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 플레이오프 결승전

호텔 라운지의 스크린에 명단이 떴을 때, 준호는 숨을 멈췄다.

국가대표팀 최종 선발 명단. 공격수 포지션. 이준호.

글씨가 흐릿해졌다. 손이 떨렸다. 화면을 다시 본다. 여전히 자기 이름이 거기 있다.

옆자리에 앉은 기자 정수연이 먼저 움직였다. 휴대폰 카메라를 들이댔다.

"축하합니다. 본대 선발이네요."

준호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명단을 다시 훑었다. 공격수 라인. 자신, 그 아래 최동욱. 최동욱도 본대다. 하지만 순서가 다르다. 자신이 위에 있다.

경기대 대학원 시절로 회귀한 지 2년 4개월. 세터에서 공격수로 포지션을 바꾼 지 1년 8개월. 절대 감각을 처음 느낀 지 1년 6개월.

이 순간이 올 줄 알았지만, 실제로 이름을 보니 달랐다.

"감정이 어떠신가요?" 정수연이 다시 묻는다.

"실감이 안 난다."

"프로 데뷔 당시 이런 심정이셨나요?"

준호는 고개를 젓는다. "그때는 확신했어. 이제는... 다르다."

그의 손가락이 휴대폰 화면을 누른다. 채은의 연락처. 통화 버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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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은의 목소리는 울음과 웃음이 섞여 있었다.

"미쳤다! 본대 선발이 뭐하는 거야!"

준호는 침대에 누워 천장을 봤다. "너는?"

"나? 나도 좋은 소식 있어."

침묵이 흐른다. 준호는 알고 있었다. 채은이 그 톤으로 말할 때는 뭔가 결정적인 게 있을 때다.

"프로팀 스카우트 제안이 들어왔어. 수도권 세터로 내정된 거 같아."

준호의 손가락이 움직인다. 버튼 없이도 누르는 제스처.

"어느 팀?"

"아직 비밀. 계약서 사인하고 나서 말할 거야. 근데 준호, 혹시..."

"뭐?"

"혹시 우리 같은 팀에 들 수도 있지 않을까?"

준호는 웃음을 참지 못한다. "서울 엘리트?"

"모르지! 감독님이 '좋은 세터 캐스팅 중'이라고 했다니까."

준호는 더 이상 대답하지 않는다. 채은의 목소리가 계속 흐른다. 그 목소리 속에서 준호는 1년 전 자신의 모습을 본다. 채은이 세터로 프로에 가는 것. 자신이 처음 부상당했을 때 채은이 했을 법한 꿈.

"준호? 듣고 있어?"

"응. 정말 축하해."

"너도 축하받아야지! 본대 선발이고, 최동욱도 있다고 들었는데, 순서가 너 위에 있다던데?"

준호는 침대에서 일어난다. "응."

"그럼 넌 국가대표 주전이네? 미친..."

그 밤, 준호는 채은과 30분을 통화했다. 채은이 프로 계약 조건을 설명할 때, 자신의 미래에 대해 묻을 때, 그리고 마지막에 "우리 프로에서 만나자"라고 말할 때. 준호는 한 번도 끊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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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일 뒤, 스페인 스카우트 마르코의 이메일이 도착했다.

**[제안] 스페인 프리메라 디비시온 로테스 CF 정식 계약**

준호는 메일을 읽으면서 숨을 천천히 내쉰다. 연봉은 한국 프로 평균의 8배. 계약 기간 3년. 보너스 조건. 주거 지원.

모든 게 현실적이었다. 너무 현실적이어서 오히려 무서웠다.

그는 박준영 감독에게 전화했다.

"감독님."

"뭐?"

"해외리그 제안이 들어왔습니다."

침묵. 그 침묵이 길어진다.

"스페인입니다. 프리메라 디비시온. 연봉 조건도 좋고..."

"그래서?"

준호는 숨을 고른다. 손가락이 떨렸다. 연봉 8배. 더 큰 무대. 국내 복귀의 어려움. 그 모든 것들이 뇌리를 스쳤다. 하지만 그 위에 채은의 목소리가 있었다. 우리 프로에서 만나자.

"저는 거절하고 싶습니다."

"뭐라고?"

"저는 서울 엘리트와 함께 우승을 하고 싶습니다."

다시 침묵. 이번엔 다르다. 박준영의 침묵은 계산의 침묵이다.

"그거 알지? 해외리그 한 번 가면 국내 복귀가 얼마나 어려운지. 네가 스페인에서 활약하면, 더 좋은 팀에서 스카우트할 거야. 지금 거절하면 나중에 후회할 수도 있다."

준호는 이미 알고 있다. 프로 시절 수많은 선수들이 해외리그로 떠났다. 그 중 국내로 돌아온 선수는 손에 꼽힌다. 하지만 그것도 중요하지 않았다.

"후회하지 않겠습니다."

"확신하나?"

"네."

박준영은 목청을 낮춘다. "넌 뭐가 다른 거야?"

준호는 대답하지 않는다. 그대신 자신이 본 것들을 떠올린다. 채은의 불완전한 토스를 받아내며 우승했을 때의 감각. 도현이 자신을 믿을 때의 시선. 경기 후 라커룸에서 팀메이트들이 자신을 부를 때의 목소리. 그리고 3년 전 박준영이 자신을 버렸던 그 순간. 그 순간에 다짐했던 것. 언젠가 이 팀 앞에서 우승을 들어올리겠다는 약속.

"우리가 우승하면... 다르잖습니까."

박준영은 한숨을 쉰다. "그 자신감은 어디서 나와?"

"모릅니다. 그냥... 알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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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대표 본대 선발 명단이 공식 발표되던 날, 준호는 박준영 감독의 사무실로 불렸다.

감독실 문을 열고 들어선 준호. 박준영은 책상 위의 펜을 굴리고 있었다.

"들었어. 스페인 제의를 거절했다고."

준호는 감독 앞에 선다.

"후회하지 않겠나?"

"아닙니다."

"이유를 말해봐."

준호는 숨을 쉰다. 이 남자에게 처음으로 진심을 말하는 순간이다.

"제 꿈은 스페인이 아닙니다. 이 팀과 함께 우승하는 것입니다. 3년 전, 당신이 저를 버렸을 때 그 생각을 했습니다. '언젠가 나는 이 팀 앞에서 우승을 들어올리겠다'고. 그게 제 꿈입니다."

박준영은 펜을 멈춘다. 그의 얼굴에는 여전히 표정이 없지만, 눈동자가 움직인다. 3년 전 준호를 버린 결정, 그리고 지금 준호가 돌아온 이유를 동시에 이해하는 눈빛이다.

"그 꿈이 현실이 될까?"

"될 겁니다."

"확신인가?"

"네."

박준영은 의자에 기댄다. 그리고 처음으로 준호에게 미소를 지었다. 그것은 작은 미소였지만, 그 미소 안에는 3년의 시간이 담겨 있었다. 3년 연속 우승이라는 기록도, 그리고 놓친 선수의 부활도 함께.

"좋아. 우리가 해보자. 이번이 마지막이야."

그 말 속에는 또 다른 의미도 있었다. 박준영 자신도 이것이 마지막 우승이 될 것임을 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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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대표 선발전은 경기도 일산체육관에서 열렸다. 준호는 워밍업 중에도 손가락을 계속 펴고 구부렸다. 절대 감각을 쓸 준비가 아니라, 쓰지 않을 준비였다.

국가대표 감독 이기호는 준호에게 명확히 했다.

"넌 이 경기에서 절대 감각을 쓰지 마. 내가 보고 싶은 건 팀 플레이다."

상대는 일본 대표팀이었다. 브로커 높이 3.1미터, 평균 신장 190센티미터. 막강했다.

1세트, 준호는 절대 감각을 느꼈지만 억눌렀다. 킬러 패스를 받은 순간 상대 수비가 느려 보였다. 그 느려진 세상에서 최적의 각도와 타이밍이 손가락 끝까지 흘러내렸다. 하지만 준호는 그것을 무시했다.

대신 세터의 토스를 믿었다. 세터의 토스는 완벽하지 않았다. 오른쪽으로 약간 떨어져 있었다. 하지만 준호는 그 떨어진 토스 안에서 타이밍을 맞췄다. 스파이크는 네트를 넘었고, 블로킹을 피했다. 킬.

박수가 터졌다. 해설진이 외쳤다.

"이준호 선수! 불완전한 토스도 소화합니다!"

2세트, 상대팀이 연속 득점을 올렸다. 경기의 흐름이 기울어지고 있었다. 이 순간이 절대 감각이 필요한 순간이었다. 경기를 뒤집을 수 있는 타이밍. 준호는 손가락을 펼쳤다.

킬러 패스. 상대 수비가 정지했다. 0.5초의 세상. 모든 게 명확했다. 블로킹의 위치, 리베로의 움직임, 코트의 빈 공간. 준호의 팔이 올라갔다.

스파이크는 정확했다. 상대팀의 왼쪽 끝 라인. 수비수의 손가락 끝을 스치고 나갔다. 아웃 하나 차이로 인 코트. 킬.

경기장이 폭발했다.

경기는 대한민국의 승리로 끝났다. 준호는 25개의 킬을 기록했다. 그 중 1개만 절대 감각을 썼다.

라커룸에서 이기호 감독은 준호의 어깨를 두드렸다.

"좋아. 넌 선수다."

그 말의 의미를 준호는 안다. 절대 감각을 쓰지 않아도 우승 팀의 공격수라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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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대표 선발전이 끝나고 2주 뒤, V리그 플레이오프 일정이 발표되었다.

준호는 박준영 감독의 사무실 앞에서 그 일정표를 봤다.

**플레이오프 4강전: 서울 엘리트 vs 대구 스톰**

**플레이오프 결승전: [4강 승자] vs [동부 리그 우승팀]**

동부 리그 우승팀은 이미 결정되어 있었다.

인천 타이거스.

최동욱이 소속한 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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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레이오프 4강전 당일.

경기장은 가득 찼다. 서울 엘리트 vs 대구 스톰. 첫 경기부터 긴장감이 흘렀다.

1세트, 준호는 절대 감각을 쓰지 않았다. 채은의 토스를 받아서 스파이크를 날렸다. 정확했다. 하지만 완벽하지는 않았다. 그리고 그것이 좋았다.

상대팀이 연속 득점을 올렸다. 경기의 흐름이 기울어졌다.

2세트 중반, 박준영 감독이 타임아웃을 불렀다.

"준호. 절대 감각을 써."

준호가 눈을 든다.

"하지만 팀을 믿어. 절대 감각은 도구야. 도구는 손이 있어야 의미가 있다. 그 손은 채은의 손이야. 알겠나?"

"네."

준호는 코트로 나간다. 킬러 패스가 날아온다. 준호는 손가락을 펼친다.

0.5초의 세상. 모든 게 명확했다. 하지만 이번엔 다른 게 보였다. 채은의 토스 궤적. 상대팀 블로킹의 약점. 그리고 팀메이트들의 믿음.

준호는 스파이크를 날렸다. 킬.

경기장이 울렸다.

그 순간, 준호는 알았다. 절대 감각도 결국 혼자가 아니라는 걸. 절대 감각은 팀과 함께할 때 비로소 절대가 된다는 걸.

3세트, 대구 스톰의 저항이 거세졌다. 준호는 다시 절대 감각을 썼다. 상대 수비의 약점을 포착했고, 팀메이트들의 움직임을 읽었다. 스파이크는 정확했다. 킬. 또 킬. 또 다시 킬.

4세트, 준호는 절대 감각 없이 경기를 풀어갔다. 채은의 토스를 믿고, 팀메이트들을 믿고. 불완전한 토스도 소화했고, 어려운 상황도 헤쳐나갔다.

중원을 잡기 위한 랠리. 준호의 팀메이트가 상대 스파이크를 리시브했다. 채은이 토스를 올렸다. 준호가 점프했다. 상대 블로킹이 준호의 팔을 막으려 올라왔다. 준호는 손목을 꺾었다. 스파이크는 블로킹 손가락 끝을 스치고 라인 안으로 떨어졌다. 킬.

경기는 서울 엘리트의 승리로 끝났다. 3:1.

준호는 32개의 킬을 기록했다. 그 중 절대 감각은 4번만 사용했다.

라커룸에서 박준영 감독은 선수들을 보고 말했다.

"내일 결승전 상대가 결정된다. 인천 타이거스다. 최동욱이 있는 팀이다."

준호는 감독의 말을 듣고 있었다. 이미 알고 있던 사실이지만, 이제 현실이 되었다.

주장 도현이 준호를 바라봤다. 그 시선은 명확했다. 이제 너에게 달렸다는 뜻이었다. 준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밤, 준호는 라커룸으로 간다. 락커 위의 글러브를 꺼낸다. 검은색 가죽. 손가락마다 번개 무늬가 새겨져 있다. 그 글러브를 끼면서 중얼거린다.

"이번엔 다르다."

손가락이 글러브 안에서 움직인다. 완벽하게 맞아떨어진다. 마치 처음 끼웠을 때처럼.

하지만 이번엔 준호는 알고 있다. 절대 감각은 도구일 뿐이라는 걸. 도구는 사용하는 손이 있어야 의미가 있다. 그 손은 자신의 손이 아니라, 팀의 손이어야 한다.

글러브를 벗고 다시 락커에 넣는다. 그리고 채은에게 문자를 보낸다.

**"우리 우승하자. 프로에서 만나."**

채은의 답장은 5초 뒤 왔다.

**"응! 파이팅!!!"**

준호는 휴대폰을 내려놓고 창밖을 본다. 서울의 밤하늘이 검다. 그 검은 하늘 위에 준호의 그림자가 있다. 글러브를 낀 손. 공을 던지는 팔.

그림자는 움직인다.

---

플레이오프 결승전 당일이 되었다.

경기장은 준비되었다. 인천 타이거스 vs 서울 엘리트. 국내 최강의 두 팀.

준호는 라커룸에서 글러브를 낀다. 검은색 가죽. 손가락마다 번개 무늬.

박준영 감독이 그를 불렀다.

"준호."

준호가 고개를 든다.

"이번이 마지막이야. 우리가 우승하자."

준호는 글러브를 꽉 쥔다. 손가락이 글러브 안에서 움직인다.

"네. 우승하겠습니다."

코트로 나선다. 경기장의 불빛이 준호의 얼굴을 비춘다. 그의 눈은 초롱초롱했다.

상대팀 워밍업이 끝나고, 최동욱이 준호를 본다. 그 순간 최동욱의 얼굴이 굳었다. 준호는 3년 전과 달랐다. 절대 감각의 도구가 아니라, 팀의 무기가 되어 있었다.

경기 시작 신호가 울린다.

채은이 토스를 올린다. 준호가 점프한다. 손가락을 펼친다.

0.5초의 세상이 열린다.

상대팀의 블로킹이 정지했다. 준호의 눈이 모든 것을 포착했다. 최동욱의 위치, 리베로의 움직임, 코트의 빈 공간. 그리고 채은의 토스 궤적.

준호는 중얼거린다.

"이번엔 다르다."

팔이 올라간다. 스파이크가 날아간다.

상대팀의 왼쪽 끝 라인을 향해. 최동욱의 손가락 끝을 피해. 정확하게.

킬.

경기장이 폭발했다.

준호는 코트 위에서 미소를 지었다. 절대 감각을 쓰면서도, 채은의 토스를 믿고 있었다. 팀메이트들을 믿고 있었다.

1세트는 서울 엘리트의 승리였다. 25:22.

2세트, 인천 타이거스가 강하게 나왔다. 최동욱이 연속 킬을 기록했다. 준호도 응수했다. 절대 감각과 팀 플레이의 조화. 채은의 불완전한 토스도 완벽하게 소화했다.

중반을 지나면서 준호는 절대 감각을 한 번 더 풀었다. 경기의 판세를 뒤집을 순간이었다. 상대팀의 스파이크가 날아왔고, 주장 도현이 몸을 날려 리시브했다. 채은이 토스를 올렸다.

준호는 손가락을 펼쳤다.

0.5초. 그 시간 속에서 준호는 모든 것을 봤다. 최동욱의 블로킹 위치, 상대 수비의 움직임, 그리고 도현의 리시브를 가능하게 한 믿음.

준호는 스파이크를 날렸다. 킬.

도현이 준호를 봤다. 그 눈에는 주장의 신뢰가 있었다. 너를 믿는다는 눈빛.

최동욱은 준호를 봤다. 그 눈에는 경쟁심이 아니라 존경이 있었다. 3년 전과는 다른 준호. 팀과 함께 성장한 준호.

2세트는 서울 엘리트가 가져갔다. 25:23.

3세트, 인천 타이거스가 집중력을 높였다. 최동욱이 준호를 마크했다. 준호의 모든 스파이크를 읽으려 했다. 하지만 준호는 절대 감각으로 그 마크를 피했다.

중반을 지나면서 준호는 절대 감각을 쓰지 않기로 결정했다. 팀을 믿기로 했다. 채은의 토스를 믿고, 도현의 리더십을 믿고, 팀메이트들을 믿고.

불완전한 토스도 받아냈다. 어려운 상황도 헤쳐나갔다. 최동욱의 마크도 팀플레이로 뚫었다.

도현이 상대 스파이크를 리시브했다. 채은이 토스를 올렸다. 준호가 점프했다. 최동욱의 블로킹이 올라왔다. 준호는 손목을 꺾었다. 스파이크는 블로킹 손가락 끝을 스치고 사이드 라인 안으로 떨어졌다. 킬.

3세트는 서울 엘리트가 가져갔다. 25:20.

경기는 끝났다. 3:0. 서울 엘리트의 우승.

준호는 코트 위에 무릎을 꿇었다. 손가락이 떨렸다. 숨이 가쁜 상태에서 준호는 손가락을 펴고 구부렸다. 글러브 안의 손가락들이 경련했다. 3년 전, 자신이 버려졌던 그 팀. 그 팀과 함께 우승했다.

박준영 감독이 준호를 안았다. 감독의 어깨가 미세하게 떨렸다. 3년 연속 우승. 그리고 놓친 선수의 부활. 두 가지 감정이 겹쳐 있었다.

"잘했다. 정말 잘했다."

라커룸에서 팀메이트들이 준호를 들어올렸다. 채은이 울면서 웃었다.

"우리 했어! 우승했어!"

준호는 채은을 안았다. 1년을 함께한 세터와 공격수. 그들의 호흡은 말 없이도 모든 것을 말했다. 채은의 토스와 준호의 스파이크. 그 둘이 만나 만들어낸 우승의 순간.

"수고했어. 정말 수고했어."

도현이 준호의 어깨를 두드렸다. 그 손은 경기 내내 준호를 리드했던 손이었다. 준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경기 후, 준호는 최동욱을 만났다. 인천 타이거스 라커룸 앞에서.

최동욱이 먼저 나왔다. 준호를 본 최동욱의 얼굴은 피곤했지만, 눈은 맑았다.

둘은 말 없이 마주봤다. 경기장의 불빛이 그들의 얼굴을 비췄다. 3년의 경쟁, 그리고 이 순간.

"잘했어."

최동욱이 먼저 말했다.

"너도 정말 잘했어."

준호가 대답했다.

최동욱은 손을 내밀었다. 준호는 그 손을 잡았다. 글러브를 낀 손과 맨손이 만났다.

"다음 시즌에 또 만나자."

"응. 그때까지 더 강해져 있을 거야."

최동욱은 미소를 지었다. 그 미소에는 경쟁심이 아니라 동료애가 있었다. 같은 길을 걷는 두 선수의 인정. 3년 동안 서로를 높여준 경쟁자에서 이제는 존경하는 선후배로.

"고마워. 너 때문에 더 강해질 수 있었어."

준호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최동욱의 손을 한 번 더 세게 잡았다. 그것이 모든 말을 대신했다.

---

우승 직후, 정수연 기자가 준호를 찾았다.

"준호. 소감 한 말씀."

준호는 잠시 침묵했다. 경기장의 소음 속에서 자신의 심장이 정상으로 돌아오기를 기다렸다. 손가락의 경련도 멈췄다.

그리고 천천히 말했다.

"절대 감각이 나를 만들었다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그게 아니었어요. 팀이 나를 만들었어요. 채은의 토스, 도현의 리더십, 팀메이트들의 믿음, 감독님의 지도. 그 모든 게 모여서 절대 감각이 의미를 갖게 된 거예요."

정수연 기자는 웃음을 터뜨렸다.

"3년 전 준호는 절대 감각만 믿었는데, 이제는 팀을 믿는군. 정말 많이 변했네."

준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변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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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승식에서 준호는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렸다. 경기장이 울렸다. 박수가 터졌다. 환호성이 울렸다.

그 순간, 준호는 생각했다. 3년 전, 자신이 버려졌던 그 순간. 그 순간이 없었다면, 이 순간도 없었을 것이다.

절대 감각은 선물이었다. 하지만 그 선물을 의미 있게 만든 것은 팀이었다.

준호는 우승 트로피를 높이 들었다. 검은색 가죽 글러브를 낀 손으로.

그리고 중얼거렸다.

"이번엔 정말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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