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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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 10시 30분, 법정을 나온 이준호는 한지은의 차에 몸을 실었다. 조수석 창밖으로 서울의 야경이 흘러갔다.

한지은은 핸들을 잡은 채 한참 침묵했다.

"잘했습니다." 그녀가 먼저 입을 열었다. "증언이 명확했어요. 기록 조작의 증거, 시간대 일치, 원장의 지시 체계. 판사가 메모를 많이 했습니다."

"환자는요?" 이준호의 목소리가 낮았다.

"어?"

"김민준 환자. 제 증언 때 나온 의료 감정. 제가 개입하지 않았어도 결과는 같았을 가능성이 높다고 했잖습니까."

한지은이 신호등에서 멈추며 그를 바라봤다. "그것도 증거입니다. 당신이 회귀 능력으로도 완벽한 결과를 만들 수 없었다는 것이. 의료의 한계를 증명하는 것이죠."

"한계가 아닙니다." 이준호가 창밖을 봤다. "실패입니다."

차가 다시 움직였다. 한지은은 이준호의 프로필을 재빨리 훑어봤다. 그의 턱이 경직되어 있었다. 손은 떨리지 않았지만, 눈동자가 가늘게 떨고 있었다.

"이준호 의사." 한지은이 차분히 말했다. "당신이 저지른 의료사고는 하나입니다. 2014년 1월 17일, 심장 판막 수술 중의 프로토콜 변경. 하지만 당신이 은폐한 것은 없습니다. 당신이 조작한 기록도 없습니다. 당신이 책임을 회피한 적도 없습니다."

"그렇다면 내가 뭐죠?"

"증인입니다. 시스템의 피해자이자, 동시에 그 시스템을 고발하는 증인."

이준호는 대답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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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 11시 47분, 병원 기숙사. 이준호의 방.

핸드폰이 울렸다. 김태호였다.

"뉴스 봤나?" 김태호의 목소리가 흥분으로 높았다. "서울대병원 의료사고 고소, 기록 조작 혐의. 당신 이름은 안 나왔지만, 의료계에서는 난리야."

"판결은?"

"박영준 이사는 이사회에서 문책받을 거 같고, 박준성은 이미 병원에서 자진 사직 신청했어. 법원이 인정한 거야. 기록 조작이 조직적이었다는 걸. 손배 청구도 통과했고."

이준호가 천천히 숨을 내쉬었다. "최명훈 과장은?"

전화 너머에 침묵이 있었다.

"음... 아직 결정되지 않았어. 원장의 지시를 받았다는 게 입증되면 면책될 수도 있고, 동조했다는 게 입증되면 기소될 수도 있고. 그건 판사의 판단에 따라 달라져."

"그가 자살하지 않을까요?"

"뭐?"

"최명훈 과장. 자살하지 않을까요?"

"...그런 극단적인. 왜 그런 생각을..."

"회귀 능력이 있습니다." 이준호가 담담하게 말했다. "2024년의 기록을 봤습니다. 그 해 7월, 최명훈 과장은 자택에서 약물 중독으로 사망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공식적으로는 사고사. 하지만 실제로는..."

"이준호. 진정해."

"저는 진정하고 있습니다." 이준호가 말했다. "매우 진정해서,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내가 고소하지 않았다면, 그는 살았을 겁니다. 내 고소가 그의 죽음을 초래했습니다."

전화가 끊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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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 11시 52분, 병원 외래 로비.

이준호는 휴게실을 나와 중앙 복도로 향했다. 응급실에 밤샘 당직 환자들이 있었다. 그중 두 명은 자신이 2024년에서 본 사건들이었다. 급성 심근경색과 대동맥박리. 모두 자신이 살릴 수 있는 환자들이었다.

복도를 걷던 중 이준호는 벤치에 앉아 있는 최명훈을 발견했다. 과장의 얼굴은 창백했다. 손은 무릎 위에서 떨리고 있었다.

"과장님."

최명훈이 고개를 들었다. 눈가에 눈물이 맺혀 있었다.

"당신이 왔군요." 과장의 목소리가 갈라졌다. "내 말을 들었나 봅니다. 뉴스에 나왔으니까."

이준호는 벤치 옆에 앉았다.

"나는 아이 셋의 아버지입니다." 최명훈이 말했다. "서울대에 합격한 아이도 있습니다. 등록금이 얼마인지 아십니까? 그리고 당신이 고소하지 않았다면, 나는 그 등록금을 낼 수 있었을 겁니다. 기록 조작도 없었고, 책임도 없었고, 기소도 없었을 겁니다."

"과장님..."

"나를 원망하지 마십시오." 최명훈이 이준호의 눈을 봤다. "나도 피해자입니다. 시스템의. 하지만 당신의 고소로 나는 가해자가 되었습니다."

"당신이 기록을 조작했습니다."

"명령을 받았습니다. 원장이 직접 지시했습니다." 최명훈의 목소리가 떨렸다. "나는 거절할 수 없었습니다. 아이들의 미래 때문에."

이준호는 대답할 수 없었다.

"당신은 회귀 능력이 있습니다." 최명훈이 계속했다. "당신은 몇 번이고 다시 할 수 있습니다. 실패해도 다시 시작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나는 이 한 번이 전부입니다. 이 한 번의 선택이 내 인생 전체를 결정합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최명훈이 이준호를 바라봤다. "당신이 고소를 철회하십시오."

"할 수 없습니다."

"왜?"

"김민준 환자가 있기 때문입니다." 이준호가 말했다. "그 환자와 그 가족이 있기 때문입니다."

최명훈의 몸이 움츠러들었다. 그는 벤치에서 일어났다.

"7월에 죽지 마십시오." 이준호가 최명훈의 팔을 잡았다. "제발. 당신도 피해자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죽음은 해결책이 아닙니다."

최명훈은 이준호의 손을 뿌리지 않았다. 하지만 대답도 하지 않았다.

"당신의 아이들이 있습니다." 이준호가 계속했다. "그들은 아버지가 필요합니다. 죽은 아버지가 아니라, 살아 있는 아버지가."

최명훈이 눈물을 흘렸다. 하지만 여전히 대답하지 않았다.

"과장님. 제발."

최명훈은 천천히 이준호의 손을 뿌렸다. 그리고 복도의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이준호는 벤치에 혼자 남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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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12시 30분, 병실. 이수진이 옆 의자에서 자고 있었다.

이준호는 창밖을 봤다. 서울의 야경이 조용했다. 빌딩들의 불이 하나둘 꺼지고 있었다. 그 중 한 빌딩은 여전히 밝았다. 병원 관리실. 원장실이 있는 곳이었다.

그의 손이 떨리기 시작했다. 신경 손상이 악화되는 신호였다. 뇌척수액 역류가 진행 중이었다. 이준호는 손을 불그레 쥐었다. 통증은 없었지만, 떨림은 멈추지 않았다.

"당신은 혼자가 아닙니다." 이수진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녀가 깨어났다.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왜 혼자인 척 하세요?"

이준호가 그녀를 바라봤다. 이수진은 의자에서 일어나 그의 옆에 앉았다. 떨리는 손을 자신의 손으로 감쌌다.

"최명훈 과장이 죽습니다." 이준호가 말했다. "7월에. 내 고소 때문에."

"당신 탓이 아닙니다."

"시스템 탓인가요?"

이수진이 대답하지 않았다. 그 침묵 자체가 대답이었다.

"시스템을 바꾸려면, 누군가는 죽어야 합니다." 이준호가 계속했다. "최명훈처럼. 박준성처럼. 아니면 나처럼."

"그렇지 않습니다."

"그렇습니다." 이준호가 이수진의 눈을 봤다. "당신도 알 것입니다. 의사라면. 의료 현장이 얼마나 절망적인지. 환자를 살리고 싶지만, 실적을 채워야 하고. 윤리를 지키고 싶지만, 생계를 잃을 수 없고. 모두가 그 딜레마 속에서 천천히 죽어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당신이 할 수 있는 일이 있습니다." 이수진이 그의 손을 더 세게 쥐었다. "고소를 철회하는 게 아니라, 그 이후의 것입니다. 의료 기록 보존, 언론 공개, 제도 개선. 판결이 끝이 아니라 시작이어야 합니다."

"..."

"당신은 10년을 더 살았습니다." 이수진이 계속했다. "그 10년에서 배운 것이 있을 겁니다. 누군가는 죽고, 누군가는 배신하고, 누군가는 피해자가 되는 그 과정에서."

이준호는 대답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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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4시 15분, 병원 중앙 복도.

이준호는 응급실로 가는 길이었다. 밤샘 당직 중인 환자 둘을 봐야 했다. 하나는 급성 심근경색. 하나는 대동맥박리. 모두 자신이 2024년에서 본 사건들이었다. 모두 자신이 살릴 수 있는 환자들이었다.

그때 복도 끝에서 박영준 원장이 나타났다.

원장은 신문을 들고 있었다. 아침 조간이 아니라, 아직 인쇄되지 않은 신문. 이준호의 눈이 가늘어졌다. 그 신문은 존재하지 않아야 했다.

"의사 이준호." 원장이 천천히 걸어왔다. 그의 걸음걸이는 평상시와 달랐다. 뭔가 알고 있는 자의 걸음걸이였다.

이준호가 멈췄다.

"왜 그렇게 정확하게 알고 있는가?" 원장이 이준호와 마주섰다. 복도의 형광등 아래에서 원장의 얼굴이 명확했다. 하지만 그 표정은 이준호가 아는 원장의 표정이 아니었다. "의료사고의 시기, 환자의 이름, 기록 조작의 내용까지. 그리고 지금 이 신문."

원장이 신문을 들어 올렸다. 헤드라인이 보였다.

"의료 기록 조작 혐의로 서울대병원 고소 - 2024년 3월 15일자."

이준호의 혈액이 얼었다. 그 신문은 존재할 수 없는 신문이었다. 아직 나올 신문이었다. 손가락으로 만질 수 없는 종이였다. 그런데 원장은 그것을 들고 있었다.

"이 신문은 아직 나올 신문입니다." 원장이 천천히 말했다. 신문의 종이가 손가락 사이에서 흔들렸다. 하지만 그것은 신문이 아니었다. 공기처럼 흐릿했다. "당신이 법정에서 증언하던 날의 신문. 당신은 어떻게 알았나?"

"..."

"혹은 당신이 미리 이것을 경험했다는 건가? 10년 뒤의 미래를?"

이준호는 입을 열 수 없었다. 신경 손상이 얼굴까지 퍼졌다.

"나도 알고 있습니다." 원장이 웃음을 흘렸다. 하지만 그 웃음에는 공포가 섞여 있었다. "당신이 무엇인지. 어떤 능력을 가진 건지. 당신이 처음이 아니라는 것을."

"뭘 말하시는 건가요?"

"2014년, 당신이 나타나기 전, 나는 혼자였습니다." 원장의 눈빛이 변했다. "혼자 10년을 반복했습니다. 처음 10번은 병원을 바꾸려 했습니다. 하지만 불가능했습니다. 그 다음 10번은 자신을 바꾸려 했습니다. 그것도 불가능했습니다. 그리고 지금, 당신이 나타났습니다."

이준호가 한 발 물러섰다.

"당신과 나는 다른 선택을 한 겁니다." 원장이 계속했다. "나는 시스템을 받아들였고, 당신은 시스템에 저항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결국 같은 곳에 도달할 겁니다. 무너지는 신체. 혼란하는 정신. 그리고 선택의 불가능성."

"당신도 회귀 능력이?"

"정확히는 다릅니다." 원장이 신문을 내려놨다. 신문은 공기 중에서 흩어졌다. "나는 더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당신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해봤습니다. 이제 남은 건 관찰입니다. 당신이 어떤 선택을 하는지. 내가 하지 못한 선택이 있는지."

이준호의 입술이 떨렸다. 신경 손상이 얼굴까지 퍼지고 있었다. 법정 증언 후 수시간이 지나는 동안 신체 악화가 가속화되고 있었다. 회귀를 거듭할 때마다 신체는 더 빠르게 무너지고 있었다.

"응급실에 두 명의 환자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원장이 복도를 비켜섰다. "급성 심근경색과 대동맥박리. 둘 다 당신이 살릴 수 있는 환자들입니다."

이준호의 눈이 원장을 향했다.

"하지만 하나만 수술실이 비어 있습니다." 원장이 천천히 말했다. "당신은 어떻게 선택하시겠습니까?"

이준호는 대답할 수 없었다.

"회귀 능력으로도 둘 다 살릴 수 없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으면서, 당신은 무엇을 선택하시겠습니까? 의료 윤리인가? 생명의 가치인가? 아니면 시스템의 압박인가?"

"..."

"그것이 당신의 진짜 시험입니다." 원장이 이준호의 어깨를 지나쳤다. "회귀 능력이 아니라. 선택의 불가능성 속에서 의사로 남을 수 있느냐는."

이준호는 복도에 혼자 남겨졌다.

응급실의 조명이 멀리서 반짝였다. 두 환자가 기다리고 있었다. 한 명은 죽을 것이고, 한 명은 살 것이었다. 그리고 이준호는 그 선택을 해야 했다.

손이 떨렸다. 신경이 손상됐다. 뇌척수액이 역류했다.

이준호는 자신의 손을 바라봤다. 떨리는 손가락들. 그 떨림은 시간이 지날수록 심해질 것이었다. 회귀를 반복할 때마다 신체는 더 빠르게 무너질 것이었다.

남은 회귀 기회가 몇 번이나 되는가? 이번 선택이 마지막일 수도 있었다. 원장과의 대면이 마지막 기회를 소진했을 수도 있었다.

그렇다면 자신이 선택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가?

두 환자 중 하나를 선택하는 것인가? 아니면 선택 자체를 거부하는 것인가?

이준호는 앞으로 나아갔다.

응급실의 불이 더 가까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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