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억의 복원, 그리고 의심
응급실의 형광등이 눈부셨다. 이준호는 침대에 누워 천장을 바라봤다. 심전도 기계의 비프음이 규칙적으로 울렸다. 의사들이 그의 신경 반응을 체크하고 있었다. "뇌척수액 역류 현상이 보입니다. 원인은 아직 불명확하지만 의식은 명확한 상태네요."
그의 손은 떨리고 있었다. 의도하지 않은 떨림이었다.
2024년의 기억이 뒤섞여 있었다. 법정의 판사 목소리. 배심원들의 침묵. 그리고 폐에 스며드는 약물의 차가움. 그 모든 것이 2014년의 천장 위에서 겹쳐졌다. 시간이 일직선이 아니었다. 기억이 신체를 지배하고 있었다.
이수진이 응급실 문을 밀고 들어왔다. "정신 차렸어? 의료진이 뭐라고 했어?"
"괜찮다."
그 한 마디가 거짓이라는 걸 이준호는 알고 있었다. 거짓이 아니라 불완전한 진실이었다. 신체는 2014년에 있었지만 그의 기억은 여전히 2024년을 살고 있었다.
"당신 표정 이상해. 진짜로."
이수진의 목소리에는 의심이 섞여 있었다. 이준호는 그것을 느꼈다. 의심은 전염병처럼 빠르게 퍼진다. 한 사람의 의심은 다른 사람의 의심을 낳는다.
"피로야. 당직이 길었어."
"당직은 이틀 전에 끝났잖아."
이수진은 자리에 앉지 않았다. 서 있는 채로 그를 바라봤다. 그 시선 속에는 친구를 향한 것이 아니라 환자를 향한 의료인의 객관성이 담겨 있었다. 이준호는 그 차이를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도.
"뭔가 숨기고 있는 거 같은데. 신경 검사 결과 나왔어?"
"아직이야."
이준호의 대답은 짧았다. 이수진의 눈이 좁혀졌다.
"당직 중에 뭐 있었어? 아니면... 응급실에 오기 전에?"
"담당 환자 기록 정리를 해야 한다."
이준호가 침대에서 일어나려 하자 이수진이 팔을 잡았다.
"최소한 오늘 하루는 쉬어야지. 신경 검사 결과가 나올 때까지."
"난 괜찮다."
이준호의 목소리가 차가웠다. 의도하지 않은 차가움이었다. 이수진의 손이 떨어졌다. 그녀의 얼굴에 상처가 스쳤다. 하지만 그 상처 뒤에는 여전히 의심이 남아 있었다.
---
응급실을 나온 이준호는 복도를 따라 흉부외과 병동으로 향했다. 신발이 바닥에서 내는 소리가 비정상적으로 크게 들렸다. 모든 음향이 증폭되어 들렸다. 2024년의 기억 속에서 들었던 소리들과 2014년의 현실이 겹쳐지면서 뇌가 처리할 수 없는 신호들을 계속 받고 있었다. 때때로 시간이 앞으로 나아가지 않는 것 같았다. 마치 같은 순간을 반복하는 것처럼.
차트실 앞에 멈췄다. 책장처럼 줄 세워진 환자 기록들. 그 중 하나를 꺼냈다. 김민준. 53세 남성. 심장 판막 수술 예정. 1월 17일.
기록을 읽으면서 이준호의 호흡이 빨라졌다.
판막 협착증. 좌심실 비대. 그리고 복합 대동맥 질환. 이것은 단순한 수술이 아니었다. 이것은 고위험 케이스였다. 통상적인 판막 치환술로는 충분하지 않았다. 동맥 재구성이 필요했다. 그 과정 중에 뇌졸중 위험이 존재했다.
이준호는 정확히 기억하고 있었다. 2024년의 법정에서 검사가 읽었던 기록. "환자 김민준은 수술 중 뇌졸중으로 인해 사망했습니다. 의료진의 판단 오류와 부실한 준비가 초래한 결과입니다."
그것이 거짓이라는 걸 이준호는 알고 있었다. 환자는 죽지 않았다. 살아났다. 하지만 식물인간이 되었다. 10년 동안 침대 위에서 호흡기에 의존하며 살아있었다. 그리고 그 10년의 의료비는 가족을 파괴했다. 그 가족이 결국 이준호를 고소했다.
기록을 다시 읽었다. "수술 난도: 매우 높음. 성공률: 65%."
그 숫자가 문제였다. 원장은 그 숫자를 좋아하지 않았을 것이다. 서울대병원은 90% 이상의 성공률을 자랑하는 곳이었다. 65%는 수치상 매우 낮았다. 그리고 그 낮은 성공률이 무언가를 결정하게 할 것이었다.
복도에서 발걸음이 들렸다. 최명훈 과장이었다. 그의 얼굴은 피로로 일그러져 있었다. 원장실에서 내려오던 중이었다.
"이준호. 응급실에서 나왔군."
"네, 과장님."
최명훈이 기록을 빼앗듯이 가져갔다. 그의 눈이 김민준의 기록을 훑었다.
"이 케이스, 당신이 할 수 있겠어?"
"난도가 높습니다."
"그래. 높지. 그래서 물었어. 너는 할 수 있냐고."
최명훈의 목소리에는 압박이 담겨 있었다. 미묘한 압박. 친절한 말투 아래 숨겨진 명령.
"성공률이 낮습니다. 환자를 더 검토해야 합니다."
"성공률이 낮다고? 이 나이대 판막 케이스 중에는 상당히 높은 거 아닌가?"
최명훈이 웃음을 지었다. 그 웃음은 이준호의 신경을 건드렸다.
"이 수술을 성공시키면, 원장님도 좋아하실 거야. 우리 과가 지금 경쟁 병원들에 밀려 있다는 거 알지? 실적이 중요해."
"의료윤리가 먼저입니다."
이준호의 목소리가 단호했다. 최명훈의 웃음이 멈췄다.
"뭐라고?"
"이 환자는 고위험군입니다. 성공률을 앞세운 무리한 수술은 환자를 죽일 수도 있습니다."
"그게 의사의 판단이 아닌가? 우리는 환자를 살리려고 수술을 하는 거지."
최명훈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그것이 더 위협적이었다.
"원장님도 이 케이스에 관심을 가지고 계셔. 흉부외과가 이 수술을 성공시키지 못하면, 심장내과로 넘어갈 수도 있다는 거 알지?"
"그렇다면 심장내과에서 해야 합니다."
"이준호."
최명훈이 이준호의 팔을 잡았다. 그의 손은 차가웠다.
"내가 너한테 친절하게 말하는 이유를 생각해봐. 너는 능력이 있어. 정말 뛰어난 의사야. 하지만 여기는 능력만으로 살아가는 곳이 아니야. 실적이 있어야 해. 그리고 실적은 원장님이 정하는 거야."
"그렇다면 저는 이 수술을 할 수 없습니다."
이준호가 팔을 빼냈다.
최명훈의 얼굴이 경직되었다.
"원장님께서 직접 말씀하고 싶으시대. 가볼래?"
---
원장실의 문을 열고 들어갔을 때, 박영준은 창문을 통해 서울의 야경을 바라보고 있었다. 새벽 세 시가 넘었다. 원장이 이 시간에 사무실에 있다는 것 자체가 비정상이었다. 하지만 서울대병원 원장실은 항상 비정상이었다.
"이준호 전공의. 들어와."
박영준이 돌아섰다. 그의 얼굴은 친절함으로 가득했다. 이준호가 알고 있는 가면이었다. 2024년의 법정에서 박영준은 증인석에 앉아 같은 미소를 지었다. "저는 이준호 전공의를 믿었습니다. 그가 의료사고를 일으킬 리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저를 배신했습니다."
"김민준 환자 케이스 말이야."
박영준이 기록을 집어 들었다.
"최 과장한테 들었어. 넌 이 수술을 못 한다고 했다며?"
"난도가 높습니다. 환자의 생명을 먼저 생각해야 합니다."
"환자의 생명을 먼저 생각한다고? 좋은 말이네."
박영준이 웃음을 지었다. 그 웃음은 이준호에게 신호였다. 신호는 명확했다. 나는 너를 이미 평가했다는 신호였다.
"그런데 말이야, 이준호. 이 환자는 우리 병원에서 치료받고 싶어 하는 환자야. 본인이 원한 거야. 그리고 우리는 의사야. 불가능해 보이는 케이스를 가능하게 만드는 게 우리의 역할이 아닌가?"
"그것은 환자를 도박판에 올려놓는 것입니다."
이준호의 목소리가 떨렸다. 분노 때문이었다. 2024년의 기억 속에서 박영준이 증인석에서 한 말들이 모두 거짓이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었다.
박영준의 표정이 변했다. 친절함이 사라졌다.
"너, 지금 나한테 반항하는 건가?"
"아닙니다. 의료윤리를 말하는 것입니다."
"의료윤리? 좋아. 의료윤리 말이야. 그럼 내가 물어보지. 환자가 죽어도 괜찮다는 동의서에 서명한 후에 수술을 거부하는 게 의료윤리인가? 환자의 자기결정권을 무시하는 게 의료윤리인가?"
박영준이 의자에서 일어났다. 그는 이준호에게 다가갔다.
"너는 어릴 때부터 천재였겠지. 시험 잘 보고, 의대 들어가고, 수술 잘하고. 그래서 생각하는 거야. 니 판단이 맞다고. 니 윤리가 옳다고. 하지만 이 병원에서 너는 천재가 아니야. 너는 직원이야. 그리고 직원은 조직의 지시를 따라야 해."
"환자의 생명이 위험하면 거부할 수 있습니다. 의료법에 명시되어 있습니다."
"의료법? 넌 정말 순진하네."
박영준이 웃음을 터뜨렸다. 그 웃음은 진심이었다. 이준호에 대한 연민 없는 진심이었다.
"이 수술을 거부하면 넌 이 병원에서 끝이야. 그리고 의료사고 전담 변호사들이 몰려올 거야. 너는 문제가 많은 의사가 돼. 알았어?"
침묵이 흘렀다.
"한 달이 남았어. 이 케이스를 생각해봐. 진짜 환자를 위해 뭐가 최선인지 생각해봐. 그리고 답을 내려."
박영준이 의자에 앉았다. 창문을 다시 바라보기 시작했다.
---
이준호가 원장실을 나왔을 때, 복도는 고요했다. 새벽 네 시. 병원 건물은 환자들의 신음소리로만 채워져 있었다.
그는 곧바로 차트실로 향했다. 기억 속의 증거를 찾아야 했다. 2024년의 법정에서 검사가 제시했던 의료 기록들. 그 기록들이 어디서 조작되었는지, 누가 참여했는지.
차트를 뒤지기 시작했다. 손가락이 빠르게 움직였다. 기억이 신체를 지배했다. 어느 파일에 조작의 흔적이 있는지 정확히 알고 있었다.
그리고 찾았다.
박준성의 서명이 있는 의료 기록의 수정 승인 도장. 그 기록은 수술 중 뇌졸중의 원인을 '환자의 기저질환'으로 기재하고 있었다. 거짓이었다. 뇌졸중의 원인은 불완전한 동맥 재구성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이준호의 판단 오류였을 수도, 아니면 무리한 수술 강행의 결과였을 수도 있었다.
이준호는 그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박준성이 그 거짓 기록에 도장을 찍은 이유는, 이준호를 보호하려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보호하려는 것이었다. 그 기록이 남아 있으면 박준성도 함께 책임을 져야 했기 때문이었다.
이준호는 기록을 촬영했다. 휴대폰의 카메라로. 증거를 남겨야 했다. 한 달이라는 시간 속에서 뭔가를 바꿀 수 있다면, 먼저 증거부터 확보해야 했다.
"뭐 하는 거야?"
박준성의 목소리가 뒤에서 들렸다.
이준호가 돌아섰다. 박준성의 얼굴은 창백했다. 이준호가 원장실에서 나가는 모습을 봤을 것이다. 그리고 이준호가 차트실에서 무언가를 확인했다는 것도 알았을 것이다.
"당신, 아까 뭐라고 했어? 2024년 법정에서 나를 봤다고?"
박준성의 목소리는 떨렸다. 공포로 가득했다. 그것이 고백이었다. 박준성도 기억하고 있었다. 2024년의 법정을. 증인석에 앉아 선서를 하던 자신의 모습을.
"당신은 뭘 증언했어?"
이준호의 목소리가 낮았다.
박준성이 입을 열었다가 닫았다. 그의 입술이 떨렸다. 그리고 그 떨림은 두려움이 아니라 절망이었다.
"넌 뭘 알고 있어?"
박준성이 역으로 물었다. 그의 눈이 날카로워졌다.
"당신이 법정에서 뭐라고 했는지 다 기억해. 당신이 어떤 기록을 조작했는지도. 당신이 누구를 배신했는지도."
이준호가 박준성에게 다가갔다.
"그런데 당신은 자기가 왜 그랬는지 모를 거야. 원장의 압박 때문에? 아니면 자신의 명성 때문에? 아니면 그냥... 약한 거야?"
박준성의 얼굴이 더 창백해졌다.
"이 수술은 하지 않겠어. 김민준이라는 환자를 죽이지 않으면서."
이준호가 돌아섰다. 하지만 박준성이 그의 팔을 잡았다.
"잠깐. 넌... 정말 뭘 알고 있는 거야?"
박준성의 손가락이 이준호의 팔을 파고들었다.
"나도 그 법정에 있었어. 나도 증인석에 앉았어. 그리고 나도..."
박준성이 말을 멈췄다. 그의 눈이 이준호의 눈과 마주쳤다.
"나도 같은 현상을 경험했어. 너처럼. 시간이 뒤섞이는 거. 기억이 중첩되는 거. 그런데 넌 어떻게..."
박준성의 목소리가 끊겼다.
이준호의 심장이 멈췄다.
"당신도?"
"그 법정에서 판결이 나던 날, 나는 죽었어. 약물 주입으로. 그리고 깨어났어. 여기서. 2014년에서."
박준성의 목소리가 속삭임이 되었다.
"그래서 나는 알고 있어. 이 수술이 뭐가 될 건지. 그리고 그 이후가 뭐가 될 건지. 그리고 10년 뒤 법정이 뭐가 될 건지."
박준성이 이준호의 팔을 놓았다.
"넌 뭘 하려고? 이걸 바꾸려고? 그건 불가능해. 나도 이미 한 번 시도했어. 그리고 실패했어."
"당신은 뭘 시도했어?"
"처음부터 다시 시작했어. 이 수술을 거부했어. 원장한테 반항했어. 그리고 결과는?"
박준성이 이준호의 눈을 들었다.
"같았어. 다른 방식으로 같은 결과가 나왔어. 환자는 죽었고, 나도 죽었고, 법정도 있었어. 그리고 다시 깨어났어."
이준호가 말을 잃었다.
"회귀 기회는 정해져 있어. 무한하지 않아. 그리고 우리는 이미 하나씩을 사용했어. 남은 기회가 몇 개나 되는지 모르겠지만..."
박준성이 손을 들었다. 그의 손가락이 떨렸다. 신경 손상의 누적. 뇌척수액의 역류. 시간의 흔적이 신체에 새겨지고 있었다.
"신경 검사 결과가 나올 때까지 기다려봐. 의료진이 뭐라고 할지. 그 결과가 우리에게 남은 시간을 알려줄 거야."
---
이준호가 응급실로 돌아왔을 때, 이수진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녀의 얼굴에는 의심이 아니라 우려가 담겨 있었다. 차트를 들고 있는 손이 미세하게 떨렸다.
"신경 검사 결과 나왔어."
이수진이 차트를 펼쳤다.
"뇌척수액 역류 현상이 진행 중이야. 그리고 신경 손상의 흔적이 있어. 비정상적인 흔적."
이수진이 이준호를 바라봤다. 그 시선에는 더 이상 의심이 아니라 깊은 우려가 담겨 있었다.
"의료진이 말하길, 이런 패턴은 반복된 신경 손상의 누적 증거라고 해. 마치 같은 손상이 여러 번 반복된 것처럼."
침묵이 흘렀다.
"당신, 이전에 이런 증상이 있었어?"
이준호는 대답하지 않았다.
"의료진은 이 상태로는 2주에서 1개월 정도 버틸 수 있다고 했어. 그 이상 진행되면..."
이수진이 말을 멈췄다. 그 말을 완성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알 수 있었다.
"그 이상 진행되면?"
"뇌 기능이 회복 불가능한 손상을 입을 거야."
이준호의 손이 다시 떨리기 시작했다. 신경 손상감이 아니었다. 뇌척수액의 역류가 아니었다. 그것은 절망이었다. 10년 뒤 자신의 죽음을 알면서도, 지금 이 순간 그것을 막을 수 없다는 절망이었다.
회귀 기회는 정해져 있다. 무한하지 않다.
그리고 이준호는 이미 하나를 사용했다.
남은 시간은 한 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