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퇴고본
오두막의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아침빛이 밀가루 먼지를 따라 춤을 춘다. 엘리아는 반죽을 밀어내던 손을 멈추고 밖을 바라봤다. 어제 카이가 떠난 후 밤새 뒤척였다. '공작령의 몰락 상태 유지가 왕국의 이익'이라는 말이 자꾸만 떠올랐다. 그렇다면 자신의 제과점은 왕국의 눈에 어떻게 보일까. 위협일까, 아니면 무시할 수 있는 작은 존재일까.
"엘리아 누나!"
토마스가 오두막 문을 밀어젖히고 들어왔다. 어제보다 더 밝은 표정이었다. 볼이 통통해 보였고, 눈동자에 생기가 돌았다.
"오늘도 왔네."
"어제 먹은 빵이요. 정말…."
토마스는 한참을 말 없이 서 있다가 입을 열었다.
"가슴이 덜 아파요."
엘리아의 손이 멈췄다. 반죽 위에 가루가 소복이 내려앉는 동안, 그 아이의 얼굴을 살폈다. 토마스는 진심이었다. 자신의 말이 거짓이 아니라는 확신이 눈빛에 담겨 있었다.
"그건… 좋은 일이지."
"저 외에도 와요. 마을 사람들이."
토마스가 돌아가 본 것일 리 없다. 아이의 입을 통해 소문이 퍼졌을 것이다. 제과점에서 나눈 빵의 맛과 그 후의 변화. 누군가는 그걸 이웃에게 말했고, 이웃은 또 다른 누군가에게 말했을 것이다.
"마을 사람들?"
"네. 어제 제 친구들도 들었어요. 그리고 아저씨, 할머니들도."
토마스는 그 말을 하면서 엘리아를 바라봤다. 아이의 눈에는 기대감이 가득했다.
점심때가 되자 처음 손님이 들어왔다. 마른 체형의 중년 남자였다. 얼굴에는 깊은 주름이 패여 있었고, 눈빛은 흐렸다. 엘리아는 그에게 어제 구운 호밀빵을 건넸다. 남자는 한 입 베물고 눈을 감았다. 그리고 몇 분이 지나 천천히 눈을 떴다.
"감사합니다."
말은 그것뿐이었지만, 나가며 남긴 표정은 달랐다. 여전히 피곤해 보였지만, 어딘가 가벼워진 듯했다.
오후가 되면서 방문객이 늘었다. 나이 든 여성들이 둘씩 셋씩 들어왔고, 젊은 여자도 있었고, 심지어 아이들까지 왔다. 엘리아는 자신이 가진 모든 빵을 꺼내 나눠줘야 했다. 쌀가루로 만든 경한 스펀지 케이크, 호두가 들어간 단호박 브라우니, 따뜻한 우유로 불린 보리 비스킷. 어떤 손님은 빵을 먹으며 눈물을 흘렸다. 어떤 손님은 입을 다물지 못하고 반복해서 감사를 중얼거렸다.
저녁이 되자 엘리아는 오두막 안에서 혼자 남겨졌다. 나인 할머니는 아직 오지 않았다. 엘리아는 내일을 위해 반죽을 시작했다. 소금 한 꼬집, 설탕 두 스푼, 계란 셋. 손가락으로 버터를 치대면서 무언가 다른 감정도 함께 치대고 있었다.
오후 여덟 시쯤 나인 할머니가 들어왔다. 할머니는 엘리아를 보자 한참 동안 말없이 바라봤다. 그리고 천천히 자리에 앉았다.
"이 영지는 한때 사람들의 웃음소리로 가득했단다."
엘리아는 손을 멈췄다. 할머니의 목소리가 낮고 부드러웠지만, 뭔가 깊은 슬픔을 담고 있었다.
"포도수확절이 되면 마을 전체가 축제가 되었지. 거리마다 음악이 울려 퍼지고, 광장에선 춤을 췄어. 아이들은 포도덩굴을 타고 놀았고, 어른들은 서로의 어깨에 팔을 걸었지. 저주가 내리기 전까진 말이야."
할머니의 눈이 흐려졌다. 엘리아가 준비해둔 라벤더 향이 나는 버터 쿠키를 할머니 앞에 놓았다.
나인 할머니는 한 입 베물었다.
그 순간, 할머니의 얼굴이 부드러워졌다. 그리고 곧 눈물이 흘러내렸다. 엘리아는 놀라 움직이지 못했다. 할머니는 쿠키를 천천히 씹으면서 눈물을 흘렸다. 한 두 줄기가 아니라, 오랫동안 억눌렀던 것이 터져 나오는 듯한 눈물이었다.
"고맙구나. 정말."
할머니의 목소리가 떨렸다.
"이런 마음이 있었단 걸… 내가 이렇게 오래 혼자라고 생각했는데."
엘리아는 그 순간을 말로 방해하지 않기로 했다. 다만 할머니 곁에 앉았다. 할머니는 계속 눈물을 흘리면서 쿠키를 천천히 먹었다. 한 입 한 입이 마치 누군가를 만나는 것처럼, 누군가를 기억하는 것처럼.
밤이 깊어졌다. 할머니가 떠난 후 엘리아는 다시 베이킹을 시작했다. 초콜릿 케이크, 호두 파운드 케이크, 건포도 쿠키, 계피 롤, 딸기 스펀지. 손이 저절로 움직였다. 마치 누군가의 슬픔을 알고 있는 것처럼, 누군가의 외로움을 알고 있는 것처럼.
밤 열 시, 열한 시, 자정을 지나 새벽 한 시. 엘리아는 계속 구웠다. 어느 것도 완벽하지 않았지만, 모두 무언가를 담고 있었다. 자신의 무언가가.
토마스가 다시 들어온 건 오후 세 시였다. 아침 일찍 왔던 것과는 다르게, 이번엔 진지한 표정이었다.
"엘리아 누나, 질문이 있어요."
"뭔데?"
"너는 왜 자꾸 사람들을 밀어내려고 해?"
엘리아의 손이 멈췄다. 반죽 위에서 손가락이 천천히 떨어졌다.
"어제도 그렇고, 오늘도 그렇고. 사람들이 고마워하면 넌 그냥 '좋다'고만 말해. 누나를 봐봐. 아무도 너를 안아주지 않아. 사람들이 원하는 건 그런 게 아니라…."
토마스가 말을 잇지 못했다. 아이는 뭔가 중요한 말을 하려다 멈춘 것 같았다. 엘리아는 토마스를 바라봤다. 소년의 눈에는 자신도 모르던 진실이 담겨 있었다.
"사람들이 원하는 건 누나가 자신들을 받아주는 거야."
엘리아가 대답하지 못했다. 입을 열려 했지만, 목에서 말이 나오지 않았다. 토마스의 질문이 자신의 어딘가를 건드렸다. 자신도 인식하지 못했던, 하지만 항상 그래왔던 무언가를.
그 질문은 밤새 엘리아를 따라다녔다. 베이킹을 하면서도, 제과점 문을 닫으면서도. 자신이 왜 손님들의 감사를 마치 불편한 것처럼 받는지. 왜 누군가의 눈물을 보면 자리를 떠나고 싶은지.
손에 밀가루가 묻어 있었다. 엘리아는 앞치마를 벗으면서 토마스의 말을 다시 떠올렸다. 그 아이는 자신을 관찰하는 눈빛이 날카로웠다. 단순한 호기심이 아니라, 무언가를 이해하려는 절실함이 담겨 있었다.
'넌 왜 자꾸 사람들을 밀어내려고 해?'
그 질문에 엘리아는 대답할 수 없었다. 손가락이 반죽을 치대면서 떨렸다. 고아원의 기억이 떠올랐다. 누군가가 아이를 입양해갈 때마다 자신은 남겨졌다. 그들은 자신을 선택하지 않았다. 공작가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버려진 사생아였다. 그런데 이제 누군가가 자신을 필요하다고 말한다. 이 마을 사람들이. 토마스가. 하지만 그것도 언제 끝날지 모른다. 그래서 먼저 밀어내는 것이 낫다. 그렇게 되면 자신이 버려지는 게 아니라, 자신이 선택하는 것이 된다.
엘리아는 반죽을 세게 내려쳤다. 손이 떨렸다.
밤 열한 시가 넘어갔을 때, 제과점 앞에는 스물 명을 넘는 사람들이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노인도 있었고, 젊은이도 있었고, 엄마를 따라온 아이들도 있었다. 누군가는 발을 동동 구르며 기다리고 있었고, 누군가는 옆 사람과 작은 목소리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엘리아는 오두막의 문 안쪽에서 이 광경을 바라봤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느낌이 들었다. 이 모든 사람들이 자신의 빵을 원하고 있다는 사실. 그것이 단순한 신기함이 아니라, 진정으로 무언가를 필요로 한다는 확신이 그들의 눈빛에 담겨 있었다.
"들어오셔도 돼요. 다 준비됐어요."
엘리아의 목소리는 작았지만 충분했다. 첫 번째 손님이 들어섰다. 일흔 가까운 노인 남자였다. 주름진 얼굴에는 깊은 슬픔의 흔적이 새겨져 있었다.
"소문이 맞네. 정말 금빛이다."
노인이 엘리아가 건넨 빵을 들었다. 무게감 있는 검은 빵에 금빛이 은은하게 흐르고 있었다. 엘리아는 그 빵을 만들 때 무엇을 생각했는지 기억했다. 오늘 하루 동안 제과점을 찾은 사람들의 얼굴. 그들의 목소리. 그들의 눈빛. 그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엘리아의 절절한 이해.
노인은 빵을 한 입 베어 물었다. 그리고 눈을 감았다. 마치 그것이 가장 맛있는 음식이라는 표정으로. 아니, 그것이 음식의 맛 때문이 아니라는 것을 엘리아는 알 수 있었다. 노인의 얼굴이 부드러워지고 있었다. 깊은 주름 사이에 무언가가 풀려나가는 것처럼.
"감사합니다. 정말."
노인이 나갈 때 그렇게 말했다. 그의 목소리에는 눈물이 묻어 있었다.
다음 손님. 그다음 손님. 한 손님 한 손님씩 제과점에서 나가면서 비슷한 말을 했다.
"마음이 조금 가벼워진 것 같아요."
"고마워요. 정말."
한 중년 여성은 빵을 받아 들더니 한참을 바라보다가, 결국 제과점 한구석에 앉아 눈물을 흘렸다. 엘리아는 그 장면을 보고 자리를 떠나려 했다. 하지만 여성이 손을 들었다.
"여기 좀 앉아 줄래?"
엘리아는 움직이지 못했다. 여성이 빵을 먹는 동안 묵묵히 그 옆에 서 있었다. 여성은 계속 울었다. 하지만 나가지 않았다. 그 눈물이 무엇인지는 엘리아도 알 수 있었다. 오랫동안 억눌렀던 슬픔이 비로소 흘러나오는 눈물.
"고마워요."
여성이 결국 일어섰을 때 엘리아는 대답하지 못했다.
제과점의 불이 꺼지지 않았다. 손님들이 모두 떠난 후에도 엘리아는 다시 베이킹을 시작했다. 밀가루를 치대고, 계란을 섞고, 오븐에 넣었다. 손가락이 욱신거렸다. 목이 마르고 눈이 무거웠다. 하지만 멈출 수 없었다. 내일 또 누군가가 올 것이고, 그들도 같은 것을 원할 것이기 때문이다.
밤 열한 시 반이 되자, 엘리아의 손이 반복적인 움직임을 하고 있었다. 반죽을 치대고, 모양을 만들고, 오븐에 넣는 동작. 하지만 어딘가 어색했다. 계량이 정확하지 않았다. 방금 구운 빵의 모양이 틀어져 있었다. 손끝이 차가워지고 감각이 무뎌졌다. 마치 누군가가 자신의 가슴에서 실을 풀어내고 있는 것처럼.
엘리아는 의자에 앉아 천장을 바라봤다. 오래된 목재로 된 천장이 희미한 양초불에 흔들렸다. 자신의 감정 에너지가 빠져나가고 있다는 것을 엘리아는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것이 아팠다기보다는 필요한 것 같았다. 누군가를 도울 수 있다면, 그 대가는 감수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밤 열한 시 반을 넘어 자정에 가까워졌을 때, 제과점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엘리아가 일어나 문을 열었다. 자신이 기대한 손님은 아니었다. 젊은 남자가 서 있었다. 엘리아보다 키가 크고, 검은 머리에 회색 눈을 가진 남자. 옷은 깔끔했지만 비싸 보이지는 않았다. 하지만 어딘가 다른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엘리아의 몸이 경직됐다. 그 남자의 얼굴에서 공작가 혈통의 흔적을 본 순간, 뭔가 위험한 신호가 울렸다. 높은 광대뼈, 날카로운 턱선. 자신이 거울에서 본 얼굴의 일부와 겹쳤다.
"미안해. 이 시간에. 하지만 문이 켜져 있어서."
남자의 목소리는 낮고 차분했다. 그는 엘리아를 바라봤다. 그리고 그 눈빛이 변했다. 마치 무언가를 인식한 것처럼.
"넌 공작가의 사람이 맞구나."
"어… 뭐라고?"
엘리아의 목소리는 떨렸다.
"나는 루카스 몬트펠리우스야. 공작가의 차남이지."
엘리아의 손이 문의 가장자리를 놓쳤다. 오두막 안의 모든 것이 멈춘 것 같았다. 루카스라는 이름. 공작가. 그 말들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엘리아는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자신을 버린 가족의 일원이 제과점 문 앞에 서 있었다.
"내가 너를 찾고 있었어. 이렇게 만날 줄은 몰랐지만."
루카스의 눈빛에는 확신이 가득했다. 자신을 알고 있다는 확신. 그리고 어떤 의도를 가지고 자신을 찾았다는 확신.
"뭘 원하는 건데?"
엘리아의 질문은 차갑게 나왔지만, 그녀의 손은 떨리고 있었다.
"말이 있어. 들어줄래?"
루카스는 제과점 안으로 들어오려 했다. 엘리아는 문을 덮으려 했다. 하지만 루카스의 다음 말이 그녀를 멈추게 했다.
"가문이 저주에서 벗어나려면 잃어버린 것을 되찾아야 한다고 생각해. 그리고 그게 너라고."
엘리아의 손이 경직됐다.
"뭘… 뭘 알고 있어?"
"너는 누구보다 잘 알 거야. 넌 지금 뭘 하고 있는지. 그게 단순한 베이킹이 아니라는 거."
루카스가 제과점 안을 둘러봤다. 밤새 구워진 빵들이 선반에 놓여 있었다. 그들은 모두 은은한 금빛을 내뿜고 있었다.
"이게 뭐야?"
루카스의 질문에 엘리아는 대답하지 못했다.
"너를 찾기 위해 알아낸 게 있어."
루카스는 한 발 더 가까이 다가섰다.
"우리 가문이 저주에 걸렸다는 거, 알지? 그리고 그 저주가 뭐 때문인지도 너는 알 거야."
엘리아의 심장이 요란하게 뛰었다. 루카스의 말이 자신의 불안을 정확히 겨냥하고 있었다. 자신이 이 영지의 저주와 연관이 있다는 것. 자신의 존재가 공작가와 무언가 얽혀 있다는 것. 카이와의 대화 이후 엘리아의 마음 한구석에 자리 잡은 의심이 이제 확실한 공포로 변했다.
"아니야. 난 아무것도 모르—"
"거짓말 하지 마. 너는 알고 있어. 이 영지의 모든 사람들이 너의 빵을 먹고 나아지고 있다는 것. 그게 뭐 때문인지."
루카스의 눈이 엘리아의 눈과 마주쳤다.
"넌 뭔가 다르다."
엘리아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 남자의 말이 모두 맞았다. 자신이 무언가 다르다는 것. 자신의 베이킹이 단순한 요리가 아니라는 것. 그리고 자신이 이 영지를 변화시키고 있다는 것.
하지만 그것이 자신을 버린 가족과 무슨 상관이 있단 말인가.
"난 너희 가문 따위 몰라. 난 그냥 여기서 제과점을 할 거야. 그게 다야."
엘리아가 문을 닫으려 했다.
"그럼 이 영지는? 이 사람들은?"
루카스의 목소리가 더 커졌다.
"너는 이미 이 사람들의 구원이 돼 있어. 그런데 너는 가문의 구원을 거부하고 싶어?"
엘리아의 손이 멈췄다. 루카스의 말이 자신의 가슴을 파고들었다. 이 사람들의 구원. 자신이 그들을 구하고 있다는 것. 그렇다면 자신의 가문도 구할 수 있지 않을까. 그렇다면 자신은 누구인가. 왜 이런 힘을 가지고 있는가.
"내일 차라리 우리 얘기를 들어 줄래? 그 다음에 선택해도 늦지 않아."
루카스는 엘리아의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돌아섰다. 밤거리로 사라지는 그의 뒷모습을 엘리아는 한참 바라봤다.
제과점의 문이 다시 닫혔다. 엘리아는 어두운 오두막 안에 홀로 남겨졌다. 주변의 빵들은 여전히 금빛을 내뿜고 있었다. 하지만 그 빛이 이제는 희망처럼만 느껴지지 않았다.
선택이라는 말이 자신의 가슴에 박혔다. 도망칠 건지, 아니면 모든 걸 받아들일 건지. 이 사람들을 구하는 것과 자신의 가문을 마주하는 것 사이에서.
그런데 정말로 자신이 그 가문을 구할 수 있을까. 아니면 또다시 버려질까. 루카스의 말이 진심일까, 아니면 또 다른 거짓일까.
엘리아는 알고 있었다.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하지만 그것을 원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지도 알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