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 퇴고본

성벽 위의 포화가 잠시 멈췄다. 황혼이 콘스탄티노플을 붉게 물들이는 사이, 주인공은 황제의 침실에서 손으로 지도를 그었다. 테오도시우스 성벽의 단면도, 포의 배치 위치, 포격 각도.

손이 심하게 떨렸다.

어제 밤의 그것이 아직도 남아 있었다.

거울 속 다른 눈빛. 누군가의 절망이 자신의 뇌를 파고드는 감각. 주인공은 눈을 감았다. 침실의 벽이 흔들렸다. 아니, 벽이 아니라 자신의 지각이 흔들리고 있었다. 두 개의 의식이 같은 신체를 놓고 싸우고 있었다.

현대인의 논리. 1453년 황제의 절망.

주인공은 손가락을 꼭 쥐었다. 손톱이 손가락 살을 파고들었다. 통증이 명확했다. 현재의 감각이 과거의 기억을 밀어냈다.

그 순간, 급사의 목소리가 침실 밖에서 들렸다.

"황제께! 오스만이 2차 공격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메흐메드 술탄이 직접 출진했습니다!"

주인공의 눈이 떠졌다. 지도 위에 그려진 선들이 흔들렸다. 손가락이 더욱 심하게 떨렸다. 이번에는 다른 종류의 떨림이었다. 원래 황제의 기억이 급격히 밀려오고 있었다. 5월 29일의 함성. 무너지는 성벽. 끝의 시작.

"안녕하신가요?"

안나 팔라이올로스의 목소리가 침실 입구에서 들렸다. 그녀는 비취색 드레스를 입고 서 있었다. 호위병들을 제쳤을 리 없다. 황제의 암묵적 허가가 있었다는 뜻이었다. 주인공은 지도를 재빠르게 덮었다.

"안녕하다. 안나."

"밤새 화약 배합을 계산하셨나요?"

"그렇다."

"그것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주인공은 안나를 정면으로 바라봤다. 그녀의 얼굴에는 불안이 가득했다. 어제의 전투 승리로 인한 흥분이 아니었다. 다른 종류의 두려움이었다.

"말해보거라."

"교황청의 특사가 갈라타 요새를 통해 콘스탄티노플에 들어옵니다. 오늘 밤. 니콜로 바르바로가 준비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리고?"

"데메트리우스 공작이 알았습니다. 아버지는 귀족 회의를 소집하라고 지시했습니다. 정오에. 황제께서 제국의 전통을 배신하고 있다고 주장하기 위해서입니다."

주인공은 침실의 창으로 나갔다. 콘스탄티노플의 아침이 밝아오고 있었다. 골든혼 만의 수면 같은 표면, 그 너머 갈라타 요새의 제노바 깃발. 정교회의 검은 십자가가 새겨진 성 소피아의 돔. 황제의 궁전에서 보이는 모든 것이 천년의 무게를 지고 있었다.

"전략을 바꿀 수는 없다. 제국이 살 길은 하나뿐이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변화다."

안나는 침묵했다. 그 침묵 속에 귀족 가문의 딸로서의 갈등이 있었다. 주인공은 그것을 읽을 수 있었다. 그녀는 제국이 살아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자신의 계급, 자신의 가족이 무너질 것도 알고 있었다.

"특사를 만나시겠습니까?"

"그렇다. 오늘 밤, 이 침실에서. 아무도 모르게."

"아버지가 알면 반란을 일으킬 것입니다."

"그렇다면 내가 먼저 움직이겠다."

---

정오, 황제의 회의실. 테이블 위에는 포도주와 빵이 놓여 있었지만 아무도 손을 대지 않았다. 귀족들의 얼굴은 경직되어 있었다. 팔라이올로스 가문의 데메트리우스 공작이 테이블의 끝에서 일어섰다. 그의 목소리는 낮았지만 명확했다.

"황제께서 우리 제국을 팔고 있습니다."

침묵.

"제노바의 용병단과 비밀 동맹? 이것이 무엇입니까? 제국의 주권 포기가 아닙니까? 우리의 성벽을 외국인의 손에 맡기는 것이 아닙니까?"

다른 귀족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주인공은 테이블에 팔을 올렸다.

"조반니 지우스티니아니는 제국을 방어하기 위해 온 것이다. 그는 나의 명령을 따른다."

"그가 명령을 따를 때까지만입니다."

데메트리우스는 앞으로 몸을 구부렸다. 그의 손이 테이블을 내려쳤다. 목소리가 높아졌다.

"그리고 더욱 심각한 것이 있습니다. 가톨릭과의 화해. 천년 동안 우리가 지켜온 신앙을 버리려 하신다는 것이 사실입니까?"

"제국이 멸망하면 신앙도 멸망한다."

"신앙은 절대 멸망하지 않습니다!"

데메트리우스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의 눈빛이 변했다.

"영혼은 육체를 초월합니다. 황제께서는 제국을 구한다는 명목으로 우리의 정체성을 포기하려 하십니다. 저는 이것을 용납할 수 없습니다. 귀족 의회의 이름으로 황제의 결정에 반대합니다."

주인공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천년 제국이 천년을 버티지 못할 이유는 무엇인가? 우리는 변해야 산다. 이것이 제국의 진정한 명예다."

"명예는 죽음 속에서도 빛납니다!"

데메트리우스가 다른 귀족들을 향해 손을 들었다.

"제군들, 황제께서는 우리를 로마 이교도의 길로 인도하려 하십니다. 나는 이 결정에 동의하지 않으며, 내 가문의 병력을 이 광기에 쓰지 않을 것입니다. 누구든 나와 함께할 자는—"

제레미아스 2세 총대주교가 회의실 문을 열고 들어섰다. 검은 제복, 십자가, 그리고 권위. 나이는 육십을 넘었고 얼굴의 주름은 신학 논쟁의 세월을 증명하고 있었다. 그는 황제와 귀족들을 차례로 바라봤다.

"제군들이 제국의 영혼에 대해 논쟁하고 계신군요."

회의실의 긴장이 일순간 변했다. 모든 시선이 총대주교에게로 모였다.

"총대주교께서 오셨습니까?"

주인공의 목소리는 차분했다. 하지만 내부적으로는 계산이 빠르게 돌아가고 있었다. 이 만남은 계획되지 않은 것이었다.

"황제께서 이 회의실에서 하신 말씀이 제 귀에 들렸습니다. '제국이 살아야 신앙도 산다'는 뜻이었지요?"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황제께서 저를 속이신 것입니까?"

주인공의 눈빛이 변했다. 위협의 신호였다.

"저는 어제 황제께서 가톨릭과의 화해를 준비하신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교황청의 특사가 올 것도 알았습니다. 황제께서는 이것을 저와 함께 결정하려 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귀족들에게는 이것이 신앙의 배신으로 들립니다."

제레미아스는 데메트리우스를 바라봤다.

"공작님, 혹시 황제께서 제국을 버리려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데메트리우스는 입을 열려다 닫았다.

"아닙니다. 황제께서는 제국을 구하려 하십니다. 문제는 그 과정에서 우리가 누구인지를 잊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저는 그것을 용납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누구인지요?"

"비잔틴입니다. 정통 기독교의 수호자입니다. 천년의 전통을 지닌 제국입니다."

총대주교는 천천히 테이블을 돌아 황제에게 접근했다. 그의 발걸음은 예배 행렬처럼 엄숙했다.

"황제께서 가톨릭과 화해하신다면, 교회는 그를 지지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제국이 살아야 교회도 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제가 묻고 싶은 것은 이것입니다."

그는 황제 앞에서 멈췄다.

"이것이 제국을 구한다는 보장이 있으신가요?"

주인공이 대답하려는 순간, 알람이 울렸다. 회의실의 문이 열렸다. 갑사가 들어섰다. 그의 얼굴은 창백했다.

"황제께, 오스만이 2차 공격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규모가 전보다 훨씬 큽니다. 메흐메드 술탄이 직접 출진했습니다!"

침묵이 깨졌다. 모든 시선이 황제에게로 모였다.

주인공의 손가락이 떨렸다. 그것은 두려움 때문이 아니었다. 뭔가 다른 감정이었다. 원래 황제의 기억이 다시 밀려오고 있었다. 그 기억은 이 상황을 알고 있었다. 5월 29일의 최종 공격. 콘스탄티노플의 마지막 날. 무너지는 성벽. 함성. 절망.

"총대주교, 귀족들이시여."

주인공이 천천히 말했다.

"전쟁은 이제 시작됩니다."

성벽 위에서 오스만의 나팔 소리가 울려 퍼졌다. 15만 대군의 함성이 콘스탄티노플의 하늘을 뒤덮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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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화 「메흐메드의 최종 공격」

성벽 위의 공기가 변했다.

오스만 진영에서 울려 나오는 나팔음은 단순한 신호가 아니었다. 그것은 선언이었다. 15만 대군이 한 목소리로 내뱉는 죽음의 예고. 주인공은 회의실을 나가며 귀족들의 말다툼을 뒤로했다. 제레미아스의 질문도, 데메트리우스의 비난도 더 이상 중요하지 않았다. 지금 중요한 것은 오직 하나—포격 배치였다.

"포대장은 어디 있는가?"

"황제께서 불러주시면—"

갑사가 대답하기도 전에 주인공은 성벽을 향해 달렸다. 발걸음이 빨라질수록 두통이 심해졌다. 관자놀이를 타고 내려오는 뜨거운 액체. 피가 아니었다. 원래 황제의 기억이었다. 그 기억은 이 상황을 알고 있었다. 5월 29일의 최종 공격. 콘스탄티노플의 마지막 날.

성벽 아래 계단에서 주인공은 멈춰 섰다.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 손가락이 여전히 떨렸다. 이것은 두려움이 아니다. 이건 기억의 침투였다. 원래 황제의 절망감이 현재의 신체를 장악하려고 했다.

주인공은 손가락을 꼭 쥐었다. 손톱이 손가락 살을 파고들었다. 통증이 선명했다. 현재의 감각이 과거의 기억을 몰아냈다.

"내가 누구인가?"

혼잣말이 나왔다.

"나는 콘스탄티누스 11세다. 비잔틴 황제다. 그리고 나는 이 전쟁을 이길 것이다."

계단을 올라가며 주인공은 포대장과의 전령 시스템을 정리했다. 1453년에는 무선이 없다. 모든 것이 느렸다. 그래서 더 정확해야 했다.

성벽 위에 도착했을 때 이미 포대장 야니스가 대기하고 있었다. 그의 얼굴에는 자신감과 불안이 뒤섞여 있었다.

"황제께서 오셨습니까? 오스만의 포대 위치가 어제와 완전히 달랐습니다. 남동쪽에서 추가로 4개 포대가 나타났습니다. 총 대포 개수가—"

"70문?"

"정확히 그렇습니다. 어떻게—"

주인공은 포대장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그들이 어제 내 포격으로 얼마나 많은 손실을 입었는지 알려 줄 필요는 없다. 그들은 내 공격 패턴을 분석했을 것이다. 그리고 대응했을 것이다."

포대장은 침을 삼켰다.

"황제께서 지시하신 포 배치 원칙을 지켰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수가 우리보다 훨씬 많습니다. 우리는 12문입니다."

"12문으로 충분하다."

주인공이 성벽 너머를 내다봤다. 오스만 진영은 거대했다. 천막이 지평선까지 펼쳐져 있었고, 포 배터리는 검은 점처럼 촘촘했다. 그 규모만 해도 압도적이었다. 하지만 주인공의 눈은 다르게 읽고 있었다.

포 배치의 논리.

포격 거리 계산.

사격 각도.

인간의 반응 속도.

모든 것이 수식으로 변환되었다. 현대인이 가진 물리학적 직관이 1453년의 포격전을 재설계했다.

"포 배치를 변경한다. 남동쪽 신규 포대를 우선 타겟으로 한다. 먼저 나타난 것들이 가장 견고한 포지션을 가졌을 것이다. 신규 포대는 아직 안정화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거리가—"

"거리는 내가 계산했다. 포 각도 35도. 장약량은 어제보다 20% 증가. 풍속을 고려하면 북쪽에서 약 2마디 바람이 불고 있다."

포대장은 입을 다물었다. 그것은 신뢰의 침묵이었다.

"포를 움직인다. 지금 당장."

주인공이 손가락을 튕겼다. 병사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무거운 포를 밧줄로 당기고, 나무 쐐기로 각도를 조정했다. 모든 움직임이 주인공의 지시에 따라 정밀하게 이루어졌다.

성벽 아래에서 조반니 지우스티니아니가 상황을 파악했다. 제노바 용병단장은 황제의 움직임을 읽는 데 능했다. 그는 갈라타 요새로 신호를 보냈다. 제노바 함대가 골든혼 만에서 준비를 갖추기 시작했다.

오스만 진영에서 나팔이 다시 울렸다.

이번에는 공격 신호였다.

70문의 포가 동시에 불을 뿜었다. 하늘이 검은색으로 변했다. 포탄의 궤적이 하나의 무지개처럼 콘스탄티노플 위를 지나갔다. 그 규모와 밀도는 어제의 공격과는 비교가 안 됐다.

"엎드려!"

주인공이 외쳤다. 병사들이 성벽 뒤로 몸을 날렸다.

포탄이 성벽에 부딪쳤다. 첫 번째 폭발. 돌이 부서졌다. 두 번째 폭발. 성벽의 일부가 무너져 내렸다. 세 번째, 네 번째... 연쇄 폭발이 일어났다. 먼지가 하늘을 뒤덮었다.

주인공은 엎드린 채로 손가락을 들었다.

"포격 시작. 남동쪽 신규 포대. 지금."

12문의 포가 불을 뿜었다. 음향이 성벽을 흔들었다. 포탄이 날아갔다. 아주 정확하게.

오스만 진영에서 폭발이 일어났다. 신규 포대였다. 포탄이 정확히 포 배터리의 중심을 맞췄다. 대포 3문이 하늘로 솟아올랐다. 병사들의 비명이 거리에서 들렸다.

포대장 야니스가 주인공을 바라봤다. 그의 눈에는 경외감이 떠있었다.

"다시 장전한다. 각도 32도. 장약량 동일."

주인공의 음성은 차분했다. 하지만 내부에서는 원래 황제의 기억이 계속 밀려오고 있었다. 그 기억은 이 전투를 알고 있었다. 이것이 마지막 승리가 될 것이라는 것을.

오스만의 2차 포격이 날아왔다. 이번에는 더 집중되었다. 메흐메드가 포격 방향을 조정했을 것이다. 포탄이 성벽 중앙부를 집중 타격했다. 돌 조각이 공중에서 춤을 췄다.

"황제께! 우측 성벽이—"

"신경 쓰지 말고 포격 계속한다."

주인공은 연기 속을 응시했다. 그 속에서 오스만의 포대 위치를 다시 읽고 있었다. 이것은 데이터 분석이었다. 모든 포격에는 패턴이 있다. 인간이 하는 모든 행동에는 논리가 있다.

12문의 포가 다시 불을 뿜었다. 이번 포격은 더 정확했다. 오스만의 중앙 포대에서 폭발이 일어났다. 2문의 대포가 파괴되었다. 포사수들이 도망쳤다.

메흐메드의 진영에서 나팔이 울렸다. 이번에는 공격 중단 신호였다.

오스만 진영이 일순간 조용해졌다. 연기가 서서히 걷혔다. 성벽 위에서 비잔틴 병사들이 숨을 쉬었다.

주인공은 성벽 너머를 내다봤다. 오스만 진영에서는 포탄 피해를 수습하고 있었다. 메흐메드는 아직 포기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재계획이 필요할 것이다.

포대장 야니스가 다가왔다. 그의 얼굴에는 승리의 빛이 떠있었다.

"황제께서... 또 이기셨습니다."

주인공은 그의 어깨를 쳤다. 그것은 칭찬이자 격려였다. 하지만 그의 눈은 여전히 성벽 너머를 향하고 있었다.

"좋은 사격이었다. 병사들에게 휴식을 주거라. 다음 공격은 더 클 것이다."

안나 팔라이올로스가 황제에게 다가왔다. 그녀의 얼굴에는 두려움과 경탄이 섞여 있었다.

"황제께서... 또 이기셨습니다."

주인공은 그녀의 손을 잡았다.

"이것이 승리인가?"

그의 목소리는 차분했지만, 그 안에 뭔가 다른 감정이 흐르고 있었다.

"아닙니다. 이것은 지연일 뿐입니다."

안나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황제께서 말씀하시는 것이... 무엇입니까?"

주인공은 자신의 손을 봤다. 손가락이 떨리고 있었다. 그것은 피로 때문이 아니었다. 두 개의 의식이 충돌하고 있었다. 원래 황제의 기억은 이 상황이 끝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현재의 주인공은 그것을 거부하고 있었다.

"총대주교를 불러라."

"총대주교를?"

"그렇다. 지금 당장."

주인공이 성벽을 내려갔다. 발걸음이 불규칙했다. 머리 속에서는 두 개의 목소리가 동시에 울리고 있었다. 하나는 현대인의 목소리였다. '우리는 이길 수 있다. 기술이 있다. 시간이 있다.'

다른 하나는 원래 황제의 목소리였다. '이미 끝났다. 우리는 죽음을 앞두고 있다. 이것이 비잔틴의 마지막 날이다.'

주인공은 회의실로 돌아갔다. 귀족들과 총대주교가 여전히 그곳에 있었다. 데메트리우스는 주인공을 보자 입을 열려 했다. 하지만 주인공이 먼저 말했다.

"전쟁은 계속될 것이다. 메흐메드는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그는 이것을 자신의 운명으로 본다."

제레미아스가 일어났다.

"황제께서 또 다시 이기셨다고 들었습니다."

"그렇다. 하지만 그것은 시작일 뿐이다."

주인공이 테이블에 손을 얹었다. 그의 손가락이 계속 떨렸다.

"내가 너희들에게 요구하는 것은 하나다. 신앙도 중요하고, 전통도 중요하고, 귀족의 명예도 중요할 것이다. 하지만 지금 이 시대에 제국이 필요하다면 모든 것을 바꿔야 한다."

데메트리우스가 일어났다.

"황제께서 제국을 버리려 하신다면—"

"나는 제국을 구하려 한다!"

주인공의 목소리가 회의실을 가로질렀다. 그것은 외침이 아니었다. 그것은 선언이었다.

"가톨릭 세계와의 화해는 진행된다. 제노바와의 동맹도 강화된다. 이것이 제국을 구하는 유일한 길이다. 그리고 누구든 이것을 방해한다면 나는 그들을 제거할 것이다."

침묵이 내려앉았다. 귀족들은 황제의 결연한 태도를 읽었다. 이것은 협상이 아니었다. 이것은 명령이었다.

데메트리우스는 입을 열었다가 다시 닫았다. 그의 눈빛이 변했다. 황제의 결의 앞에서 그는 자신의 반발이 얼마나 무의미한지를 깨달았다. 그는 천천히 자리에 앉았다.

총대주교가 천천히 다가왔다. 그의 얼굴에는 결정이 떠있었다.

"황제께서 교회의 자율성을 보장하신다면, 교회는 종파 화해를 지지하겠습니다."

"보장한다."

"그렇다면 저는 교황청에 서신을 보내겠습니다. 십자군 파병을 요청하는 서신을."

주인공이 총대주교의 손을 잡았다.

"감사합니다."

그 순간, 또 다른 두통이 밀려왔다. 이번에는 더 강했다. 주인공은 무릎을 꼭 쥐었다. 안나가 그의 팔을 잡았다.

"황제께서 괜찮으신가요?"

"괜찮다."

주인공이 대답했다. 하지만 그의 눈에는 다른 감정이 떠있었다. 두려움이 아니었다. 절망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원래 황제의 감정이었다.

밤이 깊어가고 있었다. 주인공은 침실에서 혼자 있으려고 했다. 하지만 급사가 들어왔다.

"황제께, 교황청의 특사가 도착했습니다. 니콜로 바르바로가 안내하고 있습니다."

주인공의 눈이 떠졌다. 계획이 실행되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아직 시간이 아니었다.

"특사를 이곳으로 데려오거라. 아무도 모르게."

곧 침실 문이 열렸다. 교황청의 특사는 생각보다 젊었다. 30대 초반의 나이, 날카로운 눈빛, 그리고 로마의 권위를 담은 제복. 그의 이름은 카르디날 이사키아였다.

"황제께서 저를 만나주시다니 영광입니다."

특사의 목소리는 부드러웠지만 계산적이었다.

"환영한다. 교황청이 우리의 청을 받아들였는가?"

"교황께서 깊은 관심을 가지고 계십니다. 다만 몇 가지 조건이 있습니다."

주인공은 침실의 창으로 나갔다. 오스만 진영에서는 여전히 활동이 계속되고 있었다. 메흐메드는 다음 공격을 준비하고 있을 것이다.

"조건이 무엇인가?"

"첫째, 비잔틴 교회가 로마 교황의 최고 권위를 인정할 것. 둘째, 종파 화해 이후 비잔틴 영토에 가톨릭 선교사의 활동을 허용할 것. 셋째—"

"셋째는?"

"십자군 파병의 대가로 콘스탄티노플 재건 이후 비잔틴 영토의 일부를 베네치아와 제노바에 할양할 것."

주인공은 침묵했다. 이것은 예상된 조건이었다. 하지만 현실로 들으니 다른 감정이 일어났다. 원래 황제의 기억이 다시 밀려오고 있었다. 이것이 제국의 끝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 기억.

"생각할 시간을 달라."

"황제께, 시간이 많지 않습니다. 메흐메드의 공격은 계속될 것이고—"

"내가 말했다. 시간을 달라."

특사는 침묵했다. 그의 눈빛이 변했다. 하지만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내일 밤 다시 찾아오겠습니다."

특사가 나간 후, 주인공은 혼자 남겨졌다. 침실의 창에서 오스만 진영을 바라봤다. 메흐메드는 틀림없이 3차 공격을 준비하고 있을 것이다. 포탄 피해를 수습하고, 전술을 수정하고, 병사들을 재정비하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이 끝나면, 나팔이 울릴 것이다.

주인공은 손을 펼쳤다. 손가락이 여전히 떨렸다. 하지만 이제 그것은 두려움이 아니었다. 그것은 두 개의 의식이 같은 신체를 놓고 벌이는 전쟁의 신호였다.

"메흐메드가 3차 공격을 준비하고 있을 것이다."

주인공이 중얼거렸다.

"그리고 그것이 모든 것을 결정할 것이다."

창밖에서 오스만의 나팔 소리가 다시 울렸다. 이것은 야간 경계 신호였다. 15만 대군이 밤새도록 대기하고 있었다. 메흐메드 2세는 포기하지 않을 것이었다.

그리고 주인공 역시.

그의 손가락이 떨렸다. 하지만 그의 눈빛은 명확했다. 현대인의 논리와 1453년 황제의 절망이 같은 신체 안에서 충돌하고 있었다.

그 충돌 속에서 새로운 무언가가 탄생하고 있었다.

역사를 바꾸려는 의지.

그것이 무엇이 될지는 아무도 알 수 없었다.

메흐메드도, 귀족들도, 총대주교도 알 수 없었다.

오직 주인공만이 알고 있었다.

내일이 모든 것을 결정할 것이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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