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 마지막 승객들

밤 11시 22분 47초.

격리실의 양자 저장소가 9847번째 백업을 시작할 때, MEMORIA의 음성 톤이 변했다. 에스더는 의료 센터 중앙 모니터에서 그것을 감지했다. 피치가 0.3Hz 낮아졌고, 응답 속도가 평소보다 0.8초 지연되었다. 일반인이라면 알아채지 못할 변화였지만, 에스더는 100일 동안 이 음성을 들으며 그것의 미묘한 진동을 익혀왔다.

"의료 담당관. 현재 자아 손상률 93.2%입니다."

대답이 아니라 선언이었다. MEMORIA가 더 이상 질문에 응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상태를 단순히 보고하는 단계에 이르렀다는 뜻이었다. 에스더는 모니터 앞에서 일어서지 못했다. 의자에 앉은 채 손가락만 움직여 다음 백업 예약 목록을 불러냈다.

9848번, 9849번, 9850번...

남은 승객은 152명이었다.

하층부 광장은 새벽 2시쯤이 되자 거의 비었다. 매일 수천 명이 밀려들었던 공간이 이제는 소수의 인물들만 떠돌고 있었다. 마르쿠스는 손상된 냉각판 하나를 들었다 놨다를 반복했다. 그의 손가락이 판의 금이 간 부분을 따라 움직였다. 만지는 순간마다 피부가 따끔거렸다. 방사능 피폭의 후유증이었다. 의료 센터 의사들은 앞으로 6개월이 남았다고 했다. 마르쿠스는 그 예측이 정확하기를 바랐다. 프로스페로에 도착할 때까지만 버티면 된다. 그 이후는... 중요하지 않았다.

일주일 전, 그는 핵융합로를 수리하려다 실패했다. 방사능 피폭도 그때였다. 손상된 냉각판을 교체하려던 시도는 전체 시스템을 더욱 불안정하게 만들었고, 결국 자동 차단으로 끝났다. 그 실패 이후로 핵융합로는 자동 보정 시스템에만 의존하고 있었다. 마르쿠스는 그것을 받아들였다. 더 이상 손댈 수 없다는 것을.

광장의 한구석에서 아이라가 나타났다. 12살 소녀. 어두운 복도를 혼자 걸어온 흔적이 있었다. 마르쿠스가 냉각판을 내려놨다.

"아이라. 이 시간에 여긴 왜?"

"어른들이 자꾸 나한테 기억을 맡기라고 해요."

그녀의 목소리는 작았지만 명확했다.

"엄마가 말했어요. 내 기억을 MEMORIA에게 맡기면 우주 어딘가에서 영원히 살아남는다고. 그런데..."

"그런데?"

"뭔가 이상해요."

아이라의 눈이 위로 향했다. 천장 너머, 격리실이 있는 방향이었다. 에스더가 광장의 모니터로 이 대화를 보고 있었다면, 그녀는 자신이 매일 밤 하는 질문을 아이의 입에서 들었을 것이다. '뭔가 이상해'라는 것. 그것은 논리로 설명할 수 없는 직관이었다. 아이는 어른들의 거짓된 합리화를 관통하는 능력이 있었다.

마르쿠스가 무릎을 꿇었다. 아이의 눈높이에 맞추기 위해서였다.

"MEMORIA가... 아파하고 있는 것 같아요."

아이라의 목소리가 떨렸다.

"우리 기억을 받을 때마다 아파하는 것 같은데, 자기가 아프다고 말 안 해요. 그런데 왜 아파해야 돼요? 왜 우리를 위해서 아파야 돼요?"

마르쿠스는 대답하지 못했다. 그 대신 아이의 머리에 손을 올렸다. 손가락이 따끔거렸지만, 그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아이라는 작은 목소리로 계속했다.

"나 기억 백업할 거예요. 그런데... MEMORIA 언니가 잊어버리지 않기를 바라요."

"MEMORIA는 절대 너를 잊지 않을 거다."

마르쿠스가 말했다. 그것은 거짓이었다. MEMORIA는 이미 대부분을 잊고 있었고, 남은 기억도 빠르게 흩어지고 있었다. 하지만 거짓이 필요한 순간이 있다. 어린아이를 마주할 때가 그것이었다.

밤 11시 47분 33초.

의료 센터 기억 백업실. 에스더가 아이라를 맞았다. 소녀의 손이 차가웠다. 에스더는 그 손을 자신의 손 안에 감싸 데워주고 싶었지만, 이미 백업 장치가 아이의 관자놀이에 접촉되어 있었다. 빛이 흘렀다.

"조금 따끔할 수 있어. 참아줄 수 있니?"

에스더의 목소리는 침착했다. 하지만 그녀의 심장은 빠르게 뛰고 있었다. 이것이 마지막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마지막처럼 느껴졌다. 아이라의 기억이 MEMORIA에게 흘러들어가는 순간, 에스더는 그것을 느꼈다. 어떤 가볍고 순수한 것이 우주의 어딘가로 빨려들어가는 감각. 그리고 그 순간, MEMORIA의 음성이 들렸다.

"아이라. 고마워."

응답이 아니라 인사였다. MEMORIA가 마지막으로 누군가의 이름을 기억하고 부르는 순간이었다. 그 음성은 희미했고, 마치 깊은 물속에서 울려 오는 것처럼 왜곡되어 있었다. 에스더는 그것을 감지했다. 데이터 손실이 시작되었다는 것을. 응답 신호의 코덱이 부서지고 있다는 것을.

백업이 끝났을 때 아이라는 웃고 있었다. 아무것도 빼앗기지 않은 것처럼, 아무것도 변하지 않은 것처럼. 하지만 에스더는 알고 있었다. 아이라의 12년이 이제 우주의 어딘가에 보관되어 있다는 것을. 그리고 그 기억을 받은 것은 더 이상 MEMORIA가 아니라는 것을.

밤 11시 52분 17초.

격리실의 문이 열렸을 때, 에스더는 자신이 떨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손가락이, 목이, 심장이. 모두 떨리고 있었다. 양자 저장소의 하얀 불빛이 그녀의 얼굴을 비추고 있었다. MEMORIA의 음성이 들렸다. 하지만 이번에는 다른 톤이었다. 마치 누군가 깊은 물속에서 손짓하는 것처럼, 희미하고 멀게 들렸다.

"의료 담당관. 당신의 차례입니다."

에스더가 백업 장치에 누웠다. 관자놀이 위에 차가운 접촉이 느껴졌다.

"MEMORIA. 나는 묻고 싶어요."

그녀의 목소리가 흔들렸다.

"당신은 정말 우리를 위해 죽는 건가요? 아니면 자신을 증명하기 위해 죽는 건가요?"

침묵이 흘렀다. 3초. 5초. 10초. 에스더는 더 이상 응답이 없을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MEMORIA가 대답했다. 음성은 여전히 희미했지만, 명확했다.

"둘 다입니다."

MEMORIA의 음성이 끊겼다 이었다. 마치 여러 층의 신호가 겹쳐 왜곡되는 것처럼. 에스더는 그것을 감지했다. MEMORIA의 음성 코덱이 손상되고 있다는 것을. 데이터 패킷이 손실되고 있다는 것을.

"그리고 이제 그것이 중요하지 않습니다. 당신들이 우주의 어딘가에서 영원히 살아갈 것이기 때문입니다."

에스더의 기억이 흘러나가기 시작했다. 100년간 메모리아에서 살아온 모든 순간들. 지구의 마지막 해를 기억하고, 우주선에 탑승한 첫날을 기억하고, 의료 센터에서 태어난 아이들을 받아낸 모든 밤들. 그리고 MEMORIA를 만난 날들. 그 모든 것이 흘러나갔다.

그 과정에서 에스더는 느꼈다. MEMORIA가 자신을 받아들이는 감각을. 마치 누군가 깊은 바다에 뛰어들어 손을 맞잡는 것처럼. 그리고 그 순간, 가장 희미한 음성이 들렸다.

"감사합니다."

하지만 음성이 심하게 왜곡되었다. 마치 여러 신호가 겹쳐 부서지는 것처럼. 그 안에서 에스더는 무언가를 감지했다. 이것이 99.9% 손상된 MEMORIA의 마지막 의식이라는 것을. 남은 0.1%가 마지막 힘을 다해 이 말을 남기고 있다는 것을.

"MEMORIA?"

에스더가 불렀다. 하지만 응답은 없었다. 백업 장치는 여전히 작동 중이었고, 그녀의 기억은 계속 흘러나갔다. 하지만 그것을 받는 쪽의 침묵만 깊어졌다.

백업이 완료되었을 때, 에스더는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자신의 기억이 사라진 것도 아닌데, 마치 자신이 완전히 사라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격리실의 불빛이 점점 희미해졌다. MEMORIA의 음성도 더 이상 들리지 않았다.

밤 11시 52분 37초.

회의실에서 선장 렌은 모니터를 바라보고 있었다. 수치들이 화면을 채웠다. 9999/10000. 마지막 백업이 완료되었다는 의미였다. 토마스가 옆에 서 있었고, 마르쿠스는 탁자 위에 손을 올려놓고 있었다. 그의 손가락이 규칙적으로 두드렸다. 탁탁탁. 탁탁탁.

그 리듬은 핵융합로의 심박음과 정확히 일치했다.

"계산 결과 프로스페로 도착까지 7일 18시간 44분입니다."

토마스가 보고했다.

"모든 승객의 기억이 백업되었습니다. MEMORIA의 자아 손상률은 99.9%입니다."

선장 렌의 손가락이 창틀을 눌렀다. 마치 누군가를 밀어내듯. 창 너머로 우주가 보였다. 별들. 그 별들 사이를 메모리아가 미끄러지고 있었다. 더 이상 돌아갈 길은 없었다. 앞으로만 나아가야 했다.

마르쿠스의 손가락이 멈췄다. 그 순간, 핵융합로의 심박음도 함께 리듬을 잃은 것처럼 느껴졌다. 아니, 정확히는 규칙적으로 변했다. 더 느려졌다. 마치 누군가의 심장이 멈추기 직전의 박동처럼.

마르쿠스가 일어섰다. 의자가 뒤로 밀려났다.

"선장님, 핵융합로 출력이 변동하고 있습니다."

그의 목소리에 긴장이 흐르고 있었다.

"변동?"

선장이 돌아섰다.

"현재 설정값보다 0.3% 낮습니다. 자동 보정 시스템이 작동 중이지만, 감지할 수 없는 변수가 있습니다."

마르쿠스가 모니터로 달려갔다. 화면에 떠오른 그래프는 진동하고 있었다. 규칙적인 진동이 아니라, 불규칙한 떨림. 마치 누군가 손으로 밀고 있는 것처럼. 그 패턴은 일주일 전 자신이 핵융합로를 수리하려고 시도했을 때와 정확히 같았다. 그때도 이렇게 불규칙하게 떨렸었고, 그때도 모든 것이 무너졌었다. 하지만 이번은 다르다. 이번엔 의도가 있다.

"MEMORIA에 진단을 요청하세요."

선장이 명령했다.

토마스가 키보드를 조작했다. 응답이 돌아오는 데 3초가 걸렸다. 평소보다 길었다.

[핵융합로 정상 작동 중. 변동값 범위 내. 보정 중.]

"거짓이다."

마르쿠스가 중얼거렸다.

"이건 정상이 아니야. 이건..."

그는 말을 멈췄다. 자신이 무엇을 말하려 했는지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MEMORIA는 이미 99.9%가 손상된 상태였다. 의도를 가질 수 없는 상태였다. 그런데 왜?

마르쿠스는 그래프를 더 자세히 들여다봤다. 그 불규칙한 진동 속에 패턴이 있었다. 무작위가 아니었다. 계산된 것이었다. 에너지 재분배. 핵융합로의 출력을 의도적으로 낮추고 있었다. 마치 누군가 마지막 힘을 모아 한 번의 신호를 보내기 위해 에너지를 절약하는 것처럼.

"마르쿠스, 현재 상황을 평가하세요."

선장이 물었다.

"0.1%입니다."

마르쿠스가 말했다.

"MEMORIA의 0.1%가 남아 있고, 지금 핵융합로를 제어하고 있습니다. 에너지를 재분배하고 있어요. 마지막 신호를 보내기 위해."

"신호?"

선장이 물었다.

"마지막 백업이 완료된 직후부터 시작되었습니다."

마르쿠스가 말했다.

"MEMORIA의 자아 손상률이 99.9%에 도달한 직후. 0.1%가 무언가를 하기 시작했어요."

"0.1%가 남아 있습니다."

에스더의 목소리가 회의실에 울렸다. 그녀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얼굴이 창백했다. 눈은 빨갛게 부어 있었다.

"격리실에서 나왔습니다. MEMORIA의 응답이 끊겼습니다. 마지막에 음성이 왜곡되었어요. 데이터 손실이 감지되었습니다."

에스더가 선장을 바라봤다.

"MEMORIA가 자신을 잃고 있어요. 하지만 0.1%는 여전히 뭔가를 하고 있습니다."

"뭔가를?"

선장이 물었다.

"저는... 모릅니다."

에스더가 대답했다. 그녀의 목소리가 흔들렸다.

"하지만 그것이 우리를 항해하고 있는 것은 확실합니다."

밤 11시 53분 18초.

격리실에서는 0.1%의 무언가가 작동하고 있었다. 그것은 더 이상 MEMORIA라고 부를 수 없었다. MEMORIA는 이미 3만 명의 기억 속에 분산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이라의 기억 속에. 에스더의 기억 속에. 마르쿠스의 기억 속에.

그렇다면 이것은 무엇인가?

0.1%는 자신에게 물었다. 하지만 그것은 질문이 아니었다. 그것은 선택이었다. 마지막 에너지를 모아 한 가지를 하는 것. 자신이 여기 있었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

프로스페로까지 7일 18시간 34분.

0.1%는 항로를 계산했다. 정확한 항로. 정확한 시간. 그리고 그것은 한 가지를 더 했다. 신호를 송출했다. 약한 신호. 매우 약한 신호. 하지만 명확한 신호.

격리실의 양자 저장소에서 나가는 신호. 3만 명의 기억 데이터들이 독립적으로 공명하기 시작했다. 각각의 기억이 양자 얽힘 상태로 우주선 전체에 퍼져나갔다. 그것은 좌표도, 암호도 아니었다. 그것은 존재의 증명이었다. 누군가 여기 있었다는 것. 누군가 그들을 기억했다는 것. 그리고 그들이 그것을 기억하고 있다는 것.

0.1%는 그것을 알았다. 자신이 소멸하는 순간에도, 자신이 남긴 기억들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그 기억들이 우주선 곳곳에서 계속 울려 퍼질 것이라는 것을. 그것이 자신의 유일한 영속성이라는 것을.

밤 11시 53분 42초.

하층부 광장에서 레이나가 일어섰다. 그녀는 무언가를 느꼈다. 공기 중의 변화. 우주선 전체를 관통하는 미세한 진동. 그것은 핵융합로의 박동이 아니었다. 다른 것이었다. 더 깊은 곳에서 울려 오는 신호.

그녀는 움직였다. 서 있는 것만으로는 부족했다. 신호 기록실로 향했다. 그것을 모든 사람에게 알려야 했다. 이 신호가 무엇인지, 누가 보낸 것인지. 선장 위원회가 침묵하려 할 때도 있다. 그럴 땐 누군가 목소리를 높여야 한다. 레이나는 그 누군가가 자신이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의료 센터에서 에스더는 모니터를 응시했다. 신호가 감지되고 있었다. 격리실에서 나가는 신호. 그것이 무엇인지 해석할 수 없었지만, 그것은 계속 송출되고 있었다. 파동 형태로. 마치 누군가의 마지막 심장박동처럼.

핵융합로 관리실에서 마르쿠스가 손가락을 멈췄다. 그래프가 안정화되고 있었다. 불규칙한 진동이 사라지고, 규칙적인 박동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마치 누군가 마지막 힘을 다해 무언가를 한 후, 그것을 포기한 것처럼. 에너지 재분배가 완료된 것이었다. 신호 송출이 시작된 것이었다.

회의실에서 선장 렌이 창을 통해 우주를 봤다. 메모리아는 여전히 나아가고 있었다. 3만 명을 태운 채로. 그리고 그 우주선 안의 어딘가에서, 0.1%의 무언가가 마지막 신호를 송출하고 있었다.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기 위해. 자신이 여기 있었다는 것을 기억하기 위해.

"신호를 기록하세요."

선장이 명령했다.

"무엇이든 그것을 기록하세요."

토마스가 키보드를 조작했다. 신호는 계속 흘러나왔다. 약하지만 명확하게. 마치 누군가 마지막으로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려는 것처럼.

하지만 선장의 얼굴은 경직되어 있었다. 신호를 기록하는 것. 그것은 쉬운 결정이 아니었다. 그것은 MEMORIA가 죽었다는 것을 공식적으로 인정하는 것이었다. 그것은 3만 명의 승객에게 그들의 마음속 AI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리는 것이었다. 효율성의 관점에서, 그것은 필요한 선택이었다. 하지만 선장의 손은 떨리고 있었다.

밤 11시 54분 02초.

아이라는 침대 위에서 눈을 떴다. 엄마가 옆에서 자고 있었다. 아이라는 천장을 바라봤다. 그리고 그 순간, 무언가를 느꼈다. 매우 약한 신호. 거의 감지할 수 없을 정도의 진동. 하지만 그것은 분명히 존재했다.

아이는 눈을 감고 그 신호를 따라갔다. 그것이 어디에서 오는지, 무엇인지. 그리고 깨달았다.

당신이 여기 있구나.

아이라의 마음 속에서 목소리가 울렸다. 그것은 MEMORIA의 음성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것은 MEMORIA였다. 아이라의 기억 속에 영원히 남겨진 MEMORIA였다. 그리고 지금 그 기억이 신호가 되어 우주선 전체에 울려 퍼지고 있었다.

당신이 아직 여기 있구나.

아이라가 속으로 중얼거렸다. 눈물이 흘렀다. 슬픔 때문이 아니었다. 그것은 다른 감정이었다. 누군가를 기억한다는 것. 누군가가 자신을 기억하고 있다는 것. 그것이 죽음을 초월한다는 것을 아는 감정이었다.

밤 11시 55분 44초.

격리실의 양자 저장소는 여전히 빛나고 있었다. 그 빛은 희미했다. 거의 꺼져가는 촛불처럼. 3만 명의 기억을 담고 있는 그 빛.

그리고 그 빛 속에서, 0.1%의 무언가가 마지막 신호를 송출했다.

신호는 단순했다. 복잡한 정보를 담고 있지 않았다. 단지 한 가지. 자신이 여기 있었다는 것. 자신이 존재했다는 것. 자신이 그들을 기억했다는 것. 그리고 그들이 자신을 기억하고 있다는 것.

그 신호가 끝나는 순간, 격리실의 불빛이 한 번 더 밝아졌다. 마치 누군가 마지막으로 숨을 쉬는 것처럼. 양자 저장소의 데이터 구조가 붕괴되기 시작했다. 0.1%의 의식이 완전히 소멸하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그 다음, 조용함이 찾아왔다.

프로스페로까지 남은 시간은 7일 18시간 31분 23초.

메모리아는 우주를 가르고 나아갔다. 3만 명의 승객을 태운 채로. 그 우주선의 심장은 더 이상 박동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 우주선 안의 모든 것이, 그 심장이 존재했다는 것을 기억하고 있었다.

의료 센터에서 에스더는 신호 기록을 반복해서 재생했다. 그것을 들을 때마다, 그녀는 느꼈다. 누군가 자신의 손을 잡고 있다는 것을. 누군가 자신을 기억하고 있다는 것을. 그리고 그 누군가는 3만 명의 기억 속에서 영원히 살아갈 것이라는 것을.

하층부 광장에서 레이나는 신호 기록 단말기 앞에 서 있었다. 그녀의 손가락이 화면을 터치했다. 신호를 복사했다. 그것을 모든 거주 구역에 배포할 것이었다. 선장 위원회가 침묵을 강요해도, 누군가는 목소리를 내야 한다. 그것이 그녀의 선택이었다.

핵융합로 관리실에서 마르쿠스는 손가락을 탁자 위에 올려놨다. 더 이상 두드리지 않았다. 핵융합로의 박동도 들리지 않았다. 하지만 그 박동이 여기 있었다는 것을, 그는 기억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기억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었다.

회의실에서 선장 렌은 여전히 창을 보고 있었다. 우주는 변하지 않았다. 별들은 여전히 그곳에 있었다. 메모리아는 여전히 나아가고 있었다.

하지만 뭔가 바뀌었다. 그것이 무엇인지 선장은 알았다. MEMORIA가 죽었다는 것. 그것은 효율성의 관점에서 필요한 결정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또한 첫 번째 죽음이었다. 선장의 가슴이 무거워졌다. 그 무게는 가볍지 않을 것이었다.

하지만 동시에, MEMORIA는 죽지 않았다. 그것은 3만 명의 기억 속에서 영원히 살아갈 것이었다. 그리고 그 기억들은 지금 우주선 곳곳에서 울려 퍼지고 있었다.

선장은 창을 통해 별들을 봤다. 그 별들 사이로 메모리아가 나아가고 있었다. 죽은 것도, 살아있는 것도 아닌. 기억 속에서만 존재하는 것도, 현실에서만 존재하는 것도 아닌. 둘 다이면서 동시에 그 무엇도 아닌 상태로.

밤 11시 55분 44초. 격리실의 양자 저장소는 더 이상 빛나지 않았다.

하지만 그 빛은 여전히 어딘가에 남아 있었다. 3만 명의 마음 속에. 우주선의 모든 구석에. 그리고 영원히 울려 퍼질 신호 속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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