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상의 불빛이 꺼졌다.
레이는 손가락을 세고 있었다. 왼손부터. 엄지, 검지, 중지, 약지, 소지. 다섯 개. 맞다. 어제도 다섯 개였다. 그런데 왜 헷갈렸지?
"레이!"
카린의 목소리가 들렸다. 멀리서. 아니, 가까이서? 거리 감각이 이상했다.
"토마스가 찾아왔어. 지금 당장—"
레이는 카린의 말을 듣지 않았다. 검신의 목소리가 뇌 깊숙이에서 울렸다. 검신이 아니라 자신의 목소리인 것 같기도 했다. 구분이 안 됐다.
*넌 누구야?*
물음표 따위는 없었다. 단정문이었다.
레이는 눈을 떴다. 기숙사 계단. 3층. 복도가 어둑했다. 비상등만 깜박였다. 현실인지 꿈인지 분간이 안 갔다. 손가락을 다시 센다. 왼손. 다섯 개. 맞다. 당연하다. 왜 확인했지?
복도 끝에서 토마스가 나타났다.
"레이! 다행이야. 너 어디 있었—"
"토마스."
레이의 목소리가 낮았다. 자신의 목소리가 아닌 것처럼 들렸다.
"뭐해?"
토마스는 멈췄다. 레이의 눈을 보았다. 파란색이었다. 밤하늘 같은 파란색. 토마스는 한 발 물러섰다.
"너… 너 괜찮아?"
"괜찮아. 다만…"
레이가 손을 들었다. 떨리고 있었다.
"뭔가 안 맞아."
토마스는 레이에게 다가갔다. 천천히. 조심스럽게. 마치 다친 동물을 대하는 것처럼.
"리안 선생님이 나더러 너한테 이걸 줘라고 했어."
토마스가 낡은 책을 꺼냈다. 표지가 해진 책. 레이는 이 책을 본 적 있다. 아니다. 본 것 같다. 기억이 흐릿했다.
"이 책에 모든 게 다 있어. 아카데미의 진짜 역사. 의회가 뭐하려는 건지. 다 적혀있어."
"왜 나한테?"
"왜냐하면…"
토마스가 말을 멈췄다. 복도의 비상등이 깜박일 때마다 그의 그림자가 흔들렸다. 그는 한참을 고민했다. 레이의 눈을 직시하지 못했다. 그 파란 눈 속에서 자신이 모르는 무언가가 흔들리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넌 우릴 구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니까."
토마스가 마침내 말했다.
레이는 책을 받지 않았다. 받을 손가락이 몇 개인지 다시 세어야 할 것 같았다.
"난 누구야?"
"뭐?"
"내가 누구냐고."
토마스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레이… 너 정말 괜찮아? 너는 레이야. 우리 반의 레이. 내 친구 레이."
"그게 답이 아니야."
레이가 한 발 앞으로 나갔다. 토마스는 또 물러섰다. 기숙사 벽에 등이 닿았다.
"내가 누구인지 말해줘."
"넌… 강한 사람이야."
"그 다음은?"
"넌…"
토마스가 입을 열었다 닫았다. 반복했다. 마지막에 그는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넌 검신이야."
침묵이 흘렀다. 비상등이 깜박였다.
레이의 눈에서 파란 빛이 희미해졌다.
"아니야."
레이가 말했다. 목소리가 떨렸다. 이번엔 자신의 목소리였다.
"난 레이야."
토마스가 눈을 떴다. 그 순간 무언가 터졌다. 레이가 책을 받았다. 손가락이 다섯 개 있었다. 당연했다.
"고마워."
레이가 말했다.
"뭐가?"
"날 기억해줘서."
토마스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레이를 안았다. 힘 없는 팔로. 마치 진짜로 무너질 것 같은 친구를 붙잡는 것처럼.
레이의 눈에 눈물이 흐르고 흘렀다. 파란 빛은 완전히 사라졌다.
"너도 알고 있었구나. 의회 얘기."
레이가 토마스의 어깨에 얼굴을 묻으며 말했다.
"너도 감시당했어."
토마스가 레이의 등을 쓸어줬다.
"응. 나도 처음엔 의회가 찾던 대상이었어. 강한 마법 재능이 있는 학생이니까. 그래서 처음 입학했을 때 난 엄청 긴장했어. 내가 강해 보이면 안 된다고 생각했어."
토마스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그래서 난 약한 척했어. 계속. 모든 수업에서. 모든 시험에서. 그리고 언젠가부턴 의회가 날 봐도 아무것도 아닌 취급을 했어. 성공한 거야. 나는 무능한 낙제생이 되는 데 성공했어. 그런데 그 과정이 쉽지 않았어. 매일 자신을 속이는 기분이었거든. 내가 정말 무능한 건 아닌지, 정말 강한 건 아닌지 자꾸만 의심하게 됐어."
토마스가 숨을 고르며 계속했다.
"근데 더 힘들었던 건 10반 학생들한테 벌어지는 일을 보는 거였어. 의회가 우리 마법을 강제로 봉인하는 거. 그걸 보니까 더 이상 참을 수 없었어. 그래서 리안 선생님에게 물었어. 정말로 우리가 무능한 건지. 그럼 선생님이 이 책을 줬어. 그리고 지난 3개월간 선생님과 함께 이 방을 찾아다녔어."
토마스가 책을 들어 올렸다.
"이 책을 읽고 나서 알았어. 우리가 무능한 게 아니라는 걸. 우리가 의도적으로 약해지도록 만들어졌다는 걸."
레이는 책의 첫 장을 펼쳤다. 글씨가 작았다. 손으로 쓴 글씨. 누군가의 일기 같기도 했고, 누군가의 고백 같기도 했다.
*아카데미의 설립 목표: 마법 사회의 미래를 선택된 자들이 통제하는 세상을 만드는 것. 이를 위해 우리는 약한 자들을 더욱 약하게 만들고, 강한 자들을 더욱 강하게 만든다. 그것이 계급 체계의 본질이다.*
레이의 손이 떨렸다. 손가락이 자신의 손가락이 아닌 것처럼 느껴졌다. 마치 누군가 다른 사람의 손을 조종하고 있는 듯한 낯선 감각. 피부가 자신의 것이 아닌 것처럼 느껴졌다.
"이게…"
"벨라드가 쓴 거야. 학장이."
토마스가 말했다.
"의회의 모든 계획이 여기 다 있어. 국가 권력층을 만드는 방법. 마법 사회를 지배하는 방법. 그리고…"
토마스가 책의 뒤쪽을 가리켰다.
"의회 조직원들의 명단도."
레이는 페이지를 넘겼다. 이름들이 줄줄이 적혀 있었다. 학장 벨라드. 주임 교사 셋. 그리고 학생들. 제임스. 시르바. 카린의 이름도 있었다.
"카린도?"
"카린은 다르다고 생각해. 선생님도 그렇게 봐. 카린이가 의회의 명령으로 움직이는 것 같긴 한데, 진짜 의회의 일원인지는 확실하지 않아. 근데 여기 이름이 있으니까…"
토마스가 말을 흐렸다.
"모르겠어."
"이 책을 왜 날 주려고 했어?"
레이가 물었다.
"왜냐하면…"
토마스가 레이의 손을 잡았다. 따뜻한 손이었다. 현실감이 있었다.
"넌 혼자가 아니야. 우리는 모두 같은 상황이야. 우리는 모두 봉인당했어. 우리는 모두 의회에 의해 약해졌어. 그리고…"
토마스가 레이의 눈을 봤다. 진심이 담긴 눈빛이었다.
"넌 가장 강해. 넌 이들을 멈출 수 있어."
레이의 눈에 다시 눈물이 맺혔다. 이번엔 파란 빛이 없었다. 오직 눈물만 있었다.
"고마워."
레이가 말했다.
"고마워, 토마스."
"뭐가."
"내가 혼자가 아니라는 걸 알려줘서."
토마스가 웃음을 터뜨렸다. 이번엔 슬프지 않은 웃음이었다.
"이제 뭐할 거야?"
"의회를 멈춰야 해."
레이가 책을 들고 일어섰다.
"이 증거로?"
"이것만으로는 부족해. 더 필요해. 의회가 뭘 하려는 건지 정확히 알아야 해."
"그럼?"
"비밀 회의실을 찾아야 해."
토마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리안 선생님이 말한 적 있어. 지하 심층부에 의회실이 있다고. 그곳에 모든 증거가 있을 거야."
"가볼래?"
"응."
레이와 토마스는 기숙사 계단을 내려갔다. 비상등이 깜박였다. 어둠이 짙었다. 하지만 레이는 더 이상 혼자가 아니었다.
기숙사 지하.
돌 벽이 보였다. 아주 오래된 돌. 벽 사이의 틈을 따라 레이는 손가락을 움직였다. 토마스가 옆에서 손전등을 비췄다.
"여기야."
레이가 말했다.
벽이 밀렸다. 숨겨진 문. 그 안에는 계단이 있었다. 더 깊은 어둠으로 향하는 계단.
"준비됐어?"
토마스가 물었다.
"응."
레이가 대답했다.
계단을 내려갔다. 발소리가 울렸다. 한 발, 한 발. 점점 더 깊어지는 어둠. 점점 더 싸늘해지는 공기. 점점 더 강해지는 마법의 냄새.
마지막 계단을 내려섰을 때, 거대한 문이 보였다. 철문. 그 앞에는 마법 봉인이 있었다.
"여기가…"
토마스가 중얼거렸다.
레이가 손을 들었다. 검신의 기억이 흘러왔다. 하지만 이번엔 다르게 흘러왔다. 검신의 목소리가 아니라, 마치 자신의 손 자체가 알고 있는 것처럼.
봉인이 풀렸다.
철문이 열렸다.
안에는 거대한 방이 있었다. 벽면 가득 문서와 사진이 붙어 있었다. 이름들. 날짜들. 계획들.
"오my…"
토마스가 중얼거렸다.
레이는 천천히 방 안을 걸어 다니며 문서를 하나씩 살펴봤다. 의회의 조직도. 학생들의 능력 평가 기록. 봉인 기술의 발전 과정.
첫 번째 문서를 펼쳤을 때, 레이의 호흡이 얕아졌다. 손이 떨렸다. 글씨가 깜빡거렸다. 시야가 흔들렸다.
다음 문서로 넘어갔다. 손이 떨렸다. 가슴이 철렁거렸다. 이것도, 저것도 모두 의회의 손가락이 닿아 있었다.
마지막 문서에 이르렀을 때, 레이는 멈췄다. 종이가 낡았다. 손가락의 흔적이 묻어 있었다. 수십 번 읽은 종이였다. 레이의 손가락도 그 위에 닿았다.
글씨가 크게 쓰여 있었다.
*최종 목표: 강자들의 완전한 제거 또는 통제. 특히 검신의 환생 제거 필수.*
레이는 문서를 내려놨다. 손이 자동으로 움직였다. 호흡이 가빠졌다. 이건 자신에 대한 문서였다. 자신을 죽이기 위한 계획이었다. 팔이 저렸다. 다리가 떨렸다. 자신의 신체가 자신의 것이 아닌 것처럼 느껴졌다.
"검신의 환생?"
토마스가 다가와 물었다.
레이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다른 문서를 집어 들었다. 최근 날짜가 적혀 있었다. 어제다.
*비상 회의 기록. 주제: 10반 동시 각성 사건 및 레이의 신분 노출.*
글이 많았다. 레이는 한 문장 한 문장을 읽어 내려갔다. 호흡이 끊겼다. 손이 떨렸다. 눈이 흐릿해졌다.
*"검신의 조각이 활성화되었습니다. 예상보다 빠릅니다."*
*"레이라는 학생이 검신의 분리 단편이라는 확신은?"*
*"90% 이상입니다. 마법 흔적 분석 결과, 그의 신체는 검신의 기억을 담기 위해 설계되었습니다."*
*"그렇다면 통제는?"*
*"불가능해 보입니다. 검신의 본체가 활성화되면서 분리 단편도 독립적 의지를 갖기 시작했습니다. 이제 둘은 대척점에 있습니다."*
*"처리 방안은?"*
*"둘 중 하나를 완전히 제거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검신이 완전히 복구됩니다."*
레이의 손이 떨렸다. 이번엔 검신의 목소리가 아니었다. 자신의 손이 떨렸다. 온몸이 떨렸다. 눈앞이 흐릿해졌다. 자신은 누군가의 조각이었다. 누군가의 파편이었다. 자신의 정체는 없었다. 자신의 신체는 자신의 것이 아니었다. 손가락도, 눈도, 심장도 모두 누군가 다른 사람의 것이었다.
토마스가 레이를 잡았다.
"레이!"
"넌… 검신의 조각이야?"
토마스는 레이를 바라봤다. 그리고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래서 넌 싸우는 거야. 검신의 몸으로 싸우는 게 아니라, 레이로서 싸우는 거야."
"모르겠어. 난 진짜 모르겠어, 토마스."
레이의 목소리가 떨렸다. 검신의 목소리가 아니라, 한 명의 소년이 절망하는 목소리였다. 자신이 누구인지 모르는 소년의 목소리였다.
"그럼 이렇게 생각해봐."
토마스가 레이의 어깨를 잡았다.
"레이가 맞는지 검신이 맞는지는 나중에 생각해. 지금은 이게 중요해."
토마스가 다른 문서를 집어 들었다.
"이거. 의회의 최종 목표. 강자들을 제거하거나 통제하는 거야. 넌 그 강자 중 하나야. 그리고 우리도 강자야. 우리 모두가. 지금 봉인만 풀렸을 뿐이야."
"그래도 내가 만약—"
"그래도 뭐야? 의회의 손에 죽어야 해? 아니면 평생 이 의심 속에서 살아야 해?"
토마스의 목소리가 올라갔다. 처음이었다. 레이가 토마스에게서 이런 목소리를 들은 적이.
"넌 우리를 깨웠어. 18명을 깨웠어. 그리고 이제 우리는 선택지가 있어. 죽거나, 싸우거나."
토마스가 문서를 들었다.
"이 문서들은 증거야. 의회가 뭘 했는지, 뭘 하려는지 보여주는 증거야. 이걸 가지고 나가면… 아카데미가 흔들려. 아니, 아카데미 전체가 뒤집혀."
"근데 벨라드는—"
"벨라드는 학장일 뿐이야. 아카데미의 진정한 주인은 아니야. 우리가 이 증거를 공개하면 의회도, 벨라드도 더는 숨을 수 없어."
레이는 토마스를 봤다. 진정한 얼굴이었다. 착한 척했던 얼굴이 아니었다. 이미 계획되어 있던 얼굴이었다. 그 순간 레이는 깨달았다.
"넌… 처음부터 준비하고 있었어?"
"응. 리안 선생님이랑 함께."
토마스가 대답했다.
"난 무능한 척했어. 의회가 날 관심 없어 하도록. 그 사이에 선생님이랑 함께 증거를 모았어. 어디에 뭐가 있는지, 누가 의회에 속하는지. 그리고…"
토마스가 방 안을 다시 둘러봤다.
"가장 중요한 건, 의회를 무너뜨릴 수 있는 방법이 있다는 거야."
"뭐야?"
"너."
토마스가 다시 레이를 봤다.
"넌 검신이든 레이든 상관없어. 넌 강해. 그리고 넌 이들을 이길 수 있어. 난 그걸 안다."
레이의 손이 다시 떨렸다. 이번엔 두려움이 아니었다. 뭔가 다른 감정이었다. 책임감. 분노. 그리고 결심.
"만약… 만약 내가 실패하면?"
"그럼 우린 모두 죽어."
토마스가 담담하게 대답했다.
"아니면 평생 봉인 속에서 살아. 의회의 조종 속에서. 그게 더 나아?"
레이는 대답할 수 없었다.
"선택은 넌 거야."
토마스가 문서 묶음을 레이에게 건넸다.
"이 증거들과 함께. 넌 싸울 거야? 아니면 숨을 거야?"
레이는 문서를 받았다. 무게가 있었다. 단순한 종이의 무게가 아니라, 모든 것의 무게였다.
"이 모든 게…"
"의회가 했어. 처음부터. 아카데미를 만들 때부터."
방의 한 구석에 더 오래된 문서가 있었다. 레이가 다가갔다. 그 위에는 날짜가 적혀 있었다. 십 년 전.
*아카데미 설립 계획. 목표: 국가 마법 인재의 완전한 통제.*
그 아래에는 이름들이 적혀 있었다. 벨라드. 주임 교사들. 그리고… 한 명이 더. 붉은 펜으로 선이 그어져 있었다. 이름은 지워져 있었다.
"누구야? 이 사람?"
레이가 물었다.
토마스가 다가와 봤다. 그리고 고개를 저었다.
"몰라. 리안 선생님도 몰라고 하셨어. 의회도 숨기고 있는 것 같아. 아마도…"
토마스가 생각에 잠겼다.
"아마도 처음 의회를 만든 사람일 거야. 그리고 그 사람이…"
토마스가 다시 레이를 봤다.
"아마도 검신과 관련이 있을 거야. 그리고 선생님이 이 일에 참여한 것도 그 때문일 거고."
갑자기 기숙사에서 알람음이 울렸다. 경보음이었다. 비상 신호. 아카데미 전체에 울려 퍼지는 경보음.
레이와 토마스는 서로를 봤다. 경보음은 점점 더 커졌다. 아카데미 곳곳에서 발걸음 소리가 들렸다. 누군가 계단을 내려오고 있었다. 여럿이었다.
"발견됐어."
레이가 말했다.
"응."
토마스가 대답했다.
"그럼 이제 정말 시작이야."
레이는 문서 묶음을 안았다. 그리고 검을 들려고 했다. 손이 허공을 헤맸다. 검이 없었다.
기억이 맑아졌다. 검은 지하에서 벨라드에게 빨려 들어갔다. 그리고 레이 안에서 검신의 조각이 깨어났다.
그렇다면 이제 남은 건 무엇인가.
레이 자신이었다.
레이가 손을 펼쳤다. 파란 빛이 손가락 끝에서 모였다. 검신의 기억이 아니라, 자신의 마나였다. 처음으로, 진정으로 자신의 것이었다.
"넌 마법을 쓸 수 있어?"
토마스가 놀라며 물었다.
"몰라. 처음이야."
레이가 대답했다.
그리고 비밀 회의실의 벽을 향해 손을 펼쳤다.
파란 빛이 벽을 부쉈다. 돌과 철이 쩌렁거리며 무너졌다. 폭발이 아니었다. 그저 레이의 의지가 현실이 되는 것이었다.
"가자."
레이가 말했다.
기숙사 계단을 올라갔다. 토마스가 뒤따랐다. 경보음은 점점 더 커졌다. 계단 위에서 발걸음이 들렸다. 누군가 아래로 내려오고 있었다.
레이는 멈추지 않았다. 올라갔다. 한 층, 두 층. 손에서 파란 빛이 흘렀다. 벽이 갈라졌다. 문이 날아갔다.
옥상에 도달했을 때, 앞에는 시르바와 제임스가 서 있었다. 그들의 눈이 빛났다. 경계의 빛. 시르바의 입술이 굳게 다물어졌고, 제임스의 손에는 이미 마법이 모여 있었다. 그들의 뒤에는 벨라드의 그림자가 있었다.
"레이."
시르바가 말했다. 목소리가 낮았다.
"더 이상 갈 수 없어."
레이는 멈추지 않았다.
"그래. 난 레이야."
레이가 말했다.
"그리고 난 멈추지 않아."
파란 빛이 옥상을 밝혔다. 레이의 손에서 검신의 기억과 자신의 의지가 섞여 흘러나왔다. 검신인가, 레이인가. 그 경계는 이미 무너져 있었다. 남은 건 오직 하나. 앞으로 나아가는 것뿐이었다.
아카데미의 밤이 진홍색으로 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