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 절대 감각의 대가

손가락 저림은 가라앉지 않았다.

체육관 바닥에서 일어난 준호의 손가락들이 여전히 불규칙하게 떨리고 있었다. 아까 그 킬 포인트를 기록한 직후부터였다. 절대 감각이 풀린 순간, 마치 누군가 손목을 꽉 쥐었다가 갑자기 놓은 것처럼 온몸에 전기가 흐르는 느낌이 들었다. 상대 수비진의 움직임이 0.5초 느려지는 그 신비로운 순간 동안, 준호는 세상이 정지된 것처럼 느껴졌다. 공의 궤적, 블로커의 손가락 사이의 틈, 자신의 팔이 휘어져야 할 각도—모든 것이 명확했다.

그리고 손가락에서 번개가 튀었다.

"준호, 괜찮아?"

채은의 목소리가 먼 곳에서 들렸다. 준호는 고개를 들었다. 세터인 채은이 공을 들고 다가오고 있었다. 그 뒤로는 도현이 준호의 얼굴을 유심히 관찰하고 있었다. 주장으로서 팀 상태를 꿰뚫는 눈이었다.

"응, 괜찮아."

거짓말이었다. 준호는 손가락을 꼭 쥐었다 펼쳤다. 저림이 점점 심해지고 있었다. 손목으로 퍼지더니, 이제는 팔뚝까지 올라오고 있었다. 마치 신체의 전기가 방전되는 것처럼. 신경계가 극도로 흥분한 후 갑자기 이완되는 느낌. 준호는 그것을 억누르려고 했다. 팀원들에게 이런 모습을 보여줄 수 없었다. 포지션을 바꾼 지 채 몇 시간이 안 된 상황에서 약한 모습을 드러낼 수는 없었다.

연습은 계속됐다.

도현의 토스가 떴다. 준호는 도움닫기를 시작했다. 하지만 1미터 정도 높이에서 신체가 살짝 흔들렸다. 아래쪽 시야가 흐릿해졌다. 마치 카메라 렌즈에 물이 묻은 것처럼. 준호는 즉시 눈을 깜빡였다. 시야가 돌아왔다. 그리고 공을 쳤다.

—타닥!

공은 깨끗하게 상대 코트로 넘어갔다. 하지만 준호는 착지 직후 무릎이 힘을 잃었다.

"어?"

도현이 재빨리 다가왔다. 준호는 한 발 물러나 스트레칭을 하는 척했다. 신체 에너지가 급격히 소모되고 있었다. 마치 배터리가 급속도로 방전되는 느낌. 손가락 저림, 시력 흐림, 그리고 이제는 하체의 무기력함까지.

"준호, 좀 쉴래?"

채은이 물었다. 준호는 고개를 저었다.

"괜찮아. 계속하자."

하지만 다음 세 번의 토스에서 준호는 제대로 된 스파이크를 하나도 성공시키지 못했다. 블로킹에 걸려 나갔고, 한 번은 공을 제대로 맞히지도 못했다. 신체가 말을 듣지 않았다. 절대 감각이 풀린 후의 이 무기력함. 준호는 처음 경험하는 것이었다.

연습이 끝났을 때, 준호는 체육관 벤치에 앉아 있었다. 팀원들이 대부분 나간 후였다. 손가락 저림은 여전했고, 시야는 간헐적으로 흐려졌다. 팔뚝의 근육이 경련을 일으키고 있었다.

"너 정말 이상한데."

도현이 준호 옆에 앉았다. 주장만의 직관이었다. 더 이상 숨길 수 없었다.

준호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아까 그 감각을 쓸 때마다... 에너지가 사라지는 것 같아."

도현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준호의 손을 집었다. 여전히 떨리고 있었다. 도현은 손을 다시 놨다.

"얼마나 사라져?"

"모르겠어. 한두 번 쓰면 괜찮은데, 아까는 짧은 시간에 두 번을 썼거든. 그 다음부터 손이 떨리고, 시야가 흐려지고... 다리에 힘이 없어져."

도현은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마치 이미 알고 있던 사실을 확인하는 듯한 표정이었다.

"그 감각... V리그에서도 거의 없어. 극소수 선수들만 각성하는 거야. 내가 본 건 서울 엘리트의 전설적인 공격수... 근데 그 사람도 완벽하진 않았어. 경기 중에 제한적으로만 썼어. 너무 많이 쓰면 신체에 부담이 된다는 거 알았으니까."

준호는 도현의 말을 듣고 있었다. 그러니까 자신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뜻이었다. 절대 감각을 가진 선수들은 모두 이 대가를 치르고 있다는 말이었다.

"그럼... 경기 중에는 어떻게?"

"에너지 관리. 한 경기에 몇 번만 쓰는 거야. 정말 필요한 순간에. 우리가 함께 전략을 짜야 돼."

도현의 말에는 확신이 있었다. 마치 이미 이런 상황을 여러 번 겪은 사람처럼. 준호는 도현을 바라봤다. 주장의 눈에는 준호를 믿는 마음이 담겨 있었다.

"넌 절대 감각이 있어. 그리고 그걸 컨트롤할 수 있어. 우린 함께 할 수 있어."

도현은 준호의 어깨를 탁 쳤다. 준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처음으로 누군가에게 자신의 약점을 말했고, 그것이 받아들여지는 경험을 했다. 팀을 믿지 않던 자신이 조금씩 변하고 있었다.

이틀 뒤, 정규 연습 때였다.

준호는 에너지 관리를 염두에 두고 연습에 임했다. 절대 감각을 함부로 쓰지 않기로 결심했다. 도현과 함께 짜놓은 전략대로, 정말 필요한 순간만 사용하기로. 그렇게 40분 동안 준호는 평범한 공격수처럼 움직였다. 성공도, 실패도 있는 평범한 공격들.

그런데 그 순간이 왔다.

도현의 토스가 떴다. 높이 2미터 5센티미터, 위치는 좌측 엔드라인. 준호는 도움닫기를 시작했다. 상대 블로커 두 명이 이미 자리를 잡고 있었다. 공격 각도는 거의 없었다. 하지만 준호는 절대 감각을 발동시키기로 했다. 이 순간이 정말 필요한 순간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세상이 느려졌다.

상대 블로커의 손가락이 움직이는 속도가 0.5초 뒤처졌다. 좌측 블로커는 아직 손을 완전히 올리지 못했고, 우측 블로커의 손은 공의 궤적 위에 있었지만 완벽하지 않았다. 그 사이의 틈. 아주 작은 틈. 하지만 분명한 틈이 보였다.

준호는 그 틈을 노렸다.

팔을 휘두르는 동시에 손목을 꺾었다. 볼이 회전하면서 블로커의 손가락을 스쳐 지나갔다. 공은 상대 코트 깊숙한 곳으로 떨어졌다. 불가능한 각도에서의 킬. 상대 리베로가 움직일 시간도 없었다.

—포인트!

체육관에 환호가 울렸다. 하지만 준호는 착지하면서 무릎을 꿇고 말았다. 손가락 저림이 폭발적으로 퍼져나갔다. 이번엔 팔을 넘어 가슴까지 닿았다. 마치 심장이 불규칙하게 뛰는 것처럼.

"준호!"

채은이 달려왔다. 도현도 빠르게 준호에게 다가왔다. 준호는 손을 들어올려 괜찮다는 신호를 했다. 곧 괜찮아질 거라는 확신이 있었다. 절대 감각을 한 번만 썼기 때문이다. 에너지 소모도 적을 것이다.

5분 뒤, 손가락 저림은 가라앉기 시작했다.

준호는 다시 일어섰다. 도현과 채은은 준호의 얼굴을 주시했다. 준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이 능력을 어떻게 다루어야 할지 알 것 같았다. 한 경기에 최대 7~8회 정도 사용할 수 있을 것 같은 느낌. 그 이상 사용하면 신체가 완전히 마비될 것 같은 직감.

그날 저녁, 준호가 체육관을 나가려고 할 때였다.

임준석이 나타났다.

새까만 운동화, 검은색 트레이닝복. 서울 엘리트의 로고가 가슴에 박혀 있었다. 프로 선수의 복장이었다. 임준석은 준호의 옆에서 신발을 벗고 있었다. 아마도 팀 후배들을 만나기 위해 온 것 같았다.

준호는 그냥 지나가려고 했다.

"어? 준호 선배?"

임준석이 준호를 불렀다. 그 목소리에는 놀라움이 섞여 있었다. 3년이나 보지 못한 사이, 준호가 대학생으로 돌아와 있다는 것이 믿기지 않는다는 듯한 톤이었다.

"응."

준호는 짧게 대답했다.

"뭐... 여기 와? 복학?"

"그래."

"아, 그럼 내가 들은 건 맞네. 너 세터 안 한다고? 공격수 한다고?"

임준석의 웃음이 나왔다. 비웃음 같은 그런 웃음이었다.

"그래."

준호는 계속 짧게 대답했다. 감정을 숨기려고. 하지만 이 남자가 자신을 대체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았다. 준호가 부상으로 쓰러졌을 때, 이 남자가 들어왔다. 준호가 2군으로 내려갔을 때, 이 남자가 주전이 됐다. 준호의 자리를 빼앗은 남자였다. 자신의 자리를 차지한 자를 보는 것이 이렇게도 불편한가. 초연함을 가장해도 가슴 한구석은 불타고 있었다.

"공격수면 공격수지, 뭐. 근데 괜찮겠어? 넌 진짜 세터로 완벽한 사람이었는데."

임준석은 여전히 웃고 있었다. 준호는 그대로 지나가버렸다.

"아, 선배! 화이팅! 대학 리그 잘하고!"

뒤에서 임준석의 목소리가 들렸지만, 준호는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도현이 체육관에서 나오다가 준호와 마주쳤다.

"이미 만났어?"

도현이 물었다. 준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임준석이 프로에서 성공했다더라. 세터로."

도현의 표정이 약간 굳었다. 마치 이 상황을 예상했던 것처럼. 주장의 감정 읽기는 정확했다.

"그 놈 때문에 넌 2군으로 내려갔지. 그리고 은퇴까지 각오했고."

준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도현은 계속했다.

"이번엔 달라. 넌 이제 공격수야. 그리고 절대 감각이 있어. 그 놈과는 완전히 다른 길을 가는 거야."

도현의 말에는 확신이 있었다. 준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

3일 뒤, 대학 리그가 시작되기 전 날이었다.

경기장은 벌써 들뜬 분위기로 가득했다. 내일 첫 경기가 있기 때문이었다. 준호의 팀은 전국 상위권 팀과의 경기를 앞두고 있었다.

채은이 준호를 찾아왔다.

"너 정말 달라졌어. 이번엔 우리를 믿어줄 거지?"

채은의 질문에는 간절함이 담겨 있었다. 과거 준호는 팀메이트를 믿지 않는 완벽주의자였다. 자신의 토스만 정확해야 한다고 생각했던 세터였다. 그 때문에 많은 팀원들이 상처받았다. 채은도 그 중 한 명이었을 것이다.

준호는 대답 대신 경기장으로 향했다.

경기 시작 20분 전이었다.

워밍업을 하던 준호는 자신도 모르게 절대 감각을 발동시키려고 했다. 상대를 분석하기 위해. 상대 블로킹 패턴을 미리 파악하기 위해. 완벽하게 준비하기 위해.

이것은 프로 시절과 같은 길이었다.

그때도 준호는 모든 것을 완벽하게 하려다가 무릎을 다쳤다. 과로였다. 무리였다. 팀을 믿지 못한 자의 대가였다.

준호는 주먹을 쥐었다.

'다시는 같은 실수를 하지 않겠다고 했잖아.'

첫 세트, 5대 4.

준호의 팀이 앞서고 있었다. 도현의 토스가 떴다. 준호는 절대 감각을 발동시키려고 했다. 하지만 이건 아직 필요 없는 순간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준호는 감각을 강제로 열려고 했다. 완벽함을 위해. 통제를 위해. 혼자 모든 것을 해결하기 위해.

세상이 느려졌다. 하지만 불완전했다.

준호의 집중력이 흐트러져 있었다. 상대 블로커를 분석하는 것과 동시에 도현의 토스를 의심하고 있었다. 이 토스가 정확한가? 내가 완벽하게 칠 수 있는 높이인가?

손이 공을 놓쳤다.

—공!

네트 너머로 공이 나갔다. 준호의 팀이 포인트를 잃었다.

도현이 준호를 바라봤다. 그 눈에는 실망이 아닌 다른 감정이 있었다. 마치 "넌 아직도 팀을 믿지 못하고 있어?"라고 묻는 눈이었다.

준호는 그것을 느꼈다.

경기 중단. 타임아웃.

코치가 전술을 짜고 있었지만, 준호의 귀에는 들어오지 않았다. 도현의 눈이 자꾸만 떠올랐다. 그리고 채은의 질문이 맴돌았다. '이번엔 우리를 믿어줄 거지?'

준호는 주먹을 쥐었다. 손가락이 저렸다. 아직도 절대 감각 사용 후의 피로가 남아 있었다. 아직 회복이 덜 된 상태였다. 그런데 자꾸만 더 사용하려고 한다. 완벽함을 위해. 통제를 위해. 혼자 모든 것을 해결하기 위해.

이건 프로 시절과 같은 길이었다.

그때도 준호는 모든 것을 완벽하게 하려다가 무릎을 다쳤다. 과로였다. 무리였다. 팀을 믿지 못한 자의 대가였다.

준호는 주먹을 펼쳤다. 손가락이 떨렸다. 신체의 반항이었다.

경기가 재개됐다. 6대 4. 준호의 팀이 더 뒤처졌다.

도현이 준호에게 다가왔다. 준호의 눈을 정면으로 마주쳤다. 그 눈빛은 단호했다. 마치 말하고 있었다. '넌 혼자가 아니야. 우리가 있어.'

준호는 그 눈을 피하지 않았다.

다음 라운드. 준호의 팀이 공을 얻었다.

도현의 토스가 올라왔다. 이번엔 준호는 눈을 감았다. 토스의 높이를 느끼기 위해. 절대 감각이 아닌, 다른 감각으로.

공이 손에 닿는 순간, 준호는 눈을 뜰 수 없었다. 신체가 움직이고 있었다. 도현의 토스를 믿고. 자신의 신체를 믿고.

스파이크.

공이 상대 코트를 가로질렀다. 블로커의 손을 피해. 자연스럽게.

—포인트!

경기장에 함성이 터졌다. 하지만 준호의 귀에 들어온 첫 소리는 도현의 목소리였다.

"좋아! 그대로 가!"

그것이 다였다. 절대 감각 없이. 토스를 믿고. 팀을 믿고 얻은 포인트였다.

준호는 숨을 고르며 자신의 포지션으로 돌아갔다. 손가락은 저리지 않았다. 피로감도 없었다. 대신 다른 감정이 가슴에 퍼졌다. 그것이 무엇인지는 아직 이름을 붙일 수 없었지만, 그건 좋은 감정이었다.

세트는 계속됐다. 준호는 절대 감각을 사용하지 않았다. 대신 도현의 토스를 받아내는 데만 집중했다. 완벽한 타이밍. 완벽한 각도. 그것들은 절대 감각이 없어도 가능했다.

8대 8.

10대 10.

12대 11. 준호의 팀이 앞섰다.

그 순간 상대 팀이 타임아웃을 불렀다. 준호는 벤치로 돌아갔다. 숨이 가팠다. 다리가 무거웠다. 하지만 신체는 가벼웠다.

채은이 물을 건넸다.

"너 뭔가 달라졌어. 처음과 달라."

준호는 물을 마셨다. 목이 타들어갔다.

"절대 감각 안 썼어?"

도현이 물었다. 준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직도 피곤하니까."

"그게 아니잖아. 넌 팀을 믿고 있었어."

도현의 말이 정확했다. 준호는 대답하지 않았다. 하지만 도현은 계속했다.

"그 능력은 선택지야. 모든 상황에 쓸 수 있는 게 아니라, 진짜 필요한 순간에만 쓰는 거야. 그리고 그 판단을 하려면 팀을 믿어야 해. 절대 감각을 한 번 쓸 때마다 약 3~5분은 회복 시간이 필요해. 그 동안 넌 평범한 공격수일 수밖에 없어. 그래서 팀이 있는 거고."

준호는 도현을 바라봤다. 주장의 눈은 진지했다. 마치 이 모든 것을 이미 알고 있었던 것처럼.

경기가 재개됐다.

14대 12. 준호의 팀이 한 점 차이로 앞서고 있었다. 이 세트를 따내려면 16점을 먼저 올려야 했다.

상대 팀의 공격이 계속됐다. 준호의 팀의 수비가 흐트러지고 있었다. 도현의 레시브가 정확했지만, 공격의 마무리가 떨어지고 있었다.

14대 13.

14대 14.

15대 14. 다시 준호의 팀이 앞섰다.

상대 팀의 세터가 빠른 세트를 올렸다. 상대 공격수가 도움닫기를 시작했다. 준호는 그 움직임을 봤다. 블로킹 포지션이 정해져 있었다. 상대는 왼쪽 코너로 공격할 것이었다.

이 순간이었다.

준호는 절대 감각을 발동시켰다. 하지만 공격을 위해서가 아니었다. 상대를 읽기 위해.

세상이 0.5초간 느려졌다.

상대 공격수의 손목 각도. 팔의 움직임의 궤적. 공의 회전. 모든 것이 명확했다. 왼쪽 코너가 아니었다. 이 공격수는 타이밍을 조정해서 정중앙으로 칠 것이었다. 블로킹을 피하기 위해.

준호는 즉시 도현에게 신호를 보냈다.

도현이 움직였다. 정중앙으로.

상대 공격수의 스파이크가 날아왔다. 정확히 준호가 읽은 대로. 정중앙.

도현의 레시브가 정확했다.

채은의 토스가 올라왔다.

준호는 이번엔 절대 감각을 쓰지 않았다. 대신 상대 블로커의 움직임을 보며 판단했다. 블로커들이 준호를 향해 움직이고 있었다. 하지만 한 명이 부족했다. 왼쪽 라인이 열려 있었다.

준호는 왼쪽으로 스파이크를 쳤다.

—포인트!

경기장이 요동쳤다.

16대 14. 첫 세트 우승. 준호의 팀이 가져갔다.

준호는 네트 아래로 내려왔다. 손가락이 약간 저렸지만, 지난번과는 다른 수준이었다. 절대 감각을 한 번만 짧게 사용했기 때문이었다.

도현이 준호에게 달려왔다.

"그거 본 거? 넌 절대 감각으로 상대를 읽었어. 그리고 나한테 알려줬어. 그게 팀 플레이야."

도현의 목소리에는 확신이 담겨 있었다.

준호는 도현과 눈을 마주친 순간, 입가에 미소가 떠올랐다. 가슴에 차오르는 무언가. 그것이 무엇인지는 여전히 이름을 붙일 수 없었지만, 그건 좋은 감정이었다.

---

2세트가 시작됐다.

상대 팀은 이미 경기의 흐름을 잃고 있었다. 준호의 팀의 리듬이 맞춰졌기 때문이었다. 절대 감각과 팀 플레이의 조화. 그것은 상대에게는 악몽이었다.

5대 2. 준호의 팀이 앞섰다.

상대 팀의 주장이 타임아웃을 불렀다.

벤치에서 준호는 채은의 눈을 마주쳤다. 채은이 웃고 있었다.

"넌 진짜 달라졌어."

준호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경기장을 바라봤다. 상대 팀이 다시 경기를 시작하려고 준비하고 있었다.

경기가 재개됐다.

상대 팀의 공격이 계속되고 있었지만, 준호의 팀의 수비는 견고했다. 도현의 레시브. 채은의 토스. 그리고 준호의 공격. 이 세 개의 연결고리가 완벽했다.

8대 2.

10대 4.

11대 5.

상대 팀이 또 다시 타임아웃을 불렀다. 이번엔 절망적이었다. 경기의 흐름이 완전히 준호의 팀으로 기울어진 상태였다.

그런데 그 순간, 준호의 시력이 흐려졌다.

순간적인 현상이었다. 마치 눈에 안개가 낀 것처럼. 1초도 채 안 되는 시간이었지만, 준호는 그것을 느꼈다.

절대 감각의 부작용이었다.

지난 경기 동안 준호가 절대 감각을 사용한 횟수는 단 한 번이었다. 하지만 신체는 이미 반응하고 있었다. 에너지 소모. 그리고 그 대가.

도현이 준호를 바라봤다. 주장은 뭔가를 감지했다.

경기가 재개됐다.

상대 팀의 공격이 계속됐다. 준호는 시력이 돌아오기를 기다렸다. 그리고 돌아왔다. 완전하게.

하지만 그 다음 라운드, 준호는 절대 감각을 사용할 수 없었다. 시력이 완전히 회복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아직도 약간의 흐림이 남아 있었다.

채은의 토스가 올라왔다.

준호는 절대 감각 없이 스파이크를 쳤다. 상대 블로커가 막았다.

—아웃!

네트 너머로 공이 나갔다.

11대 6.

준호의 팀은 여전히 앞서고 있었지만, 준호는 그것을 느꼈다. 절대 감각이 없으면 자신은 평범했다. 상대 블로커가 자신을 막을 수 있었다. 완벽하게.

도현이 준호에게 다가왔다.

"시력이 흐렸어?"

도현의 질문은 정확했다. 준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절대 감각 쓸 때마다 나타나. 에너지 소모의 대가."

도현의 표정이 진지해졌다.

"그럼 이번 경기는 절대 감각 쓰지 마. 아직 회복이 덜 됐어."

"그럼 상대를 못 막아."

"아니야. 우리가 있어."

도현의 말이 단호했다. 준호는 대답하지 않았다. 하지만 경기를 계속 봤다.

다음 라운드.

상대 팀의 세터가 토스를 올렸다. 상대 공격수가 스파이크를 쳤다.

도현의 레시브가 정확했다. 채은의 토스. 그리고 준호의 공격.

준호는 이번엔 절대 감각을 사용하지 않았다. 대신 단순하게 스파이크를 쳤다. 상대 블로커의 손을 피해. 자연스럽게.

—포인트!

12대 6.

경기는 계속됐다. 준호는 절대 감각을 사용하지 않았다. 시력이 완전히 회복될 때까지. 그리고 신체 에너지가 충전될 때까지.

하지만 준호는 계속 포인트를 올렸다. 절대 감각 없이. 팀의 신뢰 속에.

13대 7.

14대 8.

15대 9.

16대 10. 2세트 우승. 준호의 팀이 가져갔다.

경기장은 요동쳤다. 2세트 연승. 상대 팀은 거의 무너지고 있었다.

벤치에서 채은이 준호에게 안겼다.

"너 정말 달라졌어!"

준호는 채은을 바라봤다. 후배의 눈에는 기쁨이 가득했다. 그리고 신뢰가.

준호는 채은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렸다. 그 작은 제스처가 모든 말을 대신했다.

도현이 준호에게 다가왔다.

"3세트도 이대로 가. 절대 감각은 정말 필요한 순간만 써. 알겠지?"

"알겠습니다."

준호는 경어를 썼다. 주장을 존경하는 마음으로.

---

3세트가 시작됐다.

상대 팀은 이미 경기를 포기하고 있었다. 준호의 팀의 리듬은 완벽했기 때문이었다. 절대 감각도 없이. 그저 팀의 신뢰만으로.

5대 1.

8대 2.

10대 4.

상대 팀의 코치가 타임아웃을 불렀다. 하지만 이미 늦었다. 경기의 흐름은 준호의 팀에게 완전히 기울어져 있었다.

13대 6.

15대 7.

16대 8. 경기 종료.

준호의 팀이 3세트를 모두 가져갔다. 상대 팀은 단 한 세트도 따내지 못했다. 압도적인 승리였다.

경기장이 터져나갈 듯 함성을 올렸다. 준호의 팀원들이 준호에게 달려왔다. 모두가 준호를 안고 있었다.

"축하해! 너 대학 리그 첫 경기 완벽했어!"

"정말 잘했어!"

"이게 공격수의 진정한 힘이야!"

준호는 그들의 목소리를 들었다. 팀원들의 목소리. 그들의 신뢰. 그들의 기쁨.

이것이었다. 준호가 세터로서 경험했던 것과는 완전히 다른 감정. 혼자 모든 것을 완벽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팀과 함께 이겨내는 것.

준호는 채은을 안았다. 그 순간 눈가에 뭔가 맺혔다. 팀을 믿게 된 순간의 감정이 눈물로 흘러내렸다.

도현이 준호의 어깨를 두드렸다.

"이제 알겠지? 절대 감각은 도구일 뿐이야. 진짜 중요한 건 팀을 믿는 거야."

준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도현을 바라봤다. 주장의 눈에는 준호를 향한 신뢰가 가득했다.

그 순간, 준호의 휴대폰이 울렸다.

알 수 없는 번호였다. 준호는 전화를 받았다.

"이준호 선수시죠? 저는 정수연 기자입니다. 한국배구연합에서 나온 기자인데요."

기자의 목소리였다.

"네, 맞습니다."

"다름이 아니라 오늘 당신의 경기를 봤거든요. 정말 인상적이었습니다. 특히 당신의 공격 스타일이요. 뭔가 특별한 감각이 있는 것처럼 보였어요. 혹시 인터뷰를 할 수 있을까요?"

준호의 얼굴이 굳었다.

절대 감각이 노출되고 있었다.

도현이 준호의 표정 변화를 감지했다. 주장의 눈이 준호를 향했다. 그 눈에는 이미 다음 전략이 담겨 있는 것처럼 보였다. 이 능력을 어떻게 지킬 것인가. 그리고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

준호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죄송한데... 나중에 연락드리겠습니다."

전화를 끊었다. 하지만 준호의 심장은 여전히 요동치고 있었다. 절대 감각이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것은 더 이상 자신만의 것이 아닐 수도 있다는 뜻이었다.

도현이 준호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괜찮아. 우리가 함께 생각해보자."

그 말이 준호를 안심시켰다. 이제 준호는 혼자가 아니었다. 팀이 있었고, 주장이 있었다. 절대 감각이라는 비밀도, 그 비밀을 지키는 일도, 모두가 함께할 수 있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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