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화 배신의 증거, 그리고 균열
기록실의 형광등이 어둡게 깜빡였다. 새벽 5시 47분. 이준호는 의료 파일의 날짜를 훑으며 호흡을 고르려 했지만, 심박수는 떨어지지 않았다. 2024년 법정의 기억과 2014년 현실이 겹쳐졌다. 판사의 망치 소리, 증거로 제출된 의료 기록들. 그 파일들이 지금 자신의 손 위에 있었다.
"이준호."
박준성의 목소리였다. 이준호는 고개를 들지 않았다.
"뭐 하는 거야?"
기록실의 조명 아래서 박준성은 회색 의사 가운을 입고 있었고, 손에는 의료 기록 폴더 세 장이 들려 있었다. 그의 얼굴은 창백했다. 이준호가 마주쳤던 2024년의 박준성—법정에서 증인석에 앉아 '의료사고는 이준호의 판단 오류'라고 증언했던 그 남자—과 정확히 같은 표정이었다. 공포와 죄책감이 뒤섞인, 하지만 자신의 생존을 위해 그것을 억누르려는 얼굴.
"기록을 찾고 있었어."
이준호는 천천히 말했다. 신경을 집중해 목소리가 흔들리지 않도록 했다.
"어떤 기록?"
박준성이 한 발 물러섰다. 폴더를 가슴에 안았다.
"김민준 환자. 1월 17일 수술 건. 심장 판막 재건술."
박준성의 손가락이 폴더 모서리를 비틀기 시작했다. 신경증적인 움직임이었다. 이준호는 그것을 놓치지 않았다.
"그 환자는... 왜?"
"수술 기록을 봐야 했어."
이준호는 손에 들고 있던 파일을 천천히 폴더에 돌려놨다. 움직임이 의도적이었다. 박준성이 그것을 지켜봤다.
"기록이 있어?"
박준성의 음성이 높아졌다. 그것은 질문이 아니었다. 확인이었다.
이준호는 박준성을 정면으로 마주봤다. 그의 눈이 한 번 깜빡였다. 기록실의 불빛이 그의 동공에 반사되었다.
"기록이 있어. 그런데 뭔가 이상해."
"이상한 게 뭔데?"
박준성이 한 발 더 물러났다. 이제 그는 기록실 문 근처에 있었다.
이준호는 파일을 펼쳤다. 그 안의 페이지들은 이미 외워져 있었다. 2024년 법정에서 검사가 제출했던 증거들. 하지만 지금 손에 들려 있는 이 파일의 페이지들은 그것과 달랐다.
"1월 17일 오전 10시 15분. 수술 시작. 환자의 혈압은 안정적이었다고 기록되어 있어."
이준호가 페이지를 넘겼다.
"근데 여기 간호사 기록을 보면, 10시 43분에 혈압이 급상승했다고 되어 있어. 그리고 30분 뒤 정상화됐다고."
박준성의 호흡이 빨라졌다. 기록실의 정적 속에서 그의 숨이 가빠지는 소리가 들렸다.
"그런데 의사 기록—여기 박준성 선생님 사인이 있는 기록을 보면, 혈압 급상승은 기록되지 않았어."
"그건... 그건..."
박준성이 입을 열었다가 다시 닫았다. 그의 목이 위아래로 움직였다.
"조작이야?"
이준호가 물었다. 그것은 질문이 아니었다. 진술이었다.
"아니... 아니야."
박준성의 손이 떨렸다. 폴더가 그의 손에서 미끄러지기 시작했다. 그는 서둘러 다시 잡았다.
"의료 기록 실수는 흔해. 기록 실수일 수도..."
"혈압 급상승을 빠뜨리는 게 실수일까?"
이준호는 한 걸음 박준성 쪽으로 다가갔다. 박준성의 얼굴이 두 겹으로 보였다. 2014년의 박준성과 2024년의 박준성이 동시에 겹쳐졌다. 이준호는 눈을 깜빡였다. 현실로 돌아왔다.
"당신은... 10년 뒤를 아는 건가?"
박준성이 갑자기 물었다. 목소리는 떨렸고, 그 속에는 공포와 함께 뭔가 다른 감정이 섞여 있었다. 절망. 또는 호소.
이준호의 심박수가 올라갔다. 침묵했다.
3초가 지났다. 5초가 지났다. 박준성의 호흡이 더 빨라졌다.
"그게... 아니면..."
박준성이 다시 입을 열려고 했다. 하지만 이준호가 먼저 말했다.
"당신이 왜 그 기록을 조작했어?"
목소리는 차갑고 정확했다. 손은 더 이상 떨리지 않았다. 이준호는 박준성의 눈을 맞춰 봤다. 그것은 위협이 아니라 확인이었다.
박준성이 뒷걸음질했다. 등이 기록실 문에 닿았다.
"원장이... 원장이 지시했어. 혈압 변동은 기록하지 말라고. 수술 중 일시적 혈압 변동은 정상 범위라고 기록하라고."
박준성의 목소리는 거의 속삭임이 되어 있었다. 그것은 자백이었다.
"왜?"
이준호가 물었다.
"환자가 수술 후 뇌졸중으로... 만약 수술 중 혈압 급상승이 기록되면, 마취 관련 합병증으로 분류될 수 있어. 그럼 병원 책임이 커져. 원장은 그것을 막고 싶었어. 그래서..."
박준성이 말을 흐렸다.
"그래서 당신이 기록을 조작했어."
이준호가 다시 한 번 확인했다.
박준성의 얼굴이 구겨졌다. 그는 눈을 감았다. 뺨이 떨렸다.
"나도... 선택의 여지가 없었어."
이준호는 한 발 더 다가갔다. 박준성의 눈이 떠졌다.
"선택이 없었나?"
"원장이... 최명훈이... 내가 이 일을 처리하지 않으면, 내 커리어는 끝난다고 했어. 그리고..."
박준성의 목소리가 떨렸다.
"그리고 당신을 진짜로 도와줄 수 없을 거라고 했어."
이준호의 얼굴이 굳었다. 박준성이 말한 '도움'은 무엇인가. 2024년 법정에서 박준성은 이준호의 증인이 되지 않았다. 대신 원장의 증인이 되었다. 그것이 '도움'의 대가였다.
"그럼 지금 뭐 할 거야?"
이준호가 물었다.
박준성의 눈이 흔들렸다. 그의 입술이 여러 번 움직였다.
"법정에 나가. 증언해."
이준호의 목소리는 명령에 가까웠다.
"나는... 나는..."
박준성이 고개를 저었다.
"못 해. 내 가족이..."
"당신의 가족이 뭐?"
이준호가 박준성을 바라봤다. 그 눈빛에는 분노가 있었다. 그리고 동시에 뭔가 다른 것이 있었다. 박준성의 약함을 인정하는 것. 하지만 그것이 용서는 아니라는 것.
"당신도 선택할 수 있어. 지금 당신은 선택할 수 있어."
박준성의 얼굴에서 모든 저항이 무너졌다. 그는 기록실 문에 등을 기대고 천천히 내려앉았다. 손으로 얼굴을 덮었다. 어깨가 떨렸다.
기록실에는 박준성의 울음소리만 남겨졌다.
이준호는 그것을 보고도 돌아서지 않았다. 파일을 들었다. 계획이 명확했다. 2024년의 법정에서 본 증거들. 그것들을 다시 모으는 것이다.
박준성은 움직이지 않았다.
이준호는 기록실을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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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8시. 카페에서 이수진을 만났다. 그녀는 핸드폰을 들고 있었고, 화면에는 법원 웹사이트가 떠 있었다.
"의료사고 소송은 증거가 전부야. 너 혼자는 불가능해."
이수진이 말했다.
"변호사가 필요해?"
"그게 아니라..."
이수진은 핸드폰을 내려놨다.
"법원이 인정하는 증거 체인이 필요해. 병원 기록만으로는 부족해. 의료 감정, 법적 절차, 그리고..."
그녀는 이준호를 바라봤다.
"너의 증언이 신뢰할 수 있다는 증명도 필요해."
이준호는 커피를 마셨다. 맛은 없었다.
"의료 법률 전문가를 알아?"
이수진이 물었다.
"변호사 한지은. 서울대 졸업, 의료 소송 10년 경력. 최근에 환자 측 소송으로 방향을 바꿨어."
이준호는 그 이름을 기억하고 있었다. 2024년에 그녀는 자신의 사건을 대리했던 변호사였다. 하지만 그 당시에는 너무 늦었다. 기록들은 이미 위조되어 있었고, 증거는 사라져 있었고, 그의 말을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연락처는?"
"내가 소개해줄게. 하지만..."
이수진이 손을 들었다.
"너 혼자 모든 것을 바꿀 수는 없다."
이준호는 그 말을 듣고도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핸드폰을 들었다. 시간은 계속 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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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오. 최명훈 과장이 메시지를 보냈다.
"지하 2층 카페. 지금."
이준호는 카페로 내려갔다. 최명훈은 이미 테이블에 앉아 있었다. 그의 손가락은 커피 잔을 돌리고 있었다.
"너 뭐 하는 거야?"
최명훈이 물었다. 목소리에는 경고가 섞여 있었다.
"뭔데요?"
이준호가 앉았다.
"박준성이 나한테 얘기했어. 너가 기록실에서 파일을 뒤졌다고."
최명훈의 눈이 이준호를 관통했다.
"그리고?"
최명훈의 얼굴에는 뭔가 다른 감정이 흐르고 있었다. 갈등이었다. 또는 죄책감. 그의 입술이 여러 번 움직였다. 말을 하려고 했지만 나오지 않았다.
"원장이 너를 만나고 싶어한다고."
최명훈이 겨우 말했다.
"언제?"
"지금. 원장실로 올라와."
최명훈은 자리에서 일어섰다. 이준호도 따라 일어났다. 그들은 엘리베이터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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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베이터 안에서 이준호의 두통이 시작됐다. 2024년의 법정이 겹쳐졌다. 박영준 원장은 법정에 나타나지 않았다. 그의 변호사만 있었다. 판사의 망치 소리. 유죄 판결.
엘리베이터의 숫자가 올라갔다. 12층. 13층. 14층.
이준호의 뇌척수액이 역류하는 느낌이 들었다. 법정의 벽과 병원 복도가 중첩되었다. 손이 엘리베이터 벽을 짚었다. 차갑고 단단했다.
15층. 도착했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 이준호는 숨을 고르고 현실로 돌아왔다.
최명훈이 앞서 걸었다. 이준호는 따라갔다. 복도의 끝에 원장실이 있었다. 문은 닫혀 있었다.
최명훈이 노크했다.
"들어와."
박영준의 목소리였다.
이준호는 문을 열고 들어갔다. 원장실의 창으로는 서울시가 보였다. 1월의 햇빛이 창문을 통해 들어왔고, 먼지가 떠다니고 있었다. 박영준은 창을 등지고 앉아 있었다.
"이준호 선생님."
박영준이 말했다. 목소리는 부드러웠다. 하지만 그 속에는 위협이 있었다.
"앉으시죠."
이준호는 앉지 않았다. 선 채로 박영준을 바라봤다.
"기록을 조작하라고 지시한 게 당신이에요?"
이준호가 물었다.
박영준의 얼굴이 굳었다. 하지만 그것은 1초일 뿐이었다. 다시 미소가 돌아왔다.
"뭔 소리를 하시는 거예요?"
"김민준 환자 기록. 혈압 변동을 삭제하라고 지시했어요."
"그런 일은 없었어요."
박영준이 말했다. 그의 목소리는 여전히 부드러웠다.
"박준성이 증언할 수 있어요."
박영준의 표정이 변했다. 그것은 짧은 순간이었지만, 이준호는 놓치지 않았다. 공포. 그것은 박영준도 무언가를 두려워하고 있다는 뜻이었다.
"그럼 그는 의료기록 위조죄에 걸려요."
박영준이 몸을 앞으로 숙였다.
"의사 면허 박탈. 10년 이상의 징역. 그리고 이준호 선생님도 마찬가지예요. 만약 그런 주장을 계속하면, 우리는 명예훼손으로 고소할 거고..."
박영준의 얼굴이 가까워졌다. 그의 눈이 이준호를 관통했다.
"너의 의료 판단을 다시 검토할 거야. 혹시 이전 환자들 중에 너의 실수로 인한 사례가 있을까? 그건 흥미로운 질문이지."
이준호의 두통이 터졌다. 뇌척수액이 역류하는 느낌이 심해졌다. 그의 손이 책상을 짚었다. 박영준은 그것을 보고 웃음을 흘렸다.
"지금 정신적으로 불안정해 보여. 법정 증언 중 발작 위험은 없나요?"
박영준의 목소리가 멀어졌다가 가까워졌다. 이준호는 눈을 감았다. 법정의 판사와 박영준의 얼굴이 겹쳤다.
이준호는 원장실을 나갔다. 복도는 길었다. 엘리베이터까지 걸어가는 동안 그의 손은 계속 떨렸다. 하지만 눈은 흔들리지 않았다. 결정이 내려져 있었다.
엘리베이터 안에서 그는 핸드폰을 꺼냈다. 이수진의 메시지를 확인했다.
"한지은 변호사 연락처: 02-1234-5678. 내일 오후 3시에 만나자고 했어."
이준호는 메시지를 읽고 지웠다. 엘리베이터가 내려갔다. 1층에 도착했다.
문이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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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날 오후 3시. 강남역 근처 변호사 사무실.
한지은은 30대 중반의 여성이었다. 짧은 머리, 회색 정장, 그리고 이준호를 보는 눈빛에는 호기심이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단순한 호기심이 아니었다. 그것은 전문가의 눈빛이었다. 증거를 보는 눈빛.
"의료사고 소송은 복잡해요."
한지은이 말했다. 그녀는 이준호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펜으로 메모를 했다. 펜을 집는 방식, 종이에 닿는 타이밍, 모두가 계산적이었다.
"특히 병원이 기록을 조작한 경우는 더욱 그래요."
"기록을 조작했다는 증거는?"
한지은이 물었다.
"간호사 기록과 의사 기록의 불일치. 혈압 변동이 간호사 기록에는 있는데 의사 기록에는 없어요."
"그것만으로는 부족해요. 간호사가 증언해야 해요."
이준호가 사진을 꺼냈다. 기록실에서 촬영한 파일들의 이미지였다. 한지은은 사진을 받아 살펴봤다. 그녀의 표정이 변했다.
"이게 원본이에요?"
"복사본입니다. 원본은 기록실에 있어요."
"원본을 법원에 제출해야 해요. 그리고 간호사 증언, 의료 감정. 이 모든 게 한 세트가 되어야 해."
한지은이 펜을 내려놨다. 그녀의 눈이 이준호를 정면으로 마주쳤다.
"법원에 신청하면 간호사 보호 조치를 받을 수 있어요. 하지만 병원은 당신을 보복할 거고, 당신도 위험해질 거예요."
"그럼 어떻게 해요?"
이준호가 물었다.
"2014년부터 지금까지 서울대병원 흉부외과의 모든 의료사고를 조사해야 해요. 패턴을 만들어야 해요. 조직적 은폐라는 패턴이 있으면 법원도 인정합니다."
한지은이 파일을 펼쳤다. 그녀는 이준호를 바라봤다.
"법정 증언 중 발작 위험은 없나요?"
한지은이 정확하게 지적했다.
"괜찮아요."
이준호가 대답했다.
"괜찮지 않은 것 같은데. 다음 주에 다시 만자. 그 전에 신경과 검진을 받아봐. 이 사건을 진행하려면 너의 정신과 신체 상태가 명확해야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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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 응급실. 오후 4시 47분.
이준호의 핸드폰이 울렸다. 최명훈이었다.
"지하 2층 카페. 지금."
통화가 끝났다. 이준호는 응급실을 나갔다.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 동안, 2024년의 기억이 떠올랐다. 바로 이 복도에서, 바로 이 시간대에...
엘리베이터가 내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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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 2층 카페에서 최명훈은 이미 앉아 있었다. 커피 잔을 손에 들고 있었지만, 마시지는 않고 있었다.
"너 뭐 하고 있었어?"
최명훈이 물었다.
"기록을 봤어요."
이준호가 대답했다.
최명훈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뭐 봤어?"
"2014년부터 지금까지 모든 의료사고. 그리고 모든 조작."
이준호가 말했다.
최명훈은 커피 잔을 내려놨다. 손이 떨렸다. 그의 눈이 이준호를 마주쳤다 돌아갔다 다시 마주쳤다. 그의 입술이 여러 번 움직였다. 말을 하려고 했지만 나오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그의 눈이 이준호를 정면으로 바라봤다. 그 눈빛 속에는 공포가 있었다. 하지만 그것만이 아니었다. 그 속에는 뭔가 깨어지는 것이 있었다.
최명훈의 손이 멈췄다. 커피 잔이 흔들렸다. 그의 얼굴에서 모든 색이 빠져나갔다. 그는 입을 열었다.
"나는..."
최명훈의 목소리는 거의 들리지 않는 수준이었다.
"나는 처음부터 그것을 알고 있었어."
이준호의 심박수가 올라갔다.
"원장이 지시했을 때, 나는 거부할 수 있었어. 하지만 나는..."
최명훈이 손으로 얼굴을 덮었다.
"나는 거부하지 않았어."
침묵이 내려앉았다. 카페의 배경음악만 들렸다.
"왜?"
이준호가 물었다.
"내 딸이 백혈병이야. 치료비가 필요했어. 원장은 그것을 알고 있었고, 그것을 이용했어. 네가 희생되면 내 딸이 살 수 있다고 했어."
최명훈의 목소리는 더 이상 과장의 목소리가 아니었다. 그것은 아버지의 목소리였다. 절망한 아버지의 목소리.
"그럼 지금 뭐 할 거예요?"
이준호가 물었다.
최명훈이 눈을 들었다. 그의 눈은 젖어 있었다.
"나는... 너를 도와야 해."
"어떻게?"
"기록 원본을 제공할 수 있어. 그리고 증언도 할 수 있어. 법정에서 모든 것을 말할 수 있어."
최명훈이 천천히 말했다.
"하지만 그럼 나는 감옥에 가."
"그래."
이준호가 말했다.
"그리고 내 딸은?"
"당신의 딸은 살 거예요."
이준호의 목소리는 명확했다.
"그것이 유일한 선택이에요."
최명훈은 테이블 위에 뭔가를 놨다. USB였다.
"여기 모든 게 들어있어. 원장의 지시 메일, 기록 조작 과정, 그리고 내 증언."
최명훈이 일어섰다.
"내일 경찰에 신고할 거야. 그리고 법정에 나갈 거야."
최명훈은 카페를 나갔다. 이준호는 USB를 집었다. 손은 떨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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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 7시. 이준호는 기록실에 다시 들어갔다.
이번에는 김민준 환자만이 아니라, 2014년부터 현재까지의 모든 의료사고 기록을 찾았다. 심근경색 환자. 뇌동맥류 환자. 판막 질환 환자.
각 기록 옆에는 조작의 흔적이 있었다. 누군가는 손글씨를 지웠고, 누군가는 타자기로 덮어 썼고, 누군가는 원본 자체를 바꿔 놨다.
그리고 모든 기록에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었다.
원장 박영준의 사인.
이준호는 사진을 찍었다. 한 장, 한 장, 한 장.
마지막 사진을 찍은 후, 그는 기록실의 형광등을 바라봤다. 그것이 다시 어둡게 깜빡였다.
그 순간, 뇌척수액의 역류감이 강해졌다. 2024년 법정의 기억과 2014년 기록실이 완전히 뒤섞였다. 판사의 망치 소리와 형광등의 깜빡임이 동시에 들렸다. 시각이 한 점으로 수렴했다가 흩어졌다. 손에 들린 카메라가 2024년의 증거 사진과 2014년의 기록 사진으로 중첩되었다.
회귀의 흔적이 극도로 심화되고 있었다.
이준호는 눈을 감았다 떴다. 현실이 안정화되었다.
여전히 2014년 기록실에 있었다.
하지만 이제 손은 떨리지 않았다.
그 대신 뇌척수액이 역류하는 느낌이 계속되고 있었다. 신경이 손상되는 느낌. 기억이 중첩되었다. 2024년 법정의 판사와 2014년 기록실의 형광등이 같은 공간에 존재했다.
회귀 흔적이 쌓이고 있었다.
이준호는 기록실을 나갔다. 계단을 밟으며, 그는 알았다.
자신에게 남은 기회가 줄어들고 있다는 것을.
각 층마다 수술실이 있었고, 각 수술실마다 누군가는 죽고 있었다.
이준호는 그것을 멈출 수 없었다.
단 하나의 회귀 기회만 남겨두고 있었다.
1층에 도착했다.
문이 열렸다.
그 앞에는 최명훈이 서 있었다.
"너... 뭐 하고 있었어?"
최명훈이 물었다.
"기록을 봤어요."
이준호가 대답했다.
최명훈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1층 로비의 불빛 아래서 그의 눈이 흔들렸다. 입술이 움직였다. 말을 하려고 했지만 나오지 않았다. 그의 손가락이 벽에 닿았다. 차갑고 단단한 벽. 그의 손가락이 벽을 따라 내려갔다. 마치 자신의 무언가가 무너지는 것을 붙잡으려는 듯이.
"그리고?"
최명훈이 겨우 말했다.
이준호는 USB를 주머니에서 꺼냈다. 최명훈에게 보여줬다.
"이미 준비됐어요."
최명훈의 눈이 USB를 바라봤다. 그리고 다시 이준호를 바라봤다. 그 눈빛 속에는 이제 저항이 남아있지 않았다. 오직 절망과 결단만 있었다.
"내일 경찰에 신고할 거야."
최명훈이 말했다.
"그리고 법정에 나갈 거야."
"감사해요."
이준호가 말했다.
최명훈은 이준호를 지나 밖으로 나갔다. 로비의 회전문이 닫혔다. 그 뒤로 서울의 밤이 보였다.
이준호는 그 자리에 서 있었다.
뇌척수액이 역류하는 느낌이 계속되고 있었다.
시각이 수렴했다가 흩어졌다.
회귀의 흔적이 몸 곳곳에 남겨져 있었다.
이제 정말로 남은 기회가 하나뿐이었다.
이준호는 핸드폰을 들었다. 한지은 변호사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증거를 가지고 있습니다. 내일 오전 경찰에 신고합니다."
메시지를 보낸 후, 이준호는 병원을 나갔다.
밤거리를 걸으며, 그는 생각했다.
2024년의 법정에서 자신은 패배했다.
하지만 2014년의 이 순간, 자신은 다른 선택을 할 수 있다.
그것이 회귀의 의미였다.
모든 것을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뜻이었다.
밤하늘이 이준호를 감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