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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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섯 살 박준호는 침대에 누워 천장을 바라봤다. 2022년 11월의 기억이 자꾸만 떠올랐다. 아시안컵 예선 직전, 훈련장에서 쓰러지기 전의 마지막 순간들. 팀동료들의 얼굴, 박철수 감독의 목소리, 그리고 자신이 혼자라는 절망감.

1999년 5월 26일.

정확히 10일 뒤에 사고가 날 것이다. 왼쪽 눈을 잃을 것이다. 어린 박준호는 그것을 피할 수 있었다. 공원에 가지 않으면 되고, 철봉에 올라가지 않으면 된다. 하지만 서른한 살의 기억을 가진 이 아이는 다르게 생각했다.

'피할 수 없다면, 견뎌내자.'

그 생각은 처음 떠올렸을 때도, 지금도 미쳐 보였다. 하지만 미래의 박준호는 알고 있었다. 자신의 왼쪽 눈이 얼마나 큰 결핍인지, 그리고 그 결핍이 어떻게 변신할 수 있는지를.

박준호는 침대에서 일어났다. 방의 불을 껐다.

어둠 속에서 눈을 떴다. 왼쪽 눈을 감고 오른쪽 눈만으로 세상을 바라봤다. 시야가 반으로 줄었다. 깊이감이 사라졌다. 처음 며칠은 어지러웠고, 계단을 내려갈 때마다 벽을 짚어야 했다. 하지만 손가락으로 셈을 하듯 반복하면 뇌가 적응했다. 한쪽 눈으로 본 세상도 입체로 느껴지기 시작했다.

"준호, 밥 먹어."

어머니의 목소리가 부엌에서 들렸다. 박준호는 일어나 거실로 나갔다. 한쪽 눈으로만 본 복도는 이상하게도 더 선명했다. 가구의 모서리가 날카로웠고, 벽의 질감이 손에 잡힐 듯 생생했다.

밥상에 앉은 박준호는 숟가락을 집었다. 한쪽 눈으로 깊이감이 없어서 숟가락이 정확히 어디에 있는지 헷갈렸다. 하지만 흰쌀의 냄새가 콧속으로 들어왔다. 밥이 따뜻하다는 것을 냄새로 알았다. 손가락으로 숟가락의 위치를 감지했다. 촉각이 시각을 대신했다.

"준호, 뭐 이러니?"

박정현이 박준호를 바라봤다. 아들이 밥을 먹기 전에 눈을 감고 숟가락을 집는 것이 이상했다.

"눈이 피곤해서요."

거짓말이 쉽게 나왔다. 박준호는 밥을 입에 넣었다. 어머니는 한 번 더 바라봤다가 고개를 저었다. 뭔가 이상한 아이라는 생각이 얼굴에 떠올랐다.

박준호는 어머니에게 진실을 말할 수 없었다. 10일 뒤에 왼쪽 눈을 잃을 것이라는 미래의 기억, 자신이 그 운명을 피할 수 없다는 것, 그리고 그 과정에서 뭔가 특별한 능력을 만들려 한다는 것. 모두 말할 수 없었다. 이것은 자신만의 비밀이어야 했다.

밥을 다 먹은 박준호는 공원으로 나갔다.

오후 2시, 햇빛이 강했다. 한쪽 눈을 감고 오른쪽 눈만으로 공원을 바라봤다. 놀이터의 아이들이 움직였다. 깊이감 없는 세상에서 아이들의 움직임은 마치 그림자처럼 보였다. 하지만 그 순간, 박준호는 무언가를 깨달았다.

시각이 줄어들면 다른 감각이 극도로 깨어난다.

공원의 소리가 갑자기 선명해졌다. 미끄럼틀을 타고 내려오는 아이의 비명, 그네를 밀어주는 어머니의 목소리, 그리고 흙이 밟혀 내는 소리까지. 모든 것이 입체적으로 들렸다. 풀의 냄새도 코를 자극했다. 흙의 습도도 피부로 느껴졌다.

한쪽 눈으로 집중하면, 나머지 감각이 극도로 예민해진다.

박준호는 철봉으로 걸어갔다. 한쪽 눈을 감은 채 철봉 아래에 섰다. 오른쪽 눈만으로 철봉의 높이를 판단해야 했다. 손을 뻗었다. 깊이감이 없어서 철봉이 더 멀리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손가락이 철봉을 스쳤다. 촉각이 거리를 알려줬다.

철봉을 잡았다. 몸을 들어올렸다. 한쪽 눈으로만 본 세상에서 균형을 잡기는 어려웠다. 하지만 귀가 도움을 줬다. 바람이 귀 양쪽에서 다르게 들렸다. 신체가 기울어지는 방향을 음향으로 감지했다.

다섯 번, 열 번, 스무 번.

매달리고 내려와를 반복했다. 한쪽 눈으로만 본 세상에서 신체를 제어하는 법을 배웠다. 뇌가 새로운 좌표계를 만들어냈다. 시각 정보가 줄어든 만큼, 청각과 촉각이 그 자리를 채웠다.

"준호!"

어머니가 공원의 벤치에서 손을 흔들었다. 박준호는 철봉에서 내려왔다. 한쪽 눈으로 내려오는 과정도 거뜬했다. 더 이상 어지럽지 않았다.

"엄마, 저 곧 올게요."

박준호는 모래밭으로 걸어갔다. 그곳에서 혼자만의 훈련을 계속하기로 했다. 왼쪽 눈을 감고 오른쪽 눈만으로 모래 위에서 뛰어다녔다. 깊이감 없는 세상에서 발을 헛디딜 때마다 신체 감각이 더욱 날카로워졌다. 모래의 질감을 발바닥으로 감지했다. 신체의 무게중심이 미세하게 조정되었다.

일주일 뒤, 박준호의 훈련은 더욱 정교해졌다.

거실의 불을 끈 채 눈을 감고 방 안을 이동했다. 소리로만 공간을 인식했다. 발이 바닥에 닿는 감각으로 거리를 측정했다. 가구에 부딪힐 뻔했지만, 귀가 공기의 미세한 변화를 감지해 충돌을 피했다. 청각이 시각을 대신했다.

박정현은 아들의 이상한 행동에 계속 의아해했다.

"준호, 왜 자꾸 눈을 감아?"

"눈이 피곤해요."

"안경 맞춰봐야 하나?"

"아니에요. 그냥 훈련이에요."

박준호는 더 이상 거짓말을 하지 않기로 했다. 대신 진실을 절반만 말했다. 어머니는 아들의 대답에 한숨을 쉬었다. 뭔가 이상하지만, 아들의 의지가 있는 것 같아 간섭하지 않기로 했다. 어머니의 모습이 박준호의 가슴을 아프게 했지만, 그는 계속 앞으로만 나아갔다.

"이 능력은 누구에게도 말하면 안 된다."

박준호는 자신에게 중얼거렸다. 이것은 자신만의 무기가 되어야 했다. 누구와도 나누면 안 되는 비결이어야 했다. 그 생각이 얼마나 위험한지는 아직 몰랐다.

열흘째, 박준호의 훈련은 절정에 달했다.

거실에서 음악을 틀었다. 클래식 피아노 곡이었다. 한쪽 눈을 감고 음악을 들었다. 오른쪽 눈만으로 어둠을 바라봤다.

그 순간, 신기한 일이 일어났다.

음악의 리듬이 공간상의 움직임으로 느껴졌다. 피아노의 고음이 위쪽에서 들렸고, 저음이 아래쪽에서 들렸다. 음악이 공간을 그리고 있었다. 박준호의 신체가 반응했다. 팔이 움직였다. 다리가 춤을 췄다. 음악이 공간이 되고, 공간이 감각이 되고, 감각이 신체가 되었다.

한쪽 눈으로 집중할 때, 모든 감각이 동기화된다.

박준호는 깨달았다. 이것이 자신이 만들어야 할 능력이라는 것을.

하지만 그 순간, 머리가 지끈거렸다.

간단한 두통이었다. 마치 뇌가 과하게 일한 후의 피로감 같은 것. 박준호는 그것을 '적응 과정'이라고 해석했다. 신체가 새로운 감각 체계에 적응하면서 나타나는 일시적 현상이라고. 하지만 그 두통은 점점 빈번해졌다. 훈련할 때마다 나타났다. 박준호는 진통제를 먹고 계속 훈련했다.

그리고 마지막 날이 왔다.

6월 5일 오후 3시.

박준호는 공원으로 나갔다. 어머니는 벤치에 앉아 책을 읽고 있었다. 박준호는 모래밭으로 걸어갔다. 그곳에서 마지막 훈련을 할 생각이었다.

박준호는 깊게 숨을 쉬었다. 한쪽 눈을 감고 오른쪽 눈만으로 공원을 바라봤다. 시야가 반으로 줄었지만, 청각과 촉각은 극도로 예민했다. 공원의 모든 소리가 들렸다. 자동차의 엔진음, 새들의 울음, 바람이 나뭇잎을 흔드는 소리까지.

그리고 차가 공원 입구로 들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박준호의 몸이 경직되었다. 한쪽 눈으로만 본 세상에서 자동차가 다가오는 방향을 음향으로 감지했다. 깊이감이 없었지만, 청각이 거리를 알려줬다. 자동차가 점점 가까워졌다.

그 순간, 박준호는 움직이려 했다. 하지만 발이 떨렸다.

'피할 수 없다. 이미 정해진 일이다.'

박준호는 그 자리에 멈춰 있었다. 자동차가 더 가까워졌다. 엔진음이 귀를 울렸다. 그리고—

"준호!"

어머니의 비명이 들렸다. 어머니가 벤치에서 뛰어나와 박준호를 향해 달려왔다. 박정현은 아들의 위치를 파악했다. 어머니는 박준호를 집어던지듯 밀어냈다. 박준호의 몸이 모래밭으로 날아갔다.

자동차는 박준호가 섰던 자리를 스쳐 지나갔다.

박준호는 모래 위에서 굴렀다. 어머니가 그의 위에 덮쳤다. 둘 다 숨이 가팬 상태였다.

"준호! 준호! 괜찮아?"

박정현은 아들의 몸을 더듬었다. 큰 상처는 없었다. 하지만 박준호의 왼쪽 눈에서 피가 흘렀다. 어머니의 팔이 그 부분을 스친 것이었다. 박준호는 왼쪽 눈을 감고 있었다. 통증이 극에 달했다.

"엄마, 괜찮아요."

박준호의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두려움 때문이 아니었다. 자신의 계획이 무너졌기 때문이었다.

"병원 가자. 지금 당장!"

어머니는 박준호를 안아 올렸다. 박준호는 어머니의 품에서 왼쪽 눈을 떴다. 시야가 흐릿했다. 피가 흘렀다. 하지만 여전히 보였다. 아직 왼쪽 눈은 살아 있었다.

'아직 아니다. 아직 때가 아니다.'

박준호의 생각은 복잡했다. 이미 정해진 미래가 이렇게 쉽게 바뀔 수 있다는 것이 충격이었다. 회귀는 일회성이라고 생각했다. 다시 돌아올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렇다면 이 현재는 무엇인가?

---

병원의 하얀 천장이 박준호를 맞이했다.

의사의 진찰 결과는 명확했다. 왼쪽 눈의 망막이 약간 손상되었지만, 회복 가능하다고. 박준호는 그 말을 들었을 때 무엇을 느껴야 할지 몰랐다. 안도감인가? 아니면 실망감인가?

어머니는 침대 옆에서 아들의 손을 잡고 있었다.

"준호, 정말 다행이야. 정말 다행이야."

박정현의 목소리에는 눈물이 묻어났다. 박준호는 어머니를 바라봤다. 어머니의 얼굴에는 공포와 안도가 섞여 있었다.

"엄마, 미안해요."

"뭐가 미안해? 넌 뭘 한 것도 아니잖아."

하지만 박준호는 알고 있었다. 자신이 한 것이 무엇인지. 자신이 그 자리에 서 있었던 이유가 무엇인지. 그리고 어머니가 자신을 밀어낸 이유가 무엇인지.

어머니는 자신의 아들을 구했다.

그것은 박준호가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회귀의 기억 속에서 박준호는 혼자였다. 자신의 운명을 자신이 맞이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어머니가 있었다. 어머니가 자신을 지켰다.

'내가 틀렸다.'

박준호는 처음으로 그 생각을 했다. 혼자가 되려는 자신의 생각이 틀렸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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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원한 지 일주일 후, 박준호는 다시 훈련을 시작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다르게.

병원에서 받은 안경을 쓰고, 왼쪽 눈도 함께 사용하는 훈련. 양쪽 눈의 균형을 맞추는 재활 운동. 의사는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했지만, 박준호는 이미 알고 있었다. 자신이 얼마나 빨리 적응할 수 있는지.

어머니는 아들의 변화를 관찰했다.

처음에는 아들이 장애를 받아들이지 못할 것 같았다. 하지만 박준호는 달랐다. 재활 운동을 하는 도중에도 집중력이 흐트러지지 않았다. 오히려 더욱 치열하게 임했다. 마치 무언가를 깨달은 것처럼.

"준호, 너무 무리하지 마라."

박정현은 아들 옆에 앉았다. 박준호는 어머니를 바라봤다.

"엄마, 난 정상이에요."

"그런데 왜 자꾸 한쪽 눈을 감고 훈련을 해? 의사는 양쪽 눈을 모두 사용하라고 했는데."

박준호는 입을 열었다. 이전처럼 침묵하거나 거짓말을 하지 않기로 했다.

"엄마, 나 뭔가 이상해요."

박정현은 아들의 눈을 봤다. 여섯 살 아이의 눈이 아니었다. 마치 어른의 눈처럼 깊고, 무언가 다른 세상을 보고 있는 것 같았다.

"뭐가 이상한데?"

"나... 미래를 보는 것 같아요."

박준호의 말에 어머니는 침묵했다. 그것이 진실인지 아이의 상상인지 판단할 수 없었다.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했다. 자신의 아들이 뭔가 특별하다는 것.

"그래도 괜찮아. 엄마가 있으니까."

박정현은 아들을 안았다. 박준호는 어머니의 품에서 눈을 떴다. 한쪽 눈으로 본 세상은 여전히 낯설었지만, 이제는 혼자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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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이 지나고 가을이 왔다.

박준호는 초등학교에 입학했다. 운동장에서도, 교실에서도, 한쪽 눈으로만 세상을 인식하는 훈련을 계속했다. 아이들은 박준호의 왼쪽 눈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지만, 그것에 대해 물어보지 않았다. 박준호가 그 주제를 철저히 피했으니까.

체육 시간에 축구를 했을 때였다.

박준호는 한쪽 눈으로 공을 찼다. 깊이감이 없었지만, 청각과 촉각이 공의 위치를 알려줬다. 슛이 들어갔다. 아이들이 놀라며 박수를 쳤다. 하지만 박준호는 그 놀라움에 집중하지 않았다.

오직 한 가지만 생각했다.

'축구 코트는 너무 넓다. 이 능력이 극대화되려면... 더 좁은 공간이 필요해.'

그 생각은 계속됐다. 중학교, 고등학교를 거쳐 대학교에 이르기까지. 한쪽 눈으로 집중할 때 다른 감각이 극도로 예민해진다는 그 원리가 어디서 가장 강력해질지. 박준호는 무언가를 찾고 있었다.

그리고 고등학교 2학년 때, 그것을 발견했다.

풋살 코트. 40미터 × 20미터의 협소한 직사각형 공간.

박준호는 처음 그 코트를 봤을 때 알았다. 이곳이다. 이곳에서만 자신의 능력이 완벽하게 극대화될 것이라는 것을.

그날부터 박준호의 진정한 훈련이 시작됐다.

풋살 클럽에 들어가 매일 훈련했다. 코트의 모든 각도를 한쪽 눈으로 인식하는 훈련. 상대 선수의 움직임을 음향과 촉각으로 감지하는 훈련. 공의 회전과 궤적을 한눈에 포착하는 훈련. 그 과정에서 간헐적인 두통이 나타났지만, 박준호는 멈추지 않았다.

진통제를 먹고 계속 훈련했다.

그렇게 10년이 흘렀다.

박준호는 대학 풋살팀의 에이스가 되었고, 무명 클럽의 주전으로 발탁되었으며, 마침내 국가대표팀의 부름을 받았다. 모든 경기에서 그의 능력은 경이로웠다. 상대 팀은 박준호를 마크할 수 없었다. 마치 그가 미래를 보고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아무도 그 이유를 모르고 있었다.

박준호 자신을 제외한 누구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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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대표팀의 첫 번째 훈련에서 박준호는 혼자였다.

팀의 다른 선수들이 패스를 주고받으며 호흡을 맞출 때, 박준호는 자신의 능력을 숨겼다. 편안 시야를 완전히 발동하지 않았다. 마치 평범한 선수인 양 움직였다.

감독 박철수는 첫 훈련에서 박준호를 주목했다. 그의 능력은 명백했다. 하지만 뭔가 이상했다. 마치 팀과 따로 움직이는 것 같았다.

"박준호, 패스를 더 자주 받아야 해. 팀 플레이가 중요해."

박철수의 지시였다. 박준호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마음은 다르게 움직였다.

'감독은 모르지. 내가 혼자여야만 최고의 성능을 낼 수 있다는 것을.'

그 생각은 여전히 박준호의 마음을 지배하고 있었다. 어머니가 자신을 구했던 그 순간을 기억하면서도, 박준호는 여전히 혼자가 되려고 했다.

그날 밤, 박준호는 호텔의 자신의 방에서 한쪽 눈을 감고 명상했다. 편안 시야를 발동할 때 나타나는 신경 소모와 두통을 견디기 위해. 진통제를 삼키고 또 삼켰다.

'내가 우승을 만들어야 해. 내 능력으로. 누구도 도와줄 필요 없어.'

그 생각이 얼마나 위험한지는, 아직 알 리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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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대표팀의 두 번째 훈련에서 최동욱이 박준호를 견제했다.

최동욱은 국대의 기존 에이스였고, 박준호의 등장을 위협으로 받아들였다. 훈련 중 볼을 다투는 상황에서 그의 거친 태클이 박준호를 노렸다. 박준호는 몸으로 버텼지만, 최동욱의 시선은 명확했다. '넌 여기 있을 자리가 아니야.'

훈련이 끝난 후, 최동욱이 박준호에게 다가왔다.

"신입이 뭐 하는 거야? 패스를 받아도 되는 거 아니야? 아니면 우리가 너한테 공을 줄 자격이 없어?"

박준호의 가슴이 철렁했다. 최동욱의 말이 정확했다. 자신이 정말로 팀을 믿지 않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을 인정할 수 없었다. 박준호는 입을 다물었다. 침묵은 곧 인정이었다. 최동욱의 눈이 더욱 차가워졌다.

"넌 우리 팀에 필요 없어."

최동욱이 돌아섰다. 그의 말이 박준호의 마음을 관통했다. 자신이 정말 팀에 필요 없는 선수인가? 아니면 최동욱이 틀린 건가? 박준호는 그 물음에 대답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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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성은 박준호를 찾아갔다.

훈련이 끝나고 선수들이 떠난 후, 이준성은 박준호가 짐을 챙기는 모습을 지켜봤다. 그리고 그에게 말을 걸었다.

"박준호, 시간 있어? 우리 좀 얘기해."

박준호는 이준성을 바라봤다. 이준성은 팀의 미드필더이자 경험 많은 선수였다. 그의 눈에는 진심이 담겨 있었다.

"뭐요?"

"너 왜 팀을 믿지 않아? 최동욱이 좀 거칠지만, 그 친구도 우승을 원하는 거야. 우리 모두 그래. 근데 넌 자꾸 혼자만 가려고 해."

박준호는 침묵했다. 이준성의 말이 맞았다. 하지만 인정할 수 없었다.

"넌 정말 뛰어난 선수야. 진심이야. 근데 풋살은 개인 스포츠가 아니잖아. 우리가 함께할 수 있으면 훨씬 강해질 거야."

이준성의 목소리에는 절실함이 담겨 있었다. 박준호의 마음이 흔들렸다. 이준성의 말이 옳다는 것을 알면서도, 자신의 선택을 정당화하고 싶었다.

"감사합니다. 하지만 전 괜찮습니다."

박준호의 대답은 뻣뻣했다. 이준성은 한숨을 쉬었다.

"알겠어. 시간이 필요하면 시간을 가져. 하지만 기억해. 우리는 너를 믿고 싶어. 진심으로."

이준성이 떠난 후, 박준호는 혼자 남겨졌다. 그의 가슴이 아팠지만, 그는 그 감정을 무시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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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장에서의 현실은 더욱 냉정했다.

리그전 중반, 한국은 강팀과 맞닥뜨렸다. 박준호는 편안 시야를 발동했다. 상대의 공격을 예측했고, 슈팅을 결정했다. 골이 들어갔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팀동료들은 박준호의 플레이에 참여할 수 없었다.

경기 중반, 박준호가 공을 독점했다. 패스 없이 드리블만 반복했다. 상대 팀은 그것을 알아챘다. 박준호를 집중 마크했다. 그리고—

박준호가 공을 잃었다.

상대 팀이 빠르게 역공을 펼쳤다. 한국의 골키퍼가 필사적으로 막아섰지만, 공이 골대 안으로 들어갔다. 실점.

로커룸으로 돌아온 박철수의 얼굴은 어두웠다.

"박준호, 넌 뭐 하는 거야? 왜 패스를 안 해?"

박준호는 대답하지 않았다. 박철수의 눈이 더욱 차가워졌다.

"팀 스포츠를 모르는 건가? 넌 개인 플레이로 우승을 할 수 없어. 절대로."

박철수의 말이 박준호의 마음을 때렸다. 하지만 박준호는 여전히 입을 다물었다. 침묵 속에서 박준호는 자신의 선택을 정당화하려 했다. 혼자여야만 최고가 될 수 있다고. 팀은 자신의 능력을 방해할 뿐이라고.

하지만 그 정당화는 점점 약해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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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재는 다르게 접근했다.

김민재는 박준호의 동료이자 풋살을 함께 시작한 선수였다. 그는 박준호의 변화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처음 국대에 합류했을 때만 해도 박준호는 다른 사람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훈련 후 로커룸에서 김민재가 박준호에게 다가왔다.

"준호, 나한테만이라도 말해줄 수 있어? 넌 정말 대단한 선수야. 그런데 왜 자꾸 혼자가 되려고 하는 거야? 우리 함께할 수 있잖아."

박준호는 김민재를 바라봤다. 그의 눈에는 진정한 신뢰가 담겨 있었다. 박준호의 목이 메었다. 이 신뢰를 받을 자격이 자신에게 있는가?

"미안해요. 난... 혼자여야만 해요."

"왜? 뭐가 문제야? 뭘 숨기고 있어?"

박준호는 대답하지 않았다. 말할 수 없었다. 회귀의 비밀도, 편안 시야도, 자신의 두려움도. 모든 것이 입 밖으로 나올 수 없었다.

김민재는 한숨을 쉬었다.

"알겠어. 하지만 기억해. 난 여전히 너를 믿고 있어. 언제든 필요하면 나한테 말해."

김민재가 떠난 후, 박준호는 혼자 남겨졌다. 그의 마음속에는 죄책감이 자리 잡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것도 충분하지 않았다. 박준호는 여전히 혼자가 되기로 결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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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밤, 박준호는 어머니에게 전화했다.

"엄마, 안녕하세요."

"준호? 뭐 해? 잘 지내고 있어?"

"네, 잘 지내고 있어요."

하지만 박준호의 목소리는 거짓이었다. 어머니는 그것을 감지했다.

"뭐가 있어? 뭔가 힘들어 보이는데?"

박준호는 침묵했다. 그리고 천천히 말했다.

"엄마, 난 혼자여야 해요. 혼자여야만 최고가 될 수 있어요."

박정현은 침묵했다. 그 말이 자신의 아들에게서 나올 리 없었다. 자신이 그 공원에서 구한 아들이라면.

"준호, 넌 혼자가 아니야. 엄마가 있고, 너를 믿는 사람들이 있어. 왜 자꾸 혼자가 되려고 하니?"

"그게... 더 강해질 수 있는 방법이에요."

"그런 건 없어. 진짜 강함은 혼자가 아니라 함께할 때 나오는 거야. 엄마가 그 공원에서 너를 구했던 것처럼."

박준호의 가슴이 철렁했다. 어머니의 말이 자신의 마음을 흔들었다. 그 공원. 그 순간. 어머니가 자신을 밀어낸 이유.

"엄마..."

"준호, 제발 혼자가 되지 마. 엄마가 있잖아. 그리고 너를 믿는 사람들도 있고."

박준호는 대답하지 못했다. 입을 열려 했지만, 말이 나오지 않았다. 어머니의 목소리는 그의 마음에 깊게 박혔다. 하지만 그것이 충분하지 않았다. 자신의 선택을 바꾸기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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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안컵 예선전이 시작되었다.

박준호는 경기장에 나섰다. 편안 시야를 발동했다. 상대 팀의 공격을 예측했다. 슛을 날렸다. 골이 들어갔다.

하지만 경기 중반, 박준호의 머리가 지끈거렸다.

편안 시야를 사용할 때마다 나타나는 두통이었다. 박준호는 이를 악물고 계속했다. 상대의 슈팅을 막아냈다. 자신의 슈팅을 결정했다. 한국이 이겼다.

경기가 끝난 후, 박준호의 시야가 흔들렸다. 관중석이 회전하는 것처럼 보였다. 균형감각이 흐트러졌다. 박준호는 벤치에 앉아 머리를 붙잡았다.

"박준호, 괜찮아?"

이준성이 박준호에게 다가왔다. 박준호는 고개를 들었다. 이준성의 얼굴이 두 개로 보였다가 하나로 수렴했다.

"네, 괜찮습니다."

거짓이었다. 박준호는 전혀 괜찮지 않았다. 하지만 아무도 그것을 알아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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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선전이 계속됐다.

두 번째 경기에서도 박준호는 편안 시야를 발동했다. 상대 팀의 움직임을 정확히 예측했다. 한국이 이겼다. 하지만 박준호의 두통은 더욱 심해졌다.

세 번째 경기. 네 번째 경기. 다섯 번째 경기.

매 경기마다 박준호는 편안 시야를 사용했다. 매 경기마다 두통은 악화되었다. 진통제의 효과는 점점 줄어들었다. 박준호는 손가락으로 관자놀이를 누르며 버텼다.

그리고 여섯 번째 경기.

박준호는 경기 중 처음으로 편안 시야를 완전히 발동했다. 상대의 골키퍼가 공을 잡으려 할 때, 박준호는 그 순간을 정확히 포착했다. 슈팅을 날렸다. 골이 들어갔다.

하지만 그 순간, 박준호의 뇌가 비명을 질렀다.

두통이 극에 달했다. 시야가 심하게 흔들렸다. 박준호는 무릎을 꿇었다. 팀동료들이 달려왔다.

"박준호! 박준호!"

박철수가 박준호를 안아 올렸다. 박준호의 얼굴은 창백했다. 그의 이마에는 식은땀이 흐르고 있었다.

"병원으로! 지금 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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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의 검사실에서 의사는 박준호의 뇌 스캔 결과를 들고 왔다.

"선수님, 당신은 과도한 신경 소모로 인한 뇌 피로가 심합니다. 이 상태로 계속 경기를 하면 영구적인 손상을 입을 수 있습니다."

박준호는 침묵했다.

"최소 2주간 경기를 쉬셔야 합니다. 그리고 가능하면 신경을 덜 쓰는 활동을 하세요."

박철수는 박준호를 바라봤다. 감독의 눈에는 분노와 걱정이 섞여 있었다.

"박준호, 넌 뭘 하는 거야? 왜 이런 상태까지 왔어?"

박준호는 대답하지 않았다.

"넌 뭘 숨기고 있어? 뭔가 있잖아. 말해봐."

박준호는 여전히 침묵했다. 그 침묵 속에서 박철수는 분노했다. 하지만 더 이상 추궁하지 않았다. 박준호의 표정이 말해주고 있었다. 자신이 무언가를 깨닫고 있다는 것을.

박철수는 한숨을 쉬었다.

"알겠어. 시간이 필요하면 시간을 가져. 하지만 기억해. 팀은 너를 기다리고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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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준호는 호텔로 돌아왔다.

혼자 남겨진 방에서, 박준호는 처음으로 자신의 선택을 후회했다. 이준성의 말, 김민재의 신뢰, 어머니의 목소리. 모든 것이 자신의 마음을 흔들었다. 그리고 그 순간, 박준호는 깨달았다.

자신이 편안 시야를 사용할 때마다 나타나는 두통의 의미.

그것은 자신의 뇌가 보내는 경고였다. 혼자가 되려는 자신의 선택에 대한 경고.

회귀의 진정한 의미는 자신을 완벽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팀을 믿고 함께하는 것이라는 사실.

어머니가 자신을 구했던 그 순간의 의미.

그것을 깨달았을 때, 박준호는 처음으로 눈물을 흘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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