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급실의 심장 모니터 소리가 멈췄다.
이준호는 그 순간을 정확히 기억하고 있었다. 김민준 환자의 심박수가 영점으로 떨어지는 소리. 2024년 법정에서 증거로 제시됐던 수술 기록. 그리고 지금, 2014년 1월 17일 오후 2시 42분, 서울대병원 응급실.
환자의 아내가 비명을 질렀다. 그 목소리는 시간을 관통했다.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같은 음색, 같은 절망. 이준호는 심폐소생술 팀에 합류했고, 환자를 되살려냈다. 뇌졸중의 후유증을 안은 채로.
의료진들이 환자를 중환자실로 옮길 준비를 하는 동안, 이준호는 그 아내의 얼굴을 봤다. 안도감도 있었지만, 그 뒤에 숨어 있던 것은 다른 절망이었다. 남편이 돌아올 리 없다는 것을 이미 아는 여자의 눈빛.
이준호가 회귀한 지 72시간이었다.
응급실 침대에서 깨어났을 때 이준호의 두개골은 폭탄을 터뜨린 듯했다. 뇌척수액이 역류하는 느낌, 신경세포들이 서로 충돌하며 내는 전기 화상 같은 고통. 응급의는 CT와 MRI를 돌렸고, 모든 결과는 '정상'이었다. 신경학적 이상 없음. 뇌출혈 없음. 종양 없음.
의학으로 설명할 수 없는 고통이 이준호의 몸을 휘감고 있었다.
3일 동안 그는 침대에 누워 있지 않았다. 차트실로 향했다. 환자 기록들을 훑었다. 특히 심장 판막 수술 대기 환자들. 그 중에서 김민준을 찾아냈을 때, 이준호는 자신의 죽음이 얼마나 가까운지를 깨달았다.
1월 17일. 그것이 모든 것을 바꾼 날이었다.
"이준호 선생, 상태가 어떻게 되세요?"
이수진이 응급실 침대 옆에 섰다. 그녀의 눈에는 의심과 걱정이 섞여 있었다. 72시간 동안 이준호가 보인 이상한 행동들 때문이었다. 환자 기록을 사진으로 찍는 일. 박준성을 찾아다니는 일. 그리고 어제, 지하 카페에서의 그 불가능한 고백.
"미래를 본다고? 김민준 환자가 뇌졸중으로 쓰러진다고?"
이수진의 목소리는 낮았지만 날카로웠다. 의사의 목소리가 아니라 친구로서의 두려움이 섞인 목소리였다.
"정확한 표현은 아니야."
이준호는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움직일 때마다 뇌 뒤쪽에서 뭔가 찢어지는 느낌이 했다. 회귀 후유증이라고 의학적으로 부를 수 없는 것들이 하나둘 쌓이고 있었다.
"기억이야. 이미 일어난 일을 기억하고 있는 거야."
"그건 정신분열증의 증상이에요. 아니면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이수진이 차트를 들었다가 내려놨다. 의료진으로서의 판단과 친구로서의 감정 사이에서 갈등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1월 17일에 김민준 환자를 수술할 거야. 박준성이 주도할 거고, 나도 참관의로 들어갈 거야. 그 수술 중에 뭔가 잘못될 거야."
"뭔가 잘못? 이준호, 당신은 의사예요. 의료 감으로는 무언가를 예측할 수 있겠지만, 이건..."
이수진은 문장을 마치지 않았다. 말할 필요가 없었다. 둘 다 알고 있었다. 이것은 의료 감을 넘어섰다.
이준호는 침대에서 내려섰다. 발을 디디는 순간 어지러움이 몰려왔지만, 그는 이를 악물고 버텼다.
"날 믿어 줄래?"
이수진의 눈이 흔들렸다. 그녀는 이준호를 오래 바라봤다. 그 눈빛 속에는 신뢰의 흔적과 의심의 그림자가 동시에 살고 있었다.
한참의 침묵이 흘렀다. 이수진은 입을 열었다 닫았다를 반복했다. 마침내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완전한 승인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것은 함께하겠다는 신호였다.
"수술을 막을 수는 없어요. 당신이 아무리 이상한 예감을 가져도, 환자의 동의가 있으면 수술은 진행돼요."
"알아. 그래서 다른 방법을 써야 해."
이준호가 말했다. 이수진의 눈이 다시 흔들렸다.
"환자와 보호자를 만나야 해. 수술 위험에 대해 더 자세히 설명하고, 연기를 권유할 거야. 그게 안 되면..."
"그게 안 되면?"
"수술실에서 직접 막아야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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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17일 오전 10시. 이준호는 김민준 환자의 병실을 찾았다. 환자는 침대에 누워 있었고, 아내는 그의 옆에 앉아 있었다. 50대 초반의 회사원. 심장 판막의 퇴행성 변화로 인한 판막 협착증. 정상적인 환자였다. 정상적인 수술이었다. 하지만 이준호는 정상적인 결과를 알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저는 이준호 의사입니다. 오늘 수술에 참관의로 참석할 예정입니다."
환자와 아내가 이준호를 바라봤다. 의심의 눈빛이었다. 이미 박준성 교수에게 충분한 설명을 받은 상태였다.
"말씀드리고 싶은 게 있습니다."
이준호가 침대 옆에 앉았다. 그의 목소리는 낮았지만 확실했다.
"심장 판막 수술은 성공률이 높지만, 수술 중 혈류 변화로 인한 뇌 손상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특히 고령 환자의 경우 그 위험이 더 높습니다."
"박 교수님은 그런 말씀을 안 하셨는데요?"
환자의 아내가 말했다.
"위험을 과장하는 건 아닙니다. 다만 현재 환자분의 상태라면, 수술을 한 달 정도 연기하고 추가 검사를 진행하는 것이 더 안전할 수 있습니다."
"연기? 의사 선생님, 우리 남편은 지금도 숨이 찬데요."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응급 상황은 아닙니다. 충분히 시간이 있습니다."
이준호가 환자를 바라봤다. 환자의 눈빛이 흔들렸다. 아내의 불안감이 전이되고 있었다.
"수술을 미루면 어떻게 되는 거예요?"
환자가 물었다.
"약물 치료를 강화하고, 심장 기능을 더 정확히 평가합니다. 그 후에 더 안전한 조건에서 수술을 진행할 수 있습니다."
이준호의 말은 의학적으로 타당했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었다. 그것은 또한 거짓이었다. 이준호는 알고 있었다. 연기해도 결과는 같을 것이라는 것을. 하지만 지금 이 순간, 환자와 보호자의 선택을 바꾸는 것이 필요했다.
"생각해 보시겠어요?"
이준호가 일어섰다.
"박 교수님과도 상담하시고, 가족분들과도 의논하신 후에 결정하세요. 결정은 환자분과 보호자분의 권리입니다."
이준호가 병실을 나갔을 때, 환자의 아내는 남편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 눈빛은 더 이상 확신에 차 있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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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17일 오전 11시 30분. 박준성이 이준호를 찾았다. 의료진 휴게실에서였다.
"뭘 한 거야?"
박준성의 목소리는 낮았지만 날카로웠다.
"환자에게 설명했어. 위험성을."
"그건 내 환자야. 내가 설명하는 거야."
"알아. 그래서 환자가 수술을 미루고 싶다고 말할 거야. 그때 넌 어떻게 할 거야?"
박준성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그는 이준호를 바라봤다. 그 눈빛 속에는 분노와 공포가 섞여 있었다.
"넌... 알고 있구나. 뭔가 일어날 거라는 걸."
"알아."
"그리고 그걸 막으려고 하고 있어."
"맞아."
박준성이 한 발 물러섰다. 그의 손이 떨렸다. 두 사람 모두 침묵에 빠졌다. 그 침묵 속에서 모든 것이 교환되지 않았다. 오직 인정만이 흘렀다.
"너는 기억할 필요가 없어."
이준호가 먼저 말했다.
"나는 이미 알고 있으니까."
박준성의 얼굴이 더 창백해졌다. 그는 입을 열었다가 닫았다. 다시 열었다가 닫았다. 결국 그는 침묵 속으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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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17일 오후 1시. 김민준 환자는 수술을 미루기로 결정했다. 아내의 강한 권유와 이준호의 설명이 작용했다. 박준성은 이를 받아들였다. 겉으로는 담담했지만, 그의 눈빛은 뭔가를 알고 있었다.
이준호는 응급실로 내려갔다. 침대에 누웠다. 손이 떨렸다. 뇌가 타는 듯했다. 하지만 그는 움직이지 않았다. 기다렸다.
시간이 흘렀다. 몇 시간인지는 알 수 없었다. 2014년과 2024년의 기억이 뒤섞여 시간 감각이 왜곡되고 있었다. 법정의 판사 목소리와 응급실의 모니터 음이 동시에 들렸다.
그리고 밤이 되었다.
오후 11시 47분. 응급실의 심장 모니터가 울렸다. 김민준 환자의 심박수가 비정상이었다. 뇌졸중. 수술을 하지 않았는데도 뇌졸중이 왔다.
의료진들이 환자를 응급실로 옮겼다. 이준호는 침대에서 일어났다. 손가락이 심하게 떨렸다. 뇌척수액이 역류하는 느낌이 심해졌다. 하지만 그는 걸었다. 응급실로.
심폐소생술. 약물 투여. 신경학적 검사. 모든 것이 첫 번째 회귀와 같았다. 하지만 이번 결과는 더 처참했다. 환자의 뇌간이 손상됐다. 의식은 돌아올 수 없었다. 단지 육체만 숨을 쉴 뿐.
이준호는 그 순간을 정확히 기억하고 있었다. 이미 두 번 경험한 죽음. 수술실에서 막을 수 없는 죽음. 수술을 미뤄도 막을 수 없는 죽음. 그리고 이제는 더 이상 죽음도 아닌, 죽음보다 나은 상태.
회귀 능력의 한계였다.
이수진이 복도에서 이준호를 찾았다. 그녀의 얼굴은 창백했고, 눈빛은 절망으로 가득했다.
"당신이 한 모든 노력을 봤어요. 환자와 보호자를 설득하고, 수술을 미루고. 정말 최선을 다했어요."
이수진이 말했다. 그녀의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다.
"그런데 환자가 뇌졸중으로 쓰러졌어요. 수술을 미뤘는데도."
이준호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답할 수 없었다.
"이준호, 당신 혼자 모든 것을 바꿀 수는 없어요. 의학의 한계가 있거든요."
이수진이 그의 팔을 잡았다. 그녀의 손도 떨리고 있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해?"
이준호가 중얼거렸다.
"뭐라고요?"
"내가 뭘 해야 하는 거야?"
이준호는 이수진을 바라봤다. 그녀의 얼굴에 공포와 동정이 섞여 있었다. 그 감정은 정확했다. 이수진은 이미 짐작하고 있었다. 이준호가 무엇을 하려는지. 그리고 그것이 그에게 무엇을 할 것인지.
"이준호, 잠깐만. 당신이 뭘 하려는 건지 알아요. 하지만 이번엔 안 돼요."
이수진이 그의 팔을 더 강하게 잡았다.
"또 회귀하면 당신이 견딜 수 없어요. 이미 손가락이 떨리고 있잖아요. 뇌척수액 역류도 심해지고 있고."
"그래도..."
"이번엔 다른 방법이 있어요. 기록을 남겨야 해요. 증거를 남겨야 한다고요."
이수진의 눈빛이 결연했다.
"뭐라고?"
"박준성이 지금 기록실로 가고 있어요. 내가 봤어요. 손에 파일을 들고."
이수진이 말했다.
"우린 그걸 막아야 해요. 당신이 또 회귀하는 대신, 우리가 증거를 지켜야 해요. 그게 유일한 방법이에요."
이준호는 이수진을 바라봤다. 그녀의 눈빛에는 결정이 서 있었다. 더 이상 함께하겠다는 신호가 아니었다. 함께 싸우겠다는 신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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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실로 가는 복도. 이준호와 이수진이 빠르게 움직였다. 손가락이 떨리는 이준호를 이수진이 지탱했다.
기록실 문이 열려 있었다. 박준성이 파일들을 들고 나가려던 참이었다. 그의 손에는 여러 장의 문서가 들려 있었다. 그의 얼굴은 창백했고, 그의 눈빛은 절망으로 가득했다. 그의 움직임은 서둘렀다.
세 사람이 마주쳤다. 기록실의 한가운데서.
"넌... 또 왔구나."
박준성의 목소리가 떨렸다. 하지만 이번에는 이준호 혼자가 아니었다. 이수진이 그의 옆에 서 있었다.
"박 교수님, 그 파일을 내려놓으세요."
이수진이 말했다. 그녀의 목소리는 차분했다.
"이수진... 넌 뭘 하는 거야?"
박준성이 물었다.
"제 역할을 하고 있어요. 의사로서."
이수진이 한 발 나아갔다.
"환자가 뇌졸중으로 쓰러졌어요. 수술을 하지 않았는데도. 이건 의료사고가 아니라 의료 기록으로 남아야 해요. 그래야 다른 환자들도 보호받을 수 있어요."
"그게 뭐 하는 짓이야? 그럼 난 끝이야. 의료진으로서 경력이 끝나."
박준성이 파일을 더 강하게 움켜쥐었다.
"넌 이미 끝났어."
이준호가 말했다. 그의 목소리는 낮았지만 명확했다.
"2024년에서 넌 이 기록을 없앴어. 그리고 그것이 법정에서 밝혀졌어. 넌 의료사고 은폐죄로 기소됐고, 결국 형을 받았어."
박준성의 얼굴이 더 창백해졌다.
"그럼 이번엔... 뭘 하라는 거야? 같은 실수를 반복하라고?"
"아니야. 이번엔 다르게 할 수 있어. 넌 지금 선택할 수 있어. 그 파일을 내려놓고, 함께 환자와 가족을 마주하는 거야. 의료사고로 인정하고, 책임을 지는 거야."
이준호가 말했다.
"그게 쉬울 거라고 생각해? 내 경력이 끝난다는 걸 알면서?"
"알아. 하지만 그게 유일한 길이야. 넌 이미 한 번 다른 길을 갔어. 그리고 그건 너를 더 깊은 구렁텅이로 밀어 넣었어."
이수진이 박준성에게 한 발 더 가까워졌다.
"박 교수님, 제가 아는 박 교수님은 이런 사람이 아니에요. 당신은 좋은 의사였어요. 실수할 수 있는 의사였지만, 거짓으로 자신을 지키려던 의사는 아니었어요."
박준성의 손이 떨렸다. 그의 눈빛이 흔들렸다. 파일이 그의 손에서 미끄러졌다.
"내가... 뭘 해야 하는 거야?"
박준성이 중얼거렸다.
"환자 가족을 만나세요. 그리고 진실을 말해요."
이수진이 말했다.
"의료사고 보험도 있고, 병원도 책임을 져야 해요. 하지만 첫 번째는 가족에게 진실을 말하는 거예요."
박준성은 파일을 내려놨다. 그의 손이 떨렸다. 그의 얼굴은 창백했다. 하지만 그의 눈빛에는 뭔가 다른 것이 들어섰다. 절망이 아니라 무언가 다른 감정. 그것이 무엇인지는 명확하지 않았지만, 그것은 거짓보다 무거웠다.
"내가... 견딜 수 있을까?"
박준성이 물었다.
"모르겠어요. 하지만 거짓을 견디는 것보다는 낫을 거예요."
이수진이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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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실을 나간 세 사람. 이준호는 손가락이 떨리는 것을 느꼈다. 뇌척수액이 역류하는 느낌도 여전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다른 것이 있었다. 회귀하지 않았다. 또 다른 선택이 있었다는 깨달음.
이수진이 이준호의 팔을 지탱했다.
"당신이 모든 걸 바꿀 수는 없어요. 하지만 당신이 모든 걸 포기할 필요도 없어요."
이수진이 말했다.
"이번엔 우리가 함께 했어요. 그게 중요해요."
이준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손가락이 여전히 떨렸다. 뇌척수액이 여전히 역류했다. 회귀의 대가는 여전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것이 전부가 아니었다.
1월 17일 밤. 서울대병원의 기록실에서 출발한 선택이 병원 전체를 움직이기 시작했다. 박준성의 고백. 환자 가족과의 대면. 병원 행정부의 개입. 의료사고 보험의 청구.
모든 것이 공식적인 기록으로 남겨졌다.
이준호는 응급실 침대에 누웠다. 손가락이 떨렸다. 뇌척수액이 역류했다. 하지만 그는 회귀하지 않았다. 이번에는 버텼다. 이수진이 침대 옆에 앉아 있었다.
"당신은 이미 충분히 했어요."
이수진이 말했다.
"이제 쉬세요."
이준호는 눈을 감았다. 2014년과 2024년의 기억이 여전히 뒤섞여 있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것이 고통만은 아니었다. 그것은 또한 증거였다. 자신이 선택했다는 증거. 회귀하지 않고도 뭔가를 바꿀 수 있었다는 증거.
회귀 능력의 한계 너머에 있는 것들이 있었다. 그것은 다른 사람과의 연결이었다. 믿음이었다. 그리고 함께하는 것이었다.
이준호는 그 순간을 기억하기로 했다. 회귀하지 않은 선택을. 버텨낸 고통을. 그리고 이수진의 손을.
응급실의 모니터 소리가 계속됐다. 이번에는 그것이 죽음의 신호가 아니었다. 단지 시간의 흐름을 나타낼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