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 해부된 진실

법정 입구의 계단을 올라가며 이준호는 손을 폈다 쥐었다 반복했다. 손가락 끝이 차가웠다. 옆구리에 박은지가 붙어 있었고, 뒤쪽에서는 카메라 셔터음이 끊이지 않았다. 서울중앙지법 형사 제5부.

호흡이 불안정했다. 5년 전 그 법정의 기억이 떠올랐다. 면허 박탈을 선고받던 판사의 목소리, 자신을 바라보던 동료들의 눈빛. 그 모든 것이 한 번에 밀려왔다.

"증거 자료 다 준비했어?"

박은지가 재확인했다. 손에 들린 폴더가 약간 떨렸다. 이준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마취 기록지 원본, 현미경 분석 결과, CCTV 영상, 그리고 5년 전 의료기록 비교 분석. 모두 국과수 법의학팀이 공식으로 검증한 것들이었다. 검사 이혜진이 기소장에 첨부한 증거들.

하지만 이 모든 것이 충분할까. 이준호는 증인석에서 자신의 모습을 미리 상상했다. 떨리는 목소리, 의심의 눈빛. 법정은 진실을 원하지 않는다. 법정은 승리를 원한다.

법정 문을 열자 실내의 공기가 달랐다. 차갑고 정적인 것. 판사석 아래 검사 이혜진이 자리에 앉아 있었고, 그 맞은편 피고인석에는 김태욱이 검은 양복을 곱게 차려입고 앉아 있었다. 옆에는 서민준 변론인이 서류 뭉치를 정렬하고 있었다.

"피고인 김태욱, 피의자 한준혁 입장."

판사가 낭독했다. 김태욱은 태연한 얼굴로 일어섰다. 마치 자신이 이곳에서 심판받는 것 아니라 누군가를 심판하러 온 사람처럼.

이준호는 증인석 방향을 바라봤다. 오늘 자신이 들어앉을 자리. 손에 들린 폴더의 무게가 갑자기 무거워졌다.

"검사, 증거 자료를 제출하시겠습니까?"

판사가 물었다.

"그렇습니다. 먼저 법의학 감정 결과를 중심으로 사건의 경위를 설명하겠습니다."

이혜진이 일어섰다. 목소리가 명확했다. 판사에게 전달될 그 명확함이 오늘 하루를 결정할 것이었다.

"박수진 피해자의 부검 결과, 마취 기록지에 후행 위조 흔적이 발견되었습니다. 또한 폐 조직 검사에서 비정상적 색소 침착이 관찰되었으며, 이는 비정상적 약물 주입과 일치합니다. CCTV 영상 분석 결과, 의료진이 정맥주사를 통해 미승인 약물을 주입하는 장면이 촬영되었습니다."

이혜진이 증거 사진들을 판사에게 넘겼다. 판사는 안경을 내려 사진을 들여다봤다. 눈썹이 살짝 내려앉았다. 좋은 신호였다.

서민준이 벌떡 일어섰다.

"이의 제기합니다. 법의관의 감정이 과학적 근거가 부족합니다. 폐 조직의 색소 침착은 자연 부패 과정에서도 발생할 수 있으며, CCTV 영상의 화질이 불명확하여 약물 주입 장면으로 단정할 수 없습니다. 또한 마취 기록지의 위조 여부는 법의학 영역이 아닌 문서 감정 전문가의 의견이 필요합니다."

판사의 눈썹이 더 내려앉았다. 입가에 의심의 주름이 생겼다. 이준호는 그 표정을 읽었다. 의심. 아직 확실하지 않다는 신호.

"검사, 반박 의견이 있으신가요?"

"법의관은 국과수 소속의 공식 감정인으로서, 그 의견은 법정에서 최고의 신뢰성을 갖습니다. CCTV 영상은 화질이 명확하며, 폐 조직의 색소 침착은 자연 부패와 달리 약물 주입의 특수한 패턴을 보입니다."

이혜진의 반박이 정확했다. 하지만 판사의 시선이 이미 서민준을 향해 있었다. 입가의 주름이 깊어졌다. 증거의 명확함보다 전문가 간의 이견이 판사의 마음을 흔들기 시작했다.

"피고 측 증인을 소개해주십시오."

서민준이 손짓했다. 뒷문이 열렸고, 한 명의 남자가 들어섰다. 나이는 60대 중반. 안경을 쓴 얼굴에 권위가 묻어났다.

"서울의료대학교 마취과 교수 강윤희입니다."

강윤희는 선서를 하고 증인석에 앉았다. 서민준이 질문을 시작했다.

"교수님, 이 사건의 마취 기록과 환자 모니터링 데이터를 검토해보셨나요?"

"검토했습니다. 마취 기록지의 모든 수치는 정상 범위 내에 있으며, 환자의 산소포화도와 혈압 변화는 일반적인 마취 과정에서 예상할 수 있는 범위입니다."

"마취 기록지의 위조 가능성은 어떻게 보시나요?"

"의료 현장에서 기록지를 수정하는 것은 흔한 일입니다. 초시 기록 실수를 발견했을 때 수정하는 행위는 의료 관행상 일반적입니다."

이준호는 주먹을 쥐었다. 거짓이었다. 완벽한 거짓. 강윤희는 마취 기록지의 필체가 다르다는 것, 잉크 침투 깊이가 다르다는 것, 그리고 시간대가 모순된다는 것을 의도적으로 무시했다. 의료 전문가 집단의 암묵적 동료애. 그것이 법정에서 작동했다.

"이의 있습니까?"

판사가 이혜진을 바라봤다.

"있습니다. 증인의 증언은 기술적 사실에 근거하지 않습니다. 현미경 분석 결과, 마취 기록지에 기록된 볼펜과 겔펜의 잉크가 다르며, 같은 필체로 기록되었음에도 시간 차이가 있습니다. 이는 의료 관행상 일반적 수정이 아닌 의도적 위조의 증거입니다."

판사는 이혜진의 말을 듣는 동안 눈동자를 서민준을 향해 돌렸다. 마치 상대방의 반박을 이미 준비하고 있는 듯한 표정이었다. 입가의 주름이 더 깊어졌다.

"그러나 법의학 감정과 의료 전문가의 의견이 상충할 경우, 법원은 의학적 논쟁으로 판단하게 됩니다. 피고 측 증인을 신뢰하는 쪽으로 판단하겠습니다."

판사가 판결 방향을 미리 드러냈다. 이준호의 심장이 내려앉았다.

"다음으로 증인 이준호 법의관을 소환하겠습니다."

이준호는 일어섰다. 증인석으로 가는 길이 유독 길었다. 발이 바닥을 제대로 디디지 못하는 것 같았다. 손을 들고 선서했다.

"양심에 따라 진실만을 말할 것을 서약합니다."

증인석에 앉자 법정의 냉기가 피부를 스쳤다. 천장의 형광등이 눈을 찔렀다.

"법의관, 박수진 피해자의 부검 결과를 설명해주시겠습니까?"

이혜진이 물었다. 이준호는 심호흡을 했다.

"부검 결과, 박수진의 폐 조직에서 비정상적 색소 침착이 발견되었습니다. 이는 미승인 약물의 정맥주사 주입과 일치하는 패턴입니다. 또한 마취 기록지의 필체와 잉크 성분 분석을 통해 후행 위조가 확인되었습니다. 이 두 증거는 독립적으로 작동했을 때 각각 중요하지만, 함께 고려할 때 의료진의 의도적 행위를 강력하게 시사합니다."

"그 근거를 구체적으로 설명해주실 수 있습니까?"

"현미경 분석 결과, 마취 기록지에 기록된 수치는 두 가지 서로 다른 필기구로 작성되었습니다. 검은 볼펜과 파란 겔펜의 잉크 침투 깊이가 다르며, 같은 필체로 기록되었음에도 시간 차이가 있습니다. 이는 수술 후 기록이 소급 수정되었음을 의미합니다. 의료 기록의 소급 수정은 의료법상 위법입니다."

이준호의 목소리가 명확했다. 법정이 고요해졌다.

서민준이 일어섰다. 그의 눈빛이 변했다.

"법의관, 당신은 5년 전 의료사고로 의학면허를 박탈당했던 사람입니다. 당시 정신과 치료를 받으셨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당신의 감정 결과가 개인적 복수심으로 인해 왜곡되었을 가능성은 없습니까?"

이준호의 몸이 경직됐다. 법정의 공기가 갑자기 무거워졌다. 그 순간 5년 전의 모든 것이 한 번에 떠올랐다. 면허 박탈의 그 날, 정신과 병원의 그 방, 야간 근무 중 손이 떨렸던 그 느낌. 모든 것이 현재와 겹쳐졌다.

"질문이 부적절합니다."

이혜진이 즉시 이의를 제기했다.

"법정에서는 증인의 신뢰성을 문제 삼을 수 있습니다. 판사님, 허용해주시기 바랍니다."

판사의 눈썹이 내려앉았다. 입가의 주름이 깊어졌다. 시선이 이준호에게 향했다.

"답변해주시겠습니까?"

이준호의 손이 떨렸다. 증인석 테이블 아래 무릎이 떨리기 시작했다. 손가락이 폴더의 가장자리를 집었다. 폴더가 미끄러져 테이블에서 떨어졌다. 증거 자료들이 흩어졌다. 이준호는 허둥거리며 집으려 했지만, 손이 제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저는 개인적 감정을 배제하고 과학적 증거만을 분석합니다. 제 감정 결과는 현미경 분석, 조직 검사, CCTV 영상 분석 등 객관적 방법론을 통해 도출되었습니다."

목소리가 떨렸다. 증인석에 앉아 있는 자신이 어떻게 보이는지 알았다. 흔들리는 남자. 신뢰할 수 없는 남자.

"하지만 당신은 정신 질환 이력이 있습니다. 법정에서 이를 무시할 수 없습니다."

"그것은 의료 사건의 과학적 증거와 무관합니다."

"그렇다면 당신이 제시한 현미경 분석 결과가 조작되었을 가능성은?"

"없습니다. 국과수의 분석 절차는 공식적이며, 모든 결과는 검증됩니다."

"국과수 소장의 지시로 당신의 수사가 중단되었다는 것은 조직 내에서도 당신의 분석을 신뢰하지 않는다는 증거 아닙니까?"

법정이 침묵했다. 이준호는 입을 열지 못했다. 서민준의 논리는 완벽했다.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소장은 자신의 수사를 중단했다. 조직의 압박이 있었고, 이준호는 거역했고, 결국 소장은 공식적으로 거리를 두었다. 국과수 내에서 그는 고립되어 있었다.

"판사님, 이것이 바로 문제입니다. 법의관의 감정 결과는 조직 내에서도 신뢰성을 잃었습니다. 공식 기관의 신뢰가 무너진 증거입니다."

판사의 눈썹이 더 내려앉았다. 입가의 주름이 깊어졌다. 시선이 이혜진에게 향했다. 이미 결정난 표정이었다.

이혜진이 일어섰다.

"재반박입니다. 국과수 소장의 수사 중단은 조직적 압박의 결과이며, 이는 이미 언론에 보도되었습니다. 법의관의 감정 신뢰성과는 무관합니다. 오히려 조직 내 정치적 압력이 있었음을 입증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법정에서 신뢰성을 판단하는 것은 판사입니다. 피고 측의 의료 전문가 증인이 감정 결과를 부인했으며, 법의관 자신의 과거 이력과 현재의 조직 내 고립이 신뢰성을 훼손합니다."

판사가 판결의 방향을 명확히 했다. 이준호는 증인석에서 내려왔다. 다리가 풀렸다. 자신이 법정에서 얼마나 초라해 보였는지 느껴졌다.

"마지막으로 5년 전 의료기록 위조 증거를 제출하겠습니다."

이혜진이 마지막 희망을 던졌다.

"이의 제기합니다. 5년 전 사건은 이미 시효가 만료되었습니다. 민사 합의금이 지급되었으며, 형사 고소 포기 각서가 제출되었습니다. 현 사건의 증거 자료로 채택될 수 없습니다."

판사가 즉시 판단했다.

"검사의 증거 자료 제출은 불채택하겠습니다."

법정이 끝났다. 아직 판결문이 남아 있었지만, 결과는 이미 정해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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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법원은 다음과 같이 판단합니다. 피고인 김태욱의 의료행위는 의료 관행상 일반적인 범위 내에 있으며, 법의학적 증거와 의료 전문가의 의견이 상충할 경우 의학적 논쟁으로 판단하여 형사 책임을 묻기 어렵습니다. 따라서 피고인은 무죄입니다."

판사가 판결문을 읽어내렸다. 그 목소리는 담담했다. 마치 날씨 예보를 읽는 것처럼.

이준호는 증인석에서 뒤를 돌아봤다. 판사석의 판사는 판결문을 내려놓고 있었다. 피고인석의 김태욱은 안도의 미소를 짓고 있었다. 변론인 서민준은 종이를 정렬하고 있었다.

그 순간, 이준호의 얼굴을 절망이 스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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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을 나오는 복도. 카메라 셔터음이 울렸다. 기자들의 질문이 쏟아졌다.

"법의관님, 무죄 판결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항소 계획이 있으신가요?"

이준호는 대답하지 않았다. 박은지가 옆에 붙어 있었다. 그녀의 눈은 눈물로 가득 차 있었다.

"판사님이 뭐라고 했어요?"

박은지의 목소리가 떨렸다.

이준호는 입을 열지 못했다. 뭐라고 말할 것인가. 의학적 논쟁이라는 명목 하에 진실이 묻혔다는 것을 말할 것인가. 법정이라는 무대에서 거짓이 승리했다는 것을 말할 것인가.

"죄송합니다."

그것만 나왔다.

박은지가 이준호를 바라봤다. 그녀의 눈에는 분노가 아니라 절망이 있었다. 5년 전 딸을 잃었을 때의 그 절망. 합의금을 받고 입을 다물어야 했던 그날의 무력감. 그것이 다시 돌아왔다.

휴대폰이 울렸다.

국과수 소장의 번호였다.

"준호, 긴급 부검 의뢰가 들어왔다. 같은 병원에서. 이번엔 환자가 아니라 간호사야. 응급실에서 쓰러졌다고. 의료사고 의심으로 경찰이 의뢰했다."

이준호의 손이 멈췄다. 박은지가 그를 바라봤다.

"뭐라고 했어요?"

이준호는 휴대폰을 내려놨다. 법정의 패배,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같은 병원에서 또 다른 죽음이 발생했다. 그리고 이번엔 경찰이 직접 의뢰했다.

"박수진 담당 간호사가 쓰러졌어."

박은지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딸의 이름이 나왔을 때와는 다른 종류의 창백함이었다. 뭔가가 연결되고 있다는 것을 느끼는 표정이었다.

"언제요?"

"모르겠다. 소장이 지금 말했으니까 최근일 거야."

이준호의 눈이 법정 출입구를 향했다. 아직도 김태욱이 서민준과 함께 나오고 있었다. 두 명의 남자는 웃고 있었다.

이준호는 박은지의 손을 잡았다.

"부검을 해야 한다."

"법정에서 졌는데요?"

박은지의 목소리가 떨렸다.

이준호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는 박은지를 이끌어 계단으로 향했다. 법정의 출입구를 지나 로비를 빠져나가는 그의 걸음은 점점 빨라졌다. 복도의 불빛이 그의 얼굴을 스쳤다. 절망에서 무언가 다른 감정으로 변하는 표정이었다.

"시체는 거짓말을 하지 않아."

이준호가 중얼거렸다. 목소리는 낮았지만 명확했다.

박은지가 따라가며 물었다.

"그럼 우리가..."

"증거를 더 찾아야 한다. 법정이 외면한 증거를."

이준호의 발걸음이 빨라졌다. 그의 눈은 이미 부검실을 향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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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 11시 반. 국과수 부검실. 이준호는 흰 가운을 입고 있었다. 시체는 아직 도착하지 않았지만, 그는 이미 준비 상태에 있었다. 부검대 위에 놓인 기구들을 하나하나 확인했다. 현미경, 조직 채취용 칼, 분석 장비.

휴대폰이 울렸다. 최원석이었다.

"준호, 이번 간호사 건 좀 이상해. 응급실 CCTV 영상이 없대. 마침 그 시간에 카메라 고장이 났다고."

"같은 패턴이네."

이준호가 중얼거렸다.

"응, 그리고... 간호사의 이름이 이혜영이야."

이준호의 손이 멈췄다. 휴대폰이 귀에서 떨어질 뻔했다.

"뭐라고?"

"이혜영. 박수진 환자 사건 당시 담당 간호사야. 5년 전 이후로 어디로 갔는지 추적이 불가능했던..."

최원석의 말이 이어졌지만, 이준호는 더 이상 듣지 않았다. 박수진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리고 그 옆에 있던 간호사의 얼굴. 5년 전의 기억이 현재와 겹쳤다. 법정에서 패배한 이 순간, 모든 것이 다시 시작되고 있었다.

"이혜영..."

이준호가 중얼거렸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책장으로 향했다. 5년 전 박수진 사건의 의료기록이 보관되어 있는 곳. 손가락이 파일을 찾았다. 분홍색 폴더. 그 안에는 모든 것이 있었다. 마취 기록, 간호 기록, 약물 투여 현황.

파일을 펼쳤다. 간호사 이혜영의 서명이 여러 곳에 있었다. 5년 전과 지금. 그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을까. 왜 그녀가 쓰러졌을까.

이준호는 현미경으로 5년 전 의료기록의 필체를 들여다봤다. 그리고 법정에서 제시했던 현재의 기록과 비교했다. 손이 떨렸다. 이번엔 절망으로 인한 떨림이 아니었다.

"이혜영..."

이준호가 다시 중얼거렸다. 그의 눈은 의료기록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다음 화의 강제력이 그 안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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