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 4화

침대 위에서 깨어난 이준호는 자신의 손을 봤다. 떨렸다. 심하게.

신경과 주치의 김 교수는 MRI 영상을 화면에 띄웠다.

"뇌척수액 역류 현상이 반복되고 있습니다."

이준호는 영상을 봤다. 뇌 중앙의 회백질 부위에 미세한 손상이 점점이 박혀 있었다. 마치 누군가 뇌를 천천히 깎아내는 듯한 흔적들이었다.

"처음 입원했을 때보다 진행 속도가 빨라졌어요. 신경세포 손상이 누적되고 있다는 뜻입니다."

김 교수는 포인터로 영상을 가리켰다. 하지만 이준호의 귀에는 그 말들이 제대로 들어오지 않았다. 자신의 뇌가 영상 속에서 무너지고 있었다. 실시간으로. 그것을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숨이 차올랐다.

"원인이 뭡니까?"

이준호의 목소리는 낮았다.

"의학적으로 설명하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패턴을 보면 신경 조직이 반복적인 과부하를 받고 있어요. 마치 같은 부위를 계속 손상시키고 회복되기 전에 다시 손상시키는..."

김 교수는 말을 멈췄다.

"혹시 반복적인 외상이나 약물 남용이 있었습니까?"

"없습니다."

"그렇다면 더 이상한 일입니다."

김 교수는 모니터를 끄고 의자를 돌려 이준호를 정면으로 봤다. 그 눈빛이 달랐다. 의학적 호기심이 아니라 경고였다.

"추가적인 신경 손상이 발생하면, 임계점을 넘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 경우 돌이킬 수 없는 뇌 손상으로 이어질 수 있어요. 기억 상실, 운동 기능 마비, 심한 경우..."

의사는 문장을 완성하지 않았다.

이준호는 그 침묵 속에서 모든 것을 이해했다. 죽음을 말하는 것이었다.

뇌의 영상을 다시 봤다. 손상 흔적들이 가득했다. 두 번의 회귀. 그것만으로 이 정도였다. 세 번째는? 네 번째는?

이준호의 눈빛이 변했다. 손 떨림이 더 심해졌다. 하지만 그것은 두려움 때문이 아니었다. 절망이었다. 절망이 신체를 먹고 있었다.

"얼마나... 남았습니까?"

"정확히는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현재의 손상 진행 속도를 보면, 추가 손상 없이도 6개월에서 1년 내에 증상이 악화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리고 만약 같은 손상이 반복된다면—"

"알겠습니다."

이준호는 일어섰다. 다리가 약했다. 잠깐 침대 가장자리에 앉아 균형을 잡았다.

"추가 검사가 필요합니다. 뇌 기능 평가, 신경 전도 검사. 그리고..." 김 교수가 말했다. "정신과 상담도 권장합니다. 이 정도의 신경 손상이 있다면 심리적 스트레스도 상당할 것 같습니다."

정신과. 원장 박영준이 이미 권했던 것이었다. 시스템이 움직이고 있었다. 이준호를 미치광이로 만들려는 시스템이.

침실로 돌아가는 복도를 걸으면서 이준호는 손가락을 움직여봤다. 여전히 떨렸다. 신경계가 이미 손상되어 있었다. 회귀 능력이라는 초자연의 대가가 이렇게 구체적이고 의학적인 형태로 나타나고 있었다.

병실 문을 열었을 때 이수진이 침대 옆에 앉아 있었다. 커피를 들고 있었다. 따뜻한 김이 피어오르고 있었다.

"검사 결과?"

이준호는 대답하지 않고 침대에 누웠다.

"이준호."

이수진의 목소리가 달라졌다. 의료진의 목소리가 아니라 친구의 목소리였다.

이수진은 커피를 내려놓고 이준호의 손을 잡았다. 손가락이 떨렸다. 떨리는 손가락을 그냥 잡고 있었다. 꽉 쥐지도 않았다. 단지 함께 있다는 것을 알려줄 뿐.

그 접촉의 순간 이준호의 어깨가 움직였다. 울음이 나왔다. 하지만 소리는 없었다. 침묵 속의 울음. 절망 속의 울음.

"모든 환자를 살릴 수 없다고 했죠. 당신이 나한테."

이수진이 말했다.

"그렇습니다."

"자신도 못 살립니까?"

그 질문 앞에서 이준호는 멈췄다. 울음이 더 깊어졌다. 어깨가 더 크게 움직였다. 신체가 고통을 드러내고 있었다. 신체가 모든 것을 말하고 있었다.

한 시간이 지났다. 이수진은 그대로 앉아 있었다.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단지 손을 잡고 있었다. 그것이 전부였다.

오후 3시경 박준성이 들어왔다. 이수진이 빠져나가려 하자 박준성이 고개를 저었다. 그 자리에 그냥 있으라는 뜻이었다.

박준성은 침대 옆에 서서 이준호를 봤다. 눈이 붉었다. 자신의 눈이 아니라 이준호의 눈이 붉었다는 뜻이었다.

"미안합니다."

박준성이 중얼거렸다. 그것이 전부였다. 그 말을 반복할 수도 없었다. 오직 한 번만 그 말을 내뱉고 박준성은 빠져나갔다.

이수진이 다시 앉았다.

"저 사람도 피해자인 거네요."

이준호의 목소리가 낮았다.

"네."

"모두가 피해자입니까?"

이수진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답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그것이 사실이기 때문이었다. 시스템 속에서 모두가 조금씩 무너지고 있었다. 박영준도, 최명훈도, 박준성도. 그리고 이준호도.

저녁 7시경 창밖을 봤다. 병원 밖의 서울 거리가 보였다. 사람들이 지나가고 있었다. 그들 중 누군가는 언제 죽을지 모르고 있었다. 그들 중 누군가는 의료사고로 죽을 것이었다. 그리고 그 죽음은 은폐될 것이었다. 2014년부터 2024년까지 10년간 반복되어온 것처럼.

이준호의 손이 떨렸다. 하지만 이번에는 두려움이 아니라 분노였다. 절망 속에서 나오는 분노였다.

혼잣말이 흘러나왔다.

"회귀는 무한이 아니다."

창밖을 계속 바라봤다.

"마지막 기회를 어떻게 쓸 것인가."

스마트폰이 울렸다. 화면에 한지은 변호사의 이름이 떴다.

"의료사고 증거가 충분합니다."

변호사의 목소리가 전화기를 통해 들려왔다.

"고소할 준비가 되셨습니까?"

이준호의 표정이 바뀌었다. 절망에서 결연으로. 그 변화는 순간이었다. 마치 누군가 스위치를 켠 것처럼.

하지만 그 결정 직전, 이준호는 멈췄다. 손가락이 떨렸다. 뇌척수액 역류로 인한 신경 손상. 그것이 계속될 것이었다. 회귀할 때마다. 그리고 회귀의 기회는 이미 한계에 다다랐다.

이준호는 침대에서 일어나 창밖을 다시 봤다. 서울의 밤거리. 그곳에서 누군가는 죽고 있을 것이었다. 그 죽음을 막을 수 없다면, 최소한 그것을 드러내야 했다. 자신의 신체가 무너지더라도.

"네."

한 단어가 나왔다.

"준비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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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화

전화를 끊은 직후, 이준호는 스마트폰을 손에서 내려놨다. 손가락이 떨렸다. 하지만 이번에는 신경학적 손상 때문이 아니었다. 결연함이 신체를 지배하고 있었다.

그 결연함 뒤에는 절망이 있었다. 자신의 신체가 한계라는 것을 아는 절망. 회귀 능력이 남아 있을지 모르지만, 그것도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지 알 수 없다는 절망.

밤 10시경 최명훈이 나타났다. 과장 신분으로 환자 상태를 확인하러 온다는 명목이었지만, 누가 봐도 회유 차원이었다. 최명훈은 침대 옆에 앉았다. 의자를 끌어당기는 소리가 크게 났다.

"힘들겠어. 이런 일이 생기니까."

최명훈이 말했다. 그 말의 무게감이 있었다. 이준호는 대답하지 않고 천장을 바라봤다.

"박 원장이 걱정하고 있어. 너의 건강을."

"그렇습니까."

"의료사고 문제는... 이런 거야. 병원 일 하다 보면 피할 수 없는 거고, 그걸 개인의 책임으로만 돌릴 수는 없는 거야. 알지?"

이준호가 최명훈을 바라봤다. 과장의 얼굴이 읽혔다. 죄책감과 정당화가 섞여 있었다. 시스템의 압박 속에서 개인의 양심이 흔들리는 모습이었다.

"환자는 어떻게 되셨습니까? 김민준 환자."

"그... 그건 다른 문제고."

최명훈이 목을 가다듬었다.

"지금 너는 건강을 생각해야 해. 회사도 있고, 앞으로의 커리어도 있고. 이런 일로 인생이 망가질 필요는 없잖아."

그 말 속에는 거래가 숨어 있었다. 침묵하면 보호해주겠다는 거래. 이준호는 그것을 느꼈다.

"의료사고는 은폐되는 게 맞습니까?"

"뭔 소리야?"

"2014년부터 2024년까지. 서울대병원 흉부외과에서 발생한 의료사고의 45%가 공식 보고되지 않았습니다. 제가 계산했어요."

최명훈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그건 통계를 잘못 이해한 거고..."

"환자 유족들은 합의금을 받고 침묵했습니다. 병원은 명성을 보호했습니다. 의료진은 책임을 회피했습니다. 모두가 이득을 봤습니다. 죽은 환자들을 제외하고는."

이준호의 목소리가 낮았다. 하지만 그 낮은 목소리가 최명훈을 누르고 있었다.

"너는... 뭔가 이상해. 처음부터. 알아?"

최명훈이 일어났다.

"박 원장도 그런 생각을 하고 있어. 정신과 검진을 받아 봐. 진심으로 권해. 너를 위해서."

최명훈이 나갔다. 병실이 조용해졌다. 이준호는 다시 천장을 바라봤다. 정신과 검진. 그것이 다음 수순이었다. 증거를 무효화하기 위해 증인을 정신질환자로 만드는 것. 한국 병원 시스템의 고전적 수법이었다.

새벽 2시경 이준호는 병실을 나갔다. 의료진에게 알리지 않고. 복도를 따라 기록실로 향했다. 발걸음이 불규칙했다. 신경 손상으로 인한 균형감각 상실. 하지만 멈추지 않았다.

기록실은 조용했다. 밤샘 근무하는 직원도 없었다. 이준호는 파일 캐비닛을 열었다. 손가락이 떨렸다. 이번에는 분노로 떨리고 있었다.

2014년부터 2024년까지의 의료사고 기록. 공식 기록과 비공식 기록. 보고된 것과 은폐된 것. 그 불일치들이 쌓여 있었다.

이준호는 휴대폰으로 촬영하기 시작했다. 한 장, 한 장. 체계적으로. 법정에 제출할 수 있는 증거로서. 하지만 손가락이 떨려서 화면이 흔들렸다. 여러 번 다시 촬영해야 했다. 휴대폰 화면이 손 떨림으로 인해 흔들려 글자들이 겹쳐 보였다. 촬영을 다시 시도했다. 또 실패했다. 세 번째, 네 번째. 손가락은 계속 떨렸다. 신체가 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멈추라고. 하지만 이준호는 계속했다.

한 시간이 지났다. 팔이 무거워졌다. 이마에 땀이 맺혔다. 신체가 한계를 알리고 있었다. 하지만 이준호는 멈추지 않았다.

새벽 3시 30분경 발걸음이 들렸다. 누군가가 기록실로 향하고 있었다. 이준호는 파일을 빠르게 정리했다. 하지만 너무 늦었다.

박영준이 나타났다. 원장 신분으로 새벽에 병원에 있을 이유는 없었다. 하지만 그는 여기 있었다.

"야근이 심하네요."

박영준이 웃음을 지었다. 그 웃음이 진심이 아니라는 것을 이준호는 알았다.

"환자 기록을 정리하고 있었습니다."

"그렇군요."

박영준이 한 발 다가섰다. 그 움직임이 느렸다. 의도적으로 천천히. 압박감을 주기 위해.

"의료사고라는 건 피할 수 없는 겁니다. 어느 병원이든, 어느 의사든. 당신도 알 거예요. 10년 의료 경험이 있으니까."

"네."

"그래서 우리는 무엇을 하나요? 그 불가피한 사고를 어떻게 처리하나요?"

박영준이 계속했다. 그의 목소리가 부드러웠다. 위협이 아니라 설득처럼 들렸다.

"우리는 그것을 최소화합니다. 피해를 최소화하고, 환자 유족에게 합당한 보상을 하고, 병원의 평판을 보호합니다. 그것이 의료 현장의 현실입니다."

"그것이 은폐입니까?"

"은폐? 그건 이상한 단어네요."

박영준이 한 발 더 다가섰다. 이제 그들 사이의 거리는 1미터 남짓이었다.

"우리는 은폐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관리합니다. 시스템을 관리하고, 정보를 관리하고, 결과를 관리합니다."

"그것도 은폐입니다."

이준호가 말했다.

박영준은 미소를 지었다. 그 미소 속에는 확신이 있었다. 자신의 논리가 옳다는 확신. 그리고 그것이 이기는 논리라는 확신.

"당신도 결국 이 시스템의 일부였어요. 10년간. 당신이 살린 환자들도 있고, 당신이 못 살린 환자들도 있고, 당신이 포기한 환자들도 있었겠죠. 그게 의료 현실입니다."

박영준이 파일 캐비닛에 손을 올렸다. 이준호의 촬영 대상이었던 파일들이 그곳에 있었다.

"이것들도 결국 기록일 뿐입니다. 기록은 해석되는 거고, 해석은 입장에 따라 달라집니다."

그 말이 이준호를 쳤다. 정확하게 쳤다. 왜냐하면 그것이 사실이었기 때문이었다. 이준호도 모든 환자를 살릴 수 없었다. 이준호도 어떤 환자는 포기했다. 이준호도 시스템의 일부였다.

박영준이 파일을 손에서 들어올렸다. 천천히. 의도적으로.

"다만, 당신은 지금 혼자예요. 그리고 혼자인 사람은 이 시스템을 이길 수 없습니다."

박영준이 파일을 다시 캐비닛에 넣었다. 그리고 돌아섰다. 기록실을 나가려 하는 순간, 이준호가 말했다.

"제가 촬영한 파일들을 압수하지 않으십니까?"

박영준이 멈췄다. 돌아섰다.

"압수요?"

"네. 증거 인멸 차원에서."

박영준의 얼굴이 변했다. 그 변화는 순간이었다. 부드러운 미소에서 냉정한 표정으로. 마스크가 벗겨지는 순간.

"증거 인멸이라는 건... 법적 근거가 없습니다. 이건 병원 내부 기록이고, 나는 원장입니다."

"그렇다면 제 휴대폰을 압수하시겠습니까?"

이준호가 휴대폰을 들었다. 손가락이 떨렸다. 하지만 그 떨림은 두려움이 아니었다. 도발이었다.

박영준의 눈이 휴대폰으로 향했다. 그리고 다시 이준호의 얼굴로. 계산하는 눈빛이었다. 이 상황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를 계산하는 눈빛.

"당신이 촬영한 것들이 뭔지 확인하고 싶습니다."

박영준이 손을 내밀었다. 휴대폰을 달라는 몸짓이었다.

이준호는 휴대폰을 들어올렸다. 박영준이 손을 더 앞으로 내밀었다. 손가락이 휴대폰에 닿으려 했다. 그 순간 이준호가 휴대폰을 뒤로 빼냈다.

"이건 증거입니다."

"증거?"

"네. 법정에 제출할 증거입니다."

박영준의 얼굴이 굳었다. 그 표정 속에는 분노가 있었다. 처음으로 드러난 분노.

"당신이 이 기록실에서 촬영한 것은 불법입니다. 병원 내부 기록에 대한 무단 촬영은..."

"그렇다면 경찰에 신고하시겠습니까?"

이준호가 물었다. 그 질문 속에는 함정이 있었다. 경찰에 신고하면 이 일이 공식화된다. 의료사고가 공식화된다. 은폐가 불가능해진다.

박영준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 침묵이 길어졌다. 계산하는 침묵. 다음 수를 생각하는 침묵.

"당신의 뇌 손상은 심각합니다."

박영준이 말했다. 화제를 바꾸는 것이었다.

"정신과 의사들이 이미 그렇게 진단하고 있습니다. 환각, 망상, 편집증적 사고 패턴. 이것들이 법정에서 당신의 증언을 신뢰할 수 없게 만들 것입니다."

"그렇습니까."

"당신도 알 거예요. 법정에서는 증거보다 증인의 신뢰성이 중요하다는 것을."

그 말이 이준호를 다시 쳤다. 박영준의 말이 맞다는 절망. 신체가 무너지고 있는 와중에 정신까지 의심받게 될 것이라는 절망. 시스템의 폭력이 얼마나 정교한지에 대한 절망.

이준호의 손가락이 더 심하게 떨렸다. 휴대폰을 들고 있는 손이 흔들렸다. 박영준은 그것을 봤다. 그리고 미소를 지었다. 승리의 미소였다.

"당신은 혼자예요."

박영준이 기록실을 나갔다. 그 말을 남기고. 그 위협을 남기고.

기록실이 조용해졌다. 이준호의 손이 떨렸다. 이번에는 분노도, 결연함도 아니었다. 순수한 절망이었다. 박영준의 말이 맞다는 절망. 시스템을 혼자는 이길 수 없다는 절망.

하지만 이준호는 그 자리에 서 있었다. 휴대폰을 들고. 촬영한 증거들을 가지고. 혼자라는 것을 알면서도, 계속해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새벽 4시경 이준호는 병실로 돌아갔다. 이수진이 자고 있었다. 침대 옆 의자에. 야간 당직을 마치지 못한 상태로. 이준호는 담요를 덮어줬다. 손가락이 떨렸다.

그 떨림 속에는 무언가가 있었다. 절망만이 아니라, 그것을 견디려는 의지가.

새벽 5시 47분경 이준호는 창밖을 봤다. 서울의 새벽이 밝아지고 있었다. 아직 사람들이 많지 않은 거리. 하지만 곧 사람들이 나올 것이었다. 그들 중 누군가는 오늘 병원에 갈 것이었다. 그들 중 누군가는 의료사고로 죽을 것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은폐될 것이었다.

혼잣말이 흘러나왔다.

"회귀는 무한이 아니다."

손가락이 떨렸다.

"마지막 기회는... 어디에 써야 하는가."

스마트폰이 울렸다. 화면에 한지은 변호사의 이름이 떴다. 시간은 새벽 5시 48분이었다.

"이준호 선생님, 죄송해요. 이 시간에 전화하는데. 중요한 소식이 있어서."

"네."

"병원이 합의를 제시했어요. 상당한 규모의 합의금과 함께. 그리고..."

"그리고?"

"진료 기록 조작 부분은 인정하지 않는 대신, 의료사고 자체는 의료진의 판단 오류로 인정하는 내용입니다. 당신에게는 유리한 조건이에요."

이준호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 침묵이 길어졌다.

"선생님? 혹시 받으실 건가요?"

합의. 그것은 다른 모든 환자들의 죽음을 외면하는 것이었다. 합의금을 받고 침묵하는 것. 그것이 박영준이 원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것이 가장 현명한 선택이라고 시스템은 말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준호는 이미 기록실에서 증거를 촬영했다. 박영준의 위협을 받았다. 혼자라는 말을 들었다. 그 모든 것이 이미 일어났다.

"아니요."

"예?"

"거절합니다."

"왜요? 이것보다 좋은 조건은..."

"모든 환자들의 기록을 공개하겠습니다."

이준호가 말했다. 그 말이 나오는 순간, 뭔가가 결정되는 것 같았다. 더 이상의 회귀는 없을 것 같은 느낌. 더 이상의 기회는 없을 것 같은 느낌.

"공개요?"

"법정에서. 모든 의료사고 기록을. 2014년부터 2024년까지의 모든 은폐된 기록을."

"그건... 엄청난 일인데요. 병원 전체의 명성이..."

"상관없습니다."

"아, 그리고... 혹시 당신 신체 상태가..."

변호사가 멈췄다.

"뇌 손상이 있다고 했죠. 혹시 그 때문에..."

"아닙니다."

이준호가 끊었다.

"이것이 제 최종 결정입니다."

전화를 끊었다. 이수진이 눈을 떴다. 침대 옆 의자에서 일어났다. 이준호의 얼굴을 봤다.

"뭘 하신 거예요?"

"시스템과 싸우기로 했습니다."

"혼자요?"

이준호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창밖을 바라봤다. 서울이 밝아지고 있었다. 또 다른 날이 시작되고 있었다.

이수진이 이준호의 손을 잡았다. 손가락이 떨렸다. 떨리는 손가락을 그냥 잡고 있었다. 꽉 쥐지도 않았다. 단지 함께 있다는 것을 알려줄 뿐.

"당신은 혼자가 아닙니다."

그 말이 나왔을 때 이준호의 눈이 흔들렸다. 하지만 울음은 나오지 않았다. 오직 결연함만 있었다.

새벽 빛이 병실을 비추고 있었다. 그 빛 속에서 이준호는 다시 한 번 확인했다. 회귀 기능이 남았을 수도 있고, 남지 않았을 수도 있다. 하지만 상관없었다. 이미 그는 모든 것을 걸었다.

병실 문이 열렸다. 김태호가 들어왔다. 이준호의 전임 지도교수였다. 아침 일찍 병원에 나올 이유가 없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는 여기 있었다.

"들었어. 합의 거절했다고."

김태호가 이준호의 침대 옆에 섰다.

"네."

"미쳤나?"

"모르겠습니다."

"합의금을 받고 조용히 있으면 끝나는 거야. 왜 이러는 거야?"

이준호는 대답하지 않았다.

김태호가 침대에 앉았다. 한숨을 쉬었다. 길고 깊은 한숨.

"나도 그런 적 있어. 의료사고로 환자를 잃은 적. 그때는 미쳤어. 정말 미쳤어. 그 환자를 살릴 수 있었는데, 내 실수로 죽었어. 그 이후로..."

김태호가 멈췄다.

"그 이후로 뭐 했어?"

"침묵했어. 합의금을 받고 침묵했어. 그리고 그 침묵이 나를 죽였어. 천천히. 매일."

김태호의 눈이 빨갛게 변했다.

"그래서 나는 너를 봤을 때 나를 봤어. 너도 같은 길을 가고 있다고 생각했어. 그래서 말했어. 침묵하라고. 살아남으라고. 그게 현명한 거라고."

"그렇습니까."

"그런데 넌 다른 길을 가고 있네. 그 길이 맞는지 틀린지는 모르겠지만, 최소한 넌 죽지 않을 것 같아."

김태호가 일어났다.

"그래서 나도 함께하기로 했어. 법정에서 증언하겠어. 내가 본 것들을 다 말하겠어. 10년간 침묵한 것들을."

김태호가 이준호의 손을 잡았다. 손가락이 떨렸다. 떨리는 손가락을 꽉 쥐었다.

"당신은 혼자가 아닙니다."

그 말이 반복되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다른 사람의 입에서 나왔다.

창밖의 서울이 완전히 밝아졌다. 아침이 왔다. 새로운 날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그 날에 이준호는 깨달았다. 혼자라고 생각했던 것이 환상이었다는 것을. 시스템 속에서 모두가 조금씩 무너지고 있었고, 그 무너짐을 함께 견디는 사람들이 있었다는 것을.

스마트폰이 울렸다. 이번에는 박영준의 번호였다.

"이준호."

원장의 목소리가 들렸다. 침착했다. 하지만 그 침착함이 위협이었다.

"당신이 법정에서 뭘 하려는지 알고 있습니다."

"알겠습니다."

"당신은 정신질환자입니다. 뇌 손상으로 인한 환각과 망상 증상을 보이고 있습니다. 정신과 의사들이 이미 그렇게 진단하고 있습니다."

"네."

"법정에서 당신의 증언은 신뢰할 수 없을 것입니다. 알겠습니까?"

이준호는 대답하지 않았다. 박영준의 말이 맞다는 것을 알았다. 그렇기 때문에 더 이상 회피할 수 없었다. 이것이 마지막이라는 것을 알았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만 더."

박영준이 계속했다.

"당신도 결국 시스템의 일부였습니다. 당신도 모든 환자를 살리지 못했습니다. 당신도 어떤 환자는 포기했습니다. 그렇다면 당신의 도덕적 우월성은 어디에 있습니까?"

그 질문이 이준호를 다시 쳤다. 정확하게. 깊게.

"모르겠습니다."

이준호가 대답했다.

"그렇지만 이건 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다면 죽으세요. 당신의 신념 때문에."

박영준이 말했다. 그것은 예측이 아니라 선언이었다.

"당신의 뇌 손상은 계속 진행될 것입니다. 회귀 능력이 남아 있다면 모르겠지만, 그것도 한계가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결국..."

"알겠습니다."

이준호가 끊었다.

"이미 알고 있습니다."

전화가 끊겼다. 이수진이 이준호의 손을 더 꽉 잡았다. 김태호도 그 손을 잡았다.

"당신은 혼자가 아닙니다."

둘이 동시에 말했다.

창밖의 서울이 완전히 밝아졌다. 아침이 왔다. 새로운 날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그 날에 이준호는 깨달았다. 회귀 능력이 남았을 수도 있고, 남지 않았을 수도 있다. 하지만 상관없었다.

왜냐하면 이미 그는 죽을 준비가 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혼자가 아니었다. 이수진이 있고, 김태호가 있고, 박준성이 있고, 한지은 변호사가 있었다. 그들이 함께 이 시스템과 싸우고 있었다.

그것이 회귀보다 더 강한 힘이 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최소한 그것은 혼자가 아니라는 증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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