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무명에서 국대로
두통이 왔다.
훈련 종료 10분 전, 박준호는 패스 받은 공을 한 번 터치해 중거리 슈팅으로 연결했다. 골대 우상단 구석. 완벽한 궤적이었다. 동시에 뇌 뒤쪽에서 타악기처럼 울리는 고통이 시작되었다.
한쪽 눈을 감고 편안 시야를 발동한 지 이제 3분도 채 안 됐는데.
박준호는 이마를 누르며 수비 포지션으로 돌아갔다. 무명 풋살 클럽 '서울FC'의 훈련장은 선선했지만, 그의 이마는 식은땀으로 젖어 있었다. 시력을 되돌렸다. 두 눈으로 세상을 보는 순간, 두통은 절반으로 줄었다. 하지만 남은 반은 계속 욱신거렸다.
"준호, 괜찮아?"
감독 임준태가 벤치에서 손을 들었다. 박준호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거짓이었다. 지난 2주간 거의 매일 이런 식이었다. 편안 시야를 쓸 때마다 신경이 타들어가는 감각. 뇌가 과부하로 비명을 지르는 느낌.
그럼에도 골은 들어갔다.
훈련 종료 후, 박준호는 로커룸 샤워실로 향했다. 뜨거운 물이 등을 때릴 때마다 두통이 조금씩 풀렸다. 하지만 이건 임시방편이었다. 의사는 '스트레스성 편두통'이라고 했지만, 박준호는 알고 있었다. 이건 스트레스가 아니라 뇌의 극한 집중으로 인한 신경 소모였다. 편안 시야를 발동할 때마다 뇌의 시각 피질과 감각 통합 영역이 동시에 극도로 활성화되는 것. 그 대가였다.
의사의 경고가 떠올랐다. '월 2회 이상 사용하면 뇌 손상 위험이 있습니다.' 하지만 박준호는 이미 지난달에만 편안 시야를 5번 사용했다. 위험 수준을 훨씬 넘어섰다. 그럼에도 그는 멈출 수 없었다. 이 능력 없이는 자신이 무명 선수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준호야, 나 좀 봐."
감독 임준태가 로커룸 입구에 섰다. 그 뒤로 낯선 남자가 보였다. 정장 차림에 노트북을 들고 있었다.
"이분이 대한풋살연맹 박철수 감독님이시야. 오늘 훈련을 보러 오셨어."
박준호의 손이 멈췄다. 입던 셔츠를 채웠다.
박철수는 50대 초반으로 보였다. 얼굴에는 수십 년 풋살을 해온 사람의 깊이가 있었다. 그의 눈은 박준호를 훑어내렸다. 마치 영상 분석 화면처럼 정확했다.
"오늘 경기 봤네."
박철수의 목소리는 낮고 단호했다.
"네, 감독님."
박준호는 자세를 바로 했다. 국가대표팀 감독이라는 타이틀이 자동으로 경직움을 만들었다.
"넌 뭔가 다르다. 무명 클럽 선수치고."
"감사합니다."
"감사는 아직 이르다. 궁금한 게 있어."
박철수가 한 발 다가섰다.
"저 슈팅들, 어떻게 하는 거지? 상대 수비수들이 다 같은 방향으로 막으려고 하는데, 넌 그 사이로 공을 날린다. 마치 미리 알고 있는 것처럼."
박준호의 호흡이 잠깐 멈췄다.
"개인기입니다."
"개인기?" 박철수가 웃었다. "20년 풋살 봐왔는데, 저런 개인기는 처음이다. 상대의 움직임을 읽는 게 아니라... 감지하는 것처럼 보여."
침묵이 내려앉았다. 박철수는 박준호를 계속 바라봤다. 그 시선에는 호기심과 의문이 섞여 있었다. 하지만 의심은 없었다. 단지 '어떻게?'라는 물음만 있었다.
"국가대표팀에 들어올 생각 없나?"
"...뭐라고요?"
"아시안컵 예선까지 4개월 남았다. 우린 에이스 스트라이커가 필요하다. 넌 그 자리에 있는 것처럼 보인다."
박준호의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회귀 후 10년 동안 기다려온 순간이었다. 하지만 동시에 공포감도 밀려왔다.
국대에 들어가면 모든 게 달라질 것이었다.
"생각해보고 연락해."
박철수는 명함을 내밀었다. 박준호는 손을 떨리게 하며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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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대표팀 입단식은 서울 강남의 한 스포츠센터 회의실에서 열렸다.
박준호는 여섯 명의 다른 신입 선수들과 함께 앉아 있었다. 그들은 모두 웃음을 터뜨리고 있었다. 같은 팀이 될 동료들을 만나는 설렘. 그건 박준호에게는 없었다. 대신 있는 건 긴장과 계산이었다.
"자, 신입 선수분들을 소개하겠습니다."
박철수 감독이 앞에 섰다. 그 옆에는 공격수 라인의 핵심 선수들이 앉아 있었다.
"이 분이 현재 우리 팀의 에이스, 최동욱 선수입니다."
최동욱이 손을 들었다. 30대 초반, 체격이 건장했고 눈빛이 날카로웠다. 국가대표팀에서 5년을 버텨온 베테랑의 자신감이 몸 전체에서 나왔다.
"그리고 중원 조직자 이준성, 측면 공략수 김민재입니다."
이준성은 진지한 표정으로 박준호를 바라봤다. 그의 눈에는 호기심이 아닌 경계심이 있었다. 반면 김민재는 밝게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이제 신입 선수들의 자기소개를 받겠습니다."
첫 번째 신입이 일어나 자신의 경력을 설명했다. 전국 대학 선수권 우승. 둘째 신입은 지역 대표팀 선수였다. 셋째, 넷째...
"박준호입니다."
박준호의 차례였다. 그는 일어서며 최소한의 말로 자신을 소개했다.
"무명 클럽 서울FC에서 뛰고 있었습니다."
그게 전부였다. 더 이상의 설명은 없었다. 잠깐의 침묵이 흘렀다.
"무명 클럽에서 국대까지," 박철수가 말했다. "인상적인 경력이다."
입단식 후 첫 훈련이 시작되었다.
박준호는 국가대표팀의 훈련 강도에 놀랐다. 무명 클럽과는 비교가 안 됐다. 패스의 정확도, 수비 압박의 강도, 움직임의 예각성. 모든 것이 한 단계 위였다.
하지만 박준호는 적응했다.
"박준호, 좌측 윙어 포지션 가보자."
감독의 지시에 따라 박준호는 측면으로 이동했다. 상대 수비수는 최동욱이었다.
"오라, 신입아. 맛을 봐."
최동욱이 도발했다. 그의 얼굴에는 여유가 있었다. 국대 에이스라는 자부심. 새로 들어온 무명 신입이 뭘 할 수 있겠냐는 무시.
박준호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한쪽 눈을 감았다.
편안 시야가 발동되는 순간, 세상이 바뀌었다. 최동욱의 무게중심 이동, 발의 각도, 심지어 눈동자의 미세한 움직임까지 모두 보였다. 그의 의도는 명백했다. 박준호가 드리블로 들어올 때 좌측에서 타이트하게 붙어 공을 탈취하려는 것. 너무 뻔한 수였다.
박준호는 오른쪽 발로 공을 받아 한 번 터치했다. 최동욱이 달려들었다. 그 순간, 박준호는 공을 뒤로 빼며 몸을 회전시켰다. 최동욱은 공을 놓친 채 박준호를 지나쳤다.
이제 박준호 앞에는 골키퍼만 남았다.
그는 공을 자신의 오른쪽으로 굴렸다. 골키퍼가 반응했다. 그 순간, 박준호는 왼쪽 발로 슈팅을 때렸다. 공은 골키퍼의 손 위로 호를 그리며 골대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침묵.
훈련장이 멈췄다. 최동욱은 무릎을 꿇고 있었다. 그의 얼굴에는 당혹감이 가득했다. 이준성은 공이 들어가는 순간 눈을 크게 떴다. 그의 입술이 움직였다. 무언가 중얼거리는 듯했다. 김민재는 박준호를 바라봤다. 놀라움과 경탄이 뒤섞인 표정이었다.
"다시 해보자."
박철수가 말했다. 박준호는 포지션으로 돌아갔다. 이번엔 이준성이 상대 수비수였다.
편안 시야. 한쪽 눈을 감고.
이준성의 움직임도 읽혔다. 하지만 이번엔 달랐다. 최동욱처럼 무시하는 게 아니라, 박준호를 진정으로 마크하려는 의도가 보였다. 그래도 박준호는 공간을 찾았다. 정확한 패스 타이밍, 슈팅 각도.
골.
이준성의 눈이 가늘어졌다. 그의 주먹이 쥐어졌다.
다시 한 번.
골.
또 한 번.
골.
훈련 종료 후 로커룸은 소란스러웠다. 모든 선수들이 박준호에 대해 얘기하고 있었다.
"진짜 뭐 하는 건데 저렇게 다르냐?"
"무명 클럽이라고 해서 약할 줄 알았는데..."
"에이스 자리 위험한 거 아냐?"
그 소리들이 최동욱의 귀에 들어갔다. 그는 로커 앞에서 물수건으로 얼굴을 닦고 있었다. 박준호는 이미 샤워실로 들어가 있었다.
김민재가 샤워실 입구에서 박준호를 기다리고 있었다.
"준호 형, 대박이네. 오늘 경기 봤어. 어떻게 저렇게 정확하게..."
"네."
박준호가 타올을 들고 나왔다. 그는 김민재의 말을 끝까지 듣지 않았다.
"형, 나 슈팅 피드 받을 때 타이밍 어떻게 맞춰야 해? 넌 항상 정확하게 들어오던데..."
"그냥 느낌입니다."
"느낌?"
"네. 더 이상 설명할 게 없습니다."
박준호는 옷을 입기 시작했다. 김민재는 그 뒤를 따라다니며 계속 물었다.
"형, 우리 같이 훈련 좀 하자. 너 공격 패턴 좀 배우고 싶은데..."
"괜찮습니다."
"아, 형..."
박준호는 로커룸을 나갔다. 뒤에서 김민재의 목소리가 들렸지만, 그는 돌아보지 않았다. 그의 움직임은 빨랐다. 눈은 앞을 향했다.
이준성은 그 모습을 멀리서 봤다. 자신의 패스 제안을 무시하고, 김민재의 친절을 거부하는 박준호. 이준성의 얼굴이 굳어졌다. 그의 눈에는 실망이 가득했다. 그는 로커를 닫고 한숨을 내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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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철수 감독은 코칭 스태프와 함께 영상 분석실에 앉아 있었다.
"박준호의 슈팅 패턴을 봤나?"
"네, 감독님."
영상 분석 코치가 화면을 돌렸다. 박준호의 세 개 골이 반복 재생되고 있었다.
"이상하지 않나? 모든 슈팅이 상대 수비수의 움직임 다음에 나온다. 마치... 미리 알고 있다는 것처럼."
"그렇습니다. 일반적인 리딩으로는 설명이 안 됩니다."
박철수는 고개를 저었다.
"팀 결속이 무너지면 모든 게 무너진다. 저 친구, 혼자 가는 건 아닐까?"
"감독님?"
"저렇게 탁월한 능력을 가진 선수가 팀 플레이를 거부한다면, 팀은 산산조각 난다. 우리가 조심해야 할 부분이 그거다. 능력이 아니라 신뢰."
영상 분석 코치는 고개를 끄덕였다.
박철수는 다시 화면을 봤다. 박준호의 마지막 슈팅. 공이 골대 안으로 들어가는 순간, 박준호의 표정에는 승리감도 기쁨도 없었다. 오직 무언가를 증명해야 한다는 집착만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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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련이 끝나고 박준호는 호텔 방으로 돌아갔다.
국가대표팀 캠프 기간 동안 모든 선수들은 같은 호텔에 묵고 있었다. 박준호는 침대에 누웠다. 한쪽 눈을 감았다.
편안 시야를 다시 한 번 검증해보려는 의도였다.
눈을 감는 순간, 세상이 달라졌다. 방 안의 모든 소리가 귀에 들어왔다. 복도의 발자국, 옆 방의 텔레비전 소리, 에어컨의 윙윙거림. 한쪽 눈만으로 감지하는 것. 그것이 박준호의 진정한 능력이었다.
하지만 대가가 있었다.
눈을 뜨려 할 때, 뇌 뒤쪽에서 파동이 일었다. 욱신거리는 고통이 아니라, 무언가 깨져나가는 느낌. 두통은 점점 심해졌다. 마치 얇은 유리판이 갈라지는 소리. 호흡이 가빠졌다.
박준호는 눈을 떴다. 침대 천장이 보였다. 가슴이 철렁거렸다.
이 능력을 팀과 나눠야 한다는 생각이 들 때마다, 박준호의 가슴이 철렁거렸다. 회귀는 일회성이었다. 다시 돌아올 수 없는 기회였다. 그리고 이 능력은 그 기회 속에서 개발한 자신만의 무기였다. 팀동료들에게 이를 설명하고, 전술로 공유하고, 약점을 드러내는 것. 그건 자신의 가장 큰 자산을 남에게 주는 것과 같았다.
박준호는 천장을 바라봤다. 어둠 속에서 눈동자가 흔들렸다.
"이 능력은 나만의 것이다."
중얼거렸다. "절대로 누구와도 나누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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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일 후, 국가대표팀의 첫 공식 경기가 예정되어 있었다. 아시안컵 예선 1경기. 상대는 베트남이었다.
박준호는 로커룸에서 유니폼을 입고 있었다. 가슴에 태극기가 새겨져 있었다. 10년 동안 꿈꿔온 순간이었다.
"박준호."
누군가 그를 불렀다. 박준호가 고개를 들었다.
최동욱이었다. 그의 얼굴에는 웃음이 없었다.
"넌 팀의 에이스가 될 수 없어."
"...?"
"넌 팀을 믿지 않는다. 그런 선수는 절대 에이스가 될 수 없어."
최동욱은 박준호의 눈을 직시했다. 그의 목소리에는 분노가 아닌 확신이 있었다.
"이 팀은 내가 만들었다. 5년 동안 이 팀을 이끌어왔다. 넌 그냥 새로 들어온 무명 신입일 뿐이야."
최동욱이 한 발 다가섰다.
"훈련에서 본 거 다 알아. 이준성이 너한테 패스를 줬을 때, 넌 그 패스를 무시하고 혼자 슈팅했어. 김민재가 너한테 손을 내밀었을 때, 넌 그 손을 외면했어. 넌 우리를 믿지 않는 거야. 우리를 필요 없다고 생각하는 거지."
박준호는 입을 다물었다. 최동욱의 말이 정확했기 때문이다. 박준호는 고개를 돌렸다. 최동욱의 눈을 피했다. 그의 손가락이 움직였다. 무언가를 집으려다 멈췄다. 침묵이 길어졌다.
"이 경기를 보면 알 거다. 팀 없이는 아무도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걸."
최동욱이 로커룸을 나갔다. 그의 발자국이 멀어졌다.
박준호는 가슴을 누르고 앉았다. 심장이 빠르게 뛰고 있었다. 두통이 또 밀려오고 있었다.
최동욱의 말이 자꾸만 맴돌았다. 그건 맞았다. 박준호는 팀을 믿지 않고 있었다. 오직 자신의 능력만을 믿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이 박준호의 진정한 무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최동욱의 말 속에는 뭔가 더 있었다. 박준호는 그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건 질책이 아니라 경고였다. 그리고 그 경고 뒤에는 박준호의 선택을 기다리는 무언가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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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장으로 향하는 터널에서 박준호는 김민재와 마주쳤다.
"준호 형! 다음 경기에서 우리 같이 호흡 맞춰보자. 내가 윙어로 들어가면 넌..."
"각자 자기 역할만 하면 된다."
박준호가 말했다. 그는 김민재를 바라보지 않았다. 눈은 앞을 향했다.
"뭐... 뭐라고?"
"팀 플레이는 복잡하다. 그냥 개인의 능력으로 승리하는 게 더 빠르다."
박준호는 계속 걸었다. 김민재의 얼굴이 굳어졌다. 그 뒤를 따라 이준성이 지나갔다. 그의 눈은 박준호를 향했다. 그 눈에는 실망이 가득했다. 이준성은 고개를 저었다. 한숨이 나왔다.
경기장의 관중석에서 박정현이 앉아 있었다. 아들의 국대 첫 경기를 보기 위해 왔다. 그녀의 얼굴에는 기대와 불안이 섞여 있었다.
"우리 준호, 화이팅."
그녀는 중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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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가 시작되었다.
한국 풋살 국가대표팀 vs 베트남. 아시안컵 예선 1경기.
처음 15분은 한국이 주도했다. 이준성의 정확한 패스, 최동욱의 강력한 슈팅. 한국은 3:0으로 앞서갔다.
하지만 박철수 감독은 만족하지 않았다. 그는 박준호를 보고 있었다. 벤치에 앉아 있는 박준호를.
"후반 시작할 때 박준호 투입."
감독이 코칭 스태프에게 말했다.
후반 15분. 박준호가 경기장에 들어갔다.
순간 경기의 리듬이 바뀌었다. 박준호가 공을 잡는 순간, 편안 시야가 발동되었다. 베트남 수비수의 움직임. 공격 타이밍. 슈팅 각도.
모든 것이 보였다.
3분. 박준호가 공을 받는다. 왼쪽 측면에서 침투한다. 베트남 풀백이 몸을 날린다. 박준호는 공을 한 터치로 중원으로 빼낸다. 슈팅. 골키퍼의 손가락 끝을 스쳐 골대 안으로 들어간다. 골.
이준성의 눈이 커졌다. 그는 박준호를 바라봤다. 입술이 움직였다. 무언가 중얼거렸다. 그 표정에는 분노가 아닌 절망이 있었다. 자신이 믿고 있던 팀 플레이가 한 사람에 의해 무너지는 것을 보는 절망.
6분. 박준호가 다시 공을 받는다. 중원에서 볼을 가진 그는 즉시 슈팅을 시도한다. 이준성이 패스를 제시했지만, 박준호는 그것을 외면한다. 슈팅이 골이 되는 순간, 이준성의 손이 내려왔다. 그의 주먹이 무릎을 눌렀다.
김민재가 박준호에게 손을 내밀었다. 격려하려는 몸짓이었다. 박준호는 그 손을 보지 않고 지나갔다. 김민재의 손이 공중에서 내려왔다. 그의 눈이 흐려졌다.
9분. 박준호의 또 다른 슈팅. 이번엔 오른쪽 측면에서의 침투였다. 베트남 수비수 둘이 달려든다. 박준호는 그들 사이로 몸을 날린다. 슈팅. 골.
최동욱은 벤치에 앉아 있었다. 그의 얼굴은 창백했다. 자신의 자리를 빼앗아가는 것을 목격하고 있었다. 그의 주먹이 무릎을 눌렀다. 이를 깨물었다.
12분. 박준호의 네 번째 슈팅. 골.
경기장의 관중들이 비명을 질렀다. 무명 클럽에서 올라온 선수가 펼치는 경기는 마치 마술 같았다. 하지만 그것은 마술이 아니었다. 그것은 혼자만의 능력이었다.
경기 종료. 한국 8:1 베트남.
박준호는 4골을 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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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후, 박철수 감독은 박준호를 불렀다.
"잘했다."
감독의 말은 짧았다.
"감사합니다."
"하지만 한 가지 기억해라. 풋살은 팀 스포츠다. 넌 혼자가 아니다."
박준호는 대답하지 않았다.
"아시안컵 예선까지 3개월이 남았다. 그 동안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단 하나다. 팀을 만드는 것. 넌 그 팀의 일원이 되어야 한다."
감독의 말이 박준호의 귀를 스쳤다. 하지만 박준호의 마음에는 닿지 않았다.
호텔 방으로 돌아온 박준호는 휴대폰을 집어 들었다. 어머니 박정현에게서 온 문자가 있었다.
'준호, 경기 봤어. 정말 잘했다. 엄마가 자랑스러워. 하지만 혼자라고 생각하지 마. 팀이 있잖아. 엄마는 너를 믿어.'
박준호는 문자를 읽었다. 어머니의 말은 감독의 말과 같았다. 팀을 믿으라고. 혼자가 아니라고.
하지만 박준호는 알고 있었다. 회귀는 자신만을 위한 것이었다. 그리고 이 능력도 자신만의 것이었다.
박준호는 휴대폰을 내려놨다. 침대에 누웠다. 한쪽 눈을 감았다.
눈을 감는 순간, 호텔 방의 모든 소리가 들렸다. 복도의 발자국, 옆 방의 텔레비전 소리, 에어컨의 윙윙거림.
눈을 뜨려 할 때, 뇌 뒤쪽에서 파동이 일었다. 욱신거리는 고통이 아니라, 무언가 깨져나가는 느낌. 두통은 점점 심해졌다. 이번엔 더했다. 시야가 조금 흔들렸다. 마치 얇은 유리판이 갈라지는 소리. 호흡이 가빠졌다.
박준호는 눈을 떴다. 천장을 바라봤다.
"이 능력은 나만의 것이다."
중얼거렸다. "절대로 누구와도 나누지 않는다."
침대 옆 시계의 초침이 계속 움직이고 있었다. 3개월 뒤 아시안컵 결승전까지.
그때까지 박준호는 팀을 믿지 않을 것이었다.
오직 자신의 능력만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