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 V리그 플레이오프 결승전 3경기

경기장 조명이 한순간 어두워졌다.

서울 엘리트와 인천 타이거스. 이것은 준호와 최동욱의 재대면이었다.

라커룸. 준호는 글러브를 끼웠다. 손가락 하나하나를 집어넣으며 느껴지는 무게감. 절대 감각의 도구가 아니라, 팀과 함께하는 도구라고 중얼거렸다. 몸이 떨렸다. 지난 일주일간 숙면을 제대로 취하지 못했다.

임준석이 옆에 앉았다.

"세트 3까지 가나?"

"모르지. 가길 바란다."

임준석이 웃음을 흘렸다. "너라면 할 수 있어. 절대 감각 말고, 그냥 너로서."

준호가 고개를 들었다. 임준석의 눈은 진지했다. 세터와 공격수는 배구에서 가장 밀접한 관계다. 토스를 주는 자와 받는 자. 임준석이 준호를 믿는다는 것은, 자신의 토스를 준호가 믿는다는 의미였다.

박준영 감독이 들어섰다.

"선수들 집중하시오."

라커룸이 고요해졌다. 감독은 화이트보드에 인천의 포메이션을 그렸다. 최동욱의 위치, 블로킹 각도, 백업 공격수들의 움직임. 모든 정보가 데이터였다. 그러나 감독이 펜을 멈추고 준호를 바라봤을 때, 그의 입에서 나온 말은 데이터가 아니었다.

"이준호."

"네, 감독님."

"절대 감각을 쓸 수 있다. 하지만 정말 필요한 순간만 써라. 그 판단을 팀에 맡겨도 된다. 우리는 너를 믿는다. 그리고 너도 우리를 믿어라."

박준영 감독의 눈빛에는 3년 전 준호를 버린 냉정함이 없었다. 그 자리에 있던 것은 책임감이었다. 감독은 준호를 도구가 아닌 팀원으로 보고 있었다. 준호의 목이 메었다.

경기장의 함성이 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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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세트.

서울 엘리트가 코트에 들어섰을 때 인천 타이거스의 응원단은 천둥같은 함성을 질렀다. 최동욱이 웜업을 마치며 준호와 눈이 마주쳤다. 그의 입가에는 옅은 웃음이 있었다. 자신감이었다.

인천의 첫 공격. 백업 공격수의 스파이크가 네트를 넘어왔다. 준호가 레시브를 올렸다. 임준석의 토스가 떠올랐다. 완벽한 궤적. 준호는 절대 감각을 쓰지 않았다. 그냥 느낌으로 스파이크를 날렸다. 공이 인천의 블로킹을 뚫고 들어갔다. 1:0 서울.

10:8. 서울이 리드했을 때, 최동욱이 나섰다. 공중에서 그의 신체가 펼쳐졌다. 강력한 스파이크. 하지만 도현의 레시브가 정확했다. 임준석이 토스를 올렸다. 준호가 절대 감각을 발동했다.

순간, 세상이 느려졌다. 최동욱의 눈빛이 보였다. 블로킹하는 선수의 손가락 각도가 보였다. 공의 회전이 보였다. 준호의 몸이 움직였다. 스파이크가 최동욱의 손끝을 스쳐 지나갔다.

15:12. 서울.

최동욱의 웃음이 사라졌다. 25:22. 첫 번째 세트는 서울의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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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세트.

더 치열했다. 인천이 준비해온 것이 보였다. 블로킹 타이밍이 정확해졌다. 최동욱의 공격이 더 강해졌다. 하지만 준호는 절대 감각을 아껴뒀다.

11:10에서 서울이 리드했을 때, 최동욱이 다시 나타났다. 이번엔 준호도 같이 블로킹에 나갔다. 손가락이 맞닿았다. 공이 위로 튀어올랐다. 도현이 레시브했다. 임준석의 토스. 준호의 스파이크. 임준석이 지적했던 블로킹 옆 공간으로 정확히 떨어졌다. 14:10. 서울.

최동욱이 타임아웃을 청했다. 인천 벤치에서 감독이 전술을 지시했다. 준호는 그 모습을 바라봤다. 자신을 버린 팀의 선수는 이제 상대팀이었다. 그것이 얼마나 이상한지, 그리고 얼마나 자연스러운지 동시에 느껴졌다.

25:20. 2:0 서울 엘리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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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커룸으로 돌아갔을 때, 팀 분위기는 이완되어 있었다. 박준영 감독이 화이트보드를 집어들지 않았다. 대신 준호를 바라봤다.

"세트 3은 다르다. 인천이 모든 것을 걸 것이다. 너도 준비해라."

준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휴대폰이 울렸다. 영상통화였다. 도현이었다.

준호가 복도의 한구석에서 전화를 받았다.

"형! 봤어? 잘하고 있어."

화면에는 도현과 채은이 보였다. 둘 다 대학교 배구복을 입고 있었다.

"우리 팀 사람들도 다 왔어. 너를 응원하고 있어."

채은이 카메라에 더 가까이 다가왔다. 그녀의 눈에는 눈물이 맺혀 있었다.

"준호, 넌 할 수 있어. 팀을 믿고, 자신을 믿어."

도현이 채은의 옆에 나타났다.

"절대 감각 말고, 그냥 넌 준호야. 우리 모두가 너를 응원하고 있다."

준호의 눈가가 뜨거워졌다. 말이 나오지 않았다. 그저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화면이 꺼졌다.

준호는 한동안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절대 감각도, 복수도, 자기증명도 아닌 것이 있었다. 팀을 믿는다는 것. 그것이 얼마나 강한 힘인지, 이제야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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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째 세트.

첫 점은 인천의 것이었다. 최동욱의 스파이크가 정확했다. 1:0 인천. 이어 서울이 2점을 가져갔다. 2:1 서울. 경기의 템포가 달라졌다. 인천이 모든 것을 걸었다.

5:4. 서울이 한 점 앞섰다. 인천이 즉각 동점을 만들었다. 6:5.

양 팀이 치고받는 랠리. 준호는 절대 감각을 쓰지 않았다. 팀메이트들의 플레이로 충분했다. 임준석의 토스, 도현의 수비, 채은의 응원이 모두 담긴 영상통화가 준호의 머릿속에 있었다.

8:7. 서울이 다시 리드했다. 최동욱이 강력한 스파이크로 동점을 만들었다. 8:8.

양 팀의 기술 차이가 줄어들고 있었다. 인천의 블로킹이 점점 정확해졌다. 서울의 공격도 더욱 예각해졌다.

12:11. 준호는 임준석의 토스를 받았다. 최동욱이 블로킹에 나섰다. 준호의 스파이크가 날아갔다. 최동욱의 손가락이 공을 건드렸다. 공이 살짝 뜬다. 도현이 재빨리 레시브했다. 임준석의 토스. 오른쪽 공격수의 스파이크. 인천이 막았다. 공이 서울 코트로 돌아왔다. 도현의 레시브. 임준석의 토스. 준호가 다시 나섰다. 이번엔 블로킹 옆 공간을 노렸다. 공이 정확히 떨어졌다. 13:11 서울.

16:15. 서울 리드.

그때 최동욱이 다시 나타났다. 이번엔 준호의 블로킹 옆 공간을 노렸다. 스파이크가 날아왔다. 준호의 손이 올라갔다. 하지만 닿지 않았다. 공이 사이드 라인을 넘어갔다. 16:16 동점.

최동욱의 눈빛이 변했다. 자신감이 다시 살아났다. 그는 준호를 바라봤다. 아직 자신이 더 강하다는 메시지를 담은 눈빛이었다.

20:20. 동점.

박준영 감독이 타임아웃을 청했다. 준호가 벤치로 돌아갔다. 감독이 준호를 바라봤다.

"이 순간이 너의 순간이다. 팀을 믿되, 절대 감각을 쓸 때가 오면 써라. 하지만 그것도 팀과 함께하는 선택이어야 한다."

준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감독의 말이 이해됐다. 절대 감각은 도구였다. 하지만 그 도구를 언제 쓸지 결정하는 것은 책임이었다. 팀의 책임. 자신의 책임.

코트로 돌아갔을 때, 임준석이 준호의 눈을 봤다. 세터와 공격수의 눈빛이 만났다. 신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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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의 공격. 백업 공격수의 스파이크. 도현의 레시브. 임준석의 토스. 준호의 스파이크. 공이 인천의 블로킹을 뚫고 들어갔다. 21:20 서울.

최동욱이 다시 나타났다. 이번엔 준호의 정면에서 스파이크했다. 강력한 파워. 준호가 블로킹했다. 손가락이 맞닿았다. 공이 위로 튀어올랐다. 도현의 레시브. 임준석의 토스. 준호의 스파이크. 인천의 블로킹. 공이 준호의 손끝에 걸렸다. 네트를 넘었다. 인천 코트에 떨어졌다. 21:21 동점.

최동욱의 눈빛이 변했다. 자신감이 흔들렸다. 준호를 보는 그의 눈에 처음으로 의심이 스며들었다.

인천의 공격. 사이드 공격수의 스파이크. 도현의 레시브. 임준석의 토스. 준호의 스파이크. 공이 인천의 수비를 뚫고 들어갔다. 22:21 서울.

서울의 공격. 임준석의 세트. 오른쪽 공격수의 스파이크. 인천이 막았다. 공이 서울 코트로 돌아왔다. 도현의 레시브. 임준석의 토스. 준호가 나섰다.

절대 감각이 깨어났다.

세상이 느려졌다. 최동욱의 눈빛이 보였다. 블로킹하는 선수의 손가락 각도가 보였다. 공의 회전이 보였다. 준호는 그 모든 정보를 한순간에 처리했다. 최동욱이 왼쪽으로 이동할 것을 알았다. 블로킹은 중앙으로 모일 것을 알았다. 그 사이의 공간이 보였다.

준호의 몸이 움직였다. 스파이크가 날아갔다. 공이 최동욱의 손끝을 스쳐 지나갔다. 인천 백코트. 더블 터치. 누구도 건질 수 없었다.

23:21 서울.

경기장이 울렸다. 함성이 터져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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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의 공격. 최동욱이 다시 나타났다. 절대 마지막 공격. 모든 것을 걸었다. 강력한 스파이크. 하지만 도현의 레시브가 정확했다. 임준석의 토스. 준호의 스파이크.

절대 감각이 다시 깨어났다. 이번엔 다르게 느껴졌다. 시력이 흐릿해지고 있었다. 에너지가 소모되고 있었다. 한 경기에서 7~8회 사용 가능한 절대 감각. 준호는 이미 여섯 번을 썼다. 한계가 가까워지고 있었다.

하지만 두려움은 없었다. 팀이 있었기 때문이다. 임준석의 토스가 완벽했다. 도현의 수비가 완벽했다. 채은의 응원이 있었다. 박준영 감독의 신뢰가 있었다. 팀의 응원이 준호의 몸을 관통했다.

공이 인천 코트로 들어갔다. 24:21 서울.

인천의 마지막 공격. 백업 공격수의 스파이크. 도현의 레시브. 임준석의 토스. 준호의 스파이크.

공이 네트를 넘었다. 인천 코트. 더블 터치. 아무도 건질 수 없었다.

25:21 서울 엘리트.

경기장이 폭발했다.

우승. V리그 플레이오프 결승전 우승. 준호는 무릎을 꿇었다. 팀 선수들이 달려왔다. 임준석이 준호를 안았다. 도현과 채은의 영상통화가 떠올랐다. 그들이 웃고 있는 모습. 눈물이 흘렀다.

박준영 감독이 준호에게 다가갔다. 감독의 손이 준호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잘했다."

목소리는 작았지만 진심이 담겨 있었다. 감독은 준호의 어깨를 안았다. 말은 더 이상 필요 없었다.

"고마워요, 감독님."

준호가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우승 트로피가 들어올려졌다. 준호의 손이 그것을 잡았다. 세 번 전 자신을 버린 팀에서, 이제 우승을 들어올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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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 정수연이 준호에게 다가갔다. 마이크를 들었다.

"이준호 선수, 먼저 축하합니다. 세 번 전 이 팀에서 부상 은퇴를 앞두고 있었는데, 이렇게 우승을 들어올리게 되었습니다. 어떤 감정이 드십니까?"

준호가 마이크를 받았다. 목이 메었다.

절대 감각의 글러브를 천천히 벗었다. 글러브를 벗으면서 중얼거렸다.

"이제 나는 준호입니다."

경기장이 조용해졌다. 모든 시선이 준호에게 쏠렸다.

"절대 감각이 아니라, 팀과 함께하는 준호입니다. 이 우승은 저 혼자의 것이 아닙니다. 임준석의 토스, 도현의 수비, 채은의 응원. 박준영 감독님의 신뢰. 이 팀의 모든 선수들과 함께 이루어낸 우승입니다."

준호의 눈이 카메라를 바라봤다.

"팀을 믿는 법을 배웠습니다. 팀메이트의 토스를 믿고, 동료들의 수비를 믿고, 함께 우승을 이루는 법을 배웠습니다."

경기장이 다시 울었다.

카메라가 관중석을 비췄다. 도현과 채은이 보였다. 둘 다 눈물로 웃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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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순간, 준호는 깨달았다. 회귀라고 생각했던 것이 사실은 무엇인지.

은퇴를 각오한 그 순간, 절망 속에서 외쳤던 '다시 한 번'이 이것이었구나.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다시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실패를 딛고 다시 일어서는 것. 팀을 믿고 함께하는 것. 그것이 진정한 회귀였다.

절대 감각은 도구였다. 하지만 절대 감각을 쓸 때가 왔을 때, 준호는 선택했다. 혼자가 아닌 팀과 함께. 완벽함이 아닌 신뢰와 함께.

V리그 플레이오프 결승전 우승. 그것이 준호의 새로운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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