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 소장실의 문이 닫혔다.

이준호는 복도에 남겨졌다. 형광등 아래서 그의 그림자는 벽에 길게 늘어져 있었다.

주먹을 쥐었다가 펼쳤다. 다시 쥐었다.

"누군가는 그 죽음을 듣지 않으려 한다."

중얼거림이 목에서 나왔다. 통제 불능의 울음처럼.

집으로 돌아가는 길. 한강변 아파트의 거실에 들어선 이준호는 유골함을 바라봤다. 아내의 이름이 적힌 흰 상자. 1개월 전 화장장에서 받아온 것. 그 옆에 놓인 사진 액자. 웃고 있는 아내의 얼굴.

그는 아내의 이름을 중얼거렸다.

"지은아."

국과수 소장 김영수의 말이 귓가에 맴돌았다. *'증거 수집 절차를 공식화하기 전에 상층부의 지시를 기다려야 한다'* — 이는 수사 중단을 의미했다. 미안한 말투로 포장된 거절이었고, 조직의 논리였다. 5년 전과 같은 논리였다.

이준호는 휴대폰을 꺼냈다. 화면에 최원석의 이름이 떴다. 통화 기록 — 오전 11시 23분. 아직 읽지 않은 문자가 있었다.

*'준호, 미안해. 정말 미안해. 나도 할 수 없어. 상층부에서 의료사고 사건은 전부 민사로 분류하라는 지시가 내려왔어. 내가 거역하면 끝이야. 너는... 너는 이해할 거지?'*

휴대폰을 귀에 댔다. 콜을 걸었다. 신호음이 울렸다. 한두 번. 세 번. 최원석이 받았다.

"최 경사."

"준호... 이게—"

"왜 대답이 없어?"

"대답이 있고 없고 할 게 아니야. 상층부 지시야. 난 따를 수밖에—"

"넌 내 친구였지."

침묵. 휴대폰 너머로만 최원석의 호흡이 들렸다.

"나도 알아. 넌 옳은 걸 하고 있어. 박수진, 박소은... 다 봤어. 의료기록 분석도 봤고, CCTV도 봤어. 넌 틀리지 않았어. 그런데 난..."

최원석의 목소리가 갈라졌다.

"난 너를 도와줄 수 없어. 그리고 그게... 그게 나를 죽이고 있어."

"그럼 관두면 돼."

"관둘 수 없어. 가족이 있어. 아내가 있고, 애들이 있어. 넌 혼자잖아."

이준호는 대답하지 않았다. 혼자라는 말이 정확했다. 그래서 더 분노가 차올랐다.

"내가 뭘 하길 원해? 내가 경찰을 그만두고 너랑 싸우길 원해? 넌 그것까지 원하는 거야?"

"난 아무것도 원하지 않아. 그냥 진실이 나와야 한다고 생각할 뿐이야."

"진실? 진실이 세상을 바꾸지 못해. 법이 세상을 바꿔. 그리고 법은 조직이 움직여. 넌 그걸 모르니?"

최원석의 목소리가 더 낮아졌다.

"미안해. 진짜 미안해."

통화가 끝났다. 이준호는 휴대폰을 내렸다.

복도는 조용했다. 오후 5시. 국과수 직원들은 대부분 퇴근 준비 중이었다. 누군가의 발자국이 들렸다가 멀어졌다. 이준호는 벽에 등을 기댔다. 눈을 감았다.

5년 전도 이랬다. 그때도 누군가는 입을 다물었다. 그때도 조직은 침묵했다. 그때도 그는 혼자였다.

휴대폰이 울렸다. 이혜진이었다.

"이준호."

"네."

"나 지금 국과수 가는 중이야. 너 아직 있어?"

"네."

"좋아. 내가 가져온 게 있어. 5년 전 박수진 사건 원본 기록들이야. 법원에서 증거 개시를 받았거든. 너한테 직접 줄 수 있는 게 있어."

이준호는 대답하지 않았다. 이혜진의 목소리가 긴장되어 있었다.

"준호, 그리고... 내가 기소 유보 지시를 받았어. 위에서."

"누가?"

"그건 못 물어봤어. 하지만 아주 위에서. 의료사고 수사는 전부 보류하라고."

"그럼 사건은?"

"공중에 뜬 거야. 검사인 나도 기소할 수 없고, 경찰도 수사할 수 없는. 그냥... 사라지기를 기다리는 상황이야."

이준호는 복도의 벽을 바라봤다. 회색 콘크리트 위에 누군가 쓴 낙서가 있었다. 오래된 것이었다. 흐릿했다.

"그럼 누가 막아?"

"그 누군가가 누구인지 알아내는 것도 너의 일이야. 내가 할 수 있는 건 증거를 주는 것뿐이야."

"검사님."

"응?"

"감사합니다."

이혜진은 한숨을 쉬었다.

"감사하지 말고, 이걸 가지고 뭘 할지 생각해. 법정에서는 못 쓸 수도 있어. 하지만 어딘가에는 쓸 수 있을 거야. 너는 그 방법을 찾아야 해."

통화가 끝났다. 이준호는 다시 휴대폰을 내렸다. 책임감이 내려앉는 느낌이었다.

40분 후, 이혜진은 국과수 카페에 앉아 있었다. 마주 보는 테이블에 검사 가방이 놓여 있었다. 회색 폴더. A4 사이즈. 손때가 묻어 있었다.

"다 여기 있어. 5년 전 박수진 사건 부검 기록, 의료기록 원본, 수술실 CCTV 스틸 컷. 그리고 이건 내가 직접 정리한 거야."

이혜진은 노란색 포스트잇이 붙은 메모지를 건넸다.

"당시 마취 기록지의 잉크 분석 결과. 부검을 담당했던 법의관의 소견서. 그리고... 이건 최근에 발견된 거야."

이혜진은 한장의 서류를 더 꺼냈다. 의료기록이었다.

"박수진 사건 당시 주치의. 그리고 담당 마취과 의사. 그리고 간호팀장. 이 세 사람이 모두 서울의료대학교병원에 있었어. 그런데..."

이혜진이 손가락으로 이름들을 짚었다.

"이 세 사람이 모두 5년 전 의대 동창이야. 그 중 한 명은 지금 병원장 김태욱의 직속 부하고, 다른 한 명은 마취과 과장 한준혁이야. 그리고 마지막 한 명은..."

이혜진이 잠깐 멈췄다.

"지금 병원의 이사회 의원이야. 이사진 중 한 명이."

이준호는 서류를 받아 들었다. 손가락이 이름 위를 지나갔다. 한준혁. 병원장 김태욱. 그리고...

"이 사람이 누구예요?"

"이준호."

이혜진의 목소리가 정중했다.

"그 사람이 지금 의료심판원의 위원장이야."

이준호는 서류를 내려놨다. 이번엔 다른 감정이었다. 두려움이었다.

"그럼... 5년 전 내 사건을 심판한 게..."

"그 위원장이야. 직접."

카페는 조용했다. 오후 6시를 넘었고, 손님은 별로 없었다. 이혜진은 일어섰다.

"이제 넌 이걸 가지고 뭘 할지 결정해야 해. 법정이 아니면 어딘가 다른 곳에서. 하지만 조심해. 역고소 위협도 있고, 너의 경력도 위험해. 나도... 나도 이게 한계야."

이혜진은 카페를 나갔다. 이준호는 혼자 남겨졌다. 폴더가 테이블 위에 있었다.

그는 폴더를 열었다.

박수진의 얼굴이 보였다. 부검 기록 첫 페이지에 붙은 사진. 51세 여성. 수술 전 마취 유도 중 심정지. 원인 불명. 기저질환 없음. 건강한 환자였다.

이준호는 페이지를 넘겼다. 마취 기록지가 나왔다. 파란 겔펜과 검은 볼펜의 흔적. 시간대별로 기록된 맥박, 산소포화도, 혈압. 모두 정상 범위. 그런데...

손가락이 한 지점에서 멈췄다.

오후 2시 47분. 마취 깊이(TOF) 기록. 0.8. 정상. 그런데 수치 주변에 다른 색의 펜 흔적이 있었다. 원래는 무엇이 써 있었을까. 지워진 부분. 소급 수정된 부분.

이준호는 현미경을 꺼냈다. 국과수 사무실로 돌아가니 밤 11시였다. 형광등만 켜져 있었다. 누군가 청소를 마친 듯 복도는 텅 비어 있었다.

현미경 아래에서 종이의 표면이 확대되었다. 잉크 침투의 깊이가 다른 부분들. 여러 번 쓰고 지워진 흔적. 이건 의료기록이 아니었다. 위조였다.

그는 다른 페이지를 펼쳤다. 박소은의 기록. 같은 패턴. 같은 손. 같은 시간대의 기록들이 모두 소급 수정되어 있었다.

그리고 한 장 더.

5년 전 기록이 아닌, 최근 기록이었다. 3개월 전. 같은 병원. 다른 환자. 같은 마취과. 같은 패턴.

이준호는 이름을 확인했다.

한준혁. 마취과 과장.

그리고 그 아래, 수술실 감시 의무를 담당한 간호팀장의 서명.

그 이름은 이미 알고 있었다. 5년 전 그를 고소했던 그 간호팀장. 지금은 병원의 이사회 의원이 된 그 사람.

이준호는 마지막 페이지를 넘겼다.

그 페이지에는 사진이 없었다. 대신 수술 기록만 있었다. 2시간 12분의 수술. 마취 깊이 정상 유지. 환자 모니터링 정상. 그리고...

사망 원인: 기저질환으로 인한 예측 불가능한 합병증.

그 환자는 26세였다. 건강한 청년이었다. 수술 전 검사에서 어떤 질환도 발견되지 않았다. 기저질환이 없었다.

그런데 왜...

이준호는 환자의 이름을 봤다.

이름 옆에 적힌 수술 날짜. 1개월 전.

그리고 환자의 관계인 항목.

'배우자: 이준호'

손가락이 떨렸다. 현미경 아래의 종이가 손에서 떨어져 나갔다. 책상 위로 흩어진 기록들. 이름들. 날짜들.

이준호는 의자에서 일어섰다. 책상을 짚었다. 손가락이 문서들을 헤쳤다. 다시 그 이름을 찾았다.

'배우자: 이준호'

아내였다.

5년 전 사망한 환자가 아니었다.

1개월 전에 죽은 아내였다.

이준호는 서류를 떨어뜨렸다. 폴더가 바닥에 흩어졌다. 사진들이 널렸다. 얼굴들. 이름들. 날짜들.

모두 같은 병원이었다.

모두 같은 마취과였다.

모두 같은 패턴이었다.

그리고 마지막 장에는 한 줄의 메모가 있었다. 이혜진의 필체였다.

*'준호, 이걸 보면 넌 이 사건을 포기할 수도 있어. 그럼 넌 안전해. 하지만 넌 포기하지 않을 거야. 왜냐하면 이제 이건 진실의 문제가 아니라 생존의 문제니까. 미안해. 내가 할 수 있는 건 여기까지야. 나머지는 너의 손에 달렸어.'*

이준호는 폴더를 집었다. 휴대폰을 들었다. 화면에 뜬 시간은 밤 11시 47분이었다.

그는 전화를 걸었다.

"이준호?"

박은지의 목소리였다.

"지금 어디 있어?"

"집에... 왜?"

"나갈래? 지금."

"뭐가?"

이준호는 폴더를 들고 일어섰다.

"이 사건이 뭐였는지 알 것 같아."

"뭔데?"

"내 살인사건이야."

통화를 끝내고 이준호는 국과수를 나왔다. 밤 11시 52분. 서울 강남의 야간 거리는 여전히 사람들로 북적였지만, 그의 눈에는 아무것도 들어오지 않았다. 폴더를 가슴에 안고 택시를 잡았다.

한강변 카페는 자정을 넘어서도 문을 열어두고 있었다. 박은지는 이미 테이블에 앉아 있었다. 얼굴이 창백했다. 이준호가 폴더를 펼쳐 보이자, 그녀의 손이 떨렸다.

"이게... 뭐야?"

"5년 전부터의 기록이야. 박소은. 그리고..."

이준호는 마지막 장을 가리켰다. 배우자 항목의 이름.

박은지의 얼굴에서 피가 빠졌다. 그녀는 입을 열었다가 다시 닫았다.

"당신 아내가..."

"1개월 전. 같은 병원. 같은 마취과."

이준호의 목소리는 평탄했다. 하지만 눈은 죽어 있었다.

"내가 몰랐어. 5년 동안 몰랐어."

박은지는 테이블 아래로 손을 내렸다. 그리고 다시 올렸다.

"그럼 이건..."

"살인이야. 조직적인."

이준호는 폴더를 닫았다.

"내일 아침 첫 기차로 서울을 떠나는 게 맞아. 이 파일을 태워버리고, 우리 둘 다 잊어버리는 게 맞아."

"그럼 안 하겠다는 거네?"

박은지의 목소리가 날카로워졌다.

"당신이 하는 말 들어보니까 그런 것 같아."

"아니야."

이준호는 고개를 들었다. 테이블 위의 불빛이 그의 얼굴을 비추고 있었다. 눈동자에 분노가 타오르고 있었다.

"더 크게 해야 한다는 거야. 지금까지는 증거의 문제였어. 이제는 생존의 문제야. 그놈들이 나를 죽이려고 했으니까, 나는 그놈들을 죽여야 해."

"법정에서?"

"법정에서는 안 돼. 이미 알았잖아. 법정은 그놈들 손에 들려 있어."

이준호는 폴더를 테이블에서 집었다. 손가락이 문서의 가장자리를 꽉 움켜쥐었다.

"최원석을 만나야 해. 내일 아침. 그리고 박소은의 기사를 준비해."

박은지는 이준호를 응시했다.

"뭐라고?"

"'의료대학교병원 의료사고 은폐 추적 기자의 딸도 같은 병원에서 사망. 5년 전 의료기록 위조 증거 발굴'이라고."

박은지의 눈이 커졌다.

"당신 미쳤어?"

"맞아. 미쳤어."

이준호는 카페를 나갔다. 한강의 야경이 검은 물 위에 반사되고 있었다. 그는 강변을 따라 걸었다. 1시간을 넘게. 아내의 이름을 중얼거리면서.

새벽 1시 반. 그의 휴대폰이 울렸다. 이혜진이었다.

"준호, 내가 할 수 있는 게 있다. 너 집에 있어? 내가 간다."

목소리가 긴장되어 있었다. 마치 결정적인 무언가를 앞두고 있는 사람처럼.

---

이준호는 집으로 돌아갔다. 한강변 아파트. 5년 동안 아내의 유골함이 놓여 있던 거실. 그는 불을 켰다. 유골함이 선반 위에 있었다. 흰 상자. 그 옆의 액자에는 웃고 있는 아내의 얼굴이 있었다.

이혜진이 도착한 것은 새벽 2시 정각이었다. 검사복을 입은 채 왔다. 마치 법정에서 직접 달려온 것처럼.

"보여줄 게 있어."

이혜진은 폴더를 꺼냈다. 이준호와 똑같은 크기의 폴더였다. 하지만 다른 내용이 들어 있었다.

"5년 전 너의 사건 기록이야. 원본."

이혜진은 페이지를 펼쳤다.

"당시 검찰이 기소 불가 판단을 내렸던 이유는 '의료기록이 불완전해서'였어. 하지만 그건 거짓이야. 의료기록은 완전했어. 아주 완벽했어. 그래서 기소 불가 판단을 내렸어."

"뭔 소리야?"

"의료기록이 너무 완벽했다는 것 자체가 위조의 증거였어. 하지만 그걸 지적할 수 없었어. 왜냐하면..."

이혜진이 멈췄다. 입술이 다물어졌다 펼쳐졌다. 눈이 흔들리고 있었다.

"왜냐하면 누군가 날 지시했거든. '이 사건은 건드리지 말라'고."

"누가?"

"모르겠어. 검사장 위에서 내려오는 지시였어. 당시 나는 신입이었고, 거역할 수 없었어."

이혜진은 또 다른 문서를 꺼냈다. 손가락이 종이를 집는 순간 미세하게 떨렸다.

"그런데 이번에는 달라. 박소은의 부검 기록을 보면서 깨달았어. 5년 전과 똑같은 패턴이야. 같은 병원. 같은 마취과. 그리고 지금도 누군가 날 지시하려고 해. '이 사건은 기소 유보하라'고."

"그럼 누가?"

"모르겠어. 하지만 알 필요는 없어. 왜냐하면..."

이혜진이 이준호를 똑바로 봤다. 그녀의 눈빛이 차가워졌다.

"나는 이미 기소장을 썼어."

침묵이 흘렀다. 거실의 형광등이 윙윙거렸다.

"박소은의 사건으로. 그리고..."

그녀는 마지막 종이를 펼쳤다. 손이 떨렸다. 목소리가 갈라졌다.

"이건 재수사 신청서야. 너의 5년 전 사건에 대한. 새로운 증거가 발견되었다는 이유로."

이준호의 얼굴이 굳었다.

"넌 이걸 하면 끝이야. 경력도, 검사도."

"알아."

이혜진의 목소리는 담담했지만, 목이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그래도 할 거야."

그녀는 입술을 깨물었다.

"왜냐하면 5년 동안 외면한 죽음이 있으니까. 당시 나는 신입 검사였고, 상층부 지시에 거역하지 못했어. 그 죽음이 너였어. 이제는 아니야."

그녀는 문서를 이준호에게 건넸다. 손이 여전히 떨리고 있었다.

"이건 복사본이야. 원본은 내일 아침 법원에 제출해. 그 전에 너는 결정해야 돼. 이걸 받을 거냐, 아니면 다시 포기할 거냐."

이준호는 문서를 들었다.

"왜 이러는 거야?"

이혜진은 아파트의 창문을 봤다. 서울의 야경이 까만 밤하늘 아래 반짝이고 있었다. 그녀의 얼굴에 불빛과 그림자가 교차했다.

"나도 누군가의 죽음을 외면했거든. 이제는 아니야."

그녀는 돌아섰다. 문 앞에서 멈췄다.

"내일 오후 2시, 법정에서 봐. 기소인정 공판이야."

"이혜진."

이준호가 불렀다.

"고마워."

이혜진은 문을 열었다. 현관의 불빛이 그녀의 뒷모습을 비추고 있었다.

"고마워 말고, 증거를 정확히 제출해. 법정에서는 감정이 아니라 증거만 말하니까."

그녀는 나갔다. 새벽 2시 45분. 이준호는 거실에 남겨진 두 폴더를 들었다. 자신의 것과 이혜진의 것. 하나는 죽음의 기록이고, 하나는 그 죽음을 증언하는 것이었다.

휴대폰이 울렸다. 최원석이었다.

"준호, 이거 뭐야? 기소장이 들어왔다고?"

"응."

"미쳤어? 넌 뭘 한 거야? 내가 아까 말했잖아. 상층부에서..."

"알아. 미안해, 원석."

이준호는 전화를 끝냈다.

새벽 3시. 그는 거실 바닥에 앉았다. 두 폴더를 펼쳐 놨다. 51세 여성 박수진. 26세 청년 이준호의 아내. 그리고 그 사이의 수십 명의 얼굴들. 모두 같은 병원에서 죽었다.

그는 손가락으로 아내의 사진을 짚었다.

"이제 말해줄 거야. 세상한테."

폴더 속의 얼굴들이 그를 응시하고 있었다. 죽은 자들의 무언의 증언. 그리고 그 증언을 법정으로 옮기는 일은 이제 시작되려고 했다.

새벽 3시 47분. 이준호는 휴대폰을 들고 이혜진에게 문자를 보냈다.

*'준비됐어. 내일 법정에서.'*

응답은 즉시 왔다.

*'그런데 준호, 하나 더 있어. 너는 몰라도 될 것 같았는데... 김태욱이 어제 밤 경찰에 신고했어. 너를 폭행죄로.'*

이준호의 눈이 움직였다.

*'누구한테?'*

*'5년 전 환자의 유족. 너라고 했어. 그런데 그 유족은 실제로 존재하지 않아. 위증 신고야.'*

*'왜 그러는 거야?'*

*'널 법정에서 제외시키려고. 증인 신청 거부 이유로 만들려고. 똑똑한 놈이야. 너무 똑똑해서 위험해.'*

이준호는 폴더를 다시 펼쳤다. 김태욱의 얼굴이 어디에도 없었다. 그는 의료기록 뒤에만 숨어 있었다. 하지만 그 숨음 자체가 증거였다.

새벽 4시. 이준호는 옷을 갈아입었다. 검사처럼. 법정에 서는 사람처럼. 거울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봤다. 5년 전과 같은 표정이 돌아와 있었다. 그때는 절망의 표정이었다. 이제는 다른 것이었다.

결의.

그는 폴더를 다시 정리했다. 증거들을 순서대로. 마치 법정에 제출할 준비를 하듯이. 창문을 통해 서울의 새벽하늘을 봤다. 아직 어둠이 물러나지 않고 있었다.

하지만 곧 밝아올 것이었다.

새벽 5시 정각. 이준호는 아파트를 나갔다. 법정으로 가는 길. 두 폴더를 가슴에 안고.

법원 복도의 형광등이 그를 비추고 있었다. 오전 9시 30분. 기소인정 공판이 시작되기 1시간 30분 전. 이준호는 복도의 벤치에 앉아 있었다.

최원석이 나타났다. 경찰복을 입은 채였다. 그는 이준호를 보고 발걸음을 멈췄다. 한참을 서 있다가 옆에 앉았다.

"미안해."

그것이 최원석의 첫 마디였다.

"상층부에서 뭐라고?"

"아직 모르겠어. 하지만 난 너를 도와줄 거야. 이제부터는."

이준호는 최원석을 봤다. 그의 얼굴에는 결연한 표정이 있었다.

"경찰을 그만둘 거야?"

"아니. 경찰 안에서 할 수 있는 것들이 있어. 이제는 그걸 하기로 했어."

최원석은 일어섰다. 그리고 이준호의 어깨를 톡 쳤다.

"법정에서 봐."

그는 복도를 나갔다.

오전 10시 50분. 법정 입구 앞. 이준호는 폴더를 들고 서 있었다. 박은지가 옆에 있었다. 그녀의 손에는 노트북이 있었다. 준비된 기사의 원고가 들어 있었다.

"정말 할 거야?"

"응."

박은지는 노트북을 들었다.

"그럼 이건 공판 직후에 올려. 기사가 나가는 순간 그들도 움직일 거야. 하지만 그때는 이미 법정 기록이 남아있을 거고."

이준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고마워."

"고마워 말고, 이기기만 해."

법정의 문이 열렸다. 판사가 입장했다. 검사 이혜진도 자리에 앉았다. 그녀는 이준호를 한 번 봤다. 눈으로 무언가를 전했다. 결의. 그리고 결단.

"피고인 한준혁 입정."

판사의 목소리가 울렸다.

이준호는 증인석으로 향했다. 손에 들린 폴더. 5년 동안 숨겨진 죽음들의 기록. 그리고 그 죽음들을 말하기 위한 마지막 기회.

법정의 형광등이 그를 비추고 있었다.

"증인 이준호, 선서하시겠습니까?"

판사의 물음에 이준호는 손을 들었다.

"선서합니다."

그의 목소리는 명확했다. 떨리지 않았다.

"이 사건에서 발견된 마취 기록의 위조 사실을 증언하겠습니다."

이혜진이 일어섰다. 검사의 신분으로 첫 질문을 던졌다.

"증인께서 국과수 법의관으로서 박소은 사건의 부검을 담당하셨나요?"

"네, 담당했습니다."

"그리고 현미경 분석을 통해 마취 기록지의 위조를 발견하셨다고 했는데, 그 구체적인 내용을 설명해주시겠습니까?"

이준호는 폴더를 열었다. 현미경 사진들을 제시했다. 법정은 조용했다. 판사는 증거 자료를 받아 검토하기 시작했다.

"잉크의 침투 깊이가 다릅니다. 원래 기록된 수치와 나중에 추가된 수치의 펜 종류가 다릅니다. 이는 의료기록이 사후에 위조되었음을 의미합니다."

이혜진의 질문이 계속되었다.

"그렇다면 이 위조가 환자의 사망과 어떤 연관이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마취 기록이 위조되었다는 것은 실제 마취 관리가 기록과 다르게 이루어졌다는 뜻입니다. 특히 마취 깊이 수치가 변조되었다는 것은 과다 마취 또는 부적절한 마취 관리의 증거가 될 수 있습니다."

검사 이혜진은 다음 증거를 제시했다. 5년 전 박수진 사건의 기록들.

"증인께서 5년 전 박수진 사건도 검토하셨나요?"

"네. 동일한 위조 패턴을 발견했습니다."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단순한 기록 오류가 아니라 조직적이고 의도적인 위조라는 뜻입니다."

법정 안의 공기가 무거워졌다. 피고인 한준혁은 얼굴을 굳혔다. 그의 변호사는 빠르게 무언가를 메모했다.

판사가 개입했다.

"증인께서 이러한 위조가 누구의 지시에 의한 것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직접적인 증거로는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의료기록 위조는 한 개인이 단독으로 할 수 없습니다. 마취과 의사, 간호팀장, 그리고 이를 승인하는 상급자의 협력이 필요합니다."

이혜진은 다시 질문했다.

"그렇다면 이 사건에 관여된 인물들을 특정할 수 있습니까?"

이준호는 의료기록의 서명란을 가리켰다. 한준혁. 그리고 간호팀장의 이름.

"마취 기록에 서명한 사람은 피고인 한준혁입니다. 그리고 수술실 감시를 담당한 간호팀장도 기록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 간호팀장은 현재 어느 직책에 있습니까?"

"병원의 이사회 의원입니다."

법정이 술렁였다. 기자들이 빠르게 기록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있습니다."

이준호가 마지막 증거를 제시했다. 1개월 전의 수술 기록. 배우자 항목에 적힌 자신의 이름.

"이 환자는 저의 아내입니다. 1개월 전 같은 병원 같은 마취과에서 수술 중 사망했습니다. 사망 원인은 기저질환으로 기록되었지만, 아내는 건강한 상태였습니다. 그리고 마취 기록에는 동일한 위조 패턴이 있습니다."

침묵이 흘렀다. 법정의 모든 시선이 이준호에게 집중되었다.

"이는 단순한 의료사고가 아니라 조직적인 살인에 해당할 수 있습니다."

이혜진은 기소장을 낭독했다. 박소은 사건뿐 아니라 5년 전 박수진 사건, 그리고 최근 3개월 동안 같은 패턴으로 사망한 다른 환자들까지 포함된 기소장이었다.

"법원은 피고인 한준혁을 의료법 위반, 기록 위조, 그리고 과실치사로 기소합니다."

판사는 다음 공판 날짜를 정했다. 그리고 피고인의 구속 여부를 결정하기 위한 구속 전 피의자 심문을 명령했다.

법정을 나오며 이준호는 폴더를 내려놨다. 박은지가 기다리고 있었다. 그녀는 노트북을 열었다.

"지금 올려도 돼?"

이준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응. 올려."

기사는 1시간 뒤 온라인에 떴다. 제목은 정확했다.

*'의료대학교병원 의료사고 은폐 추적 기자의 딸도 같은 병원에서 사망. 5년 전 의료기록 위조 증거 발굴'*

서울의 밤하늘 아래, 그 기사는 빠르게 퍼져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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