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문
경기대 배구부 체육관의 조명이 최대치로 올라왔다. 대학 리그 결승전 첫 세트, 준호는 코트 오른쪽 끝에 선 채 숨을 고르고 있었다. 상대팀 강원 대학의 리시버들이 포메이션을 잡는 소리가 들렸다. 어깨 위로 떨어지는 조명의 열기가 목덜미를 태웠다.
채은의 토스가 날아올 때마다 준호의 눈빛이 바뀐다. 과거처럼 절대 감각을 무분별하게 퍼붓는 대신, 이번엔 달랐다. 손가락 두 개를 펼친다. 절대 감각 발동은 최소한으로. 도현이 리베로 자리에서 준호의 신호를 읽고 고개를 끄덕인다.
14대 12. 경기대 리드.
준호는 채은의 불완전한 토스를 받았다. 토스가 조금 떨어졌다. 과거의 준호라면 이미 절대 감각을 발동했을 것이다. 완벽함을 강요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준호는 다르다. 토스를 믿는다. 채은을 믿는다. 몸을 날린다.
스파이크가 상대 블로커의 손가락을 스쳐 나간다. 볼이 라인 밖으로 떨어진다.
"아!"
채은의 비명이 들렸다. 자책하는 목소리였다. 준호는 즉시 네트 너머로 달려가 채은의 어깨를 친다.
"좋은 토스야. 다음 번엔 내가 맞춘다."
채은의 눈빛이 흔들렸다가 안정된다. 그 짧은 대사 속에서 채은은 무언가를 읽었다. 준호가 진짜로 변했다는 것을.
첫 세트는 25대 21로 경기대의 승리. 두 번째 세트는 더 치열했다. 강원 대학의 공격수 김태현이 점점 준호의 수비 타이밍을 읽기 시작했다. 16대 16. 17대 18. 18대 19. 스코어가 오락가락했다.
결정적인 순간이 왔다. 20대 20. 매 점이 우승을 결정짓는 순간이었다.
도현의 리시브가 네트 가까이로 떨어진다. 빠른 세트 플레이가 필요했다. 채은은 준호를 보고 즉시 짧은 토스를 올린다. 그 순간 준호의 눈이 변했다. 절대 감각. 손가락 한 개. 최소한의 에너지.
상대 블로커의 움직임이 0.5초 느려 보인다. 블로커의 팔이 채 올라오지 않는 각도. 준호는 그 순간을 읽었다. 스파이크를 날린다. 상대 쪽 라인 안쪽, 정확히 오픈 코트로.
볼이 땅에 닿는 순간 체육관이 울렸다. 관중석의 비명. 팀원들의 환호. 채은이 손을 모아 하늘로 향한다.
21대 20. 매치 포인트.
강원 대학의 마지막 공격이 들어온다. 도현이 완벽하게 레시브한다. 채은의 토스. 준호의 스파이크. 볼이 네트를 넘는다. 상대 수비진이 손을 뻗지만 닿지 않는다.
25대 20. 경기대 우승.
체육관이 폭발했다. 준호는 무릎을 꿇고 있었다. 도현이 달려와 준호의 목을 감싼다. 채은도. 그 다음 팀원들도. 준호는 그들의 품 속에서 눈을 감았다. 세 개월 전 이 순간을 상상했던가? 회귀했을 때 이 순간이 올 줄 알았던가?
탈의실로 향하는 복도에서 채은이 준호의 팔을 잡아 세웠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준호를 안겼다. 채은의 얼굴이 준호의 어깨에 닿았다. 목소리가 떨렸다.
"넌 정말 변했어. 우리를 믿어줘서 고마워."
준호의 목이 칼칼했다. 반사적으로 채은의 등을 쓸어내렸다.
"너희가 나를 믿어줘서 고마워."
그 말이 나오는 순간, 채은이 더 강하게 안았다. 준호는 채은의 머리카락 냄새를 맡았다. 라벤더. 과거에도 같은 냄새였나? 아니다. 과거의 준호는 채은을 볼 여유가 없었다. 완벽한 토스만 강요했고, 팀원들의 감정은 외면했다. 이번엔 다르다. 이번엔 정말로 다르다.
---
우승식이 끝난 후 로비는 혼란스러웠다. 우승팀 선수들과 가족들, 그리고 기자들이 뒤섞여 있었다. 정수연 기자가 준호를 기다리고 있었다. 흰 셔츠에 검은 재킷을 입은 여자. 노트북을 들고 있었다.
"이준호 선수, 인터뷰 가능할까요?"
준호가 멈췄다. 정수연이 한 발 다가섰다.
"대학 우승까지 했네요. 1개월 전 선발전에서 탈락했을 때만 해도 앞이 캄캄할 줄 알았을 텐데."
"네."
"세터에서 공격수로 포지션을 바꾼 지 채 2개월 만에 대학 우승을 했어요. 이건 정말 특이한 사례예요. 혹시 과거에 공격수 경험이 있으셨나요?"
준호의 심장이 철렁했다. 기자의 눈이 날카로웠다.
"아뇨. 처음이에요."
"그럼 이 정도 적응이 불가능하지 않을까요? 보통 포지션 전환에는 최소 6개월이 필요한데."
준호는 대답하지 않았다. 정수연이 노트북을 더 가깝게 들었다.
"혹시 프로 시절에 뭔가 있었던 건 아닐까요? 아니면 이전 학교에서?"
"특별한 건 없습니다."
거짓이었다. 준호는 거짓말을 하고 있었다. 정수연의 눈이 더 반짝였다. 기자의 직감이 켜진 것이다.
"알겠습니다. 그럼 '버려진 천재의 부활'이라는 제목으로 기사를 쓸 텐데, 혹시 이의가 있으세요?"
"좋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런데 한 가지 더."
정수연이 한 발 더 가까워졌다. 노트북을 내리고 준호의 눈을 직시했다.
"너의 과거가 뭔지 알아낼 거야. 이 정도 성장은 평범한 게 아니니까. 기사는 다음 주에 나갈 예정이야. 그 전에 자백하면 내가 좀 더 객관적으로 써줄 수 있어."
그 말은 협박이 아니었다. 다만 기자의 다짐이었다. 준호는 정수연을 바라봤다. 그 눈빛 속에 악의는 없었다. 다만 진실에 대한 집착만 있었다.
---
저녁 8시. 준호의 핸드폰이 울렸다. 번호는 알 수 없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름이 떴다. '박준영 감독'. 준호의 손이 얼었다. 통화 버튼을 누르기까지 3초가 걸렸다.
"안녕하세요."
음성 너머로 호흡음이 들렸다. 낮지만 명확한 목소리가 나왔다.
"우승 축하한다. 잘 봤다."
그 목소리는 준호를 알고 있었다. 3년 전 준호를 2군으로 내렸던 그 감독. 준호를 버렸던 그 남자의 목소리였다.
"감사합니다."
"프로 입단 생각이 있나?"
"예."
"그럼 우리 팀으로 오지 않겠나? 서울 엘리트가 너를 원한다."
준호의 귀에서 울음이 났다. 자신을 버린 팀이 자신을 다시 부르고 있었다. 얼굴이 화끈거렸다. 그 감독의 목소리가 담담했다. 감정이 없었다. 이것은 거래였다.
"생각해보겠습니다."
"그렇구나. 그럼 언제까지 생각해 볼 텐가?"
"1주일 정도면 될 것 같습니다."
"좋다. 그럼 우리 팀 운영팀장이 연락할 거다."
통화가 끝났다. 준호는 핸드폰을 내려놨다. 손이 떨리고 있었다. 자신을 버린 그 남자가 자신을 다시 부르는 이유는 명확했다. 준호의 절대 감각이 필요했던 것이다. 준호 자신이 아니라. 그 깨달음이 가슴을 짓누렀다.
그 밤 10시. 해외리그 스카우트 제안이 메일로 들어왔다. 발신인은 'PlusVolley'. 일본 V리그의 강팀이었다. 계약금 5억 원. 연봉 3억. 3년 계약.
준호는 두 개의 제안을 놓고 밤을 샜다. 서울 엘리트. 자신을 버린 팀. 하지만 자신이 원래 가려던 팀. 그곳으로 가면 임준석을 다시 만날 것이다. 그곳으로 가면 박준영과 직면할 것이다. 3년 전의 상처를 다시 마주해야 할 것이다.
일본. 새로운 무대. 자신을 아무도 모르는 곳. 하지만 거기선 도현도 없고, 채은도 없고, 팀도 없을 것이다. 모든 게 낯설 것이다.
준호는 침대에 누워 천장을 봤다. 선택의 무게가 가슴을 누르고 있었다.
---
대학 졸업식은 5월 중순에 있었다. 체육관에서 준호는 학위복을 입고 서 있었다. 옆에 도현이 있었다. 도현도 같은 학위복을 입고 있었다. 주장 리베로. 3년간 팀을 이끌었던 그 선수. 준호의 옆에 있던 그 선수.
졸업식이 끝나고 로비에서 도현이 준호를 잡아 세웠다. 주변에 사람이 많았지만 도현은 상관하지 않았다.
"결정했어?"
"아직."
"서울 엘리트로 가면 임준석을 다시 만날 거야. 그리고 너를 버린 박준영도."
준호가 도현을 바라봤다. 도현의 눈이 진지했다.
"임준석은 너를 무시하고 있어. 박준영은 너를 투자 대상으로만 본다. 그리고 최동욱은 너를 경쟁자로 본다. 서울 엘리트 안엔 넌 혼자가 될 거야."
"알고 있습니다."
"그래도 가나?"
준호가 입을 열었다 다물었다. 도현이 계속했다.
"만약 가면, 넌 팀을 믿어야 돼. 이번엔 정말로. 절대 감각만으로는 이길 수 없는 무대가 있어. 서울 엘리트가 바로 그곳이야."
준호의 눈이 바뀌었다. 결심이 내려왔다. 뭔가 단단해졌다. 준호는 도현을 보고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한 가지를 더 말했다.
"너도 프로 가자."
도현이 웃음을 터뜨렸다. 그 웃음 속엔 무언가 있었다. 격려. 그리고 이별의 슬픔. 준호와 도현은 이제 다른 길로 갈라질 것이다. 도현은 대학에 남아 세터로서의 길을 계속 걸을 것이고, 준호는 프로의 세계로 나아갈 것이다.
"넌 할 수 있어. 팀을 믿으면 돼."
도현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그것은 축복이자 당부였다.
---
그 다음 날 준호는 박준영에게 전화를 걸었다.
"서울 엘리트로 입단하겠습니다."
음성 너머로 박준영의 호흡이 들렸다.
"그렇구나. 좋은 결정이다. 그럼 계약서에 사인해. 우리 팀은 4연 우승을 노리고 있다. 너도 그 목표에 함께할 거지?"
"네."
"좋다. 그런데 한 가지 조건이 있다."
준호의 손이 경직됐다.
"절대 감각이라는 게 있다는 걸 알고 있다. 선발전에서 봤으니까. 그걸 우리 팀을 위해서만 써야 한다. 개인 기록 따위는 신경 쓰지 말고. 우승만 보면 된다. 알겠나?"
"알겠습니다."
"또 한 가지. 임준석이 현재 우리 팀의 세터다. 그놈은 널 아직도 의식하고 있다. 그런 생각 버리고 팀에만 집중해."
준호가 대답하지 않았다. 박준영이 계속했다.
"그리고 최동욱이가 국가대표 자리를 유지하고 싶어 한다. 너는 그 자리를 위협할 수 있는 선수다. 그래서 팀 내에서 마찰이 생길 수도 있다. 준비해라."
준호의 가슴이 철렁했다. 박준영은 이미 알고 있었다. 서울 엘리트 내부의 갈등을. 그리고 그 갈등 속에서 준호가 어떻게 생존해야 하는지도.
"마지막으로 한 마디."
박준영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그것은 위협이 아니라 경고였다.
"3년 전 너를 내렸던 건 팀을 위한 결정이었다. 개인적인 감정은 없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다. 넌 도구다. 우승을 위한 도구일 뿐이다. 그것을 명심해라."
통화가 끝났다. 준호는 핸드폰을 내려놨다. 자신을 버린 그 남자가 자신을 다시 부르는 이유는 명확했다. 준호의 절대 감각이 필요했던 것이다. 준호 자신이 아니라. 그 깨달음이 가슴을 짓누렀다.
그리고 서울 엘리트 안엔 이미 균열이 있었다. 임준석. 최동욱. 그리고 박준영. 세 명의 적이 준호를 기다리고 있었다. 아니, 적이라기보다는 시험관이었다. 준호가 이 팀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지를 시험할 사람들이었다.
준호는 창밖을 바라봤다. 서울의 야경이 보였다. 저 도시 어딘가에 서울 엘리트 체육관이 있을 것이다. 그곳에서 임준석은 토스를 올리고 있을 것이다. 최동욱은 스파이크를 연습하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박준영은 데이터를 분석하고 있을 것이다.
준호는 주먹을 쥐었다. 절대 감각. 그것만으로는 부족할 것이다. 팀을 믿는 법. 그것을 또다시 배워야 할 것이다. 하지만 이번엔 달랐다. 이번엔 자신을 버린 자들을 마주하게 될 것이다. 그들과 싸워야 할 것이다. 아니, 함께해야 할 것이다.
회귀가 준 두 번째 기회. 이번엔 반드시 우승을 들어올릴 것이다.
---
# 5화 「서울 엘리트, 그리고 세 개의 균열」
서울 엘리트 체육관의 천장은 낮았다. 대학 체육관과 달리, 이곳은 프로 무대의 긴장감이 벽에 배어 있었다. 준호가 첫 훈련에 들어간 날, 체육관 안의 공기는 얼음처럼 차가웠다.
"이준호 선수, 환영합니다."
박준영 감독은 악수를 건넸지만, 눈은 준호를 투자 대상으로 재단했다. 그 악수는 거래였다. 감정 따위는 없었다. 준호는 손을 놨다.
"감사합니다."
"짐을 풀고 1군 로커룸으로 가세요. 주전 공격수들과 인사를 나누면 좋겠네요."
1군 로커룸. 준호가 들어서는 순간, 대화가 끊겼다. 세 명의 눈이 준호를 향했다.
임준석이 먼저 입을 열었다. 세터의 목소리는 날카로웠다.
"아, 대학에서 나왔대던 그 공격수네. 절대 감각이라고 했나? 재밌는데."
웃음이 있었지만, 거기엔 조롱만 있었다. 임준석은 준호를 무시했다. 시선조차 돌리지 않고.
최동욱이 일어섰다. 국가대표 공격수의 체격은 준호보다 컸다. 선발전에서 만난 적 있는 상대였다.
"선발전에서 봤죠. 좋은 경기였습니다."
최동욱의 말은 정중했지만, 그 안엔 경계가 있었다. 준호는 최동욱의 시선을 마주쳤다. 이미 준호는 최동욱의 라이벌이었다. 자신이 그럴 자격이 있든 없든, 이미 그렇게 인식되고 있었다.
"감사합니다."
준호는 로커에 짐을 놨다.
임준석이 다시 말했다.
"절대 감각도 좋지만, 우리 팀에선 개인 플레이가 없어. 박 감독이 싫어하거든. 혼자 뭐 하려고 하면, 2군 떨어져. 알겠지?"
"알겠습니다."
준호의 대답은 짧았다. 임준석이 웃음을 터뜨렸다.
"좋아. 그럼 우리 팀 문화를 배우면 돼. 우승 팀이니까 배울 게 많을 거야."
첫 훈련은 지옥이었다.
박준영의 체계는 대학과 완전히 달랐다. 모든 플레이가 데이터로 계산되었다. 어떤 상황에서 어떤 공격을 해야 하는지, 정확도 몇 퍼센트 이상이어야 하는지. 절대 감각이 들어올 여지가 없었다. 절대 감각은 직관이었고, 박준영은 직관을 믿지 않았다.
"이준호, 너 왜 그렇게 공격했어? 데이터상 이 상황에선 빠른 공격이 60% 확률이 높아. 넌 높은 공격을 시도했다. 왜?"
"절대 감각으로 본 수비 배치에서..."
"절대 감각은 개인의 주관이야. 우리 팀은 데이터를 믿는다. 다시."
준호는 같은 상황을 반복했다. 이번엔 데이터대로. 공격은 성공했지만, 느꼈다. 준호는 도구가 되고 있었다. 자신의 감각을 죽이고, 시스템에 맞춰져야 했다.
---
첫 공식 경기는 3주 뒤에 있었다. V리그 정규 리그 경기. 상대는 부산 팀이었다. 준호는 벤치에서 시작했다.
1세트, 최동욱은 완벽했다. 8득점을 올렸다. 박준영의 데이터 시스템은 정확했다. 서울 엘리트는 25대 18로 1세트를 이겼다.
2세트, 최동욱이 슬럼프에 빠졌다. 3연속 실수. 박준영이 타임아웃을 불렀다.
"이준호, 들어가."
준호는 코트에 들어섰다. 심장이 요동쳤다. 프로 데뷔였다.
부산 팀의 세터가 토스를 올렸다. 준호는 공을 보지 않고 느꼈다. 상대 수비진이 어디에 있는지. 빈 공간이 어디인지. 절대 감각이 깨어났다.
0.5초가 느려졌다.
준호의 스파이크가 날았다. 상대 수비진이 반응하기 전에 공은 코트에 떨어졌다. 점수.
"좋아!"
임준석이 외쳤다. 하지만 그 목소리엔 뭔가 있었다. 불안감.
다음 플레이. 준호는 절대 감각을 다시 사용했다. 또 킬. 그 다음도. 그 다음도.
경기가 진행되면서 준호의 호흡이 가빠졌다. 절대 감각을 사용할 때마다 시력이 흐려졌다. 눈이 침침해졌다. 에너지가 빠져나가는 것을 느꼈다. 다리가 무거워졌다. 어깨가 뻣뻣했다. 신체가 경고 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세 번째 플레이에서 준호는 절대 감각을 발동했다. 상대 수비진의 움직임이 느려 보였다. 스파이크를 날렸다. 킬. 하지만 그 순간 준호의 시력이 흐려졌다. 공이 한 순간 두 개로 보였다. 눈 앞이 하얀 안개에 휩싸였다. 손가락 끝이 저렸다. 귀에서 작은 울음이 났다.
네 번째 플레이. 준호는 절대 감각을 다시 사용했다. 킬. 하지만 신체의 피로가 깊어졌다. 다리가 떨렸다. 균형감각이 흔들렸다. 코트를 밟는 발이 불안정했다.
다섯 번째 플레이. 여섯 번째 플레이. 절대 감각은 계속 작동했다. 모두 성공했다. 하지만 준호의 신체는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마지막 킬을 올리는 순간, 준호의 시력이 완전히 흐려졌다. 공이 여러 개로 보였다. 눈 앞이 하얀 안개에 완전히 휩싸였다. 신체가 경고를 넘어 절규하고 있었다. 손가락 끝의 저림이 팔 전체로 퍼졌다. 귀울음이 심해졌다. 균형감각을 완전히 잃었다. 다리가 흔들렸다.
서울 엘리트는 25대 20으로 2세트를 이겼다.
준호는 코트를 떠나면서 거의 비틀거렸다. 벤치로 돌아오는 길이 멀게 느껴졌다. 신체가 말을 듣지 않았다.
라커룸에서 박준영이 준호를 불렀다.
"좋은 경기였다. 그런데 너 절대 감각을 너무 많이 썼어. 1세트에 3번, 2세트에 6번. 패턴이 보여. 다음부터는 줄여."
준호는 숨을 고르지 못했다. 목이 타들어갔다. 신체의 피로가 깊게 박혀 있었다. 손가락이 여전히 저렸다. 귀에서 울음이 멈추지 않았다.
"그리고 최동욱이도 있다는 거 잊지 마. 너만 공격하는 게 아니야. 팀 전술을 따라."
박준영의 말은 맞았다. 하지만 그것도 또 다른 제약이었다. 절대 감각을 줄여야 한다는 것. 자신의 무기를 제한해야 한다는 것. 그런데 절대 감각을 사용할 때마다 신체가 망가지고 있었다. 에너지가 소모되고 있었다. 시력이 흐려지고 있었다. 손가락이 저리고 있었다. 귀가 울리고 있었다. 균형감각이 흔들리고 있었다.
준호는 깨달았다. 절대 감각은 무한하지 않다는 것. 그것은 대가를 요구하는 능력이었다.
---
일주일 뒤, 정수연 기자가 준호를 찾아왔다. 체육관 밖 카페였다.
"안녕하세요, 이준호 선수. 그동안 어떠셨나요?"
정수연의 질문은 따뜻했지만, 눈은 예리했다.
"잘 적응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서울 엘리트에서는 어떠신가요? 3년 전 이곳에서 은퇴를 각오했던 곳인데..."
준호가 잠깐 멈췄다. 정수연은 이미 알고 있었다. 준호의 과거를. 그리고 그것을 기사화하려고 했다. 준호의 손이 떨렸다. 커피잔을 집었다 놨다.
"저는 변했습니다. 공격수로."
"그것도 흥미롭네요. 세터에서 공격수로 포지션을 바꾸다니. 그리고 절대 감각이라는 능력까지. 정말 독특한 케이스입니다."
정수연이 노트를 꺼냈다. 준호의 호흡이 얕아졌다.
"혹시 다음 주 인터뷰 가능할까요? 좀 더 깊이 있게. '버려진 천재의 부활'이라는 주제로 기사를 쓰고 싶은데..."
"생각해보겠습니다."
"그렇다면 한 가지만 더. 박준영 감독과는 어떤 관계신가요? 3년 전 부상 당시 감독이 당신을 2군으로 내렸다고 들었는데..."
준호의 손이 커피잔을 집었다 놨다. 손가락이 떨렸다.
"그건 과거입니다."
"과거가 현재를 만드는 법이죠. 그리고 난 그 과거를 파헤칠 거야."
정수연이 노트북을 닫았다. 그 순간 준호의 심장이 철렁했다.
"너의 회귀. 그 단어가 자꾸 떠올라. 누군가 너를 '회귀자'라고 부르던데, 그게 뭐지?"
준호의 호흡이 멈췄다. 회귀. 기자가 그 단어를 어디서 알았나? 준호는 그 말을 누구에게도 한 적이 없었다. 도현과 채은에게도. 누군가 준호의 비밀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이 정수연에게 전해졌다.
"모르겠습니다."
거짓이었다. 준호는 거짓말을 하고 있었다. 손이 떨렸다. 목이 건조해졌다.
"기사는 다음 주에 나갈 예정이야. 당신의 회귀, 당신의 두 번째 인생이 세상에 알려질 거다. 그 전에 자백하면 내가 좀 더 객관적으로 써줄 수 있어. 생각해봐."
정수연이 일어섰다. 준호는 그 자리에 남겨졌다. 손이 떨리고 있었다. 신체가 경고를 보내고 있었다. 비밀이 노출되려 하고 있었다.
---
훈련장으로 돌아온 준호는 불안감에 사로잡혀 있었다. 정수연이 알아낸 것이 무엇인지, 그리고 그것이 얼마나 위험한지 생각했다.
로커룸에서 최동욱이 준호에게 다가왔다.
"힘들겠네요. 첫 경기부터."
"네."
"박 감독이 원하는 건 완벽함입니다. 개인의 능력이 아니라, 팀 시스템 안에서의 완벽함. 절대 감각도 그 안에 맞춰져야 해요."
최동욱의 말은 조언처럼 들렸지만, 준호는 알았다. 이건 경고였다. 이 팀에서는 절대 감각이 위협이 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최동욱 자신이 그 위협을 감지하고 있다는 것.
"감사합니다."
준호가 대답했다.
임준석이 로커를 지나갔다. 입을 열지 않았다. 하지만 그 침묵이 더 크게 들렸다. 임준석은 준호가 자신의 토스로 득점한 것이 불편했다. 자신이 준호의 성공의 일부가 되었다는 것이 불편했다.
---
2주가 지났다. 준호는 더 많은 경기에 투입되기 시작했다. 절대 감각을 제한적으로 사용하면서, 팀 시스템 안에서 자신의 역할을 찾아가고 있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준호는 새로운 문제와 마주했다. 절대 감각을 사용할 때마다 신체의 피로가 누적되었다. 시력이 흐려지는 시간이 길어졌다. 에너지 소모가 심해졌다. 경기 후반부로 갈수록 신체가 말을 듣지 않았다.
한 경기에서 준호는 절대 감각을 4번 사용했다. 모두 성공했다. 하지만 경기가 끝났을 때, 준호는 거의 쓰러질 지경이었다. 다리가 풀렸다. 눈이 침침했다. 어지러움이 밀려왔다. 손가락 끝의 저림이 팔 전체로 퍼졌다. 귀울음이 심했다. 라커룸으로 돌아가는 복도에서 벽에 기대야 했다.
박준영은 그것을 봤다. 그리고 알았다. 절대 감각의 한계를. 그것은 무한한 능력이 아니었다. 그것은 신체에 대가를 요구하는 능력이었다.
훈련장에서 박준영이 준호를 불렀다.
"절대 감각을 쓸 때마다 너 신체가 망가지고 있어. 시력이 흐려지고, 에너지가 떨어진다. 맞나?"
준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넌 선택해야 해. 절대 감각을 자주 쓸 건지, 아니면 팀 시스템을 따를 건지. 둘 다 할 수는 없다."
박준영의 말은 냉정했다.
"팀을 위해서라면, 절대 감각을 최소한으로 써야 해. 그리고 임준석의 토스를 믿어야 한다. 아직 그놈이 널 완전히 신뢰하지 않는다는 건 알지?"
준호는 알고 있었다. 임준석의 토스가 의도적으로 조금씩 어긋나 있다는 것을. 그것은 무시였다. 그것은 준호를 시험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최동욱이와의 경쟁도 심해질 거다. 국가대표 자리를 놓고. 그놈은 이미 너를 라이벌로 본다."
박준영이 준호를 바라봤다. 그 눈빛에는 감정이 없었다. 오직 계산만 있었다.
"넌 팀을 믿을 수 있나?"
준호는 대답하지 못했다.
---
그날 밤, 준호는 도현에게 전화를 걸었다. 도현은 이제 대학 2학년 세터였다.
"어떻게 지내?"
"힘들어. 넌?"
"나도."
전화 너머로 도현의 숨소리가 들렸다.
"임준석이는?"
"무시해. 매일 날 무시해. 그런데... 박준영은 다르더라. 그 감독은 절대 감각도 데이터로 계산해. 내 무기가 약점이 되는 기분이야."
"그게 서울 엘리트야. 개인 능력을 팀 시스템 안에 맞춰야 해. 넌 할 수 있어. 왜냐하면..."
도현이 말을 멈췄다.
"왜냐하면?"
"왜냐하면 넌 이미 팀을 믿는 법을 배웠으니까. 대학에서."
준호의 가슴이 철렁했다. 맞다. 준호는 이미 배웠다. 절대 감각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것. 팀을 믿어야 한다는 것.
"그런데 도현아, 임준석의 토스를 의심하면 안 돼. 그게 가장 위험해. 팀을 믿지 못하는 건 가장 큰 약점이야."
준호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넌 또?"
"나? 나는... 세터로서 완벽함에 집착하고 있어. 대학 시절 넌 그랬잖아. 이제 내가 그래."
도현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그래서 팀원들이 상처받아. 넌 나한테 그랬고, 이제 나는 팀한테 그 짓을 하고 있어. 넌 알지? 그 감정."
준호는 대답할 수 없었다. 도현의 말이 맞았다. 준호가 했던 실수를 도현이 반복하고 있었다. 그리고 준호는 그것을 막을 수 없었다. 이제 준호는 프로의 세계에 있었고, 도현은 대학에 있었다.
"도현아. 넌 팀을 믿어야 해. 완벽함이 아니라. 그리고 나도..."
준호가 말을 멈췄다.
"나도 팀을 믿어야 해. 여기서도. 절대 감각만으로는 안 돼. 팀을 믿고, 임준석을 믿고, 박준영의 전술을 따라야 해. 그게 이 팀에서 살아남는 유일한 방법이야."
"알아. 그래서 힘들어."
통화가 끝났다. 준호는 창밖을 봤다. 서울의 야경이 펼쳐져 있었다. 저 어딘가에 도현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채은도. 대학 팀원들도.
하지만 준호는 이제 혼자였다. 서울 엘리트 안에서. 임준석의 무시 속에서. 최동욱의 경계 속에서. 박준영의 냉정한 계산 속에서.
그리고 정수연 기자의 추적 속에서.
준호는 주먹을 쥐었다. 팀을 믿는다는 것. 그것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그리고 그것을 하지 않으면, 준호는 다시 버려질 것이다.
---
2주 뒤, V리그 정규 리그의 중요한 경기가 있었다. 서울 엘리트 vs 인천 팀. 인천 팀은 이 시즌 상승세를 타고 있었다. 준호는 다시 벤치에서 시작했다.
1세트, 최동욱이 완벽했다. 7득점. 서울 엘리트는 25대 19로 이겼다.
2세트, 준호는 15분 뒤에 들어갔다. 인천 팀이 13대 12로 리드하고 있었다. 박준영이 손가락을 튕겼다. 준호의 신호였다.
임준석이 토스를 올렸다. 준호는 그 토스를 보고 절대 감각을 발동하려 했다. 하지만 멈췄다. 토스를 믿기로 했다. 토스가 완벽하지 않았다. 조금 높았다. 하지만 준호는 그것도 받아낼 수 있었다. 스파이크. 킬.
다음 플레이. 준호는 절대 감각을 사용하지 않았다. 신뢰했다. 임준석의 토스를. 그 토스는 완벽했다. 스파이크. 킬.
세 번째 플레이. 이번엔 절대 감각이 필요했다. 준호는 손가락 한 개를 펼쳤다. 최소한의 에너지. 절대 감각. 상대 수비진이 느려 보였다. 스파이크. 킬.
박준영이 타임아웃을 불렀다.
"좋다. 이준호, 절대 감각을 조절하고 있어. 그런데 패턴이 보여. 상대가 적응하면 우린 끝이야. 다음부턴 더 불규칙하게."
"알겠습니다."
2세트는 25대 21로 서울 엘리트가 이겼다. 준호는 4득점을 올렸다. 그 중 3득점은 절대 감각 없이 올린 것이었다.
라커룸에서 최동욱이 준호에게 말했다.
"잘하네요. 그런데 박 감독 말이 맞아요. 절대 감각을 너무 자주 쓰면 상대가 적응해요. 그리고 팀 시스템도 흐트러져."
최동욱은 조언자였지만, 동시에 경쟁자였다. 그 이중성이 가장 위험했다.
"감사합니다."
준호가 대답했다.
임준석이 로커를 지나갔다. 이번엔 준호를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작은 신호였지만, 그것은 인정이었다. 준호가 자신의 토스를 믿었다는 것에 대한 인정.
---
3주가 더 지났다. 준호는 점점 더 많은 경기에 투입되기 시작했다. 절대 감각을 제한적으로 사용하면서, 팀 시스템 안에서 자신의 역할을 찾아가고 있었다. 임준석과의 관계도 조금씩 나아지고 있었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서울 엘리트 내의 균열도 깊어지고 있었다.
최동욱은 준호의 성장을 봤다. 그리고 두려워했다. 자신의 자리를 빼앗길 수도 있다는 두려움. 국가대표 자리를 잃을 수도 있다는 두려움. 준호가 더 많은 경기에 투입될수록, 최동욱의 불안감은 커졌다. 라커룸에서 최동욱의 시선이 준호를 따라다녔다. 그것은 경계였다. 그것은 적의였다.
임준석은 조용했다. 준호가 자신의 토스를 믿기 시작한 이후로, 임준석의 태도가 변했다. 무시에서 인정으로. 하지만 그 인정 속에는 복잡한 감정이 있었다. 준호가 자신의 세터로서의 능력을 증명했다는 것. 그리고 동시에 준호가 자신을 넘어설 수도 있다는 두려움.
박준영은 조용히 지켜봤다. 준호가 정말로 팀에 맞을 수 있는지. 아니면 또 다른 도구일 뿐인지. 그리고 준호의 절대 감각이 팀을 위해 얼마나 오래 지속될 수 있는지. 박준영의 눈은 냉정했다. 감정이 없었다. 오직 계산만 있었다.
그리고 정수연 기자는 계속 준호를 따라다녔다. 기사는 이미 예정되어 있었다. '버려진 천재의 부활'. 그 기사가 나가는 순간, 준호의 과거는 세상에 드러날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서울 엘리트 내부에도 파장을 일으킬 것이다. 정수연은 이미 '회귀'라는 단어를 알고 있었다. 누군가 준호의 비밀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을 정수연에게 전했다.
준호는 느꼈다. 균열이 커지고 있다는 것을. 그리고 그 균열 속에서 자신이 어떤 선택을 할지 결정해야 한다는 것을.
절대 감각. 그것만으로는 부족할 것이다. 팀을 믿는 법. 그것도 부족할 것이다. 임준석의 토스를 신뢰하고, 박준영의 전술을 따르고, 최동욱과의 경쟁 속에서 살아남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정수연 기자의 추적을 피해야 할 것이다.
준호는 주먹을 쥐었다. 회귀가 준 두 번째 기회. 이번엔 반드시 우승을 들어올릴 것이다. 하지만 그 전에, 자신 안의 세 개의 균열—절대 감각의 한계, 팀을 믿는 것의 어려움, 과거의 추적—을 모두 극복해야 할 것이다.
그날 밤, 준호의 핸드폰에 메시지가 들어왔다. 정수연 기자였다.
"내일 오후 3시, 다시 만나자. 이번엔 피할 수 없어. 너의 과거를 세상에 알릴 시간이 됐다. 기사는 내일 저녁에 나간다. 그 전에 나를 만나. 그리고 말해. 넌 정말로 회귀했나? 아니면 그냥 운이 좋았던 건가?"
준호는 핸드폰을 내려놨다. 손이 떨렸다. 내일, 모든 게 변할 것이다. 비밀이 세상에 드러날 것이다. 그리고 서울 엘리트 안의 세 개의 균열이 한 번에 터질 것이다.
준호는 침대에 누웠다. 천장을 봤다. 절대 감각. 팀을 믿는 것. 그리고 과거와의 대면. 세 개의 시험이 준호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 모든 것을 극복할 수 있을까?
준호는 주먹을 쥐었다. 반드시. 이번엔 반드시 극복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