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 편안 시야의 탄생

응급실의 천장이 박준호의 시야를 채웠다.

2023년 1월, 아시안컵 예선전 사흘 전. 박준호는 의료진의 손에 실려 있었다. 뇌 스캔 영상이 모니터에 떠올랐고, 의사의 목소리가 울렸다. "미세한 손상 신호가 보입니다. 고강도 활동을 계속하면 돌이킬 수 없는 뇌 손상이 올 수 있습니다."

그 말이 떨어지는 순간, 박준호의 의식은 과거로 미끄러져 내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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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4월, 중학교 풋살 동아리의 첫 경기.

골 에어리어 앞 6미터 지점. 박준호가 슈팅을 날린 순간, 뇌가 쪼개지는 고통이 덮쳤다. 단순한 두통이 아니었다. 전자기기가 과부하를 감당하지 못할 때의 그 소리—삐릭—이 머리 안에서 울려 퍼졌다. 시야가 일렁였다. 좌우가 흔들렸다. 박준호는 무릎을 꿇었다.

공은 골키퍼의 손가락 끝을 스쳐 골네트를 흔들었다. 관중석의 함성이 터져 나왔다. 그러나 박준호의 귀에는 들리지 않았다. 오직 머리 안의 비명만 들렸다.

코칭 선생님이 달려왔다. "어? 괜찮아? 어디가 아파?"

"머리예요."

박준호는 벤치로 옮겨졌다. 냉찜질을 받고 물을 마셨다. 30분 뒤 두통은 서서히 가라앉았지만, 그의 몸과 마음은 아직도 떨리고 있었다.

이것이 무엇인지 박준호는 알 수 없었다. 다만 한 가지는 확실했다. 슈팅을 날리기 직전, 자신의 몸이 다르게 움직였다는 것. 오른쪽 눈만으로 코트의 모든 것을 본 것 같았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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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흐르는 방식은 두 가지다. 몸으로 느끼는 시간과 기억으로 살아내는 시간. 박준호는 둘 다를 경험했다.

여섯 살에서 열두 살로 넘어가는 6년은 정상적으로 흘렀다. 학교에 다니고, 친구들과 뛰어놀고, 한쪽 눈의 장애에 천천히 적응해가는 시간. 어머니 박정현은 여전히 "건강하면 된다"고 말했다. 검진 때마다 박준호의 오른쪽 눈 시력을 확인하고, 일상생활에 불편함이 없는지 물었다. 박준호는 대답했다. "괜찮습니다."

그것은 거짓이 아니었다. 신체적으로는 괜찮았다. 하지만 마음은 다른 곳을 향하고 있었다.

풋살 동아리의 포스터를 본 순간부터, 박준호의 세계는 바뀌었다. 협소한 실내 코트에서 벌어지는 스포츠. 40미터 곱하기 20미터. 축구장의 1/8 규모인 이 공간에서 박준호는 자신을 발견했다.

첫 수업에서 박준호는 끊임없이 넘어졌다. 좌우 거리가 20미터에 불과해, 오른쪽 눈의 시야가 코트의 전체를 포함할 수 없었다. 고개를 돌려야 했고, 그 과정에서 중심을 잃었다.

코칭 선생님은 박준호를 관찰했다. "왼쪽 눈이 없으니까 적응이 필요해. 괜찮아, 시간이 지나면 익숙해질 거야."

박준호는 입을 다물고 계속 넘어졌다.

2주일이 지났을 때, 변화가 시작됐다.

동료들과의 패스 연습 중이었다. 박준호는 오른쪽 눈으로 정면을 바라보고 있었는데, 갑자기 뭔가 다른 감각이 깨어났다. 코트의 좌측 12미터 거리에서 동료의 발이 공을 찼다. 타닥타닥—마룬색 바닥을 굴러가는 공의 소리. 공기의 미세한 진동이 피부에 닿았다. 시각만이 아닌 모든 감각이 동시에 작동했다.

박준호는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오른쪽 눈만으로 공이 날아오는 궤적을 읽었다. 발을 내밀어 받아냈다. 그 순간 그의 몸은 정확히 어디에 있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어? 잘하네?"

동료의 외침이 들렸지만, 박준호의 집중은 깨지지 않았다. 오른쪽 눈이 지각하는 세계가 변하고 있었다. 풋살 코트의 좁은 공간 속에서, 마치 한쪽 눈이 광각 렌즈로 변신한 것 같았다. 상대 선수의 무게중심이 어느 쪽으로 기울어지는지, 공의 회전이 어느 방향으로 휘는지, 모든 것이 동시에 인식됐다.

어린 시절 공원에서 한쪽 눈으로만 세상을 인식하던 훈련. 그 6년간의 누적된 신체 기억이 풋살이라는 공간에서 비로소 꽃을 피웠다.

그리고 그 대가는 극심한 두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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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 검사 결과는 단순했다. "특별한 이상은 없습니다. 스트레스성 편두통 같습니다."

의사는 덧붙였다. "너무 자주 두통이 생기면 위험할 수 있으니, 월 2회 이상 고강도 활동은 피하세요."

박준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표면적으로는. 내심으로는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자신은 특별하다. 다른 사람들과 다르다. 이 두통도, 이 능력도, 모두 자신만의 것이다.

의사의 조언은 다른 사람들을 위한 것이었다. 자신에게는 해당하지 않는다고 박준호는 생각했다.

매주 토요일 동아리 경기, 매주 일요일 개인 훈련. 박준호는 의도적으로 편안 시야를 발동했다. 의사의 경고를 무시한 채로. 월 2회 제약을 깨뜨렸다. 주 2회, 때로는 주 3회까지 발동했다. 뇌에서 울리는 신호를 무시하고.

고등학교 2학년, 박준호는 풋살부의 에이스가 되어 있었다.

전국 동아리 리그에서 박준호는 20경기에 18골을 기록했다. 한쪽 눈의 선수라는 사실은 더 이상 핸디캡이 아니었다. 그것은 자신의 상징이 되었다. 신문 기사에는 "장애를 극복한 천재 풋살 선수"라는 문구가 붙기 시작했다.

박정현은 아들의 경기를 관람하러 왔다. 박준호가 슈팅을 날릴 때마다 어머니의 얼굴에는 미소가 떠올랐다. 경기가 끝난 후 어머니는 박준호를 안았다.

"멋있었어. 너는 건강하게 잘 자라고 있어."

박준호는 어머니의 품에서 벗어났다. "감사합니다."

그리고 덧붙였다. 작은 목소리로. "엄마, 저는 건강한 것뿐 아니라 최고가 되고 싶어요."

박정현의 얼굴이 경직됐다. "최고?"

"네. 풋살에서 최고. 아니, 세계 최고."

"건강하고 행복하면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을까?"

"아뇨."

박준호의 대답은 단호했다. 어머니는 그 대답 속에서 무언가 낯선 것을 감지했다. 자신이 낳은 아들이 맞는 건가? 이 목소리, 이 눈빛은 어디서 비롯된 걸까? 평소 온순하던 아들의 눈이 날카롭게 변해 있었다. 마치 다른 사람이 된 것처럼.

"준호가 뭔가 다르구나."

코칭 선생님도 그렇게 말했다. 훈련 도중 박준호를 한쪽으로 불러내 조용히 속삭였다. "넌 뭔가 특별한 감각이 있어. 풋살 코트에서는 다른 선수들과 다르게 움직여. 그게 뭐지?"

박준호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웃었다. 그리고 마음속으로는 결심했다. 이 비결은 자신만의 것이다. 누군가에게 알려주면 안 된다. 누군가와 공유하면 자신의 우월성이 희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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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입시에서 박준호는 풋살 특기생으로 명문 대학의 풋살부에 입단했다. 국내 최고 수준의 동호회 팀이었다. 하지만 박준호가 원한 것은 그것이 아니었다.

1학년 때부터 박준호는 대학 풋살부를 떠나 무명의 프로 풋살 클럽에 입단했다. 돈도 적었고, 팀의 규모도 작았다. 하지만 박준호는 상관하지 않았다. 자신의 능력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는 곳이면 충분했다.

그 클럽에서 박준호는 순식간에 최고의 선수가 되었다.

시즌 32경기에 28골. 풋살 국내 프로 리그 신기록이었다. 박준호는 매 경기 후반 15분이 투입될 때마다 편안 시야를 발동했다. 그 15분 동안 자신은 코트의 모든 것을 지배했다. 상대 선수들의 모든 움직임이 예측됐다. 골키퍼의 손 위치, 수비수의 중심 이동, 공의 미세한 회전. 모든 것이 손에 잡힐 듯 명확했다.

대가는 극심한 두통이었다. 매 경기 후 박준호는 병원을 찾았다. 의사는 매번 같은 말을 반복했다. "스트레스성 편두통입니다."

박준호는 그 말을 반복해서 들었고, 마침내 자신도 그렇게 믿기로 했다. 자신은 단지 스트레스를 받고 있을 뿐이다. 완벽함에 대한 강박관념, 혼자서 모든 것을 짊어져야 한다는 강박관념.

하지만 그것이 약이 아니라 독이라는 것을 박준호는 아직 모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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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10월, 풋살 국가대표팀의 스카우트들이 박준호를 주시하기 시작했다. 아시안컵 예선전까지 6개월. 팀에 특별한 재능이 필요했다. 박준호는 그 재능이었다.

국가대표팀 감독 박철수는 박준호의 경기 영상을 몇십 번 봤다. 한쪽 눈의 선수가 어떻게 이런 플레이를 할 수 있는가? 영상에서 박준호는 마치 6명의 눈을 가진 것처럼 움직였다. 상대의 움직임을 읽고, 공의 궤적을 예측하고, 최선의 슈팅 각도를 즉시 계산했다.

박철수는 박준호를 호출했다.

"국가대표팀에 합류하겠습니까?"

박준호는 대답했다. "네. 아시안컵 우승을 위해서라면."

"아시안컵 우승은 팀의 숙원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개인의 능력만으로는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팀의 신뢰, 팀의 결속이 필수입니다."

박준호는 그 말을 들었지만, 마음에 새기지 않았다. 자신은 이미 모든 것을 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편안 시야. 한쪽 눈으로 풋살 코트의 모든 움직임을 감지하는 초감각. 그것만으로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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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대표팀 훈련장에 박준호가 처음 나타났을 때, 분위기는 묘했다.

중원 조직자 이준성, 측면 공략수 최동욱, 골키퍼 임준영, 그리고 측면 스피드 플레이어 김민재. 모두 최고의 선수들이었다. 각자의 위치에서 수년간 팀을 이끌어온 베테랑들이었다.

그런 팀에 갑자기 나타난 박준호. 한쪽 눈의 무명 클럽 출신 선수.

최동욱의 눈빛이 가장 먼저 변했다. 자신의 에이스 자리가 흔들릴 수 있다는 불안감이 그의 얼굴을 굳혔다. 이준성은 박준호에게 다가와 악수를 청했다. "팀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함께 잘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박준호는 악수를 받았지만, 깊은 대답은 주지 않았다.

첫 훈련에서 박준호는 경기를 벌였다.

이준성의 패스가 박준호 쪽으로 날아왔다. 박준호는 그 패스를 받았다. 하지만 즉시 자신의 플레이를 시작했다. 더 이상의 패스를 원하지 않았다. 상대 수비수를 뚫고, 골 에어리어로 침투했다. 슈팅. 골.

훈련장이 조용해졌다.

박철수 감독이 손뼉을 쳤다. "좋아. 그런데 풋살은 개인 스포츠가 아닙니다. 패스와 무브먼트, 팀의 호흡이 중요합니다."

박준호는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감독님."

하지만 마음으로는 생각했다. 상대를 믿을 필요가 없다. 자신의 능력만 완벽하면 된다. 편안 시야만 있으면 모든 것을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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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련이 반복되면서 박준호의 독주는 심화됐다.

이준성이 박준호에게 다가왔다. "패스 각도를 좀 더 열어줄 수 있을까? 그러면 공격이 더 유기적으로 흘러갈 것 같아."

박준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하지만 다음 훈련에서도, 그 다음 훈련에서도 박준호는 같은 플레이를 반복했다. 이준성의 패스를 받은 후 슈팅까지의 시간을 더 단축했다. 이준성의 제안을 의도적으로 무시한 것이다.

한 훈련 경기에서 그것이 명확히 드러났다. 이준성이 박준호에게 패스를 했을 때, 박준호는 즉시 슈팅으로 전환했다. 그 순간 이준성은 측면 10미터 지점에서 열린 공간을 만들고 있었다. 골키퍼 임준영이 박준호 쪽으로 이동했고, 오른쪽 측면이 텅 비었다. 이준성의 패스 각도가 정확했다면 더 쉬운 슈팅 기회였다. 하지만 박준호는 그것을 보지 않았다. 아니, 보지 않기로 했다.

슈팅은 성공했다. 공은 골키퍼의 손가락을 스쳐 골네트를 흔들었다. 하지만 이준성의 얼굴에는 실망이 스쳤다. 그는 박준호를 바라봤지만, 박준호는 시선을 돌렸다.

경기는 박준호의 독주로 끝났다. 최종 스코어 8:2. 박준호의 팀이 이겼다. 하지만 박준호의 팀은 이기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후반 10분부터 점수가 역전되기 시작했다. 박준호가 모든 공격을 자신이 처리하려다 보니, 팀의 리듬이 깨졌다. 이준성과 김민재의 측면 공략이 작동하지 않았다. 최동욱은 박준호의 독주에 답답함을 느껴 수비에만 집중했다. 결국 상대팀은 박준호 하나를 집중 견제하는 전술로 돌아섰고, 팀의 다른 선수들은 무력해졌다.

박준호가 슈팅을 성공시킬 때마다 팀은 동시에 무너지고 있었다.

경기가 끝난 후 박철수 감독은 박준호를 불러냈다.

"자네가 팀의 중요한 자산이라는 것은 압니다. 하지만 풋살은 축구의 축소판이 아닙니다. 협소한 공간에서 다섯 명이 한 몸처럼 움직여야 이기는 스포츠입니다. 오늘 경기를 봤나요? 점수는 8:2였지만, 후반 10분은 2:6이었습니다. 팀이 무너지고 있습니다."

박준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감독님."

"아시안컵은 3개월 뒤입니다. 팀의 결속이 무너지면 모든 것이 무너집니다. 명심하세요."

박준호는 그 말을 들었다. 하지만 마음에 새기지 않았다.

자신은 이미 모든 것을 준비했다. 편안 시야. 한쪽 눈으로 풋살 코트의 모든 움직임을 감지하는 초감각. 그것만으로 충분했다. 팀동료들을 믿을 필요가 없다. 상대를 믿을 필요가 없다. 오직 자신의 능력만 믿으면 된다.

그렇게 박준호는 혼자 모든 것을 짊어지기로 결심했다.

김민재는 박준호에게 자주 말을 걸었다. "형, 저랑 측면에서 조합 플레이 좀 할까요? 제 스피드와 형의 정확도가 만나면 정말 강할 것 같은데."

박준호는 대답했다. "나중에."

"나중에가 언제죠?"

박준호는 웃지 않았다. "준비가 될 때."

그 말 이후 김민재는 박준호에게 말을 걸지 않았다.

최동욱은 박준호를 견제했다. 훈련 중 몸싸움을 거는 방식으로. 박준호가 슈팅을 하려 할 때마다 어깨를 부딪혔다. 하지만 박준호는 그것을 피했다. 최동욱의 움직임은 이미 예측되고 있었다. 편안 시야가 발동되지 않았어도, 박준호의 신체는 이미 그의 모든 움직임을 기억하고 있었다.

최동욱은 더 강하게 몸을 날렸다. 박준호의 슈팅 폼을 완전히 무너뜨리려는 의도였다. 그러나 박준호는 그 공격을 감지하고 몸을 날렸다. 최동욱은 공을 놓친 채 넘어졌다.

훈련장이 고요해졌다. 최동욱은 일어나며 박준호를 노려봤다. 그 눈빛에는 분노와 함께 무언가 다른 감정이 섞여 있었다. 절망. 이 선수를 어떻게 할 수 없다는 절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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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안컵 예선전까지 3개월. 박준호는 매일 편안 시야를 연습했다. 벽에 공을 차 올리고, 한쪽 눈으로 모든 궤적을 따라가며, 신체의 반응 속도를 높였다. 의료 조언을 무시하고 월 2회 제약을 넘어 주 2회 이상 편안 시야를 의도적으로 발동했다. 때로는 주 3회, 주 4회까지.

그리고 매 훈련 후 두통이 찾아왔다. 점점 심해지는 두통. 단순한 쪼개짐이 아니라, 뇌가 찢어지는 듯한 고통. 시야가 일렁거리고, 균형감각이 흔들렸다. 하지만 박준호는 그것을 무시했다.

스트레스일 뿐이다. 완벽함에 대한 강박관념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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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안컵 예선전 사흘 전, 박준호는 마지막 훈련에 참가했다.

편안 시야를 한 번 더 발동했다. 월 2회 제약을 훨씬 넘은 횟수였다. 이달 벌써 여덟 번째였다.

그 순간 박준호의 머리는 폭발할 듯 울렸다. 시야가 왜곡됐다. 좌측이 검은색으로 물들었다. 오른쪽 눈만으로도 충분하다고 믿었던 그 눈이 이제 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위험하다고.

박준호는 무릎을 꿇었다. 이번엔 일어나지 못했다. 의료진이 달려왔다. 응급실로 실려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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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급실의 천장이 박준호의 시야를 채웠다.

의사는 말했다. "뇌 영상에서 미세한 손상 신호가 보입니다. 계속 고강도 활동을 하면 돌이킬 수 없는 손상이 올 수 있습니다. 최소 2주일은 절대 고강도 활동을 피하셔야 합니다."

박준호는 그 말을 들었다. 의사의 목소리는 진지했다. 하지만 박준호의 마음은 이미 다른 곳에 있었다.

아시안컵 예선전. 그곳에서 자신은 최고가 되어야 한다.

의사실을 나온 박준호는 훈련장으로 돌아갔다. 다른 선수들은 이미 훈련을 마쳤다. 코트는 비어 있었다. 박준호는 공 하나를 집어 들었다.

벽에 공을 차 올렸다. 한쪽 눈으로 궤적을 따라가며. 편안 시야를 발동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그 경계에서 박준호는 멈춰 있었다.

의사의 경고가 귓가에 맴돌았다. 돌이킬 수 없는 손상.

하지만 아시안컵은 3개월 뒤가 아니라 사흘 뒤였다.

박준호의 손가락이 공에 닿았다. 편안 시야를 발동하려는 움직임이었다. 그 순간, 머리 뒤쪽에서 둔한 통증이 울렸다. 시야의 가장자리가 흐릿해졌다. 중심을 잡기 위해 한쪽 발을 내디뎠지만, 신체의 균형이 기울어졌다. 뇌에서 보내는 신호가 명확했다.

멈춰라.

박준호는 공을 놓았다. 손이 떨렸다. 처음으로, 자신의 몸이 자신을 거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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