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경기대학교 체육관 입구의 게시판에 붙은 공고를 준호가 바라봤다. 국가대표 선발전. 날짜는 2주 뒤였다.

손가락이 떨렸다. 경기 중이 아닌데도, 마치 절대 감각이 발동하려는 듯한 그 떨림이었다.

"봤지?"

도현이 옆에 나타났다. 준호는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대학 리그에서 성적 낸 선수들 중 일부가 선발전에 초대받는다고 했잖아. 너도 들어가 있어."

준호는 말을 잇지 못했다. 대학 시절로 돌아온 지 한 달. 세터에서 공격수로 포지션을 바꾼 지도 한 달. 절대 감각을 처음 느낀 지는 3주. 그런데 국가대표?

"근데 최동욱이 있어."

도현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누구?"

"서울 엘리트의 주전 공격수. 국가대표도 이미 선발되어 있고. 아, 그리고..."

도현은 말을 멈췄다. 준호가 이미 알고 있다는 듯이.

"그 팀 소속이야. 너를 버린 팀."

준호의 턱이 경직되었다.

국가대표 선발전 당일, 준호는 새벽 5시에 눈을 떴다. 침대에서 나오자마자 팔굽혀펴기를 시작했다. 50개. 100개. 200개. 손가락 저림이 시작되는 순간에도 멈추지 않았다.

절대 감각은 에너지를 요구한다. 그렇다면 에너지를 극대화해야 한다. 어제 하루 종일 그렇게 생각했다.

경기장에 도착했을 때 준호는 이미 땀에 젖어 있었다. 선수 대기실은 긴장과 흥분으로 가득했다. 대학 선수들, 그리고 프로 리그의 정예 선수들이 섞여 있었다.

그때 누군가가 준호를 지나쳤다.

검은색 트레이닝복을 입은 남자. 어깨 너비가 일반적인 배구 선수보다 넓었다. 팔뚝의 근육량이 눈에 띄었다. 그리고 그 남자의 얼굴에는 자신감이 흐르고 있었다.

남자가 준호를 보다가 곧 시선을 돌렸다. 흥미가 없다는 표정으로.

준호는 그 남자를 바라봤다. 뭔가 익숙한 인상이었다.

"저게 최동욱이야."

옆에 섰던 대학 후배가 중얼거렸다. 준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선발전은 4개 조로 나뉘어 진행되었다. 각 조는 리그전을 펼쳤고, 상위 성적자들이 최종 국가대표 후보에 오르게 되는 방식이었다.

준호는 A조였다. 최동욱은 B조였다.

첫 경기부터 준호는 절대 감각을 사용했다. 상대팀의 수비진이 느려 보였다. 0.5초. 정확했다. 킬 포인트를 성공시켰다.

손가락에 저림이 왔다. 가슴이 철렁했다. 하지만 흥분도 함께 밀려들었다.

2세트에서도 절대 감각을 발동했다. 이번엔 블로킹을 피해 코너로 꺾은 공을 날렸다. 성공. 손가락의 저림이 심해졌다.

3세트에서는 절대 감각을 쓰지 않으려 했다. 도현과 채은의 말을 기억했다. 신뢰. 팀. 하지만 결정적인 순간이 왔을 때 준호는 스스로를 제어하지 못했다.

절대 감각을 발동했다.

수비가 느려 보였다. 완벽한 스파이크 각도가 보였다. 킬 포인트.

첫 경기 후 준호는 탈의실에서 20분간 움직이지 못했다. 손가락 저림은 물론, 다리까지 무거워졌다. 시력도 약간 흐릿했다. 이건 대학 리그 경기 때와는 달랐다. 훨씬 심했다.

"에너지 소모가 더 크니까."

도현이 경기장 외부 복도에서 준호에게 말했다. 도현도 선발전에 참가했지만, 다른 조였다.

"프로 선수들, 국가대표 수준의 선수들이 모여 있잖아. 수비 레벨이 다르다. 그럼 절대 감각도 더 큰 에너지를 써야 작동한다."

준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나. 그 질문은 묻지 않았다.

2일차에는 최동욱과 같은 조가 되었다.

경기장 로비에서 준호는 최동욱과 마주쳤다. 최동욱은 준호를 지나칠 때 일부러 눈길을 주지 않았다. 하지만 그 무시의 무게는 충분히 전달되었다. 마치 공기 중의 작은 먼지를 보듯이.

도현이 준호의 표정을 읽었다.

"최동욱이는 V리그 최고의 공격수야. 그리고..."

도현이 말을 잠시 멈췄다.

"너의 옛 팀 서울 엘리트 선수지."

준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경기장에 들어서는 순간, 준호의 심장이 요동쳤다. 최동욱은 네트 반대편에서 이미 워밍업을 하고 있었다. 동작이 정확했다. 움직임이 매끄러웠다. 2년의 프로 경험이 몸에 배어 있었다.

첫 세트가 시작되었다.

준호의 조가 선공을 했다. 상대 팀은 최동욱을 중심으로 구성되었다. 세터가 최동욱에게 토스를 올렸다. 최동욱은 점프했다.

준호는 블로킹을 올렸다.

최동욱의 스파이크는 준호의 손가락을 스쳐 나갔다. 네트 반대편으로. 포인트.

최동욱은 준호를 보지 않았다.

그 다음 랠리에서 준호가 공격했다. 토스는 완벽했다. 절대 감각을 발동시켰다.

상대 수비진의 움직임이 느려졌다. 준호는 최고의 타이밍에 스파이크를 쳤다. 손가락 저림이 왔다. 하지만 킬 포인트는 성공했다.

최동욱이 준호를 봤다.

눈이 마주쳤다. 그 순간 최동욱의 얼굴에 미묘한 변화가 일어났다. 무시에서 인식으로. 그 다음은 경계로.

경기는 계속되었다.

준호는 절대 감각을 4번 더 사용했다. 3번은 성공, 1번은 실패. 하지만 성공률이 높았다.

최동욱은 준호를 더 이상 무시하지 않았다. 블로킹을 강화했다. 수비를 집중시켰다. 그 눈빛이 변했다. 경계에서 존경으로.

마지막 랠리에서 준호는 다시 절대 감각을 발동시켰다.

최동욱의 블로킹이 느려졌다. 준호는 그 사이로 스파이크를 쳐냈다. 공은 최동욱의 손가락을 스쳐 나갔고, 라인 밖으로 떨어졌다.

아웃.

하지만 준호는 웃음이 나왔다. 아웃이었지만, 최동욱의 수비를 완전히 뚫었다. 그 0.5초 동안 최동욱의 움직임을 읽었고, 각도를 계산했고, 스파이크를 쳤다.

절대 감각은 작동했다.

경기가 끝났다. 준호의 조가 졌다. 1대 2.

경기장을 나가며 최동욱이 준호에게 말했다.

"넌 누구냐?"

목소리가 낮았다.

"이준호. 경기대."

"대학생이? 그런데 왜..."

최동욱이 말을 마치지 않았다. 하지만 의미는 명확했다. 왜 그렇게 강한가.

준호는 대답하지 않았다. 최동욱의 눈빛이 변했다. 경계에서 호기심으로. 무언가 더 알고 싶은 것처럼.

하지만 그것뿐이었다. 라이벌이라는 인식은 경기장 안에서만 존재했다. 경기장 밖에서 최동욱은 다시 준호를 외면했다. 마치 처음부터 흥미가 없었던 것처럼.

---

본선 3일간 준호는 절대 감각 사용을 늘려야 했다. 경쟁이 더 치열했기 때문이다.

첫 번째 경기에서 준호는 절대 감각을 5번 사용했다. 두 번째 경기에서 6번. 세 번째 경기에서 7번.

경기가 끝날 때마다 준호의 신체는 더 피폐해졌다. 손가락 저림은 이제 양손에 나타났다. 시력 흐림은 경기 중간부터 시작되어 경기 끝까지 지속되었다. 하체는 무기력해졌다. 마지막 경기에서 준호는 거의 좀비처럼 움직였다.

도현이 준호를 부축했다.

"미쳤나? 이 정도까지?"

도현의 목소리는 걱정으로 가득했다.

"괜찮아."

준호의 목소리는 거의 들리지 않았다.

"절대 감각이 다가 아니야. 넌 팀을 믿어야 해."

도현의 말은 간결했지만, 눈은 진지했다. 준호는 도현의 말에 반박하지 않았다. 하지만 마음 한구석에는 의문이 떠올랐다. 팀을 믿는다는 게 뭔가. 세터 시절, 준호는 항상 팀을 믿었다. 그 결과가 뭐였나. 부상. 낙오. 그리고 2년의 시간.

절대 감각이 없었다면 준호는 여기 있지 않았다.

마지막 경기. 준호는 절대 감각을 3번만 사용했다.

나머지는 기본기와 토스 신뢰로 이겨냈다. 그리고 이겼다. 2대 1.

경기가 끝났을 때 준호는 무릎을 굽혔다. 그냥 앉아 있고 싶었다. 일어나고 싶지 않았다.

도현이 손을 내밀었다.

"이제 끝이야. 결과를 기다려."

---

3일 뒤, 국가대표 최종 명단이 발표되었다.

준호는 게시판 앞에 서 있었다. 손가락이 떨렸다. 이번엔 절대 감각 때문이 아니었다.

명단을 훑었다.

A조. B조. C조.

자신의 이름은 없었다.

맨 위에서부터 다시 읽었다.

여전히 없었다.

대신 최동욱의 이름은 맨 앞에 있었다. 국가대표 본대 선수.

준호의 가슴이 내려앉았다. 5일간의 선발전. 절대 감각을 몇십 번 사용한 선발전. 최동욱을 상대로 스파이크를 날린 그 경기.

모두 헛것인가.

그 순간, 자조가 밀려들었다. 절대 감각이 있어도 이 정도인가. 아직도 부족한가. 아니면 이게 내 길이 아닌가.

준호는 명단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최동욱의 이름이 자꾸만 보였다.

그 다음, 분노가 올라왔다.

절대 감각으로 최동욱을 뚫었는데. 그 0.5초에 모든 것을 쏟아부었는데. 그래도 부족했다는 건가.

준호의 주먹이 움켜졌다.

"너는 아직 2년이 남았어."

도현이 옆에서 말했다.

"국가대표는 그 다음이야. 지금은 프로 데뷔가 먼저다."

준호는 고개를 들었다. 도현의 눈이 진지했다.

"너는 이미 프로보다 강해. 절대 감각으로. 그걸 컨트롤하는 법만 배우면 돼."

준호는 말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도현의 말이 귀에 들어오고 있었다.

"그리고 준호."

도현이 준호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언젠가 넌 서울 엘리트와 만날 거야. 그때 최동욱이를 이기고, 박준영 감독 앞에서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려. 그게 국가대표보다 더 큰 무대야."

준호는 도현을 바라봤다. 도현의 말이 맞다. 국가대표는 그 다음이다. 먼저 해야 할 일이 있다.

프로 데뷔. 그리고 그 이후에 서울 엘리트와의 재대결.

준호의 주먹이 움켜졌다.

그 밤, 준호의 휴대폰이 울렸다.

통화 상대는 박준영이었다. 서울 엘리트의 감독.

"이준호 선수."

목소리는 차갑고 정중했다.

"네."

"경기 잘 봤다. 선발전에서의 활약이 인상적이었어. 특히 킬 포인트 성공률이..."

"감독님."

준호가 말을 끊었다.

"이번 드래프트에서 우리팀이 너를 지명할 생각이다. 세터로 복귀하지 않겠나? 너의 토스 정확도는 여전히 프로 수준이고, 신체 회복도 완벽한 것 같으니까."

박준영의 말에는 확신이 있었다. 마치 준호가 당연히 수락할 것 같은 톤으로.

준호는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

"공격수로 가겠습니다."

침묵이 흘렀다. 5초. 10초. 그 사이 준호의 심장은 요동쳤다. 이 거절이 맞는 건가. 세터로 돌아가면 안전하다. 신체 부담도 적다. 프로 입단도 보장된다.

하지만 준호는 알고 있었다. 세터로 돌아가는 순간, 자신은 다시 평범한 선수가 되는 것이다. 절대 감각도 의미가 없어진다. 토스를 올리는 손으로는 절대 감각이 발동하지 않으니까.

"...뭐?"

박준영의 목소리가 돌아왔다.

"저는 공격수로 프로 입단하겠습니다."

"그건 말이 안 된다. 넌 세터로 쌓아온 커리어가 있고, 부상 복귀도 세터 포지션이 훨씬 낫다. 공격수는 신체 부담이 크고..."

"알겠습니다."

준호가 다시 말을 끊었다.

"그럼 연락 감사합니다."

준호는 전화를 끊었다.

손이 떨렸다. 방금 전 결정의 무게가 몸을 짓누르고 있었다. 서울 엘리트. 자신을 버린 그 팀. 그 팀에 다시 돌아갈 기회를 거절했다.

세터로 돌아가면 안전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건 도망이었다. 절대 감각이라는 새로운 능력을 손에 쥐고도 도망친다는 뜻이었다.

준호는 천천히 일어섰다. 창밖으로 서울의 야경이 보였다. 어딘가에 최동욱이 있을 것이다. 국가대표 본대로 선발된 그. 그리고 서울 엘리트의 주전으로.

언젠가 다시 만날 것이다. 그때는 다를 것이다.

준호는 휴대폰을 집어 들었다. 박준영의 전화가 온 지 얼마 되지 않았다. 다시 울릴 수도 있다. 하지만 준호는 전원을 끄지 않았다. 그 대신 메시지 앱을 열었다.

미처 읽지 않은 메시지들이 있었다.

대부분은 선발전 결과에 대한 것이었다. 친구들, 선배들, 그리고 낯선 번호들. 하지만 준호는 그것들을 무시했다.

대신 그는 손가락으로 새 메시지를 작성하기 시작했다.

발신인: 도현

내용: 공격수로 가기로 했다. 박준영 감독한테 이미 거절했다.

메시지를 보내는 순간, 준호의 결정은 되돌릴 수 없는 것이 되었다.

이제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공격수로. 절대 감각을 완성하면서. 그리고 언젠가 최동욱을 이기면서.

준호는 창밖을 다시 바라봤다. 서울의 야경이 여전히 빛나고 있었다.

다음 화 계속 보기 →

댓글을 남기려면 로그인 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