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사 시험 합격 통보서를 들었을 때, 이준호의 손가락이 떨렸다.
'합격.'
두 글자가 화면에 박혀 있었다. 협회 공식 앱의 알림창. 시간은 오전 11시 47분. 이준호는 휴대폰을 내려놨다가 다시 집어 들었다. 혹시 자신의 이름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황당한 의심이 들어서였다. 하지만 이름은 확실했다. 이준호(F급).
그 순간, 협회 본부 인사과에서도 같은 화면이 떠올랐다. 직원 김지은의 손가락이 마우스 위에서 멈췄다. 컴퓨터 화면을 다시 읽었다. 한 번, 두 번, 세 번. 그러곤 옆자리 동료에게 말했다.
"이... 이게 뭐지?"
"뭐가?"
"F급이 기사 시험을 합격했는데?"
동료가 고개를 돌렸다. 둘 다 화면을 노려봤다. 시스템 오류일 가능성은 거의 없었다. 협회의 기사 시험 판정 시스템은 국방부 수준의 보안을 갖추고 있었다. 그렇다면 이건 뭐란 말인가. 실제로 F급이 기사 시험에 합격한 건가?
"회장님께 보고해야 하지 않나?"
"... 일단 기록을 다시 확인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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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역 근처 카페. 이준호는 테이블 두 개를 붙인 자리에 앉아 있었다. 정태민이 먼저 도착했고, 그 뒤로 E급 헌터 둘, F급 헌터 셋이 모였다. 모두 합쳐 7명. 비좁은 테이블 위로 음료잔들이 늘어섰다.
"기사 시험 합격 축하합니다!"
정태민이 가장 먼저 손을 들었다. 나머지도 따랐다. 이준호는 손을 들지 않았다. 대신 물을 한 모금 마셨다. 목이 건조했다. 며칠 전부터 계속 그랬다. 수명이 깎일 때마다 신체가 점점 메말라 가는 느낌이 들었다. 손가락도 창백해지고 있었다.
"이준호 형이 기사 시험을 합격했다는 건... 우리도 할 수 있다는 뜻이죠?"
처음 보는 여자 헌터가 물었다. 이름은 이미라, 23살 F급. 협회 등록 기간 3년. 던전 클리어 기록은 50회 정도. 평범한 F급의 이력이었다.
"기사 시험 합격이 뭔지 아세요?"
이준호가 물었다.
"협회가 인정하는 전문 헌터, 그 정도 아닙니까?"
"그 이상이다. 기사 시험 합격은 자신의 등급을 한 단계 올릴 수 있는 자격을 얻는 거야. F급이 합격하면 E급 심사를 받을 수 있다는 뜻이지."
테이블이 조용해졌다.
"그러니까... 우리도?"
"노력하면 될 수 있다."
이준호는 커피를 들었다. 따뜻했다. 마시면서 그는 이 말이 거짓인지 아닌지를 생각했다. 정태민이 이 모임을 제안했을 때, 이준호는 처음엔 거절하려 했다. 자신의 정체가 들킬 위험이 있었으니까. 하지만 정태민의 눈빛을 보고 생각을 바꿨다. 그 눈빛에는 진짜 희망이 있었다.
"그런데 말이야."
정태민이 몸을 앞으로 숙였다.
"우리가 뭐 하는 모임이라고 말할까요? 협회에 등록하고?"
"등록하면 안 된다."
이준호가 빠르게 말했다.
"왜요?"
"협회가 우릴 통제하려고 할 거니까."
이미라가 끄덕였다.
"맞다. 협회는 F급들이 뭉치는 걸 싫어해. 우리가 힘을 합치면 자기들의 권력이 흔들린다고 생각하니까."
"그럼 몰래?"
"정보 공유 모임이라고 하자. 던전 정보, 기술 정보, 협회 정보... 우리가 알아낸 게 있으면 공유하는 거야. 그리고..."
이준호가 잠시 말을 끊었다. 창밖으로 버스가 지나갔다.
"우리 같은 약자들이 함께하면 할 수 있는 게 있다는 걸 보여주는 거다."
"약자들?"
"F급, E급, D급... 협회가 무시하는 헌터들이 모두 약자다."
정태민이 다시 손을 들었다.
"그럼 이 모임 이름뭘로 할까요? 정보 공유... 약자... 음... '약자연대'는 어때요?"
누군가 웃음을 터뜨렸다. 이미라였다.
"약자연대? 뭐 이런 이름이 다 있어?"
"하지만 이름 자체가 의미를 담잖아."
정태민이 반박했다.
"우리가 약자라는 걸 부끄러워하지 말고, 오히려 무기로 삼자는 뜻이 담겨 있어. 약자들이 연대한다는 뜻이야."
정태민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테이블의 분위기가 변했다. 웃음이 사라졌다. E급 헌터 중 한 명이 주먹을 쥐었다. 이미라의 눈빛이 진지해졌다. 누군가가 침을 삼켰다. 희망에서 결심으로. 그 감정의 전환이 테이블 위에 내려앉았다.
"좋은데?"
E급 헌터 중 하나가 말했다.
"나도 찬성. 약자연대. 이름 자체가 선언문 같잖아."
"그럼 정태민 안건으로 투표할까?"
이준호가 말했다. 손이 먼저 올라갔다. 정태민. 그 다음 이미라. 그녀의 눈빛은 의심에서 확신으로 바뀌어 있었다. E급 헌터 둘이 손을 올렸다. 그들의 주먹은 여전히 쥐어져 있었다. F급 헌터 하나가 손을 올렸다. 마지막으로 이준호.
7표 중 7표. 만장일치.
"좋아. 그럼 첫 번째 과제를 정하자."
이준호가 말했다. 모두의 시선이 그에게 쏠렸다.
"망령의 숲. 내일부터 그곳 정보를 수집한다. 던전 구조, 몬스터 패턴, 함정 위치... 모든 게 필요하다. 각자 역할을 나누고 정보를 모아서 모레 밤에 다시 만난다."
E급 헌터 중 하나가 물었다.
"망령의 숲이면... 위험하지 않나요?"
"위험하다. 그래서 혼자 가면 안 된다. 짝을 지어서 움직여. 그리고 무리하지 마. 정보 수집이 목표지, 클리어가 아니야."
정태민이 노트를 꺼냈다.
"그럼 역할 분담을 해볼까요?"
이렇게 약자연대의 첫 번째 미션이 정해졌다. 망령의 숲. 그곳은 D급 던전이었고, 협회에서도 위험 지역으로 분류한 곳이었다. 하지만 누군가는 가야 했다. 그리고 이제 그 누군가는 혼자가 아니었다.
약자연대라는 이름은 이렇게 탄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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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회 본부 회의실은 차가웠다. 임준석 회장이 들어올 때까지 아무도 입을 열지 않았다. 그가 자리에 앉자, 박시연이 보고 자료를 펼쳤다.
"기사 시험 합격자 현황입니다."
슬라이드가 올라갔다. 차트가 나타났다. 초록색 막대가 대부분이었다. S, A, B급이었다. 그리고 한쪽 끝에 빨간색 아주 작은 막대가 하나 있었다.
"이건 뭐냐?"
임준석이 가리켰다.
"F급 합격자 1명입니다."
"F급이? 기사 시험을?"
임준석의 목소리가 올라갔다.
"예. 이름은 이준호. 이번 달 시험 응시자입니다."
"성적은?"
"필기 만점. 실기 12분 클리어. 종합 평가 상위 3%."
회의실이 다시 조용해졌다. 이번엔 다른 종류의 침묵이었다. 불안한 침묵.
"이준호라고 했나?"
임준석이 다시 물었다.
"예."
"그 폐허 던전 건으로 조사받던 그 F급?"
박시연이 고개를 끄덕였다.
"정확합니다."
임준석은 의자에 등을 기대고 눈을 감았다. 아주 오래. 30초 정도. 그러곤 눈을 떴다.
"데이터 이상은?"
"없습니다."
"없다고?"
"네. 모든 기록이 정상 범위입니다."
임준석이 박시연을 노려봤다.
"통계상 불가능한 성과를 거두고 있는데, 데이터 이상이 없다고?"
박시연이 입을 열려다 닫았다. 그러곤 다시 열었다.
"... 정확히는 이상 신호가 감지되지만, 기술적으로 판단할 근거가 부족합니다."
"이상 신호는 뭐냐?"
"필기 점수의 급상승. 폐허 던전 재진입 이후 3주 만에 기사 시험 응시. 망령의 숲 클리어 타임의 이상성..."
"그럼 그게 이상이 있다는 뜻 아닌가?"
"기술적으로는 E급 이상의 능력 사용 증거가 없습니다. 현재 협회 감지 시스템으로는—"
임준석이 손을 들었다. 박시연이 말을 멈췄다.
"감시를 강화하라. 24시간 추적."
임준석의 목소리가 차갑게 내려앉았다.
"그리고 이혜원 회장에게 연락해라. 천상회가 이 일을 맡을 테니까."
박시연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임준석은 계속했다.
"만약 이준호가 협회 규정을 위반했다면?"
"예?"
"제거하라."
박시연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임준석은 그를 보지 않았다. 차가운 목소리로 계속 말했다.
"그리고 그 주변 인물들도 함께."
"회장님..."
박시연이 입을 열었다. 하지만 임준석은 이미 다른 서류를 보고 있었다. 대화는 끝난 것이었다.
박시연은 회의실을 나갔다. 그의 손은 떨리고 있었다. 모니터 화면에는 여전히 이준호의 기사 시험 데이터가 떠 있었다. 필기, 실기, 종합. 모두 완벽했다.
박시연은 자신의 개인 파일을 열었다. 거기에는 망령의 숲 클리어 기록이 있었다. 1시간 26분. 통상적인 F급이라면 6시간 이상 걸려야 하는 던전을 1시간 26분에 클리어했다. 그리고 그 다음 기사 시험. 12분.
손가락이 마우스 위에서 멈췄다. 감시 파일을 열어야 할까. 아니면 이 모든 기록을 삭제해야 할까.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했다. 하지만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임준석의 명령이 있었으니까.
손가락이 떨렸다.
박시연은 한 가지 가설을 세웠다. 혹시 누군가 등급을 속이고 있는 건 아닐까. 자신의 등급보다 높은 능력을 사용하면서, 그걸 숨기고 있는 건 아닐까.
그렇다면 그건 어떻게 가능한가.
박시연은 화면을 꺼버렸다.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왜냐하면 만약 그게 사실이라면, 자신의 직업은 끝나버릴 테니까. 협회의 감시 능력이 무능하다는 뜻이 되니까.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했다. 이준호는 뭔가 다른 헌터였다. 그리고 이제 협회는 그를 제거하려 할 것이었다.
박시연은 이준호의 주소를 검색했다. 감시 대상자 데이터베이스에서 쉽게 찾을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옆에는 '천상회 요원 배치' 항목이 자동으로 채워졌다. 임준석의 명령이 시스템에 이미 입력되어 있었다.
박시연은 손가락을 움직이지 못했다. 도덕적 갈등이 그를 짓누르고 있었다. 협회의 직원으로서의 의무와 한 인간으로서의 양심 사이에서 흔들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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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 10시. 이준호는 여의도 카페에서 김민재를 기다리고 있었다. 테이블은 구석진 곳이었다. 누가 자신들을 볼 수 없는 위치였다.
김민재가 들어왔을 때, 이준호는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차가워진 커피였다. 오래 기다렸다는 뜻이었다.
"늦었나요?"
김민재가 앉으며 물었다.
"아니다. 적당한 시간이야."
이준호가 대답했다.
"왜 나한테 연락했어? 뭐 하려고?"
"당신을 봤거든요."
"뭘?"
"변화를요."
이준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커피를 한 모금 더 마셨다. 목이 건조했다. 손가락이 창백해 보였다.
"나도 변하고 싶어요."
김민재가 말했다.
"어떻게?"
"당신처럼. 뭔가를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처럼."
테이블이 조용해졌다. 카페의 배경음악만 들렸다. 재즈였다. 아주 차분한 재즈.
"위험해."
이준호가 말했다.
"알아요. 하지만..."
김민재가 잠시 말을 끊었다.
"혼자인 것 같아서요. 당신도 그런가요?"
이준호는 이 질문에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내일 밤 약자연대 모임이 있다는 것을 말했다. 김민재가 올 수 있다고.
"협회 기사가 와도 괜찮아요?"
"당신이 문제가 아니라면."
"나는 문제가 아닙니다."
김민재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당신 같은 사람을 도와주고 싶을 뿐이에요."
이준호는 이 말을 들으며, 한 가지를 깨달았다. 세상은 생각보다 복잡했다. 기득권층이 모두 악한 건 아니었고, 약자도 모두 순수한 건 아니었다.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했다. 변화는 한 사람에게서 시작되고, 그 변화가 다른 사람에게 전해진다는 것.
"내일 밤 8시. 강남역 지하 4번 출구 근처."
이준호가 주소를 말했다.
"가면 된다."
"감사합니다."
김민재가 고개를 숙였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준호는 그를 보내며 생각했다. 혹시 이게 함정은 아닐까. 협회의 함정은 아닐까.
그 순간, 카페 밖 거리에서 익명의 인물이 카메라의 셔터를 눌렀다. 클릭. 이준호와 김민재가 함께 있는 모습이 촬영되었다. 그 인물은 협회 감시 요원이었다. 임준석의 명령에 따라 이준호를 24시간 추적하고 있었다.
카페 건너편 건물 옥상에서는 또 다른 감시자가 쌍안경으로 카페 내부를 관찰하고 있었다. 천상회 요원이었다. 그들도 이미 배치되어 있었다.
이준호는 이 모든 시선을 감지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의 신체는 반응했다. 손가락이 더욱 창백해졌다. 목이 더욱 건조해졌다. 수명이 깎이고 있었다. 스킬 변조를 한 번 사용할 때마다 정확히 3시간의 수명이 소진되었다. 그리고 지금까지 그는 이미 10번을 사용했다. 30시간. 하루를 조금 넘는 시간이 이미 사라졌다.
이준호의 휴대폰이 울렸다. 약자연대 그룹 채팅이었다. 정태민의 메시지가 떴다.
'형, 내일 모임 기대돼. 우리 정말 할 수 있을 것 같아.'
그 뒤로 이미라의 메시지가 이어졌다.
'약자연대! 화이팅!'
E급 헌터들도 메시지를 보냈다. 하나둘 모두가 자신을 응원하고 있었다.
이준호는 휴대폰을 내려놨다. 손가락이 창백했다. 수명이 깎이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신경 쓰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는 이미 선택을 했으니까. 짧은 삶이라도 의미 있게 살겠다는 선택을.
카페 밖. 여의도의 야경이 반짝였다. 서울은 여전히 크고 차가웠다. 하지만 그 안에서 뭔가 작지만 뜨거운 게 피어나고 있었다.
약자연대.
그 이름 아래에서 모인 사람들의 눈빛은 달랐다. 희망이 아닌, 결심이 담겨 있었다. 자신들의 삶을 바꾸겠다는, 아주 단순하지만 강력한 결심이.
카페 밖 거리에는 협회의 감시자가 이준호의 뒷모습을 사진에 담았다. 건너편 옥상에서는 천상회 요원이 쌍안경을 내렸다. 정보 수집이 완료되었다. 임준석의 지시에 따라 내일 새벽 제거 작전이 시작될 것이었다.
하지만 이준호는 알지 못했다. 그리고 알 필요도 없었다. 왜냐하면 내일 밤, 약자연대의 모임에서 모든 게 시작될 테니까.
이준호는 카페를 나갔다. 밤거리로 나가며, 그는 알았다. 이제 돌아올 수 없다는 것을. 그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나아가야 한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