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 6화 재대면, 과거와의 대화

박준영 감독실의 문이 열렸을 때 준호의 손가락이 저렸다.

세 번의 노크 소리, 그리고 감독이 들어오라는 목소리. 준호는 소파에서 일어섰는데, 손가락 끝이 자꾸 떨렸다. 마치 절대 감각을 발동한 직후처럼. 하지만 지금 경기는 끝났고, 어떤 킬러 패스도 날아오지 않았다. 그저 두려움이었다.

박준영은 창밖을 보고 있었다. 서울 엘리트의 훈련장 전망이 펼쳐진 창 너머로 노을이 지고 있었다. 감독은 한 손을 주머니에 넣은 채 움직이지 않았다.

"이준호."

감독이 먼저 입을 열었다. 준호의 이름을 부르는 방식은 여전히 차갑고 계산적이었다.

"네, 감독님."

"너를 데려올 때 나는 절대 감각만 보았다."

박준영이 돌아섰다. 그의 눈이 준호를 맞췄을 때, 준호의 시력이 일시적으로 흐려졌다. 절대 감각을 과다 사용한 후유증이 아직 남아 있었던 것이다. 준호는 눈을 깜박였다.

"지난 1년간 대학 경기 영상을 봤다. 너의 모든 킬 장면을. 그리고 데이터 분석팀에 맡겼다. 너의 절대 감각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감독이 책상 위의 노트북을 켰다. 화면에는 준호의 경기 영상이 떴다. 대학 시절의 준호가 스파이크를 날리고 있었다. 그 순간의 신체 각도, 손목의 회전, 공의 궤적. 모든 것이 데이터로 분석되어 있었다.

"이 각도에서 이 속도의 토스를 받을 때, 넌 항상 0.5초 이내에 판단을 내린다. 상대 블로커의 움직임을 읽고, 최적의 타점을 선택한다. 이건 인간의 반응 속도를 초월한다."

박준영이 화면을 넘겼다. 다른 각도의 영상들이 계속 나타났다.

"하지만 넌 왜 실패했나?"

준호는 대답하지 못했다.

"넌 절대 감각에만 의존했다. 세터를 믿지 않았다. 수비를 믿지 않았다. 팀을 믿지 않았다. 그래서 3년 전 나는 너를 내보냈다. 절대 감각은 강했지만, 팀 플레이어로서 넌 약했거든."

감독이 노트북을 닫았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박준영의 얼굴이 흔들렸다. 그 일순간의 동요가 감독의 얼굴에 깊은 주름을 만들었다.

"사실 나도 그 결정이 맞는지 확신하지 못했다."

박준영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절대 감각이 깨어났다는 신호를 보고 너를 내보냈지만, 그게 너를 단련시키는 거라고 자기기만했다. 너를 버린 게 아니라고. 하지만 깊숙이는... 내가 너를 포기했다고 생각했다."

감독이 준호의 눈을 마주쳤다.

"그런데 지난 몇 개월, 너는 변했다. 대학 리그에서 넌 세터와 호흡했다. 팀의 수비를 믿고 공격했다. 그리고 절대 감각은 여전했지만, 이제 그것이 팀을 위한 도구가 되었다. 내가 3년 전에 원했던 모습이 바로 그것이었다."

박준영이 한 발 가까워졌다.

"그래서 다시 데려오기로 했다. 넌 이제 다르니까."

준호의 손가락 저림이 심해졌다. 손가락 끝이 마치 전류에 감전된 듯 쭈뼛거렸다. 그는 주먹을 쥐었다 폈다를 반복했다. 가슴도 철렁했다. 3년 전 그 순간이 다시 떠올랐다. 2군 발령장. 은퇴 권고서. 그리고 임준석이 입단하며 자신의 등번호가 누군가 다른 사람에게 넘어가던 그 날의 무기력함.

하지만 준호는 숨을 천천히 들었다 놨다.

"감사합니다, 감독님."

목소리가 떨리지 않았다.

"감독님이 보여주신 데이터, 분석... 모두 제 약점을 정확히 지적했습니다. 제가 절대 감각에만 의존했다는 것을. 그리고 지난 1년간 저는 그것을 고치려고 노력했습니다. 완벽함보다는 팀을 먼저 생각하는 법을 배웠습니다."

준호가 한 발 앞으로 나갔다.

"감독님이 3년 전에 제 데이터를 분석했다면, 지금도 제 변화를 보셨을 겁니다. 그래서 저를 다시 데려오신 거죠. 절대 감각이 아니라, 제 성장을 믿으셨던 거라고 생각합니다."

박준영의 얼굴이 미세하게 움직였다. 입꼬리가 내려갔다가 다시 올라왔다. 감정이 흔들렸던 것이다.

"맞다. 이번엔 다를 거지?"

"네, 감독님. 이번엔 절대 감각이 팀을 이기는 도구가 아니라, 팀이 저를 이기는 과정에서 나오는 결과가 되겠습니다."

준호의 손가락이 여전히 떨리고 있었지만, 그는 이제 그것을 숨기지 않았다. 박준영이 그 떨림을 보았다. 감독의 눈이 준호의 손으로 내려갔다.

"좋아. 그럼 계약서에 사인하자."

---

펜이 계약서에 닿았다.

서명이 완성되는 순간, 박준영이 입을 열었다.

"이준호."

"네, 감독님."

"이번엔 혼자 하지 말아라. 팀의 토스를 받아라. 팀의 수비를 믿어라. 그게 절대 감각보다 강한 거야."

준호의 손이 멈췄다. 그 말은 3년 전 감독이 절대 감각만을 강요했던 것과는 정반대였다. 박준영이 변한 것이 아니라, 준호가 변했기에 감독도 다르게 말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감사합니다, 감독님."

준호가 고개를 숙였다. 그것은 인사가 아니었다. 그것은 감사였다. 자신을 버렸던 감독이, 그 결정 속에서 자신이 성장했고, 그 성장을 다시 믿어주는 것에 대한 진심어린 감사였다.

---

훈련장으로 향하는 복도에서 정수연 기자가 나타났다.

"준호, 잠깐만요."

기자는 녹음기를 들고 있었다. 그녀의 눈은 여전히 준호의 모든 것을 파헤치려는 강렬함으로 가득했다.

"지난 1년간 당신의 여정을 취재해왔습니다. 회귀, 절대 감각, 그리고 팀플레이로의 전환. 당신은 버려진 천재가 맞습니다. 하지만 이 재입단이 복수인지, 아니면 성장의 연속일 뿐인지 묻고 싶습니다."

준호는 기자의 녹음기를 바라봤다.

"복수는 아닙니다."

"그럼 뭐죠?"

"약속입니다."

"누구와의 약속입니까?"

준호가 잠시 생각했다. 그 질문의 답은 복잡했다. 채은과의 약속. 도현과의 약속. 그리고 박준영과의 약속. 하지만 가장 중요한 건 자신과의 약속이었다.

"제가 스스로와 한 약속입니다. 다시는 팀을 믿지 못하는 그런 선수가 되지 않겠다는."

기자가 또 다른 질문을 던지려 했지만, 준호는 이미 훈련장으로 향하고 있었다.

---

탈의실의 문을 밀고 들어섰을 때, 임준석이 로커 앞에 서 있었다.

세터의 어깨가 경직되었다. 준호를 보는 순간, 임준석의 얼굴이 굳었다. 3년 전 준호를 대체한 그 순간부터 시작된 어색함이 이 순간에 폭발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준호는 천천히 걸어갔다.

"안녕, 잘 지냈어?"

그 말 한 마디가 모든 것을 바꿨다. 준호의 목소리에는 원망도, 질책도 없었다. 그것은 단순한 인사였다. 대학 시절처럼, 같은 팀의 선수로서 한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건네는 평온한 인사.

임준석의 얼굴이 이완되었다.

"...응. 넌?"

"나도 잘 지냈어."

준호가 로커를 열었다. 임준석은 한 발 뒤로 물러났다. 그 거리는 물리적 거리가 아니었다. 그것은 심리적 거리의 축소였다.

"당신 토스 좋아. 정말로."

준호가 돌아서며 임준석을 바라봤다.

"뭐... 뭐라고?"

"넌 날 대체한 게 아니야. 넌 그냥 넌 자신의 길을 간 거야. 그리고 잘했어. 넌 나보다 더 자유롭게 토스한다."

임준석의 눈이 흔들렸다.

"진짜야?"

"응. 플레이오프 때 봤어. 넌 공을 두려워하지 않아. 그게 좋은 세터야."

그 말이 떨어지는 순간, 임준석의 경계심이 완전히 녹아내렸다. 3년간 품어왔던 불안감, 준호가 돌아올 거라는 두려움, 그리고 자신이 대체품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 모두 사라졌다.

"고마워. 진짜로."

임준석이 손을 내밀었다. 준호가 그것을 맞잡았다.

"우리 같은 팀이잖아. 앞으로 함께 가자."

"응. 그런데 준호, 한 가지 더 있어."

"뭔데?"

"내가 너한테 절대 감각 신호를 줄 수 있게 해줄까? 넌 내 토스가 완벽할 때만 최고의 스파이크를 날릴 수 있잖아. 내가 토스 타이밍으로 신호를 보낼 테니까, 그때만 절대 감각을 써. 다른 때는 팀을 믿고 평범하게 가."

준호는 임준석을 바라봤다. 세터가 제시한 것은 단순한 제안이 아니었다. 그것은 절대 감각을 제어하는 구체적인 방법이었다.

"정말 그렇게 할 수 있어?"

"응. 난 이미 넌 어떻게 움직이는지 알아. 대학 시절부터. 내가 토스를 이렇게 올리면 넌 이렇게 스파이크한다는 걸. 그 패턴을 역으로 이용하면 돼. 내가 특정 토스를 올릴 때만 넌 절대 감각을 써. 그 외엔 그냥 평범하게."

"그럼... 넌 내가 절대 감각을 쓰는 순간을 알 수 있겠네."

"당연하지. 그리고 그때 나도 최고의 토스를 올릴 거야. 우리가 팀이 되는 거지."

두 사람의 시선이 만났다. 그 순간 준호는 깨달았다. 3년 전 대학 시절, 자신의 완벽주의가 팀메이트들을 얼마나 상처 입혔는지. 그 상처는 임준석 안에도 있었다. 임준석은 준호의 절대 감각에 부담을 느껴 자신의 능력을 제한했고, 그 제한이 3년간 쌓여 있었다. 지금 임준석이 신호 체계를 제안한 것은 그 제한을 풀기 위한 선택이었다. 동시에 준호를 제어하는 방법을 제시함으로써 준호를 팀의 일부로 만들고 있었다.

"고마워, 임준석."

"우리 함께 우승하자."

악수가 이루어졌다.

---

훈련장으로 나가는 길, 준호의 신체는 이미 경기 모드로 전환되고 있었다. 어깨를 돌렸을 때 들리는 뼈의 소리, 목을 꺾을 때의 쾌감. 1년간의 재활, 그리고 절대 감각을 제어하는 훈련이 모두 신체에 각인되어 있었다.

코트는 황금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오후 훈련. 세트 플레이가 진행 중이었다. 임준석의 토스가 올라갔다. 준호가 도움닫기를 했다. 그 순간 절대 감각이 깨어났다.

상대 블로커의 움직임이 0.5초 느려 보였다.

손목의 스냅이 완벽했다. 공이 블로킹을 피해 코트에 떨어졌다. 킬 포인트.

코트의 반대편에서 박수가 터져 나왔다. 팀메이트들의 환호. 하지만 그것보다 중요한 것이 있었다. 임준석이 웃고 있었다는 것. 그리고 그 웃음은 신호였다. 우리가 함께 했다는 신호.

최동욱이 다가왔다.

국가대표 주전 공격수는 여전히 웃음을 짓고 있었지만, 그 미소 아래에는 다른 감정이 층층이 깔려 있었다. 준호는 그것을 느꼈다. 불안감. 위협감. 그리고 어떤 결의.

"반갑네, 준호."

"응, 오랜만이야."

"이번 시즌 우리가 우승할 거야. 그리고 국가대표 스쿼드도 정해질 거고."

최동욱이 말했을 때, 그의 눈빛이 바뀌었다. 친근함에서 경쟁으로. 동료에서 라이벌로.

"국가대표도 경쟁하게 되겠네."

준호가 천천히 말했다.

"그렇지. 이기호 감독이 우리 둘 다 보고 있어. 친선전 3경기로 최종 스쿼드를 결정할 거야. 한 명만 갈 수 있지."

"아, 그렇구나."

준호가 담담하게 대답했다.

"뭐, 겁내지 마. 너는 절대 감각이 있잖아."

최동욱이 준호의 어깨를 쳤다. 그 터치는 친근함처럼 보였지만, 실제로는 도발이었다. 너의 절대 감각이 나를 이길 수 있을까? 라는 의문이 담긴 도발.

준호는 미소로 대답했다.

"좋아, 최동욱. 그럼 경쟁하자."

두 선수의 손이 마주쳤다. 악수라기보다는 대결의 선언이었다. 손금이 마주칠 때, 준호의 절대 감각이 한 번 더 발동했다. 최동욱의 다음 움직임이 0.5초 느려 보였다. 그의 턱이 긴장으로 경직되는 것도, 눈빛이 흔들리는 것도, 호흡이 고르지 않아지는 것도 모두 보였다.

국가대표 주전 공격수는 불안해하고 있었다.

준호는 그 약점을 감지했다. 절대 감각이 최동욱의 불안감을 명확히 포착했다. 그리고 그것을 사용할 수 있었다. 최동욱의 약점을 알면, 앞으로의 경기에서 그를 압도할 수 있다. 절대 감각으로 그의 움직임을 예측하고, 그의 불안감을 자극하고, 그를 완전히 제압할 수 있다.

하지만 준호는 그 유혹을 거절했다. 손을 풀었다.

"이번엔 정말 다를 거야."

그 말은 최동욱에게 한 말이 아니었다. 그것은 자신에게, 그리고 이 팀에게 한 약속이었다.

---

훈련이 끝난 후, 라커룸으로 돌아가는 길. 준호의 휴대폰이 울렸다. 도현이었다.

"준호, 계약 끝났어?"

"응. 이제 정식으로 팀 선수야."

"축하해. 근데 잘 생각해봐."

"뭘?"

"넌 절대 감각이 있지. 그런데 최동욱이가 있고, 임준석이가 있고... 박준영 감독까지 있어. 이 모든 게 너를 움직일 거야. 완벽하게."

도현의 목소리에는 우려가 가득했다.

"알아, 도현."

"모르겠어. 넌 또 혼자가 될 거 같아. 절대 감각에만 의존하고, 팀을 믿지 못하고."

준호는 침묵했다. 도현의 말이 맞았다. 현재 상황은 준호가 절대 감각에 다시 빠져들기에 완벽했다. 박준영은 데이터로 절대 감각을 강요할 거고, 최동욱은 그것을 견제할 거고, 임준석은 그것을 지원할 거고, 정수연은 그것을 보도할 거다.

모든 것이 준호의 절대 감각을 중심으로 회전하기 시작했다.

"내가 변했거든."

준호가 말했다.

"정말?"

"응. 임준석과 신호를 만들었어. 그의 토스 타이밍으로 절대 감각을 제어하기로 했어. 다른 때는 절대 감각을 안 써."

"그게 가능해?"

"모르겠어. 하지만 해야 할 것 같아."

도현의 침묵이 길어졌다.

"준호, 대학 때 넌 왜 실패했는지 알아?"

"뭐?"

"넌 완벽주의였어. 모든 공격이 킬이어야 한다고 생각했고, 모든 토스가 완벽해야 한다고 생각했어. 그래서 세터들이 부담을 느꼈고, 수비수들도 위축됐어. 팀 전체가 너 하나를 위해 움직이고 있다고 느꼈거든. 그게 팀을 망가뜨렸어."

"..."

"지금 상황도 비슷해. 박준영은 절대 감각으로 너를 평가하고, 최동욱은 절대 감각으로 너를 경쟁하고, 임준석은 절대 감각으로 너를 지원하려고 해. 모든 게 절대 감각 중심이야. 넌 그 패턴을 반복할 위험이 있어."

도현의 목소리가 진지했다.

"그래서 넌 임준석이의 신호만 따르면 안 돼. 넌 다른 팀메이트들도 믿어야 해. 최동욱이도, 그 외 주전 선수들도. 절대 감각 없이도 팀이 이길 수 있다는 걸 증명해야 해."

준호는 도현의 말을 천천히 받아들였다.

"알겠어. 고마워, 도현."

"그리고 준호, 한 가지 더. 친선전 전에 우리 만나자. 직접 얘기할 게 있어."

통화가 끝났을 때, 준호의 불안감은 여전했지만, 이제 그것은 수동적인 두려움이 아니었다. 그것은 능동적인 결의로 변하고 있었다. 하지만 동시에 새로운 과제가 생겼다. 임준석뿐만 아니라 다른 팀메이트들과도 신뢰를 쌓아야 한다는 것.

---

그 밤, 준호는 호텔 방에서 국가대표 친선전 일정표를 펼쳤다.

1경기: 일본 대표팀

2경기: 중국 대표팀

3경기: 태국 대표팀

3경기 안에서 최동욱을 이겨야 한다. 아니, 이겨야 한다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 그저 팀을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

준호는 날짜를 손가락으로 짚었다.

2주 뒤. 친선전 1경기.

그 전까지 준호는 서울 엘리트와 함께 리그 경기를 5경기 더 치러야 했다. 5경기 동안 자신을 완성해야 했다. 절대 감각과 팀플레이의 균형을 맞춰야 했다. 그리고 임준석과의 신호 체계를 완벽하게 익혀야 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했다. 도현이 지적한 대로, 다른 팀메이트들과의 신뢰도 회복해야 했다.

준호는 휴대폰을 집어 들었다. 채은의 번호를 눌렀다.

"채은아."

"준호? 뭐해?"

"너... 나랑 영상 통화할 수 있어?"

"지금?"

"응."

화면이 켜졌다. 채은의 얼굴이 나타났다. 대학 세터는 여전히 웃음이 많았다.

"축하해. 서울 엘리트 정식 입단."

"고마워."

"근데 왜 전화한 거야? 뭔가 문제야?"

준호는 채은의 얼굴을 바라봤다.

"아니. 그냥... 안심이 되고 싶었어."

"뭐가?"

"네가 나를 믿는다는 게."

채은의 표정이 부드러워졌다.

"난 처음부터 믿었어. 넌 절대 혼자가 아니야."

그 말이 떨어지는 순간, 준호의 눈이 잠깐 흐려졌다. 아직도 절대 감각의 부작용이 남아 있었다. 하지만 그것보다 중요한 것이 있었다.

"고마워, 채은."

"뭐하는 말이야. 우린 팀이잖아."

준호는 채은을 바라봤다.

"채은아, 난 지금 불안해."

"뭐가?"

"절대 감각이 자꾸 깨어나. 최동욱이랑 만나고, 박준영 감독 앞에서, 임준석이 토스할 때마다. 그리고 그 감각이 나를 유혹해. 완벽하게 하라고. 절대 감각에만 의존하라고."

채은의 눈이 진지해졌다.

"그럼 우리가 함께 그걸 막아야 해."

"어떻게?"

"넌 다음 리그 경기마다 나한테 전화해. 경기 후에. 그리고 넌 임준석이와 신호를 제대로 맞췄는지, 절대 감각을 제어했는지, 그리고 다른 팀메이트들과는 어떻게 호흡했는지 얘기해. 내가 들어줄게."

"정말?"

"응. 넌 혼자가 아니야. 나도 있고, 도현이도 있고, 임준석이도 있어. 우리가 너를 붙잡아줄 거야. 절대 감각에 빠져나가지 않도록."

준호의 목이 메었다.

"고마워."

"그리고 준호, 한 가지 더."

"뭔데?"

"넌 이미 변했어. 3년 전 너는 이런 불안감을 느끼지 않았어. 그냥 완벽함을 추구했어. 지금 넌 불안해하고 있다는 건, 넌 팀을 생각하고 있다는 뜻이야. 그게 성장이야. 그리고 임준석이와 신호를 만들었다는 건, 넌 이미 팀플레이를 시작했다는 뜻이고. 마지막으로, 넌 도현이의 조언을 받아들였다는 건, 넌 이제 팀을 믿기 시작했다는 뜻이야."

통화가 끝난 후, 준호는 창밖을 바라봤다. 서울의 야경이 펼쳐져 있었다. 수백만 개의 불빛이 깜박이고 있었다. 그 중 하나가 자신이고, 하나가 채은이고, 하나가 도현이고, 하나가 임준석이고, 하나가 최동욱이고, 하나가 박준영이다.

모두가 같은 밤하늘 아래 다른 길을 걷고 있었다.

준호는 그것을 받아들였다.

---

호텔 방의 불을 껐을 때, 준호는 침대에 누웠다. 하지만 잠은 오지 않았다.

절대 감각이 여전히 깨어 있었다. 준호는 눈을 감았지만, 시각이 남아 있었다. 어둠 속에서도 최동욱의 움직임이 보였다. 0.5초 느려진 동작. 떨리는 호흡. 불안한 눈빛.

그리고 그것이 준호를 유혹했다.

넌 이길 수 있어. 절대 감각으로.

넌 완벽할 수 있어. 혼자서.

넌 최고가 될 수 있어. 팀 없이도.

준호는 침대에서 일어났다. 창밖을 바라봤다. 호텔 창에는 자신의 얼굴이 비쳤다. 창백하고, 불안해 보이는 얼굴. 하지만 그 얼굴 안에는 무언가가 타오르고 있었다.

절대 감각의 욕구.

준호는 손가락을 펼쳤다. 손가락 끝이 여전히 저리고 있었다. 절대 감각의 부작용. 하지만 동시에 그것은 신호였다. 절대 감각이 깨어났다는 신호.

그리고 그것이 가장 위험했다.

준호는 침대 옆의 수건을 집어 들었다. 손가락을 수건에 감싸 절대 감각의 저림을 억제하려 했다. 채은이 말했던 조언을 떠올렸다. 절대 감각을 억제하기 위한 신체 훈련. 준호는 손가락을 구부렸다 펼쳤다를 반복했다. 천천히. 의도적으로. 절대 감각의 자동 발동을 억제하기 위해.

5분. 10분. 15분.

손가락의 저림이 서서히 가라앉았다. 절대 감각의 욕구도 함께 가라앉았다.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었지만, 이제 그것은 준호가 제어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

준호는 창문을 다시 바라봤다. 여전히 서울의 야경이 펼쳐져 있었다. 하지만 이제 그 야경 속에는 준호의 결의가 담겨 있었다.

절대 감각을 제어하겠다.

팀을 믿겠다.

임준석의 신호를 따르겠다.

도현의 조언을 받겠다.

채은의 응원을 받겠다.

그리고 다른 팀메이트들과도 신뢰를 쌓겠다.

준호는 침대로 돌아갔다. 이번엔 손가락이 저리지 않았다. 절대 감각은 여전히 깨어 있었지만, 이제 그것은 준호의 통제 아래에 있었다.

2주 뒤의 친선전까지, 준호는 5경기를 더 치러야 했다. 5경기 동안 임준석의 신호를 익히고, 절대 감각을 제어하고, 다른 팀메이트들과의 신뢰를 회복하고, 팀플레이를 완성해야 했다.

그것이 준호의 약속이었다.

그것이 준호의 성장이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그 모든 과정이 혼자가 아니라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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