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눈을 뜨는 순간 천장이 낡아 있었다.

곰팡이가 핀 회색 벽지, 비닐 테이프로 붙인 형광등. 그 아래로 엄마의 목소리가 들렸다. 부드럽지만 떨리는 목소리. "준호야, 일어나. 밥 먹자."

박준호는 손을 들었다. 손가락이 작았다. 아이의 손이었다. 뼈마디가 가늘고, 손톱이 깨끗했다. 서른한 살의 손이 아니었다.

심장이 울컥 내려앉았다.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움직임이 어색했다. 팔다리의 길이가 다르고, 중심이 불안정했다. 마치 다른 몸을 입은 것처럼. 거울을 찾았다. 거울 위에는 손때 자국이 가득했고, 그 안에 여섯 살 박준호의 얼굴이 있었다. 양쪽 눈이 모두 멀쩡했다.

"준호?"

어머니 박정현이 문을 열었다. 삼십 대 초반의 얼굴이었다. 박준호는 알고 있었다. 이 얼굴이 앞으로 몇십 년간 자신을 기다릴 얼굴이라는 것을. 그 얼굴에 주름이 생기고, 머리가 회색으로 변할 것이라는 것을.

"밥 먹고 싶지 않아?"

박정현이 손을 내밀었다. 손이 따뜻했다. 아들의 손을 잡으려는 손이었다. 박준호는 그 손을 잡았다. 현재형으로 존재하는 손이었다. 미래에서 기억하는 손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 자신의 손을 잡고 있는 손이었다.

이건 꿈이 아니다.

박준호는 확신했다. 꿈이라면 이 촉감이 이렇게 명확할 리 없었다. 엄마의 손가락 사이의 각도, 손바닥의 온기, 심지어 엄마 손에 밴 세제 냄새까지. 모든 것이 너무 정확했다. 너무 현실이었다.

식탁에 앉혔을 때, 박준호는 시계를 찾았다. 벽에 붙은 종이 달력. 1999년 5월 26일. 수요일.

10일이다. 정확히 10일이 남았다.

사고는 6월 5일 토요일 오후 3시 22분에 일어난다. 박준호는 그 순간을 기억하고 있었다. 열 살 때의 일이 아니라, 서른한 살의 시간 속에서 기억하는 것이었다. 장난감 자동차를 밟고 넘어지면서 왼쪽 눈을 바닥의 가장자리에 부딪혔던 그 순간. 시력을 잃었던 그 순간. 그것이 모든 것의 시작이었다.

"뭐 해? 밥 먹어."

어머니가 밥그릇을 밀었다. 박준호는 숟가락을 들었다. 어린 손이 숟가락을 쥐기에는 너무 컸다. 마치 어른의 의식이 아이의 몸에 깊이 박혀 있는 것처럼, 모순되게 움직였다.

밥을 먹으면서 박준호는 생각했다.

사고를 피할 수 있다. 그 날 오후 3시 22분에 공원에 가지 않으면 된다. 그냥 집에 있으면 된다. 엄마에게 몸이 안 좋다고 말하면, 엄마는 뭐라 하지 않을 것이다. 사고는 일어나지 않을 것이고, 왼쪽 눈은 살아있을 것이고, 모든 것이 정상적으로 흘러갈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면 회귀의 의미가 없다.

박준호는 스푼을 놨다. 숟가락이 밥그릇에 떨어졌다.

왜 자신이 회귀했을까? 국제대회 직전에 과로로 쓰러졌을 때, 왜 23년 전으로 돌려보낸 건가? 이건 단순한 시간 여행이 아니었다. 누군가, 혹은 무언가가 자신을 과거에 배치했다. 이 시간이 주어진 이유가 분명히 있었다.

그것은 사고를 피하는 것이 아니었다. 사고를 견디는 것이었다.

박준호는 그 순간, 깨달았다. 지난 23년간 자신이 왼쪽 눈의 장애를 극복하려고 애써온 것이 무엇인지. 왜 풋살 코트에서만 자신의 눈이 특별해지는지. 왜 회귀 후 편안 시야라는 초감각이 생겨났는지.

그것은 사고 때문이었다. 사고를 견디는 과정 속에서 탄생했던 것이었다.

어머니는 밥을 먹고 있었다. 숟가락으로 밥을 떠먹는 모습이 조용했다. 그 와중에 어머니의 입술이 움직였다. 무언가를 중얼거리고 있었다. 박준호는 귀를 기울였다.

"건강하게만 자라다오. 건강하게만."

엄마는 밥그릇을 들고 밥을 먹으면서, 계속 그 말을 반복했다. 마치 주문처럼. 마치 기도처럼. 엄마는 모르고 있었다. 열 날 뒤에 아들이 어떤 사고를 당할지. 왼쪽 눈을 잃을지. 그 이후 수십 년을 한쪽 눈으로만 세상을 봐야 할지.

하지만 엄마의 기도는 이미 전달되어 있었다. 박준호는 알고 있었다. 그 기도가 자신을 어떻게 지켜냈는지.

"엄마."

박준호가 말했다. 목소리가 어린 목소리로 나왔다.

"뭐니?"

"난 사고를 피하지 않을 거야."

어머니는 숟가락을 멈췄다. 아들의 얼굴을 봤다. 여섯 살 아이의 입에서 나올 수 없는 말이었다. 박정현은 웃음을 흘렸다. "뭔 소리를 하는 거야?"

"정말이야. 난 그 사고를... 견디기로 했어."

박준호는 엄마의 눈을 봤다. 엄마의 눈에는 불안감이 가득했다. 그리고 사랑이 있었다. 깊은 사랑이 있었다.

"견딘다고? 뭘 견딘다는 거야?"

박준호는 대답하지 않았다. 설명할 수 없었다. 어떻게 말할 것인가. 자신이 미래에서 온 것이고, 23년 뒤에 쓰러졌을 때 과거로 돌아왔다고. 회귀라는 현상이 일어났다고. 그리고 이 시간이 주어진 이유가 사고를 견디기 위한 것이라고.

대신 박준호는 일어섰다. "밖에 나가도 돼?"

"밖? 아직 밥도 안 먹었는데."

"나중에 먹을게."

박준호는 집을 나왔다. 5월의 햇빛이 얼굴에 쏟아졌다. 눈이 부셨다. 두 눈 모두. 아직 왼쪽 눈이 멀쩡하던 시절의 시력이었다. 그 느낌을 박준호는 명확히 기억하고 있었다. 왼쪽 눈으로 보는 세상이 얼마나 넓고 깊었는지.

동네 공원에 갔다. 낡은 철봉과 시소, 모래밭이 있는 공원. 여름이 오기 전의 초록색이 가득했다. 박준호는 한 모서리에 앉았다.

마음속으로 일정을 계산했다. 10일. 정확히 10일이 남았다. 6월 5일 오후 3시 22분. 그 시간에 자신은 공원의 이곳에 있을 것이다. 그리고 장난감 자동차를 밟고 넘어질 것이다.

넘어지면서 왼쪽 눈을 다칠 것이다.

그 순간을 견디기 위해, 자신은 10일간 준비해야 했다.

박준호는 일어섰다. 그리고 달리기를 시작했다. 한 바퀴. 또 한 바퀴. 공원을 도는 달리기. 여섯 살 아이의 몸이 따라오지 않았다. 숨이 차올랐다. 다리가 무거워졌다. 하지만 박준호는 멈추지 않았다.

한쪽 눈으로 세상을 봐야 할 신체. 그것을 준비하기 위해, 지금부터 한쪽 눈에 집중하는 훈련을 시작해야 했다.

박준호는 오른손으로 왼쪽 눈을 감았다. 한쪽 눈으로만 공원을 봤다. 시야가 좁아졌다. 깊이감이 사라졌다. 하지만 뭔가 다른 게 살아났다. 오른쪽 눈이 더 예민해졌다. 귀가 더 열렸다. 손가락 끝의 감각이 더 살아났다.

"이거다."

박준호는 중얼거렸다. 이게 바로 자신이 찾던 것이었다. 한쪽 눈을 잃고 23년을 살면서 무의식적으로 개발한 감각. 그 감각의 원형을 지금, 여섯 살의 시간에서 의도적으로 만들어내는 것이다.

해가 기울었다. 박준호는 집으로 돌아왔다. 엄마는 현관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어디 다녀왔어?"

"공원."

"혼자?"

"응."

박정현은 아들을 유심히 봤다. 여섯 살 아들의 얼굴에서 뭔가 낯선 게 보였다. 어른의 결연함. 아이에게 있어서는 안 될 그런 것. 하지만 어머니는 묻지 않았다. 다만 아들을 안았다.

"괜찮아?"

"응. 엄마."

박준호는 어머니의 품에 안겼다. 어머니의 심장박동이 들렸다. 여전히 불안한 심장박동이었다. 마치 미래를 예감하는 것처럼.

그날 밤, 박준호는 침대에서 눈을 뜨고 있었다. 천장의 곰팡이 자국을 세고 있었다. 1, 2, 3... 곰팡이 자국이 몇 개나 될까. 10일 뒤, 이 천장도 달라질 것이다. 아니, 자신이 달라질 것이다.

옆방에서 어머니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작은 목음으로 울고 있었다. 베개에 얼굴을 묻고. 박준호는 귀를 곤두세웠다. 엄마의 울음은 작지만 깊었다. 마치 오랫동안 참아온 것이 흘러나오는 듯했다. 박준호는 그것이 무엇인지 알았다. 엄마는 이미 알고 있다는 것을. 모든 어머니들이 알고 있다는 것을. 자신의 자식이 겪을 고통을 완벽하게는 모르지만, 그 고통이 올 것이라는 것을. 그리고 자신은 그것을 막을 수 없다는 것을.

박준호는 침대를 빠져나왔다. 복도를 건넜다. 엄마의 방 문을 열었다. 박정현은 깜짝 놀라 울음을 멈췄다.

"준호? 뭐 해?"

"엄마, 난 괜찮을 거야."

박준호는 엄마 곁에 누웠다. 엄마의 팔이 자신을 감싸 안았다.

"뭐가 괜찮다는 거야?"

"모든 게."

박준호는 그 품 안에서 눈을 감았다. 내일부터 본격적인 훈련이 시작될 것이다. 한쪽 눈으로 세상을 보는 훈련. 한쪽 눈으로 모든 것을 감지하는 훈련. 하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아들이었다. 아직 모든 고통이 오기 전의, 순수한 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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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5시. 박준호는 일어났다. 엄마는 여전히 자고 있었다. 박준호는 조용히 침대를 빠져나왔다.

부엌에서 물을 마셨다. 냉장고의 시계는 5시 47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9일 15시간 35분이 남았다.

박준호는 운동화를 신었다. 그리고 공원으로 나갔다. 아직 어두운 새벽. 거리에는 아무도 없었다. 신문 배달원만 자전거를 타고 지나갔다.

공원에서 박준호는 한쪽 눈을 감았다. 오른쪽 눈으로만 세상을 봤다. 시야는 여전히 좁았다. 하지만 어제보다는 편했다. 마치 자신의 신체가 이미 이 방식의 시각에 익숙해지고 있는 것처럼.

박준호는 철봉에 매달렸다. 팔의 힘으로 몸을 들었다. 여섯 살의 몸이 버티기에는 힘들었다. 하지만 박준호는 버텼다. 손가락 끝의 감각이 살아났다. 한쪽 눈으로 보면서 한쪽 팔로 버티는 그 순간, 뭔가 다른 게 깨어났다. 신체의 중심. 무게중심. 균형감각. 그리고 더 이상 눈에만 의존하지 않는 신체의 언어.

이거다. 이게 바로 편안 시야의 기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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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1일. 화요일. 4일이 남았다.

박준호는 공원의 같은 자리에 서 있었다. 5일 동안의 훈련이 신체에 각인되어 있었다. 한쪽 눈으로 보면서 모든 움직임을 감지하는 감각. 그것이 조금씩 명확해지고 있었다.

이날 오후, 박준호는 엄마를 따라 마트에 갔다. 마트의 통로는 좁았다. 사람들이 오고 갔다. 박준호는 오른쪽 눈으로만 보면서 통로를 걸었다. 그 순간, 뇌가 깨어났다. 다른 사람들이 어느 방향으로 움직일지, 언제 만날지. 신체가 직관적으로 감지했다. 마치 그들의 움직임을 미리 알고 있는 것처럼, 박준호의 몸은 자동으로 반응했다. 한 발 물러서고, 옆으로 한 걸음 옮기고, 신체 전체가 하나의 감지 기관처럼 작동했다.

엄마가 봤다. 아들이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아들이 자신도 모르게 사람들을 피해가고 있다는 것을. 마치 그 움직임을 미리 알고 있는 것처럼.

"준호, 괜찮아?"

"응, 엄마."

그날 밤, 박준호는 침대에서 눈을 떴다. 천장을 봤다. 곰팡이 자국이 여전했다. 하지만 이제는 그것들이 하나의 패턴처럼 보였다. 무작위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일정한 구조를 가지고 있는 패턴.

내일모레면 된다. 6월 5일. 그 날.

박준호는 왼손을 들었다. 어린 손이었다. 하지만 손가락 끝의 감각은 이미 변해 있었다. 더 예민해져 있었다. 한쪽 눈으로만 보면서 나머지 모든 감각이 극도로 집중되는 신체. 그것을 자신은 만들어내고 있었다.

6월 4일. 금요일. 1일이 남았다.

박준호는 공원에 없었다. 집에 있었다. 엄마는 아들이 이상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며칠 전부터 아들의 눈빛이 달라졌다. 마치 누군가 다른 사람이 자신의 아들 몸에 들어와 있는 것처럼.

저녁 때, 박정현은 아들을 안았다.

"뭐가 걱정돼?"

"아무것도 아니야, 엄마."

하지만 박준호는 알고 있었다. 내일 오후 3시 22분이 되면, 자신의 세상이 바뀐다는 것을. 두 눈의 세상에서 한쪽 눈의 세상으로. 그 경계의 순간이 내일이라는 것을.

박준호는 엄마의 품에 안겼다. 엄마는 계속 중얼거렸다.

"건강하게만 자라다오. 건강하게만."

박준호는 그 기도를 들었다. 그리고 알았다. 엄마의 기도가 자신을 어떻게 지켜낼 것인지. 사고 이후, 수십 년의 고통 속에서 자신을 어떻게 일으켜 세울 것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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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5일. 토요일 오후 2시 47분.

박준호는 공원에 있었다. 장난감 자동차가 모래밭에 놓여 있었다. 정확한 위치. 정확한 각도. 모든 것이 기억과 일치했다.

박준호는 한쪽 눈을 감았다. 오른쪽 눈으로만 세상을 봤다. 공원의 모든 움직임이 한눈에 들어왔다. 나무의 흔들림. 바람의 흐름. 모래밭 위의 그림자. 그리고 신체의 무게중심. 모든 것이 하나의 리듬으로 맞춰졌다.

35분이 남았다.

박준호는 자동차 옆에 섰다. 그리고 기다렸다. 한쪽 눈으로 보면서, 모든 감각을 집중시키며. 신체의 중심을 찾으며. 무게중심의 이동을 감지하며.

3시 22분이 되었을 때, 박준호는 움직였다.

자동차를 밟았다. 넘어졌다. 왼쪽 눈이 모래 위의 돌에 부딪혔다.

고통이 터져 나왔다. 시력이 흔들렸다. 세상이 빨간색으로 물들었다. 하지만 그 순간, 박준호는 느꼈다. 왼쪽 눈을 잃는 것과 동시에 다른 것들이 깨어나는 것을. 오른쪽 눈이 극도로 선명해졌다. 귀가 모든 음파를 포착했다. 피부의 각 지점이 공기의 움직임을 감지했다. 손가락 끝이 모래의 질감을 읽었다. 신체 전체가 하나의 감각 기관으로 변모했다.

고통 속에서도 박준호는 알았다.

자신은 이제 변했다는 것을. 한쪽 눈의 세상으로 접어들었다는 것을. 그리고 그 세상에서 자신은 누구도 볼 수 없는 것들을 볼 수 있을 것이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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