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 대가의 무게

던전 출구는 어두웠다.

손전등 불빛이 석벽을 핥으며 점점 커지고, 이준호의 심장은 그 속도보다 빨랐다. 협회 드론이 여전히 상공을 맴돌고 있었다. 저 검은 날개 같은 기계 하나가 자신의 얼굴을 스캔하는 순간, 모든 게 끝난다. 폐허 던전 불법 침입, 미신고 능력 습득, 강현철의 시체 발견—연쇄적 혐의로 면허는 박탈되고 협회 추적 대상이 될 것이다.

이준호는 몸을 낮췄다. 덤불 속으로 몸을 날렸다. 돌 위에 무릎을 쳤지만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공포가 통각신경을 마비시켰다.

드론의 윙윙거리는 음성이 점점 멀어졌다. 이준호는 덤불 속에 웅크린 채 기다렸다. 온몸이 떨렸다. 드론의 음성이 완전히 사라진 후에야 몸을 일으켰다. 창백한 새벽빛이 얼굴을 비쳤다. 옷은 흙과 이슬로 범벅이었다.

폐허 던전 입구는 고요했다. 협회 관리원의 작은 부스에만 불이 켜져 있었다. 이준호는 정면으로 걸어갔다. 그냥 클리어를 마친 평범한 F급 헌터처럼.

"어? 어제 진입자 아닌가?" 관리원이 고개를 들었다.

"네, 2시간 코스였습니다." 이준호의 목소리는 떨리지 않았다. 10년간 연습한 거짓말이었다.

"고생했네. 보상 이체는 3일 후—"

이준호는 이미 걸어가고 있었다.

지하철 역에서 내린 것은 오전 7시 43분. 집까지는 15분 거리였다. 그 15분이 영원처럼 길었다.

집에 들어간 이준호는 곧바로 거울 앞에 섰다. 손가락을 들었다. 어제보다 더 창백해져 있었다. 살을 살짝 집었다. 정말로 창백했다. 아직 24시간도 안 됐는데, 이미 신체 변화가 나타나고 있었다.

이준호는 폐허 던전에서 찾은 보석함을 꺼냈다. 두루마리가 여전히 그 안에 있었다. 손글씨로 쓰인 메모—강현철의 필체였을 것이다. 그는 다시 읽었다.

*'3개 이상 동시 위장 불가. 정체 노출 시 능력 영구 소실.'*

그리고 맨 아래.

*'이 능력으로 시스템을 바꿀 수 있다면, 수명 따위는 싼 값이다. —강현철'*

이준호는 손가락을 깨물었다. 강현철은 이 능력을 알았다. 그리고 이미 써봤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의 죽음은—

노트북을 켜서 '강현철 헌터 부고'를 검색했다. 기사가 나타났다. 2년 전 뉴스였다.

*"S급 헌터 강현철, 45세의 나이로 갑작스럽게 사망"*

47세가 아니라 45세였다. 그는 자신의 수명을 깎아가며 뭔가를 했고, 결국 시스템에 제거되었거나 자신의 능력에 의해 죽었다.

이준호는 건강 앱을 켰다.

*예상 수명: 80세 → 79세 8개월*

2개월이다. 1시간에 2개월.

이준호의 뇌가 계산을 시작했다. S급 기술을 쓸 때마다 2개월씩 깎인다면, 한 달에 6번 쓸 수 없다. 일주일에 한 번 정도? 한 번에 30분씩 위장하면 1개월이다. 만약 며칠 연속으로 쓴다면?

54년이 남았다. 만약 매주 1시간씩 위장한다면, 연 24개월, 2년씩 깎인다. 54년은 27년으로 줄어든다.

아니다. 강현철은 아마 더 자주 썼을 거다. 그래서 45세에 죽었다. 그렇다면 자신도.

휴대폰이 울렸다. 협회 발신이었다. 이준호의 손이 경직됐다.

문자였다.

*"폐허 던점 불법 침입 혐의로 조사 대상자로 등록되었습니다. 추가 위반 시 면허 취소."*

손가락이 떨렸다. 정말로 24시간 안에. 협회의 드론이 자신을 감지했고, 기록을 남겼고, 지금 이 문자를 보냈다.

이준호는 일어났다. 창문을 열었다. 서울의 아침빛이 쏟아져 들어왔다. 도시는 평온했다. 저 아래 거리에는 무수한 헌터들이 일어나고 있었다. S급도 있고, F급도 있고, 그 사이의 모든 등급이 있었다. 그들 중 대부분은 자신의 등급에 갇혀 있다. 그것이 신분이고, 인생이고, 운명이다.

창밖의 도시를 보며, 이준호는 생각했다. 강현철은 이미 알고 있었다. 이 능력의 대가를. 그럼에도 그는 이 글귀를 남겼다. 누군가 이것을 찾을 거라고 믿으면서.

이준호의 눈이 바뀌었다. 공포가 빠져나가고, 다른 무언가가 차올랐다. 분노도 아니었고, 욕망도 아니었다. 그것은 단순했다.

결정이었다.

휴대폰이 울렸다. 협회가 아니라 친구였다. 정태민이었다.

"야, 너 오늘 던전 안 간다고 했잖아. 새로운 던전 하나 터진 거 같은데, 우리 같이 가볼래?"

이준호는 정태민의 목소리를 들었다. 밝은 목소리였다. 하지만 그 뒤에는 절망이 있었다. E급인 정태민의 절망. 이준호는 그것을 알고 있었다.

"뭔데?"

"서울 남부에 새로운 던전이 열렸대. 아직 등급이 정해지지 않았대. 혹시 F급일 수도 있고, E급일 수도 있고. 어쨌든 우리 같은 약자들이 먼저 들어가면, 좋은 보상을 받을 수도 있지 않을까?"

이준호는 침묵했다. 정태민의 기대감이 들렸다. 그것은 위험했다. 약자들의 기대감은 항상 절망으로 끝났다.

"태민아. 그건 함정이야."

"뭐?"

"협회가 새로운 던전을 개방할 때, 약자들을 미끼로 삼는 경우가 많아. 정찰대 역할을 하게 하는 거지. 우리가 피해를 입고, 그 데이터를 바탕으로 협회가 정식으로 등급을 정한다. 그러면 대형길드들이 들어가서 보상을 독점하지."

정태민의 목소리가 떨어졌다. 기대감이 절망으로 바뀌는 소리였다.

"그래... 역시 그렇겠지."

이준호는 정태민의 한숨을 들었다. 수화기 너머에서 들려오는 그 작은 한숨이 모든 것을 말해주었다. 약자의 절망. 그것은 이 세계의 구조 자체였다.

"태민아, 잠깐. 내가 뭔가 할 수 있을 것 같아."

"뭐?"

이준호는 말을 멈췄다. 아직 구체적으로 뭘 할 수 있는지 모르고 있었다. 하지만 강현철의 글귀가 떠올랐다. '이 능력으로 시스템을 바꿀 수 있다면.'

"일단... 내가 그 던전에 먼저 들어가 봐. 뭐가 있는지 확인해 보고. 그 다음에 연락할게."

"정말?"

정태민의 목소리가 다시 밝아졌다. 그 밝음이 이준호의 가슴을 철렁하게 했다. 약자의 희망. 그것만큼 위험한 것은 없었다. 하지만 이제는 그것을 외면할 수 없었다.

"응. 내가 할 수 있는 거 있으면 해 볼게."

통화를 끝낸 후, 이준호는 창문을 다시 열었다. 서울의 아침이 더 밝아졌다. 거리에는 헌터들이 던전으로 향하고 있었다. 대부분은 자신의 등급에 맞는 던전으로. S급은 S급 던전으로, F급은 F급 던전으로. 그 바퀴는 계속 돌고 있었다.

이준호는 손가락을 들었다. 창백함이 더 깊어지고 있었다. 건강 앱의 수명은 계속 줄어들고 있었다.

*79세 8개월 → 79세 6개월*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더 깎이고 있었다. 아직 능력을 쓰지 않았는데도. 마치 수명이 저절로 흘러가는 것처럼.

아니다. 이것은 능력의 대가가 아니었다. 이것은 이미 쓴 능력의 결과였다. 던전에서 1시간 동안 S급으로 위장했을 때의 대가가 계속 흘러가고 있는 것이었다.

이준호는 손가락을 다시 봤다. 강현철은 정말로 얼마나 자주 이 능력을 썼을까. 45세에 죽으려면, 한 달에 5시간씩 썼다고 쳐도... 계산이 맞지 않았다.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었을 수도 있다.

이준호는 능력을 다시 테스트하고 싶었다. 손가락이 미세하게 움직였다. 스킬을 활성화할 준비를 했다. 하지만 멈췄다. 손가락은 이미 창백했고, 수명은 이미 2개월 깎였다. 한 번 더 쓰면 4개월이 된다. 일주일에 한 번씩 위장하면, 월 8개월이 깎인다. 1년에 거의 10년이 깎인다.

"미쳤다."

이준호가 중얼거렸다. 정말로 미쳤다. 강현철은 이 능력을 써서 45세에 죽었다. 그리고 자신은? 자신은 26세였다. 만약 같은 페이스로 간다면, 자신은 대략 32세 정도에 수명을 다할 것이다. 6년. 불과 6년이다.

하지만 강현철은 알고 있었다. 그것을. 그럼에도 글귀를 남겼다.

*'이 능력으로 시스템을 바꿀 수 있다면, 수명 따위는 싼 값이다.'*

6년. 충분한가? 이준호는 자신에게 물었다. 6년 안에 정말로 이 등급 시스템을 바꿀 수 있을까? 100년 동안 정착된 신분제를?

불가능했다. 절대로 불가능했다.

그런데 왜 강현철은 이렇게 썼을까. 왜 이 글귀를 남겼을까. 누군가 이것을 찾을 거라고 믿으면서.

이준호는 폐허 던전에서 발견한 장면을 다시 생각해봤다. 시체 옆에 보석함. 보석함 안에 두루마리. 두루마리 뒷면에 글귀. 이건 우연이 아니었다. 누군가 의도적으로 남긴 메시지였다. 강현철이 누군가를 기다리며 남긴 메시지.

이준호는 핸드폰으로 강현철의 사진을 다시 봤다. 2년 전 부고 기사의 얼굴사진이었다. 날카로운 눈동자. 입꼬리가 약간 올라가 있었다. 웃는 것처럼 보였다.

이준호는 결정을 내렸다. 아니, 이미 내려져 있었다. 강현철의 글귀를 읽는 순간, 모든 것이 정해져 있었다.

협회는 자신을 조사 대상자로 등록했다. 그렇다면 앞으로는 더 조심해야 한다. 능력을 쓸 때마다 들킬 위험이 있다. 정체가 노출되면 능력 자체가 사라진다. 수명도 깎인다.

하지만 강현철은 이미 알고 있었다. 그래서 글귀를 남겼다.

이준호는 협회 문자를 다시 읽었다. '추가 위반 시 면허 취소.' 이미 한 번 위반한 것이다. 어차피 한 발 더 들어가면 끝이다.

"내일도 간다."

목소리가 떨리지 않았다. 하지만 심장은 빠르게 뛰고 있었다. 손가락은 여전히 떨리고 있었다. 창밖의 햇빛이 너무 밝아서 눈을 깜빡여야 했다. 용감한 척했지만, 몸은 정직했다. 공포는 여전히 거기 있었다. 다만 그것을 무언가 다른 것이 짓누르고 있을 뿐이었다.

다음날 오전, 협회의 또 다른 문자가 왔다.

*"폐허 던전 재진입 확인. 면허 정지 조사 중입니다."*

이준호는 그 문자를 읽고 웃음을 터뜨렸다. 정말로 빨랐다. 협회의 감시는 생각보다 촘촘했다. 이미 두 번째 진입을 감지했다는 뜻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더 이상 두려움이 없었다. 두려움을 뒤로하고, 이준호는 다시 던전으로 향했다. 한 주에 세 번. 매번 1시간씩. 매번 수명을 깎아가며.

협회는 계속 문자를 보냈다.

*"헌터 이준호, 면허 박탈까지 72시간 남았습니다."*

72시간. 3일. 그 안에 뭘 할 수 있을까.

이준호는 손가락을 들었다. 창백함은 더 깊어지고 있었다.

*79세 6개월 → 78세 2개월*

1년이 깎였다. 단 며칠 사이에.

하지만 이제는 멈출 수 없었다. 강현철처럼, 이제 그도 알고 있었다. 이 모든 것이 끝나는 시점을.

이준호는 정태민에게 연락했다.

"태민아, 내일 그 던전 함께 가자. 직접 정찰해 보자."

"정말? 그런데 혼자는 위험하지 않아?"

"혼자가 아니야. 넌 나를 따라가면 돼."

이준호는 정태민을 만나기로 했다. 서울 남부의 새로운 던전 입구에서. 그곳에서 이준호는 S급으로 위장할 것이다. 정태민을 보호하면서. 협회의 감시를 피하면서. 자신의 수명을 깎아가면서.

면허 박탈까지 72시간.

그 안에 이준호는 움직여야 했다. 협회의 추적을 피하고, 정태민과 함께 던전을 정찰하고, 약자 헌터들을 모으고, 이 시스템에 균열을 내야 했다.

강현철은 혼자였을 것이다. 그래서 45세에 죽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준호는 다르다. 정태민이 있다. 그리고 곧 더 많은 약자들이 있을 것이다.

이준호는 폐허 던전에서 찾은 두루마리를 다시 읽었다.

*'이 능력으로 시스템을 바꿀 수 있다면, 수명 따위는 싼 값이다. —강현철'*

강현철, 난 너처럼 혼자가 아니다.

이준호는 준비를 시작했다. 새 옷으로 갈아입고, 장비를 챙기고, 정태민과 만날 장소를 정했다. 협회 감시를 피할 경로도 미리 계획했다. 면허 박탈 전에 던전 정찰을 끝내야 했다. 그 이후는 더 이상 헌터가 아닌 존재로서 움직여야 했다.

창밖의 서울은 여전히 평온했다. 저 아래에는 여전히 약자들이 있었다. 정태민 같은. 그들은 내일도 자신의 등급에 맞는 던전으로 들어갈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달랐다.

이제는 누군가가 있었다. 자신의 수명을 깎아가며, 이 시스템을 흔들 누군가가.

이준호는 정태민에게 문자를 보냈다.

*"내일 오전 10시, 남부 신규 던전 입구. 꼭 와."*

응답은 빨랐다.

*"응! 고마워!"*

이준호는 휴대폰을 내려놨다. 손가락을 들었다. 여전히 창백했다. 하지만 이제는 그것이 무서워하지 않았다. 그것은 대가였다. 그리고 그 대가는 이미 치르기로 결정된 것이었다.

강현철이 남긴 글귀가 다시 떠올랐다.

*'이 능력으로 시스템을 바꿀 수 있다면, 수명 따위는 싼 값이다.'*

이제 그 말의 무게를 느낄 수 있었다.

이준호는 창문을 열었다. 밤의 서울이 내려다보였다. 저 아래 거리에는 여전히 헌터들이 움직이고 있었다. S급도 있고, F급도 있고, 그 사이의 모든 등급이 있었다. 그들은 내일도 같은 구조 속에서 같은 운명을 반복할 것이다.

하지만 내일은 달랐다.

내일, 이준호는 그 구조를 흔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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