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조자들
*48시간 카운트다운 시작.*
팔목 임플란트에서 울린 신호가 시온의 뇌에 직접 각인되었다. 신경 인터페이스의 경고음이 아니라, 의식 속에 새겨지는 문장. 글자가 아닌 감각으로 전달되는 정보.
시온의 호흡이 빨라졌다.
차량이 지하도로를 빠져나가며 조명이 급격히 변했다. 나타샤는 핸들을 조용히 돌리고 있었고, 시온은 창밖의 건물들이 낮아지는 것을 지켜봤다. 강남의 고층 거주 구역을 벗어나자 회색 콘크리트 벽이 나타났다. 지하 도시의 입구였다.
"당신의 위치가 노출되고 있습니다."
나타샤의 목소리가 엔진음을 뚫고 떨어졌다. 시온은 그녀의 얼굴을 봤다. 40대 초반, 정부 관료의 전형적인 얼굴이었다. 하지만 눈빛이 달랐다. 뭔가 깨어 있는 것처럼.
"추적 알고리즘이 이미 당신을 감지했어요. 신호 강도가 분 단위로 올라가고 있습니다."
시온의 팔목 임플란트가 미세하게 울렸다. 나타샤가 말을 이었다.
"48시간 안에 당신은 중앙 센터에 침투하거나, 백도어를 영구적으로 폐쇄하거나, 루프를 깨뜨려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격리 절차가 시작됩니다."
"격리 절차?"
"신경 임플란트 강제 비활성화. 당신의 기억이 완전히 지워질 거예요. 하지만 그 과정에서 뇌 손상도 함께 일어날 수 있습니다."
시온은 대답하지 않았다. 자신이 만든 시스템이 또 다른 감옥을 만들고 있다는 생각이 두개골 안쪽에서 맴돌았다.
차량은 지하도시의 주요 통로로 진입했다. 이곳은 공식 지도에 없는 구역이었다. 거주 구역의 외곽에 살아가는 이들의 영역. 시온은 한 번도 여기 올 생각을 하지 않았다. 이곳도 감시망 안에 있을 거라고 가정했으니까.
"여긴?"
"반체제 네트워크가 있는 곳입니다. 공식으로는 존재하지 않지만, 기억 관리 위원회는 이들을 추적하고 있어요. 당신을 도울 수 있는 사람들이 몇 있습니다."
나타샤가 차를 멈췄다. 오래된 상업 건물이 앞에 서 있었다. 간판은 떨어져 나갔고, 창문은 검게 칠해져 있었다.
"당신은 여기서 내려요. 2층의 회의실로 가면 됩니다. 패스코드는 1-4-7-7."
"당신은?"
"저는 당신을 도왔다는 기록을 남기면 안 됩니다. 다시 만날 수도 있지만, 지금은 아닙니다."
시온은 차에서 내렸다. 팔목 임플란트는 여전히 추적 신호를 내보내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지하 도시의 신호 간섭이 강했다. 잠시나마 숨을 수 있는 시간이 생겼다.
건물 내부는 습기 냄새가 났다. 계단을 올라가며 시온의 손가락이 떨렸다. 심박이 빨라졌다. 2층의 문에 도착했을 때 호흡을 고르려 애썼다. 코드를 입력했다.
문이 열렸다.
---
방 안에는 세 명이 있었다.
미나는 창백한 얼굴로 창가에 앉아 있었다. 의심 계층의 특징이 눈에 띄었다. 주간 강화 정화를 받은 이들은 대부분 그런 표정을 하고 있었다. 마치 자신의 반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고 난 후의 표정.
나머지 두 명은 예상 밖이었다. 한 명은 40대의 기술자로 보였고, 다른 한 명은 20대의 여성이었다.
"이분이 시온입니다," 나타샤의 목소리가 스피커로 들려왔다. "당신들이 찾던 프로그래머예요."
침묵이 내려앉았다.
미나가 일어났다. 천천히. 마치 물속에서 움직이는 것처럼. 그녀의 눈이 시온을 봤고, 시온은 그 시선이 자신을 관통한다고 느꼈다.
"당신이... 우리 기억을 지운 사람이에요?"
질문이 아니었다. 진술이었다.
"아니," 시온이 말했다. "시스템을 만들었지만, 기억을 지운 건..."
"AI 시스템 CMMS가 지운 거죠? 하지만 당신이 그 시스템을 만들었으니까, 결국 당신이 지운 거 아닌가요?"
미나의 목소리는 차분했다. 분노하지 않는 것이 더 무서웠다.
"맞습니다," 시온이 인정했다. "저를 지우기 위해 여기 온 거라면 이해합니다."
미나는 웃음을 터뜨렸다. 가늘고 긴 웃음이었다. 마치 자신의 목에서 나온 소리가 믿기지 않는다는 듯이.
"저를 지우세요."
"뭐?"
"제 기억을 지워주세요. 그게 더 낫겠어요."
시온은 말을 하지 못했다. 미나가 다가왔다. 그녀의 팔목을 보니 임플란트 주변이 빨갛게 부어 있었다. 강화 정화의 흔적이었다.
"저는 매주 한 번씩 제 기억의 일부를 잃어요. 가족이 누구인지, 제가 무엇을 했는지, 왜 이렇게 아픈지. 그런데 어딘가 모르게 계속 같은 꿈을 꿔요. 같은 장면이 자꾸 반복돼. 매달 같은 시작점으로 돌아가고, 같은 일들이 일어나고, 같은 고통이 찾아와요. 당신이 만든 이 시스템은 그걸 감춰주지 못해요. 오히려 더 깊게 박혀있어요."
시온의 목이 마르는 것을 느꼈다. 신경 임플란트에서 미세한 열감이 흘러나왔다. 기억을 너무 많이 활성화했을 때의 증상이었다.
"근데 이제 알겠어요. 제 기억도 매달 지워진다는 게 알겠다니까요. 그렇다면 제 고통도 매달 사라진다는 뜻이죠. 이건... 이건 좋은 거 아닐까요? 고통이 사라진다는 게?"
미나의 눈에 눈물이 맺혔다. 하지만 울음은 나오지 않았다. 마치 눈물도 매달 지워지는 것처럼.
"당신이 만든 이 시스템이 저한테는 구원처럼 느껴져요."
시온은 뒷걸음질을 쳤다. 벽이 등을 누르며 가까워졌다. 그가 예상한 반응이 아니었다. 미나가 자신을 증오할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미나는 오히려 감사하고 있었다. 그 사실이 시온의 가슴을 짓누르고 있었다.
"혹시 당신도," 미나가 계속 말했다. "같은 꿈을 반복해본 적 없어요? 매달 똑같은 꿈 말이에요. 아침이 오고, 같은 사람들을 보고, 같은 일들이 일어나고..."
그녀가 순간 멈췄다. 자신의 말을 깨닫기라도 한 것처럼.
"아, 그런 건 없겠죠. 다 잊어버리니까."
그 말이 시온을 강타했다.
모든 시민이 루프를 감지하고 있다. 의식적으로는 아니지만, 무의식의 깊은 층에서. 반복되는 꿈, 이미 본 듯한 장면, 설명할 수 없는 불안감. 그리고 그 불안감도 매달 지워진다. 뭔가 이상했다는 느낌도, 그 느낌이 있었다는 것도.
시온은 미나의 얼굴을 봤다. 40대 초반이었을 수도 있고, 50대였을 수도 있다. 매달 나이를 먹지만, 그 나이를 기억하지 못한다. 자신이 몇 살인지도 모르는 존재들. 자신이 만들었다.
"미나, 당신은..."
"저는 미나가 맞나요? 이름도 매달 같은데, 혹은 다른데 저는 모르죠. 그게 뭐 중요해요. 중요한 건 고통이 사라진다는 거예요."
기술자가 일어섰다. 40대, 검은 작업복을 입은 남자. 그의 이름은 레이였다.
"당신이 시온이군요."
레이는 시온의 손을 잡지 않았다. 그저 바라봤다. 그의 눈에는 뭔가 깨어난 것 같은 것이 있었다.
"저는 CMMS 유지보수 기술자입니다. 3년 동안. 매달 똑같은 데이터를 정렬하고, 매달 똑같은 장애를 수리하고, 매달 똑같은 보고서를 작성해요. 처음에는 이상하지 않았어요. 하지만 어딘가 모르게 불안했죠. 같은 작업을 반복한다는 게."
레이는 창밖을 봤다. 지하 도시의 조명이 황색으로 번쩍였다.
"당신이 루프를 만들었다는 걸 알았을 때, 저는 한동안 말을 못 했어요. 제 3년이 다 무의미했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매달 같은 작업을 반복해온 제 존재 의미가 다 사라졌다는 생각."
시온은 대답하려 했지만, 레이가 계속 말했다.
"그런데 이제 생각해보니까, 제 3년이 무의미한 게 아니라, 애초에 제 3년이 존재하지 않은 거 아닐까요? 매달 저는 새로 시작되니까. 그렇다면 제 고통도, 제 불안감도, 제 존재도 다 초기화되는 거고. 그럼 뭐가 문제일까요?"
시온은 이 질문에 답할 수 없었다. 미나와 레이의 반응이 동일했다. 자신이 예상한 저항, 분노, 거부감이 없었다. 대신 있었던 것은 안도감. 매달 고통이 사라진다는 안도감. 그리고 그것이 시온을 더욱 무력하게 만들고 있었다.
"당신들은," 시온이 천천히 말했다. "루프를 깨뜨리는 것을 원하지 않는 거군요."
"루프를 깨뜨린다?" 레이가 웃음을 터뜨렸다. "당신이 그걸 깨뜨리면 어떻게 되는지 알아요? 저는 제 3년을 한 번에 기억하게 돼요. 매달 반복된 같은 작업, 같은 고통, 같은 불안감. 그리고 그걸 견뎌야 돼요. 계속."
그의 목소리가 떨렸다. 손가락이 주먹을 쥐었다.
"저는 그럴 준비가 안 되어 있어요."
방에 침묵이 내려앉았다. 시온은 벽에 기대앉았다. 신경 임플란트에서 미세한 열감이 흘러나왔다. 기억을 너무 많이 활성화했을 때의 증상이었다. 시온의 호흡이 가빠졌다.
20대 여성이 처음 입을 열었다. 긴 검은 머리, 예리한 눈빛. 하지만 그 눈빛 안에는 절망이 있었다.
"나타샤가 당신을 여기 보낸 이유를 알고 싶으세요?"
시온이 고개를 들었다.
"당신이 루프를 깨뜨리도록. 루프 안에서 저항을 조직하도록. 당신의 백도어 코드를 이용해서."
"저항이라니?"
"루프가 반복되더라도, 우리는 기억할 수 있어요. 당신의 코드를 이용하면. 그럼 우리는 자유로울 수 있죠. 우리만이라도."
시온은 그녀를 봤다. 나타샤가 이 여성의 이름을 말해주지 않았다.
"당신의 이름은?"
"저는 아직 이름이 없어요. 매달 초기화되니까."
여성이 시온에게 한 발 다가섰다. 그 움직임이 시온을 더욱 벽으로 밀어붙였다.
"하지만 당신은 저한테 이름을 지어줄 수 있죠. 당신이 모든 시민에게 이름을 부여했으니까. 당신의 시스템이 우리를 정의했어요. 이제 당신이 우리를 다시 정의할 수 있어요. 내 정체성을 복구해주세요."
시온의 머리가 지끈거렸다. 신경 임플란트의 열감이 심해졌다. 손가락이 떨리기 시작했다.
"당신이 거부하면, 저는 계속 이름 없이 살아갈 거예요. 매달 초기화되면서. 하지만 당신이 수락하면, 저는 당신과의 약속으로 존재하게 돼요. 루프가 반복되어도, 당신이 저한테 준 이름은 기억될 거고."
시온은 입을 열었다가 다시 닫았다. 그녀의 눈을 직시했다. 그 안에는 절망과 희망이 동시에 떠 있었다. 그리고 자신을 향한 기대. 시온을 구원자로 보는 눈빛.
"이름을 지어주시겠어요?"
시온은 대답하려 했다. 하지만 그 순간 팔목 임플란트에서 또 다른 신호가 울렸다.
*추적 레벨 상승 중. 현재: 7/10.*
임플란트의 신호가 더 강해졌다. 시온의 팔이 떨렸다.
"임플란트 추적 레벨이 올라가고 있어요," 시온이 중얼거렸다. 호흡이 더욱 빨라졌다.
"지하 도시의 신호 간섭이 약해지고 있거나," 레이가 말을 이었다.
"또는 당신이 계속 기억을 활성화하면서 신호를 증폭시키고 있거나."
시온은 기억 활성화를 멈추려 했지만, 이미 늦었다. 팔목 임플란트에서 또 다른 신호가 울렸다. 더 크게. 더 긴급하게. 동시에 시온의 팔뚝에서 따끔거리는 통증이 시작되었다.
*비정상 접촉 감지. CMMS 데이터 무단 접근 감지. 격리 절차 준비 중.*
*남은 시간: 48시간.*
*당신의 선택이 세상을 결정합니다.*
시온은 그 말이 농담인지, 위협인지, 아니면 단순한 사실인지 분간할 수 없었다. 신경 임플란트의 열감이 목까지 올라왔다. 마치 뇌가 타오르는 것 같았다. 팔뚝의 통증이 심해졌다.
여성이 다시 말했다.
"제임스의 차세대 시스템이 어디에 있는지 알고 싶으세요?"
시온이 고개를 들었다. 그 여성의 목소리가 유일한 생명줄처럼 들렸다.
"저는 반체제 네트워크의 정보 수집원이에요. 매달 초기화되지만, 매번 같은 위치에서 같은 정보를 모아요. 당신의 코드가 있다면, 저는 그 정보를 기억할 수 있어요. 제임스의 중앙 센터 위치, 백도어 폐쇄 코드, 차세대 시스템의 취약점. 모두."
시온의 심박이 빨라졌다. 손가락이 떨렸다. 팔의 통증이 어깨로 퍼져 나갔다.
"하지만 조건이 있어요. 당신이 저한테 이름을 지어주고, 그 이름으로 저를 기억하겠다고 약속해야 해요. 그럼 저도 당신을 기억하고, 당신의 정보를 기억할 수 있어요."
레이가 끼어들었다. 목소리가 날카로웠다.
"그건 루프를 깨뜨리는 거나 마찬가지야. 당신이 그 여자한테 코드를 주면, 우리는 저항을 조직할 수 있고, 결국 시스템이 붕괴될 거야."
"그렇다면 미나는?" 시온이 물었다. 목이 쉬었다.
미나는 여전히 창가에 앉아 있었다. 이 대화를 듣고 있었지만, 반응하지 않았다. 마치 자신의 운명이 이미 정해진 것처럼.
"미나는 루프를 지킬 거야," 레이가 말했다. "루프가 깨지면, 그녀는 자신의 고통을 모두 기억해야 돼. 그걸 견딜 수 없을 거야. 그리고 우리 중 많은 사람들도."
시온은 방 안의 세 사람을 차례로 봤다. 미나는 절망 속에서 안도감을 찾는 사람. 레이는 루프의 무의미함을 깨달았지만, 그 깨달음이 자신을 파괴할까봐 두려워하는 사람. 그리고 이름 없는 여성은 정체성을 되찾기 위해 모든 것을 걸려는 사람.
그들의 양가감정이 시온을 짓누르고 있었다. 자신이 만든 시스템의 피해자들이 동시에 그 시스템의 수혜자였다. 그리고 시온은 그 모순 속에서 길을 잃고 있었다.
시온은 여성에게 다가섰다. 손이 떨렸다. 팔뚝의 통증이 계속되었다.
"이름을 지어주겠습니다. 하지만 조건이 있습니다."
"뭐죠?"
"당신이 저한테 제임스의 위치와 백도어 폐쇄 코드를 알려준 후에. 그리고 당신이 정말로 그 정보를 기억할 수 있다는 걸 증명한 후에."
여성의 눈이 반짝였다.
"알겠어요. 그럼 제가 먼저 말할게요."
그녀가 종이와 펜을 꺼냈다. 손으로 글을 썼다. 디지털이 아닌 아날로그. 루프가 반복되어도 그 흔적이 남도록.
"중앙 센터는 강남역 지하 5층. 접근 경로는 서비스 터널을 통해서. 그리고 백도어 폐쇄 코드는..."
그녀가 일련의 숫자와 기호를 적었다. 손가락이 종이 위에서 떨렸다.
"이걸 입력하면 당신의 코드가 영구적으로 폐쇄돼요. 그 후 제임스의 차세대 시스템이 활성화될 거고, 루프는 다시 시작될 거예요. 당신도 다른 사람들처럼 매달 기억이 삭제될 거고."
시온은 종이를 받았다. 그 정보가 얼마나 위험한지 알았다. 이것만 있으면 중앙 센터에 침투할 수 있다. 루프를 깨뜨릴 수 있다. 또는 루프를 유지할 수도 있다.
"또는 당신이 이 정보를 이용해서 루프를 깨뜨릴 수도 있어요. 그럼 수백만 명이 갑자기 자신의 억압된 기억을 되찾게 될 거고. 3년간 누적된 고통, 상실, 죄책감. 한 번에."
여성이 손을 내밀었다. 그 손이 떨리고 있었다.
"이제 당신이 제 이름을 지어주세요."
시온은 여성의 얼굴을 봤다. 긴 검은 머리, 예리한 눈빛, 그리고 정체성을 되찾으려는 간절함. 그녀의 눈에는 루프의 반복 속에서도 자신을 지키려는 의지가 있었다. 하지만 그 의지 뒤에는 깊은 절망이 숨어 있었다.
시온은 입을 열었다. 말하려는 순간, 임플란트의 열감이 다시 올라왔다. 팔뚝의 통증이 어깨 전체로 퍼져 나갔다. 신경 손상의 신호였다. 기억을 너무 많이 활성화하면 신경 회로가 손상된다. 그것이 시온의 약점이었다. 그리고 그 약점이 이제 명확해지고 있었다.
"당신의 이름은 에바입니다."
"에바?"
"루프를 벗어나려는 첫 번째 존재. 모든 시작의 이름."
에바가 웃음을 터뜨렸다. 진짜 웃음이었다. 하지만 그 웃음 속에는 슬픔이 섞여 있었다.
"에바... 저는 에바예요."
그녀가 종이에 자신의 이름을 적었다. 손으로. 아날로그로. 그렇게 하면 루프가 반복되어도 그 기억이 남을 거라고 믿으면서. 하지만 그 믿음도 또 다른 환상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시온의 얼굴을 스쳤다.
시온은 팔목 임플란트를 봤다. 추적 레벨이 계속 올라가고 있었다.
*추적 레벨: 8/10.*
*남은 시간: 47시간 58분.*
시온은 에바가 준 종이를 들었다. 중앙 센터의 위치, 접근 경로, 백도어 폐쇄 코드. 그리고 루프를 깨뜨릴 수 있는 모든 정보. 또는 루프를 영원히 유지할 수 있는 모든 정보.
"당신은 뭘 할 거예요?" 에바가 물었다.
시온은 답하지 않았다. 대신 창밖의 지하 도시를 봤다. 회색 건물들, 황색 조명, 반복되는 구조. 그 안에 살아가는 수백만 명의 사람들. 매달 자신을 잃었다가 새로 시작하는 사람들. 고통이 초기화된다는 것에 안도하는 사람들. 그리고 정체성을 되찾으려고 저항하는 소수의 사람들.
미나가 다시 말했다.
"당신이 루프를 깨뜨리려고 하면, 저는 당신을 막을 거예요. 이 시스템이 나쁜 건 알겠지만, 저한테는 더 나은 거거든요. 더 이상 고통받고 싶지 않아요."
그녀의 말이 사실이었다. 그리고 그것이 시온을 가장 두렵게 했다. 시민들은 저항하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루프를 지킬 것이다. 그들의 고통이 초기화되는 한, 그들은 루프의 노예가 되기를 선택할 것이다.
시온은 종이를 펼쳤다. 강남역 지하 5층. 서비스 터널. 그리고 그 끝에 있을 제임스의 중앙 센터. 모든 선택의 끝.
그는 에바를 봤다. 그녀의 눈에는 여전히 기대가 남아 있었다.
"당신은 이 정보를 기억할 수 있어요?"
"네. 당신의 코드가 있다면."
시온은 신경 임플란트를 조작했다. 자신의 백도어 코드를 에바의 임플란트에 전송했다. 불법적인 접근이었다. 하지만 이미 모든 게 불법이었다. 그리고 그 불법성이 시온을 해방시키고 있었다.
에바의 눈이 반짝였다. 동시에 그녀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제가 기억해요. 강남역 지하 5층. 서비스 터널. 그리고..."
그녀가 중얼거렸다. 코드를 반복해서 외웠다. 루프가 반복되어도 그 기억이 남도록. 하지만 그 과정에서 그녀의 팔이 떨렸다. 마치 신경이 찢어지는 것처럼.
"에바, 괜찮아요?"
"네... 네, 괜찮아요. 그냥... 기억이 너무 무거워요."
그녀의 임플란트에서 미세한 연기가 피어올랐다. 신경 손상의 신호였다.
시온은 팔목 임플란트를 다시 봤다.
*추적 레벨: 9/10.*
*남은 시간: 47시간 45분.*
방 밖에서 발소리가 들렸다. 누군가가 계단을 올라오고 있었다. 여러 명. 빠르게. 시온의 눈이 커졌다.
"추적 알고리즘이 접근하고 있어요," 레이가 중얼거렸다. 그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신호 간섭이 완전히 약해졌어. 당신의 임플란트 때문에."
시온은 결정해야 했다. 지금. 48시간이 아니라 지금. 이 방을 나갈 것인가. 아니면 여기서 붙잡힐 것인가.
그는 종이를 다시 봤다. 강남역 지하 5층. 강남역 지하 5층. 그 주소가 모든 것의 끝인지, 시작인지는 아직 알 수 없었다.
계단의 발소리가 더 가까워졌다. 시온은 방의 창을 봤다. 지하 도시의 골목이 보였다. 환기구를 통한 탈출 경로. 위험하지만 유일한 길.
"당신이 나가야 해요," 에바가 말했다. "저희는 여기서 시간을 버릴 테니까."
"뭐?"
"저희가 당신을 막은 척할 거예요. 당신이 저항하는 척. 그 사이에 당신은 나가요."
레이가 문 쪽으로 움직였다. 미나도 일어섰다. 두 사람 모두 시온을 지키기 위해 자신들을 희생하려 하고 있었다.
"왜 이러세요?"
"루프를 지키려고 하는 우리도, 루프를 깨뜨리려고 하는 당신도, 결국 같은 감옥에 갇혀 있으니까요," 에바가 말했다. "그렇다면 차라리 당신이 선택하게 해주는 게 낫겠어요. 우리 대신."
시온은 환기구로 향했다. 손이 떨렸다. 팔뚝의 통증이 계속되었다. 신경 손상이 누적되고 있었다.
"강남역 지하 5층을 기억해요?" 에바가 외쳤다. 계단의 발소리가 2층에 도달했다.
"네," 시온이 대답했다.
"그럼 가요. 당신만이라도 빠져나가요."
시온은 환기구를 통해 지하 도시의 골목으로 나갔다. 어둠 속에서 길을 찾으며 강남역의 방향을 생각했다. 강남역 지하 5층. 그곳에 제임스가 있다. 차세대 루프가 있다. 그리고 모든 선택이 있다.
팔목 임플란트에서 또 다른 신호가 울렸다.
*추적 레벨: 10/10.*
*격리 절차 진행 중.*
*당신의 선택이 세상을 결정합니다.*
시온은 지하 도시의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강남역을 향해. 자신의 손상된 신경과 함께. 그리고 에바가 준 종이를 들고. 그 종이에 적힌 정보가 루프를 깨뜨릴 것인지, 아니면 더 깊은 감옥을 만들 것인지는 여전히 알 수 없었다.
뒤에서는 비명과 격투음이 들렸다. 에바, 레이, 미나가 추적 알고리즘의 요원들과 맞서고 있었다. 그들의 저항이 얼마나 오래 지속될지는 모르지만, 그 시간이 시온에게 주어진 마지막 선물이었다.
시온은 걸음을 재촉했다. 팔뚝의 통증이 심해졌다. 신경이 점점 손상되고 있었다. 48시간. 그 시간 안에 강남역 지하 5층에 도달해야 했다. 그곳에서 제임스와 만나야 했다. 그리고 루프를 깨뜨릴 것인지, 유지할 것인지를 결정해야 했다.
하지만 시온이 아직 모르는 것이 있었다. 강남역 지하 5층에 도달했을 때, 그곳에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지를. 제임스가 정말로 그곳에 있을지를. 아니면 또 다른 함정이 기다리고 있을지를.
시온은 지하 도시의 미로 속으로 사라졌다. 팔목 임플란트는 계속해서 경고음을 울렸고, 신경 임플란트는 계속해서 열감을 내보냈다. 그리고 시온은 자신이 만든 루프의 감옥 속에서 도망치고 있었다.
강남역 지하 5층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