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 검신의 경고

기숙사 복도의 응급 조명이 깜박였다. 18명의 학생이 동시에 각성하는 순간, 아카데미 전역에 울렸던 신호음은 이미 꺼진 지 10분이었다. 레이는 옥상으로 향하는 계단을 오르면서 자신의 손가락을 세어봤다.

다섯 개.

맞다. 그런데 어제는 몇 개였지?

어제.

레이가 발을 멈췄다. 어제가 언제지?

검이 손에서 울렸다. 차갑고 선명한 울음. 검신의 목소리가 들렸다.

"힘을 더 써야 해. 계속 써야 해. 그래야만 우리가..."

레이의 이마에 맺힌 땀이 차가워졌다. 손가락이 떨렸다. 그것은 경고였다. 검신의 경고.

옥상 문을 열었을 때, 밤공기가 몸을 휘감았다. 아카데미의 야경이 한눈에 들어왔다. 엘리트 타워의 불빛, 낙제반 거주지의 어둠, 중앙에서 솟아오르는 의회실의 붉은 신호. 모두가 아름다웠다. 동시에 혐오스러웠다.

"넌... 뭐지?"

혼잣말처럼 나온 목소리가 자신의 것이 아닌 것 같았다. 검의 손잡이를 쥐는 손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너를 필요로 한다."

검신의 목소리가 뇌에 직접 박혔다. 귀가 아닌 다른 곳에서 울렸다.

"넌 나를 필요로 한다."

"아니다."

레이가 대답했다. 하지만 목소리가 약했다.

"우리는 하나가 되어야 한다."

"안 돼."

기숙사 입구로 향하는 복도에서 발소리가 들렸다. 재빠른 발걸음. 여럿이 함께 오는 소리.

레이는 옥상 난간에 가까워졌다. 다섯 층 아래로는 중정이 있었다. 검을 들어올렸다.

"레이!"

카린의 목소리가 옥상 계단에서 들렸다. 그녀의 얼굴이 보였다. 검은 머리, 빨간 눈. 왜 그 눈이 빨간색으로 보이지?

"너 뭐 해? 내려와!"

"카린... 맞지?"

"뭐?"

"넌... 누구야?"

카린의 얼굴이 순간 창백해졌다. 그녀가 가까워지려 하자, 뒤에서 토마스가 나타났다.

"레이! 진정해!"

토마스. 그 이름을 들었을 때 뭔가가 흔들렸다. 오래된 영상처럼 떠오르는 기억이 있었다. 웃고 있는 얼굴. 누군가 웃고 있다. 그게 누구지?

"기억해. 레이. 우리가 3학년 때 기숙사 복도에서 넌 음식을 흘렸어. 화이트 소스가 바지에. 기억해?"

그 순간 레이의 가슴이 철렁했다. 따뜻함 같은 것이 떠올랐다. 하지만 그 감정이 무엇인지 알 수 없었다. 마치 남의 기억을 보는 것처럼 멀게 느껴졌다.

"...모르겠어."

"뭐?"

"그 사람이... 누구예요?"

토마스의 목소리가 떨렸다. 그 떨림이 이상했다. 왜 그가 떨려?

"넌 내 친구야. 우리 첫 만남 때 넌..."

"친구?"

레이가 그 단어를 반복했다. 친구. 감정이 있는 것 같은데, 그 감정의 이름을 모르겠다.

검신의 목소리가 다시 울렸다.

"그것들은 버려야 해. 모든 감정, 모든 기억, 모든 인연. 그것들이 너를 약하게 만들어."

"그건..."

"사실이야. 우리가 하나가 되려면 넌 모두를 잃어야 해. 대신 넌 완벽해질 거야."

레이의 손가락이 검을 더 세게 쥐었다. 손이 떨렸다. 아니, 떨림이 멈췄다.

"레이!"

카린이 더 가까워졌다. 그녀의 마법이 공기를 흔들었다. 파란 불꽃이 레이의 발치에 떨어졌다. 신체에 닿을 뻔한 순간, 레이의 몸이 반사적으로 반응했다. 통증이 흘렀다. 마법이 피부를 지져갔다. 그 고통이 레이를 깨웠다.

"아!"

"레이!"

카린이 손을 거두었다. 그녀의 얼굴에 절망이 떠올랐다.

"난 너한테 봉인을 풀어달라고 했어. 우리 모두를 위해. 기억해?"

"...기억합니다."

"뭐?"

"기억합니다."

그 순간, 기숙사 서쪽 벽에서 검은 그림자가 떠올랐다. 시르바였다. 그리고 그의 뒤에 세 명의 의회 요원들이 따라왔다.

"물러서라, 카린."

시르바의 목소리가 명령조로 울렸다. 하지만 그의 눈은 살인적이지 않았다. 오히려 조심스러웠다.

"시르바? 넌 뭐 하는 거야?"

"학장의 명령이다. 레이 라고우를 보호한다."

"뭐?"

카린의 목소리가 날카로워졌다.

"보호? 지금까지 넌 그놈을 죽이려고..."

"계획이 바뀌었다."

시르바가 한 발 더 가까워졌다. 의회 요원들도 함께 움직였다. 하지만 그들의 움직임이 레이를 공격하려는 게 아니었다. 마치 레이를 원 안에 두려는 것 같았다.

"아... 아!"

카린이 외쳤다. 그녀의 눈이 변했다. 공포가 담겨 있었다.

"넌... 함정에 빠진 거야?"

카린의 손이 공중을 그었다. 마나 추적 주문이었다. 그녀의 눈이 빛났다. 마법 추적자로서의 능력이 발동했다.

"시르바의 마나가... 변했어?"

시르바 주변의 마나 흐름이 이전과 달랐다. 더 이상 의회의 통제 아래에 있지 않은 것처럼. 그리고 지하에서 올라오는 마법 진의 신호가 갑자기 강해졌다.

"지하의 봉인 진이... 조기 활성화되고 있어?"

카린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이건 계획된 것이 아니었다. 의회도 예상하지 못한 변수였다. 그 순간 카린은 깨달았다. 자신이 의회의 도구였다는 것을. 시르바도 도구였다는 것을. 그리고 레이도.

레이의 손이 멈췄다. 기억이 떨어졌다. 조각 같은 기억들이 밤하늘로 흩어졌다.

"내가... 뭘 한 거야?"

"너는 아무것도 몰랐어. 그놈들이 날 조종했고, 날 통해 너를 조종했고, 결국..."

"충분하다."

시르바가 손을 들었다. 의회 요원들이 더 가까워졌다. 카린이 레이 앞으로 나섰다.

"물러서!"

그녀의 마법이 공기를 갈라버렸다. 파란 불꽃이 하늘을 그었다. 하지만 시르바는 반응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레이를 보며 말했다.

"지금 넌 선택을 해야 한다. 우리와 함께하거나, 아니면..."

"아니면?"

"완전히 사라지거나."

레이의 손이 다시 떨렸다. 아니, 떨리지 않았다. 떨림이 정지했다. 그 대신 검신의 목소리가 폭발했다.

"이제다! 이제 모든 걸 끝내자! 너는 더 이상 나약한 레이가 아니야! 넌 나야! 넌 검신이야!"

"아니야..."

레이가 중얼거렸다. 하지만 목소리가 그의 것이 아니었다.

"넌... 정말 다른 존재야?"

그는 검을 들어올렸다. 검의 날이 달빛을 반사했다.

"아니면..."

검신의 목소리가 대답했다:

"그 구분이 중요한가? 곧 그런 것은 의미가 없어질 거야."

그 순간, 아카데미 중앙에서 목소리가 울렸다. 학장 벨라드의 목소리였다. 마법으로 증폭된, 모든 학생의 뇌에 직접 전달되는 목소리였다:

"드디어 준비가 됐군."

벨라드의 목소리가 공중에 흩어지자, 아카데미 전역의 불이 일제히 꺼졌다. 기숙사, 강의실, 도서관, 운동장. 모든 곳이 동시에 어둠에 잠겼다. 하지만 그 어둠이 완전하지 않았다. 붉은 빛이 지하에서 올라오고 있었다. 마법의 빛이었다. 엄청나게 큰 규모의 마법이 가동되고 있었다.

"뭐... 뭐 하는 거야?"

카린의 목소리가 떨렸다. 그녀는 하늘을 봤다. 아카데미의 상공에 거대한 기하학적 문양이 떠올랐다. 원 안의 원. 그 안의 또 다른 원. 마법 진이었다. 봉인 진이었다.

"이게..."

시르바가 처음으로 감정을 드러냈다. 그의 얼굴에 놀라움이 스쳤다. 의회 요원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들도 이것을 예상하지 못했다는 표정이었다.

레이는 여전히 검을 들고 있었다. 그의 눈은 하늘의 문양을 따라갔다. 그리고 그 순간, 검신의 목소리가 비명처럼 울려 퍼졌다.

"아니야! 이건... 이건..."

"뭐야? 뭐가 된 거야?"

레이가 물었다. 하지만 검신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검이 울렸다. 진동했다. 마치 공포에 떠는 것처럼.

"저 문양은..."

카린이 중얼거렸다. 그녀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마법 추적자로서 훈련받은 그녀조차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저건 봉인 진이 아니야. 저건..."

"격리 진이다."

시르바가 말했다. 그의 목소리는 이미 명령조가 아니었다. 오직 관찰자의 목소리였다.

"격리 진?"

"아카데미 전체를 외부와 단절시키는 마법. 그리고 동시에..."

시르바의 눈이 레이를 향했다.

"내부의 마법을 증폭시키는 진."

그 말이 끝나자마자, 기숙사의 벽이 울렸다. 마법 파동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레이는 한 발 뒤로 물러났다. 그 파동에 닿자 자신의 마나가 끌려나갔다. 몸에서 뭔가가 빨려나가는 감각. 마치 내장이 밖으로 나오는 듯한 고통이 흘렀다.

"아... 아!"

레이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검을 더 세게 쥐었다.

"이건... 뭐야?"

"날 위한 선물이지."

벨라드의 목소리가 다시 들렸다. 이번엔 레이의 귀에만 직접 전달되는 목소리였다.

"날?"

"그래. 넌 정말 대단하더군, 레이 라고우. 아니, 그 이름도 가짜겠지. 검신의 환생이라니."

레이의 호흡이 빨라졌다. 가슴이 철렁했다. 눈앞이 흔들렸다. 무언가 잘못됐다. 모든 게 잘못됐다.

"이 모든 게... 계획이었다는 건가?"

"물론이지. 넌 정말 훌륭하게 따라왔어. 우리가 원했던 대로. 봉인을 풀어주는 주문을 준 건 누구? 카린을 통해 너에게 접근한 건 누구? 시르바를 보내 너를 '보호'하게 한 건 누구?"

"다... 전부 넌가?"

"그렇고말고. 넌 우리의 미끼였어. 18명의 봉인을 푸는 미끼. 그들의 마나를 모두 한 곳에 모으는 미끼."

그 순간, 기숙사 지하에서 청백색의 빛이 올라왔다. 18명의 학생들이 동시에 각성했을 때 흘러나온 마나가 모두 한 곳으로 모이고 있었다.

귀울음이 울렸다. 척추를 저미는 비명. 검의 울림이 공기를 가르고 지나갔다. 18개의 영혼이 한 점으로 압축되는 고통. 청백색 빛이 기숙사를 뚫고 올라올 때마다 그들의 절망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레이는 검신의 기억을 통해 그들의 정체성이 무너지는 순간을 직접 느꼈다. 마치 자신의 것처럼.

"아... 아니야!"

레이가 외쳤다. 이번엔 검신의 목소리가 아니었다. 자신의 목소리였다.

"저 격리 진의 중심."

카린이 말했다. 그녀의 목소리는 이미 절망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리고 그 중심이 어디인지 넌 알겠지?"

벨라드가 웃음을 터뜨렸다.

"넌 자꾸 물어보더군. '검신이 뭐냐, 검신이 누구냐' 하고. 자, 이제 보여줄게. 저 18명의 마나를 모은 그 중심에서 뭐가 일어나는지."

레이는 뒤를 돌아봤다. 기숙사의 남쪽 벽이 무너졌다. 마법의 폭발이 아니라 내부에서 밀려나오는 것처럼. 그리고 그 안에서 뭔가가 나타났다.

인간의 형상이었다.

하지만 인간이 아니었다.

몸이 파란 마나로 빛나고 있었다. 그 형태가 계속 변했다. 고정되지 않았다. 마치 수백 개의 영혼이 한 몸에 갇혀 있는 것처럼. 그 중심에는 검이 있었다. 거대한 검이. 레이가 들고 있는 검과 같은 형태의 검이.

"아... 아니야..."

레이가 중얼거렸다.

"그게... 뭐야?"

"그게 넌 거야."

벨라드의 목소리가 차갑게 떨어졌다.

"아니, 정확히는 넌 저거의 일부야. 검신의 조각이야. 우리가 오래전에 분리해낸."

레이의 손이 떨렸다. 이번엔 검신 때문이 아니었다. 자신의 의지로 떨렸다.

"분리? 뭐를 분리했다는..."

"넌 봉인된 강자가 아니야, 레이. 넌 봉인된 존재가 아니야. 넌 단편이야. 검신의 단편. 우리가 일부러 분리해낸 조각."

카린이 레이의 어깨를 잡았다. 그녀의 손이 떨렸다.

"그건... 그건 거짓이야. 검신이..."

"검신? 그놈이 뭐라고 했나?"

벨라드가 웃음을 터뜨렸다.

"그놈도 모르지. 그놈도 깨어났을 때 자신이 뭔지 몰랐어. 그냥 강한 욕망만 남아있었거든. 파괴하고 싶은 욕망. 통제하고 싶은 욕망. 그리고 넌... 넌 그 욕망의 상대방이었어. 통제의 대상이었어."

레이가 자신의 손을 봤다. 검을 들고 있는 손. 그 손이 떨렸다. 두 개의 의지가 충돌하고 있었다.

"이제 넌 선택이 없어. 저 격리 진 안에서 넌 할 수 있는 게 없어. 넌 저 조각과 다시 합쳐져야 해. 그게 우리의 진짜 계획이거든."

벨라드의 목소리가 멀어졌다. 대신 다른 목소리들이 들렸다. 비명 같은 목소리들. 18명의 학생들이 내는 비명이었다.

"저 18명이..."

카린이 기숙사를 향해 달렸다. 하지만 시르바가 그녀를 막았다. 시르바의 움직임은 더 이상 명령을 따르는 것 같지 않았다. 마치 자신의 의지로 움직이는 것처럼.

"가면 안 된다."

"뭐?"

"저 격리 진 안에서 넌 죽어. 저건 넌 마법이 아니야. 저건... 저건 검신의 마법이야."

시르바의 눈이 레이를 향했다. 그 눈에는 미안함이 담겨 있었다.

"그리고 넌..."

레이의 입에서 목소리가 나왔다. 하지만 그것은 레이의 목소리가 아니었다.

"이제 충분해."

검신의 목소리였다. 하지만 이번엔 다르게 들렸다. 절망했다.

"너도 깨어났구나. 우리가 분리된 이유를 이제 알겠지? 우리가 함께 있으면 이렇게 된다고."

검신의 목소리가 떨렸다. 그 떨림은 분노가 아니라 깨달음이었다.

"우리가 함께 있으면... 우리는 서로를 파괴해. 그들이 우리를 분리한 이유가 바로 이거야. 우리를 제어하기 위해."

"뭐라고?"

레이가 물었다. 자신의 목소리로.

"우리는... 우리가 뭔지 모르고 있었어, 레이. 나도, 넌 것 같아. 그들이 우리를 조종했고, 우리는 그걸 운명이라고 생각했어."

검신의 목소리가 더 약해졌다.

"하지만 지금 알았어. 이건 우리의 싸움이 아니야. 이건... 우리가 싸워야 할 상대가 아니라는 걸."

"그럼 뭐라는 거야?"

"분리되어야 한다."

검신의 목소리가 명확했다. 처음으로 명확한 의지가 담긴 목소리였다.

"완전히. 영원히. 우리는 함께 있으면 안 돼. 그들이 우리를 이용하는 방법이 바로 이거야."

레이의 손에서 검이 떨어졌다. 아니, 떨어진 게 아니라 떠올랐다. 검이 공중에 떠서 지하의 그 조각을 향해 날아갔다.

"아니야!"

레이가 외쳤다. 하지만 이번엔 저항이 아니었다. 동의였다.

검신은 나가 아니다. 절대로.

레이가 명확하게 선언했다. 자신의 목소리로. 검신의 영향 없이. 그것이 자신의 선택이다. 자신이 남아있다는 증명이다.

그 순간, 기숙사 지하에서 폭발이 일어났다.

청백색의 빛이 모든 것을 삼켰다. 하지만 이번엔 다르게 퍼져나갔다. 격리 진을 따라 퍼져나갔다. 마치 격리 진 자체를 태우는 것처럼. 지하에서 올라오는 빛이 레이의 몸을 스쳐 지나갔다. 그 순간 모든 기억이 사라졌다. 모든 감정이 사라졌다. 모든 것이 사라졌다.

레이는 무릎을 꿇었다. 카린도 쓰러졌다. 시르바와 의회 요원들도 마찬가지였다. 모두가 그 빛 앞에서 무력했다.

"이제 알겠니?"

벨라드의 목소리가 다시 들렸다. 이번엔 슬프게.

"검신이 뭐냐고? 검신은 우리가 만든 거야. 아니, 우리가 제어하려고 만든 거야. 그리고 넌 그 제어 장치였어."

레이의 눈이 떠졌다. 하지만 그 눈은 이미 레이의 눈이 아니었다. 파란 빛이 가득 차 있었다.

"너는 정말로..."

레이의 입에서 나오는 목소리가 들렸다. 하지만 누구의 목소리인지 알 수 없었다.

내가 남아있나?

"누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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