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폐검의 귀환 5화
청운의 손에서 피가 떨어졌다.
운무의 피였다.
청운은 그 순간 깨달았다. 스승이 죽어가고 있다는 것을. 혈월검을 쓸 때마다 조금씩 죽어가고 있다는 것을. 자신의 스승이 아홉 번만 더 살 수 있다는 것을.
"가!"
운무가 검을 휘둘렀다. 자객들이 밀려났다. 하지만 그것으로 충분했다. 청운은 운무의 손을 잡고 뒷문으로 향했다.
소우가 이미 말을 준비하고 있었다. 검은 말. 빠른 말.
"타!"
소우가 외쳤다.
운무는 말에 올랐다. 청운도 함께 올랐다. 말이 달렸다. 밤의 어둠 속으로.
추적자들의 함성은 점점 멀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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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골 저택의 서재. 운무는 석혜 앞에 섰다.
석혜는 정파연맹의 '약사(藥師)'였다. 독약과 해독제의 전문가. 십 년 전 시파 괴멸 당시 그녀가 무엇을 했는지, 운무는 이미 알고 있었다. 혈월검으로 본 첫 번째 진실 속에 그녀의 손이 있었다. 약사발에서 검은 가루를 퍼내는 손. 시파 대방의 우물에 뿌려지는 그 가루. 그것이 제자들을 죽였다.
"파주님께서 저를 찾으실 줄은."
석혜의 목소리는 차분했다. 창문 앞에 선 그녀는 차 한 잔을 들고 있었다. 운무는 그 차를 마시지 않았다.
"독약의 성분을 말해라."
운무의 목소리는 차갑고 직설적이었다. 그는 단어 낭비를 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그것은 기억의 문제 아닙니까? 파주님께서 원하시는 것이라면."
석혜가 천천히 돌아섰다. 그녀의 눈빛은 예리했고, 놀람도 두려움도 없었다. 오직 호기심만 있었다.
"혈월검을 사용하실 작정이시군요. 열두 번의 기회 중 벌써 두 번을 쓰셨다고 들었습니다. 이제 열 번이 남으셨다. 아니, 잠깐."
석혜가 손가락을 세어 보았다.
"세 번째를 쓰실 작정이시니, 이제 아홉 번. 그것도 빠르게 줄어들겠네요. 정파연맹의 오맹주가 다섯 분이신데, 혼자 감당하실 수 있을까요?"
운무는 검을 뽑았다. 석혜의 목을 겨냥하는 검. 천천히, 정확하게. 검객의 검은 위협이 아니라 선언이었다.
"나는 너를 죽일 수도 있고, 살릴 수도 있다. 하지만 넌 이미 죽어 있다. 십 년 전, 우물에 독약을 부을 때부터."
석혜의 입가가 굳었다. 처음으로 두려움이 스쳤다.
운무는 검을 석혜의 몸에 닿게 했다. 접촉의 순간, 세 번째 혈월검이 시작되었다.
피가 흐르지 않았다. 하지만 기억이 흘러나왔다.
십 년 전, 같은 계절의 밤. 석혜의 손이 검은 가루를 퍼낸다. 시파의 우물 위에서. 아래로 흩어지는 가루. 검은 먼지처럼 물에 녹아든다. 새벽이 온다. 시파의 대방. 제자들이 물을 마신다. 한 잔, 또 한 잔. 그들의 입술이 검어진다. 경련이 시작된다. 한설이 아직 어린 얼굴로 물잔을 들다가 멈춘다. 누군가가 그의 손목을 잡는다. 한설이 경련에서 풀려난다. 그 손은 누구인가. 화면이 흐려진다. 하지만 그 손목에 있던 흉터가 보인다. 운무가 아는 흉터다.
운무는 석혜에게서 손을 뗐다.
몸이 흔들렸다. 손가락 하나씩 말을 듣지 않기 시작했다. 검의 궤도가 흐트러졌다. 손목이 먼저 무너졌고, 팔 전체가 무게를 견디지 못했다. 맥박이 약해졌다. 시야가 점점 흐려졌다. 심장이 불규칙하게 뛰었다. 세 번째다. 세 번의 혈월검. 아홉 번이 남았다.
"파주님."
석혜가 비명을 질렀다. 운무가 쓰러질 듯 무릎을 꿇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홉 번."
운무가 중얼거렸다. 자신이 아직 살아 있다는 것을 확인하는 목소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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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재의 문이 부서졌다. 열 명의 검객들이 쏟아져 들어왔다. 명검파의 복장. 명진의 추적자들이다.
"운무. 항복해라."
선두의 검객이 외쳤다.
"혈월검을 더 이상 사용하지 말고, 정파연맹에 항복하면 목숨을 보장받을 것이다."
운무는 여전히 무릎을 꿇은 채였다. 마비된 손가락들이 검의 자루를 제대로 잡지 못했다. 하지만 검객의 몸은 기억했다. 열 번의 대결. 수십 번의 칼날 교차. 그것이 근육에 새겨져 있었다.
검이 움직였다. 귀월검의 첫 자락. 첫 번째 자객이 어깨를 베였다. 피가 흘렀다.
하지만 두 번째 자객이 들어왔을 때 운무의 손이 떨렸다. 마비 때문이었다. 검의 궤도가 벗어났다. 자객의 검이 운무의 옆구리를 스쳤다. 살이 갈라졌다. 통증이 몸을 관통했다.
"잡아!"
누군가가 외쳤다.
운무가 옆으로 넘어질 순간, 누군가가 그의 팔을 잡았다. 청운이었다.
"도망쳐!"
청운이 외쳤다. 그의 손은 떨리고 있었다. 운무의 팔은 차갑고 축축했다. 피였다. 그것도 운무의 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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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호의 깊숙한 곳. 폐한 사원의 터. 옛날 기도하던 사람들이 떠난 지 오십 년은 넘었을 곳이었다.
운무는 돌 위에 누워 있었다. 상처를 감고 있었다. 청운이 약을 발라주고 있었다. 손이 매우 조심스러웠다.
"아홉 번 남았습니다."
소우가 말했다. 그녀의 목소리는 차분했지만, 그 차분함 아래로 다른 감정이 흐르고 있었다.
"석혜의 기억에서 무엇을 봤습니까?"
"우물에 독약을 푼 손. 그리고 그 손목에 있던 흉터."
운무가 대답했다.
"누구의 흉터입니까?"
소우가 물었다.
"모른다."
운무가 말했다.
"그 흉터의 주인이 한설을 살렸다. 열한 번째 제자를."
"아, 그래서."
소우가 중얼거렸다.
"한설이 살아있었군요."
"그렇다."
소우가 창문 쪽으로 가 바깥을 내다봤다. 달이 떠 있었다. 혈월(血月)처럼 붉은 달. 이 달이 떠 있는 밤마다 강호의 검객들이 움직인다. 정파연맹도, 운무도, 그리고 다른 누군가도.
"명진이 움직이고 있습니다."
소우가 말했다.
"추적자가 점점 많아지고 있습니다. 이제 명검파뿐만 아니라 다른 파도 개입하고 있습니다."
"운경인가?"
운무가 물었다.
"패왕파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아직 직접 나서지 않고 있습니다. 마치 누군가를 기다리는 것처럼."
소우가 돌아섰다. 그녀의 눈은 운무를 바라봤다.
"계획을 세워야 합니다. 아홉 번의 기회로 나머지 오맹주들을 모두 파악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선택을 해야 합니다."
운무가 일어나려 했다. 청운이 그를 말렸다.
"조금 더 쉬세요."
"쉴 시간이 없다."
운무가 말했다.
"아홉 번이 남았다. 열한 명의 오맹주 중 세 명의 진실을 이미 알았다. 석혜, 운경, 명진. 하지만 아직 모른다. 그 흉터의 주인이 누구인지. 한설을 왜 살렸는지."
"다음 목표가 있습니다."
창문을 통해 목소리가 들려왔다. 청운이 아니었다.
한설이었다.
산 위의 어둠 속에서 한설이 나타났다. 그의 얼굴은 더 창백해 있었다. 십 년이 그의 얼굴에 남겨놓은 흔적들이었다.
"선생님."
한설이 무릎을 꿇었다.
"저는 이 십 년을 한 오맹주를 찾는 데 썼습니다. 그리고 찾았습니다."
"누구인가?"
운무가 물었다.
"적운(赤雲)입니다. 홍조파의 파주. 그는 십 년 전 시파 괴멸 당시 독약을 조제한 사람입니다. 석혜가 그것을 뿌렸지만, 조제한 사람은 적운입니다."
한설이 말했다.
"그리고 선생님. 그 흉터의 주인을 찾았습니다."
한설이 자신의 손목을 보였다. 거기에도 같은 흉터가 있었다.
"제 손목의 이 흉터. 이것은 선생님이 내신 것입니다."
운무가 한설의 손목을 봤다. 혈월검으로 본 기억 속 그 흉터가 현실의 손목 위에 겹쳐졌다. 십 년의 세월이 흉터를 더 깊게 만들었다. 하얀 살이 드러난 자국. 그것이 생명의 증거였다.
"저를 독약에서 구할 때, 선생님이 저를 잡으신 손에서 난 흉터입니다. 그 밤, 제가 물을 마시려고 할 때 선생님이 저를 끌어당기셨고, 그 과정에서 제 손목이 찢겨났습니다. 그것이 제 목숨을 구했습니다."
한설이 말을 이었다.
"제가 물을 마시지 못했으니까요."
운무는 한설을 바라봤다. 십 년 전의 제자가 아니었다. 이제 그는 운무만큼이나 강한 검객이 되어 있었다. 그 순간, 운무의 눈이 흔들렸다. 자신이 한설을 살렸다는 깨달음. 십 년 전 그 밤, 자신의 손이 제자를 죽음에서 건져냈다는 것. 그 사실이 가슴을 때렸다.
"그럼 우물에서 본 흉터는?"
운무가 물었다. 목소리가 떨렸다.
"제 것입니다."
한설이 대답했다.
"혈월검으로 본 기억 속에서도 제 흉터가 있었다는 뜻입니다."
운무는 입을 열었다가 닫았다. 다시 열었다. 말이 나오지 않았다. 십 년 전 그 밤, 자신이 무엇을 했는지 이제 알았다. 자신이 제자를 살렸다는 것을. 그리고 그 제자가 십 년을 혼자 살아왔다는 것을. 그 무게가 가슴을 짓누렀다.
"저는 선생님이 저를 살리셨다는 것을 증명하고 싶었습니다."
한설이 일어났다.
"그리고 진실을 알고 싶었습니다. 왜 저를 살리셨는지. 그 이유를."
운무는 한설을 바라봤다. 대답할 말이 없었다. 자신도 모르는 것이었다. 십 년 전 그 밤, 무엇이 자신의 손을 움직였는지.
"다음 목표는 적운입니다."
한설이 말을 이었다.
"그를 만나면 선생님은 남은 기회 중 넷을 더 써야 합니다. 그러면 다섯 번만 남습니다."
소우가 한설의 말을 받았다.
"우리는 선택을 해야 합니다."
"선택?"
운무가 물었다.
"다섯 번의 기회로 모든 진실을 알 수 없다면, 우리는 어떤 진실이 필요한지 결정해야 합니다."
소우의 목소리는 차분했지만, 그 속에는 운무를 향한 질문이 있었다. 너는 무엇을 원하는가. 너는 무엇을 위해 죽을 것인가.
운무는 창문 너머 달을 바라봤다. 혈월이 떠 있었다. 그 달 아래에서 강호는 움직이고 있었다.
"적운을 찾아라."
운무가 말했다.
"아홉 번이 남았다. 그 중 네 번을 적운에게 쓴다. 그러면 다섯 번이 남는다."
"다섯 번으로는 부족합니다."
소우가 말했다.
"알고 있다."
운무가 대답했다.
"그 다섯 번은 내가 선택하겠다."
"어떻게?"
소우가 물었다.
운무가 천천히 일어났다. 청운이 그를 지탱했다. 운무의 눈빛이 바뀌었다. 죽음을 각오한 자의 눈빛이었다.
"강호는 기억한다."
운무가 말했다.
"내가 죽기 전에, 강호가 시파를 기억하도록 만들겠다. 혈월검으로 본 영상이 아니라, 살아있는 증인들의 입으로. 한설, 청운, 그리고 나."
"그렇다면 남은 시간은?"
청운이 물었다.
"충분하다."
운무가 말했다.
"아홉 번은 충분하다."
밤이 깊어가고 있었다. 사원의 터에서, 네 명의 검객이 달 아래 서 있었다. 한설은 운무를 바라봤다. 그 눈은 십 년 전 제자의 눈이 아니었다. 이제 그는 자신의 스승이 죽음 속으로 걸어가고 있음을 알았다. 하지만 그 길 위에서 스승이 무엇을 남길지도 알고 있었다.
소우의 손에는 이미 지도가 들려 있었다. 적운의 거처를 표시한 지도였다. 그리고 그 옆에는 또 다른 이름들이 적혀 있었다. 아직 만나야 할 오맹주들의 이름들.
운무가 검을 들었다.
"출발한다."
그 순간, 강호 어딘가에서 또 다른 움직임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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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파연맹의 오맹주 회의실. 어두운 방. 다섯 명의 그림자가 앉아 있었다.
"운무가 석혜를 만났다고?"
명진의 목소리였다.
"그렇다. 그리고 혈월검을 세 번째로 사용했다."
운경이 대답했다.
"그러면 이제 아홉 번이 남았다."
명진이 말했다. 그의 입가가 올라갔다. 마치 사냥감이 덫에 걸린 것을 확인하는 순간처럼.
"아홉 번이면 충분하다. 우리는 기다리기만 하면 된다. 운무는 혈월검으로 자멸할 것이다."
명진의 목소리에는 확신이 있었다. 그는 이미 모든 것을 계산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우리의 정보망을 활용해야 합니다."
운경이 말했다.
"명검파의 추적을 계속하고, 다른 파들도 움직이게 해야 합니다. 운무가 고립되도록."
명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 그리고 적운도 움직일 것이다."
명진의 말이 이어졌다.
"운무가 적운을 찾을 것을 알고 있다. 적운은 독약 조제자로서 운무에게 쫓길 것이다. 그 과정에서 적운은 운무를 죽일 기회를 얻을 것이다."
명진의 계획은 정교했다. 운무를 향해 여러 세력을 몰아붙이는 것. 운무가 혈월검을 계속 사용하도록 강제하는 것. 그러면 자연스럽게 운무는 자멸할 것이었다.
"적운은?"
어둠 속의 또 다른 목소리가 물었다. 청홍이었다.
"적운도 우리의 뜻을 따를 것이다."
명진이 말했다.
"그는 자신이 시파 괴멸의 공범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운무에게 쫓기는 것이 자신의 운명이라는 것도."
회의실이 조용해졌다.
하지만 그 조용함 속에서, 또 다른 움직임이 있었다. 회의실의 한구석, 그림자 속에서.
묘란이 몸을 앞으로 기울였다. 명진의 말을 듣는 그 순간, 그녀의 눈이 가늘어졌다. 아, 그렇군.
명진이 다른 오맹주들을 이용해 운무를 제거하려 한다. 그 과정에서 명진의 권력은 강해질 것이고, 정파연맹 내 다른 오맹주들의 영향력은 약해질 것이다. 특히 운경과 청홍은 명진의 계획 속에서 소비될 것이다. 그렇다면 정파연맹의 권력 구도는 명진이 주도하게 될 것이고, 그 과정에서 기존의 균형은 무너질 것이다.
묘란의 입가가 올라갔다. 웃음이 나왔다. 손으로 입을 가렸지만, 그 웃음은 멈추지 않았다. 그녀의 눈빛이 변했다. 냉정한 계산의 빛이었다.
모든 것이 보인다. 명진의 욕심. 운무의 집념. 그 사이에서 무너질 정파연맹의 기존 질서. 그리고 그 무너짐 속에서 새로운 권력이 들어설 공간.
명진이 운무를 제거한 후, 정파연맹은 어떻게 될 것인가. 명진의 독주가 심해질 것이다. 그렇다면 다른 오맹주들은 어떻게 반발할 것인가. 그 반발의 과정에서 누가 이득을 볼 것인가.
묘란은 이미 그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명진과 다른 오맹주들의 갈등. 그 갈등 속에서 자신의 위치. 그리고 자신이 어떻게 움직여야 하는지.
밤이 깊어가고 있었다.
강호 어디선가 운무는 다음 오맹주를 향해 가고 있었다. 정파연맹은 운무의 자멸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묘란은 모든 것이 무너지는 순간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 무너짐 속에서 자신이 어떻게 올라설 것인지 계산하며.
남은 기회는 아홉 번.
아홉 번의 혈월검 사용. 아홉 번의 죽음.
하지만 운무는 알지 못했다. 그 아홉 번의 기회가 정파연맹을 무너뜨리기에 충분하지 않다는 것을. 그리고 더 큰 적이 어둠 속에서 움직이고 있다는 것을.
밤은 계속 깊어갔다. 달 아래에서 강호는 움직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