.

수선실의 책상 위에는 여전히 최은미의 명함이 놓여 있었다. 은혜는 그것을 들었다. 명함 뒷면의 계좌번호가 보였다. 첫 수수료 삼백만 원. 월세 이백만 원. 그 차이는 백만 원. 한 달을 더 버틸 수 있는 돈.

손가락이 명함의 모서리를 집었다. 찢으려는 듯했다가 내려놨다. 다시 집었다. 손이 떨렸다. 가슴이 철렁거렸다. 하지만 은혜는 명함을 내려놨다.

셔츠를 재봉틀 옆에 놓고 앉았다. 손가락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한 땀 한 땀. 헤어진 부분을 다시 잇고, 색이 바랜 부분을 살짝 손질하고, 목 부분의 글씨를 더욱 선명하게 만들고.

할머니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침에 했던 말. '옷을 고치는 게 아니라, 사람의 마음을 고치는 거야.'

은혜는 바느질을 계속했다. 손가락이 움직일 때마다, 셔츠 속의 감정이 더욱 선명해졌다. 할아버지를 사랑하는 마음. 그리고 그 사랑을 전하지 못한 후회. 하지만 그 후회마저도 사랑이었다.

오후 다섯 시, 휴대폰이 울렸다. 통장 할머니였다.

"은혜야, 이준호 봤어?"

"네, 할머니. 괜찮아요."

"정말?"

"네. 괜찮을 거예요."

통장 할머니의 숨소리가 들렸다. 안도의 숨소리.

"할머니 다행이야. 그 남자 눈이 이상했거든. 마치 어디론가 가버릴 것 같은 표정이."

"지금은 아닐 거예요."

"왜?"

"누군가가 필요했거든요. 할아버지가."

통장 할머니는 그 말을 이해했다. 이 골목의 사람들이 다 이해하는 방식으로.

"그래, 잘했어. 그리고 은혜야."

"네?"

"내일 저녁 여섯 시, 우리 집에 와. 할머니가 보여줄 게 있어."

은혜가 대답했다.

"알았어요, 할머니."

통화가 끝났다.

은혜는 다시 셔츠로 돌아갔다. 손이 움직였다. 한 땀 한 땀. 그 옷 안의 모든 감정을 받아주면서.

오후 여섯 시, 수선실 창문에 햇빛이 마지막으로 들어왔다. 가을 햇빛은 유독 슬펐다. 마치 뭔가를 놓고 가는 것처럼.

은혜는 창문을 통해 골목을 바라봤다. 골목 어귀에는 통장 할머니가 서 있었다. 손수레를 밀고. 버려진 것들을 주우면서. 누군가는 이것을 다시 필요로 할 거라는 믿음을 가지고.

그 순간, 휴대폰이 울렸다.

발신자는 최은미였다.

"은혜님? 저 최은미예요. 어제 명함 드린. 생각해봤어요?"

은혜는 대답하지 않았다.

"들었어? 오늘 당신이 그 남자한테 한 일 봤어. 정말 신기했어. 그 옷만 봐도 사람이 울어. 당신 능력 정말 대단해. 이걸 어떻게 상품화할지 생각 좀 해봤는데, 정말 돈이 많이 될 것 같아."

은혜는 전화를 끊었다.

그 순간, 수선실 문이 열렸다.

정수였다. 엄마가 만들어준 회색 스웨터를 들고 있었다.

"언니, 이 옷 아직 버리면 안 될까?"

은혜가 아이를 바라봤다. 작은 손에 들린 스웨터. 누군가의 사랑이 담긴 옷.

"계절이 바뀔 때쯤이면 돼, 정수. 아직 아니야."

"정말?"

"정말이야. 누군가는 이 옷을 다시 필요로 할 거야."

아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스웨터를 다시 들고 나갔다.

은혜는 다시 셔츠로 돌아갔다.

손이 움직였다. 한 땀 한 땀.

누군가의 손길을 받아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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