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퇴고본
호텔 컨퍼런스홀의 대형 스크린에 태국의 국기가 떴다. 아시안컵 본선 조별리그 첫 경기. 한국 대 태국. 박준호는 선수 터널 입구에서 무릎을 굽혔다. 신발끈을 다시 묶는 척했지만, 손가락이 떨렸다. 왼쪽 눈을 감았다 떴다. 뇌 뒤쪽에서 둔한 울림이 있었다.
예선전 이후 사흘 동안 매일 밤 똑같은 꿈을 꿨다. 뭔가를 놓치고 있다는 느낌. 그것이 무엇인지는 알 수 없었다.
"박준호, 집중해."
박철수 감독이 통로를 지나가며 어깨를 친다. 목소리는 무겁다. 예선전을 통과했지만, 팀의 분위기는 승리와 거리가 멀었다. 홍콩전에서 박준호가 쓰러진 이후로, 선수들 사이의 침묵이 언어가 되었다.
경기장에 나가는 순간, 박준호는 모든 것을 잊으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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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반 20분. 태국의 미드필더가 우측 라인에서 측면 크로스를 올렸다. 박준호는 한쪽 눈을 집중시켰다. 순간, 풋살 코트의 모든 움직임이 투명한 유리판처럼 펼쳐졌다. 상대 선수의 무게중심. 공의 회전. 그리고 자신의 신체 위치.
편안 시야.
박준호는 몸을 날렸다. 상대 수비수가 도달하기 전에, 그의 발이 공을 걷어냈다. 볼은 왼쪽으로 흘렀다. 김민재가 그곳에 있었다. 아니, 있었어야 했다.
공은 김민재의 발 앞에서 라인을 넘었다. 오프사이드.
경기장의 호루라기가 울었다.
박준호는 김민재를 봤다. 그는 박준호를 보지 않았다. 의도적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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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반 35분. 박준호가 다시 편안 시야를 발동했다. 이번엔 직접 슈팅. 태국 골키퍼의 손가락을 스쳐 그물 안으로. 1:0. 관중석이 울었다. 박준호는 하늘을 보지 않았다.
후반 5분. 박준호가 또 골을 넣었다. 2:0. 그리고 후반 20분, 세 번째 골. 3:0. 경기는 일방적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한국의 승리가 아니었다. 그것은 박준호의 승리였다.
의료실로 돌아오면서 박준호의 관자놀이는 너덜거렸다. 마치 누군가 두개골 안쪽을 찌르는 것 같은 통증. 의사는 체온계를 꺼냈다.
"뇌척수액 압력이 전전주 측정치 대비 47% 상승했습니다."
박준호는 대답하지 않았다.
"정상 수치의 165% 수준입니다. 한 번 더 이 강도로 발동하면—" 의사가 말을 멈췄다. "회복 불가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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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일 뒤, 두 번째 경기. 한국 대 인도네시아.
박준호는 선발로 나갔다. 후반 15분 투입이 아닌, 처음부터 경기장에 있었다. 감독의 지시였다. 팀이 너무 약했다. 예선전의 경기력을 유지할 수 없었다.
전반 10분. 인도네시아의 에이스가 좌측 라인에서 슈팅을 시도했다. 박준호가 블로킹했다. 공이 중원으로 흘렀다. 이준성이 그것을 받아야 했다. 이준성은 공을 보지 않고 박준호를 봤다.
박준호가 달렸다. 공을 받았다. 다시 편안 시야를 켔다. 모든 것이 느려졌다. 상대 수비수 넷의 위치. 골키퍼의 중심. 측면의 공간.
박준호는 오른쪽으로 패스했다. 최동욱이 받아야 했다. 최동욱은 공을 무시했다. 공은 라인을 넘었다.
"박준호!" 박철수 감독이 소리쳤다.
전반 25분. 박준호가 다시 편안 시야를 발동했다. 이번엔 직접 슈팅. 골. 1:0. 관중석이 박수를 쳤다. 선수들은 박수하지 않았다.
후반 5분. 박준호의 두통이 시작됐다. 미약한 울림에서 시작해, 점점 강해졌다. 두개골이 수축하고 팽창하는 것 같은 감각. 시각이 흔들렸다. 한쪽 눈을 감으면 세상이 기울었다. 떴다 감았다를 반복했다.
인도네시아의 공격이 거세졌다. 한국의 수비가 흔들렸다. 박준호가 뒤로 물러나야 했다. 왼쪽 눈이 따끔거렸다. 신경이 끊어지는 느낌.
후반 12분. 인도네시아의 미드필더가 슈팅했다. 박준호가 막아야 했다. 몸이 반응하지 않았다. 통증이 신경을 짓누르고 있었다. 공이 골라인을 향했다. 누군가 막아야 했다.
이준성이 그 자리에 있었다. 공을 막을 수 있었다.
이준성은 박준호를 지나쳤다. 공은 그물에 들어갔다. 1:1.
박준호는 무릎을 꿇었다. 관자놀이의 통증이 극을 달했다. 마치 뇌 전체가 뭉쳐지는 것 같았다. 그는 양손으로 머리를 감싸 쥐었다.
"박준호!" 김민재가 달려왔다. 손을 내밀었다.
박준호는 그 손을 보지 않았다.
김민재는 멈췄다. 그리고 돌아섰다. 천천히, 의도적으로.
후반 18분. 인도네시아가 또 골을 넣었다. 1:2. 박준호는 여전히 무릎을 꿇고 있었다. 누구도 다가가지 않았다. 경기는 계속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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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후 의료실. 박준호는 침대에 누워 있었다. 의사가 뇌파 측정기를 제거했다.
"뇌척수액 압력이 정상의 187% 수준입니다."
침묵.
"한 번 더 그 강도로 발동하면 뇌 손상이 불가역적입니다." 의사의 목소리는 담담했다. 담담할수록 더 무거웠다.
박준호의 눈이 천장을 바라봤다. 하얀 천장. 형광등. 그 위에 무엇이 있는지, 그는 알 수 없었다. 의사의 말이 계속됐지만 들리지 않았다. 대신 자신의 목소리만 맴돌았다.
'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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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텔 로비에서 박정현이 나타났다. 아들의 얼굴을 보는 순간, 그녀의 눈빛이 변했다. 쓰러진 아들의 모습이 그 자리에 있었다.
"준호."
그녀는 아들을 안았다. 박준호의 몸이 경직됐다가, 어머니의 가슴에 기대 내려앉았다.
"건강하기만 하면 된다. 우승이 뭐가 중요해. 엄마는 넌 그냥 살아있으면 돼." 박정현의 목소리가 떨렸다.
박준호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한마디가 나왔다.
"우승을 해야 해요."
박정현이 아들을 밀어냈다. 아들의 눈을 봤다.
"뭐라고?"
"우승을 해야 한다고요. 엄마."
박정현의 손이 떨렸다. 그리고 떨어졌다. 말이 없었다. 말보다 더 무거운 침묵이, 모자 사이에 내려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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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째 경기. 한국 대 필리핀. 조별리그 최종전.
박준호는 벤치에 앉아 있었다. 의료진의 지시였다. 편안 시야 사용 금지. 그러나 팀은 0:1로 밀렸다. 후반 10분, 박철수 감독이 박준호를 봤다. 눈빛이 묻고 있었다.
박준호는 일어났다.
후반 15분. 박준호가 경기장에 들어갔다. 관중석이 박수를 쳤다. 하지만 그것은 환호가 아니었다. 마지막 수단을 바라보는 눈빛이었다.
박준호는 한쪽 눈을 집중시켰다. 편안 시야. 뇌 뒤쪽이 즉시 울렸다. 그는 이미 알고 있었다. 이것이 회복 불가능의 시작이라는 것을.
그럼에도 그는 움직였다. 상대 수비를 뚫었다. 슈팅했다. 1:1. 관중석이 울었다.
후반 20분. 박준호가 또 편안 시야를 발동했다. 이번엔 킬패스. 최동욱이 받았다. 최동욱이 골을 넣었다. 2:1.
박준호의 시야가 흔들렸다. 양쪽 눈이 다른 속도로 움직였다. 한쪽 눈만 남은 몸의 균형감각이 무너졌다. 그는 비틀거렸다.
후반 23분. 박준호는 더 이상 달릴 수 없었다. 중원에서 멈췄다. 필리핀의 공격이 몰려왔다. 박준호가 막아야 했다. 다시 편안 시야를 켜야 했다.
그는 켔다.
뇌가 폭발하는 것 같았다. 이전의 통증과는 차원이 달랐다. 마치 두개골 안에서 누군가 도끼를 휘두르는 것 같았다.
박준호는 무릎을 꿇었다. 한 손으로 머리를 감싸 쥐었다. 다른 한 손으로 땅을 짚었다. 경기는 계속됐다. 필리핀의 공격이 계속됐다. 누군가 막아야 했다.
이준성이 그곳에 있었다.
이준성은 박준호를 지나쳐 공을 받으러 달렸다. 공을 탈취했다. 왼쪽으로 패스했다. 김민재가 받았다. 김민재는 한 번 박준호를 봤다. 그리고 돌아섰다. 전진했다. 슈팅했다. 3:1.
경기장의 호루라기가 울었다. 한국의 승리. 조별리그 1위 진출.
박준호는 여전히 무릎을 꿇고 있었다. 아무도 그를 일으켜 주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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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실. 박준호는 침대에 누워 있었다. 의사가 측정기를 제거했다.
"뇌척수액 압력이 정상의 194% 수준입니다."
의사는 박준호를 바라봤다. 그 눈빛에는 최종 선고가 담겨 있었다.
"한 번 더 발동하면 뇌 손상이 영구적입니다. 돌이킬 수 없다는 뜻입니다. 신경 조직이 괴사하고, 회복 불가능한 상태가 됩니다."
의사의 말은 계속됐지만, 박준호는 그 의미를 신체로 느끼고 있었다. 마치 두개골 안에 시한폭탄이 있는 것 같은 공포감. 한 번 더 편안 시야를 켜면, 자신은 더 이상 선수가 아니라 식물인간이 될 수도 있다는 현실.
"결승전은 불가능합니다. 현재 상태로는 어떤 신체 활동도 위험합니다."
박준호의 손가락이 침대 시트를 움켜쥐었다. 손가락이 떨렸다. 그리고 주먹이 됐다. 주먹이 침대를 내려쳤다. 침대가 삐걱거렸다. 의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박준호의 가슴이 들썩였다. 호흡이 빨라졌다.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하지만 울음은 나오지 않았다. 대신 목에서 나온 것은 한 줄의 중얼거림이었다.
"끝이다."
그 말이 반복됐다. 끝이다. 끝이다. 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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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텔 복도. 박준호가 나오면서 이준성과 마주쳤다.
"준호, 넌—"
박준호가 입을 열었다. "넌 날 지원할 수 있었어. 왜 안 했어?"
이준성의 눈이 변했다. 그 변화는 분노가 아니었다. 더 깊은 무언가였다.
"예선전 때 기억해? 홍콩전 전날 훈련에서." 이준성이 한 발 가까워졌다. "넌 계속 혼자 슈팅 연습을 했어. 밤 11시까지. 우리는 다 물러났어. 그런데 난 남았어. 넌 몰랐겠지. 넌 나를 보지 않았으니까."
박준호의 호흡이 멈췄다.
"난 너 옆에서 리바운드를 줬어. 아무 말도 안 하고. 그냥 공을 주고 또 주고. 넌 내게 감사 인사도 안 했어. 하지만 난 괜찮았어. 왜냐면 넌 그 공들을 골로 만들었거든. 그게 내 역할이라고 생각했어."
이준성의 목소리가 떨렸다.
"그런데 경기에서는 넌 내 패스를 받지 않았어. 계속 거절했어. 마치 내가 약한 선수인 것처럼. 마치 내가 방해가 되는 것처럼."
"난 팀을 위해—"
"팀?" 김민재가 복도 끝에서 나타났다. 눈이 빨갛게 부어 있었다. "넌 우리를 팀이라고 생각한 적이 없잖아. 넌 우리를 도구라고 생각했어."
박준호는 말할 수 없었다.
"인도네시아전 알지?" 김민재가 한 발 더 가까워졌다. "후반 18분, 넌 무릎을 꿇고 있었어. 난 너한테 손을 내밀었어. 그런데 넌 내 손을 보지 않았어. 내 손을 거절했어."
김민재의 목소리가 흔들렸다.
"그 순간 난 알았어. 넌 우리를 믿지 않는다는 걸. 우리와 함께하고 싶지 않다는 걸. 그래서 난 돌아섰어. 넌 혼자라고 생각했거든."
박준호의 눈이 두 사람을 번갈아 봤다. 이준성의 손이 먼저 나왔다. 박준호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필리핀전에서 우리는 넌 없이 경기했어."
손가락이 깊이 파고들었다. 마치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증명하려는 듯이.
"이준성이 공을 탈취했고, 난 슈팅했어. 넌 무릎을 꿇고 있었지만, 우리는 앞으로 나갔어. 넌 필요 없었어."
김민재가 말을 잇자, 이준성의 손이 더 강해졌다.
"하지만 우리는 너를 기다리고 있었어."
"매 경기마다."
"훈련장에서도."
두 사람의 말이 겹쳤다. 박준호의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그것은 절망의 눈물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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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실. 박철수는 책상 앞에 서 있었다. 박준호가 문을 열고 들어갔다.
"앉아."
박준호가 앉았다.
박철수는 한동안 박준호를 바라봤다. 그 눈빛 속에는 절망이 있었다.
"의료진이 뭐라고 했어?"
"결승전은 불가능하다고."
"그래." 박철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넌 끝이야. 이 아시안컵에서."
침묵.
"하지만 팀은 끝나지 않았다." 박철수가 일어섰다. "필리핀전 보고 왔어?"
박준호가 고개를 저었다.
"20분을 봐. 태국전에서 넌 이준성 패스를 거절했다. 그 순간부터 이준성의 움직임이 느려졌어. 그 다음 경기에서도 마찬가지였어. 넌 우리 팀의 호흡을 끊었다."
박철수가 박준호의 눈을 봤다.
"그런데 필리핀전에서 달랐어. 넌 무릎을 꿇었고, 이준성은 공을 탈취했어. 그 순간 이준성의 움직임이 빨라졌어. 호흡이 돌아왔어. 왜 그럴까?"
박준호는 대답할 수 없었다.
"넌 없었기 때문이야. 그리고 그들은 그 없음을 채웠어. 팀으로서."
박철수가 한 발 물러섰다.
"이제 넌 경기할 수 없다. 의료진의 경고를 무시할 수 없다. 그럼 남은 건 뭐냐? 팀이다. 우리 팀이 결승전에 가야 한다. 그리고 우리가 이겨야 한다."
"감독님, 저 없이는—"
"가능해." 박철수가 말을 끊었다. "이미 증명했잖아. 필리핀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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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 11시. 호텔 방. 박준호는 침대에 누워 있었다. 왼쪽 눈을 감았다 떴다. 다시 감았다. 다시 떴다.
뇌 뒤쪽의 통증은 여전했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 깊은 무언가가 가슴을 짓누르고 있었다.
그는 노트북을 켰다. 경기 영상 폴더를 열었다. 예선전부터 조별리그까지. 모든 경기가 있었다.
재생 버튼을 눌렀다.
홍콩전. 박준호가 화면에서 움직였다. 그리고 이준성이 보였다. 박준호가 슈팅할 때마다, 이준성은 박준호의 옆에 있었다. 리바운드를 주고 있었다. 박준호는 그것을 받지 않았다.
화면 속 이준성의 손가락을 본다. 공을 놓는 손가락의 각도. 그것이 변하지 않는다. 다시, 또 다시. 박준호의 손이 떨렸다.
다시 재생했다.
태국전. 박준호가 골을 넣고 있었다. 그리고 김민재가 보였다. 김민재는 박준호를 바라보고 있었다. 박준호가 패스를 거절할 때마다, 김민재는 한 번 더 박준호를 봤다. 그리고 돌아섰다.
그 돌아서는 순간을 박준호는 천천히 본다. 프레임 단위로. 김민재의 어깨가 내려간다. 그의 호흡이 보인다. 가슴이 움푹 들어간다. 마지막으로 박준호를 바라보는 눈빛. 그 눈이 다시 돌아온다. 한 번 더.
박준호의 목이 메었다. 손가락이 마우스 위에서 떨렸다.
영상을 멈췄다. 손으로 얼굴을 덮었다. 손가락 사이로 눈물이 흘렀다.
전화가 울렸다. 어머니였다.
"준호, 뉴스 봤어? 넌 결승전에 못 나간다고?"
"네."
"그럼 됐다. 쉬어. 건강이 제일이야."
박준호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물었다.
"엄마, 우승이 중요해?"
박정현이 잠시 침묵했다.
"넌 왜 그런 걸 물어?"
"그냥."
"우승도 중요하지만, 넌 더 중요해. 넌 살아있으면 돼. 그게 전부야."
박준호의 목이 메었다.
"엄마, 난 팀을 믿어야 해."
"뭐?"
"우승이 아니라 함께하는 거. 그게 중요한 거 같아. 엄마가 날 사랑하는 것처럼, 팀도 날 사랑했어. 난 그걸 몰랐어."
박정현의 목소리가 떨렸다.
"그래, 우리 준호. 그렇게 생각하는 게 맞아."
전화를 끊고, 박준호는 다시 영상을 켰다. 이번엔 인도네시아전. 후반 12분. 박준호가 무릎을 꿇고 있었다. 그리고 이준성이 달려왔다. 이준성은 박준호를 지나쳤다. 공을 받으러.
박준호의 눈이 이준성을 따라간다. 이준성의 발이 공을 향해 움직인다. 발가락의 방향. 무게중심의 이동. 그것은 박준호를 위한 움직임이 아니었다. 팀을 위한 움직임이었다.
필리핀전. 박준호가 무릎을 꿇었다. 이번엔 누구도 그를 도와주지 않았다. 하지만 이준성과 김민재는 앞으로 나갔다. 박준호 없이.
박준호는 그들의 움직임을 본다. 이준성의 호흡 리듬. 김민재의 눈빛. 그들이 박준호를 버린 것이 아니라, 박준호를 믿으면서 앞으로 나간 것이다.
영상이 끝났다. 검은 화면이 박준호를 비춘다. 그 안에 자신의 모습이 흐릿하게 보인다.
결승전까지 사흘이 남아 있었다.
그 사흘 동안, 박준호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경기장에 나가는 것이 아니었다. 병원 침대에 누워 있는 것도 아니었다.
팀을 믿는 것이었다. 그들이 자신을 기다렸던 것처럼, 자신도 그들을 기다리는 것. 그들이 박준호 없이 경기를 했던 것처럼, 박준호도 그들 없이 경기를 할 수 없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
하지만 질문은 남아 있었다. 결승전 진출이 확정된 것인가? 편안 시야는 정말 사용 불가능한가? 그들이 우승할 수 있을까?
박준호는 노트북을 껐다. 천장을 바라봤다. 하얀 천장. 형광등. 그 위에 무엇이 있는지, 그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이제는 알 필요가 없었다. 다만 믿으면 될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