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화
수술실의 형광등이 깜빡였다.
이준호는 그것을 본 적이 있다. 2024년 7월 15일 오후 3시 23분, 급성 심근경색 환자의 우회로 수술 중. 형광등이 정확히 세 번 깜빡였고, 그 직후 환자의 모니터 수치가 급락했다. 심장 박동이 180을 넘어섰고, 혈압은 67까지 떨어졌다.
하지만 지금은 2014년 9월 12일 오전 11시 47분이었다.
"박사, 혈압이 올라갑니다."
간호사의 목소리가 귓가에 맴돌았다. 이준호는 수술장 안에서 떨리는 손을 부여잡았다. 환자는 대동맥박리 환자였다. 2014년의 환자였다. 하지만 그의 뇌 속에서는 2024년의 심근경색 환자가 겹쳐 있었다. 두 명의 환자. 두 개의 수술실. 시간이 뒤섞여 있었다.
"모니터를 확인하세요."
이준호의 목소리는 차분했지만, 손가락 끝은 메스를 잡은 채 미세하게 떨렸다. 2024년의 기억 속에서 그는 이 환자를 잃었다. 대동맥 봉합 부위에서 출혈이 시작됐고, 그는 재봉합을 시도했지만 환자는 이미 뇌사 상태였다. 공식 기록에는 '의료진의 과실로 인한 대동맥 손상'이라고 적혀 있었다. 하지만 실제로는 박영준 원장의 지시로 수술 시간을 40분 단축하라는 압박 때문이었다.
"혈압 유지 중입니다. 산소포화도 99%."
2014년의 현실이 돌아왔다. 모니터의 수치들이 정상 범위 안에 있었다. 하지만 이준호의 눈앞에는 여전히 2024년의 환자가 보였다. 그의 뇌척수액이 역류하면서 신경세포들이 오작동하고 있었다. 회귀 흔적이 누적되고 있다는 의학적 경고가 현실이 되어가고 있었다.
"봉합을 시작하겠습니다."
이준호는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 손을 움직였다. 메스가 정확히 움직였다. 2024년의 기억을 밀어내고, 2014년의 감각에만 집중했다. 환자는 살았다. 모니터가 안정적인 신호를 보냈다.
수술실을 나왔을 때 시간은 오후 2시 15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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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좋은 수술이었습니다."
이수진이 복도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마스크를 벗은 그녀의 눈은 걱정으로 가득 차 있었다. 하지만 그녀의 입가에는 미약한 미소가 있었다.
"기록실에서 모든 자료를 정리했습니다."
이준호는 그녀를 바라봤다. 이수진의 얼굴이 흔들렸다. 아니, 자신의 시야가 흔들렸다. 뇌척수액 역류로 인한 안진 현상이 심해지고 있었다.
"한 시간 뒤에 한지은 변호사를 만날 겁니다. 모든 의료사고 기록, 조작된 차트, 의약품 처방 기록까지."
이수진이 말을 이었다. 하지만 그녀의 목소리 톤에는 이전과 다른 무언가가 있었다. 차분함이 아니라 결연함. 단순한 동료의 우려가 아니라 더 깊은 책임감.
"당신의 회귀 능력 때문에 기록실 CCTV가 2주 동안 반복 재생되고 있습니다."
이수진이 낮은 목소리로 덧붙였다.
"원장이 알아챘을 겁니다. 이미."
이준호는 이수진을 더 자세히 들여다봤다. 그녀의 손가락은 벨트 버클을 계속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신경증적 행동이었다. 그녀의 눈빛이 미묘하게 변했다. 무언가를 결정하려는 듯한 긴장감이 흘렀다.
"당신은 혼자가 아니라고 했습니다."
이수진의 목소리가 작아졌다.
"저는 당신을 지탱하기 위해 여기 있습니다. 하지만 모든 것이 명확해지려면, 당신이 알아야 할 것들이 있습니다."
그녀의 손가락이 벨트 버클에서 떨어졌다. 그녀는 이준호를 똑바로 마주봤다. 그 눈에는 더 이상 동료의 우려가 아닌 다른 감정이 담겨 있었다.
이준호의 두 다리가 움직이지 않았다. 뭔가 거대한 것이 움직이려 하고 있었다. 2014년의 이수진이 단순히 그의 동료가 아니었다는 깨달음이 밀려왔다.
"저는 2024년에서 당신의 사건을 다시 조사한 사람입니다."
이수진이 천천히 말했다. 그녀의 시선은 흔들리지 않았다.
"당신의 신경계 손상 패턴을 분석했고, 당신이 2014년으로 돌아가면 그 기억들을 다시 만들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이준호는 말을 잃었다. 복도의 소음이 더 크게 들렸다. 어딘가에서 환자를 옮기는 소리, 의료기구가 부딪히는 소리. 일상의 소음이 갑자기 낯설게 느껴졌다.
"저는 당신을 지탱하기 위해 여기 있는 게 아닙니다."
이수진의 목소리가 거의 속삭이는 수준으로 낮아졌다.
"저는 당신이 증거를 모으도록 유도했습니다. 당신이 기록실에 접근하도록, CCTV를 확인하도록, 모든 것을 기록하도록."
그녀는 한 걸음 더 가까워졌다.
"왜냐하면 2024년의 나는 당신의 죽음을 봤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죽음 이후의 의료 시스템은 더욱 악화되었습니다."
이준호는 벽에 등을 기댔다. 자신의 뇌가 두 개의 시간대에서 동시에 작동하고 있었다. 2014년의 순수한 이수진과 2024년의 계획된 이수진이 겹쳐 있었다. 그 겹침 속에서 그는 누구를 믿어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당신이 원하는 것이 뭡니까?"
이준호가 물었다.
"정의입니다."
이수진의 대답은 즉각적이었다.
"2024년에서 당신의 죽음 이후, 병원은 더 견고해졌습니다. 더 많은 환자들이 죽었습니다. 더 많은 의료사고가 은폐되었습니다. 하지만 당신이 2014년에서 모든 증거를 수집하면, 그 역사를 바꿀 수 있습니다."
이준호는 기울어진 시선으로 이수진을 봤다. 그녀는 진정했다. 그녀의 눈에는 눈물이 고여 있었다. 그 눈물이 흘러내렸다.
"저는 당신을 배신하지 않습니다. 저는 당신을 사용합니다. 차이를 이해하시나요?"
이준호의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배신과 사용. 그 단어들이 그의 심장을 짓눌렀다. 이수진은 처음부터 그를 도구로 봤던 것인가. 하지만 그 눈물은 거짓이 아니었다. 그 눈물 속에는 진정한 죄책감과 절박함이 있었다. 이준호는 자신의 손가락이 떨리는 것을 느꼈다. 공감인가, 배신감인가. 그 두 감정이 동시에 그를 짓누르고 있었다. 그는 이수진의 눈을 바라봤다. 그리고 깨달았다. 그녀도 선택을 강요받은 피해자라는 것을. 2024년에서 자신의 죽음을 본 그녀도 시스템의 압박 속에서 이 결정을 내렸다는 것을.
복도의 형광등이 깜빡였다. 이번엔 한 번만. 이준호의 심장이 한 박자 건너뛰었다. 그 깜빡임 속에서 그는 2024년의 법정이 아닌 다른 무언가를 봤다. 아직 오지 않은 미래. 그의 선택이 만들어낼 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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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 로비의 대형 모니터에서 뉴스가 흘러나왔다.
**「서울대병원 의료사고 은폐 적나라...박영준 원장 검찰 소환」**
이준호는 화면을 봤다. 기자회견장에서 박영준 원장이 "모든 혐의를 부인한다"고 말하고 있었다. 그의 얼굴에는 자신감이 남아 있었다. 아직도.
"박준성 전 의료진은 자진 사직했고, 최명훈 과장은 현재 직위 해제 상태입니다. 의료계 전문가들은 이번 사건이 단순한 개인의 과실이 아니라 대형 병원의 구조적 문제를 드러낸 것이라고 평가하고 있습니다."
기자의 목소리가 계속되었다.
**「의료 수가 정체 속 실적 경쟁 심화...의료진들의 심리적 압박 가중」**
이준호는 화면에서 눈을 돌렸다. 로비 한쪽 벤치에 박준성이 앉아 있었다. 그의 얼굴은 회백색이었다. 손은 계속 떨리고 있었다.
이준호는 천천히 그에게 다가갔다.
박준성은 이준호를 봤을 때 몸을 일으키려 했지만, 무언가가 그를 가로막는 것 같았다. 죄책감. 공포. 그리고 다른 무언가.
"당신이 나를 고소한 건가?"
박준성의 목소리는 갈라져 있었다.
이준호는 말을 하지 않았다. 대신 벤치에 앉았다.
"2024년에 당신은 증거 인멸을 했습니다. 박영준의 지시를 받아서. 그리고 당신은 나를 배신했습니다."
이준호가 말했다.
"하지만 지금은 2014년입니다. 당신은 아직 배신하지 않았습니다. 당신은 아직 선택할 수 있습니다."
박준성의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선택? 무슨 선택입니까? 나는 이미 끝났습니다. 신문을 봤습니다. 의료진 명단. 나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내 이름 옆에는 '기록 조작 혐의'라고 써 있었습니다."
박준성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그는 벤치에서 일어났다. 주머니에 손을 집어넣었다. 손가락이 무언가를 집어들려 했다.
"저는 당신을 고소하려고 한 게 아닙니다."
이준호가 차분히 말했다.
박준성의 손이 약병을 집어들었다. 파란색 라벨. '수면제'라는 글씨가 선명했다. 그의 손가락이 약병의 뚜껑을 비틀려 했다.
이준호는 즉각 움직였다. 박준성의 팔을 재빠르게 잡았다. 약병은 박준성의 손에서 떨어져 로비 바닥으로 떨어졌다. 이준호는 박준성의 몸을 벤치로 누르며 말했다.
"당신을 파괴하려던 것이 아닙니다."
이준호의 목소리는 낮지만 단호했다.
"저는 시스템을 고소했습니다. 박영준을, 최명훈을, 그리고 그들의 지시를 받은 모든 사람을 고소했습니다. 당신도 그들의 피해자입니다."
박준성은 이준호를 봤다. 그의 얼굴에는 분노가 있었다. 하지만 그 분노는 이준호를 향하지 않았다. 자신을 향하고 있었다.
"피해자? 저는 피해자가 아닙니다. 저는 공모자입니다. 저는 당신을 배신했습니다. 저는 의료기록을 조작했습니다. 저는..."
박준성의 목소리가 끊겼다. 로비의 보안요원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들이 빠르게 다가왔다. 하지만 이준호는 신경 쓰지 않았다. 그의 눈앞에는 2024년의 박준성이 보였다. 법정에서 증언대에 선 박준성. 그의 얼굴에는 죄책감과 공포가 뒤섞여 있었다. 그리고 그의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다.
"저를 구하지 마세요."
박준성이 말했다.
"저는 당신을 배신할 거입니다. 2024년에서도 저는 당신을 배신합니다. 그 미래를 아신다면, 왜 저를 구합니까?"
이준호는 박준성을 봤다. 보안요원들이 그들을 분리했다. 박준성은 응급실로 옮겨졌고, 이준호는 로비에 남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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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 6시, 응급실 옆 대기실에서 최명훈이 이준호를 기다리고 있었다.
"당신은 옳습니다."
최명훈이 말했다.
"당신의 증거들은 명확합니다. 박영준의 지시, 기록 조작, 환자 안전 무시. 모든 것이 명확합니다."
이준호는 말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당신은 알아야 합니다."
최명훈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그 명확함이 모든 것을 해결하지는 못합니다."
최명훈은 창밖을 봤다. 야외 주차장의 불빛들이 희미하게 보였다.
"박영준은 여전히 원장입니다. 병원은 여전히 작동합니다. 환자들은 여전히 옵니다. 그리고 의료진들은 여전히 압박을 받습니다."
그는 이준호를 마주봤다.
"당신이 박영준을 고소하면, 당신은 의료진 커뮤니티에서 고립될 겁니다. 그들도 시스템의 피해자인데 당신이 그들을 고발하는 꼴이 되거든요. 박준성처럼. 최명훈처럼. 그들은 모두 피해자입니다. 하지만 당신의 증거 앞에서 그들은 가해자가 됩니다."
최명훈의 말이 이준호의 가슴을 짓눌렀다.
"당신도 선택해야 합니다."
최명훈이 계속했다.
"당신이 이 모든 증거를 법정에 제출하면, 당신은 병원 시스템을 변화시킬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수많은 의료진들이 피해를 입을 것입니다. 그들도 피해자이기 때문입니다. 당신은 그들을 구할 수 없습니다."
이준호의 시야가 흔들렸다. 이번엔 형광등이 아니었다. 심장음이 들렸다. 자신의 심장음이 아니라 다른 누군가의 심장음. 박준성의 심장음. 환자의 심장음. 그들의 심장이 모두 하나로 울리고 있었다. 한 박자, 또 한 박자. 그 리듬 속에서 시간의 경계가 무너졌다.
판사가 "유죄를 선고합니다"라고 말하는 순간의 법정. 그 법정이 지금 이 대기실에 있었다.
"당신이 모든 것을 고소하면, 당신도 죽을 겁니다. 법정에서 또는 병원 로비에서. 그리고 그 죽음 이후, 시스템은 더욱 견고해질 겁니다. 왜냐하면 당신이 보여줄 투명성은 병원에 의해 다시 은폐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최명훈이 말했다.
이준호는 더 이상 들을 수 없었다. 그의 뇌가 두 개의 시간대에서 동시에 폭발하고 있었다. 2014년의 로비와 2024년의 법정이 겹쳐 있었다. 박준성의 울음과 판사의 선고가 뒤섞여 있었다. 심장음의 박자가 자신의 맥박과 동기화되어 있었다.
"당신도 선택하려고 합니까?"
최명훈의 목소리가 멀어졌다.
"당신이 한 번 더 회귀할 기회가 남아 있습니다. 마지막 기회입니다."
이준호의 귀에 그 말이 들렸다. 마지막 기회. 회귀 능력의 마지막 사용. 그 이후는 뇌 손상으로 인한 돌이킬 수 없는 손상. 그 이후는 죽음.
이준호는 벤치에 앉았다. 팔을 짚으려 했지만 힘이 빠졌다. 손가락이 떨렸다.
"당신은 무엇을 선택하겠습니까?"
최명훈의 목소리가 희미해졌다.
"시스템을 바꾸는 것인가? 아니면 당신의 생명을 지키는 것인가? 아니면 그 둘 다 불가능하다는 것을 인정하고 죽음을 선택하는 것인가?"
이준호의 눈앞이 어두워졌다. 그리고 그 어둠 속에서, 또 다른 목소리가 들렸다.
"당신도 선택하려고 합니까?"
그 목소리는 이준호 자신의 목소리였다. 2024년에서. 죽음 직전에서.
이준호는 깨달았다. 그는 이미 알고 있었다. 자신의 선택을. 그리고 그 선택의 대가를.
손가락이 떨렸다. 온몸이 떨렸다. 그 떨림 속에서 온도가 변했다. 차갑던 대기실이 뜨거워졌다. 아니, 자신의 내부가 뜨거워졌다. 결연함이 그를 채웠다.
그는 천천히 일어섰다. 최명훈을 마주봤다. 그의 눈은 흔들리지 않았다.
"한 번 더 회귀하겠습니다."
이준호가 말했다.
"이번엔 다르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