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 국가대표팀 훈련장

조명이 밝아졌다. 2024년 3월 15일, 홍콩전 친선경기. 박준호는 라커룸에서 경기복을 입으며 한쪽 눈을 천천히 감았다. 오른쪽 눈만으로 세상을 인식하는 순간, 나머지 감각들이 깨어났다. 귀에 들어오는 음성들의 질감, 공기의 미묘한 움직임, 발밑 바닥의 진동까지. 그 모든 것이 하나로 수렴했다.

"준호, 신발끈 확인했어?"

김민재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는 박준호 옆에 앉아 슈즈를 조정하고 있었다. 밝은 톤, 다정한 어조—처음부터 박준호를 동료로 대하려는 의지가 담겨 있었다. 박준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대답은 하지 않았다. 말은 신뢰의 시작이고, 신뢰는 약점을 노출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최동욱이 라커룸 반대편에서 일어섰다. 검은색 경기복을 입은 그의 몸은 긴장되어 있었다. 어깨가 솟아 있었고, 턱이 앞으로 나와 있었다. 박준호를 지나칠 때, 최동욱의 어깨가 박준호의 팔에 스쳤다. 의도적이었는지 아닌지 알 수 없는 접촉. 박준호는 몸을 굽혔다.

"감독님, 포메이션 확인했습니다."

최동욱의 목소리가 박철수 감독을 향했다. 50대 후반의 날카로운 얼굴, 풋살 국가대표팀을 이끈 지 5년째인 감독은 화이트보드 앞에 서 있었다. 그의 눈이 박준호에게로 향했다.

"준호. 너는 후반 15분에 투입된다. 지난 훈련에서 보여준 그 수준을 유지하면 된다. 다만 한 가지."

박철수가 말을 멈췄다. 그의 입가에 묘한 표정이 떠올랐다.

"팀 플레이를 잊지 마. 홍콩 팀은 약하지만, 예선전을 앞두고 너를 평가하는 상대들이 스탠드에 앉아 있다. 혼자가 아니라 팀으로 보이는 게 중요하다."

박준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겉으로는. 내심으로는 다른 계산을 하고 있었다. 15분이면 충분했다. 편안 시야를 3회, 최대 4회 발동할 수 있는 시간. 그 정도면 경기를 결정하기에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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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는 전반 20분부터 균형을 잃기 시작했다. 한국팀 0:0, 홍콩팀. 박철수의 초반 포메이션은 보수적이었다. 중원 조직자 이준성이 패스 템포를 조절하고, 최동욱이 측면 공략을 맡았다. 그러나 최동욱의 슈팅은 부정확했다. 20분, 25분, 28분. 세 번의 골 기회가 모두 빗나갔다.

"슈팅 형태가 흐트러졌어."

스탠드의 어딘가에서 작은 목소리가 들렸다. 박준호는 벤치에 앉아 있었지만, 그 목소리를 놓치지 않았다. 국제 풋살 연맹의 스카우터였다. 홍콩전은 공식 경기지만, 아시안컵 예선전을 앞두고 각국의 평가단이 참석했다.

최동욱의 얼굴이 굳어 있었다. 그의 오른쪽 어깨가 미묘하게 떨리고 있었다. 자존심의 상처가 보였다.

후반 15분. 박철수 감독이 박준호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준호. 들어가."

박준호는 일어났다. 라커룸을 나가며 한쪽 눈을 감았다. 편안 시야가 발동하는 순간, 세상이 바뀌었다. 홍콩 선수들의 무게중심이 보였다. 공의 회전이 들렸다. 경기장의 공기 흐름까지.

한국팀의 공격. 이준성이 박준호에게 패스했다. 호흡은 맞지 않았다. 박준호는 첫 터치에서 상대 풀백의 무게중심을 읽었다. 풀백이 왼쪽으로 무게를 옮기는 순간, 박준호는 오른쪽으로 드리블했다. 한 번의 터치. 두 번의 터치. 세 번째 터치에서 슈팅 자세를 취했다.

골키퍼가 몸을 날렸다. 하지만 박준호는 이미 골키퍼의 움직임을 1초 전에 읽고 있었다. 슈팅의 궤적은 골키퍼의 오른쪽 어깨 위를 지나갔다. 그물이 울렸다.

1:0.

스탠드에서 함성이 터졌다. 박준호의 머릿속에서는 쿵—하는 소리가 울렸다. 뇌의 신경이 집중하면서 발생하는 극심한 두통. 그는 이를 무시했다.

"좋아! 그 템포 유지해!"

박철수의 목소리가 들렸다.

3분 후. 한국팀의 볼 탈취. 이준성이 박준호에게 다시 패스했다. 이번에는 측면에서. 박준호는 측면 공략수 김민재의 움직임이 보였다. 김민재가 크로스를 하려고 했다. 하지만 박준호는 혼자 갔다. 김민재의 패스를 무시했다.

개인 플레이. 드리블. 슈팅.

2:0.

라커룸의 김민재가 벤치에서 일어났다. 그의 입이 벌어졌다. 방금 자신이 준비했던 크로스를 박준호가 무시했다는 것을 본 것이다. 박철수 감독의 얼굴이 굳어졌다.

"체인지! 준호는 계속 나가."

최동욱이 벤치를 떠났다. 그의 눈이 박준호를 향했다. 그 눈에는 이미 분노가 타오르고 있었다.

5분 후. 박준호의 세 번째 터치.

홍콩팀의 측면 공략수가 크로스를 올렸다. 중원에서 경합이 벌어졌다. 박준호가 볼을 빼앗았다. 편안 시야 발동. 두 번째. 두통이 더 강렬해졌다. 시야가 한 순간 왜곡되었다. 마치 물 위의 풍경을 보는 것처럼. 하지만 박준호는 그 와중에도 골키퍼의 움직임을 읽었다.

슈팅. 골.

3:0.

경기장의 함성이 울려 퍼졌다. 스탠드의 스카우터들이 노트에 무언가를 적었다. 박준호의 이름 옆에 숫자 3이 기록되었다.

경기 종료. 3:1 한국 승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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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커룸의 침묵이 먼저였다.

경기복을 벗는 소리, 샤워장으로 가는 발소리만 들렸다. 승리했는데 어느 누구도 환호하지 않았다. 박준호는 벤치에 앉아 한쪽 눈을 감았다. 두통이 가시지 않았다. 아니, 더 심해지고 있었다. 뇌 뒤쪽에서 무언가가 타고 있는 듯한 느낌. 귀가 울렸다.

"준호."

최동욱이 박준호 앞에 섰다. 그의 주먹이 경기복 위에서 펼쳐졌다 오므려졌다. 손가락이 떨리고 있었다. 그는 박준호를 바라봤지만, 박준호는 고개를 들지 않았다. 침묵이 흘렀다. 3초. 5초. 10초.

최동욱의 손이 라커 위의 짐을 집어던졌다. 경기복이 바닥에 흩어졌다. 다른 선수들이 고개를 돌렸다. 이준성의 얼굴이 심각했다.

"넌 팀이 뭔지 몰라."

최동욱의 목소리는 낮았다. 분노보다는 절망에 가까웠다.

"전에도 그랬나? 무명 클럽에서?"

박준호는 여전히 고개를 들지 않았다.

"이준성이가 너한테 패스를 줬는데, 넌 그걸 무시했어. 김민재가가 크로스 체인스를 만들었는데, 넌 또 무시했어."

최동욱이 한 발 더 가까워졌다. 박준호는 이제 그의 신발끈이 보였다.

"그게 팀 플레이냐? 그게 에이스냐?"

박준호의 목소리가 낮게 나왔다.

"결과가 전부다. 3:1이다."

최동욱의 몸이 경직되었다. 그의 어깨가 더욱 경직되었다. 라커룸의 공기가 진동했다. 이준성이 일어났다. 김민재는 박준호를 바라봤다. 그의 눈에는 실망이 있었다. 하지만 그보다 더 강한 감정이 있었다. 믿음이 깨지는 순간의 슬픔.

"결과? 넌 개인 기록만 쌓는 거지, 팀의 결과를 생각하는 게 아니다."

"우승이 팀의 결과다."

"우승은 팀이 함께할 때 나온다!"

최동욱이 소리쳤다. 라커룸의 공기가 진동했다.

박철수 감독이 라커룸에 들어섰다.

"모두들 나가. 준호, 샤워 후에 의료실 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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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실. 의사는 박준호의 머리에 센서를 붙였다. 차가운 젤이 두피에 닿았다.

"편안 시야 발동 후 신경 활성도가 정상의 180%까지 올라가네요. 이건 위험합니다."

의사가 모니터를 가리켰다. 박준호의 뇌 활성도를 나타내는 파형이 요동치고 있었다.

"월 2회 이상 사용하면 뇌 손상 위험이 있습니다."

박준호는 대답하지 않았다. 의료실의 형광등이 천장에서 떨어질 듯 밝았다.

"특히 한 경기에서 3회 이상 발동한 건 처음이죠. 이건…"

"아시안컵까지 몇 경기 남았나요?"

박준호가 물었다. 목소리는 차분했다. 하지만 손가락은 의자의 팔걸이를 누르고 있었다.

의사가 계산했다.

"예선전이 5경기, 본선이 4경기면…"

"9경기."

박준호가 먼저 말했다. 마치 이미 알고 있었다는 듯. 의사가 박준호를 바라봤다. 그 눈에는 우려가 가득했다.

"그렇다면 저는 월 2회 제한을 지키겠습니다."

그 말을 하는 순간, 박준호 자신도 그것이 거짓임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거짓은 거짓처럼 들리지 않으면 진실이 되는 법이다. 의사는 박준호의 눈을 들었다가 내려놨다. 센서를 떼기 시작했다.

"그건 불가능합니다. 당신은 이미…"

박준호는 일어났다. 의료실을 나갔다. 뒤에서 의사의 목소리가 계속됐지만, 박준호의 귀는 닫혀 있었다. 복도를 지나 감독실로 향했다. 박철수는 이미 박준호를 기다리고 있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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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실의 모니터들은 박준호의 세 골을 반복 재생하고 있었다. 박철수는 영상을 멈추고 박준호를 바라봤다.

"앉아."

박준호가 앉았다. 의자가 삐걱거렸다.

"넌 정말 특별한 재능을 가지고 있다. 그건 인정한다. 하지만 내가 너에게 해 주고 싶은 말은 하나다."

박철수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그것은 화를 내는 톤이 아니었다. 더 위험한 종류의 목소리였다. 절망이 섞인 경고의 톤.

"팀 결속이 무너지면, 모든 것이 무너진다. 우승도, 너의 꿈도, 한국 풋살도."

박철수가 모니터를 다시 켰다. 이번에는 다른 장면들이 나타났다. 최동욱이 초반에 만든 스페이스. 이준성의 정교한 패스. 김민재의 움직임으로 인해 벌어진 골 에어리어의 틈.

박준호의 눈이 화면에 고정되었다. 첫 번째 골. 자신이 중원에서 공을 빼앗고, 편안 시야로 골키퍼의 무게중심을 읽으며 우측 상단 구석으로 슈팅을 밀어 넣는 장면. 하지만 그 전에 있었던 것들이 보였다. 최동욱의 스페이스 메이킹. 이준성의 정확한 패스 타이밍. 그 모든 것이 박준호의 슈팅으로 수렴하기 전에 존재했다.

"최동욱이 1골을 넣었는데, 그 1골이 팀에 얼마나 중요한 골인지 너는 아나?"

박철수가 최동욱의 골을 스크린에 띄웠다. 그 장면에서 최동욱은 박준호와 달랐다. 슈팅 전에 두 번 이상 패스를 시도했다. 팀원들의 움직임을 살폈다. 그리고 마지막에 슈팅했다.

"그가 경기 초반에 만든 스페이스가 없었으면 넌 그 슈팅 기회 자체를 얻지 못했다. 이준성의 패스 없이 넌 어디서 공을 받지? 김민재의 움직임 없이 넌 어디서 드리블을 했지?"

박준호의 입술이 움직였지만 소리는 나오지 않았다. 손가락이 팔걸이를 누르고 있었다. 압박감이 목 위로 올라왔다. 화면 속 최동욱의 플레이가 반복되었다. 패스를 고민하는 순간, 팀원을 살피는 눈빛, 그리고 마지막 슈팅. 모든 것이 팀을 먼저 생각한 후의 결정이었다.

"너는 생각해야 한다. 저 세 명이 없었다면, 너의 편안 시야도 무용지물이었다는 걸. 그들의 움직임이 너에게 공간을 만들어주고, 그 공간 속에서 비로소 너의 능력이 빛난다는 걸."

박철수가 영상을 끝냈다. 화면이 검은색으로 돌아갔다.

"아시안컵 예선전까지 3주다. 그 사이에 넌 선택을 해야 한다. 혼자 가는 에이스가 될 건지, 팀과 함께하는 선수가 될 건지."

박철수의 목소리가 더 낮아졌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이번 아시안컵이 우리 팀의 마지막 기회다. 너는 그걸 알아야 한다."

박준호의 눈이 감독을 향했다.

"4년 전 홍콩에서 졌어. 그 이후로 협회의 예산은 줄었다. 선수들의 사기는 떨어졌다. 올림픽 단계로 올라갈 기회도 줄었다. 너를 데려온 이유는 하나다. 이번이 마지막이라는 걸 알아서라도, 이번에 우승해야 한다는 거야."

박철수가 몸을 앞으로 기울였다.

"그 무대에서 모든 책임이 너에게 올 거고, 팀 없이 그 무게를 혼자 짊어질 수 있는 선수는 이 세상에 없다."

박준호는 감독실을 나갔다. 복도의 형광등들이 일렬로 나타났다 사라졌다. 그의 머릿속에는 여전히 두통이 울리고 있었다. 그리고 또 다른 소음이 섞여 들었다.

'최동욱이 1골을 넣었는데…'

'팀 결속이 무너지면…'

'마지막 기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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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텔 방. 박준호는 침대에 누웠다. 천장을 바라봤다. 한쪽 눈을 감았다. 편안 시야를 발동하려던 순간, 손이 떨렸다. 신경이 예민해져 있었다. 뇌가 저항하고 있었다. 의사의 경고가 떠올랐다.

월 2회 제한. 하지만 아시안컵은 9경기.

수학은 간단했다. 9를 2로 나눌 수 없다. 그렇다면 다른 방법이 있어야 했다. 더 효율적인 사용. 더 정교한 발동. 혹은—

박준호의 손가락이 오른쪽 눈을 누르며 생각했다.

'뭔가 바꿔야 한다.'

그 생각이 들었을 때, 휴대폰이 울렸다. 알려지지 않은 번호. 박준호가 받았다. 음성은 낮고 차분했으나, 그 안에는 뭔가 예리한 것이 흐르고 있었다.

"박준호 선수세요?"

"네."

"안녕하세요. 저는 태국 풋살 국가대표팀의 에이스 서준호라고 합니다."

박준호의 몸이 경직되었다. 침대에서 일어났다. 서준호. 그 이름은 박준호가 회귀 전 마지막 경기에서 만났던 선수였다. 아시안컵 결승전. 박준호가 졌던 경기.

"오늘 경기 영상을 봤습니다. 한국 풋살이 이 정도 수준이었나 싶더군요."

그 말에는 칭찬이 아닌 다른 것이 숨어 있었다. 경고. 도전. 혹은 그 이상의 것. 서준호는 박준호가 누구인지 알고 있었다. 이전 시간선에서 박준호를 이긴 선수. 이번 시간선에서도 박준호를 이기려는 선수.

"인상적이었습니다. 아시안컵 예선전에서 만나기를 바랍니다. 그때 다시 한 번 뵙겠습니다."

전화가 끊겼다.

박준호는 휴대폰을 내려놨다. 손가락이 여전히 떨리고 있었다. 한쪽 눈은 감겨 있었고, 오른쪽 눈만 천장을 바라보고 있었다. 두통이 다시 시작되었다. 이번에는 다른 종류의. 신경계의 예리함이 아닌, 뭔가 더 깊은 곳에서 올라오는 불안의 두통.

박준호는 창문으로 갔다. 밤의 서울이 보였다. 불빛들이 흩어져 있었다. 하나하나가 다른 꿈을 가진 사람들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 중 누가 박준호처럼 혼자만의 능력으로 전쟁을 치르고 있을까. 누가 팀을 신뢰하지 못한 채 아시안컵이라는 무대를 향해 달려가고 있을까.

휴대폰이 다시 울렸다. 이번에는 저장된 번호였다. 김민재였다. 박준호는 받지 않았다. 벨소리가 울리다 멈췄다. 그리고 곧 문자가 들어왔다.

'준호, 오늘 경기 정말 대단했어. 다음 경기 때도 함께하자. 우리가 함께하면 더 좋은 플레이를 할 수 있을 거야.'

박준호는 문자를 읽었다. 화면의 불빛이 그의 얼굴을 비췄다. 그의 표정은 무표정했다. 하지만 손가락은 떨리고 있었다. 화면을 끄려다 멈췄다. 다시 읽었다. '함께하자.' '우리가 함께하면.'

그 말들이 박준호의 뇌에 박혔다. 마치 편안 시야의 두통처럼. 그는 화면을 껐다.

창문 너머로 밤이 더 깊어지고 있었다. 아시안컵 예선전까지 3주. 그 사이에 박준호가 만들어야 할 것은 개인의 완벽함이 아니라, 뭔가 다른 것이었다. 하지만 그것이 무엇인지, 어떻게 만들어야 하는지, 박준호는 아직 알지 못하고 있었다.

다만, 한 가지 확실했다.

이제 더 이상 혼자만의 능력으로는 부족하다는 것. 그리고 그것을 인정하는 순간, 박준호가 지켜온 모든 것이 무너질 수도 있다는 것. 편안 시야라는 초월적 능력도, 회귀라는 기적도, 그 모든 것이 팀이라는 이름의 무게 앞에서는 무의미할 수도 있다는 것.

밤의 호텔 방에서 박준호는 한쪽 눈을 다시 감았다. 편안 시야가 깨어나려 하자, 뇌가 저항했다. 두통이 울렸다. 의사의 목소리가, 감독의 목소리가, 서준호의 목소리가, 그리고 김민재의 문자가 모두 섞여 들었다.

'월 2회 제한…'

'팀 없이 혼자 무게를 짊어질 수 없다…'

'다시 한 번 뵙겠습니다…'

'우리가 함께하면…'

박준호는 눈을 떴다. 오른쪽 눈만 보이는 세상. 그 세상 속에서 그가 지금 보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자신의 그림자. 혼자 선 채로.

하지만 그 그림자의 윤곽이 흔들리고 있었다. 마치 누군가가 뒤에서 박준호를 밀고 있는 것처럼. 혹은 박준호가 앞으로 나아가려고 하는데, 무언가가 발목을 잡고 있는 것처럼.

박준호는 창문에 손을 얹었다. 유리가 차갑게 손가락을 맞이했다. 그 차가움 속에서 박준호는 생각했다.

3주 안에 뭔가를 바꿔야 한다. 하지만 무엇을 바꿀 것인가. 편안 시야의 사용 빈도인가. 아니면 팀을 신뢰하는 방식인가. 혹은 자신이 에이스라는 생각 자체인가.

그 모든 것이 얽혀 있었다. 풀어야 할 매듭들이 너무 많았다. 그리고 시간은 3주뿐이었다.

밤의 서울은 여전히 불빛으로 가득했다. 하지만 박준호에게는 그 불빛들이 모두 같은 색으로 보였다. 절망의 색. 혹은 선택의 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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